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3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6화
VTIC의 기부 콘서트 사전 녹화 중에 무대가 붕괴했다.
그리고 잘나가는 후배 아이돌이 그걸 처맞을 뻔했다.
이 사실만 나열해 놓고 봤을 때 VTIC이 욕할 명분을 찾아 신난 사람들의 포화를 피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피했다는 거지.’
아니, 피한 게 아니라 바이럴로 승화했다고.
[어… 넵.]
나는 즉시 스마트폰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기간은 사고 발생일부터 지금까지로 정해놓고, 최신 여론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
[오, 오오….]
시야 공유하는 놈도 감탄한다. 나는 턱을 만졌다.
‘프레임을 옮겼군.’
공공의 적을 설정한 것이다.
바로 방송사.
========================
[방송국은 그래도 되나요? -김세화의 톡톡]
‘무대가 무너졌다. 하지만 다친 사람은 없으니 문제는 없다.’
지난 10월 9일 SBC의 무대 세트장에서 벌어진 붕괴 사고에 관한 SBC의 입장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런 말이 될 것이다.
PD에게 인사를 해야 퇴근할 수 있는, 내실보다 위계에 치중하는 공중파 음악 방송의 행태는 사고의 순간에도 여전했다.
…….
=======================
떨어진 것이 VTIC 콘서트 스탭 측에서 설치한 무대 세트가 아니라, 아예 방송국에서 기본적으로 관리하는 조명 장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작업은 무대 사고의 충격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후, 슬슬 책임론이 부상하며 VTIC이 욕먹기 직전쯤에 절묘하게 진행되었다.
-진짜 소름끼친다 사녹 사흘 빡빡하게 잡혀있었는데 누구든 철골 맞을 수도 있었음
-원인이 뭔지도 모른다며 계속 확인중이다 유감이다 ㅇㅈㄹ인데 묻히길 기다리는 듯ㅋㅋ
-테스타 직전에 갑자기 무대 중단한 것도 ㅂㅁㄷ가 무대장치 이상해보인다고 그랬다는 카더라 있던데
└헐 설마 확인해보려고 나왔다가 맞을 뻔했나
-이거 9시 뉴스감임 진짜… 아 개빡쳐서 미칠 것 같아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사실 그 무대가 몇 시간만 늦게 무너졌어도 철골 처맞는 건 VTIC이 됐을 것이다!
주최든 아니든 출연진은 누구든 다칠 수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해 갔을 뿐이라는 게 공인된다.
그리고 논점이 확고해진다.
-문제는 방송국의 갑질이다!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딱 나누면 책임은 가해자만 지면 된다.
그리고 방송국은 음악 쪽에서 워낙 갑질로 전적이 화려하기 때문에 이 구도가 잘 먹혔다.
-출연료 후려치기가 관행인 업계니 뭐ㅋㅋ
-무대 장치 문제 생기거나 미끄러져서 애들이나 스탭들 다친 게 하루 이틀이냐
-연례 행사 또 발생.. 이러다 진짜 누구 죽어야 정신 차리겠넹ㅠ
그간 음악 방송에서의 갑질과 무신경함으로 공감을 사고, 무대를 정비하는 인력의 외주화, 안전 불감증으로 사회적 이슈까지 살짝 건드는 것이다.
그러면 괜히 말 얻고 싶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인증하듯이 딱히 근거는 없지만 마치 증거처럼 보이는 이야기도 수군거렸다.
-나 그날 사녹 갔었는데 진짜 무대 점검하는 사람 없었어ㅇㅇ
-전날 같은 무대에서 맥시마이트 사녹 있었음 렛소가 조명 보고 뭐라뭐라했는데 설마…? (유출된 흐릿한 캡처)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보기 드문 일까지 벌어졌다.
-출연진 팬들끼리 합동 입장문이라도 만들자
-이거 타이밍 지나면 못한다 지금 제대로 말해서 사과받고 보상 받아야함
-입장문 의견 수렴용 링크 만들었습니다 (링크)
VTIC과 테스타의 몇몇 팬 커뮤니티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합동 입장문까지 기획했던 것이다.
