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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435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5화
다친 곳이 없는데 입원을 해?
특성 ‘바쿠스’나 ‘넥타르’ 덕에 초인적인 회복력을 가져서 사람들을 속여야 했던 시절도 끝났는데 이런 개짓거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안 돼.’
이러다 뇌가 퇴화할 것 같다. 나는 배세진이 ‘선물’이라며 가져다준 Ebook 리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때가 입원한 지 나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병상 부족 문제도 있는데 이렇게 막 쓰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아~ 여기 특실이라 완실인 경우가 더 드물다더라.”
“그래도 퇴원하는 게 낫겠는데.”
“문대문대, 나한테 말해도 내가 의료진은 아니잖아.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걸 이해하지?”
“…….”
이 가증스러운… 잠깐. 이 새끼 설마 건물 붕괴 때 내가 한 짓을 따라 하는 건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큰세진을 쳐다보았으나, 놈은 싱글벙글 웃으며 방을 나갔다.
“쉬어~”
“…….”
다음 놈을 잡아보자.
김래빈은 놀랍게도 LP판을 재생할 수 있는 턴테이블을 싸 들고 저녁에 병문안을 왔다.
“고전 음악이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최신 음악은 피하겠다 이거지.
누가 봐도 의식적으로 ‘앨범’, ‘활동’ 화제를 뇌에서 차단한 것 같은 녀석에게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내가 아픈 곳이 없는데 계속 입원하는 상황이 이상한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을 겪으신 만큼 며칠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김래빈은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몇 놈이 작당해서 정말 그럴싸한 명분을 만든 모양이다.
“그건 숙소에서도 가능하잖아. 솔직히 돈 낭비지.”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사에서 비용 처리된다고 하십니다!”
“그거 비용 처리되면 그만큼 순이익이 줄어서 결국 우리 정산금이 줄어드는 구조인데.”
“…??”
잠깐 김래빈의 얼굴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지나갔으나, 곧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통했나?
“괜찮습니다! 형의 평온한 휴식을 위해 그 정도 소비는 멤버 전원이 개의치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
정 신경 쓰이면 본인이 결제하겠다고 말하는 놈의 얼굴에선 저작권자의 후광이 보였다.
나는 긴 침음을 참으며 침대에 도로 누웠다.
다음 타자.
“근육이 다 사라지겠다. 슬슬 루틴을 회복해야겠는데.”
“그래?”
아침에 방문한 류청우는 제법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여기서부터 빌드업을 살살 해볼 생각이었으나….
놈은 병원의 재활실 옆 1인 운동실을 예약해 주었다.
“…….”
그러고 보니, 회사가 병실을 비용 처리했다면 리더인 이놈이 설득했을 것이다.
사실상 이 사태의 주동자나 다름없던 놈에게 빌드업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통할 리가 있나.
“시설이 좋더라. 아, 혹시 더 길게 쓰고 싶으면 얘기해.”
됐다.
나는 포기하고 기구로 다가갔다.
하체나 하자….
“자업자독이에요.”
“자업자득.”
“Whatever.”
간병인 자리에 앉은 차유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사과를 통째로 씹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
“어쨌든 스마트폰은 달라고.”
“저 없어요. 형 스마트TV로 봐요.”
“…….”
나는 쓸데없이 OTT가 4가지나 깔린 특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어찌나 와이파이가 펑펑 잘 터지는지 딜레이도 없다. 그리고 그 펑펑 잘 터지는 와이파이를 정작 인터넷 용도로는 못 쓰는 상황이고.
‘선 넘네.’
이틀 전에 봤던 매니저에게도 스마트폰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변명이 뻔했다.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의사 조언이 있어서 조금만 자제하는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수작질한다.’
과해도 너무 과했다.
“하지만 형 참아야 해요.”
“…….”
[형도 이미 알죠? 지금 가장 중요한 걸 되찾아야 하는 상황에 처한 거예요. 신뢰.]
그래.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꼬투리 잡아서 퇴원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내가 퇴원하겠다는 걸 주변 놈들이 납득하도록 만드는 설득 과정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걸 무시하기가 껄끄러웠다. 어쨌든 나 때문에 무너지는 건물 속에 갇혀본 놈들이니까.
‘…내가 뒈졌을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했겠고.’
다 없던 일이 되어 누구한테 상담받을 처지도 아닌 상황에서 이걸 나름의 복수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여야 말이지.”
아니, 대체 얼마나 여기 처박아 둘 생각이란 말인가. 앨범은 언제 내고 연말 준비는 언제 하고, 내년 활동 계획은 언제 세우냐고.
분위기 봐서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야.”
