Ra Mắt Hay Ra Đi Raw - C43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9화
논란, 홍보, 시너지 효과까지.
VTIC의 기부 콘서트는 한평생 아이돌만 해온 전(前) 리셋증후군에 의해 치밀하고 적확한 타이밍에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물론 콘서트를 기획한 것은 자신이지만.
‘흠.’
주단은 순조롭게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건물이 붕괴하는 어마어마한 하강형 사건이 마치 없던 일처럼 원상 복구되었다.
그렇게 완벽히 행복하게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면, 당연히 직후에는 이런 긴장감 없는 성공 스토리가 나오는 법이다.
‘다 좋게 흘러 가겠….’
“주단.”
“예.”
주단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을 정리했다.
결코 리더 형에게 습관적인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인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종(種)의 차원에서 생각해 봤을 때 그가 일정량의 위압감과 공포를 느꼈다 하더라도 당연한 것 아닌가.
저토록 새파랗게 젊은 얼굴이지만 청려는 사실 어마어마한 세월 동안 자아를 쌓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머나먼 고대부터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연장자를 존경한 이유가 필시 있다.
‘침착하자.’
주단은 보이지 않게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당사자인 청려는… 힐끗 주단의 행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네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을 텐데.”
“취미입니다.”
“음.”
청려는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 같은 소리를 하는 대신 그를 살짝 응시한 후 자리를 떴다.
암묵적인 허락이었다.
제법 너그러운… 아니지, 너그러운 게 아니다. 허락이라니! 아무리 리더라고 해도 과한 권한 남용이었다.
‘하지만 데뷔 전부터 저런 캐릭터긴 했지.’
직접적으로 사람을 쏘아붙이는 게 아니라, 저 높은 곳에서 누르는 것 같은 이 느낌 말이다.
‘그룹의 리더로서는 효율이 좋은 타입이긴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VTIC이 이렇게 오래 건재하지 않은가.
‘재계약 때쯤엔 내가 망했을 줄 알았는데.’
다른 멤버가 망하긴 했다.
주단은 슬슬 그 상념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대신 아까 보던 인터넷의 VTIC 콘서트에 대한 리액션들을 떠올렸다.
우선 부정적인 것.
-테스타 기부콘 따라 한 거 아님?
└기부콘 전세냈냐
같은 플랫폼에서 진행되었던, 테스타의 교통사고 직후 기부 콘서트가 생각난다는 소수 여론이다. 테스타의 게스트 소식 덕에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들이 ‘관객 참여형’이라는 제법 참신한 방식을 사용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인터넷 애용자들한테나 통하는 마이너형 정책이지.’
자신, 그러니까 VTIC이 기획한 건 좀 더 고전적이고 화려한 맛이 있는 기부 콘서트였다.
그리고 그건 잘 먹혔다.
-진짜 볼 맛 난다
-아는 곡만 나오는 콘서트 오랜만이야 그리고 라이브 넘 잘 들려서 신나네ㅋㅋㅋ
다만 테스타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2부에서 테스타의 (이미 예고된) 깜짝 VCR 등장은 꽤 재미있는 요소였다.
[박문대 : 일일 상담사 문댕입니다.]
[말티즈 : (소리 없는 비명)]
앞발 든 말티즈 강아지 캐릭터가 입을 틀어막았다. 바로 박문대에게 상담을 요청한 팬이다.
익명을 위해, 상담해 주는 멤버의 동물 캐릭터가 VR처럼 합성된 지원자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제법 귀엽고 가슴이 찡할 만한 요소였다.
웃기기도 했고 말이다.
‘격렬한 무대 중간에 템포를 조절하는 유머 장치라.’
[선아현 : 우선 따듯한 물을 한 잔 드시고,]
[루돌프 : (딸꾹질)]
[선아현 : 그, 딸꾹질에도 도움이 될 거예요….]
“아 귀여우셔!”
“아현 씨 되게 열심히 해주셔서 보기 진짜 좋다.”
주단은 다른 멤버들과 함께 ‘기부콘서트 VTIC 리액션’을 촬영하는 도중 내심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리액션 자체도 곧 공개될 컨텐츠였다.
바로 그들이… 입대하고 난 뒤에 말이다.
“…….”
맙소사.
‘입대라니.’
그 대단위 공백기 전에 이 일을 그만둘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계속하고 있다.
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동안 소비할 게 없어서 팬들이 외부인으로 돌아가는 일은 별로 없겠지.’