‘VTIC 팬들 쪽에서는 일부러 더 성낸 것도 있고.’
화살이 다시 돌아가는 순간 본인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 더 적극적으로 타 출연진 팬들에게 우호적으로 나오며 방송국을 물어뜯는다.
거기에 입대 전 거의 마지막 행사를 초 친 것에 대한 분노와 VTIC이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는 패닉이 합쳐지니 명분도 충분했다.
-SBC 무대 방송 사고에 관한 출연진 연합 입장문입니다 (사진)
그렇게 VTIC은 완전히 책임소재에서 빠지고 피해자 포지션이 되었다.
‘말끔하다.’
부추긴 흔적 하나 남지 않도록 교묘하고 빠르게 여론을 몰아간 것은 과연 고인물이다 싶은 솜씨였다만.
이러면 문제가 있지.
-그래서 기부콘은 어떻게 됨?
‘공중파에서 이 콘서트를 계속 진행하기가 껄끄러워진다.’
여론 프레임을 ‘애초에 방송국 윗사람들의 태도가 문제다’로 크게 짜서 담당자 꼬리 자르기도 불가능하니, 방송국 윗분들도 제법 심기가 상했겠지.
결국 그쪽 반감을 사는 데다가 기부 콘서트의 진행 여부까지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소속사 가수 전체가 방송국에 출연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는 강수.
만약 활발히 활동할 예정인 그룹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이놈들은 군대 가지.’
18개월이나 여유가 있다면 그 안에 방송국과 슬쩍 화해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의 기부콘은… 이렇게 처리했다.
-브이틱 기부콘 SBC 방영 취소함
└헐
이놈들은 화끈하게 공중파 방영을 취소해버렸다.
사유는 ‘사고로 인한 진행 차질’을 들어 스케줄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사실상 먼저 선수 쳐서 보이콧을 때려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희 큰 잘못 했다고.
‘프레임 강화하는군.’
열받아 있던 출연진의 팬들은 속 시원해하면서 우호적으로 반응했다. 아니, 비단 팬들뿐만이 아니라 관심 있던 대중들은 다 좋아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화끈하네
-괜히 3대 기획사가 아니었구먼
-하긴 미국 빌보드 나오는 아이돌 기획사가 SBC 음방이 아까울 리가 없지 아 갑질 타겟 잘못 잡았다고ㅋ
친구랑 싸우면 절교하라는 조언부터 나오는 인터넷 생태계에서 이런 사이다 메타는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번 빌드업이 나온다.
-VTIC의 기부 콘서트는 여기서! (링크) 가입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무한 관객 참여형 플랫폼… (더보기)
기부 콘서트 방영은 아예 취소된 게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에서만 계속 진행됐다. 그것도 위튜브와 각종 SNS를 통한 화려한 광고와 함께.
언뜻 보면 시청자 타겟층이 줄어들어서 손해로 보이지만, 이렇게 거하게 터뜨림으로써 도리어 시청자 어그로가 끌렸다.
바로 위튜브 렉카다.
[KPOP 정상급 아이돌 기획사의 방송국 참교육!]
[레티 클라스 인증~ 무대 붕괴부터 현재까지 1분으로 알려드립니다]
[그래서 브이틱 기부콘 어디서 보냐고요? 바로 여기!│이슈토크]
이런 게 인기 동영상에 뜨고 나서 바로 모금함과 선공개 동영상이 해당 플랫폼에 떴다고 한다.
그렇게 무대 붕괴로 끌린 어그로가 기부콘 자체가 핫한 키워드로 떠오르도록 이어지고, 모금 금액이 쭉쭉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금 금액으로 다시 언플을 하겠지.’
선순환이었다. 나는 최신 언론 플레이 기사를 몇 개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해본 솜씨다.
[우와 이런 방법으로 무사히 콘서트가 진행된 건 줄은 몰랐어요, 대단하시네요!]
내 탐색 경로와 해설을 쭉 따라오던 큰달이 팝업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말이다.
“그 정도가 아니야.”
[예?]
수지 타산이 맞다? 무사히 잘 살아남았다?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이놈들 어마어마하게 이득 봤어.’
