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1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18화
예능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게 있긴 했다.
바로 공연.
“Thank you!”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옆 마이크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데뷔곡 ‘Hi-five’의 안무가 끝났다.
마지막 앵콜 곡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악!
열기와 환호, 그리고 불빛.
진동에 몸이 울린다.
‘…오랜만이다.’
관자놀이로 땀이 흘렀다.
나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거대한 광장을 가득 채운 빛무리를 보았다.
사실 투어라는 건 언론에 노출되는 일은 아니다 보니 인지도나 명성을 키우는 것에는 썩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이미 벌어놓은 인지도를 관객으로 수확하는 셈이니 소속사들이 캐시카우 삼는 거지.
그러나 막상 공연하는 입장이 되면 그렇게 치부하기 힘들다.
“후욱.”
‘그냥… 소름이 돋는데.’
사실 우선순위가 바뀐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인지도 올리는 게 이걸 보고 들어줄 관객을 모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감사합니다!”
치솟은 아드레날린이 멍청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거칠게 이마를 닦아냈다.
“우리 또 봐요!!”
“See ya!”
그렇게 오랜만에 하는 투어는 이 놈저놈 할 것 없이 그룹 분위기 자체를 달궈놓았다.
백스테이지로 내려오자마자 이렇게 외치는 놈이 있을 정도로.
“오늘 공연은 실수 없이 대단히 완성도가 높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으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양일의 싱가포르 공연은 완벽주의자 두 놈의 자체 평가에서 대호평을 받았다.
때맞춰 들어온 카메라를 확인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힐링 코스를 부끄럽지 않게 즐길 수 있겠네요.”
“그러게!”
히히덕거리며 숨을 고르는 놈들 사이로 예능 제작진의 카메라가 신이 난 것처럼 움직인다.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꿈의 일정 아니에요? 팬분들 만나고 신나게 공연하다가 힐링이 딱! 그리고 다시 공연~”
정말 예능 예고편에 나올 것 같은 소개 멘트다. 본인도 알고 친 거겠지만.
“지금 형한테만 살짝 말해줘, 우리 유진이랑 문대문대 어디 골랐어?”
“비밀이에요. 저는 멤버들 소리 지르는 얼굴 보고 싶어요!”
“오~ 럭셔리한가 본데?”
“어, 예산 많이 썼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큰세진이 웃으며 나와 차유진의 등을 친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예산 사용처는 아닐 거란 진실은 훌륭한 리액션 질을 위해 묻어두도록 해야겠다.
“다들 고생 많았어!”
그리고 그날 자정. 오랜만에 모여서 야식을 먹은 놈들이 수마에 지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드디어 PD가 들이닥쳤다.
띵동.
“세상에 여러분 저희 기다리려고 모여 계셨어요?”
“아, 저희가 원래 투어하면 주에 한 번씩 단합하려고 방을 같이 쓰거든요.”
“Party tonight~”
“아니, 그런 것도 지금 러뷰어들한테 첫 공개 하는 거죠? 이러니까~~ 팬분들께서 서운해하시지!”
맞는 말인데 얄밉게 들리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시정하겠습니다.”
“일단 말을 할 거면 인증샷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이쪽도 마치 사과 영상이라도 찍는 것처럼 일부러 더 공손히 나오자 카메라 감독까지 웃음을 참았다.
‘예능답군.’
그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은 계속되었다.
“자, 첫 투어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스스로에게 박수 한번 보낼까요?”
“와아아!”
웃으며 손바닥을 치는 놈들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저건 진심이군.
“문대 씨 이렇게 진심으로 활짝 웃는 거 이번 촬영 시작하고 처음이에요.”
“저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잘 웃습니다.”
“에이~ 지난번에는 진심으로 못 웃으시… 죄송합니다. 문대 씨, 농담이에요. 내가 미안해.”
그만해라.
PD는 작가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드디어 본론에 들어갔다.
“자, 그럼 우리 가 첫 순서였죠?”
“예엡~”
웃는 큰세진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배세진이 미리 제출한 계획서 파일을 PD가 카메라 앞에 보여줬다.
“여기에! 여러분이 선택한 힐링 코스가 담겨 있습니다.”
“오오!”