자체 컨텐츠 3종, 무료 공개 음원과 뮤직비디오 2종, 세계관 연결용 시네마틱 트레일러까지 떠올리자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물론 청려가 만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걸까.’
본인은 내년에 6개월만 가면서 공백기 컨텐츠를 이렇게나 빼놓다니.
이래서 초인적인 리더에게 그가 함부로 반발하기 힘든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화면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VCR이 끝나고, 무대가 나와야 할 차례에 나오는 것은….
[테스타의 상담 현장에 방문!]
갑자기 테스타의 펜션에 깜짝 방문한 VTIC의 모습이다.
-헉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서프라이즈긴 했다.
만일 주단이 꺼둔 스마트폰 속 인터넷을 확인한다면 수없이 많은 느낌표와 신난 반응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허어억!?]
[어어? 선배님들?]
심지어 당사자인 화면 속 테스타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건 합의하지 않은 사항이니까.
‘흐음.’
주단은 남몰래 뿌듯함을 느꼈다. 다 훌륭한 리액션을 위해서였다.
-애들 기절하겠다ㅋㅋㅋ
-문대 안 놀란 척하는 것 좀 봐 마이프레셔스쏘리를댕댕이ㅠㅠ
-배세진 버선발로 달려 나왔는데요ㅋㅋㅋㅋㅋㅋ
-저기 테스타 숙소야?
└숙소 공개하긴 그러니까 어디 빌린 듯
어쨌든,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피자를 나눠 먹으며 짧게 기부 콘서트와 그 의미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에… 의기투합한다는 시나리오다.
우선 테스타의 박문대가 이렇게 운을 뗐다.
[아무래도 무대로는 참여하지 못하게 된 점이 저희가 많이 죄송하고 아쉬워요.]
[죄송하긴요! 어떻게든 참가해 주려고 상담까지 했으면서!]
[맞아, 충분히 하셨어.]
쑥스럽게 서로를 돌아보던 테스타 사이, 류청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아쉬운 걸로만 할게요.]
[그러면….]
채율이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딱 저걸 하기에 적합한 멤버였다.
[여기서라도 짧게 해보면 어떨까요? 무대요!]
[!]
[여기 조명도 있고… 또 다들 준비된 퍼포먼스 장인들이니까!]
[와하하!]
그렇게 마치 즉석처럼 보이는 무대가 컨펌된 것이다.
[나가죠!]
밖은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야경과 동떨어진 위치에 있는 자연 속 펜션이었지만, 하나의 장점이 있었다.
펜션답게 큼직한 앞마당과 그곳에 쭉 깔린 램프 조명이었다.
[오오!]
[멋진 곳에서 상담하셨네요.]
자연스럽게 앞마당으로 신나서 달려 나간 VTIC과 테스타는 잠시 멈칫하면서도 히히 웃는다.
[저희 뭐 추죠?]
[그러게요, 생각 안 해봤는데!]
그리고 테스타의 이세진이 멤버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싱글벙글 웃는다.
[선배님들의 콘서트니까~ 선배님들 곡이 인지상정 아니겠습니까!]
[이야~]
물론 다 준비한 라인업이다.
그런데도 저 대사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소화하다니, 과연 그가 불편해할 만큼 사교성 좋은 사람이었다. 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래서 결정 난 선곡에 박수를 치며 아이돌들이 앞마당에 둘러섰다.
[음악 주세요!]
램프의 반짝이는 조명과 스탭이 켠 무대 조명 아래로 밤의 풀밭이 빛났다.
어둑어둑한 배경 위, 익숙한 인트로가 깔리면.
[아아!]
[아, 이거 너무 좋아!]
뛰쳐나온 아이돌들로 신나고 경쾌한 스텝이 엇갈렸다.
그리고 떼창처럼 도입부가 울린다.
[Hey partner!
내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
Night Sign.
테스타의 데뷔곡과 같은 시기 발표되었던 VTIC의 불후의 명곡이 앞마당에 깔렸다.
어둡고 나른한 섹시 컨셉의 곡이라 기부 콘서트 세트리스트에서 제외했던 곡이지만, 여기선 달랐다.
[또 기억하는 거야
Night after night]
콘서트에서, 파티에서 뛰는 사람들처럼 분위기가 들뜨자, 이 곡마저도 히트곡의 장점을 뽐낸다.
다 같이 아는 곡.