[????]
이 플랫폼이 어딘 건지 아는가?
‘이거 자사 플랫폼이야.’
본인들 거다.
[!]
Leti가 지분 절반을 가진 라이브 플랫폼이란 말이다.
이놈들은 이번 어그로로 어마어마한 수치의 새로운 이용자를 이 플랫폼으로 낚았다. 그것도 그냥 홍보해서는 유입 안 됐을 만한 종류의 사람들까지.
게다가 자연스럽게 플랫폼 인지도가 높아지는 효과까지.
‘Leti는 어마어마하게 이득을 본 거야.’
무려 플랫폼 사업자로서 말이다.
[그그런데 기획사가 이득을 본다고 해서 그룹이 이득을 보는 건 아니잖아요…? 맞죠? 형 소속사도 그렇고….]
오. 벌써 거기까지 추론하게 됐나.
‘맞아.’
나는 선선히 긍정했다.
아마 T1 Stars가 매출 다각화를 노리며 쓸데없는 짓을 하던 사건을 떠올리며 한 말이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어어, 어떤 점이…?]
‘Leti는 T1 Stars가 아니거든.’
테스타랑 처지가 완전히 다르다.
연차도, 속성도.
나는 무표정으로 중얼거렸다.
“VTIC은 거의 Leti를 먹은 상태야.”
[으헉?]
VTIC은 재계약하면서 Leti의 주식까지 상당량 쥐고 있는 놈들이다.
중세 판타지로 비유해 볼까. 테스타가 허겁지겁 입양한 양자라면, 저놈들은 그 소속사 적장자라는 뜻이다.
가짜긴 했지만 Leti에서 데뷔해 본 경험에 비추어볼 때 더 확실히 안다. 그 사장은 그룹을 돈벌이용 이상으로 생각한다.
‘게이머가 게임 아바타에 감정 이입하는 것처럼 과몰입하고 있었지.’
회사 이득보다 VTIC의 브랜드 가치를 더 신경 써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에서 VTIC은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이젠 세대 교체할 직속 후배 남자 아이돌도 데뷔를 안 했다. 말도 안 되는 영향력이었다.
당장 테스타와 스페이서 두고 티원스타즈가 환승 유도한 것 좀 봐라. 그걸 하고 싶어 하는 놈들이 위에 득실거릴 텐데 그걸 타 쳐냈다?
암묵적으로 의사결정권을 한 놈이 꽉 틀어쥐고 있다는 뜻이다.
…청려.
‘그놈이 막고 있는 한 VTIC과 비슷한 노선의 남자 아이돌이 LeTi에서 나오는 꼴은 못 보겠군.’
그 새끼가 경영진이 돼서 직접 만든다면 모를까.
어쨌든, 소속사를 자기 수족처럼 쓸 수 있는 놈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수였고… 이득이었다.
이 플랫폼은 앞으로도 청려가 잘 써먹을 것이다. 오랫동안.
[…형, 테스타도 그냥 독립해서 소속사 세우면 안 될까요?]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넵.]
저렇게 배후에서 조종할 수 있다면 모를까, 아이돌이 그룹 이름 내걸고 회사 세우는 순간 고난과 역경의 길이다.
테스타에겐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하다.
아직은.
‘흠.’
나는 새삼스럽게 화면을 쓱 내린 후,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기부 콘서트에 대한 여론은 이 정도면 됐다. 다음으로 볼 건 나에 대한 여론인데.
[아, 그건 형 잠깐 쉬신다고 기사가 났어요!]
쭉 살펴본 결과, 걱정이 좀 있긴 하지만 거의 다치지 않았다는 기사 덕에 분위기 문제로 SNS 등에 글을 쓰지 않는 거란 추론이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곰머짓
-셤별 다 같이 안 올리는 거 마음에 듬 우리까지 방송국이랑 싸울 생각 말어
-우리 효자 나는 믿어 슬슬 셀카 폭탄과 함께 등장할 거야
“…….”
그래, 뭐… 열심히 찍어보마.
이제 다음 단계로 가자. 바로 스마트폰의 본 기능, 연락이다.
