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3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4화
몇 시간 전.
콰과과광!
“으아아악!”
무대 장치가 붕괴하며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을 때.
‘빨리, 빠, 빨리…!’
큰달은 상태창에 접속해서 테스타 박문대, 그러니까 류건우와 대화하며 신변에 문제가 없는지 소통을 시도해 보려 했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어?’
그리고 그 대신 새빨간 경고창을 보게 된 것이다. ‘상태이상 실패’ 팝업을.
“…!!”
맹세컨대, 큰달은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 방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박문대도 따로 언질까지 줬었다.
-혹시 전처럼 시스템과 공명하는 느낌은 안 드냐. 흡수될 것 같았다며.
당연히 그도 시스템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꼼꼼히 점검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는데….
-아뇨, 그런 느낌은 이제 전혀 없어요!
-그래. 다행이다.
갑자기, 상태이상 실패라니.
그렇다면, 그렇다면… 죽는 것 아닌가.
건우 형이.
‘어, 어떻게 하면 좋지.’
아직도 시스템의 강력한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가운데에서도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퍼뜩 떠올린 것이다. 자신이 박문대에게 줬던, 클리어 축하 칭호를.
“…!”
상태이상 영구 중단!
그걸 완전히 무시하고 상태이상 실패가 뜬 이 상황이 모순이다!
‘이걸 어떻게 파고들면….’
지난 경험을 통해 시스템에겐 이런 논리적 결함이 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애초에 자신이 상태창 그 자체였었기 때문에,
‘가능할지도 몰라!’
그는 이를 악물고 초조하게 상태창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상태이상 대신 미션 실패로 최대한 재난을 가볍게 바꿔보려고 했다는 거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도 여러 번 시도하다가 상태창에 온 정신을 쏟아서 몸쪽은 정신을 잃었고.”
“네, 네….”
노을이 지는 방송국 건물 앞 벤치.
다른 방해 없이 둘러앉아 그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까지는 제법 평화로운 풍경 같다.
주변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김래빈이 내민 물을 감사히 받아 마시는 큰달을 보았다.
아직도 우리는 아무도 없는 방송국 앞뜰에 있다.
그리고 이놈이 정신을 차리고 내 추측이 맞았다는 걸 확인받는 것은 썩 긍정적인 상황이다만, 그거 외에는 사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직도 모르겠고.
‘이 보상창은 또 뭐야.’
나는 방금 큰달이 정신을 차리며 동시에 뜬 팝업을 다시 힐끗 보았다.
[미션 실패 시나리오 완료]
승리 : Player 박문대(류건우)
보상 : ■■■의 파편 1 (1/4)
시나리오부터 승리에 파편까지 물어보고 싶은 게 넘치지만, 못 물어보는 이유가 있다.
“…으음.”
지금 주변에 눈 멀뚱멀뚱 뜨고 있는 놈들이 여덟 명이나 되거든.
게다가 한 녀석은 살짝 손들고 끼어들기까지 한다.
큰세진이다.
“음,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까지 들어서 죄송하지만, 어쨌든 저희도 이 모든 일을 같이 겪었다 보니까 여쭤보는 말씀인데요.”
“네, 네!”
“그러면 지금 박문대는 이게 자기를 노리고 일어난 일이고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죠?”
“…….”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말 안 한 덕분에 탈출했잖아 X발.’
이건 좀 억울하다.
다행히 두둔하는 놈도 나왔다.
“문대 형 많이 고생했어요. 저는 형 이해해요. 형은 사람들이 안전하길 원했어요.”
차유진이 가장 어른스러운 판단을 내렸다니 놀랍다.
“하지만 이해와 납득은 같은 뜻 가진 단어 아니에요. 형의 행동은 너무 잔인해요!”
“…….”
빌드업이었군.
“상황이 고민할 수도 없이 급박하게 돌아갔잖아. 나도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확신을 못 해서 못 말한 거다.”
나는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나도 살고 싶어서 열심히 움직였던 거고, 무슨 남들을 위한 희생 같은 생각으로 한 행동은 아니야.”