공감에서 오는 신남.
원래 그런 느낌의 안무가 아니었던 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두 그룹은 웃으며 섞인 채, 몇 명씩 돌아가며 앞으로 나와 안무를 따라 췄다.
때때로 약간 물러서서 일부러 후배가 나설 곳을 주는 VTIC과 최선을 다해 선배의 곡을 선 넘지 않으며 즐기는 테스타의 그림이었다.
이미 서로와 지내본 적 있는 멤버들이 섞인 덕에 그 균형이 더 쉽고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후렴이 되자.
[이 밤의 끝까지
내 눈을 기억해]
그들은 즉석에서 대형을 맞춰서 대표 안무를 펼쳤다.
직전의 즉석 파티 같은 분위기로부터 나왔기에, 그 딱 맞는 움직임이 더 근사해 보였다.
[Um, Um]
카메라 워크가 멤버 개개인이 웃거나 즐기는 얼굴을 잡았다.
곡에 걸맞지 않을 만큼 신난 움직임이었으나, 희한하게도 어울렸다.
[Like a night sign]
제스처와 근사한 즉석 안무 개인기가 빠른 템포로 곡을 꽉 채웠다.
하지만 풀 때는 확실히 풀었다.
[우!]
단체로 감탄사 같은 그 음을 따라 하며, 아이돌들은 안무를 풀고 활짝 웃었다.
“아….”
“저 때 너무 재밌었어!”
그 화면을 보며 리액션을 찍고 있던 VTIC 멤버들도 당시를 생각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주단은 고개를 돌리다가 보았다.
청려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Night sign!]
떼창하듯 외친 마지막 구절 다음. 멤버들이 서로 동작을 확인하며 몇 배나 커진 엔딩 대형으로 포즈를 취했다.
휘이익- 팡!
그리고 그 위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며, 즉석 무대가 끝났다.
웃음소리와 함께.
[와!]
[감사합니다!]
손을 흔드는 얼굴 뒤로 물드는 폭죽의 빛깔이 감성적으로 잡혔다.
벅찬 여운을 주는, 기부 콘서트에 딱 맞는 중간 피날레였다.
시청자 반응도 걸맞았다.
-ㅜㅜㅜ
-보기 좋았음 되게 뭉클해지네
-이렇게 참여할 줄은 몰랐음 잘 넣은 듯
-우리나라 아이돌들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바로 맞춰서 하지
└ㄴㄴ브이틱 테스타가 대단한 거임
다만 두 팬덤의 머릿속에는 풀리지 않을 의문이 하나 남았다.
-쟤네 왜 친함?
* * *
“아~ 재밌었다!”
“즐겁게 놀다 갑니다!”
VTIC 놈들이 급습해서 펜션 마당에서 공연 영상을 찍고 난 후.
콘서트 막바지라 바쁜 VTIC은 즉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테스타는 후배답게 성의 있는 배웅 중이다.
나는 방금 무대를 복기 중이었다.
‘괜찮았지.’
그렇게 선곡을 즉석에서 처음 들은 것 같이 사기 친 건 오랜만이긴 했는데 다 경력직이다 보니 썩 자연스럽게 나왔다.
굳이 VTIC 곡 중에 선곡하자면 테스타 데뷔 전 히트곡을 고르는 게 더 안전하긴 했지만, 사실 뭐…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쟤네 군대 가잖아.’
아이돌 그룹 관계에 연애가 아닌 모든 문제는 경쟁심에서 나온다.
공백기라 더는 경쟁자가 아니게 됐으니 팬들도 좀 더 너그럽게 반응해 주겠지.
그때였다.
“문대 씨!”
“네.”
“에이 우리 다시 존댓말 쓰는 사이가 됐네!”
옷을 갈아입은 진채율이 빙긋 웃었다.
“휴가 나오면 연락해도 돼요? 우리 그래도 얼굴 자주 봐요. 그럴 땐 전처럼 말도 놓고!”
“저야 언제나 좋습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바쁠 예정이다.
아무튼, 채율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뒤,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입대하고 나면 재현 형 혼자잖아요. 심정적으로요.”
입대하기 전에도 별로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만.
“형이랑 콩이, 계속 연락하실 거죠? 전에도 말했지만, 워낙 산신령 같은 사람이다 보니까 저러다 밥도 안 챙겨 먹을 것 같기도 해서요!”
