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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429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29화
팬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경우.
사실 드물다. 대부분은 무대 위에서 흔들리는 응원봉으로, 혹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로 간접 소통한다.
팬사인회도 줄을 서서 여럿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는 정도.
그러니까, 이렇게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극히 드물다.
“…….”
비록 내가 붕괴된 무대 위 기울어진 채 매달린 방에 있는 상황이지만.
그리고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는 상태지만.
“왜 여깄어? 왜 너 여깄어?!”
벽 너머에서 외침이 들렸다. 당황한 소리.
공포나 패닉은 적다. 그냥 무대가 붕괴한 이 상황에 대한 정도.
‘…모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이성을 되찾고 판단했다.
저 팬이 들고 있는 응원봉은 제법 밝긴 하지만 앞으로 빛을 쏘는 게 아니라서 시야 너머를 밝히는 효과는 별로 없다.
차라리 내가 저 팬이 잘 보이게 해줄 뿐이다.
그러니까, 저 팬은 내 의상이나 전체적인 윤곽 같은 걸 알아보는 정도로 끝인 것이다.
내 상황이나 상태는 잘 안 보인다.
나는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뭘 가지러 왔다가, 갇혀서. 괜찮아요.”
괜찮을까?
어차피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이면, 굳이 저 사람까지 말려들 정도로 괴상한 미친 짓이 벌어지지는….
‘멍청아.’
그냥 보내는 게 맞았다. 왜 굳이 변수를 만들려고 해.
“어떡해, 자, 잠깐만. 내가 사람들 불러올….”
“아뇨. 너무 소란스러워지면, 안 되니까요.”
이제 보내도 문제가 되겠군. 다른 사람들을 불러올 테니까.
문제는 그게 안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아, 음, 그렇지…. 미안, 미안해! 그러면… 내가 반대편으로 가서 문 열어볼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구조 올 때까지 이대로 기다리는 게 어떨까요.”
“으응….”
대화하며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게 기껍다. 눈이 뜨겁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웃겨서 실소가 다 나올 지경이다.
‘멍청한 새끼.’
나는 뒤로 더 물러나서, 마치 벽에 기대는 것처럼 문에 기대어 다시 철제 선반을 잡았다. 거리가 더 확보되자 더 평온해졌다.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심코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요?”
“모르겠어, 그, 그런데 아마 멤버들은 다 나갔을 거야. 안내 방송 나오고 관객들이랑 다들 나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쓸데없이 안도감에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혀를 씹으며 물었다.
“…누나는요?”
“나, 나? 나는… 아, 괜찮아! 몸 아픈 것도 아니고, 그 건물 흔들림 같은 것도 거의 멎은 것 같아.”
이 사람은 제작진이 스포일러 방지 목적으로 걷어간 휴대폰을 모아둔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비상계단을 올라오다가 무너진 벽 너머로 나를 발견했다고.
“내가 나가는 게 좀 늦어서 갇혔어. 앞자리에 앉아있었거든.”
나는 힘없이 웃었다. 말려들게 해서 입이 씁쓸했다.
“네, 봤어요.”
“…나 봤어?!”
“네. 왼쪽 앞에 앉아계셨잖아요. 그러니까, 누나 기준에서는 오른쪽.”
“허억.”
사실 데뷔 초부터 가끔 봤던 것 같은데, 그런 것까지 굳이 떠들지 말자.
그냥… 말이나 계속 걸자.
“어떻게 오셨나요. 주말이라 시간 되신 건가요.”