“What.”
“최소한 바깥은 어떻게 돌아가는 지라도 좀 말해봐라.”
정보 수집만으로 며칠은 참아줄 수 있다.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일 없어요. [테러도 없고, 화제도 없고. 음, 일상적인 교통사고만 헤드라인으로 본 것 같은데요? 아, 은행 사기도요.]”
“…그런 거 말고.”
누가 현대 사회 시사교양 물어봤냐.
“지금 우리 그룹이나 VTIC 쪽 인터넷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고.”
“저 그런 거 몰라요. 그거 제 관심 아니에요.”
나는 주먹을 쥘 뻔했으나, 침착하게 차유진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탐색하는 장면부터 상상했다.
그리고 더럽게 안 어울린다는 것을 인정했다.
‘망할.’
다음 타자나 구하자.
나는 그날 오후 내내 LP로 재즈를 들으며 추리소설로 스트레스를 삭혔다.
그리고 저녁에 방문한 배세진을 만나서….
“안 돼.”
“…….”
배세진이 시선을 피했다.
“…책은 더 추천해 줄 수 있어.”
필요 없다.
나는 배세진이 실수로 말을 흘리길 종용하려다가 참았다. 그리고 놈이 싸 온 녹두삼계탕이나 입에 처넣었다.
감옥에서 면회 변호사에게 사식을 받아먹는 기분이었다.
남은 마지막 후보는… 사실상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선아현은 제법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첫날 이후로 이놈에게 굳이 퇴원하게 해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놀랍도록 안 통할뿐더러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아주 죽을 맛이라는 표정이 돼서 말이다.
“문대야, 몸은, 괜찮아?”
“너도 알겠지만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는데.”
저거 봐라 또 눈 피하면서 귤이나 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해볼 때가 됐다.
“계속 입원해 있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연습도 하고 싶고.”
“으응.”
선아현은 눈을 피했다. 역시 큰세진처럼 ‘난 몰라요~’ 같은 소리를 할 정도의 뻔뻔한 사회성은 없는 놈이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찔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이렇게 멀쩡할 수 없으니까 이제 병원에서 좀 나가자.”
“…하지만.”
선아현이 입을 떨었다.
“거짓말, 했잖아. 더… 큰 것도.”
“…….”
녀석은 귤을 까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충격이 크긴 했나 보군.’
내가 남은 시간을 속이고 2층 위로 튀었을 때 말이다.
그 후에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연락이 끊기기까지 했으니,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다 내려놓고 설명을 하자면 말이다.
“나도 무서워서 그랬던 거지.”
“…!”
“갑자기 죽는다는데 안 무서울 리가 있냐. 게다가 나 죽는데 다른 사람이 휘말려 들 수도 있고.”
“…….”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고.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뭘 해도 뒈질 것 같은 그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라서 말이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을 못 했던 거야. …하지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다시 말하지만 미안하다.”
이건 진심이었다.
선아현은 입을 뻐금거렸으나, 곧 힘겹게 말을 조합했다.
“아, 아냐. 내가, 미안해…. 함부로, 아, 안 믿는다고 해서….”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솔직히 그 정도는 뒤통수 맞은 것치곤 제법 온건한 반응이었다.
나는 말을 골랐다.
“나도 그냥 쉬는 건 좋지만, 신경 쓰이는 게 많은 지금은 별로 쉬는 것 같지가 않아.”
“……!”
“병원에는 그만 있고 싶다.”
녀석은 눈물을 참는 것 같더니, 곧 꽤 꿋꿋한 표정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 이야기해 볼게…!”
“…고맙다.”
해결의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짐 다 챙겼어?”
“네.”
나는 드디어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 훌쩍 넘은 후였다.
‘됐다.’
홀가분했지만 할 게 많았다. 우선 여론을 한번 쭉 살피고, 활동 플랜부터 차근히 세우면서 회사에 좀 나가봐야겠군.
숙소에 돌아가 다른 놈들과 충분히 대화해볼 시간도 낼 예정이었다.
“가자.”
“예.”
류청우가 기꺼이 운전에 자원해서 퇴원 수속을 도왔다.
그러나 녀석이 운전하는 차는 숙소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반대 방향으로 신나게 질주한다.
“…?”
잠깐만.
“지금 어디 가는 건가요.”
“아, 병원에 가는 건 아니야.”
“그럼 어딘데요.”
“하하.”
대답하라고.
고속도로를 탄 차는 이윽고 경기도 외곽으로 향하더니, 이윽고 하얀 돌담이 멋진 외딴 전원주택에 도착했다.
류청우가 산뜻이 말했다.
“도착했어. 내리면 돼.”
“…….”
이 새끼들은… 나를 펜션에 처박은 것이다.
‘선아현!’
이게 입원이랑 다른 게 뭐냐. 퇴원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고!
그러나 퇴로는 이미 차단된 상태였다.
“마침 숙소는 잠깐 리모델링을 하기로 해서, 다 여기서 지낼 예정이었거든.”
“…….”
“외출은 자제하기로 했어. 목격담이 올라오면 좀 곤란할 것 같아서.”
이 새끼들 언제 이렇게 용의주도해진 거지?
그리고 안에 들어가자, ‘퇴원 축하’라고 적힌 케이크를 들고 있는 김래빈과 다른 멤버들이 웃으며 파티용 폭죽을 터뜨렸다.
팡!
“퇴원 축하해!”
“…….”
어쩐지 마중을 류청우만 나오더니, 여기까지 다 계획된 거였군.