-부재중 전화 (64)
미리내 박민하 후배
골든에이지 하일준 형
스페이서 권희승
…….
‘꽤 많군.’
스마트폰이 꺼져 있는 초기에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온 부재중 통화가 쌓이더니, 며칠 후에는 거의 없다. 아무래도 내가 쉰다는 게 암암리에 소문이 난 모양이다.
다만 꾸준히 온 연락이 있긴 했다.
-(사진)
바로 쌓인 문자다.
‘이젠 놀랍지도 않군.’
이건 뭐… 생존 인증 같은 건가.
나는 며칠 치가 쌓인 개 산책 사진을 보다가, 보낸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 —-.
짧은 통화음을 지나, 불쑥 말이 들린다.
-전화가 켜져 있네요.
“그래.”
나는 스마트폰을 고쳐 잡으며 적당히 말했다.
“의사가 스마트폰 좀 쓰지 말라고 해서 며칠 떼어놓고 살았고.”
-음.
“그쪽은 어때.”
일단 체크부터.
“건물 사태, 기억하냐.”
사실 그 붕괴가 없던 일이 되면서 나 외엔 전부 당시 기억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추측을 했었다.
그러나 테스타는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나랑 같이 빠져나왔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에는 좀 독특한 상황이라, 다른 그룹은 어떤가 했는데….
뭐, 이놈에겐 당연히 즉답이 돌아온다.
-네.
“주단도?”
-음,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기억한다는 뜻이군, 잘 알겠다.
“어떻게 기억하는 건지 추론해 보려고 물어본 거였어.”
-글쎄요.
청려는 꽤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떤 추론을 했지?
“이전에 가짜 세계에서 다들 오류에 감염된 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선아현의 특성으로 생긴, 시스템 법칙을 무시하는 그 힘 말이다.
그게 아직 남아 있다면 예외 처리된 것도 이해가 된다.
-내가 GM 권한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놈은 선선히 긍정했다.
별 긴장감 없이 말이 잘 흘러갔다. 이놈이 웬일로 사람 안 열받게 하는 것도 있고… 흠.
‘…설마 이것도 인터넷 디톡스 효과인가.’
내 정신머리가 느슨해지는 데에 기여를…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냥 목숨 빚져서 그런 거겠지.
생각난 김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실 당일에 했어야 했던 말이다.
“고맙다.”
-…….
“그때 키 찾아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살았어.”
그러나 여전히 통화 상대에게선 대답이 없다. 흡사 말문이 막힌 것 같은 상태.
이렇게 이놈이 동요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요.
그리고 한발 늦게 돌아온 답도 짧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처럼 들리는군.
흠.
‘겹쳐 보여서인가.’
이놈이 그 개판 수라장을 헤쳐나오려다가 여러 번 죽어봤다면, 멀쩡히 해결된 이번 사태에 대한 감회가 새롭긴 했을 것 같았다.
자신의 대처로 상태이상 실패 사태가 해결되는 건 이놈도 처음이었을 테니까.
오래 묵은 체념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법했다.
‘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튼, 이 새끼를 포함해서 주단까지 탈출에 도움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원래라면 서로 챙겨 먹고 선 긋는 짓을 했겠지만, 어차피 군대 가서 공백기 오는 놈들인데 이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빚질 생각은 없어서.’
그리고 자기들끼리 다 해 먹게 둘 생각도 없고.
준비한 만큼 우리도 뽑아갈 건 뽑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기부 콘서트 본방송 전이지.”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안할 게 있는데.”
내가 제대로 ‘휴식’하고 있는지 혈안이 되어 감시하는 놈들이 득실거리는 이 펜션에 있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며칠 후.
VTIC 공식 계정으로 공지가 하나 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6화
VTIC의 기부 콘서트 사전 녹화 중에 무대가 붕괴했다.
그리고 잘나가는 후배 아이돌이 그걸 처맞을 뻔했다.
이 사실만 나열해 놓고 봤을 때 VTIC이 욕할 명분을 찾아 신난 사람들의 포화를 피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그런데 피했다는 거지.’
