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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413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13화
동료 각성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 있었다.
바로 통증이다.
머리를 잡고 비틀거리거나, 어지럼증, 관자놀이의 격통을 느끼며 쏟아져 나오는 기억을 되찾는 것이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다만 스무 번이 넘게 중첩되었다는 게 문제지만.
‘빌어먹을.’
나는 마지막으로 본, 거의 바닥난 명성치 항목을 떠올리며 불타오르는 것 같은 머리 통증을 느꼈다.
몸이 녹았는데도 통증이 생기는 걸 보면 역시 그 골조만 남은 괴상한 세상은 다 쇼였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기억은 둑이 무너진 듯이 일시에… 쏟아졌다.
-……!
부모님, 사고, 화재, 진학, 카메라, 강아지, 원룸, 학점, 난방, 친척, 수학여행, 데뷔, 데이터, 문제집…….
겹겹이 겹치며 과거가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두들겨댄다.
‘X발.’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
역시.
나는 회사원인 아버지와 학원강사인 어머니를 확인하며 쓰게 웃었다.
…선명해서 좋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머리를 부수듯 들어오는 건 골드 2에 대한 기억이다.
권희승.
-아… 정말 내 인생!
열심히 살던 긍정적인 놈이었지.
물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각성의 충격은 중첩되고, 중첩되어… 더욱 이전으로 간다.
‘욱.’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지만, 정신은 말 그대로 각성 상태이기라도 한 듯이 또렷했다.
그리고 박문대가 수면제를 먹고 쓰러졌던 낡은 모텔에서 깨어나는 그림을 어지럽게 몇 번이고 되새겼을 즈음.
찰칵.
드디어 넘친 기억의 흐름은 필름이 끊긴 그 이전까지 되감긴다.
내가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기 직전에 잊어버린 삶.
독서실에서 돌아오다가 웬 모텔 앞에 앉아있는 박문대를 만났을 때.
-감사합니다…. 형.
그래도 거기까진 큰 변화가 없었다. 마지막 ‘진실 확인’에서 봤던 장면이 내 기억이 되는 되새김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나에게서 통째로 증발한 몇 년.
공무원 시험 이후의 시기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험 준비를 손절하고 취직한 나는 적당한 중견 기업에서 별 비전 없이 갈렸다.
일은 괜찮게 했던 것 같지만 그것뿐이다. 그만큼 할 게 더럽게 많았고, 비효율적으로 내려오는 일을 밤까지 처리하는 매일.
뭘 해소할 방법도 여유도 금전 상황도 허락하지 않는 삶.?
그러다가 두통 분산용으로 빠르고 간단한 버릇이 하나 생긴 것이다.
짧은 시간으로 틈틈이 보고 지나갈 수 있고, 부가 비용이 들지 않으며, 전에 돈벌이 삼아 하던 일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잘 아는 분야.
‘아이돌.’
자기 전, 그냥 동영상 사이트에 잡히는 대로 적당히 보고 지나갔다. 기력을 한 줌도 쓰지 않아도 돼서 유용했다.
그 컨텐츠 자체에 감흥을 느낀 건 아니다. 더이상 데이터 팔이도 아니니 분석할 일도 없다.
그냥 다른 걸 한다는 느낌을 받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그룹도 보게 된 것이다.
에서 원래 데뷔했던 그룹.
테스타가 아닌 스티어를.
[스티어(STier) – ‘발사(Launch)’ Official MV]
지리멸렬한 탈퇴 멤버의 마약 재판과 불화설, 쪼개진 개인 팬덤 때문에 내가 취직했을 때쯤에야 겨우 공백기를 깨고 한 번씩 컴백했다.
그래도 반전은 없었다.
이 그룹은 이미 성장이 멈췄고, 고였다.
[스티어(STier) 차유진·김래빈·류청우, 유닛 활동 돌입]
결국 절반 이상의 멤버가 활동을 중단했다.
그래서 남은 셋이 유닛 활동을 하는 중이었지만,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앨범은 제법 잘 팔았고 곡은 좋았지만 그뿐이다.
이미 끊이질 않는 논란으로 이미지는 탈 대로 타고, 대중 호감도는 갉아 먹을 만큼 갉아먹었다.
그 이상의 화제성과 성장은 없다.?
로 키운 체급을 잡고 천천히 침몰하는 거대한 유람선일 뿐이다.
-곡 괜찮다
-여전히 잘하네 화이팅
온건한 댓글 몇 개로 끝나는 반응. 데뷔 당시에 비교하면 이미 거품은 꺼졌다.
하지만.
나는 목적성 없이 넘기던 넓은 시청 범위를 무의식중에 이놈들 중심으로 줄였다.
대신… 좀 더 깊게.
개개인에 관심이 생겼거나 특별히 팬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 그룹에 대해 무심코 찾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내 상황과 비슷해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총체적 상황의 문제.
이제는 뭘 해도 딱히 반등은 불가능한, 뾰족한 해답이나 수가 없는 상황 말이다.
그저 현상 유지를 위해 달리는 삶.
‘환경 자체가 별로야.’
