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3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7화
‘떡밥이 없다….’
음울하게 중얼거리며 아무 의미 없이 SNS를 돌아다니던 김래빈의 팬은 타임라인 너머로부터 공유된 글을 하나 보았다.
VTIC의 공식 계정 글이었다.
[ 나눔 콘서트
D-7 기념 파격 소식!
불굴의 게스트들이 돌아옵니다.
(사진)]
그리고 그걸 공유한 계정이 짧고 불길한 코멘트를 붙여놨다.
-설마 우리 애들?
“…….”
김래빈의 팬도 싸했다.
주로 촉이 맞을 때의 예감이었다.
‘아 제발.’
그 난리를 겪었지만 그래도 테스타가 VTIC 기부 콘서트에 나온다고?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기부 콘서트가 화제성을 가진 마당에 흐름 안 놓치고 영리하게 딱 참가 선언한 건 좋았다. 컨텐츠 늘어나는 건 더 좋고.
문제는… VTIC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아서 X 같기도 했다는 점이다.
‘아니, 그 새끼들 책임도 맞잖아. 지들이 사고당할 뻔한 것도 아니면서 뻔뻔하게 어딜 우리도 피해자 이 지랄이야…!’
뻔한 수작질이었지만 방송국이 더 열받아서 넘어간 게 천추의 한이었다.
이제 테스타까지 나오니 나눔 콘서트는 더 성공적으로 해 먹겠지!
김래빈의 팬은 씩씩대다가,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다.
취업 준비를 하는 고학번을 지나 그녀도 슬슬 인터넷에서의 전투력이 누그러들었기 때문이다.
‘뭐… 무대 하려나.’
당일에 무대를 하기도 전에 사건이 터져서 확신은 못 하지만, 아마 적당히 타이틀 몇 개 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박문대 괜찮은 거겠지?’
아무리 걔가 기가 X나 세도 무대 장치에 깔릴 뻔한 건 트라우마로 남을 만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바로 어제 테스타도 다시 SNS 사용을 재개하긴 했다.
-신나는 보드게임 (강아지 이모티콘)
첨부된 짧은 동영상에는 망한 주사위 숫자를 보고 구르는 이세진과 폭소하는 테스타의 모습이 정겹게도 담겨 있었다.
풍경을 보니 실내였는데, 다 같이 지내는 걸 보니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당연히 그런 것만 올렸겠지만.’
단정한 파자마를 입은 김래빈의 모습이 순간 지나가는 것을 돌려 캡처하며, 그녀는 쓸데없는 감정 소모 말고 떡밥에나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예정된 ‘그’ 떡밥은 그녀가 예상하던 게 아니었다.
그날 오후, VTIC의 공식 계정과 더불어 테스타의 공식 계정에도 글이 뜬 것이다.
[테스타의 고민상담소
오픈 준비 중 (알통 이모티콘)
지점 : 나눔소]
“…?!”
그녀는 당황해서 설명글을 클릭했다.
-청소년 가장을 돕고 테스타에게 당신의 청소년 시기의 고민과 어려움을 상담해 보세요 (사진)
그렇다. 테스타는 무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대로 기부 콘서트에서 준비한 무대를 하면, 무대 붕괴가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극복했다고 서사로 만들기엔 다친 멤버도 없어서 애매하다. 시청자가 무대를 즐기는 대신 사고 생각만 나게 할 가능성도 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대신 이런 방식을 택했다.
VCR용 부가 컨텐츠!
-테스타랑 대화하기!
고민 상담이니 뭐니 말하지만, 사실 이건… 영상통화형 팬사인회였다!
‘아아악!’
김래빈의 팬은 재빠르게 설명을 요약해 놓은 글을 타임라인에서 찾아냈다.
-모금 상자에 기부하고 원하는 멤버를 골라 사연을 적으면 응모가 된다. 상담하는 사람의 얼굴은 가려지지만, 사연은 익명 형태로 방송을 탈 수도 있다….