“아, 응. 일하는 건 아니고, 나는… 대학원생이야.”
생명 공학을 전공하고, 개를 키우고….
사실 저 사람도 상당히 불안했는지, 아마 평소라면 굳이 낯선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말한다.
그리고 나를 왜 좋아하는지, 내 어떤 무대에, 어떤 방송 장면에 호감을 느끼고 응원했는가에 대해서도.
익숙하고 낯선 이야기 속에 상황과 맞지 않는 온기가 있다.
그래서 더 하게 되는 건가. 상황을 잊기 위해서.
“…그렇구나.”
나는 가만히 그것을 들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도 슬슬 긴장이 풀리자 자기가 건물에 갇힌 것을 다시 실감한 건지, 이제 질문을 한다.
“저기… 아까 무대도 혹시 느낌 이상해서 중단했던 거야?”
“비슷해요.”
아마 내가 쓰러진 건 못 본 모양이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았다는 걸 놀라지 않을 걸로 보아 뛰쳐나온 게 나라는 것도 못 본 모양이다.
무대 장치에 깔려 죽은 것 같은 누군가에 대해선 내가 동요할까 봐 이야기하지 않는 걸 테고.
“…고맙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아. 여기 서울 한복판인데 곧 구출하러 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우리 조금만 기다려 보자!”
일부러 한 톤 높여서 말하는 씩씩한 목소리다.
나는 웃었다.
“예.”
결심이 섰다.
동시에,
으드드득.
등 뒤 문에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예감.
식은땀과 초조함,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아슬아슬한 실패의 감각.
다시 돌아왔다.
‘……끝이다.’
순간 돌아오는 예리한 판단력.
당장 앞으로 튀어 나가서, 저 팬이 서 있는 뚫린 벽 너머로 어떻게든 넘어가 보면 어떨까.
이 비품실에 뛰어든 것처럼 말이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
“…문대야? 혹시 어디 다치거나 아픈 데 있어?”
그러면 저 팬이랑 같이 휘말릴 확률이… 극도로 높다.
“아뇨.”
그래.
나는 철제 선반을 놓았다.
동시에, 뒤에서 불길한 파쇄음이 울렸다.
문이 박살 나는 소리.
“…!”
“아.”
지지지지지직-
콘크리트가 서로 긁히며 끊기고.
작은 비품실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뚝 떨어져, 하강했다.
“…!!”
그와 동시에, 나는 부서진 문 너머로 뛰었다.
쿵.
하지만 복도는 이미 다 부서졌다. 게다가 비품실이 기운 탓에 복도 바닥에 발이 아닌 손이 간신히 닿을 높이.
남은 건 검은 허공.
“흡!”
텁.
나는 간신히 부서진 복도 끝을 잡아 매달렸다.
‘…안 돼.’
그러나 빌어먹을 손에 힘이 부족하다.
이미 몇 번이나 써먹은 사지는 출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손 하나론 내 몸뚱어리를 버티지 못한다.
‘곧 떨어진다.’
굉음 뒤에서 비명과 함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하지만 괜찮다.
반대편이 아니라 이곳이 맞는 선택이다.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어떻게 뒈질 건지는 내가 선택해야지.
나는 자재가 튀어나온 콘크리트 조각에 매달려, 아마도 마지막에 될 생각을 했다.
-형!
“…….”
이렇게 된 이상 해볼 수 있는 마지막 시도가 남아 있었지.
‘상태창.’
상태창을 켜서 큰달에게 연락….
[정산 중]
그 순간, 거짓말처럼 피 묻은 손이 미끄러진다.
“…!!”
나는 그대로 허공으로 떨어졌다.
짧은 아찔함.
곧 서늘한 어둠에, 어마어마한 타격감과 통증이 전신을 감싸야 하는 그… 때.
……
[??의 검색 요청! (101)]
[??의 검색 요청! (102)]
[??의 검색 요청! (103)]
[확인]
세상이 멈췄다.
한없이 느려진 것처럼, 마치 주마등을 보는 것처럼 의식이 가속된다.
그리고 눈앞에 뜨는 상태창의 표기가, 갑자기 불투명하도록 선명히 보인다. 몇백 개의 팝업이 겹쳐서 빛난다.
그 위로 새롭게 뜨는 팝업까지.
[검색 완료!]
[결괏값 : ‘칭호’ 확인]
이게 뭐지.
[칭호 : 성공한 자 (아이돌)]
-당신은 성공했습니다.
: 상태이상 발생 영구 제거