인정하겠다.
‘…내 패배다.’
나는 머리에 붙은 꽃가루를 묵묵히 떼어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확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는 게 잠시 후 밝혀졌다는 점이다.
“여기!”
열받는 축하 식사 후.
자기 방으로 나를 불러낸 차유진은 허연 개 대가리가 그려진 스마트폰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바로 내 스마트폰이었다.
“…!! 고맙다.”
입원 내내 이놈에게 끈질기게 외부 정보를 요구한 보람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형 저한테 맛있는 음식 줘야 해요. 저 지금 배신자예요.”
설득하느라 애썼다며, 심지어 배세진에게는 아직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차유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네가 나한테 충실한 거라고 표현을 바꾸자.]
나는 기꺼이 영어로 대답해 줬다.
[괜찮네요. 사실 다들 좀 과해요. 전 누군가에게 쉬라고 강요한다고 그 사람이 정말 “회복”을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놈은 한 손으로 ‘recovery’에 강세까지 두며 설명했다.
[그래도 형이 너무 많이 쓰면 제가 틀린 거예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는다고 저와 약속해요.]
“그래.”
나는 기꺼이 놈과 약속하고, 내 방으로 할당된 곳에 돌아와 방전된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꽂았다.
그리고 전원을 넣으며 말을 걸었다.
‘들리냐.’
큰달에게.
바로 벼락처럼 팝업이 떴다.
[형, 이제 퇴원하셨어요?]
‘…그래.’
나는 음울히 대꾸했다. 팝업이 움찔거렸다.
무려 이놈도 입원 중 나한테 바깥 소식은 입 꾹 다물고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은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이 입단속시킨 거냐고.’
물론 그 대신 꽤 쓸 만한 대화를 나누긴 했다.
나는 입원 당일에 이놈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바로 이번 상태이상 실패와 마지막에 뜬 보상 팝업에 대해서.
[미션 실패 시나리오 완료]
승리 : Player 박문대(류건우)
보상 : ■■■의 파편 1 (1/4)
-이 ‘파편’이라는 보상이 대체 뭐냐.
미션 실패를 시나리오 취급하는 문구에 대해서는 대충 깨달은 시점이었다.
아마 건물 붕괴가 없던 일이 되면서 현실이 아니라 시나리오 취급을 받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보상의 ‘■■■의 파편’은… 솔직히 상당히 비관적인 예측이 들어서 말이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어요. 미션 실패로 만들려고 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상태창이 알아서 그런 형태를 만들었어요!]
그러냐.
[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사실 시스템이 쪼개진 채로 남아 있고 내가 그 파편을 이겨서 그놈 자체를 전리품으로 받았다는 해석은 어떠냐.
[]
팝업이 굳은 것처럼 멈췄었다.
그리고 떨리는 글씨체로 개발새발 채팅이 떴었지.
[사실 저도… 시스템이, 파편만 남았고 그래서 제가 알아차리지 못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역시.
[죄죄송합니다ㅜㅜ]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내가 없앴다고 착각한 건데.
나는 입맛을 쓰게 다셨다.
‘아예 없앤 줄 알았는데.’
무슨 구슬이나 피자도 아니고 쪼개진 상태로 남아 있을 줄이야.
심지어 설명으로 (1/4)가 붙었다는 게 상당히 신경 쓰인다.
4분의 1.
“퇴원한 김에 물어보는 건데.”
[네!]
“설마 이런 일이 앞으로 세 번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짧고 아찔한 침묵이 흘렀다.
[아, 아닐 거예요. 이번에 시스템이 조각 난지 몰라서 놓친 거니까, 이번 파장을 따로 파악해서 형 상태창을 쭉 훑었어요!]
[지금 형은 깨끗해요!]
그래.
그것참 긍정적인 피드백이군.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두 번째 상태이상 실패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고민해 두자.
‘어디 보자.’
가장 하고 싶은 목표가 강하게 생기는 게 상태이상 증상이라고 했던가.
직전에 내가 앨범에 집착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 다 끝나고 보니 내가 좀 유별나게 앨범 내고 싶어 하긴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거겠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뭐긴 뭐겠냐. 당장은 상황 파악이 급해서 그것만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 검색에 앞서서, 당장 들을 수 있는 요약 정보를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내가 퇴원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큰달에게 문자 하나를 넣은 뒤,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혹시 VTIC 기부 콘서트 어떻게 됐냐.’
취소인가, 위축인가.
그 난리가 났으니 둘 중 하나겠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SNS를 검색할 스탠스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어 성황리에 홍보 중인데요…?]
“…….”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냐.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5화