-그리고 사연은 멤버들이 고른다!
기간은 단 하루.
“…….”
그녀는 만들던 발표용 PPT를 돌아보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아아아 진짜!”
몰라 밤새!
양심 없이 미친 팬싸컷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당첨되어 본 적 없던 그녀는 이번엔 헛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응모했을 테니 안 될 확률이 높지만….
‘김래빈!’
그녀는 워드를 켰다.
그리고 이틀 뒤. 자신의 당첨 소식을 보고 포효를 지르게 된다.
당연하지만 박문대가 이걸 기획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 * *
부정하진 않겠다. 놀랍게도 입원과 달리 펜션 생활은 꽤 괜찮았다.
배세진이 진지하게 ‘스마트폰을 다시 반납하지 않겠냐’며 설득하긴 했지만 참을 만했고.
좀 웃기지만, 지루함보단 느긋함이 있는 며칠 간이었다.
‘설마 스마트폰이 있어서 이런 차이가….’
아니, 내가 무슨 중독자도 아니고 그럴 리는 없고.
음… 사소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변수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았던 거겠지.
“고양이가. 왔어…!”
“와, 이게 무슨 무늬지? 애기가 노랗게 줄무늬가 있네~”
“물 같아요! 이상해요!”
차유진이 흘러들어온 길고양이를 개처럼 쓰다듬으려다가 당황하는 꼴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거 말이다.
그 외에도 좀 부산스럽긴 해도 나쁜 생활은 아니었다. 운동하고 요리하고 그림 연습하고.
언젠가 은퇴하면 이렇게 지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몸에 들어온 이후에 이런 시간은 처음인가.
좀 속되게 표현하자면 돈 많은 날백수처럼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때우는 일상 말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순 없기 때문에, 나는 며칠 분위기 보다가 저녁에 놈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냥 대놓고 말했다.
“나는 일하는 게 속이 편해.”
“…….”
“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원할 때 쉬어야 쉬는 거야.”
‘어쩌라고’ 같은 눈으로 보진 않는군. 다음으로 가보자.
“그러니까….”
“알아.”
“…!”
큰세진이 표정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속 안 편해도 쉬어야 할 땐 쉬어야지. …정말로 의사 권유였어. 너 젖산 수치 너무 높다고.”
“…!”
“거짓말한 건 아니야. 넌 그렇다고 느낀 것 같지만.”
“…….”
나는 다른 놈들을 둘러보았다. 가장 표정 읽기 쉬운 놈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진실이라는 뜻이다.
“스마트폰도 너무 자주 사용하는 편이면 얼마간 안 쓰는 게 좋다고 했고.”
“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즉답이 쏟아진다.
“어. 너 완전 중독이야.”
“박문대 술 마시듯이 스마트폰 찾잖아.”
“…….”
아니, 술은 효용 가치가 스트레스 해소뿐이고, 스마트폰은 이걸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개소리냐.
그러나 누구 하나 반박하지 않는다. 차유진도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그나마 김래빈이 슬그머니 이런 발언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대부분 도파민 중독 증상이 있다고 하니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도 전자기기 중독이라 그렇게 말하는 거야.”
“…??”
그리고 침몰당했다.
류청우가 그 틈을 타서 말을 시작했다. 오래 준비한 것처럼 부드럽게.
“하지만 문대가 당황스러웠을 순 있었겠다. 그렇지?”
“…….”
“우리도 너무 당황해서 그랬나 봐. 데뷔 전부터 많은 일을 겪긴 했지만… 누가 목숨이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잖아. 그것도 그렇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래.
그래서 나도 되도록 이놈들 태도에 협조해주려고 했던 거였지만….
“그래도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조금 늦은 것 같네.”
류청우가 웃으며 손을 내밀어 내 등을 두드렸다.
“고마워, 무사해 줘서.”
어딘가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 고맙다.”
“감사합니다.”
미리 이야기라도 된 건지, 여기저기서 비슷한 이야기가 들린다. 그때마다 더 울렁거릴 지경이다.