‘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내가 이전, 마지막 상태이상을 클리어하고… 배세진의 집에서 진실 확인을 끝마친 뒤 받은 특전이다.
큰달이 시스템으로부터 받아 언어로 표기한 법칙.
…앞으로는 다신 상태이상에 걸리지 않는다는 상태창의 보증.
그렇다면.
‘지금 이 X 같은 상황은… 칭호와 대치되는,’
그때였다.
휙.
통증.
나는 팔목을 붙잡으며 시작된 어마어마한 압박감과 끊어질 것 같은 힘에 허공에서 정지했다.
시간이 다시 흐른다.
목소리가 들렸다.
“문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콘크리트 위.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내 팔을 붙잡은 손이 보인다.
선아현이었다.
“…!”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른다.
그러나 통증이 현실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자, 잠깐,”
선아현이 놀라운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상태창 너머, 그 간절한 얼굴 위로 글귀가 떴다.
[Error!]
[오류 확인 : 상태이상 발생]
[복구 시도]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정정 중]
[‘상태이상 실패’ -> ‘미션 실패’]
[패널티 복구….]
상태창이 변한다.
더 안정적으로.
[돌발!]
미션 실패 : 건물 붕괴
– 붕괴하는 건물의 재난
: 다음 재난까지 00:59:59
한 시간.
“흐읍.”
“괘, 괜찮아, 괜찮아….”
숨이 잦아든다.
머리끝까지 차 있던 긴장감과 비이성적인 압박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피로와 고통, 합리적인 불안감을 남기고 잠시 녹는다.
“괜찮아….”
나는 거의 선아현에게 몸을 기대다시피 한 채로, 천천히 받아들였다.
“…….”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 * *
“여, 여기 물.”
“…고맙다.”
선아현이 내미는 생수 페트병을 받아들었다. 이빨이 부딪혀서 좀 마시기 힘들었지만 최대한 마시고 입을 닦아내자, 상표가 보인다.
‘이건.’
카메라에 잡힐 걸 고려하고 준비된 게 아니었다.
‘…자판기에서 뽑아왔다기엔, 동전이 없을 텐데.’
기본적으로 우린 모두 무대 의상만 걸친 맨몸 상태였다. 주머니에 뭘 챙기고 무대에 오르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이 의문은 잠시 후 밝혀진다.
“…!! 문대 형! 괜찮으십니까??”
선아현의 부축을 받으며 약간 이동하자, 곧 비상 손전등을 야무지게 챙기고 물을 잔뜩 든 김래빈과 마주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두 놈은 내가 추워 보인다고 판단하자마자 모포 찾으러 쏜살같이 대기실로 가다가 붕괴 사고로 멤버들과 갈라진 모양이다.
‘내 위로 무대 장치가 쏟아진 걸 모르고 있어.’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고.
“…상처가 심하십니다. 아무래도 대기실에 구급 키트가 있으니 우선 소독 후….”
“알았어.”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김래빈을 얼추 달래며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여기는 대기실 있는 2층이라는 거지.”
“정확하십니다….”
이 물의 출처는 대기실이었다. 1층 백스테이지로 내려가는 길은 무대 천장이 쏟아지면서 막혔고.
그렇다면 말이다.
“다른 스탭들은?”
“대피 중에, 헤어져서…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어.”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두 놈을 보았다. 이제 보니, 이 녀석들도 제법 몰골이 먼지 구덩이를 구른 꼴이었다.
설마 이 자식들 대피 중에 무슨 이상한 소리 주워듣고 날 찾겠답시고 여기 남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건 일단 탈출한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으니, 넘어가자.
‘그래.’
탈출.
나는 아까 뜬 상태창 팝업을 다시 확인했다.
사실 집어넣지도 않았다.
…사라질까 봐.