아니, 청려는 아마 단백질과 섬유질 위주로 잘 챙겨 먹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채율은 밝은 얼굴로 (굳이) 포옹 후 자리를 떴다.
그리고 듣고 있던 주단이 슬그머니 다가와 오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채율 형이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이 다소 있습니다.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해서 그렇죠.”
“…….”
“그래도 사회적으론 저 형의 말을 더 쉽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놀랍죠.”
아니.
아무튼, 나는 채율의 말을… 잊어버리진 않기로 했다. 그 정도만.
그리고 며칠 후.
VTIC의 기부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그리고 깜짝 이벤트로 때깔 좋은 팬송 MV까지 발표하며 청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정말 그달에 입대했다.
기사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좀 희한하긴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살 이하의 어린 그놈들과 같은 그룹을 해봐서 그런가.
[“충성! 다녀오겠습니다.” VTIC 신오의 경례 ]
“우리가 갈 때쯤이면 대중문화도 병역 대체 법안이 통과되어서….”
“형,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에요.”
“…….”
우리 차례도 곧 돌아오긴 하겠다만, 아직 몇 년은 남은 일이다. 그 전에 입대 연기가 가능한 국가 훈장을 탈 수도 있고.
‘다음 목표는 그걸로 해야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고개 끄덕여요?”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작업실 한가운데에서 하던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긴장한 얼굴로 부스에서 녹음 중인 선아현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이세진은 내 스마트폰 속 VTIC의 소식을 힐끗 확인하더니, 눈이 마주치자 흘리듯 말한다.
“음~ 1월 컴백?”
“1월 컴백.”
국가 훈장을 타는 조건?
KPOP이라면 그간의 선례가 확실히 남아있다.
글로벌 인지도와 평가.
단순히 잘나가는 걸로는 안 된다. 이 장르에서 최고여야 한다.
지금까지 VTIC이 완전히 꽉 틀어쥐고 있던 탑 티어 말이다.
‘군백기 동안 다 처먹어주마.’
VTIC이 사라진 올해 시상식 특별 무대부터 꽉 잡고 시작할 것이다.
“얼마 안 남았어.”
우리는 산뜻하게 빈집털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말이 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9화
논란, 홍보, 시너지 효과까지.
VTIC의 기부 콘서트는 한평생 아이돌만 해온 전(前) 리셋증후군에 의해 치밀하고 적확한 타이밍에 모든 것이 진행되었다.
물론 콘서트를 기획한 것은 자신이지만.
‘흠.’
주단은 순조롭게 돌아가는 모든 상황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려 건물이 붕괴하는 어마어마한 하강형 사건이 마치 없던 일처럼 원상 복구되었다.
그렇게 완벽히 행복하게 대단원의 막이 내렸다면, 당연히 직후에는 이런 긴장감 없는 성공 스토리가 나오는 법이다.
‘다 좋게 흘러 가겠….’
“주단.”
“예.”
주단은 목소리가 들리자마자 재빨리 자신의 스마트폰을 정리했다.
결코 리더 형에게 습관적인 압박감을 느꼈기 때문이 아니라, 합리적인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종(種)의 차원에서 생각해 봤을 때 그가 일정량의 위압감과 공포를 느꼈다 하더라도 당연한 것 아닌가.
저토록 새파랗게 젊은 얼굴이지만 청려는 사실 어마어마한 세월 동안 자아를 쌓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머나먼 고대부터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남은 연장자를 존경한 이유가 필시 있다.
‘침착하자.’
주단은 보이지 않게 입안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당사자인 청려는… 힐끗 주단의 행태를 확인하며 말했다.
“네가 확인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을 텐데.”
“취미입니다.”
“음.”
청려는 ‘하지 말라면 하지 마라’ 같은 소리를 하는 대신 그를 살짝 응시한 후 자리를 떴다.
암묵적인 허락이었다.
제법 너그러운… 아니지, 너그러운 게 아니다. 허락이라니! 아무리 리더라고 해도 과한 권한 남용이었다.
‘하지만 데뷔 전부터 저런 캐릭터긴 했지.’
직접적으로 사람을 쏘아붙이는 게 아니라, 저 높은 곳에서 누르는 것 같은 이 느낌 말이다.
‘그룹의 리더로서는 효율이 좋은 타입이긴 하다.’
그래서 지금까지 VTIC이 이렇게 오래 건재하지 않은가.
‘재계약 때쯤엔 내가 망했을 줄 알았는데.’