‘망할.’
나는 심호흡하고 차분히 대답했다.
“저도요. 고마웠습니다. …다 무사히 나와서 다행이었고요.”
“그래.”
둘러앉은 거실의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입원 며칠간 화제를 피하며 생긴 묘한 긴장감도 사라졌다.
배세진은 얼굴이 좀 벌게진 채로 헛기침을 했다.
“그, 나도 예민했던 것 같아.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니까….”
“그래도 나중에 비슷한 느낌의 작품 연기할 때는 도움이 되진 않을까요.”
“아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지.”
배세진은 나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거야?”
“저도 모르는데요.”
“야!”
“없을 것 같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또 소리 지를 줄 알았다.
그러나 배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
“아니, 널 추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 나도 이것저것 알아볼게.”
SF 소설이라도 읽을 생각인가?
“좋아요! 우리 모두 서로에게 감사했어요. 이대로 가면 돼요. 문대 형 하고 싶은 말 해요.”
차유진의 말이 끝나자 이세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문대문대는 일하고 싶다고? 하고 싶은 게 정확히 어떤 건데?”
제법 우호적이었다.
‘여기서 바로 말해도 되겠군.’
심지어 굳이 펜션을 안 벗어나고 할 걸 고를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뭐.
“이런 거죠.”
나는 멤버들에게 내 계획을 설명했다. 경청하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재밌겠는데?”
결국 무사히 통과되어서, VTIC 계정을 통해 우리의 새 참여 방식이 공지되었다는 것이다.
–
* * *
[안녕하십니까! 통화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네, 어, 안녕하세요!”
김래빈의 팬은 침을 삼켰다.
화면 속에는 자신의 화면을 보고 있는 김래빈의 얼굴이 보였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다.
현실이다!
동생을 팔아먹은 자신의 사연이 당첨되어서, 이틀 만에 김래빈과 영상통화 중이라고!
‘으아아악!’
그녀는 이상한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지게 잘생겼네!’
김래빈은 작게 꽁지머리를 묶고 있었다.
하지만 대충 집에서 흘려 묶은 상태였다는 뜻은 아니다. 피어싱과 올 굵은 회색 니트까지 신경 써서 잘 입은 게 보였다.
그리고 머리 밑으로 시크릿 투톤의 속색인 연보라색 베이지, 애쉬퍼플이 슬쩍 보이는 게 극락이었다.
팬은 탄식했다.
‘이게 나라다….’
농담이 아니라 김래빈은 정말 나라를 받아도 잘 운영할 만한… 아니, 사기당할 수도 있겠구나.
순간 객관성을 되찾은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게 준비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제가 동생과 워낙 많이 싸워서요….”
대충 어릴 적부터 동생과 자주 싸우느라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는 소리다.
열심히 듣던 김래빈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누나와 함께 자라며 다양한 갈등을 많이 겪었기 때문에 이 고충에는 도움을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서 지원 님과의 대화를 요청했습니다.]
나랑 대화를 요청했대!
‘단어 선택 죽인다….’
선택도 아니고 본인이 요청… 아, 아무튼.
사실 그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어떤 도움을 생각했는지는 굉장히 궁금했다.
화면 속 김래빈은 진지한 얼굴로 잘생긴 입을 열었다.
[동생분께 지원 님께서 마음이 상하신 지점을 가감 없이 정확히 말해주시면 어떨까 합니다.]
[저 역시 누나를 실망시킨 적이 적지 않습니다만, 정확한 피드백이 주어지면 그 점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번거로우시겠지만… 고려 부탁드립니다.]
“…….”
그러니까, 얘는 자기 누나가 훈계하면 곧이곧대로 성실하게 경청해 왔다는… 거지?
‘부럽다.’
김래빈의 팬은 이를 꽉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김래빈 누나로 태어날 수 있었냐.
-올 진짜 당첨됨? 사기 아니냐?