[미션 실패 : 건물 붕괴]
– 붕괴하는 죽음의 재해
: 다음 사고까지 00:55:37
상태이상 실패에서 미션 실패로 바뀌고, 범위가 좁고 약간 친절해졌다.
‘내가 ‘미션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과 연결한 건가.’
어떻게든 말을 끼워 맞춘 모양새다.
그래도 만약에 이 지랄이 나기 전에 상태창에서 저 문구를 봤다면 돌아버리고 싶어졌겠지.
하지만 이렇게 되니 도리어 안심이 된다. 한 시간이 어디냐.
‘일단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
좋아하던 아이돌이 눈앞에서 대화하다가 뒈지면 그건 정말 트라우마 감이다. 최소한 그 이후로도 좀 살았다는 흔적은 남기고 싶군.
나는 대기실로 가서 일단 김래빈이 강권하는 응급 처치를 받았다.
“등이….”
“나가서 제대로 치료 받으면 돼.”
등을 치료하는 손이 떨렸다.
“이, 이렇게 될 동안, 대체 위층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말을 바꾸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로.
“사실 큰달을 찾고 있었는데.”
“큰달…?”
“전에 그 골드 채팅에서 봤잖아.”
“아!”
방금 내 상태창에서 검색을 수없이 시도한 건 분명 그 녀석일 것이다. 상태창에 접속할 수 있는 건 그놈뿐이니까.
‘그리고 내 칭호랑 미션 체질까지 엮어서 어떻게든 해석에서 빈틈을 만든 것 같은데.’
내가 놈에게 많이 시켰던 짓과 결이 비슷했다.
…어떻게든, 날 살리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큰달이 더 아는 게 있는지,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이걸 또 처리할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해서 알아봐야겠는데.’
하지만 지금은 소통이 불가능하다.
[‘미션 실패’ 패널티 : 상태창 부가 기능 이용을 제한 중.]
이제 큰달과 팝업 채팅을 시도할 때마다 이게 뜨는 중이다.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협조를 위해 여기까진 솔직히 말하자.
“상태창에 이 상황이 예고처럼 떠서 보였거든.”
나는 대강의 상황을 설명한 뒤, 마른 입에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큰달을 찾아서 아는 게 있는지 상의를….”
“아, 안 돼.”
“…!?”
“지금 문대는 너무 다쳤어. 구조가 올 때까지, 사, 살펴보는 건 내가 할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사실 별로 안 그러고 싶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자고.
아무튼 간에.
“가만히 있으면… 49분 31초 후에 이 건물 또 붕괴한다고 하는데.”
“…!!”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니까, 뭐든 해봐야지.”
나는 몸을 일으켰다. 힘이 좀 돌아온 것 같았다.
움직이자.
그 녀석이라면 분명 성향상 이 꼴을 보면서도 건물에 남았을 것이다.
* * *
“…….”
청려는 스마트폰의 통화를 눌렀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삑.
여전히 같은 소리만 울렸다.
무응답.
하지만 눈앞의 흔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비상문을 열고 붕괴한 3층 복도를 보았다.
여기로 뛰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었어.’
적어도, 여기까지는.
그는 밑을 내려다보며 스마트폰 손전등 기능을 켰다. 콘크리트와 철제 조각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혈흔은 없다.
“차라리 안내 방송을 하는 곳을 찾아보는 게….”
“조용히.”
“…….”
주단은 입을 다물었다.
‘괜히 따라왔나.’
대기실을 나간 리더를 보고 사건의 예감에 따라 나왔더니, 졸지에 무너진 건물에 갇혔다.
‘이런 게임이 있었는데 말이지….’
주단은 눈을 찌푸리고,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청려를 쫓았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29화