투자가 줄어들고, 급조된 신규 기획사다운 기획력과 케어는 형편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와서 이 악물고 무대를 하는 게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그리고 문득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곧 내 코가 석 자라며 잊었지만.
그럼에도 한 아이돌 그룹을 그렇게 집중적으로, 꽤 오랜 기간 확인했던 건 처음이었다.
물론 계속되진 않았다.
얼마 후.
[스티어 활동 종료… “감사와 사랑을 전하고 싶습니다”]
당연하지만 스티어는 5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칼 같이 해체했다.
시작부터 과정을 지나 끝까지 썩 좋은 꼴을 보지 못해서인지 유독 열심히 하던 몇 놈들도 다른 소식은 없었다.
그게 결론이었다.
아무것도 안 남았다는 것.
“…….”
그러고 나자, 아이돌을 보던 내 짧은 취미도 끝났다.
‘…볼 게 없네.’
어차피 그때쯤엔 다른 아이돌을 봐도 비슷한 감흥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웃기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직접 찍으러 가보지도 않은, 팬도 아니었던 그룹 덕에 그 해소감마저 사라졌다는 게.
그리고 의문스러울 정도로 모든 것이 지치고 귀찮게 느껴지던 나에 의해 예정대로 그 삶은 끝났다.
짧은 유예는 그렇게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나는 누가 데뷔하는지도 헷갈리던 과거의 상태로 박문대의 몸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흔적은 남았을지도 모르지.’
나는 문득 떠올렸다.
내가 박문대의 몸으로 깨어나자마자 했던 생각을.
-한때는 쓸데없이 이 분야에 과몰입하기까지 했다.
‘…그랬나.’
구체적인 기억이 없었는데도 무심코 그렇게 느꼈던 건, 이때의 잔재였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 기억을 진실 확인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건 시스템이 임의로 생략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대단한 의도도 아니었겠지. 내 트라우마와는 별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숙주의 지속적 생존에 필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해서 자른 것이다.
아마 큰달도 이런 건 예측 못 했겠지.
‘그러니까.’
시스템은 트라우마가 아니라도 사람 정신에 영향을 주는 기억이 있다는 건 아직도 모르나 보군.
‘그런 걸 보통 추억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낯간지러운 문장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머리의 통증도 어느새 잠잠해졌다. 기억이 완전히 정착했다는 증거였다.
머리가 맑다.
원래는 시스템이 내 정신에 쳐놓은 개지랄을 싹 걷어내면 아예 장악력을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고.
‘당장 정신 못 차리고 서버화는 면했군.’
그거면 됐다. 플랜 B를 위한 준비는 끝났다.
‘큰달.’
신호를 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채팅이 시작되었다.
[‘Error’님의 골드 채팅방에 Apple님이 초대되었습니다.]
[Error : 문대야 괜찮아?]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오류, 선아현이 즉시 반응한다.
나는 채팅을 입력했다.
[Apple : 그래. 지금 할 거야.]
혹시 모를 유출 사태를 위해 해당 채팅방에서 했던 회의를 떠올리며.
-Apple : 다들 알겠지만 불필요한 리액션은 금지입니다.
그리고 선아현이 냈던 의견에서 이 발상이 시작되었다.
-Error : 저… 내가 오류라서 이 채팅방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는 거지?
-Error : 그럼 모든 사람을 여기 초대하면, 모두에게 원래대로 기억과 행동을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채팅방에 전 세계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에러를 전파해버리면 다 같이 시스템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않겠냐는 것이다.
기억도 찾고, ‘게임 일시 정지’ 상태에서 움직일 수도 있고. 결국 세상이 유지되지 못 하겠지.
참 의도는 좋았으나 문제는 현실이다.
다들 알았다.
-RAB : 정말 이타적이며 멋진 발상이십니다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상 모든 사람과 접촉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Sejini : 일단 초대에도 골드가 드니까 어려울 것 같지ㅠㅠ
그렇게 선아현의 의견이 무산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Tiger : 한 사람 말고 온 세상에 전염 안 돼요? 바이러스처럼!
-…!
이놈의 아무 말 같은 이 표현이 정곡을 찌른 것이다.?
‘온 세상.’
여기선 시스템 그 자체 아닌가.
그래서 그걸 기초로 플랜 B를 세웠다.
‘원래는 잠깐 시스템에서 벗어난 내가 이걸 직접 GM한테 넘겨서 게임에 쑤셔 넣을 생각이었는데.’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마침 이곳의 온 세상 자체인 놈이 마침 저기 있지 않나.