-근데 실제로 보는 것도 아닌데 뭘 꾸며 니 꾸며도 존못이야 그냥 대충… 악! 악!
-니 못생긴 게 내 탓이냐고!
그런 걸 동생으로 두고 산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관심 없는 척하면서 방금도 주변에 얼쩡거리며 확인하려는 놈을 쫓아냈다.
한마디로, 사람 열폭하게 만드는 하등 쓸모없는 조언!
그러나 김래빈의 팬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시도해 볼게요!”
[…!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김래빈이 자기 덕에 진심으로 감격하는 걸 놓칠 수 없지! 그리고 정말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본인 일화도 들려달라고 하자!’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향한 귀여운 응원 문구도 끌어낼 것이다.
김래빈의 팬은 스스로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펜션의 3층 방.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누나.”
박문대도 식은땀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첫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화면에 보이는 건….
[제 청소년기 고민은 언니와 비교되는 거였어요.]
류서진.
의 작가였던 류서린의 동생이며, 류건우 시절 나와 같은 사진 동아리에 술 잘 먹던 신문방송학과 선배.
[아, 전 퍼피… 아니, 류서진으로 불러주시면 됩니다.]
…그리고 박문대와 이세진의 트윈홈마였다.
그도 지금 알았다.
‘실화냐.’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7화
‘떡밥이 없다….’
음울하게 중얼거리며 아무 의미 없이 SNS를 돌아다니던 김래빈의 팬은 타임라인 너머로부터 공유된 글을 하나 보았다.
VTIC의 공식 계정 글이었다.
D-7 기념 파격 소식!
불굴의 게스트들이 돌아옵니다.
(사진)]
그리고 그걸 공유한 계정이 짧고 불길한 코멘트를 붙여놨다.
-설마 우리 애들?
“…….”
김래빈의 팬도 싸했다.
주로 촉이 맞을 때의 예감이었다.
‘아 제발.’
그 난리를 겪었지만 그래도 테스타가 VTIC 기부 콘서트에 나온다고?
좋기도 하고 싫기도 했다.
기부 콘서트가 화제성을 가진 마당에 흐름 안 놓치고 영리하게 딱 참가 선언한 건 좋았다. 컨텐츠 늘어나는 건 더 좋고.
문제는… VTIC 좋은 일만 시켜주는 것 같아서 X 같기도 했다는 점이다.
‘아니, 그 새끼들 책임도 맞잖아. 지들이 사고당할 뻔한 것도 아니면서 뻔뻔하게 어딜 우리도 피해자 이 지랄이야…!’
뻔한 수작질이었지만 방송국이 더 열받아서 넘어간 게 천추의 한이었다.
이제 테스타까지 나오니 나눔 콘서트는 더 성공적으로 해 먹겠지!
김래빈의 팬은 씩씩대다가, 결국 현실을 받아들였다.
취업 준비를 하는 고학번을 지나 그녀도 슬슬 인터넷에서의 전투력이 누그러들었기 때문이다.
‘뭐… 무대 하려나.’
당일에 무대를 하기도 전에 사건이 터져서 확신은 못 하지만, 아마 적당히 타이틀 몇 개 할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박문대 괜찮은 거겠지?’
아무리 걔가 기가 X나 세도 무대 장치에 깔릴 뻔한 건 트라우마로 남을 만할 것 같아서 말이다.
그래도 바로 어제 테스타도 다시 SNS 사용을 재개하긴 했다.
-신나는 보드게임 (강아지 이모티콘)
첨부된 짧은 동영상에는 망한 주사위 숫자를 보고 구르는 이세진과 폭소하는 테스타의 모습이 정겹게도 담겨 있었다.
풍경을 보니 실내였는데, 다 같이 지내는 걸 보니 분위기가 나쁘지 않아 보였다.
‘당연히 그런 것만 올렸겠지만.’