투어로 다양한 국가들을 가기 때문에 원활한 여행지 선정을 위해서 순서는 고정해 놨다.
‘저놈들이 인도네시아였지.’
힐링이라면 요트, 스노우쿨링, 해변. 뭐 그런 키워드가 떠오르는데. 나는 두 손을 내려놓고 얌전히 기다렸다.
PD가 활기차게 외쳤다.
“자, 드럼롤 해주세요~ 힐링 코스, 그 타이틀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PD가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파일을 개봉한다.
그러나 내용물을 읽는 순간 PD의 면상에서 마법처럼 활기가 사라진다.
“PD님?”
고개를 파일에 박은 PD의 면상 위로 물음표가 뜨는 것 같더니, 어리벙벙한 목소리가 들린다.
“…?”
“…….”
“…….”
잠깐.
“아, 등반 좋죠.”
그건 류청우 너만의 생각이고.
고개를 돌리자 배세진은 시뻘게진 얼굴로 진지하게 입을 연다.
“…테스타가 가는 다음 투어 목적지가 인도네시아인데, 유명한 화산들이 많던데요.”
“다들 럭셔리한 거 많이 할 것 같아서~ 저희는 돈 절약하고 체력 쌓는 걸로 했어요!”
“투어는 체력이 가장 중요하니까.”
“…….”
나는 깨달았다.
이 새끼들 안 싸우려다 급커브 틀었구나.
둘이 취미가 안 맞으니, 유일하게 가치관이 맞는 쪽으로 괴상한 쾌속 전진을 한 것 같다.
바로 일.
“그렇군요, 정말 뜻깊은 발상이십니다!”
하필 김래빈이 먼저 저 대사를 처버린 이상 여기서 투덜거리는 놈은 프로 마인드 없는 꿀빨러행이다.
‘힐링 다 죽었냐.’
결국 어쨌든 프로 아이돌다운 선택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놈들을 보자 이거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면 우리 팀의 선택이… 잠깐.
그러나 나는 곧 다음 팀의 면면을 보고 고쳤다.
‘류청우 선아현 조합인데 뭘.’
괜찮은 코스를… 잠깐, 류청우가 또 등산 들고나왔을까 봐 좀 의심스럽긴 한데.
그래서 대놓고 PD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 겹치는 거 있나요.”
“…아니, 문대 씨 정말 저도 처음 확인하는 거예요. 몰래 안 봤어요!”
방송 말아먹을 일 있냐. 거짓말하지 말고.
“…아 물론 우리 이 작가님이 미리 확인해서 겹치는 게 없는지 정도는 체크했죠!”
저기서 얼굴을 가린 작가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얼굴을 가려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겠지.
나는 경로를 수정하기로 했다.
‘…굴곡 있는 느낌도 나쁘진 않지.’
안 그래도 시청률 걱정했는데 차라리 잘됐다.
즉석에서 숙소 예약 어플 PPL까지 받아먹은 우리는 푹 취침한 뒤, 다음 날 바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그리고 진짜로 바투르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날씨 좋다!”
“……와.”
잘됐다는 말은 정정하겠다. 스탯 먹인 박문대 몸뚱어리는 4년간 아이돌을 해 먹고도 류건우보다 체력이 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걸 체력 단련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만…….
나는 옆을 보았다.
“풍경이, 참 예쁘다. 그렇지…?”
“Cooool~”
“…….”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는 전직 운동선수 놈들 뒤.
배세진은 나만의 고행길을 걷는 표정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놈은 저럴 거면서 왜 본인이 등산을 골랐단 말인가. 그리고 왜 저놈의 선택을 연대책임을 지게 되었단 말인가.
‘이게… 힐링?’
어쨌든 이 악물고 올라가서 본 풍경이 기가 막히긴 했다.
그래서 대충 그걸로 힐링 컷을 떼우면 되겠구나 싶은 순간.
“내일은 야간 산행이에요, 여러분. 신나죠?”
“와.”
“화산에서 파랗게 빛나는 야광을 볼 수 있는데, 그게 꼭 지옥불 같다고.”
“…….”
“귀중한 컷을 얻네요. 감사합니다, 세진 씨들~ 어? 저기 바로 앞에 온천도 있는데 예약을… 안 하셨네요? 아이고~ 예산을 생각하셔서!”