청려의 모습을 한 인간형 시스템.
[캐릭터 : 류건우 (박문대) 이탈!]
GM이 멈춘 시간 선에서 선아현이 그랬듯이, 나도 채팅방에 연결된 효과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
그리고 대치 중인 두 인영, 두 청려의 외관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색이 없는 쪽으로.’
마지막은 행동.
에러로 가득한 채팅창에 시스템의 인간형을 초대하는 것이다.
아예 저놈 자체가 에러에 감염될 수 있도록.
‘지정 가능해?’
곧 지직거리며 채팅방의 큰달이 응답한다.
[큰달 : 네!]
좋아.
곧, 채팅창에 글씨가 뜬다.
[‘Error’님의 골드 채팅방에 ■■■님이 초대되었습니다.]
…성공이다.
‘그래!’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대로면….
‘아.’
그 순간, 시스템이 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채팅방에 새 글이 떴다.
[■■■ : 이런 것을 준비했구나]
“…!”
치직.
채팅방에 금이 간다.?
창은 마치 거대한 압력을 버티듯 부들부들 떨리더니….
퍽!
그대로 박살 났다.
반투명한 홀로그램 가루가 비산하더니, 글리치와 함께 사라진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린다.
[이걸 위해 명성치를 또 썼구나.]
[서버가 되기 직전에, 고마워.]
…고맙다고.
저건 일부러 사람을 도발할 정도로 인간적이진 않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저 발언은… 설마.
나는 떨리는 입을 열었다.
“명성 경험치라는 게… 네가 모으는 에너지냐?”
시스템이 친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맞아.]
[명성치를 사용하는 것으로 나에게 에너지를 지불하고, 너는 게임에서 더 강해지는 거야.]
시스템의 목소리가 커진다.
[그리고 이 세상은 네가 쓴 에너지로 더 견고해지는 거야. 이런 외부에서의 공격은 통하지 않도록.]
채팅방은 사라졌다.
오류가 해결된 세상에서, 시스템은 미소 지은 채로 청려 대신 나를 응시한다.
[너는 플레이어가 아니라 캐릭터였지. 게임을 벗어날 자율성은 없어.]
“…….”
청려의 GM 상태창에서 ‘■■■’로 표기되던 플레이어의 정체.
[플레이어는 나야.]
[내가 제작자이자 플레이어고. 너는 내 게임의 구성이지.]
[캐릭터가 플레이어를 직접 해칠 수 있는 게임은 없어.]
시스템은 설명은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이제 시스템이 안정적이라는 것이 증명되었으니, 보조 도구는 필요가 없구나.]
[계획대로 하자.]
그때, 처음으로 놈의 눈에 처음으로 인간적인 기색이 드러난다.
청려와 동화되어 당시 놈의 가장 핵심적인 욕망을 학습한 시스템이 가진 것은….
발전과 완성에 대한 집착.
[자.]
놈이 아무렇지 않게 내 상태창을 가져간다.
그리고 무언가를 뜯어낸다. 부드러운 손길인데도 우악스러워 보일 정도로 강력하게.?
찌이익.
아니, 정확히는… 그 자체를 뜯어낸 것이다.
큰달이 띄우는 팝업을 통째로.
[잠깐….]
그리고 손아귀로 삼켰다.
덥석.
“……!”
큰달의 팝업은 구겨진 채 놈의 손가락 근처에서 사라진다.
[회수했어.]
시스템이 부드럽게 웃는다.
그리고 나는….
따라 웃었다.
“야.”
나는 참았던 숨을 헐떡였다.
밀고 밀어 이놈의 우월감과 승리감을 자극해 여기까지 상황을 끌고 온 이유.
“그놈도 오류야.”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큰달도 채팅창에 접속해서 선아현의 에러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생각해 보자.
‘이 새끼는 원래 한 놈에게 기생했어.’
그리고 이미 한번 써먹은 놈은 다시 못 쓴다고 큰달이 보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변에 들러붙을 적임자가 없으니 우리를 재활용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나왔다.
3명을 동시에 잡아다가 통 속의 뇌로 만들어서 아예 새로운 가상 세계 같은 걸 만들었지.
서버, 관리자, 캐릭터.
그래서 안정적으로 운영된 모양이지만, 덕분에 저놈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던 시절도 끝난 것이다.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주춧돌 하나가 빠지는 것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
지금처럼.
“너 지금 스스로 오류를 받아들인 거라고.”
내부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오류 하나로도 말이다.
[……!]
시스템의 모습이 흔들린다.
작은 글리치에서 시작된 이상 현상은 점점 크기를 키워, 인간의 형체를 집어삼키고 주변으로 번진다.
세계가 내부에서부터 붕괴한다.?
쿵!
“흠.”
가만히 서 있던 진짜 청려가 고개를 돌리더니, 상태창을 하나 띄운다.
“흥미롭네요.”
[플레이어 : 박문대 (류건우)]
그 가운데, 시스템의 모습이 변한다.
[…형.]
아는 모습이다.
어느 때인가, 박문대의 몸으로 돌아오며 정신 속에서 대화했던 그놈이었다.
류건우와 박문대가 섞인 오묘한 홀로그램에서 노이즈가 튀었다.
치칙.
모습을 갖춘 큰달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제… 제가, 진짜 이걸 움직일 수 있는 것 같은데요??]
됐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13화

