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3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3화
“…….”
나는 손을 멈췄다.
붕괴한 건물에서 예상도 못 한 얼굴이 등장하는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만, 이렇게 현실성이 없기는 처음이다.
청려.
저놈이라면 벌써 바깥에서 인터뷰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순조롭게 탈출했을 줄 알았는데.’
경험도 있는 놈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관객석이 어둡다고 해도 비상등 아래 있는 청려는 환각은 아니었다.
아니, 그리고 남았다고 해도 반쯤 막힌 비상문에서 어떻게 나온 거냐.
그러나 의문을 길게 가질 시간 여유도 틈도 없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놈이 걷기 시작한다.
구둣발 소리가 울리며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후배님?”
그 순간 뭘 해야 할지 알았다.
“너 손에 든 거.”
나는 침을 삼켰다.
“CCTV냐.”
“…….”
놈이 무대 앞에서 멈춰서서 고개를 들었다.
“역시 찾는 게 있었구나.”
“사람.”
나는 다시 밧줄을 들었다.
“이 관객석에 쓰러진 사람이 있어.”
“…….”
“찾아야 해.”
청려가 발을 멈추더니 관객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밧줄을 선아현에게 도로 뺏긴 것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식은땀을 손아귀에 쥐며 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답이 돌아왔다.
“음, 이미 찾은 것 같은데.”
“…!”
놈이 CCTV 기기를 들었다.
정문 대피로 근방은 적외선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저기!”
나는 황급히 손전등을 돌렸다. 왼쪽 외각의 뒷좌석 아래, 쓰러져 있는 다리가 보인다.
가까이 뛰어간 큰세진이 자신의 손전등으로 상체를 비춘다.
“잠깐.”
녀석이 의자 아래로 엎어진 상체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드러난다.
모자가 벗겨진 류건우의 얼굴.
큰달이다.
‘후,’
나는 숨을 내쉬었다.
‘우연히’ 관객석을 보고 있었다는 청려의 CCTV에서는 대피 당시 갑자기 넘어지는 큰달의 모습까지 녹화를 돌려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좀 많긴 하다만.
“일단 일으켜 세울게.”
“잠깐.”
지금은 이게 급하다.
나는 큰달을 잡은 상태에서 일단 상태창을 확인했다.
[00:15:53]
…변화는 없다.
‘접촉 가지곤 안 되는 거야.’
역시 직접 대화를 해야 뭐라도 정황을 맞춰볼 수 있겠군.
“큰달, 박문대, 류건우!”
나는 놈이 썼던 모든 호칭을 다 사용하며 큰달의 어깨를 두드리고 흔들었다.
그러나 큰달은 움찔거림도 없이 외부의 힘이 들어오는 대로 흔들리기만 한다.
‘…설마.’
나는 놈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다. 심지어 잠자는 것처럼 꽤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못 깨어나는 상태라는 건.
‘아직도 상태창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더 하지 않기로 했다. 제한 시간이 촉박했으니까.
‘그래도 나가는 건 문제 없어.’
일단 업고 이동을….
“미쳤어?”
“나, 나한테 줘…!”
“…….”
…하려고 했지만 다른 놈들과 함께 부축하며 이동하게 되었다.
“일렬로 서서 이동해야 해.”
“…그래.”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다 같이 뭉쳐서 이동할 만한 폭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청려가 나온 비상계단 쪽 통로가 열려서 돌아갈 시간이 굳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선아현, 큰세진과 함께 큰달을 들어 올렸다. 균형만 맞는다면 한 놈 드는 것 정도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음, 들어줄까요.”
“됐다.”
굳이 다른 놈 시킬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청려는 의외로 맨 앞에서 큰달의 목 부근을 받쳐 들었다.
“…!”
‘이 새끼 뭐 캥기는 거 있나?’
이 놀라울 정도로 협조적인 것에 대한 감상도 나중에 하자.
“일단 가자.”
우선은 탈출이다.
우리는 비상계단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관객석이 빠르게 뒤로 스친다.
앞에선 큰세진의 검은 실루엣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여기서 뵐 줄은, 몰랐는데 선배님은 어쩌다가 남으셨어요?”
“글쎄요.”
큰세진이 이를 악물려다 초인적인 표정 관리로 참는 것이 손전등에 비쳐 보였다. 남 일 같지 않군.
‘질문을 말아야지.’
[00:13:06]
남은 건 13분.
그리고 도착한 비상계단 앞은 잔해가 어지럽긴 했지만, 발만 잘 디딘다면 충분히 통행이 가능했다.
언제 치운 건진 모르겠지만,
‘충분해.’
“조심히 들어가자!”
“오케이.”
우리는 큰달의 목이나 사지가 꺾이지 않게 조심하며, 비상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불쑥 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셨군요.”
“…??”
때릴 뻔했다.
그 대신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아까 드론으로 봤던 놈이다.
손전등을 들어 올린 선아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서, 선배님…?”
“반갑습니다, 테스타분들. 역시 정황상 여러분이 구출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VTIC 주단이었다.
지하에서 탈출구까지 봐둔 놈이 왜 여기 있… 설마.