“…….”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큰세진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결국 승복했다.
“…알았어. 고생… 많았다.”
“…!”
좋아.
나는 주변에서 반발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큰달을 쳐다보았다. 마침 다음 질문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저도 질문이 있습니다만.”
바로 주단이다.
저놈은 어쩌다 낀 놈이 여기서 제일 흥미진진해하는군.
“그럼 이곳은 지난번처럼 그쪽이 만든 정신적 이면세계 같은 겁니까?”
심지어 궁금해하는 것도 이런 거냐.
큰달은 흔쾌히 대답했다.
“아뇨 그렇진 않아요. 여기도 현실은 맞는데… 형이 성공적으로 탈출하면서 건물 붕괴 페널티가 없던 일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이 현실은 곧 사라질 거예요!”
“…!”
설명은 이렇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마지막 건물 붕괴까지 처맞았어야 ‘미션 실패 페널티’가 완료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그걸 피했지.’
덕분에 페널티는 삭제되었고, 그게 소급해서 아예 처음부터 미션 실패의 페널티인 ‘건물 붕괴’ 사실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대충 사정을 아는 나도 개소리 같은데 다른 놈들은 정말 무슨 개소린지 싶겠군.’
“음, 어쩌면 아마 시스템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비슷한 힘인 것 같아요, 현실을 없애 버리고 과거부터 다시 시작하는….”
“…!”
그리고 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이 자리에 나 말고도 한 놈 더 있었다.
나는 청려를 돌아보았다. 놈은 그냥 별 표정 없이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큰달은 설명은 계속했다.
아마 이놈들이 나와 동시에 같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에 얼결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은 것 같다고 한다.
“…아무튼, 그러니까 곧 여러분은 여길 떠나서 건물 붕괴가 일어나지 않은 시점으로 돌아가실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요.”
“오오.”
“그건 다행이네, 정말로.”
어쨌든 결론은 마음에 들었는지, 누가 봐도 재난에서 빠져나온 얼룩덜룩한 놈들이 한결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질문자 본인은 감탄했다.
“과연, 일종의… 평행세계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가 버려지는 종류군요.”
“…! 이해하신 겁니까?”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그렇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관련된 자료를 좀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나는 김래빈의 옆에서 차유진이 짧게 ‘Nerd’라고 입 모양으로 중얼거린 것을 못 본척했다.
류청우가 부드럽게 큰달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언제쯤 돌아갈 수 있죠?”
“어… 지금이요!”
“…!”
그리고 다음 순간.
[—]
벤치에 앉아 있던 인영들이 증발하듯 훅 사라졌다.
다만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큰달이 심호흡하며 날 보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형한테 따로 드려야 할 것 같은 말씀이 있어서요. 약간 일찍 보내드렸어요!”
제법 기특한 생각이군.
그러나 문제는 모두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음, 카운트다운이 보이네요.”
“헉.”
“GM 권한이 아직 남아 있나 본데.”
청려는 아직도 다른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도 놈이 말하는 카운트다운을 확인했다.
[시나리오 삭제까지 100초]
여기가 사라지기까지 100초라는 뜻이겠지. 그럼 여유도 없군.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말해라. 카운트다운 들어갈 정도면 시간이 부족한 모양인데.”
“네, 네.”
시스템의 생존 여부부터 시작하는 다른 질문들은 나중에 나가서 하는 걸로 하고, 이놈이 하고 싶은 말부터 들어야겠다.
큰달은 누가 봐도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투로 입을 열었다.
“형.”
그래.
“아마 이대로 돌아가면, 건물 붕괴는 일어나기 전이겠지만… 그 전 일은 일어났을 거예요.”
“…?”
그 전 일?
그리고 나는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제가 간섭하기 시작한 건, 첫 번째로 형이 상태이상 실패로 목숨의 위협을 받으신 다음이니까요.”
첫 번째 상태이상 실패 신호탄.
큰달은 침을 삼키고 낮게 말했다.
“나가시면, 무대에서 형 위로 무대 장치가 쏟아지는 시점일 거예요.”
“…….”