큰세진마저 얼굴 근육을 움직일 뻔했다.
어차피 의견도 계속 갈리겠다, 위튜브 컨텐츠라 30분으로 압축될 것을 예상해 볼거리와 굵직한 메인 목표점을 전부 잡으려고 한 거겠지.
그 판단력은 비상했지만, 인간적으로 PD놈의 미친 깝죽거림을 참기는 어려웠나 보다.
‘저 새끼 너스레도 못 떨었어.’
작가들이 즐거운 얼굴로 예능형 인간의 침몰을 지켜보는 게 보인다. 편집이 어떻게 들어갈지 벌써 눈에 선했다.
“세진 씨?”
“…아~ 좋죠!”
늦었다.
“좋죠? 여러분의 선택인데!”
“행복합니다!”
“좋습니다!”
여기가 군대냐?
우리는 다음 날 야간 산행과 마지막 날 암벽 등반까지 끝내고 하루 내내 호텔에 처박혀서 잤다.
원래 몸 쓰는 직업이라 근육통이 없다는 게 다행일 뿐이다. 그것도 계산한 거겠지만.
그래도 다시 리허설 후 공연을 하고 모인 놈들의 얼굴에는….
‘제발 힐링!’
그렇게 써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등산 마니아가 아닌 이상 3일 등산은 힐링은 아니다.
“자자, 여러분. 기운 내세요. 힐링 코스 가셔야죠!”
“네넵!”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PD놈이 받아드는 파일을 쳐다보았다.
‘다음 목적지는… 영국이지.’
대관 일정으로 비행기 동선이 꼬이긴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설마 영국 가서 산 타지는 않을 것 아닌가.
‘빅벤을 기어오르자는 미친 소리는 안 하겠지.’
“자~ , 우리 청우 씨와 아현 씨의 조죠?”
“네…!”
“바로 열어보겠습니다~ 바로바로!”
“…….”
“…….”
진심… 아니, 진짜로?
“영국에, 유명한 공포 체험 파크가 몇 곳 있어서 골랐어요.”
“여름이니까 피서라면 이거라고 생각해서 정했는데… 다들 쉴 줄 알고, 재밌는 걸 해보자고 생각했거든.”
류청우가 그런데 설마 첫 코스로 등산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몸은 편할 거야 얘들아, 걱정하지 마.”
몸만 편한 거잖아.
“으응, 그리고 이거…!”
나는 얼결에 선아현이 파일에서 꺼내 내미는 티켓 여러 장을 받았다.
직접 만들었는지 크레파스로 그은 흔적이 있다.
‘뭐야.’
나는 티켓을 뒤집었다.
[체험 면제권]
꽃무늬까지 그려놨다.
“…….”
“많이 무서운 사람은, 안 해도 괜찮아.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맞아, 자율적인 참가로 할 거야.”
근데 왜 나만 줘.
“저, 그러니까, 문대는 하다가 싫으면….”
“할 거야.”
“으응?”
“할 거라고.”
이걸… 이걸 이 상황에 쓰는 새끼가 있겠냐.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티켓을 반납했다.
‘예습해 간다.’
박수 치는 차유진과 폭소하는 큰세진 두 놈을 나란히 귀신 알바생 앞에서 밀어버릴 계획을 세우면서.
그리고… 공연 외에는 좋은 게 없는 영국 체류 일정을 보냈다고 설명하겠다.
이 시점에서 플랜은 포기했다.
“Hey 문대 형! [우리만 진실로 ‘힐링’ 코스를 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공연이 끝난 백스테이지에서 차유진이 이렇게 말했을 때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안타깝지.”
“맞아요!”
그건 너한테만 힐링이라는 것을 굳이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30분 내로 밝혀질 테니까.
“일단 여러분의 영국 공연 너~무 잘 봤습니다. 저희 스탭들이 눈이 다 하트가 돼 가지고 왔던데요?”
“히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공연까지 본 제작진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또 합류했다.
주에 한 번씩 해외 출장 같은 게 비용처리가 된다니, 조회수를 야심 차게 뽑아먹을 생각인지 궁금하다.
어쨌든 PD는 드디어 대망의 팀을 부른다.