아니, 피한 게 아니라 바이럴로 승화했다고.
나는 즉시 스마트폰으로 탐색을 시작했다.
기간은 사고 발생일부터 지금까지로 정해놓고, 최신 여론부터 거슬러 올라가면….
“…….”
시야 공유하는 놈도 감탄한다. 나는 턱을 만졌다.
‘프레임을 옮겼군.’
공공의 적을 설정한 것이다.
바로 방송사.
========================
‘무대가 무너졌다. 하지만 다친 사람은 없으니 문제는 없다.’
지난 10월 9일 SBC의 무대 세트장에서 벌어진 붕괴 사고에 관한 SBC의 입장을 두 문장으로 요약하자면 이런 말이 될 것이다.
PD에게 인사를 해야 퇴근할 수 있는, 내실보다 위계에 치중하는 공중파 음악 방송의 행태는 사고의 순간에도 여전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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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어진 것이 VTIC 콘서트 스탭 측에서 설치한 무대 세트가 아니라, 아예 방송국에서 기본적으로 관리하는 조명 장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이 작업은 무대 사고의 충격이 한번 휩쓸고 지나간 후, 슬슬 책임론이 부상하며 VTIC이 욕먹기 직전쯤에 절묘하게 진행되었다.
-진짜 소름끼친다 사녹 사흘 빡빡하게 잡혀있었는데 누구든 철골 맞을 수도 있었음
-원인이 뭔지도 모른다며 계속 확인중이다 유감이다 ㅇㅈㄹ인데 묻히길 기다리는 듯ㅋㅋ
-테스타 직전에 갑자기 무대 중단한 것도 ㅂㅁㄷ가 무대장치 이상해보인다고 그랬다는 카더라 있던데
└헐 설마 확인해보려고 나왔다가 맞을 뻔했나
-이거 9시 뉴스감임 진짜… 아 개빡쳐서 미칠 것 같아
시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사실 그 무대가 몇 시간만 늦게 무너졌어도 철골 처맞는 건 VTIC이 됐을 것이다!
주최든 아니든 출연진은 누구든 다칠 수 있었고 아슬아슬하게 사고를 피해 갔을 뿐이라는 게 공인된다.
그리고 논점이 확고해진다.
-문제는 방송국의 갑질이다!
사건에서 피해자와 가해자를 딱 나누면 책임은 가해자만 지면 된다.
그리고 방송국은 음악 쪽에서 워낙 갑질로 전적이 화려하기 때문에 이 구도가 잘 먹혔다.
-출연료 후려치기가 관행인 업계니 뭐ㅋㅋ
-무대 장치 문제 생기거나 미끄러져서 애들이나 스탭들 다친 게 하루 이틀이냐
-연례 행사 또 발생.. 이러다 진짜 누구 죽어야 정신 차리겠넹ㅠ
그간 음악 방송에서의 갑질과 무신경함으로 공감을 사고, 무대를 정비하는 인력의 외주화, 안전 불감증으로 사회적 이슈까지 살짝 건드는 것이다.
그러면 괜히 말 얻고 싶은 사람들이 한마디씩 인증하듯이 딱히 근거는 없지만 마치 증거처럼 보이는 이야기도 수군거렸다.
-나 그날 사녹 갔었는데 진짜 무대 점검하는 사람 없었어ㅇㅇ
-전날 같은 무대에서 맥시마이트 사녹 있었음 렛소가 조명 보고 뭐라뭐라했는데 설마…? (유출된 흐릿한 캡처)
덕분에 인터넷에서는 보기 드문 일까지 벌어졌다.
-출연진 팬들끼리 합동 입장문이라도 만들자
-이거 타이밍 지나면 못한다 지금 제대로 말해서 사과받고 보상 받아야함
-입장문 의견 수렴용 링크 만들었습니다 (링크)
VTIC과 테스타의 몇몇 팬 커뮤니티에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합동 입장문까지 기획했던 것이다.
‘VTIC 팬들 쪽에서는 일부러 더 성낸 것도 있고.’
화살이 다시 돌아가는 순간 본인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으니 더 적극적으로 타 출연진 팬들에게 우호적으로 나오며 방송국을 물어뜯는다.