“그거 형 맞았죠? 피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위험하니까 이건 아셔야 다시 피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꼭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거기서 깨달았다.
‘그때 내가 다친 걸 모르는군.’
이놈은 내가 그냥 첫 번째는 무사히 피했다고 생각해서 좀 긴장만 하는 거지.
“알았다. 혹시 모르니 더 신경 써서 피할게.”
“…네.”
나는 입 다물라는 뜻으로 청려를 보았으나, 곧 이놈도 스스로를 걱정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대 장치 무너진 건 너희도 타격이 있을 텐데. 대응 방법 지금부터 생각해 두는 게 어떠냐.”
VTIC이 주최한 기부 콘서트 아닌가. 사고와 행사가 키워드로 엮이는 순간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청려는 웃었… 아니, 안 웃었군.
놈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스로나 걱정하는 게 어떨까.”
“…….”
아니, 신경을 써줘도 지랄… 뭐, 됐다. 내 코가 석 자는 맞군.
“머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어. 나도 다 안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앞으로 내 행동을 검토했다. 큰달이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기 전에 다행히 시간이 끝나간다.
“카운트다운 거의 끝났지.”
“네….”
나는 숫자를 읽었다.
3.
2.
1.
그리고 눈을 깜박였을 때.
“박문대…!”
나는 다시 무대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균열에서 쏟아진 먼지로 퀴퀴한 공기 대신, 무대 위 드라이아이스 냄새와 뜨거운 조명의 온기가 냉방된 공기를 달구는 것이 느껴진다.
‘왔다.’
그리고 위로 떨어지는 장치들.
우드드드득!!
하지만 이번에는 더없이 맑은 정신으로,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아니까.
‘더 빠르게…!’
나는 이번엔 무작정 달리는 대신, 아예 가속을 줘서 미끄러졌다.
허벅지가 따갑도록.
쿠쿠쿠쿠쿵!
굉음 속.
등 뒤로 오싹한 소리와 함께 잔해가 튄다. 비명이 울렸다.
“으아악!”
“악!”
그리고,
“후욱,”
내 슬라이딩이 멈춘 순간, 나는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했다.
무대를 완전히 벗어난 백스테이지였다.
“…….”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박살 나 무너진 무대 장치들이 보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내 키만큼이나 떨어져 있다.
완전한 회피.
‘성공이야.’
전처럼 등이나 갈비뼈가 아프지도 않다.
조금 더 기다렸다.
허벅지가 마찰로 뜨겁지만, 그것뿐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너!”
경악한 얼굴로 백스테이지를 돌아 나타난 멤버들이 급격히 안도하며 뛰어왔다.
그리고 건물은 거기서 더 붕괴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후.”
나는 원 없이 뒤로 뻗어 누웠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어?”
‘살았다.’
아무도 안 죽고, 안 다치고, 빠져나왔다.
* * *
그 후의 일은 묘하게 흘러갔다.
당연하지만,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스마트폰 받고 대피하자마자 SNS로 온갖 글을 올리며 기사가 속출했다.
[SBC 방송국 무대 붕괴 (속보)]
[‘초유의 무대 붕괴’ 사상자 없다… 전원 무사]
타이틀이야 무시무시하게 뽑혔다만 원래 기사가 그렇지.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어서 대중적 파장이 그렇게 길게 가진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크게 붕괴했다고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다 걷어간 탓에 무대 증거 사진도 없다.
그런데 인명 사고도 아니다? 그러면 진짜 유통기한이 짧아지는 거지.
적당히 각보다가 사전 녹화 일정이 다른 곳으로 다시 잡히지 않을까 했는데….
[간발의 차로 무대 사고 피한 테스타 멤버 박문대… “요양할 예정”]
누구냐.
-얘는 뭔 기사 볼 때마다 철골에 위협당하는 중인듯
-박문대 액땜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냐
-무대로 달려 나왔다던데 갑자기 왜 그런 거야 X나 무섭네 사고 날 줄 알고 일부러 당하려는 것처럼;; 누구 보내버리고 싶었나 무대 담당자?
