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1화
아이돌 업계에서 학교폭력은 진짜 답이 없는 스캔들이다. 그동안 터진 사건들로 인해 쌓인 데이터가 증명해 줬다.
특히 따돌림이나 신체적 폭력이 목록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끝이다. 그냥 탈퇴하고 군대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통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근데 하필 같은 팀 참가자한테 그게 터졌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나는 우선 올라온 글을 클릭했다. 그사이에 댓글이 더 붙었다.
========================
[3위! 아주사 큰세진 학폭 고발합니다. (491)]
: 참다 참다 제가 죽을 것 같아서 글 씁니다.
큰세진이라는 별명을 쓰는 참가자 이세진은 청솔고등학교 재학 내내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 출마했다면서 모범생 미담처럼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억울하고 눈물이 나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세진은 중학교 때부터 술 담배를 했고, 아닌 척 친절한 척 노는 무리와 어울리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
========================
이어진 장문의 글은 구구절절 큰세진의 교묘한 학교폭력 행적을 주장했다.
자세한 사례까지 들어간, 일대일로 이루어진 괴롭힘에 대한 묘사가 세밀했다. 얼핏 읽고 있는 내게도 설득력이 느껴질 정도다.
‘이건 그냥 한번 써본 어그로용 루머가 아니다.’
진짜든 아니든 작정하고 올린 글이었다. 심지어 하단에는 사진까지 첨부했다.
글 쓴 사람 본인의 고등학교 졸업앨범.
그리고 손가락에 담배를 낀 큰세진의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이 추가되어 있었다.
========================
[나 다른 사진도 많아. 네가 조금이라도 상황파악을 한다면 지금 사퇴해. 다른 건 몰라도 너 같은 애가 아이돌 하는 건 도저히 못 참겠다.]
========================
‘…진짜가 아니어도 한번 꼬리표 붙으면 떼기 힘든데, 사진까지 올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사망선고급이었다. 그리고 이 팀에 어마어마한 악재기도 했다.
큰세진이 존버해도 팀 편집은 끝장이고, 사퇴해도 지옥이었다. 파트 분배부터 동선까지 새로 다 맞춰서 연습해야 할 테니까.
“…….”
나는 한숨을 참고 고개를 들었다.
‘일단 확인부터.’
“나 지금 글 봤는데.”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다못해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없다.
‘아무래도 다른 놈들도 다 보고 있는 모양이군.’
큰세진은 말없이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여기 사진 너인 건 확실해?”
“……모르겠는데.”
큰세진이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이런 거 찍은 적 없어…….”
하지만 아니라고 확답은 못 하는군.
다시 물어봤다.
“너 담배 피웠냐?”
“잠깐, 고1 때……. 일이 좀 있어서. …근데, 바로 끊었어. 그리고 나 이런 짓 한 적 없어. 진짜, 학교에서 내가 왜 이런…….”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던 큰세진은, 숨이 턱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댓글 보고 있군.’
안 봐도 끔찍할 건 분명했다. 골드 1이 상황을 눈치채고 얼른 말렸다.
“야, 너 그거 보지 마. 일단 꺼. 꺼 봐.”
“……봐야 대응을 하죠. 그런데…. 예, 이미 끝났네요.”
큰세진은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내려놓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솔직히, 나라도 안 믿을 것 같거든? 담배는 피웠지만, 사진은 찍은 적 없고, 담배 빼면 다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설득력 없잖아.”
말하면서 큰세진은 점점 침착해지고 있었다. 아니, 침착해진다기보다는… 체념하고 있었다.
“…사람들 안 믿겠지?”
“…….”
사진까지 첨부한 마당에 뒤집기는 힘들어 보이긴 했다.
별개로 큰세진이 정말 억울해 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고발 글에 묘사된 행적이 큰세진의 그동안 방향성과 상당히 차이가 났다.
‘저놈 성격상… 누굴 괴롭혀도 후환을 남겨둘 것 같지는 않은데.’
자신이 괴롭힌다는 것도 모르도록 교묘하게 상황을 몰아가서 자업자득으로 고통받도록 만들면 모를까.