다른 멤버가 망하긴 했다.
주단은 슬슬 그 상념을 뒤로 미루기로 했다. 그리고 대신 아까 보던 인터넷의 VTIC 콘서트에 대한 리액션들을 떠올렸다.
우선 부정적인 것.
-테스타 기부콘 따라 한 거 아님?
└기부콘 전세냈냐
같은 플랫폼에서 진행되었던, 테스타의 교통사고 직후 기부 콘서트가 생각난다는 소수 여론이다. 테스타의 게스트 소식 덕에 거의 사라지긴 했지만 말이다.
물론 그들이 ‘관객 참여형’이라는 제법 참신한 방식을 사용했다는 건 인정한다.
‘하지만 인터넷 애용자들한테나 통하는 마이너형 정책이지.’
자신, 그러니까 VTIC이 기획한 건 좀 더 고전적이고 화려한 맛이 있는 기부 콘서트였다.
그리고 그건 잘 먹혔다.
-진짜 볼 맛 난다
-아는 곡만 나오는 콘서트 오랜만이야 그리고 라이브 넘 잘 들려서 신나네ㅋㅋㅋ
다만 테스타가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는 건 부정하지 않았다. 2부에서 테스타의 (이미 예고된) 깜짝 VCR 등장은 꽤 재미있는 요소였다.
앞발 든 말티즈 강아지 캐릭터가 입을 틀어막았다. 바로 박문대에게 상담을 요청한 팬이다.
익명을 위해, 상담해 주는 멤버의 동물 캐릭터가 VR처럼 합성된 지원자들이 고민을 털어놓는 것은 제법 귀엽고 가슴이 찡할 만한 요소였다.
웃기기도 했고 말이다.
‘격렬한 무대 중간에 템포를 조절하는 유머 장치라.’
“아 귀여우셔!”
“아현 씨 되게 열심히 해주셔서 보기 진짜 좋다.”
주단은 다른 멤버들과 함께 ‘기부콘서트 VTIC 리액션’을 촬영하는 도중 내심 몇 번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이 리액션 자체도 곧 공개될 컨텐츠였다.
바로 그들이… 입대하고 난 뒤에 말이다.
“…….”
맙소사.
‘입대라니.’
그 대단위 공백기 전에 이 일을 그만둘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도 계속하고 있다.
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그동안 소비할 게 없어서 팬들이 외부인으로 돌아가는 일은 별로 없겠지.’
자체 컨텐츠 3종, 무료 공개 음원과 뮤직비디오 2종, 세계관 연결용 시네마틱 트레일러까지 떠올리자 마음에 확신이 생겼다.
물론 청려가 만들었다.
‘대체 언제부터 준비한 걸까.’
본인은 내년에 6개월만 가면서 공백기 컨텐츠를 이렇게나 빼놓다니.
이래서 초인적인 리더에게 그가 함부로 반발하기 힘든 걸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화면은 다음으로 넘어갔다.
VCR이 끝나고, 무대가 나와야 할 차례에 나오는 것은….
갑자기 테스타의 펜션에 깜짝 방문한 VTIC의 모습이다.
-헉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서프라이즈긴 했다.
만일 주단이 꺼둔 스마트폰 속 인터넷을 확인한다면 수없이 많은 느낌표와 신난 반응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심지어 당사자인 화면 속 테스타도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 이건 합의하지 않은 사항이니까.
‘흐음.’
주단은 남몰래 뿌듯함을 느꼈다. 다 훌륭한 리액션을 위해서였다.
-애들 기절하겠다ㅋㅋㅋ
-문대 안 놀란 척하는 것 좀 봐 마이프레셔스쏘리를댕댕이ㅠㅠ
-배세진 버선발로 달려 나왔는데요ㅋㅋㅋㅋㅋㅋ
-저기 테스타 숙소야?
└숙소 공개하긴 그러니까 어디 빌린 듯
어쨌든, 그들은 반갑게 인사를 나눈 후 피자를 나눠 먹으며 짧게 기부 콘서트와 그 의미에 관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런 다음에… 의기투합한다는 시나리오다.
우선 테스타의 박문대가 이렇게 운을 뗐다.
쑥스럽게 서로를 돌아보던 테스타 사이, 류청우가 웃으며 입을 열었다.
채율이 밝은 얼굴로 대답했다. 딱 저걸 하기에 적합한 멤버였다.