동료 각성 때마다 일어나는 현상이 있었다.

바로 통증이다.

머리를 잡고 비틀거리거나, 어지럼증, 관자놀이의 격통을 느끼며 쏟아져 나오는 기억을 되찾는 것이다.

내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다만 스무 번이 넘게 중첩되었다는 게 문제지만.

‘빌어먹을.’

나는 마지막으로 본, 거의 바닥난 명성치 항목을 떠올리며 불타오르는 것 같은 머리 통증을 느꼈다.

몸이 녹았는데도 통증이 생기는 걸 보면 역시 그 골조만 남은 괴상한 세상은 다 쇼였다고 생각하면서.

그리고 기억은 둑이 무너진 듯이 일시에… 쏟아졌다.

-……!

부모님, 사고, 화재, 진학, 카메라, 강아지, 원룸, 학점, 난방, 친척, 수학여행, 데뷔, 데이터, 문제집…….

겹겹이 겹치며 과거가 메아리처럼 머릿속을 두들겨댄다.

‘X발.’

토할 것처럼 속이 울렁거렸다.?

하지만 수확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아.’

역시.

나는 회사원인 아버지와 학원강사인 어머니를 확인하며 쓰게 웃었다.

…선명해서 좋았다.

그리고 다음으로 머리를 부수듯 들어오는 건 골드 2에 대한 기억이다.

권희승.

-아… 정말 내 인생!

열심히 살던 긍정적인 놈이었지.

물론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각성의 충격은 중첩되고, 중첩되어… 더욱 이전으로 간다.

‘욱.’

내장이 뒤틀리는 것 같지만, 정신은 말 그대로 각성 상태이기라도 한 듯이 또렷했다.

그리고 박문대가 수면제를 먹고 쓰러졌던 낡은 모텔에서 깨어나는 그림을 어지럽게 몇 번이고 되새겼을 즈음.

찰칵.

드디어 넘친 기억의 흐름은 필름이 끊긴 그 이전까지 되감긴다.

내가 박문대의 몸에 들어오기 직전에 잊어버린 삶.

독서실에서 돌아오다가 웬 모텔 앞에 앉아있는 박문대를 만났을 때.

-감사합니다…. 형.