팬과 직접 대화를 나누는 경우.

사실 드물다. 대부분은 무대 위에서 흔들리는 응원봉으로, 혹은 인터넷에 올라온 글로 간접 소통한다.

팬사인회도 줄을 서서 여럿이 함께 있는 공간에서 짧게 대화를 나누는 정도.

그러니까, 이렇게 일대일로 대화를 나누는 순간은 극히 드물다.

“…….”

비록 내가 붕괴된 무대 위 기울어진 채 매달린 방에 있는 상황이지만.

그리고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는 상태지만.

“왜 여깄어? 왜 너 여깄어?!”

벽 너머에서 외침이 들렸다. 당황한 소리.

공포나 패닉은 적다. 그냥 무대가 붕괴한 이 상황에 대한 정도.

‘…모르고 있다.’

나는 천천히, 이성을 되찾고 판단했다.

저 팬이 들고 있는 응원봉은 제법 밝긴 하지만 앞으로 빛을 쏘는 게 아니라서 시야 너머를 밝히는 효과는 별로 없다.

차라리 내가 저 팬이 잘 보이게 해줄 뿐이다.

그러니까, 저 팬은 내 의상이나 전체적인 윤곽 같은 걸 알아보는 정도로 끝인 것이다.

내 상황이나 상태는 잘 안 보인다.

나는 침을 삼키며 입을 열었다.

“…뭘 가지러 왔다가, 갇혀서. 괜찮아요.”

괜찮을까?

어차피 벽이 가로막고 있었다. 이렇게 불안정한 상황이면, 굳이 저 사람까지 말려들 정도로 괴상한 미친 짓이 벌어지지는….

‘멍청아.’

그냥 보내는 게 맞았다. 왜 굳이 변수를 만들려고 해.

“어떡해, 자, 잠깐만. 내가 사람들 불러올….”

“아뇨. 너무 소란스러워지면, 안 되니까요.”

이제 보내도 문제가 되겠군. 다른 사람들을 불러올 테니까.

문제는 그게 안심이 되었다는 점이다.

“아, 음, 그렇지…. 미안, 미안해! 그러면… 내가 반대편으로 가서 문 열어볼까?”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구조 올 때까지 이대로 기다리는 게 어떨까요.”

“으응….”

대화하며 시간을 끌어야 한다는 게 기껍다. 눈이 뜨겁다.

이런 기분을 느끼는 날이 올 줄은 몰랐는데. 웃겨서 실소가 다 나올 지경이다.

‘멍청한 새끼.’

나는 뒤로 더 물러나서, 마치 벽에 기대는 것처럼 문에 기대어 다시 철제 선반을 잡았다. 거리가 더 확보되자 더 평온해졌다.

말려들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무심코 입을 열었다.

“다른 사람들은, 괜찮아요?”

“모르겠어, 그, 그런데 아마 멤버들은 다 나갔을 거야. 안내 방송 나오고 관객들이랑 다들 나가서….”

그나마 다행이었다. 나는 쓸데없이 안도감에 나태해지지 않기 위해 혀를 씹으며 물었다.

“…누나는요?”

“나, 나? 나는… 아, 괜찮아! 몸 아픈 것도 아니고, 그 건물 흔들림 같은 것도 거의 멎은 것 같아.”

이 사람은 제작진이 스포일러 방지 목적으로 걷어간 휴대폰을 모아둔 곳을 찾아다녔다고 한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비상계단을 올라오다가 무너진 벽 너머로 나를 발견했다고.

“내가 나가는 게 좀 늦어서 갇혔어. 앞자리에 앉아있었거든.”

나는 힘없이 웃었다. 말려들게 해서 입이 씁쓸했다.

“네, 봤어요.”

“…나 봤어?!”

“네. 왼쪽 앞에 앉아계셨잖아요. 그러니까, 누나 기준에서는 오른쪽.”

“허억.”

사실 데뷔 초부터 가끔 봤던 것 같은데, 그런 것까지 굳이 떠들지 말자.

그냥… 말이나 계속 걸자.

“어떻게 오셨나요. 주말이라 시간 되신 건가요.”

“아, 응. 일하는 건 아니고, 나는… 대학원생이야.”

생명 공학을 전공하고, 개를 키우고….

사실 저 사람도 상당히 불안했는지, 아마 평소라면 굳이 낯선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을 개인적인 이야기들을 말한다.

그리고 나를 왜 좋아하는지, 내 어떤 무대에, 어떤 방송 장면에 호감을 느끼고 응원했는가에 대해서도.

익숙하고 낯선 이야기 속에 상황과 맞지 않는 온기가 있다.

그래서 더 하게 되는 건가. 상황을 잊기 위해서.

“…그렇구나.”

나는 가만히 그것을 들었다.

이런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리고 상대도 슬슬 긴장이 풀리자 자기가 건물에 갇힌 것을 다시 실감한 건지, 이제 질문을 한다.