나는 놈을 훑어보았다.
MC 보느라 정장 차림이었던 청려 놈과 달리 주단은 대기실에 막 도착한 놈답게 사복 차림이었다.
한마디로, 노동하기 더 적합한 차림이란 뜻이다.
‘…이놈이 같이 치웠구나.’
어쩐지 청려 혼자 치웠다기엔 말이 안 되더니, 노동력이 하나 더 있던 것이다.
주단이 먼지 묻은 장갑을 털며 어깨를 으쓱했다.
“절묘한 타이밍을 위해 제법 열심히 협조 중이었죠.”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
“그리고 과연 정석적인 성공형 해피 엔딩으로 가는군요.”
마음대로 생각해라.
“…예,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 어둠에 적응한 눈이 드디어 놈의 뒤로 머리를 가린 채 이동 중인 팬들을 확인했다.
정리를 마치고 대피를 시작한 모양이다.
“주, 주단??”
방금처럼 VTIC을 발견한 사람이 무의식중에 이름을 외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들 입 다물고 정신없이 발을 옮기고 있다.
저 사이에서 정신 잃은 사람 옮기다가는 누가 다치겠다.
“보내고, 이동해야겠어.”
“그래.”
우리는 잠깐 큰달을 몸에 기대게 한 채 숨을 골랐다.
‘후.’
나는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게 간격을 두고 내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문득 입을 열었다.
스포일러 방지라고 스탭들이 걷어가 버려서 저 관객들 수중에 없지만, 청려는 가지고 있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통화했었지.’
스마트폰.
“너 혹시 신고는 했냐.”
“아.”
놈은 자신의 정장 재킷 주머니로 시선을 내렸다. 꼴 보아하니 안 한 것 같다.
이제 와서 신고하느니 탈출하는 게 더 빠르니 군소리 말고 계속 이동하는 게 낫겠지.
“음, 이상한데.”
“뭐가.”
“아뇨.”
“…….”
따지지 말자. 탈출이 먼저다.
그런데 도리어 저쪽에서 또 입을 연다.
다른 화제로.
“꽤 안정적이네요.”
“뭐가.”
“후배님의 상태가.”
“…….”
상태이상 실패로 곧 뒈질 놈치곤 당장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 같지도 않고, 정신 상태도 제법 괜찮아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뭘 알고 있어요?”
대답 안 할 수 있지만, 도리어 양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선아현과 큰세진이다.
‘젠장.’
이건… 차라리 대충이라도 설명하는 게 낫겠군.
“…내가 다음 붕괴 시간을 볼 수 있는데.”
“네.”
“…다음 게 최종. 마지막이라고 떠 있었다.”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듣고 있던 놈들도 알아차린 것이다.
“마지막?”
“그래. 끝난다는 것 같아.”
“아…!”
사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자리의 사람들이 의미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계십니다!”
“아!!”
“…! 문에 저거 치웠구나!”
관객들을 먼저 보낸 놈들이 드디어 2층에서 뛰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 온 거예요?!”
“그래!”
테스타의 다른 멤버들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반색하고 뛰어왔다.
“너!! 제발 좀 먼저 상의부터 하고 행동해!”
“예…….”
반가워하는 거라고 치자.
가장 먼저 뛰어온 차유진이 외쳤다.
“형들 여기 있어요! 모두 Oka… Who the hell was that?!”
“내가 찾던 사람. 기억나지?”
“Oh-”
녀석은 긴 감탄사를 끌더니, 곧 축 늘어진 큰달의 얼굴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줘요! 제가 업어요.”
“아니, 괜찮은데.”
큰달의 몸이 맛집 계산서처럼 여러 사람의 손을 오가며 결국 차유진 등에 장착되었다.
“가요!”
VTIC을 확인한 놈들은 그것에도 놀란 것 같았으나, 일단 내려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암묵적 합의하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나가면 되지?”
“예.”
할 수 있는 건 다 한 상태다. 압박감과 긴장감이 약간 누그러진 탈출 직전의 분위기.
그것을 가르고 청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 둘 중 하나겠네요. 그걸로 재난이 끝나거나, 아니면….”
아직도 계산하고 있었냐?
“후배님의 기회가 끝나거나.”
“…….”
후.
“저거 무슨 뜻이야?”
“박문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청려는 문장을 마무리했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는 거죠.”
그때.
쿵.
쿠쿠쿵-!
“…!”
“진동?”
“형, 설마 이번에도 왜곡된 시간을….”
“아니야.”
나는 황급히 팝업을 확인했다.
[00:09:59]
분명 시간이 남아 있다.
“시간 남았어. 확실히.”
그러자 배세진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붕괴가 클수록 전조 증상도 이른 거 아니야?”
“…….”
짧게 침묵이 흘렀다.
청려가 또 중얼거렸다.
“음, 역시 후자였나.”
지금 그런 소릴 할 때냐?
“알면 뛰어!”
나는 다른 놈들을 데리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쾅!
“아아악!”
지하에서 비명이 울렸다.
나는 외쳤다.