└사람 죽을 뻔했는데 이런 댓글 다는 싸패새끼가 있다니
└돈 개많이 버는 잘생긴 아이돌 삶 두고 그런 도박을 왜 하냐 하여간 찐따새끼들 망상 알아줘야 돼ㅋ
누가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참 고맙기도 하군.
게다가 이후론 무대 장치가 무너진 일로 누구에게 화살이 돌아갔고, 그 판에 VTIC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아직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이 꼴이기 때문이다.
“회사랑 연락 좀 하려….”
“음~ 그냥 누워 있어. 푹 쉬어.”
“…??”
“사, 사과 먹을래, 문대야…?”
그렇다.
…나는 병원에 일주일째 입원 중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허벅지의 경미한 열상 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것마저도 이틀 만에 나았는데.
‘대체 왜.’
“나 퇴원….”
“아, 의사 선생님이 안 되신대~”
“마, 맞아.”
“…….”
이 새끼들이 어디서 입 맞추고 와서 뻔한 거짓말을….
‘미치겠네.’
그렇게 강제 휴식이 시작되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4화
몇 시간 전.
콰과과광!
“으아아악!”
무대 장치가 붕괴하며 비명이 난무하기 시작했을 때.
‘빨리, 빠, 빨리…!’
큰달은 상태창에 접속해서 테스타 박문대, 그러니까 류건우와 대화하며 신변에 문제가 없는지 소통을 시도해 보려 했었다.
그러나 불가능했다.
‘…어?’
그리고 그 대신 새빨간 경고창을 보게 된 것이다. ‘상태이상 실패’ 팝업을.
“…!!”
맹세컨대, 큰달은 현실로 돌아오고 나서 방심하지 않았다. 애초에 박문대도 따로 언질까지 줬었다.
-혹시 전처럼 시스템과 공명하는 느낌은 안 드냐. 흡수될 것 같았다며.
당연히 그도 시스템이 아직 남아 있을지 모른다는 걱정에 꼼꼼히 점검했었다. 하지만 그런 기색은 없었는데….
-아뇨, 그런 느낌은 이제 전혀 없어요!
-그래. 다행이다.
갑자기, 상태이상 실패라니.
그렇다면, 그렇다면… 죽는 것 아닌가.
건우 형이.
‘어, 어떻게 하면 좋지.’
아직도 시스템의 강력한 존재는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일은 이미 벌어졌다.
머리가 새하얗게 변하는 가운데에서도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퍼뜩 떠올린 것이다. 자신이 박문대에게 줬던, 클리어 축하 칭호를.
“…!”
상태이상 영구 중단!
그걸 완전히 무시하고 상태이상 실패가 뜬 이 상황이 모순이다!
‘이걸 어떻게 파고들면….’
지난 경험을 통해 시스템에겐 이런 논리적 결함이 통할 수 있다는 걸 알았다. 게다가 애초에 자신이 상태창 그 자체였었기 때문에,
‘가능할지도 몰라!’
그는 이를 악물고 초조하게 상태창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 * *
“…그래서, 상태이상 대신 미션 실패로 최대한 재난을 가볍게 바꿔보려고 했다는 거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하도 여러 번 시도하다가 상태창에 온 정신을 쏟아서 몸쪽은 정신을 잃었고.”
“네, 네….”
노을이 지는 방송국 건물 앞 벤치.
다른 방해 없이 둘러앉아 그간 이야기를 듣고 있는 것까지는 제법 평화로운 풍경 같다.
주변에 개미 새끼 한 마리 없다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나는 벤치에 앉아서 김래빈이 내민 물을 감사히 받아 마시는 큰달을 보았다.
아직도 우리는 아무도 없는 방송국 앞뜰에 있다.
그리고 이놈이 정신을 차리고 내 추측이 맞았다는 걸 확인받는 것은 썩 긍정적인 상황이다만, 그거 외에는 사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아직도 모르겠고.
‘이 보상창은 또 뭐야.’
나는 방금 큰달이 정신을 차리며 동시에 뜬 팝업을 다시 힐끗 보았다.