“자. 이번 순서는… 오, 유진 씨와 문대 씨의 팀.”
“Yeah~”
나는 한 손을 들어달라는 차유진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웃기기라도 하면 좋겠다.
“팀명이 굉장히 전위적이에요. 무려… .”
효과음을 넣으라는 듯이 PD가 편집점을 잡고 제스처 후 말을 이었다.
나는 PD의 제스처를 따라 했다. 배세진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 그리고 이 작가님 말로는 앞선 팀들보다 훨씬 예산을 많이 쓰셨대요!”
“오오!”
“럭셔리!”
환호가 울렸다.
“자, 그럼 ‘멕시코’에서 펼쳐질 환상적인 힐링 코스는….”
PD가 파일을 뒤집었다.
그러자 거대한 타이틀이 드러난다.
–
“…철장 속에 들어가서, 해저로 내려간 뒤에… 백상아리를 만나는 겁니다.”
“…….”
잠시 지옥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 스릴러 영화에 나온 그거?”
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결국 인정했다.
“예.”
“야!”
배세진이 고함을 지른다.
“박문대 너도 똑같네!”
“너너 백상아리 코앞에서 보자면서 뭘 등산 가지고 그렇게 구박을!”
비명을 지르는 동명이인에게 차유진이 대꾸한다. 이놈은 진심이다.
“우리 체력 안 써요. 우리 즐겁게 노는 거 골랐어요! 다들 이상한 거 골랐어요!”
“철장에 갇혀서 상어 만나는 게 무슨 즐거운 놀이야 상어한테 즐겁겠지…!”
“들어보세요.”
나는 입을 열었다.
“원래 힐링이라는 게 회복, 감동, 웃음의 조합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팀은 거기서 웃음을 맡은 거예요.”
“…….”
배세진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개소리인 거 알지…?”
응.
류청우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아무도… 푹 쉬는 힐링 코스를 고르지 않았구나.”
“…….”
“…….”
힐링 없는 힐링 여행의 종말이었다.
“아니, 망했다니! 이렇게 예능적으로 훌륭한 선택을 하셨는데!”
PD놈 입을 때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마지막도 있잖아요~ 래빈 씨!”
이 그룹에서 가장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놈의 이름이 불린다.
“예!”
“이렇게 된 거, 래빈 씨 코스도 미리 한번 보죠!”
신났다.
나는 무슨 엔딩이 날지 이미 짐작한 심정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으나….
–
계획.
승마를 통해 호수 옆 아름다운 고원으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아로마 캠프파이어와 준비된 셰프 요리 일체를 즐긴다.
그 후 풀 바람 부는 따스한 야외에서 은하수를 보며 전문가의 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온천욕 후 취침.
“…….”
“죄송합니다. 다들 각 나라의 특색과 팀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아이돌적 본분에 기여하는 코스를 고르셨는데, 저 혼자 과하게 지난 휴가를 재현해 보려는 시도를….”
“사랑한다 래빈아.”
“김래빈 최고야.”
“…??”
그렇게 테스타는 약속된 마지막 힐링 코스를 다짐하며 상어를 보러 가게 됐다는 것이다….
참고로 1화 공개가 바로 다음 날이었다.
힐링 없는 힐링 여행.
…이 미쳐 돌아간 예능이 무슨 피드백을 받을지 처음으로 팬 반응이 두렵기 시작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18화
예능이 어떻게 돌아가든, 그보다 먼저 신경 써야 할 게 있긴 했다.
바로 공연.
“Thank you!”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옆 마이크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데뷔곡 ‘Hi-five’의 안무가 끝났다.
마지막 앵콜 곡이었다.
와아아아아아- 와아아아악!
열기와 환호, 그리고 불빛.
진동에 몸이 울린다.
‘…오랜만이다.’
관자놀이로 땀이 흘렀다.
나는 눈을 느리게 감았다 뜨며 거대한 광장을 가득 채운 빛무리를 보았다.
사실 투어라는 건 언론에 노출되는 일은 아니다 보니 인지도나 명성을 키우는 것에는 썩 도움이 안 되는 일이다.
이미 벌어놓은 인지도를 관객으로 수확하는 셈이니 소속사들이 캐시카우 삼는 거지.