“키! 키 어딨어?”
“맨 앞 분께 드렸어! 두 개나!”
류청우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진실이다.
그럼 사람들이 당장 빠져나가고 있어야 하는데….
‘왜 뭉쳐 있지?’
도착한 지하 복도는 수십 명의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끼익, 쾅!
“으흐흐흑!”
그리고 위에서 굉음이 들릴 때마다 사람들이 응원봉이나 손으로 머리를 막고 있다.
‘뭐야.’
왜 못 나가고 있단 말인가.
“잠시만요!”
나는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맨 앞, ‘시설 보안용’이라고 적힌 철문 앞에 선 사람 하나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급히 외쳤다.
“여기 문 안 열려요!”
“…….”
뭐?
나는 인파를 헤치고 나갔다. 그리고 카드키를 든 관객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다가, 내가 직접 가져다 댔다.
삐이익-!
[권한 없는 카드입니다.]
거부.
‘X발.’
나는 다른 카드를 들어다 댔다.
삐이익-!
다음 것도.
삐이익-!
“…….”
안 통한다.
“…!!”
“이, 이거 왜 안 돼??”
“허어어어, 허어,”
당황과 공포로 과호흡이 올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유가 있다.
‘안 되는 이유는….’
생각하자, 생각하자.
‘권한이 없다고?’
나는 보안키를 대는 키패드와 철문을 바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시 보았다. 철문에 적힌 글귀를.
[시설 보안용]
“…….”
아, 망할.
“문대야?!”
“잠깐만요!”
나는 거의 고함을 지르며, 뭉친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갔다.
“뭐 해?!”
“시설 관리자용 카드!!”
나는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가져온 건 사무직 사람들이고, 보안팀 카드가 있어야 해!”
“…!”
여긴 보안팀용 공간이라서 권한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한 놈 정도는 두고 갔을 가능성 없나?’
이대로 옆방으로 가서 수색해 보면… 그래, X발. 나도 안다.
‘먼저 온 주단도 못 발견했지.’
그래도 해보긴 해야 하지 않나.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서 일사불란하게 흩어서 수색할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후배님.”
툭.
눈앞에 황금색의 로고가 새겨진 사각형의 플라스틱 뱃지가 흔들린다.
청려가 정장 안주머니에서 막 꺼내어, 내민 것.
“여기요.”
“…….”
[Setom 보안]
“CCTV가 있던 서랍장에 있었는데.”
나는 당장 그것을 낚아채서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져다 댔다.
띠리릭!
짧고 경쾌한 장조의 소리와 함께.
달칵.
“열렸다!”
문이 개방되었다.
함성과 비명, 그리고 갈급한 발걸음이 균열음과 교차하며, 사람들이 우수수 열린 문을 통해 빠져나간다.
바깥 공기가 얼굴에 훅 닿는다.
“하.”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큰일 날 뻔했네.
‘어쩐지 저 새끼가 탈출을 안 하고 있더라니.’
일단 저걸로 나갈 방법이 있어서 개기고 있던 게 분명했다.
“청려 형이라면 극한 상황에서 제가 배신할 때를 대비해 공유하지 않으신 거겠죠.”
“아니. 저걸로 CCTV 보안 해제 때 너도 옆에 있었는데.”
“…….”
주단 이 새끼 설마 뱃지 형태라 직원증을 못 알아본….
‘아니, 아무튼. 열었으니 됐다.’
나는 일부러 문을 잡고 옆으로 비켜서서 사람들이 순조롭게 나가도록 통솔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00:06:16]
시간은 괜찮다.
“너희 다들 빨리 나가!”
“그럴게요.”
뒤에 나가는 팬들이 한 마디씩 돌아보며 말을 던지는 것처럼, 안 그래도 그럴 것이다.
“다 나가셨지?”
“이제 가자!”
그리고 쓸데없이 책임감 좋은 놈들이 굳이 따라서 마지막까지 기다렸고, 나는 놈들이 먼저 나가라는 듯이 문을 다시 벌렸다.
그러자 몇몇 놈들의 눈이 가늘어진다.
“너 설마….”
“아니라니까.”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너지는 건물에 자진해서 남겠냐.
투드득, 쿵!
다시 위에서 육중한 균열 소리가 들린다.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내가 시간을 보니까 마지막으로 나가고 싶어서 그래. 일단 나가! 이럴수록 더 늦어진다.”
“…….”
그러나 선아현이 심호흡을 하더니, 발을 멈췄다.
“…!”
“도, 동시에 안 나가면, 안 나갈래.”
아, 망할.
‘혹시 또 연달아 미친 짓이 일어날까 봐 거리 좀 벌리려고 한 건데.’
나는 청려에게 눈짓했으나, 놈은 아무 반응 없이 같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선아현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문을 잡고 빤히 나를 보기 시작한다. 기 싸움하냐?
‘돌아버리겠네.’
5분 남았다 미친놈들아.
“…….”
나는 문밖과 놈들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한숨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밀치든 뭐든 각은 나오겠지.’
“…그래. 같이 나가자고.”
“…!! 응!”