이렇게 뒷말이 나올 수도 있는 방법을 쓸 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도 그냥 추측이다. 길게 알고 지낸 것도 아닌데 속단할 수는 없다. 원래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한테는 개쓰레기 꼰대 상사여도 자기 아들한테는 든든한 아버지인 경우는 많이 보지 않는가.
“…….”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켰다. 그리고 큰세진 고발 글을 처음부터 샅샅이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큰세진과 팀원들은 절망과 슬픔에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큰세진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내일 사퇴할게.”
“…!!”
“야, 잠깐만.”
“차, 차, 차분하게, 새, 생각을…….”
“이미 충분히 해봤어. 담배 핀 건 사실이고……. 여기서 내가 계속 버텨봤자, 논란만 커질 것 같으니까.”
큰세진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 같았다.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 해명 잘하면 일이 년 뒤에는 데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좀… 난 정말 찍은 기억이 없는데 나오니까, 무섭기도 하고.”
“…….”
항상 여유가 한 치는 남아 있던 큰세진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다른 팀원들은 차마 무슨 다른 소리를 꺼낼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그 말에 대꾸했다.
“그거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 글 쓴 놈이 ‘상황파악 했으면 지금 사퇴하라’고 적어놨잖아. 지금 너 사퇴하면 이 말이 기정사실로 굳어진다.”
내가 본인 일도 아닌데 자꾸 말을 받아치니 큰세진은 슬슬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만해라. 기분만 나빠지니까. 이 상황에서 반박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잖아.”
“반박 소재를 잘 잡는 게 중요하지.”
“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큰세진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는 고발 글에 포함된 마지막 사진이 확대되어 있었다.
“이거 합성이야.”
“……!!”
눈 튀어나오겠다. 그만 좀 놀라라.
사실 침착하게 생각해봤다면 본인이 먼저 합성이라고 추측했을 텐데, 겁먹어서 못 한 모양이다.
나는 큰세진에게 스마트폰을 넘겨줬다. 그리고 화면에 떠 있는 사진에서 티가 나는 부분을 검지로 집어줬다.
일단 담배 쥐고 있는 손.
“여기,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확대해서 맞춰보면…. 픽셀 약간 깨져 있지. 일부러 화질 낮췄나 본데, 그래도 몇 점 티가 나.”
그리고 담배.
“담배가 혼자 명도가 안 맞아. 이 사진 노출값이면 이것보다 밝아야 하는데, 너무 하얗게 보이니까 낮추는 과정에서 약간 더 낮춘 거야.”
하얀색 물건을 사진에 넣을 때 초보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였다. 하얀 건 눈에 띄는 게 맞는데 어색해 보이니까 뭉개 버리는 것이다.
내 스마트폰 성능이 워낙 떨어져서 좀 끊기긴 했지만, 이런 확인에는 문제없었다.
‘…데이터 보정 작업했던 덕을 볼 줄이야.’
나는 추가금을 받고 ‘옷에 그 좆 같은 패턴 좀 지워주세요ㅜㅜ’ 같은 요청을 들어줬던 과거를 잠시 회상했다.
“너, 너 이걸 어떻게 알아? 확실해?”
“그래.”
큰세진은 말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에서 희망의 빛이 번뜩이는 걸 봤다고 생각했을 때, 골드 1이 소리를 질렀다.
“야!! 그럼 당장 해명 올려! 합성이라고!”
“아, 아…. 그렇죠! 올려야….”
“아니, 기다려 봐.”
얘는 현실에서 잘 나가던 놈이라 그런지 인터넷 생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덤덤히 설명했다.
“나도 알아봤는데, 네 팬분 중에서도 합성인 걸 알아본 분들 분명 있을걸.”
“아!”
“그, 그럼 그냥 기다리면, 패, 팬분들이…….”
“아니, 내 말은……. 합성이라고 볼 만한 지점이 있어도 욕하는 게 재밌으니까 안 믿을 거란 뜻이야. 큰세진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거라고 비꼬겠지.”
“……아.”
방 분위기가 작살나기 전에 당장 부연설명부터 붙여줘야겠다.