“저기… 아까 무대도 혹시 느낌 이상해서 중단했던 거야?”

“비슷해요.”

아마 내가 쓰러진 건 못 본 모양이다.

게다가 생각해 보니, 내가 살았다는 걸 놀라지 않을 걸로 보아 뛰쳐나온 게 나라는 것도 못 본 모양이다.

무대 장치에 깔려 죽은 것 같은 누군가에 대해선 내가 동요할까 봐 이야기하지 않는 걸 테고.

“…고맙습니다. 걱정해 주셔서.”

“…!! 무슨 소리야, 당연히… 아. 여기 서울 한복판인데 곧 구출하러 올 거야. 걱정하지 말고… 우리 조금만 기다려 보자!”

일부러 한 톤 높여서 말하는 씩씩한 목소리다.

나는 웃었다.

“예.”

결심이 섰다.

동시에,

으드드득.

등 뒤 문에서 소리가 났다.

그리고 예감.

식은땀과 초조함, 모든 게 끝난 것 같은 아슬아슬한 실패의 감각.

다시 돌아왔다.

‘……끝이다.’

순간 돌아오는 예리한 판단력.

당장 앞으로 튀어 나가서, 저 팬이 서 있는 뚫린 벽 너머로 어떻게든 넘어가 보면 어떨까.

이 비품실에 뛰어든 것처럼 말이다.

‘타이밍만 잘 맞추면….’

“…….”

“…문대야? 혹시 어디 다치거나 아픈 데 있어?”

그러면 저 팬이랑 같이 휘말릴 확률이… 극도로 높다.

“아뇨.”

그래.

나는 철제 선반을 놓았다.

동시에, 뒤에서 불길한 파쇄음이 울렸다.

문이 박살 나는 소리.

“…!”

“아.”

지지지지지직-

콘크리트가 서로 긁히며 끊기고.

작은 비품실이 섬뜩한 소리와 함께 뚝 떨어져, 하강했다.

“…!!”

그와 동시에, 나는 부서진 문 너머로 뛰었다.

쿵.

하지만 복도는 이미 다 부서졌다. 게다가 비품실이 기운 탓에 복도 바닥에 발이 아닌 손이 간신히 닿을 높이.

남은 건 검은 허공.

“흡!”

텁.

나는 간신히 부서진 복도 끝을 잡아 매달렸다.

‘…안 돼.’

그러나 빌어먹을 손에 힘이 부족하다.

이미 몇 번이나 써먹은 사지는 출력이 현저히 떨어져서 손 하나론 내 몸뚱어리를 버티지 못한다.

‘곧 떨어진다.’

굉음 뒤에서 비명과 함께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

하지만 괜찮다.

반대편이 아니라 이곳이 맞는 선택이다.

어떻게 해도 피할 수 없다면, 최소한 어떻게 뒈질 건지는 내가 선택해야지.

나는 자재가 튀어나온 콘크리트 조각에 매달려, 아마도 마지막에 될 생각을 했다.

-형!

“…….”

이렇게 된 이상 해볼 수 있는 마지막 시도가 남아 있었지.

‘상태창.’

상태창을 켜서 큰달에게 연락….

그 순간, 거짓말처럼 피 묻은 손이 미끄러진다.

“…!!”

나는 그대로 허공으로 떨어졌다.

짧은 아찔함.

곧 서늘한 어둠에, 어마어마한 타격감과 통증이 전신을 감싸야 하는 그… 때.

……

세상이 멈췄다.

한없이 느려진 것처럼, 마치 주마등을 보는 것처럼 의식이 가속된다.

그리고 눈앞에 뜨는 상태창의 표기가, 갑자기 불투명하도록 선명히 보인다. 몇백 개의 팝업이 겹쳐서 빛난다.

그 위로 새롭게 뜨는 팝업까지.

이게 뭐지.

-당신은 성공했습니다.

: 상태이상 발생 영구 제거

‘아.’

그러고 보니, 기억이 난다.

내가 이전, 마지막 상태이상을 클리어하고… 배세진의 집에서 진실 확인을 끝마친 뒤 받은 특전이다.