단정한 파자마를 입은 김래빈의 모습이 순간 지나가는 것을 돌려 캡처하며, 그녀는 쓸데없는 감정 소모 말고 떡밥에나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예정된 ‘그’ 떡밥은 그녀가 예상하던 게 아니었다.
그날 오후, VTIC의 공식 계정과 더불어 테스타의 공식 계정에도 글이 뜬 것이다.
오픈 준비 중 (알통 이모티콘)
지점 : 나눔소]
“…?!”
그녀는 당황해서 설명글을 클릭했다.
-청소년 가장을 돕고 테스타에게 당신의 청소년 시기의 고민과 어려움을 상담해 보세요 (사진)
그렇다. 테스타는 무대를 하지 않았다.
그들이 그대로 기부 콘서트에서 준비한 무대를 하면, 무대 붕괴가 다시 떠오를 수밖에 없다.
극복했다고 서사로 만들기엔 다친 멤버도 없어서 애매하다. 시청자가 무대를 즐기는 대신 사고 생각만 나게 할 가능성도 있던 것이다.
그래서 그 대신 이런 방식을 택했다.
VCR용 부가 컨텐츠!
-테스타랑 대화하기!
고민 상담이니 뭐니 말하지만, 사실 이건… 영상통화형 팬사인회였다!
‘아아악!’
김래빈의 팬은 재빠르게 설명을 요약해 놓은 글을 타임라인에서 찾아냈다.
-모금 상자에 기부하고 원하는 멤버를 골라 사연을 적으면 응모가 된다. 상담하는 사람의 얼굴은 가려지지만, 사연은 익명 형태로 방송을 탈 수도 있다….
-그리고 사연은 멤버들이 고른다!
기간은 단 하루.
“…….”
그녀는 만들던 발표용 PPT를 돌아보다가, 머리를 쥐어뜯었다.
“아아아아 진짜!”
몰라 밤새!
양심 없이 미친 팬싸컷 때문에 지금까지 한 번도 당첨되어 본 적 없던 그녀는 이번엔 헛된 도전을 해보기로 했다.
당연히 어마어마하게 많은 사람이 응모했을 테니 안 될 확률이 높지만….
‘김래빈!’
그녀는 워드를 켰다.
그리고 이틀 뒤. 자신의 당첨 소식을 보고 포효를 지르게 된다.
당연하지만 박문대가 이걸 기획하기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는 짐작도 못 하고 있었다.
* * *
부정하진 않겠다. 놀랍게도 입원과 달리 펜션 생활은 꽤 괜찮았다.
배세진이 진지하게 ‘스마트폰을 다시 반납하지 않겠냐’며 설득하긴 했지만 참을 만했고.
좀 웃기지만, 지루함보단 느긋함이 있는 며칠 간이었다.
‘설마 스마트폰이 있어서 이런 차이가….’
아니, 내가 무슨 중독자도 아니고 그럴 리는 없고.
음… 사소하고 위협적이지 않은 변수가 많아서 지루하지 않았던 거겠지.
“고양이가. 왔어…!”
“와, 이게 무슨 무늬지? 애기가 노랗게 줄무늬가 있네~”
“물 같아요! 이상해요!”
차유진이 흘러들어온 길고양이를 개처럼 쓰다듬으려다가 당황하는 꼴을 보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런 거 말이다.
그 외에도 좀 부산스럽긴 해도 나쁜 생활은 아니었다. 운동하고 요리하고 그림 연습하고.
언젠가 은퇴하면 이렇게 지내도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 몸에 들어온 이후에 이런 시간은 처음인가.
좀 속되게 표현하자면 돈 많은 날백수처럼 하고 싶은 대로 시간을 때우는 일상 말이다.
물론 언제까지나 이렇게 있을 순 없기 때문에, 나는 며칠 분위기 보다가 저녁에 놈들을 불러 모았다.
그리고 그냥 대놓고 말했다.
“나는 일하는 게 속이 편해.”
“…….”
“쉬는 것도 좋지만 내가 원할 때 쉬어야 쉬는 거야.”