거기에 입대 전 거의 마지막 행사를 초 친 것에 대한 분노와 VTIC이 사고를 당했을 수도 있다는 패닉이 합쳐지니 명분도 충분했다.
-SBC 무대 방송 사고에 관한 출연진 연합 입장문입니다 (사진)
그렇게 VTIC은 완전히 책임소재에서 빠지고 피해자 포지션이 되었다.
‘말끔하다.’
부추긴 흔적 하나 남지 않도록 교묘하고 빠르게 여론을 몰아간 것은 과연 고인물이다 싶은 솜씨였다만.
이러면 문제가 있지.
-그래서 기부콘은 어떻게 됨?
‘공중파에서 이 콘서트를 계속 진행하기가 껄끄러워진다.’
여론 프레임을 ‘애초에 방송국 윗사람들의 태도가 문제다’로 크게 짜서 담당자 꼬리 자르기도 불가능하니, 방송국 윗분들도 제법 심기가 상했겠지.
결국 그쪽 반감을 사는 데다가 기부 콘서트의 진행 여부까지 불투명해지는 것이다.
자칫하다간 소속사 가수 전체가 방송국에 출연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는 강수.
만약 활발히 활동할 예정인 그룹이라면 쉽게 할 수 없는 선택이지만….
‘이놈들은 군대 가지.’
18개월이나 여유가 있다면 그 안에 방송국과 슬쩍 화해할 수 있을 거란 계산이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당장의 기부콘은… 이렇게 처리했다.
-브이틱 기부콘 SBC 방영 취소함
└헐
이놈들은 화끈하게 공중파 방영을 취소해버렸다.
사유는 ‘사고로 인한 진행 차질’을 들어 스케줄 때문이라 설명했지만 사실상 먼저 선수 쳐서 보이콧을 때려버린 것이나 다름없었다.
너희 큰 잘못 했다고.
‘프레임 강화하는군.’
열받아 있던 출연진의 팬들은 속 시원해하면서 우호적으로 반응했다. 아니, 비단 팬들뿐만이 아니라 관심 있던 대중들은 다 좋아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아 화끈하네
-괜히 3대 기획사가 아니었구먼
-하긴 미국 빌보드 나오는 아이돌 기획사가 SBC 음방이 아까울 리가 없지 아 갑질 타겟 잘못 잡았다고ㅋ
친구랑 싸우면 절교하라는 조언부터 나오는 인터넷 생태계에서 이런 사이다 메타는 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다시 한번 빌드업이 나온다.
-VTIC의 기부 콘서트는 여기서! (링크) 가입하지 않아도 볼 수 있는 무한 관객 참여형 플랫폼… (더보기)
기부 콘서트 방영은 아예 취소된 게 아니라, 인터넷 플랫폼에서만 계속 진행됐다. 그것도 위튜브와 각종 SNS를 통한 화려한 광고와 함께.
언뜻 보면 시청자 타겟층이 줄어들어서 손해로 보이지만, 이렇게 거하게 터뜨림으로써 도리어 시청자 어그로가 끌렸다.
바로 위튜브 렉카다.
이런 게 인기 동영상에 뜨고 나서 바로 모금함과 선공개 동영상이 해당 플랫폼에 떴다고 한다.
그렇게 무대 붕괴로 끌린 어그로가 기부콘 자체가 핫한 키워드로 떠오르도록 이어지고, 모금 금액이 쭉쭉 늘어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금 금액으로 다시 언플을 하겠지.’
선순환이었다. 나는 최신 언론 플레이 기사를 몇 개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많이 해본 솜씨다.
내 탐색 경로와 해설을 쭉 따라오던 큰달이 팝업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말이다.
“그 정도가 아니야.”
수지 타산이 맞다? 무사히 잘 살아남았다? 이건 그런 수준이 아니었다.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스마트폰 화면을 두드렸다.
‘이놈들 어마어마하게 이득 봤어.’
이 플랫폼이 어딘 건지 아는가?
‘이거 자사 플랫폼이야.’
본인들 거다.