다친 곳이 없는데 입원을 해?

특성 ‘바쿠스’나 ‘넥타르’ 덕에 초인적인 회복력을 가져서 사람들을 속여야 했던 시절도 끝났는데 이런 개짓거리를 하게 될 줄은 몰랐다.

‘안 돼.’

이러다 뇌가 퇴화할 것 같다. 나는 배세진이 ‘선물’이라며 가져다준 Ebook 리더기를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때가 입원한 지 나흘이 지난 시점이었다.

“병상 부족 문제도 있는데 이렇게 막 쓰는 건 좀 아니지 않냐.”

“아~ 여기 특실이라 완실인 경우가 더 드물다더라.”

“그래도 퇴원하는 게 낫겠는데.”

“문대문대, 나한테 말해도 내가 의료진은 아니잖아. 내가 어쩔 수 없는 상황인 걸 이해하지?”

“…….”

이 가증스러운… 잠깐. 이 새끼 설마 건물 붕괴 때 내가 한 짓을 따라 하는 건가?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큰세진을 쳐다보았으나, 놈은 싱글벙글 웃으며 방을 나갔다.

“쉬어~”

“…….”

다음 놈을 잡아보자.

김래빈은 놀랍게도 LP판을 재생할 수 있는 턴테이블을 싸 들고 저녁에 병문안을 왔다.

“고전 음악이 심신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최신 음악은 피하겠다 이거지.

누가 봐도 의식적으로 ‘앨범’, ‘활동’ 화제를 뇌에서 차단한 것 같은 녀석에게 논리적으로 접근했다.

“내가 아픈 곳이 없는데 계속 입원하는 상황이 이상한데.”

“굉장히 위험한 상황을 겪으신 만큼 며칠 더 경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합니다.”

김래빈은 정말로 그렇게 믿는 것 같았다. 몇 놈이 작당해서 정말 그럴싸한 명분을 만든 모양이다.

“그건 숙소에서도 가능하잖아. 솔직히 돈 낭비지.”

“그 점은 염려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회사에서 비용 처리된다고 하십니다!”

“그거 비용 처리되면 그만큼 순이익이 줄어서 결국 우리 정산금이 줄어드는 구조인데.”

“…??”

잠깐 김래빈의 얼굴에 물음표와 느낌표가 지나갔으나, 곧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통했나?

“괜찮습니다! 형의 평온한 휴식을 위해 그 정도 소비는 멤버 전원이 개의치 않을 것이라 믿습니다.”

“…….”

정 신경 쓰이면 본인이 결제하겠다고 말하는 놈의 얼굴에선 저작권자의 후광이 보였다.

나는 긴 침음을 참으며 침대에 도로 누웠다.

다음 타자.

“근육이 다 사라지겠다. 슬슬 루틴을 회복해야겠는데.”

“그래?”

아침에 방문한 류청우는 제법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여기서부터 빌드업을 살살 해볼 생각이었으나….