그러나 막상 공연하는 입장이 되면 그렇게 치부하기 힘들다.
“후욱.”
‘그냥… 소름이 돋는데.’
사실 우선순위가 바뀐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
인지도 올리는 게 이걸 보고 들어줄 관객을 모으려고 하는 거 아닌가.
“감사합니다!”
치솟은 아드레날린이 멍청한 생각을 하게 만든다. 나는 거칠게 이마를 닦아냈다.
“우리 또 봐요!!”
“See ya!”
그렇게 오랜만에 하는 투어는 이 놈저놈 할 것 없이 그룹 분위기 자체를 달궈놓았다.
백스테이지로 내려오자마자 이렇게 외치는 놈이 있을 정도로.
“오늘 공연은 실수 없이 대단히 완성도가 높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으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양일의 싱가포르 공연은 완벽주의자 두 놈의 자체 평가에서 대호평을 받았다.
때맞춰 들어온 카메라를 확인하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내일부터 힐링 코스를 부끄럽지 않게 즐길 수 있겠네요.”
“그러게!”
히히덕거리며 숨을 고르는 놈들 사이로 예능 제작진의 카메라가 신이 난 것처럼 움직인다.
“아~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꿈의 일정 아니에요? 팬분들 만나고 신나게 공연하다가 힐링이 딱! 그리고 다시 공연~”
정말 예능 예고편에 나올 것 같은 소개 멘트다. 본인도 알고 친 거겠지만.
“지금 형한테만 살짝 말해줘, 우리 유진이랑 문대문대 어디 골랐어?”
“비밀이에요. 저는 멤버들 소리 지르는 얼굴 보고 싶어요!”
“오~ 럭셔리한가 본데?”
“어, 예산 많이 썼다.”
“역시 그럴 줄 알았지!”
큰세진이 웃으며 나와 차유진의 등을 친다.
그러나 네가 생각하는 예산 사용처는 아닐 거란 진실은 훌륭한 리액션 질을 위해 묻어두도록 해야겠다.
“다들 고생 많았어!”
그리고 그날 자정. 오랜만에 모여서 야식을 먹은 놈들이 수마에 지지 않고 눈을 부릅뜨고 있을 때, 드디어 PD가 들이닥쳤다.
띵동.
“세상에 여러분 저희 기다리려고 모여 계셨어요?”
“아, 저희가 원래 투어하면 주에 한 번씩 단합하려고 방을 같이 쓰거든요.”
“Party tonight~”
“아니, 그런 것도 지금 러뷰어들한테 첫 공개 하는 거죠? 이러니까~~ 팬분들께서 서운해하시지!”
맞는 말인데 얄밉게 들리게 하는 것도 능력이다.
“시정하겠습니다.”
“일단 말을 할 거면 인증샷부터 준비하겠습니다.”
이쪽도 마치 사과 영상이라도 찍는 것처럼 일부러 더 공손히 나오자 카메라 감독까지 웃음을 참았다.
‘예능답군.’
그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은 계속되었다.
“자, 첫 투어 국가에서 성공적으로 공연을 마친 스스로에게 박수 한번 보낼까요?”
“와아아!”
웃으며 손바닥을 치는 놈들의 얼굴에 미소가 만연했다. 저건 진심이군.
“문대 씨 이렇게 진심으로 활짝 웃는 거 이번 촬영 시작하고 처음이에요.”
“저는 언제나 진심을 다해 잘 웃습니다.”
“에이~ 지난번에는 진심으로 못 웃으시… 죄송합니다. 문대 씨, 농담이에요. 내가 미안해.”
그만해라.
PD는 작가들의 웃음소리를 배경으로 드디어 본론에 들어갔다.
“자, 그럼 우리 가 첫 순서였죠?”
“예엡~”
웃는 큰세진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배세진이 미리 제출한 계획서 파일을 PD가 카메라 앞에 보여줬다.
“여기에! 여러분이 선택한 힐링 코스가 담겨 있습니다.”
“오오!”
투어로 다양한 국가들을 가기 때문에 원활한 여행지 선정을 위해서 순서는 고정해 놨다.
‘저놈들이 인도네시아였지.’