그래도 거기까진 큰 변화가 없었다. 마지막 ‘진실 확인’에서 봤던 장면이 내 기억이 되는 되새김이었을 뿐이다.

문제는 나에게서 통째로 증발한 몇 년.

공무원 시험 이후의 시기다.

-잘 부탁드립니다.

시험 준비를 손절하고 취직한 나는 적당한 중견 기업에서 별 비전 없이 갈렸다.

일은 괜찮게 했던 것 같지만 그것뿐이다. 그만큼 할 게 더럽게 많았고, 비효율적으로 내려오는 일을 밤까지 처리하는 매일.

뭘 해소할 방법도 여유도 금전 상황도 허락하지 않는 삶.?

그러다가 두통 분산용으로 빠르고 간단한 버릇이 하나 생긴 것이다.

짧은 시간으로 틈틈이 보고 지나갈 수 있고, 부가 비용이 들지 않으며, 전에 돈벌이 삼아 하던 일과 깊은 관련이 있어서 잘 아는 분야.

‘아이돌.’

자기 전, 그냥 동영상 사이트에 잡히는 대로 적당히 보고 지나갔다. 기력을 한 줌도 쓰지 않아도 돼서 유용했다.

그 컨텐츠 자체에 감흥을 느낀 건 아니다. 더이상 데이터 팔이도 아니니 분석할 일도 없다.

그냥 다른 걸 한다는 느낌을 받는 게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이 그룹도 보게 된 것이다.

에서 원래 데뷔했던 그룹.

테스타가 아닌 스티어를.

지리멸렬한 탈퇴 멤버의 마약 재판과 불화설, 쪼개진 개인 팬덤 때문에 내가 취직했을 때쯤에야 겨우 공백기를 깨고 한 번씩 컴백했다.

그래도 반전은 없었다.

이 그룹은 이미 성장이 멈췄고, 고였다.

결국 절반 이상의 멤버가 활동을 중단했다.

그래서 남은 셋이 유닛 활동을 하는 중이었지만, 분위기는 썩 좋지 않았다. 앨범은 제법 잘 팔았고 곡은 좋았지만 그뿐이다.

이미 끊이질 않는 논란으로 이미지는 탈 대로 타고, 대중 호감도는 갉아 먹을 만큼 갉아먹었다.

그 이상의 화제성과 성장은 없다.?

로 키운 체급을 잡고 천천히 침몰하는 거대한 유람선일 뿐이다.

-곡 괜찮다

-여전히 잘하네 화이팅

온건한 댓글 몇 개로 끝나는 반응. 데뷔 당시에 비교하면 이미 거품은 꺼졌다.

하지만.

나는 목적성 없이 넘기던 넓은 시청 범위를 무의식중에 이놈들 중심으로 줄였다.

대신… 좀 더 깊게.

개개인에 관심이 생겼거나 특별히 팬심을 가졌던 것은 아니다. 그냥 그 그룹에 대해 무심코 찾아보게 되었다.

어쩌면 내 상황과 비슷해 보여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총체적 상황의 문제.

이제는 뭘 해도 딱히 반등은 불가능한, 뾰족한 해답이나 수가 없는 상황 말이다.

그저 현상 유지를 위해 달리는 삶.

‘환경 자체가 별로야.’

투자가 줄어들고, 급조된 신규 기획사다운 기획력과 케어는 형편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나와서 이 악물고 무대를 하는 게 이상하게 눈길이 갔다.

그리고 문득 아깝게 느껴지기도 했다.

‘내가?’

곧 내 코가 석 자라며 잊었지만.

그럼에도 한 아이돌 그룹을 그렇게 집중적으로, 꽤 오랜 기간 확인했던 건 처음이었다.

물론 계속되진 않았다.

얼마 후.

당연하지만 스티어는 5년의 계약기간이 끝나자 칼 같이 해체했다.

시작부터 과정을 지나 끝까지 썩 좋은 꼴을 보지 못해서인지 유독 열심히 하던 몇 놈들도 다른 소식은 없었다.

그게 결론이었다.

아무것도 안 남았다는 것.

“…….”

그러고 나자, 아이돌을 보던 내 짧은 취미도 끝났다.

‘…볼 게 없네.’

어차피 그때쯤엔 다른 아이돌을 봐도 비슷한 감흥이 생기지 않았기 때문이다.