Leti가 지분 절반을 가진 라이브 플랫폼이란 말이다.
이놈들은 이번 어그로로 어마어마한 수치의 새로운 이용자를 이 플랫폼으로 낚았다. 그것도 그냥 홍보해서는 유입 안 됐을 만한 종류의 사람들까지.
게다가 자연스럽게 플랫폼 인지도가 높아지는 효과까지.
‘Leti는 어마어마하게 이득을 본 거야.’
무려 플랫폼 사업자로서 말이다.
오. 벌써 거기까지 추론하게 됐나.
‘맞아.’
나는 선선히 긍정했다.
아마 T1 Stars가 매출 다각화를 노리며 쓸데없는 짓을 하던 사건을 떠올리며 한 말이겠지.
하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에는 경우가 다르다.
‘Leti는 T1 Stars가 아니거든.’
테스타랑 처지가 완전히 다르다.
연차도, 속성도.
나는 무표정으로 중얼거렸다.
“VTIC은 거의 Leti를 먹은 상태야.”
VTIC은 재계약하면서 Leti의 주식까지 상당량 쥐고 있는 놈들이다.
중세 판타지로 비유해 볼까. 테스타가 허겁지겁 입양한 양자라면, 저놈들은 그 소속사 적장자라는 뜻이다.
가짜긴 했지만 Leti에서 데뷔해 본 경험에 비추어볼 때 더 확실히 안다. 그 사장은 그룹을 돈벌이용 이상으로 생각한다.
‘게이머가 게임 아바타에 감정 이입하는 것처럼 과몰입하고 있었지.’
회사 이득보다 VTIC의 브랜드 가치를 더 신경 써도 이상하지 않을 환경에서 VTIC은 시작한 것이다.
덕분에 이젠 세대 교체할 직속 후배 남자 아이돌도 데뷔를 안 했다. 말도 안 되는 영향력이었다.
당장 테스타와 스페이서 두고 티원스타즈가 환승 유도한 것 좀 봐라. 그걸 하고 싶어 하는 놈들이 위에 득실거릴 텐데 그걸 타 쳐냈다?
암묵적으로 의사결정권을 한 놈이 꽉 틀어쥐고 있다는 뜻이다.
…청려.
‘그놈이 막고 있는 한 VTIC과 비슷한 노선의 남자 아이돌이 LeTi에서 나오는 꼴은 못 보겠군.’
그 새끼가 경영진이 돼서 직접 만든다면 모를까.
어쨌든, 소속사를 자기 수족처럼 쓸 수 있는 놈이 아니면 절대 쓸 수 없는 수였고… 이득이었다.
이 플랫폼은 앞으로도 청려가 잘 써먹을 것이다. 오랫동안.
턱도 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저렇게 배후에서 조종할 수 있다면 모를까, 아이돌이 그룹 이름 내걸고 회사 세우는 순간 고난과 역경의 길이다.
테스타에겐 시간과 경험이 더 필요하다.
아직은.
‘흠.’
나는 새삼스럽게 화면을 쓱 내린 후, 어깨를 으쓱했다.
아무튼 기부 콘서트에 대한 여론은 이 정도면 됐다. 다음으로 볼 건 나에 대한 여론인데.
쭉 살펴본 결과, 걱정이 좀 있긴 하지만 거의 다치지 않았다는 기사 덕에 분위기 문제로 SNS 등에 글을 쓰지 않는 거란 추론이 대부분이다.
-전형적인 곰머짓
-셤별 다 같이 안 올리는 거 마음에 듬 우리까지 방송국이랑 싸울 생각 말어
-우리 효자 나는 믿어 슬슬 셀카 폭탄과 함께 등장할 거야
“…….”
그래, 뭐… 열심히 찍어보마.
이제 다음 단계로 가자. 바로 스마트폰의 본 기능, 연락이다.
-부재중 전화 (64)
미리내 박민하 후배
골든에이지 하일준 형
스페이서 권희승
…….
‘꽤 많군.’
스마트폰이 꺼져 있는 초기에 다양한 사람으로부터 온 부재중 통화가 쌓이더니, 며칠 후에는 거의 없다. 아무래도 내가 쉰다는 게 암암리에 소문이 난 모양이다.