나는 선아현의 등을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야외의 공기가 쏟아진다.
초가을의 선선한 공기.
컨테이너 벽으로 가려진 뒤뜰 같은 장소는 어두웠으나, 그 벽에서 각도를 꺾자마자 햇빛이 내렸다.
“…!”
…노을이었다.
그 순간, 불안과 초조함, 날카롭게 서 있던 생존본능의 경고와 차가운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모든 게 빨려들 듯이 쭉 뽑혀 나가고, 평온만이 오롯이 남았다.
“아…….”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머리가 시원했다.
그리고 마치 맞춘 듯이, 팝업이 변한다.
[00:04:47]
[00:04:47]
[목표 상실]
[해제]
안정감이 돌아왔다.
나는 뒤를 돌아서 우리가 나온 건물을 보았다. 굉음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
“…끝났어.”
“어?”
“끝난 것 같다. 붕괴.”
다른 놈들도 건물을 뒤돌아보더니, 곧 긴 한숨을 쉬거나 그제야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 * *
몸은 무겁지만 분위기는 제법 친근하고 희망적이다.
“휴우.”
“다들 고생 많았어.”
“모, 모두 무사히 나와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지금은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혹시라도 무너지면 휩쓸려 갈 수 있으니까.”
“그, 그렇긴 하지.”
큰세진의 말에 다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입을 안 멈춘다.
“여기가 어딜까?”
“다들 잘 모르는 건물 뒤 은밀한 출입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 그럼 앞은 매스컴으로 꽉 차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확실하지.
‘이렇게 좋은 떡밥도 없을걸.’
구조대가 늦는 것도 어쩌면 언론사가 이미 자리를 다 선점해서 지랄이 난 탓일지도 몰랐다.
뭐, 어쨌든 내가 나와서 붕괴도 멈춘 것 같으니… 혹시 3층 위에 고립되어 있던 직원이 있더라도 곧 구출되겠지.
매스컴이 노리던 사람들이 다 나오지 않았는가.
“수습이… 음.”
1군 아이돌 주최 자선 공연에서 1군 아이돌들이 건물에 갇혀 있다 나와?
솔직히 지옥이 예상된다.
“문대 넌 수습 같은 생각 말고 병원부터 가자.”
“…….”
아니, 누가 보면 내가 현대 의학을 안 쓰는 사람인 줄 알겠다.
“…예. 아무튼. 이쪽이 앞인 것 같으니 돌아가면….”
“그래.”
어쨌든, 우리는 꽤 초라한 몰골로 터벅터벅 걸어서, 잡초가 자란 뒷길을 돌아 건물 앞으로 나왔다.
‘슬슬 사람들 비명이….’
그러나.
“왜 사람들 없어요?”
건물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차, 행인, 사이렌 소리, 취재진, 구경꾼.
분명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다.
흐르는 건 적막뿐.
심지어 도로에도 차 한 대 다니지 않는다.
뭐야.
“잠깐. …아까 나온 팬들은?”
“…!!”
배세진이 다급히 외친다.
“매스컴이 없어도 그 사람들은 보여야 할 거 아냐!”
그러나 여전히 노을 지는 건물 앞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다들 다른 곳으로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아, 이거였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청려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재킷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스마트폰이 든 자리.
“전화가 한 통도 안 와서 이상했거든요.”
“…!”
그렇다.
건물이 무너졌다면, 당연히 갇힌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쏟아지는 게 마땅했다.
그런데 저놈에게 통화가 한 통도 없었다는 건….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혹은, 어느 순간부터 단절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흐읍!”
“Hup!”
차유진의 등에 업혀 있던 큰달이, 눈을 떴다. 이렇게 외치면서.
“이, 이겼다!”
“…??”
새로운 팝업과 함께.
[미션 실패 시나리오 완료]
승리 : Player 박문대(류건우)
보상 : ■■■의 파편 1 (1/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33화
“…….”
나는 손을 멈췄다.
붕괴한 건물에서 예상도 못 한 얼굴이 등장하는 건 이번이 처음도 아니지만, 이렇게 현실성이 없기는 처음이다.
청려.
저놈이라면 벌써 바깥에서 인터뷰라도 하고 있을 줄 알았다.
‘순조롭게 탈출했을 줄 알았는데.’
경험도 있는 놈 아닌가.
그러나 아무리 관객석이 어둡다고 해도 비상등 아래 있는 청려는 환각은 아니었다.
아니, 그리고 남았다고 해도 반쯤 막힌 비상문에서 어떻게 나온 거냐.
그러나 의문을 길게 가질 시간 여유도 틈도 없다.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놈이 걷기 시작한다.
구둣발 소리가 울리며 다시 목소리가 들린다.
“후배님?”
그 순간 뭘 해야 할지 알았다.
“너 손에 든 거.”
나는 침을 삼켰다.
“CCTV냐.”
“…….”
놈이 무대 앞에서 멈춰서서 고개를 들었다.
“역시 찾는 게 있었구나.”
“사람.”
나는 다시 밧줄을 들었다.
“이 관객석에 쓰러진 사람이 있어.”