큰달이 시스템으로부터 받아 언어로 표기한 법칙.

…앞으로는 다신 상태이상에 걸리지 않는다는 상태창의 보증.

그렇다면.

‘지금 이 X 같은 상황은… 칭호와 대치되는,’

그때였다.

휙.

통증.

나는 팔목을 붙잡으며 시작된 어마어마한 압박감과 끊어질 것 같은 힘에 허공에서 정지했다.

시간이 다시 흐른다.

목소리가 들렸다.

“문대…!”

나는 고개를 들었다.

콘크리트 위. 새하얗게 질린 얼굴과 내 팔을 붙잡은 손이 보인다.

선아현이었다.

“…!”

왜 여기에 있는 건지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른다.

그러나 통증이 현실이라고 고함을 질렀다.

“자, 잠깐,”

선아현이 놀라운 힘으로 나를 끌어당겼다.

그리고 상태창 너머, 그 간절한 얼굴 위로 글귀가 떴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상태창이 변한다.

더 안정적으로.

미션 실패 : 건물 붕괴

– 붕괴하는 건물의 재난

: 다음 재난까지 00:59:59

한 시간.

“흐읍.”

“괘, 괜찮아, 괜찮아….”

숨이 잦아든다.

머리끝까지 차 있던 긴장감과 비이성적인 압박감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피로와 고통, 합리적인 불안감을 남기고 잠시 녹는다.

“괜찮아….”

나는 거의 선아현에게 몸을 기대다시피 한 채로, 천천히 받아들였다.

“…….”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을.

* * *

“여, 여기 물.”

“…고맙다.”

선아현이 내미는 생수 페트병을 받아들었다. 이빨이 부딪혀서 좀 마시기 힘들었지만 최대한 마시고 입을 닦아내자, 상표가 보인다.

‘이건.’

카메라에 잡힐 걸 고려하고 준비된 게 아니었다.

‘…자판기에서 뽑아왔다기엔, 동전이 없을 텐데.’

기본적으로 우린 모두 무대 의상만 걸친 맨몸 상태였다. 주머니에 뭘 챙기고 무대에 오르는 것도 웃기지 않은가.

이 의문은 잠시 후 밝혀진다.

“…!! 문대 형! 괜찮으십니까??”

선아현의 부축을 받으며 약간 이동하자, 곧 비상 손전등을 야무지게 챙기고 물을 잔뜩 든 김래빈과 마주친 것이다.

알고 보니, 이 두 놈은 내가 추워 보인다고 판단하자마자 모포 찾으러 쏜살같이 대기실로 가다가 붕괴 사고로 멤버들과 갈라진 모양이다.

‘내 위로 무대 장치가 쏟아진 걸 모르고 있어.’

굳이 이야기할 필요는 없겠고.

“…상처가 심하십니다. 아무래도 대기실에 구급 키트가 있으니 우선 소독 후….”

“알았어.”

나는 거의 울 것 같은 김래빈을 얼추 달래며 최대한 침착하게 물었다.

“그럼 여기는 대기실 있는 2층이라는 거지.”

“정확하십니다….”

이 물의 출처는 대기실이었다. 1층 백스테이지로 내려가는 길은 무대 천장이 쏟아지면서 막혔고.

그렇다면 말이다.

“다른 스탭들은?”

“대피 중에, 헤어져서… 어디로 갔는지 잘 모르겠어.”

“…….”

나는 눈을 가늘게 뜨고 두 놈을 보았다. 이제 보니, 이 녀석들도 제법 몰골이 먼지 구덩이를 구른 꼴이었다.

설마 이 자식들 대피 중에 무슨 이상한 소리 주워듣고 날 찾겠답시고 여기 남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그런 건 일단 탈출한 다음에 말해도 늦지 않으니, 넘어가자.

‘그래.’

탈출.

나는 아까 뜬 상태창 팝업을 다시 확인했다.

사실 집어넣지도 않았다.

…사라질까 봐.