힐링이라면 요트, 스노우쿨링, 해변. 뭐 그런 키워드가 떠오르는데. 나는 두 손을 내려놓고 얌전히 기다렸다.
PD가 활기차게 외쳤다.
“자, 드럼롤 해주세요~ 힐링 코스, 그 타이틀은 바로~”
“두구두구두구!”
PD가 과장스러운 동작으로 파일을 개봉한다.
그러나 내용물을 읽는 순간 PD의 면상에서 마법처럼 활기가 사라진다.
“PD님?”
고개를 파일에 박은 PD의 면상 위로 물음표가 뜨는 것 같더니, 어리벙벙한 목소리가 들린다.
“…?”
“…….”
“…….”
잠깐.
“아, 등반 좋죠.”
그건 류청우 너만의 생각이고.
고개를 돌리자 배세진은 시뻘게진 얼굴로 진지하게 입을 연다.
“…테스타가 가는 다음 투어 목적지가 인도네시아인데, 유명한 화산들이 많던데요.”
“다들 럭셔리한 거 많이 할 것 같아서~ 저희는 돈 절약하고 체력 쌓는 걸로 했어요!”
“투어는 체력이 가장 중요하니까.”
“…….”
나는 깨달았다.
이 새끼들 안 싸우려다 급커브 틀었구나.
둘이 취미가 안 맞으니, 유일하게 가치관이 맞는 쪽으로 괴상한 쾌속 전진을 한 것 같다.
바로 일.
“그렇군요, 정말 뜻깊은 발상이십니다!”
하필 김래빈이 먼저 저 대사를 처버린 이상 여기서 투덜거리는 놈은 프로 마인드 없는 꿀빨러행이다.
‘힐링 다 죽었냐.’
결국 어쨌든 프로 아이돌다운 선택이라며 고개를 끄덕이는 놈들을 보자 이거 뭔가 잘못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러면 우리 팀의 선택이… 잠깐.
그러나 나는 곧 다음 팀의 면면을 보고 고쳤다.
‘류청우 선아현 조합인데 뭘.’
괜찮은 코스를… 잠깐, 류청우가 또 등산 들고나왔을까 봐 좀 의심스럽긴 한데.
그래서 대놓고 PD에게 물었다.
“혹시 저희 겹치는 거 있나요.”
“…아니, 문대 씨 정말 저도 처음 확인하는 거예요. 몰래 안 봤어요!”
방송 말아먹을 일 있냐. 거짓말하지 말고.
“…아 물론 우리 이 작가님이 미리 확인해서 겹치는 게 없는지 정도는 체크했죠!”
저기서 얼굴을 가린 작가가 손가락으로 오케이 사인을 보낸다.
얼굴을 가려서 표정은 보이지 않지만… 어쨌든 거짓말은 아니겠지.
나는 경로를 수정하기로 했다.
‘…굴곡 있는 느낌도 나쁘진 않지.’
안 그래도 시청률 걱정했는데 차라리 잘됐다.
즉석에서 숙소 예약 어플 PPL까지 받아먹은 우리는 푹 취침한 뒤, 다음 날 바로 인도네시아로 떠났다.
그리고 진짜로 바투르산에서 등산을 시작했다.
“날씨 좋다!”
“……와.”
잘됐다는 말은 정정하겠다. 스탯 먹인 박문대 몸뚱어리는 4년간 아이돌을 해 먹고도 류건우보다 체력이 떨어진다.
그런 의미에서 이걸 체력 단련이라고 생각한다면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만…….
나는 옆을 보았다.
“풍경이, 참 예쁘다. 그렇지…?”
“Cooool~”
“…….”
기분 좋게 발걸음을 옮기는 전직 운동선수 놈들 뒤.
배세진은 나만의 고행길을 걷는 표정으로 묵묵히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놈은 저럴 거면서 왜 본인이 등산을 골랐단 말인가. 그리고 왜 저놈의 선택을 연대책임을 지게 되었단 말인가.
‘이게… 힐링?’
어쨌든 이 악물고 올라가서 본 풍경이 기가 막히긴 했다.
그래서 대충 그걸로 힐링 컷을 떼우면 되겠구나 싶은 순간.
“내일은 야간 산행이에요, 여러분. 신나죠?”
“와.”