“…….”
“찾아야 해.”
청려가 발을 멈추더니 관객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밧줄을 선아현에게 도로 뺏긴 것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한 채 식은땀을 손아귀에 쥐며 놈을 쳐다보았다.
그리고 대답이 돌아왔다.
“음, 이미 찾은 것 같은데.”
“…!”
놈이 CCTV 기기를 들었다.
정문 대피로 근방은 적외선 카메라가 돌아가고 있었다.
“저기!”
나는 황급히 손전등을 돌렸다. 왼쪽 외각의 뒷좌석 아래, 쓰러져 있는 다리가 보인다.
가까이 뛰어간 큰세진이 자신의 손전등으로 상체를 비춘다.
“잠깐.”
녀석이 의자 아래로 엎어진 상체를 돌리자, 익숙한 얼굴이 드러난다.
모자가 벗겨진 류건우의 얼굴.
큰달이다.
‘후,’
나는 숨을 내쉬었다.
‘우연히’ 관객석을 보고 있었다는 청려의 CCTV에서는 대피 당시 갑자기 넘어지는 큰달의 모습까지 녹화를 돌려 확인할 수 있었다.
거기에 대해서 할 말이 좀 많긴 하다만.
“일단 일으켜 세울게.”
“잠깐.”
지금은 이게 급하다.
나는 큰달을 잡은 상태에서 일단 상태창을 확인했다.
…변화는 없다.
‘접촉 가지곤 안 되는 거야.’
역시 직접 대화를 해야 뭐라도 정황을 맞춰볼 수 있겠군.
“큰달, 박문대, 류건우!”
나는 놈이 썼던 모든 호칭을 다 사용하며 큰달의 어깨를 두드리고 흔들었다.
그러나 큰달은 움찔거림도 없이 외부의 힘이 들어오는 대로 흔들리기만 한다.
‘…설마.’
나는 놈의 코 밑에 손을 가져다 댔다. 다행히 숨은 쉬고 있다. 심지어 잠자는 것처럼 꽤 안정적이다.
그렇다면… 지금도 못 깨어나는 상태라는 건.
‘아직도 상태창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을지 모른다.’
나는 쓸데없는 시간 낭비는 더 하지 않기로 했다. 제한 시간이 촉박했으니까.
‘그래도 나가는 건 문제 없어.’
일단 업고 이동을….
“미쳤어?”
“나, 나한테 줘…!”
“…….”
…하려고 했지만 다른 놈들과 함께 부축하며 이동하게 되었다.
“일렬로 서서 이동해야 해.”
“…그래.”
지하로 내려가는 길이 다 같이 뭉쳐서 이동할 만한 폭이 나오지 않을 테니까.
그래도 청려가 나온 비상계단 쪽 통로가 열려서 돌아갈 시간이 굳어서 다행이었다.
나는 선아현, 큰세진과 함께 큰달을 들어 올렸다. 균형만 맞는다면 한 놈 드는 것 정도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음, 들어줄까요.”
“됐다.”
굳이 다른 놈 시킬 생각도 없었다. 그러나 청려는 의외로 맨 앞에서 큰달의 목 부근을 받쳐 들었다.
“…!”
‘이 새끼 뭐 캥기는 거 있나?’
이 놀라울 정도로 협조적인 것에 대한 감상도 나중에 하자.
“일단 가자.”
우선은 탈출이다.
우리는 비상계단을 향해 빠르게 이동하기 시작했다. 어두운 관객석이 빠르게 뒤로 스친다.
앞에선 큰세진의 검은 실루엣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님, 여기서 뵐 줄은, 몰랐는데 선배님은 어쩌다가 남으셨어요?”
“글쎄요.”
큰세진이 이를 악물려다 초인적인 표정 관리로 참는 것이 손전등에 비쳐 보였다. 남 일 같지 않군.
‘질문을 말아야지.’
남은 건 13분.
그리고 도착한 비상계단 앞은 잔해가 어지럽긴 했지만, 발만 잘 디딘다면 충분히 통행이 가능했다.
언제 치운 건진 모르겠지만,
‘충분해.’
“조심히 들어가자!”
“오케이.”
우리는 큰달의 목이나 사지가 꺾이지 않게 조심하며, 비상구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불쑥 귀 바로 옆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오셨군요.”
“…??”
때릴 뻔했다.
그 대신 고개를 돌리자 보이는 것은 아까 드론으로 봤던 놈이다.
손전등을 들어 올린 선아현의 당황한 목소리가 들린다.
“서, 선배님…?”
“반갑습니다, 테스타분들. 역시 정황상 여러분이 구출하는 사람이 한 명 정도는 있을 줄 알았습니다.”
VTIC 주단이었다.
지하에서 탈출구까지 봐둔 놈이 왜 여기 있… 설마.
나는 놈을 훑어보았다.
MC 보느라 정장 차림이었던 청려 놈과 달리 주단은 대기실에 막 도착한 놈답게 사복 차림이었다.
한마디로, 노동하기 더 적합한 차림이란 뜻이다.
‘…이놈이 같이 치웠구나.’