웃기는 일이었다. 하다못해 직접 찍으러 가보지도 않은, 팬도 아니었던 그룹 덕에 그 해소감마저 사라졌다는 게.

그리고 의문스러울 정도로 모든 것이 지치고 귀찮게 느껴지던 나에 의해 예정대로 그 삶은 끝났다.

짧은 유예는 그렇게 기억에서도 사라졌다.

나는 누가 데뷔하는지도 헷갈리던 과거의 상태로 박문대의 몸에 들어갔으니까.

‘하지만, 어쩌면 흔적은 남았을지도 모르지.’

나는 문득 떠올렸다.

내가 박문대의 몸으로 깨어나자마자 했던 생각을.

-한때는 쓸데없이 이 분야에 과몰입하기까지 했다.

‘…그랬나.’

구체적인 기억이 없었는데도 무심코 그렇게 느꼈던 건, 이때의 잔재였나.

나는 고개를 들었다.

이 기억을 진실 확인에서도 보여주지 않았던 건 시스템이 임의로 생략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 대단한 의도도 아니었겠지. 내 트라우마와는 별 관계가 없는 내용이라 생각했을 테니까.

‘숙주의 지속적 생존에 필요하지 않다’라고 생각해서 자른 것이다.

아마 큰달도 이런 건 예측 못 했겠지.

‘그러니까.’

시스템은 트라우마가 아니라도 사람 정신에 영향을 주는 기억이 있다는 건 아직도 모르나 보군.

‘그런 걸 보통 추억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낯간지러운 문장에 헛웃음을 터트렸다.

머리의 통증도 어느새 잠잠해졌다. 기억이 완전히 정착했다는 증거였다.

머리가 맑다.

원래는 시스템이 내 정신에 쳐놓은 개지랄을 싹 걷어내면 아예 장악력을 벗어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는데, 그 정도까진 아니고.

‘당장 정신 못 차리고 서버화는 면했군.’

그거면 됐다. 플랜 B를 위한 준비는 끝났다.

‘큰달.’

신호를 주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채팅이 시작되었다.

시스템의 영향을 받지 않는 오류, 선아현이 즉시 반응한다.

나는 채팅을 입력했다.

혹시 모를 유출 사태를 위해 해당 채팅방에서 했던 회의를 떠올리며.

-Apple : 다들 알겠지만 불필요한 리액션은 금지입니다.

그리고 선아현이 냈던 의견에서 이 발상이 시작되었다.

-Error : 저… 내가 오류라서 이 채팅방에 들어오는 사람에게 바이러스처럼 전염된다는 거지?

-Error : 그럼 모든 사람을 여기 초대하면, 모두에게 원래대로 기억과 행동을 돌려줄 수 있지 않을까?

채팅방에 전 세계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에러를 전파해버리면 다 같이 시스템의 위력에서 벗어나지 않겠냐는 것이다.

기억도 찾고, ‘게임 일시 정지’ 상태에서 움직일 수도 있고. 결국 세상이 유지되지 못 하겠지.

참 의도는 좋았으나 문제는 현실이다.

다들 알았다.

-RAB : 정말 이타적이며 멋진 발상이십니다만 시간과 공간의 제약상 모든 사람과 접촉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Sejini : 일단 초대에도 골드가 드니까 어려울 것 같지ㅠㅠ

그렇게 선아현의 의견이 무산될 것 같은 순간이었다.

-Tiger : 한 사람 말고 온 세상에 전염 안 돼요? 바이러스처럼!

-…!

이놈의 아무 말 같은 이 표현이 정곡을 찌른 것이다.?

‘온 세상.’

여기선 시스템 그 자체 아닌가.

그래서 그걸 기초로 플랜 B를 세웠다.

‘원래는 잠깐 시스템에서 벗어난 내가 이걸 직접 GM한테 넘겨서 게임에 쑤셔 넣을 생각이었는데.’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을 것 같다. 마침 이곳의 온 세상 자체인 놈이 마침 저기 있지 않나.

청려의 모습을 한 인간형 시스템.

GM이 멈춘 시간 선에서 선아현이 그랬듯이, 나도 채팅방에 연결된 효과로 몸을 움직일 수 있게 됐다.

“…!”