“화산에서 파랗게 빛나는 야광을 볼 수 있는데, 그게 꼭 지옥불 같다고.”
“…….”
“귀중한 컷을 얻네요. 감사합니다, 세진 씨들~ 어? 저기 바로 앞에 온천도 있는데 예약을… 안 하셨네요? 아이고~ 예산을 생각하셔서!”
큰세진마저 얼굴 근육을 움직일 뻔했다.
어차피 의견도 계속 갈리겠다, 위튜브 컨텐츠라 30분으로 압축될 것을 예상해 볼거리와 굵직한 메인 목표점을 전부 잡으려고 한 거겠지.
그 판단력은 비상했지만, 인간적으로 PD놈의 미친 깝죽거림을 참기는 어려웠나 보다.
‘저 새끼 너스레도 못 떨었어.’
작가들이 즐거운 얼굴로 예능형 인간의 침몰을 지켜보는 게 보인다. 편집이 어떻게 들어갈지 벌써 눈에 선했다.
“세진 씨?”
“…아~ 좋죠!”
늦었다.
“좋죠? 여러분의 선택인데!”
“행복합니다!”
“좋습니다!”
여기가 군대냐?
우리는 다음 날 야간 산행과 마지막 날 암벽 등반까지 끝내고 하루 내내 호텔에 처박혀서 잤다.
원래 몸 쓰는 직업이라 근육통이 없다는 게 다행일 뿐이다. 그것도 계산한 거겠지만.
그래도 다시 리허설 후 공연을 하고 모인 놈들의 얼굴에는….
‘제발 힐링!’
그렇게 써 있는 것 같았다.
그래. 등산 마니아가 아닌 이상 3일 등산은 힐링은 아니다.
“자자, 여러분. 기운 내세요. 힐링 코스 가셔야죠!”
“네넵!”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PD놈이 받아드는 파일을 쳐다보았다.
‘다음 목적지는… 영국이지.’
대관 일정으로 비행기 동선이 꼬이긴 했지만 오히려 좋았다. 설마 영국 가서 산 타지는 않을 것 아닌가.
‘빅벤을 기어오르자는 미친 소리는 안 하겠지.’
“자~ , 우리 청우 씨와 아현 씨의 조죠?”
“네…!”
“바로 열어보겠습니다~ 바로바로!”
“…….”
“…….”
진심… 아니, 진짜로?
“영국에, 유명한 공포 체험 파크가 몇 곳 있어서 골랐어요.”
“여름이니까 피서라면 이거라고 생각해서 정했는데… 다들 쉴 줄 알고, 재밌는 걸 해보자고 생각했거든.”
류청우가 그런데 설마 첫 코스로 등산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며 쑥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몸은 편할 거야 얘들아, 걱정하지 마.”
몸만 편한 거잖아.
“으응, 그리고 이거…!”
나는 얼결에 선아현이 파일에서 꺼내 내미는 티켓 여러 장을 받았다.
직접 만들었는지 크레파스로 그은 흔적이 있다.
‘뭐야.’
나는 티켓을 뒤집었다.
꽃무늬까지 그려놨다.
“…….”
“많이 무서운 사람은, 안 해도 괜찮아. 억지로 할 필요, 없어…!”
“맞아, 자율적인 참가로 할 거야.”
근데 왜 나만 줘.
“저, 그러니까, 문대는 하다가 싫으면….”
“할 거야.”
“으응?”
“할 거라고.”
이걸… 이걸 이 상황에 쓰는 새끼가 있겠냐.
나는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티켓을 반납했다.
‘예습해 간다.’
박수 치는 차유진과 폭소하는 큰세진 두 놈을 나란히 귀신 알바생 앞에서 밀어버릴 계획을 세우면서.
그리고… 공연 외에는 좋은 게 없는 영국 체류 일정을 보냈다고 설명하겠다.
이 시점에서 플랜은 포기했다.
“Hey 문대 형! [우리만 진실로 ‘힐링’ 코스를 짠 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요?]”
공연이 끝난 백스테이지에서 차유진이 이렇게 말했을 때도 나는 동요하지 않았다.
“…안타깝지.”
“맞아요!”
그건 너한테만 힐링이라는 것을 굳이 말해주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30분 내로 밝혀질 테니까.