어쩐지 청려 혼자 치웠다기엔 말이 안 되더니, 노동력이 하나 더 있던 것이다.
주단이 먼지 묻은 장갑을 털며 어깨를 으쓱했다.
“절묘한 타이밍을 위해 제법 열심히 협조 중이었죠.”
무슨 개소린지 모르겠다.
“그리고 과연 정석적인 성공형 해피 엔딩으로 가는군요.”
마음대로 생각해라.
“…예, 아무튼 감사합니다.”
그 와중에, 어둠에 적응한 눈이 드디어 놈의 뒤로 머리를 가린 채 이동 중인 팬들을 확인했다.
정리를 마치고 대피를 시작한 모양이다.
“주, 주단??”
방금처럼 VTIC을 발견한 사람이 무의식중에 이름을 외치긴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들 입 다물고 정신없이 발을 옮기고 있다.
저 사이에서 정신 잃은 사람 옮기다가는 누가 다치겠다.
“보내고, 이동해야겠어.”
“그래.”
우리는 잠깐 큰달을 몸에 기대게 한 채 숨을 골랐다.
‘후.’
나는 사람들이 넘어지지 않게 간격을 두고 내려가는 모습을 관찰하며, 문득 입을 열었다.
스포일러 방지라고 스탭들이 걷어가 버려서 저 관객들 수중에 없지만, 청려는 가지고 있던 것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통화했었지.’
스마트폰.
“너 혹시 신고는 했냐.”
“아.”
놈은 자신의 정장 재킷 주머니로 시선을 내렸다. 꼴 보아하니 안 한 것 같다.
이제 와서 신고하느니 탈출하는 게 더 빠르니 군소리 말고 계속 이동하는 게 낫겠지.
“음, 이상한데.”
“뭐가.”
“아뇨.”
“…….”
따지지 말자. 탈출이 먼저다.
그런데 도리어 저쪽에서 또 입을 연다.
다른 화제로.
“꽤 안정적이네요.”
“뭐가.”
“후배님의 상태가.”
“…….”
상태이상 실패로 곧 뒈질 놈치곤 당장 목숨의 위협을 받는 것 같지도 않고, 정신 상태도 제법 괜찮아 보인다는 뜻일 것이다.
“뭘 알고 있어요?”
대답 안 할 수 있지만, 도리어 양옆에서 시선이 느껴진다. 선아현과 큰세진이다.
‘젠장.’
이건… 차라리 대충이라도 설명하는 게 낫겠군.
“…내가 다음 붕괴 시간을 볼 수 있는데.”
“네.”
“…다음 게 최종. 마지막이라고 떠 있었다.”
순간 침묵이 내려앉았다.
듣고 있던 놈들도 알아차린 것이다.
“마지막?”
“그래. 끝난다는 것 같아.”
“아…!”
사실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지.
하지만 그 자리의 사람들이 의미를 생각하기에 앞서서, 저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저기 계십니다!”
“아!!”
“…! 문에 저거 치웠구나!”
관객들을 먼저 보낸 놈들이 드디어 2층에서 뛰어 내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다 온 거예요?!”
“그래!”
테스타의 다른 멤버들은 우리를 발견하자마자 반색하고 뛰어왔다.
“너!! 제발 좀 먼저 상의부터 하고 행동해!”
“예…….”
반가워하는 거라고 치자.
가장 먼저 뛰어온 차유진이 외쳤다.
“형들 여기 있어요! 모두 Oka… Who the hell was that?!”
“내가 찾던 사람. 기억나지?”
“Oh-”
녀석은 긴 감탄사를 끌더니, 곧 축 늘어진 큰달의 얼굴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저 줘요! 제가 업어요.”
“아니, 괜찮은데.”
큰달의 몸이 맛집 계산서처럼 여러 사람의 손을 오가며 결국 차유진 등에 장착되었다.
“가요!”
VTIC을 확인한 놈들은 그것에도 놀란 것 같았으나, 일단 내려가는 것이 우선이라는 암묵적 합의하에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이제 나가면 되지?”
“예.”
할 수 있는 건 다 한 상태다. 압박감과 긴장감이 약간 누그러진 탈출 직전의 분위기.
그것을 가르고 청려가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음. 둘 중 하나겠네요. 그걸로 재난이 끝나거나, 아니면….”
아직도 계산하고 있었냐?
“후배님의 기회가 끝나거나.”
“…….”
후.
“저거 무슨 뜻이야?”
“박문대?”
나는 입을 다물었다. 청려는 문장을 마무리했다.
“건물이 완전히 무너지는 거죠.”
그때.
쿵.
쿠쿠쿵-!
“…!”
“진동?”
“형, 설마 이번에도 왜곡된 시간을….”
“아니야.”
나는 황급히 팝업을 확인했다.
분명 시간이 남아 있다.
“시간 남았어. 확실히.”
그러자 배세진이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붕괴가 클수록 전조 증상도 이른 거 아니야?”
“…….”
짧게 침묵이 흘렀다.
청려가 또 중얼거렸다.
“음, 역시 후자였나.”