놈은 병원의 재활실 옆 1인 운동실을 예약해 주었다.

“…….”

그러고 보니, 회사가 병실을 비용 처리했다면 리더인 이놈이 설득했을 것이다.

사실상 이 사태의 주동자나 다름없던 놈에게 빌드업을 하려고 했던 것이다. 통할 리가 있나.

“시설이 좋더라. 아, 혹시 더 길게 쓰고 싶으면 얘기해.”

됐다.

나는 포기하고 기구로 다가갔다.

하체나 하자….

“자업자독이에요.”

“자업자득.”

“Whatever.”

간병인 자리에 앉은 차유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사과를 통째로 씹었다. 나는 이를 악물고 낮게 말했다.

“어쨌든 스마트폰은 달라고.”

“저 없어요. 형 스마트TV로 봐요.”

“…….”

나는 쓸데없이 OTT가 4가지나 깔린 특실에 분통을 터뜨렸다.

어찌나 와이파이가 펑펑 잘 터지는지 딜레이도 없다. 그리고 그 펑펑 잘 터지는 와이파이를 정작 인터넷 용도로는 못 쓰는 상황이고.

‘선 넘네.’

이틀 전에 봤던 매니저에게도 스마트폰을 요청했으나 돌아온 변명이 뻔했다.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는 의사 조언이 있어서 조금만 자제하는 쪽으로 부탁드립니다.

‘수작질한다.’

과해도 너무 과했다.

“하지만 형 참아야 해요.”

“…….”

그래.

나는 관자놀이를 눌렀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 꼬투리 잡아서 퇴원하는 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어려운 건 내가 퇴원하겠다는 걸 주변 놈들이 납득하도록 만드는 설득 과정이지.

하지만 이번에는 그걸 무시하기가 껄끄러웠다. 어쨌든 나 때문에 무너지는 건물 속에 갇혀본 놈들이니까.

‘…내가 뒈졌을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했겠고.’

다 없던 일이 되어 누구한테 상담받을 처지도 아닌 상황에서 이걸 나름의 복수라고 생각한다면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그게 어느 정도여야 말이지.”

아니, 대체 얼마나 여기 처박아 둘 생각이란 말인가. 앨범은 언제 내고 연말 준비는 언제 하고, 내년 활동 계획은 언제 세우냐고.

분위기 봐서 참아주는 것도 한계가 있다.

그래도 나는 마지막 인내심을 발휘하기로 했다.

“야.”

“What.”

“최소한 바깥은 어떻게 돌아가는 지라도 좀 말해봐라.”

정보 수집만으로 며칠은 참아줄 수 있다.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일 없어요. [테러도 없고, 화제도 없고. 음, 일상적인 교통사고만 헤드라인으로 본 것 같은데요? 아, 은행 사기도요.]”

“…그런 거 말고.”

누가 현대 사회 시사교양 물어봤냐.

“지금 우리 그룹이나 VTIC 쪽 인터넷 여론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냐고.”

“저 그런 거 몰라요. 그거 제 관심 아니에요.”

나는 주먹을 쥘 뻔했으나, 침착하게 차유진이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를 탐색하는 장면부터 상상했다.

그리고 더럽게 안 어울린다는 것을 인정했다.

‘망할.’

다음 타자나 구하자.

나는 그날 오후 내내 LP로 재즈를 들으며 추리소설로 스트레스를 삭혔다.

그리고 저녁에 방문한 배세진을 만나서….

“안 돼.”

“…….”

배세진이 시선을 피했다.

“…책은 더 추천해 줄 수 있어.”

필요 없다.

나는 배세진이 실수로 말을 흘리길 종용하려다가 참았다. 그리고 놈이 싸 온 녹두삼계탕이나 입에 처넣었다.

감옥에서 면회 변호사에게 사식을 받아먹는 기분이었다.

남은 마지막 후보는… 사실상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선아현은 제법 자주 찾아왔다.

하지만 나는 첫날 이후로 이놈에게 굳이 퇴원하게 해달라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놀랍도록 안 통할뿐더러 이런 대화를 하는 게 아주 죽을 맛이라는 표정이 돼서 말이다.

“문대야, 몸은, 괜찮아?”

“너도 알겠지만 이렇게 멀쩡할 수가 없는데.”

저거 봐라 또 눈 피하면서 귤이나 까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말해볼 때가 됐다.

“계속 입원해 있는 게 더 힘들 것 같다. 연습도 하고 싶고.”