“그러니까 찾아라.”
“어?”
“원본사진. 원본하고 같이 올리면 합성이란 말에 반박 못 할 테니까.”
사진의 큰세진이 렌즈를 응시하고 있는 걸 보니 카메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인 중 누군가가 찍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지인들에게 전부 연락을 돌린다는 건 위험하다.’
지인이 올렸을지도 모르니까.
‘고발 글 올린 놈이 자신 있게 사진을 넣은 걸 봐서는, 이 사진 원본 가진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긴 한데…….’
아니, 잠깐. 이건 특정되기 쉬우니까 오히려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흠, 그게 아니면…….’
나는 생각에 잠겼다가, 큰세진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사진 찍으면 다 저장하는 편이야?”
“내가 나온 건, 그렇지.”
“그럼 일단……. 앨범에서 무슨 행사나 모임 때문에 사진 대량으로 찍었던 날부터 살펴보는 게 어때.”
여러 장 찍은 단체 사진에서 큰세진만 크롭한 후 배경을 바꿨다면, 원본사진을 못 찾을 거라고 의기양양할 만도 했다.
“문대야 너 원래 대체 뭐 하던 놈이야? 사실 국정원 직원이지?”
“그럴 리가요.”
골드 1의 헛소리를 빠르게 넘겼다.
다른 팀원들은 진작에 큰세진의 옆에 붙어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진을 함께 찾아보고 있었다.
“단독 사진 말고 단체 사진도 봐. 확대한 걸 수도 있어.”
“오케이.”
겨우 평소 말투로 돌아온 큰세진이 재빠르게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갤러리를 열었다.
그리고 눈 아픈 탐색 시간이 이어졌다.
큰세진 이놈은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고등학교 때 사진이 끝도 없이 나왔다.
아직 1학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반 시간이 경과했다.
“세, 세진이는, 친구가 참 많네.”
“…하하.”
오죽하면 선아현이 질린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릴 정도였다. 큰세진은 민망한 웃음소리를 내며, 사진을 휙휙 넘겼다.
그리고 2학년 1학기 사진이 나올 무렵.
“형, 이거!”
“…!”
김래빈이 손가락으로 넘어가는 사진 하나를 찍었다. 큰세진이 얼른 사진을 확인했다.
대여섯 명이 모여 서서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의 앞뒤로 같은 곳에서 찍은, 포즈만 다른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큰세진은 구석에 약간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상체를 확대하니 확실히 보였다.
고발 글에 들어간 사진이었다.
“……하.”
큰세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어쩐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거 운동 때 사진이네.”
“흠.”
그러고 보니 고발 글 초반에 학생회장 출마가 어쩌고 하는 말이 있었다. 누군진 몰라도 이게 어지간히 고까웠나 보군.
‘진작 이때 사진부터 찾아보라고 할 걸 그랬나.’
그래도 어쨌든 찾았으니 됐다.
“허어…….”
큰세진은 긴장이 풀렸는지 뒤로 뻗었다. 침대 뒤 벽에 머리를 박을 뻔했지만, 지금 그런 건 신경도 못 쓸 게 분명했다.
“다행이다. 내 사진첩에 있어서.”
“그러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골드 1이 힘차게 말했다.
“좋아! 너 소속사 있었지? 그거 보내 버려! 반박문 내자고 해!”
상식적인 조언이었다. 이미 일이 커졌으니 차라리 공식적으로 증거자료하고 함께 대응하는 게 깔끔하겠지.
그러나 떨떠름한 반응이 돌아왔다.
“소속사에?”
큰세진이 오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 뒤를 쓸었다.
“음……. 그건 좀.”
“…?”
이런 거 하라고 있는 게 소속사인데 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1화
아이돌 업계에서 학교폭력은 진짜 답이 없는 스캔들이다. 그동안 터진 사건들로 인해 쌓인 데이터가 증명해 줬다.
특히 따돌림이나 신체적 폭력이 목록에 들어가는 순간에는 끝이다. 그냥 탈퇴하고 군대 가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통하는 걸 본 적이 없다.
근데 하필 같은 팀 참가자한테 그게 터졌다?