지금 그런 소릴 할 때냐?
“알면 뛰어!”
나는 다른 놈들을 데리고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쾅!
“아아악!”
지하에서 비명이 울렸다.
나는 외쳤다.
“키! 키 어딨어?”
“맨 앞 분께 드렸어! 두 개나!”
류청우가 거짓말을 할 리는 없으니 진실이다.
그럼 사람들이 당장 빠져나가고 있어야 하는데….
‘왜 뭉쳐 있지?’
도착한 지하 복도는 수십 명의 사람으로 꽉 차 있었다.
끼익, 쾅!
“으흐흐흑!”
그리고 위에서 굉음이 들릴 때마다 사람들이 응원봉이나 손으로 머리를 막고 있다.
‘뭐야.’
왜 못 나가고 있단 말인가.
“잠시만요!”
나는 사람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맨 앞, ‘시설 보안용’이라고 적힌 철문 앞에 선 사람 하나가 눈이 마주치자마자 다급히 외쳤다.
“여기 문 안 열려요!”
“…….”
뭐?
나는 인파를 헤치고 나갔다. 그리고 카드키를 든 관객의 손에서 그것을 받아다가, 내가 직접 가져다 댔다.
삐이익-!
거부.
‘X발.’
나는 다른 카드를 들어다 댔다.
삐이익-!
다음 것도.
삐이익-!
“…….”
안 통한다.
“…!!”
“이, 이거 왜 안 돼??”
“허어어어, 허어,”
당황과 공포로 과호흡이 올 것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머리를 굴렸다.
이유가 있다.
‘안 되는 이유는….’
생각하자, 생각하자.
‘권한이 없다고?’
나는 보안키를 대는 키패드와 철문을 바쁘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다시 보았다. 철문에 적힌 글귀를.
“…….”
아, 망할.
“문대야?!”
“잠깐만요!”
나는 거의 고함을 지르며, 뭉친 사람들 틈을 헤치고 나갔다.
“뭐 해?!”
“시설 관리자용 카드!!”
나는 고함을 질렀다.
“우리가 가져온 건 사무직 사람들이고, 보안팀 카드가 있어야 해!”
“…!”
여긴 보안팀용 공간이라서 권한 설정이 그렇게 되어 있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한 놈 정도는 두고 갔을 가능성 없나?’
이대로 옆방으로 가서 수색해 보면… 그래, X발. 나도 안다.
‘먼저 온 주단도 못 발견했지.’
그래도 해보긴 해야 하지 않나. 나는 사람들에게 말해서 일사불란하게 흩어서 수색할 준비를 했다.
그때였다.
“후배님.”
툭.
눈앞에 황금색의 로고가 새겨진 사각형의 플라스틱 뱃지가 흔들린다.
청려가 정장 안주머니에서 막 꺼내어, 내민 것.
“여기요.”
“…….”
“CCTV가 있던 서랍장에 있었는데.”
나는 당장 그것을 낚아채서 앞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가져다 댔다.
띠리릭!
짧고 경쾌한 장조의 소리와 함께.
달칵.
“열렸다!”
문이 개방되었다.
함성과 비명, 그리고 갈급한 발걸음이 균열음과 교차하며, 사람들이 우수수 열린 문을 통해 빠져나간다.
바깥 공기가 얼굴에 훅 닿는다.
“하.”
나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큰일 날 뻔했네.
‘어쩐지 저 새끼가 탈출을 안 하고 있더라니.’
일단 저걸로 나갈 방법이 있어서 개기고 있던 게 분명했다.
“청려 형이라면 극한 상황에서 제가 배신할 때를 대비해 공유하지 않으신 거겠죠.”
“아니. 저걸로 CCTV 보안 해제 때 너도 옆에 있었는데.”
“…….”
주단 이 새끼 설마 뱃지 형태라 직원증을 못 알아본….
‘아니, 아무튼. 열었으니 됐다.’
나는 일부러 문을 잡고 옆으로 비켜서서 사람들이 순조롭게 나가도록 통솔하는 척 시간을 끌었다.
시간은 괜찮다.
“너희 다들 빨리 나가!”
“그럴게요.”
뒤에 나가는 팬들이 한 마디씩 돌아보며 말을 던지는 것처럼, 안 그래도 그럴 것이다.
“다 나가셨지?”
“이제 가자!”
그리고 쓸데없이 책임감 좋은 놈들이 굳이 따라서 마지막까지 기다렸고, 나는 놈들이 먼저 나가라는 듯이 문을 다시 벌렸다.
그러자 몇몇 놈들의 눈이 가늘어진다.
“너 설마….”
“아니라니까.”
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무너지는 건물에 자진해서 남겠냐.
투드득, 쿵!
다시 위에서 육중한 균열 소리가 들린다. 나는 황급히 입을 열었다.
“내가 시간을 보니까 마지막으로 나가고 싶어서 그래. 일단 나가! 이럴수록 더 늦어진다.”
“…….”
그러나 선아현이 심호흡을 하더니, 발을 멈췄다.
“…!”
“도, 동시에 안 나가면, 안 나갈래.”