그렇게 마치 즉석처럼 보이는 무대가 컨펌된 것이다.
밖은 이미 해가 진 뒤였다. 야경과 동떨어진 위치에 있는 자연 속 펜션이었지만, 하나의 장점이 있었다.
펜션답게 큼직한 앞마당과 그곳에 쭉 깔린 램프 조명이었다.
자연스럽게 앞마당으로 신나서 달려 나간 VTIC과 테스타는 잠시 멈칫하면서도 히히 웃는다.
그리고 테스타의 이세진이 멤버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싱글벙글 웃는다.
물론 다 준비한 라인업이다.
그런데도 저 대사를 저렇게 자연스럽게 소화하다니, 과연 그가 불편해할 만큼 사교성 좋은 사람이었다. 주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그래서 결정 난 선곡에 박수를 치며 아이돌들이 앞마당에 둘러섰다.
램프의 반짝이는 조명과 스탭이 켠 무대 조명 아래로 밤의 풀밭이 빛났다.
어둑어둑한 배경 위, 익숙한 인트로가 깔리면.
뛰쳐나온 아이돌들로 신나고 경쾌한 스텝이 엇갈렸다.
그리고 떼창처럼 도입부가 울린다.
내 생각을 하고 있나 궁금해]
Night Sign.
테스타의 데뷔곡과 같은 시기 발표되었던 VTIC의 불후의 명곡이 앞마당에 깔렸다.
어둡고 나른한 섹시 컨셉의 곡이라 기부 콘서트 세트리스트에서 제외했던 곡이지만, 여기선 달랐다.
Night after night]
콘서트에서, 파티에서 뛰는 사람들처럼 분위기가 들뜨자, 이 곡마저도 히트곡의 장점을 뽐낸다.
다 같이 아는 곡.
공감에서 오는 신남.
원래 그런 느낌의 안무가 아니었던 곡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두 그룹은 웃으며 섞인 채, 몇 명씩 돌아가며 앞으로 나와 안무를 따라 췄다.
때때로 약간 물러서서 일부러 후배가 나설 곳을 주는 VTIC과 최선을 다해 선배의 곡을 선 넘지 않으며 즐기는 테스타의 그림이었다.
이미 서로와 지내본 적 있는 멤버들이 섞인 덕에 그 균형이 더 쉽고 자연스럽게 보였다.
그리고 후렴이 되자.
내 눈을 기억해]
그들은 즉석에서 대형을 맞춰서 대표 안무를 펼쳤다.
직전의 즉석 파티 같은 분위기로부터 나왔기에, 그 딱 맞는 움직임이 더 근사해 보였다.
카메라 워크가 멤버 개개인이 웃거나 즐기는 얼굴을 잡았다.
곡에 걸맞지 않을 만큼 신난 움직임이었으나, 희한하게도 어울렸다.
제스처와 근사한 즉석 안무 개인기가 빠른 템포로 곡을 꽉 채웠다.
하지만 풀 때는 확실히 풀었다.
단체로 감탄사 같은 그 음을 따라 하며, 아이돌들은 안무를 풀고 활짝 웃었다.
“아….”
“저 때 너무 재밌었어!”
그 화면을 보며 리액션을 찍고 있던 VTIC 멤버들도 당시를 생각하며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주단은 고개를 돌리다가 보았다.
청려도 희미하게 웃고 있었다.
“그래.”
떼창하듯 외친 마지막 구절 다음. 멤버들이 서로 동작을 확인하며 몇 배나 커진 엔딩 대형으로 포즈를 취했다.
휘이익- 팡!
그리고 그 위 하늘에서 폭죽이 터지며, 즉석 무대가 끝났다.
웃음소리와 함께.
손을 흔드는 얼굴 뒤로 물드는 폭죽의 빛깔이 감성적으로 잡혔다.
벅찬 여운을 주는, 기부 콘서트에 딱 맞는 중간 피날레였다.
시청자 반응도 걸맞았다.
-ㅜㅜㅜ
-보기 좋았음 되게 뭉클해지네
-이렇게 참여할 줄은 몰랐음 잘 넣은 듯
-우리나라 아이돌들 진짜 대단하다 어떻게 저런 식으로 바로 맞춰서 하지
└ㄴㄴ브이틱 테스타가 대단한 거임
다만 두 팬덤의 머릿속에는 풀리지 않을 의문이 하나 남았다.
-쟤네 왜 친함?