승리 : Player 박문대(류건우)
보상 : ■■■의 파편 1 (1/4)
시나리오부터 승리에 파편까지 물어보고 싶은 게 넘치지만, 못 물어보는 이유가 있다.
“…으음.”
지금 주변에 눈 멀뚱멀뚱 뜨고 있는 놈들이 여덟 명이나 되거든.
게다가 한 녀석은 살짝 손들고 끼어들기까지 한다.
큰세진이다.
“음, 이렇게 사적인 이야기까지 들어서 죄송하지만, 어쨌든 저희도 이 모든 일을 같이 겪었다 보니까 여쭤보는 말씀인데요.”
“네, 네!”
“그러면 지금 박문대는 이게 자기를 노리고 일어난 일이고 당장 죽을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는 뜻이죠?”
“…….”
순간 분위기가 싸늘하게 식었다. 나는 시선을 피했다.
‘말 안 한 덕분에 탈출했잖아 X발.’
이건 좀 억울하다.
다행히 두둔하는 놈도 나왔다.
“문대 형 많이 고생했어요. 저는 형 이해해요. 형은 사람들이 안전하길 원했어요.”
차유진이 가장 어른스러운 판단을 내렸다니 놀랍다.
“하지만 이해와 납득은 같은 뜻 가진 단어 아니에요. 형의 행동은 너무 잔인해요!”
“…….”
빌드업이었군.
“상황이 고민할 수도 없이 급박하게 돌아갔잖아. 나도 누구한테 물어볼 수 있는 것도 아니라 확신을 못 해서 못 말한 거다.”
나는 조용히 상황을 설명했다.
“나도 살고 싶어서 열심히 움직였던 거고, 무슨 남들을 위한 희생 같은 생각으로 한 행동은 아니야.”
“…….”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큰세진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결국 승복했다.
“…알았어. 고생… 많았다.”
“…!”
좋아.
나는 주변에서 반발이 들어오기 전에 얼른 큰달을 쳐다보았다. 마침 다음 질문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저도 질문이 있습니다만.”
바로 주단이다.
저놈은 어쩌다 낀 놈이 여기서 제일 흥미진진해하는군.
“그럼 이곳은 지난번처럼 그쪽이 만든 정신적 이면세계 같은 겁니까?”
심지어 궁금해하는 것도 이런 거냐.
큰달은 흔쾌히 대답했다.
“아뇨 그렇진 않아요. 여기도 현실은 맞는데… 형이 성공적으로 탈출하면서 건물 붕괴 페널티가 없던 일이 됐거든요. 그러니까 이 현실은 곧 사라질 거예요!”
“…!”
설명은 이렇다.
원래대로라면 내가 마지막 건물 붕괴까지 처맞았어야 ‘미션 실패 페널티’가 완료되는 거였다.
‘그런데 내가 그걸 피했지.’
덕분에 페널티는 삭제되었고, 그게 소급해서 아예 처음부터 미션 실패의 페널티인 ‘건물 붕괴’ 사실 자체가 없어진 것이다.
‘대충 사정을 아는 나도 개소리 같은데 다른 놈들은 정말 무슨 개소린지 싶겠군.’
“음, 어쩌면 아마 시스템이 과거로 돌아가는 것도 비슷한 힘인 것 같아요, 현실을 없애 버리고 과거부터 다시 시작하는….”
“…!”
그리고 저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건 이 자리에 나 말고도 한 놈 더 있었다.
나는 청려를 돌아보았다. 놈은 그냥 별 표정 없이 그 말을 듣고 있었다.
큰달은 설명은 계속했다.
아마 이놈들이 나와 동시에 같이 건물 밖으로 빠져나왔기 때문에 얼결에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여기 남은 것 같다고 한다.
“…아무튼, 그러니까 곧 여러분은 여길 떠나서 건물 붕괴가 일어나지 않은 시점으로 돌아가실 거예요! 다른 사람들처럼요.”
“오오.”
“그건 다행이네, 정말로.”
어쨌든 결론은 마음에 들었는지, 누가 봐도 재난에서 빠져나온 얼룩덜룩한 놈들이 한결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질문자 본인은 감탄했다.