아, 망할.
‘혹시 또 연달아 미친 짓이 일어날까 봐 거리 좀 벌리려고 한 건데.’
나는 청려에게 눈짓했으나, 놈은 아무 반응 없이 같이 나를 쳐다보기만 했다.
그리고 선아현뿐만 아니라 다른 놈들도 문을 잡고 빤히 나를 보기 시작한다. 기 싸움하냐?
‘돌아버리겠네.’
5분 남았다 미친놈들아.
“…….”
나는 문밖과 놈들을 번갈아 보다가, 결국 한숨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밀치든 뭐든 각은 나오겠지.’
“…그래. 같이 나가자고.”
“…!! 응!”
나는 선아현의 등을 밀며 밖으로 나왔다.
그 순간.
야외의 공기가 쏟아진다.
초가을의 선선한 공기.
컨테이너 벽으로 가려진 뒤뜰 같은 장소는 어두웠으나, 그 벽에서 각도를 꺾자마자 햇빛이 내렸다.
“…!”
…노을이었다.
그 순간, 불안과 초조함, 날카롭게 서 있던 생존본능의 경고와 차가운 공포가 순식간에 사라진다.
그 모든 게 빨려들 듯이 쭉 뽑혀 나가고, 평온만이 오롯이 남았다.
“아…….”
나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머리가 시원했다.
그리고 마치 맞춘 듯이, 팝업이 변한다.
안정감이 돌아왔다.
나는 뒤를 돌아서 우리가 나온 건물을 보았다. 굉음은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
“…끝났어.”
“어?”
“끝난 것 같다. 붕괴.”
다른 놈들도 건물을 뒤돌아보더니, 곧 긴 한숨을 쉬거나 그제야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렇게 상쾌할 수 없었다.
* * *
몸은 무겁지만 분위기는 제법 친근하고 희망적이다.
“휴우.”
“다들 고생 많았어.”
“모, 모두 무사히 나와서, 다행이에요….”
“그래도 지금은 빨리 움직이는 게 좋겠어요. 혹시라도 무너지면 휩쓸려 갈 수 있으니까.”
“그, 그렇긴 하지.”
큰세진의 말에 다들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면서도 입을 안 멈춘다.
“여기가 어딜까?”
“다들 잘 모르는 건물 뒤 은밀한 출입구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 그럼 앞은 매스컴으로 꽉 차 있을 것 같은데요.”
그건… 확실하지.
‘이렇게 좋은 떡밥도 없을걸.’
구조대가 늦는 것도 어쩌면 언론사가 이미 자리를 다 선점해서 지랄이 난 탓일지도 몰랐다.
뭐, 어쨌든 내가 나와서 붕괴도 멈춘 것 같으니… 혹시 3층 위에 고립되어 있던 직원이 있더라도 곧 구출되겠지.
매스컴이 노리던 사람들이 다 나오지 않았는가.
“수습이… 음.”
1군 아이돌 주최 자선 공연에서 1군 아이돌들이 건물에 갇혀 있다 나와?
솔직히 지옥이 예상된다.
“문대 넌 수습 같은 생각 말고 병원부터 가자.”
“…….”
아니, 누가 보면 내가 현대 의학을 안 쓰는 사람인 줄 알겠다.
“…예. 아무튼. 이쪽이 앞인 것 같으니 돌아가면….”
“그래.”
어쨌든, 우리는 꽤 초라한 몰골로 터벅터벅 걸어서, 잡초가 자란 뒷길을 돌아 건물 앞으로 나왔다.
‘슬슬 사람들 비명이….’
그러나.
“왜 사람들 없어요?”
건물 앞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
차, 행인, 사이렌 소리, 취재진, 구경꾼.
분명 존재할 것이라 생각했던 모든 것들이 흔적도 없다.
흐르는 건 적막뿐.
심지어 도로에도 차 한 대 다니지 않는다.
뭐야.
“잠깐. …아까 나온 팬들은?”
“…!!”
배세진이 다급히 외친다.
“매스컴이 없어도 그 사람들은 보여야 할 거 아냐!”
그러나 여전히 노을 지는 건물 앞은 아무도 없었다.
마치 다들 다른 곳으로 나가기라도 한 것처럼.
“아, 이거였나.”
나는 고개를 돌렸다.
청려가 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재킷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자신의 스마트폰이 든 자리.
“전화가 한 통도 안 와서 이상했거든요.”
“…!”
그렇다.
건물이 무너졌다면, 당연히 갇힌 것으로 짐작되는 사람의 스마트폰에 전화가 쏟아지는 게 마땅했다.
그런데 저놈에게 통화가 한 통도 없었다는 건….
‘…외부와 단절되어 있었다.’
혹은, 어느 순간부터 단절된 것이다.
그리고 그때,
“…흐읍!”
“Hup!”
차유진의 등에 업혀 있던 큰달이, 눈을 떴다. 이렇게 외치면서.
“이, 이겼다!”
“…??”
새로운 팝업과 함께.
승리 : Player 박문대(류건우)
보상 : ■■■의 파편 1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