그리고 대치 중인 두 인영, 두 청려의 외관을 향해 시선을 고정했다.

‘색이 없는 쪽으로.’

마지막은 행동.

에러로 가득한 채팅창에 시스템의 인간형을 초대하는 것이다.

아예 저놈 자체가 에러에 감염될 수 있도록.

‘지정 가능해?’

곧 지직거리며 채팅방의 큰달이 응답한다.

좋아.

곧, 채팅창에 글씨가 뜬다.

…성공이다.

‘그래!’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이대로면….

‘아.’

그 순간, 시스템이 나를 향해 눈을 돌렸다.

채팅방에 새 글이 떴다.

“…!”

치직.

채팅방에 금이 간다.?

창은 마치 거대한 압력을 버티듯 부들부들 떨리더니….

퍽!

그대로 박살 났다.

반투명한 홀로그램 가루가 비산하더니, 글리치와 함께 사라진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울린다.

…고맙다고.

저건 일부러 사람을 도발할 정도로 인간적이진 않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저 발언은… 설마.

나는 떨리는 입을 열었다.

“명성 경험치라는 게… 네가 모으는 에너지냐?”

시스템이 친절히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시스템의 목소리가 커진다.

채팅방은 사라졌다.

오류가 해결된 세상에서, 시스템은 미소 지은 채로 청려 대신 나를 응시한다.

“…….”

청려의 GM 상태창에서 ‘■■■’로 표기되던 플레이어의 정체.

시스템은 설명은 마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처음으로 놈의 눈에 처음으로 인간적인 기색이 드러난다.

청려와 동화되어 당시 놈의 가장 핵심적인 욕망을 학습한 시스템이 가진 것은….

발전과 완성에 대한 집착.

놈이 아무렇지 않게 내 상태창을 가져간다.

그리고 무언가를 뜯어낸다. 부드러운 손길인데도 우악스러워 보일 정도로 강력하게.?

찌이익.

아니, 정확히는… 그 자체를 뜯어낸 것이다.

큰달이 띄우는 팝업을 통째로.

그리고 손아귀로 삼켰다.

덥석.

“……!”

큰달의 팝업은 구겨진 채 놈의 손가락 근처에서 사라진다.

시스템이 부드럽게 웃는다.

그리고 나는….

따라 웃었다.

“야.”

나는 참았던 숨을 헐떡였다.

밀고 밀어 이놈의 우월감과 승리감을 자극해 여기까지 상황을 끌고 온 이유.

“그놈도 오류야.”

세심하게 신경 쓰지 못하도록 만들기 위해서다.

‘큰달도 채팅창에 접속해서 선아현의 에러에 감염되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하게!’

생각해 보자.

‘이 새끼는 원래 한 놈에게 기생했어.’

그리고 이미 한번 써먹은 놈은 다시 못 쓴다고 큰달이 보장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주변에 들러붙을 적임자가 없으니 우리를 재활용할 수밖에 없던 것이다.

그래서 간접적으로 나왔다.

3명을 동시에 잡아다가 통 속의 뇌로 만들어서 아예 새로운 가상 세계 같은 걸 만들었지.

서버, 관리자, 캐릭터.

그래서 안정적으로 운영된 모양이지만, 덕분에 저놈 혼자 다 해결할 수 있던 시절도 끝난 것이다.

구조화되었기 때문에 주춧돌 하나가 빠지는 것으로도 무너질 수 있다.

지금처럼.

“너 지금 스스로 오류를 받아들인 거라고.”

내부에서 발생한 치명적인 오류 하나로도 말이다.

시스템의 모습이 흔들린다.

작은 글리치에서 시작된 이상 현상은 점점 크기를 키워, 인간의 형체를 집어삼키고 주변으로 번진다.

세계가 내부에서부터 붕괴한다.?

쿵!

“흠.”

가만히 서 있던 진짜 청려가 고개를 돌리더니, 상태창을 하나 띄운다.

“흥미롭네요.”

그 가운데, 시스템의 모습이 변한다.

아는 모습이다.

어느 때인가, 박문대의 몸으로 돌아오며 정신 속에서 대화했던 그놈이었다.

류건우와 박문대가 섞인 오묘한 홀로그램에서 노이즈가 튀었다.

치칙.

모습을 갖춘 큰달이 양손을 들어 올리며 외쳤다.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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