‘어쩌라고’ 같은 눈으로 보진 않는군. 다음으로 가보자.
“그러니까….”
“알아.”
“…!”
큰세진이 표정 없이 대답했다.
“그런데 속 안 편해도 쉬어야 할 땐 쉬어야지. …정말로 의사 권유였어. 너 젖산 수치 너무 높다고.”
“…!”
“거짓말한 건 아니야. 넌 그렇다고 느낀 것 같지만.”
“…….”
나는 다른 놈들을 둘러보았다. 가장 표정 읽기 쉬운 놈까지 흔들림이 없었다.
진실이라는 뜻이다.
“스마트폰도 너무 자주 사용하는 편이면 얼마간 안 쓰는 게 좋다고 했고.”
“내가?”
기다렸다는 듯이 즉답이 쏟아진다.
“어. 너 완전 중독이야.”
“박문대 술 마시듯이 스마트폰 찾잖아.”
“…….”
아니, 술은 효용 가치가 스트레스 해소뿐이고, 스마트폰은 이걸로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많은데 무슨 개소리냐.
그러나 누구 하나 반박하지 않는다. 차유진도 어깨를 으쓱하기만 했다.
그나마 김래빈이 슬그머니 이런 발언을 했을 뿐이다.
“하지만 현대인은 대부분 도파민 중독 증상이 있다고 하니 지나치게 염려하지 않으셔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너도 전자기기 중독이라 그렇게 말하는 거야.”
“…??”
그리고 침몰당했다.
류청우가 그 틈을 타서 말을 시작했다. 오래 준비한 것처럼 부드럽게.
“하지만 문대가 당황스러웠을 순 있었겠다. 그렇지?”
“…….”
“우리도 너무 당황해서 그랬나 봐. 데뷔 전부터 많은 일을 겪긴 했지만… 누가 목숨이 위험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잖아. 그것도 그렇게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래.
그래서 나도 되도록 이놈들 태도에 협조해주려고 했던 거였지만….
“그래도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했는데, 조금 늦은 것 같네.”
류청우가 웃으며 손을 내밀어 내 등을 두드렸다.
“고마워, 무사해 줘서.”
어딘가 속이 울렁거렸다.
“…그래, 고맙다.”
“감사합니다.”
미리 이야기라도 된 건지, 여기저기서 비슷한 이야기가 들린다. 그때마다 더 울렁거릴 지경이다.
‘망할.’
나는 심호흡하고 차분히 대답했다.
“저도요. 고마웠습니다. …다 무사히 나와서 다행이었고요.”
“그래.”
둘러앉은 거실의 분위기가 누그러들었다. 입원 며칠간 화제를 피하며 생긴 묘한 긴장감도 사라졌다.
배세진은 얼굴이 좀 벌게진 채로 헛기침을 했다.
“그, 나도 예민했던 것 같아. 상상도 못 한 일이 벌어지니까….”
“그래도 나중에 비슷한 느낌의 작품 연기할 때는 도움이 되진 않을까요.”
“아니! 앞으로는 이런 일이 없어야지.”
배세진은 나를 쏘아보았다. 그리고 진지하게 물었다.
“앞으로도… 이런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거야?”
“저도 모르는데요.”
“야!”
“없을 것 같다고는 하는데, 솔직히 잘 모르겠다는 뜻입니다. 더 알아봐야 할 것 같아요.”
솔직히 또 소리 지를 줄 알았다.
그러나 배세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이렇게 말했을 뿐이다.
“…그래. 솔직하게 말해줘서 고마워.”
“…!”
“아니, 널 추궁한다고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아무튼, 그, 나도 이것저것 알아볼게.”
SF 소설이라도 읽을 생각인가?
“좋아요! 우리 모두 서로에게 감사했어요. 이대로 가면 돼요. 문대 형 하고 싶은 말 해요.”
차유진의 말이 끝나자 이세진이 쓴웃음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그래서, 문대문대는 일하고 싶다고? 하고 싶은 게 정확히 어떤 건데?”