“으응.”

선아현은 눈을 피했다. 역시 큰세진처럼 ‘난 몰라요~’ 같은 소리를 할 정도의 뻔뻔한 사회성은 없는 놈이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찔렀다.

“진심으로 하는 말인데, 이렇게 멀쩡할 수 없으니까 이제 병원에서 좀 나가자.”

“…하지만.”

선아현이 입을 떨었다.

“거짓말, 했잖아. 더… 큰 것도.”

“…….”

녀석은 귤을 까서 내 앞에 내려놓았다. 손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충격이 크긴 했나 보군.’

내가 남은 시간을 속이고 2층 위로 튀었을 때 말이다.

그 후에 건물이 무너지는 소리와 함께 연락이 끊기기까지 했으니, 이건 어쩔 수 없었다.

그냥… 다 내려놓고 설명을 하자면 말이다.

“나도 무서워서 그랬던 거지.”

“…!”

“갑자기 죽는다는데 안 무서울 리가 있냐. 게다가 나 죽는데 다른 사람이 휘말려 들 수도 있고.”

“…….”

“그런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 같고. 누가 도와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으니까.”

뭘 해도 뒈질 것 같은 그런 경험은 나도 처음이라서 말이다.

“그래서 제대로 설명을 못 했던 거야. …하지만 속았다는 생각이 들었다면, 다시 말하지만 미안하다.”

이건 진심이었다.

선아현은 입을 뻐금거렸으나, 곧 힘겹게 말을 조합했다.

“아, 아냐. 내가, 미안해…. 함부로, 아, 안 믿는다고 해서….”

“네가 사과할 일은 아니지.”

솔직히 그 정도는 뒤통수 맞은 것치곤 제법 온건한 반응이었다.

나는 말을 골랐다.

“나도 그냥 쉬는 건 좋지만, 신경 쓰이는 게 많은 지금은 별로 쉬는 것 같지가 않아.”

“……!”

“병원에는 그만 있고 싶다.”

녀석은 눈물을 참는 것 같더니, 곧 꽤 꿋꿋한 표정이 되어서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잘 이야기해 볼게…!”

“…고맙다.”

해결의 조짐이 보였다.

그리고 그날 저녁.

“짐 다 챙겼어?”

“네.”

나는 드디어 퇴원 수속을 밟을 수 있었다.

입원한 지 일주일이 훌쩍 넘은 후였다.

‘됐다.’

홀가분했지만 할 게 많았다. 우선 여론을 한번 쭉 살피고, 활동 플랜부터 차근히 세우면서 회사에 좀 나가봐야겠군.

숙소에 돌아가 다른 놈들과 충분히 대화해볼 시간도 낼 예정이었다.

“가자.”

“예.”

류청우가 기꺼이 운전에 자원해서 퇴원 수속을 도왔다.

그러나 녀석이 운전하는 차는 숙소로 향하지 않았다.

대신 반대 방향으로 신나게 질주한다.

“…?”

잠깐만.

“지금 어디 가는 건가요.”

“아, 병원에 가는 건 아니야.”

“그럼 어딘데요.”

“하하.”

대답하라고.

고속도로를 탄 차는 이윽고 경기도 외곽으로 향하더니, 이윽고 하얀 돌담이 멋진 외딴 전원주택에 도착했다.

류청우가 산뜻이 말했다.

“도착했어. 내리면 돼.”

“…….”

이 새끼들은… 나를 펜션에 처박은 것이다.

‘선아현!’

이게 입원이랑 다른 게 뭐냐. 퇴원만 하면 된다는 뜻이 아니라고!

그러나 퇴로는 이미 차단된 상태였다.

“마침 숙소는 잠깐 리모델링을 하기로 해서, 다 여기서 지낼 예정이었거든.”

“…….”

“외출은 자제하기로 했어. 목격담이 올라오면 좀 곤란할 것 같아서.”

이 새끼들 언제 이렇게 용의주도해진 거지?

그리고 안에 들어가자, ‘퇴원 축하’라고 적힌 케이크를 들고 있는 김래빈과 다른 멤버들이 웃으며 파티용 폭죽을 터뜨렸다.

팡!

“퇴원 축하해!”

“…….”

어쩐지 마중을 류청우만 나오더니, 여기까지 다 계획된 거였군.

인정하겠다.

‘…내 패배다.’