– 붕괴하는 죽음의 재해

: 다음 사고까지 00:55:37

상태이상 실패에서 미션 실패로 바뀌고, 범위가 좁고 약간 친절해졌다.

‘내가 ‘미션 체질’을 가지고 있어서 그것과 연결한 건가.’

어떻게든 말을 끼워 맞춘 모양새다.

그래도 만약에 이 지랄이 나기 전에 상태창에서 저 문구를 봤다면 돌아버리고 싶어졌겠지.

하지만 이렇게 되니 도리어 안심이 된다. 한 시간이 어디냐.

‘일단 시도라도 해볼 수 있다.’

좋아하던 아이돌이 눈앞에서 대화하다가 뒈지면 그건 정말 트라우마 감이다. 최소한 그 이후로도 좀 살았다는 흔적은 남기고 싶군.

나는 대기실로 가서 일단 김래빈이 강권하는 응급 처치를 받았다.

“등이….”

“나가서 제대로 치료 받으면 돼.”

등을 치료하는 손이 떨렸다.

“이, 이렇게 될 동안, 대체 위층에서 어떤 일을 하고 계셨던 겁니까…?”

“…….”

나는 잠깐 주저하다가, 말을 바꾸었다.

앞으로 해야 할 일로.

“사실 큰달을 찾고 있었는데.”

“큰달…?”

“전에 그 골드 채팅에서 봤잖아.”

“아!”

방금 내 상태창에서 검색을 수없이 시도한 건 분명 그 녀석일 것이다. 상태창에 접속할 수 있는 건 그놈뿐이니까.

‘그리고 내 칭호랑 미션 체질까지 엮어서 어떻게든 해석에서 빈틈을 만든 것 같은데.’

내가 놈에게 많이 시켰던 짓과 결이 비슷했다.

…어떻게든, 날 살리려고 한 것이다.

그렇다면.

‘…큰달이 더 아는 게 있는지, 그리고 비슷한 방식으로 이걸 또 처리할 수 있는지를 직접 확인해서 알아봐야겠는데.’

하지만 지금은 소통이 불가능하다.

이제 큰달과 팝업 채팅을 시도할 때마다 이게 뜨는 중이다.

‘직접 만나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협조를 위해 여기까진 솔직히 말하자.

“상태창에 이 상황이 예고처럼 떠서 보였거든.”

나는 대강의 상황을 설명한 뒤, 마른 입에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러니까 어떻게든 큰달을 찾아서 아는 게 있는지 상의를….”

“아, 안 돼.”

“…!?”

“지금 문대는 너무 다쳤어. 구조가 올 때까지, 사, 살펴보는 건 내가 할게.”

“나도 그러고 싶은데.”

사실 별로 안 그러고 싶지만, 말이라도 그렇게 해주자고.

아무튼 간에.

“가만히 있으면… 49분 31초 후에 이 건물 또 붕괴한다고 하는데.”

“…!!”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을지도 모르니까, 뭐든 해봐야지.”

나는 몸을 일으켰다. 힘이 좀 돌아온 것 같았다.

움직이자.

그 녀석이라면 분명 성향상 이 꼴을 보면서도 건물에 남았을 것이다.

* * *

“…….”

청려는 스마트폰의 통화를 눌렀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음성사서함으로 연결…

삑.

여전히 같은 소리만 울렸다.

무응답.

하지만 눈앞의 흔적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비상문을 열고 붕괴한 3층 복도를 보았다.

여기로 뛰어왔을 것이다. 그리고….

‘살아 있었어.’

적어도, 여기까지는.

그는 밑을 내려다보며 스마트폰 손전등 기능을 켰다. 콘크리트와 철제 조각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혈흔은 없다.

“차라리 안내 방송을 하는 곳을 찾아보는 게….”

“조용히.”

“…….”

주단은 입을 다물었다.

‘괜히 따라왔나.’

대기실을 나간 리더를 보고 사건의 예감에 따라 나왔더니, 졸지에 무너진 건물에 갇혔다.

‘이런 게임이 있었는데 말이지….’

주단은 눈을 찌푸리고, 비상계단을 내려가는 청려를 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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