* * *
“아~ 재밌었다!”
“즐겁게 놀다 갑니다!”
VTIC 놈들이 급습해서 펜션 마당에서 공연 영상을 찍고 난 후.
콘서트 막바지라 바쁜 VTIC은 즉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리고 테스타는 후배답게 성의 있는 배웅 중이다.
나는 방금 무대를 복기 중이었다.
‘괜찮았지.’
그렇게 선곡을 즉석에서 처음 들은 것 같이 사기 친 건 오랜만이긴 했는데 다 경력직이다 보니 썩 자연스럽게 나왔다.
굳이 VTIC 곡 중에 선곡하자면 테스타 데뷔 전 히트곡을 고르는 게 더 안전하긴 했지만, 사실 뭐… 별문제는 없을 것이다.
‘쟤네 군대 가잖아.’
아이돌 그룹 관계에 연애가 아닌 모든 문제는 경쟁심에서 나온다.
공백기라 더는 경쟁자가 아니게 됐으니 팬들도 좀 더 너그럽게 반응해 주겠지.
그때였다.
“문대 씨!”
“네.”
“에이 우리 다시 존댓말 쓰는 사이가 됐네!”
옷을 갈아입은 진채율이 빙긋 웃었다.
“휴가 나오면 연락해도 돼요? 우리 그래도 얼굴 자주 봐요. 그럴 땐 전처럼 말도 놓고!”
“저야 언제나 좋습니다.”
물론 문제가 생기면 바쁠 예정이다.
아무튼, 채율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 뒤,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속삭이듯 작게 말했다.
“그리고 우리가 다 입대하고 나면 재현 형 혼자잖아요. 심정적으로요.”
입대하기 전에도 별로 다르진 않았을 것 같다만.
“형이랑 콩이, 계속 연락하실 거죠? 전에도 말했지만, 워낙 산신령 같은 사람이다 보니까 저러다 밥도 안 챙겨 먹을 것 같기도 해서요!”
아니, 청려는 아마 단백질과 섬유질 위주로 잘 챙겨 먹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노력하겠습니다.”
“그래요!”
채율은 밝은 얼굴로 (굳이) 포옹 후 자리를 떴다.
그리고 듣고 있던 주단이 슬그머니 다가와 오묘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채율 형이 감성적이고 비합리적인 부분이 다소 있습니다. 대인관계에 지나치게 큰 의미를 부여해서 그렇죠.”
“…….”
“그래도 사회적으론 저 형의 말을 더 쉽게 받아들이곤 합니다. 놀랍죠.”
아니.
아무튼, 나는 채율의 말을… 잊어버리진 않기로 했다. 그 정도만.
그리고 며칠 후.
VTIC의 기부 콘서트는 성황리에 끝났다.
그리고 깜짝 이벤트로 때깔 좋은 팬송 MV까지 발표하며 청려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은 정말 그달에 입대했다.
기사 사진을 보니 기분이 좀 희한하긴 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20살 이하의 어린 그놈들과 같은 그룹을 해봐서 그런가.
“우리가 갈 때쯤이면 대중문화도 병역 대체 법안이 통과되어서….”
“형,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이에요.”
“…….”
우리 차례도 곧 돌아오긴 하겠다만, 아직 몇 년은 남은 일이다. 그 전에 입대 연기가 가능한 국가 훈장을 탈 수도 있고.
‘다음 목표는 그걸로 해야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고개 끄덕여요?”
“좋은 곡이 나올 것 같아서.”
나는 작업실 한가운데에서 하던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긴장한 얼굴로 부스에서 녹음 중인 선아현이 보였다.
그리고 다음 타자인 이세진은 내 스마트폰 속 VTIC의 소식을 힐끗 확인하더니, 눈이 마주치자 흘리듯 말한다.
“음~ 1월 컴백?”
“1월 컴백.”
국가 훈장을 타는 조건?
KPOP이라면 그간의 선례가 확실히 남아있다.
글로벌 인지도와 평가.
단순히 잘나가는 걸로는 안 된다. 이 장르에서 최고여야 한다.
지금까지 VTIC이 완전히 꽉 틀어쥐고 있던 탑 티어 말이다.
‘군백기 동안 다 처먹어주마.’
VTIC이 사라진 올해 시상식 특별 무대부터 꽉 잡고 시작할 것이다.
“얼마 안 남았어.”
우리는 산뜻하게 빈집털이를 준비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연말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