다만 꾸준히 온 연락이 있긴 했다.
-(사진)
바로 쌓인 문자다.
‘이젠 놀랍지도 않군.’
이건 뭐… 생존 인증 같은 건가.
나는 며칠 치가 쌓인 개 산책 사진을 보다가, 보낸 놈에게 전화를 걸었다.
– —-.
짧은 통화음을 지나, 불쑥 말이 들린다.
-전화가 켜져 있네요.
“그래.”
나는 스마트폰을 고쳐 잡으며 적당히 말했다.
“의사가 스마트폰 좀 쓰지 말라고 해서 며칠 떼어놓고 살았고.”
-음.
“그쪽은 어때.”
일단 체크부터.
“건물 사태, 기억하냐.”
사실 그 붕괴가 없던 일이 되면서 나 외엔 전부 당시 기억이 없어질 수도 있다는 추측을 했었다.
그러나 테스타는 다들 기억하고 있었다.
나랑 같이 빠져나왔다는 것 때문에 그렇다고 보기에는 좀 독특한 상황이라, 다른 그룹은 어떤가 했는데….
뭐, 이놈에겐 당연히 즉답이 돌아온다.
-네.
“주단도?”
-음, 기억하지 못했으면 좋겠어요?
기억한다는 뜻이군, 잘 알겠다.
“어떻게 기억하는 건지 추론해 보려고 물어본 거였어.”
-글쎄요.
청려는 꽤 흥미롭다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어떤 추론을 했지?
“이전에 가짜 세계에서 다들 오류에 감염된 적이 있어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선아현의 특성으로 생긴, 시스템 법칙을 무시하는 그 힘 말이다.
그게 아직 남아 있다면 예외 처리된 것도 이해가 된다.
-내가 GM 권한을 아직 가지고 있는 것처럼.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요.
놈은 선선히 긍정했다.
별 긴장감 없이 말이 잘 흘러갔다. 이놈이 웬일로 사람 안 열받게 하는 것도 있고… 흠.
‘…설마 이것도 인터넷 디톡스 효과인가.’
내 정신머리가 느슨해지는 데에 기여를… 아니, 그럴 리 없다. 그냥 목숨 빚져서 그런 거겠지.
생각난 김에, 나는 입을 열었다.
“그리고.”
사실 당일에 했어야 했던 말이다.
“고맙다.”
-…….
“그때 키 찾아줘서 고맙다고. 덕분에 살았어.”
그러나 여전히 통화 상대에게선 대답이 없다. 흡사 말문이 막힌 것 같은 상태.
이렇게 이놈이 동요하는 것은 오랜만이었다.
-그래요.
그리고 한발 늦게 돌아온 답도 짧았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것처럼 들리는군.
흠.
‘겹쳐 보여서인가.’
이놈이 그 개판 수라장을 헤쳐나오려다가 여러 번 죽어봤다면, 멀쩡히 해결된 이번 사태에 대한 감회가 새롭긴 했을 것 같았다.
자신의 대처로 상태이상 실패 사태가 해결되는 건 이놈도 처음이었을 테니까.
오래 묵은 체념이 있었다면 어느 정도 해소될 법했다.
‘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말인데.”
아무튼, 이 새끼를 포함해서 주단까지 탈출에 도움이 됐다는 건 부정할 수 없다.
원래라면 서로 챙겨 먹고 선 긋는 짓을 했겠지만, 어차피 군대 가서 공백기 오는 놈들인데 이 정도는 해줘도 되겠지.
‘빚질 생각은 없어서.’
그리고 자기들끼리 다 해 먹게 둘 생각도 없고.
준비한 만큼 우리도 뽑아갈 건 뽑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기부 콘서트 본방송 전이지.”
나는 씩 웃으며 말을 이었다.
“제안할 게 있는데.”
내가 제대로 ‘휴식’하고 있는지 혈안이 되어 감시하는 놈들이 득실거리는 이 펜션에 있으면서도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며칠 후.
VTIC 공식 계정으로 공지가 하나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