“일단 여러분의 영국 공연 너~무 잘 봤습니다. 저희 스탭들이 눈이 다 하트가 돼 가지고 왔던데요?”
“히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이번엔 공연까지 본 제작진들이 싱글벙글 웃으면서 또 합류했다.
주에 한 번씩 해외 출장 같은 게 비용처리가 된다니, 조회수를 야심 차게 뽑아먹을 생각인지 궁금하다.
어쨌든 PD는 드디어 대망의 팀을 부른다.
“자. 이번 순서는… 오, 유진 씨와 문대 씨의 팀.”
“Yeah~”
나는 한 손을 들어달라는 차유진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았다. 웃기기라도 하면 좋겠다.
“팀명이 굉장히 전위적이에요. 무려… .”
효과음을 넣으라는 듯이 PD가 편집점을 잡고 제스처 후 말을 이었다.
나는 PD의 제스처를 따라 했다. 배세진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오~ 그리고 이 작가님 말로는 앞선 팀들보다 훨씬 예산을 많이 쓰셨대요!”
“오오!”
“럭셔리!”
환호가 울렸다.
“자, 그럼 ‘멕시코’에서 펼쳐질 환상적인 힐링 코스는….”
PD가 파일을 뒤집었다.
그러자 거대한 타이틀이 드러난다.
–
“…철장 속에 들어가서, 해저로 내려간 뒤에… 백상아리를 만나는 겁니다.”
“…….”
잠시 지옥 같은 침묵이 흘렀다.
“그, 스릴러 영화에 나온 그거?”
나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결국 인정했다.
“예.”
“야!”
배세진이 고함을 지른다.
“박문대 너도 똑같네!”
“너너 백상아리 코앞에서 보자면서 뭘 등산 가지고 그렇게 구박을!”
비명을 지르는 동명이인에게 차유진이 대꾸한다. 이놈은 진심이다.
“우리 체력 안 써요. 우리 즐겁게 노는 거 골랐어요! 다들 이상한 거 골랐어요!”
“철장에 갇혀서 상어 만나는 게 무슨 즐거운 놀이야 상어한테 즐겁겠지…!”
“들어보세요.”
나는 입을 열었다.
“원래 힐링이라는 게 회복, 감동, 웃음의 조합이잖아요.”
“…그런데?”
“우리 팀은 거기서 웃음을 맡은 거예요.”
“…….”
배세진이 무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개소리인 거 알지…?”
응.
류청우가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결국 아무도… 푹 쉬는 힐링 코스를 고르지 않았구나.”
“…….”
“…….”
힐링 없는 힐링 여행의 종말이었다.
“아니, 망했다니! 이렇게 예능적으로 훌륭한 선택을 하셨는데!”
PD놈 입을 때리고 싶다.
“그리고 우리 마지막도 있잖아요~ 래빈 씨!”
이 그룹에서 가장 워커홀릭 기질이 있는 놈의 이름이 불린다.
“예!”
“이렇게 된 거, 래빈 씨 코스도 미리 한번 보죠!”
신났다.
나는 무슨 엔딩이 날지 이미 짐작한 심정으로, 관자놀이를 문질렀으나….
–
계획.
승마를 통해 호수 옆 아름다운 고원으로 이동한 뒤, 그곳에서 아로마 캠프파이어와 준비된 셰프 요리 일체를 즐긴다.
그 후 풀 바람 부는 따스한 야외에서 은하수를 보며 전문가의 마사지를 받는 것이다.
그리고 온천욕 후 취침.
“…….”
“죄송합니다. 다들 각 나라의 특색과 팀의 개성을 살리면서도 아이돌적 본분에 기여하는 코스를 고르셨는데, 저 혼자 과하게 지난 휴가를 재현해 보려는 시도를….”
“사랑한다 래빈아.”
“김래빈 최고야.”
“…??”
그렇게 테스타는 약속된 마지막 힐링 코스를 다짐하며 상어를 보러 가게 됐다는 것이다….
참고로 1화 공개가 바로 다음 날이었다.
힐링 없는 힐링 여행.
…이 미쳐 돌아간 예능이 무슨 피드백을 받을지 처음으로 팬 반응이 두렵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