제법 우호적이었다.
‘여기서 바로 말해도 되겠군.’
심지어 굳이 펜션을 안 벗어나고 할 걸 고를 필요가 없었다는 생각이 들지만… 뭐.
“이런 거죠.”
나는 멤버들에게 내 계획을 설명했다. 경청하는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고….
“재밌겠는데?”
결국 무사히 통과되어서, VTIC 계정을 통해 우리의 새 참여 방식이 공지되었다는 것이다.
–
* * *
“네, 어, 안녕하세요!”
김래빈의 팬은 침을 삼켰다.
화면 속에는 자신의 화면을 보고 있는 김래빈의 얼굴이 보였다.
별로 실감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현실이다.
현실이다!
동생을 팔아먹은 자신의 사연이 당첨되어서, 이틀 만에 김래빈과 영상통화 중이라고!
‘으아아악!’
그녀는 이상한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오지게 잘생겼네!’
김래빈은 작게 꽁지머리를 묶고 있었다.
하지만 대충 집에서 흘려 묶은 상태였다는 뜻은 아니다. 피어싱과 올 굵은 회색 니트까지 신경 써서 잘 입은 게 보였다.
그리고 머리 밑으로 시크릿 투톤의 속색인 연보라색 베이지, 애쉬퍼플이 슬쩍 보이는 게 극락이었다.
팬은 탄식했다.
‘이게 나라다….’
농담이 아니라 김래빈은 정말 나라를 받아도 잘 운영할 만한… 아니, 사기당할 수도 있겠구나.
순간 객관성을 되찾은 그녀는 최대한 침착하게 준비한 사연을 털어놓았다.
“제가 동생과 워낙 많이 싸워서요….”
대충 어릴 적부터 동생과 자주 싸우느라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진다는 소리다.
열심히 듣던 김래빈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랑 대화를 요청했대!
‘단어 선택 죽인다….’
선택도 아니고 본인이 요청… 아, 아무튼.
사실 그 도움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어떤 도움을 생각했는지는 굉장히 궁금했다.
화면 속 김래빈은 진지한 얼굴로 잘생긴 입을 열었다.
“…….”
그러니까, 얘는 자기 누나가 훈계하면 곧이곧대로 성실하게 경청해 왔다는… 거지?
‘부럽다.’
김래빈의 팬은 이를 꽉 물었다.
대체 무슨 짓을 하면 김래빈 누나로 태어날 수 있었냐.
-올 진짜 당첨됨? 사기 아니냐?
-근데 실제로 보는 것도 아닌데 뭘 꾸며 니 꾸며도 존못이야 그냥 대충… 악! 악!
-니 못생긴 게 내 탓이냐고!
그런 걸 동생으로 두고 산 세월이 파노라마처럼 지나갔다.
관심 없는 척하면서 방금도 주변에 얼쩡거리며 확인하려는 놈을 쫓아냈다.
한마디로, 사람 열폭하게 만드는 하등 쓸모없는 조언!
그러나 김래빈의 팬은 활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시도해 볼게요!”
김래빈이 자기 덕에 진심으로 감격하는 걸 놓칠 수 없지! 그리고 정말로… 충분히 가치가 있었다.
‘본인 일화도 들려달라고 하자!’
최종적으로는 자신을 향한 귀여운 응원 문구도 끌어낼 것이다.
김래빈의 팬은 스스로에게 강력한 동기를 부여했다.
그리고 같은 시각.
펜션의 3층 방.
“…안녕하세요, 누나.”
박문대도 식은땀이 날 것 같은 기분으로 첫 영상통화를 시작했다.
화면에 보이는 건….
류서진.
의 작가였던 류서린의 동생이며, 류건우 시절 나와 같은 사진 동아리에 술 잘 먹던 신문방송학과 선배.
…그리고 박문대와 이세진의 트윈홈마였다.
그도 지금 알았다.
‘실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