“과연, 일종의… 평행세계 중에 하나를 선택하면 나머지가 버려지는 종류군요.”
“…! 이해하신 겁니까?”
“원론적인 차원에서는 그렇습니다. 혹시 필요하시면 관련된 자료를 좀 추천해 드릴 수 있습니다만.”
나는 김래빈의 옆에서 차유진이 짧게 ‘Nerd’라고 입 모양으로 중얼거린 것을 못 본척했다.
류청우가 부드럽게 큰달에게 다시 물었다.
“그럼 언제쯤 돌아갈 수 있죠?”
“어… 지금이요!”
“…!”
그리고 다음 순간.
벤치에 앉아 있던 인영들이 증발하듯 훅 사라졌다.
다만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대신 큰달이 심호흡하며 날 보는 것을 보았다.
“아무래도 형한테 따로 드려야 할 것 같은 말씀이 있어서요. 약간 일찍 보내드렸어요!”
제법 기특한 생각이군.
그러나 문제는 모두가 사라진 건 아니라는 점이다.
“음, 카운트다운이 보이네요.”
“헉.”
“GM 권한이 아직 남아 있나 본데.”
청려는 아직도 다른 벤치에 앉아 있었다.
그리고 나도 놈이 말하는 카운트다운을 확인했다.
여기가 사라지기까지 100초라는 뜻이겠지. 그럼 여유도 없군.
“그냥 신경 쓰지 말고 빨리 말해라. 카운트다운 들어갈 정도면 시간이 부족한 모양인데.”
“네, 네.”
시스템의 생존 여부부터 시작하는 다른 질문들은 나중에 나가서 하는 걸로 하고, 이놈이 하고 싶은 말부터 들어야겠다.
큰달은 누가 봐도 침착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은 투로 입을 열었다.
“형.”
그래.
“아마 이대로 돌아가면, 건물 붕괴는 일어나기 전이겠지만… 그 전 일은 일어났을 거예요.”
“…?”
그 전 일?
그리고 나는 한 박자 늦게 깨달았다.
“제가 간섭하기 시작한 건, 첫 번째로 형이 상태이상 실패로 목숨의 위협을 받으신 다음이니까요.”
첫 번째 상태이상 실패 신호탄.
큰달은 침을 삼키고 낮게 말했다.
“나가시면, 무대에서 형 위로 무대 장치가 쏟아지는 시점일 거예요.”
“…….”
“그거 형 맞았죠? 피하시긴 했지만, 그래도 위험하니까 이건 아셔야 다시 피하실 수 있을 것 같아서… 꼭 말씀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거기서 깨달았다.
‘그때 내가 다친 걸 모르는군.’
이놈은 내가 그냥 첫 번째는 무사히 피했다고 생각해서 좀 긴장만 하는 거지.
“알았다. 혹시 모르니 더 신경 써서 피할게.”
“…네.”
나는 입 다물라는 뜻으로 청려를 보았으나, 곧 이놈도 스스로를 걱정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무대 장치 무너진 건 너희도 타격이 있을 텐데. 대응 방법 지금부터 생각해 두는 게 어떠냐.”
VTIC이 주최한 기부 콘서트 아닌가. 사고와 행사가 키워드로 엮이는 순간 난장판이 될 것이다.
그러나 청려는 웃었… 아니, 안 웃었군.
놈은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스스로나 걱정하는 게 어떨까.”
“…….”
아니, 신경을 써줘도 지랄… 뭐, 됐다. 내 코가 석 자는 맞군.
“머리를 가장 우선적으로 보호하고,”
“어. 나도 다 안다.”
나는 크게 심호흡하며 앞으로 내 행동을 검토했다. 큰달이 이상한 기색을 눈치채기 전에 다행히 시간이 끝나간다.
“카운트다운 거의 끝났지.”
“네….”
나는 숫자를 읽었다.
3.
2.
1.
그리고 눈을 깜박였을 때.
“박문대…!”
나는 다시 무대 위를 달리고 있었다.