나는 머리에 붙은 꽃가루를 묵묵히 떼어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수확이 아예 없던 것은 아니었다는 게 잠시 후 밝혀졌다는 점이다.

“여기!”

열받는 축하 식사 후.

자기 방으로 나를 불러낸 차유진은 허연 개 대가리가 그려진 스마트폰 하나를 내게 내밀었다.

바로 내 스마트폰이었다.

“…!! 고맙다.”

입원 내내 이놈에게 끈질기게 외부 정보를 요구한 보람이 여기서 나온 것이다.

“형 저한테 맛있는 음식 줘야 해요. 저 지금 배신자예요.”

설득하느라 애썼다며, 심지어 배세진에게는 아직 사실대로 말하지 못했다고 차유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나는 기꺼이 영어로 대답해 줬다.

놈은 한 손으로 ‘recovery’에 강세까지 두며 설명했다.

“그래.”

나는 기꺼이 놈과 약속하고, 내 방으로 할당된 곳에 돌아와 방전된 스마트폰에 충전기를 꽂았다.

그리고 전원을 넣으며 말을 걸었다.

‘들리냐.’

큰달에게.

바로 벼락처럼 팝업이 떴다.

‘…그래.’

나는 음울히 대꾸했다. 팝업이 움찔거렸다.

무려 이놈도 입원 중 나한테 바깥 소식은 입 꾹 다물고 한마디도 발설하지 않은 것이다.

‘대체 어떤 놈이 입단속시킨 거냐고.’

물론 그 대신 꽤 쓸 만한 대화를 나누긴 했다.

나는 입원 당일에 이놈과 했던 대화를 떠올렸다.

바로 이번 상태이상 실패와 마지막에 뜬 보상 팝업에 대해서.

승리 : Player 박문대(류건우)

보상 : ■■■의 파편 1 (1/4)

-이 ‘파편’이라는 보상이 대체 뭐냐.

미션 실패를 시나리오 취급하는 문구에 대해서는 대충 깨달은 시점이었다.

아마 건물 붕괴가 없던 일이 되면서 현실이 아니라 시나리오 취급을 받는 것 같았거든.

그런데 보상의 ‘■■■의 파편’은… 솔직히 상당히 비관적인 예측이 들어서 말이다.

그러냐.

그래서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사실 시스템이 쪼개진 채로 남아 있고 내가 그 파편을 이겨서 그놈 자체를 전리품으로 받았다는 해석은 어떠냐.

팝업이 굳은 것처럼 멈췄었다.

그리고 떨리는 글씨체로 개발새발 채팅이 떴었지.

역시.

-네가 죄송할 게 뭐가 있어. 내가 없앴다고 착각한 건데.

나는 입맛을 쓰게 다셨다.

‘아예 없앤 줄 알았는데.’

무슨 구슬이나 피자도 아니고 쪼개진 상태로 남아 있을 줄이야.

심지어 설명으로 (1/4)가 붙었다는 게 상당히 신경 쓰인다.

4분의 1.

“퇴원한 김에 물어보는 건데.”

“설마 이런 일이 앞으로 세 번 더 있는 건 아니겠지.”

짧고 아찔한 침묵이 흘렀다.

그래.

그것참 긍정적인 피드백이군.

하지만 나는 그 말을 완전히 믿지는 않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은 적이 한두 번도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두 번째 상태이상 실패가 벌어지지 않기 위해 지금부터 고민해 두자.

‘어디 보자.’

가장 하고 싶은 목표가 강하게 생기는 게 상태이상 증상이라고 했던가.

직전에 내가 앨범에 집착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 다 끝나고 보니 내가 좀 유별나게 앨범 내고 싶어 하긴 했던 것 같은데 아무래도 영향을 받은 거겠지.

‘그렇다면 내가 지금 제일 하고 싶은 일은….’

뭐긴 뭐겠냐. 당장은 상황 파악이 급해서 그것만 생각난다.

그래서 나는 스마트폰 검색에 앞서서, 당장 들을 수 있는 요약 정보를 들어보기로 했다.

일단 내가 퇴원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스마트폰으로 큰달에게 문자 하나를 넣은 뒤, 이렇게 물어본 것이다.

‘혹시 VTIC 기부 콘서트 어떻게 됐냐.’

취소인가, 위축인가.

그 난리가 났으니 둘 중 하나겠지.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SNS를 검색할 스탠스를 잡을 생각이었는데….

“…….”

대체 무슨 마법을 부렸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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