‘…일단 확인부터 하자.’
나는 우선 올라온 글을 클릭했다. 그사이에 댓글이 더 붙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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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다 참다 제가 죽을 것 같아서 글 씁니다.
큰세진이라는 별명을 쓰는 참가자 이세진은 청솔고등학교 재학 내내 사람을 괴롭혔습니다.
고등학교 때 학생회장 선거 출마했다면서 모범생 미담처럼 인터넷에 올라오는 글들을 보며, 억울하고 눈물이 나서 잠을 잘 수 없었습니다.
이세진은 중학교 때부터 술 담배를 했고, 아닌 척 친절한 척 노는 무리와 어울리며 저를 괴롭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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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진 장문의 글은 구구절절 큰세진의 교묘한 학교폭력 행적을 주장했다.
자세한 사례까지 들어간, 일대일로 이루어진 괴롭힘에 대한 묘사가 세밀했다. 얼핏 읽고 있는 내게도 설득력이 느껴질 정도다.
‘이건 그냥 한번 써본 어그로용 루머가 아니다.’
진짜든 아니든 작정하고 올린 글이었다. 심지어 하단에는 사진까지 첨부했다.
글 쓴 사람 본인의 고등학교 졸업앨범.
그리고 손가락에 담배를 낀 큰세진의 사진이었다.
사진 아래에는 이런 글이 추가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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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가 아니어도 한번 꼬리표 붙으면 떼기 힘든데, 사진까지 올렸다.’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는 거의 사망선고급이었다. 그리고 이 팀에 어마어마한 악재기도 했다.
큰세진이 존버해도 팀 편집은 끝장이고, 사퇴해도 지옥이었다. 파트 분배부터 동선까지 새로 다 맞춰서 연습해야 할 테니까.
“…….”
나는 한숨을 참고 고개를 들었다.
‘일단 확인부터.’
“나 지금 글 봤는데.”
“…….”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하다못해 무슨 일이냐고 되묻는 사람도 없다.
‘아무래도 다른 놈들도 다 보고 있는 모양이군.’
큰세진은 말없이 스마트폰 화면에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여기 사진 너인 건 확실해?”
“……모르겠는데.”
큰세진이 멍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이런 거 찍은 적 없어…….”
하지만 아니라고 확답은 못 하는군.
다시 물어봤다.
“너 담배 피웠냐?”
“잠깐, 고1 때……. 일이 좀 있어서. …근데, 바로 끊었어. 그리고 나 이런 짓 한 적 없어. 진짜, 학교에서 내가 왜 이런…….”
갈수록 목소리가 커지던 큰세진은, 숨이 턱 막힌 듯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다시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내렸다.
‘댓글 보고 있군.’
안 봐도 끔찍할 건 분명했다. 골드 1이 상황을 눈치채고 얼른 말렸다.
“야, 너 그거 보지 마. 일단 꺼. 꺼 봐.”
“……봐야 대응을 하죠. 그런데…. 예, 이미 끝났네요.”
큰세진은 스마트폰을 내려놨다. 내려놓는 손이 벌벌 떨리고 있었다.
“솔직히, 나라도 안 믿을 것 같거든? 담배는 피웠지만, 사진은 찍은 적 없고, 담배 빼면 다 거짓말이라고 말하면……. 설득력 없잖아.”
말하면서 큰세진은 점점 침착해지고 있었다. 아니, 침착해진다기보다는… 체념하고 있었다.
“…사람들 안 믿겠지?”
“…….”
사진까지 첨부한 마당에 뒤집기는 힘들어 보이긴 했다.
별개로 큰세진이 정말 억울해 보이기는 했다. 그리고 고발 글에 묘사된 행적이 큰세진의 그동안 방향성과 상당히 차이가 났다.
‘저놈 성격상… 누굴 괴롭혀도 후환을 남겨둘 것 같지는 않은데.’
자신이 괴롭힌다는 것도 모르도록 교묘하게 상황을 몰아가서 자업자득으로 고통받도록 만들면 모를까.