균열에서 쏟아진 먼지로 퀴퀴한 공기 대신, 무대 위 드라이아이스 냄새와 뜨거운 조명의 온기가 냉방된 공기를 달구는 것이 느껴진다.
‘왔다.’
그리고 위로 떨어지는 장치들.
우드드드득!!
하지만 이번에는 더없이 맑은 정신으로, 정확히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안다.
어디까지 떨어지는지 아니까.
‘더 빠르게…!’
나는 이번엔 무작정 달리는 대신, 아예 가속을 줘서 미끄러졌다.
허벅지가 따갑도록.
쿠쿠쿠쿠쿵!
굉음 속.
등 뒤로 오싹한 소리와 함께 잔해가 튄다. 비명이 울렸다.
“으아악!”
“악!”
그리고,
“후욱,”
내 슬라이딩이 멈춘 순간, 나는 내가 있는 위치를 파악했다.
무대를 완전히 벗어난 백스테이지였다.
“…….”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박살 나 무너진 무대 장치들이 보이긴 했지만, 이번에는… 내 키만큼이나 떨어져 있다.
완전한 회피.
‘성공이야.’
전처럼 등이나 갈비뼈가 아프지도 않다.
조금 더 기다렸다.
허벅지가 마찰로 뜨겁지만, 그것뿐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너!”
경악한 얼굴로 백스테이지를 돌아 나타난 멤버들이 급격히 안도하며 뛰어왔다.
그리고 건물은 거기서 더 붕괴하지도, 흔들리지도 않는다.
“후.”
나는 원 없이 뒤로 뻗어 누웠다.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과 고민해야 할 문제가 많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웃어?”
‘살았다.’
아무도 안 죽고, 안 다치고, 빠져나왔다.
* * *
그 후의 일은 묘하게 흘러갔다.
당연하지만, 현장에 있던 관객들은 스마트폰 받고 대피하자마자 SNS로 온갖 글을 올리며 기사가 속출했다.
타이틀이야 무시무시하게 뽑혔다만 원래 기사가 그렇지. 다행히 다친 사람이 없어서 대중적 파장이 그렇게 길게 가진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크게 붕괴했다고 하더라도 스마트폰을 다 걷어간 탓에 무대 증거 사진도 없다.
그런데 인명 사고도 아니다? 그러면 진짜 유통기한이 짧아지는 거지.
적당히 각보다가 사전 녹화 일정이 다른 곳으로 다시 잡히지 않을까 했는데….
누구냐.
-얘는 뭔 기사 볼 때마다 철골에 위협당하는 중인듯
-박문대 액땜이라도 해야하는 거 아니냐
-무대로 달려 나왔다던데 갑자기 왜 그런 거야 X나 무섭네 사고 날 줄 알고 일부러 당하려는 것처럼;; 누구 보내버리고 싶었나 무대 담당자?
└사람 죽을 뻔했는데 이런 댓글 다는 싸패새끼가 있다니
└돈 개많이 버는 잘생긴 아이돌 삶 두고 그런 도박을 왜 하냐 하여간 찐따새끼들 망상 알아줘야 돼ㅋ
누가 흘렸는지 모르겠지만 덕분에 활동에 제동이 걸렸다. 참 고맙기도 하군.
게다가 이후론 무대 장치가 무너진 일로 누구에게 화살이 돌아갔고, 그 판에 VTIC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도 아직 보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가 지금 이 꼴이기 때문이다.
“회사랑 연락 좀 하려….”
“음~ 그냥 누워 있어. 푹 쉬어.”
“…??”
“사, 사과 먹을래, 문대야…?”
그렇다.
…나는 병원에 일주일째 입원 중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허벅지의 경미한 열상 외에는 아무런 상처도 없었다.
그것마저도 이틀 만에 나았는데.
‘대체 왜.’
“나 퇴원….”
“아, 의사 선생님이 안 되신대~”
“마, 맞아.”
“…….”
이 새끼들이 어디서 입 맞추고 와서 뻔한 거짓말을….
‘미치겠네.’
그렇게 강제 휴식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