이렇게 뒷말이 나올 수도 있는 방법을 쓸 놈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것도 그냥 추측이다. 길게 알고 지낸 것도 아닌데 속단할 수는 없다. 원래 사람은 여러 가지 면을 가지고 있으니까.
나한테는 개쓰레기 꼰대 상사여도 자기 아들한테는 든든한 아버지인 경우는 많이 보지 않는가.
“…….”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스마트폰 화면을 다시 켰다. 그리고 큰세진 고발 글을 처음부터 샅샅이 글을 읽어보기 시작했다.
그동안 큰세진과 팀원들은 절망과 슬픔에 허우적대기 시작했다.
큰세진이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 내일 사퇴할게.”
“…!!”
“야, 잠깐만.”
“차, 차, 차분하게, 새, 생각을…….”
“이미 충분히 해봤어. 담배 핀 건 사실이고……. 여기서 내가 계속 버텨봤자, 논란만 커질 것 같으니까.”
큰세진은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는 것 같았다.
“조금 가라앉은 다음에, 해명 잘하면 일이 년 뒤에는 데뷔할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좀… 난 정말 찍은 기억이 없는데 나오니까, 무섭기도 하고.”
“…….”
항상 여유가 한 치는 남아 있던 큰세진이 저렇게까지 말하니, 다른 팀원들은 차마 무슨 다른 소리를 꺼낼 수 없는 것 같았다.
나는 여전히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그 말에 대꾸했다.
“그거 별로 좋은 생각은 아닌 것 같은데.”
“……왜?”
“이 글 쓴 놈이 ‘상황파악 했으면 지금 사퇴하라’고 적어놨잖아. 지금 너 사퇴하면 이 말이 기정사실로 굳어진다.”
내가 본인 일도 아닌데 자꾸 말을 받아치니 큰세진은 슬슬 열이 올라오는 것 같았다.
“그만해라. 기분만 나빠지니까. 이 상황에서 반박해도 결과는 마찬가지잖아.”
“반박 소재를 잘 잡는 게 중요하지.”
“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큰세진 쪽으로 화면을 돌렸다.
화면에는 고발 글에 포함된 마지막 사진이 확대되어 있었다.
“이거 합성이야.”
“……!!”
눈 튀어나오겠다. 그만 좀 놀라라.
사실 침착하게 생각해봤다면 본인이 먼저 합성이라고 추측했을 텐데, 겁먹어서 못 한 모양이다.
나는 큰세진에게 스마트폰을 넘겨줬다. 그리고 화면에 떠 있는 사진에서 티가 나는 부분을 검지로 집어줬다.
일단 담배 쥐고 있는 손.
“여기, 디자인 프로그램으로 확대해서 맞춰보면…. 픽셀 약간 깨져 있지. 일부러 화질 낮췄나 본데, 그래도 몇 점 티가 나.”
그리고 담배.
“담배가 혼자 명도가 안 맞아. 이 사진 노출값이면 이것보다 밝아야 하는데, 너무 하얗게 보이니까 낮추는 과정에서 약간 더 낮춘 거야.”
하얀색 물건을 사진에 넣을 때 초보가 저지르기 쉬운 실수였다. 하얀 건 눈에 띄는 게 맞는데 어색해 보이니까 뭉개 버리는 것이다.
내 스마트폰 성능이 워낙 떨어져서 좀 끊기긴 했지만, 이런 확인에는 문제없었다.
‘…데이터 보정 작업했던 덕을 볼 줄이야.’
나는 추가금을 받고 ‘옷에 그 좆 같은 패턴 좀 지워주세요ㅜㅜ’ 같은 요청을 들어줬던 과거를 잠시 회상했다.
“너, 너 이걸 어떻게 알아? 확실해?”
“그래.”
큰세진은 말없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그 눈에서 희망의 빛이 번뜩이는 걸 봤다고 생각했을 때, 골드 1이 소리를 질렀다.
“야!! 그럼 당장 해명 올려! 합성이라고!”
“아, 아…. 그렇죠! 올려야….”
“아니, 기다려 봐.”
얘는 현실에서 잘 나가던 놈이라 그런지 인터넷 생리를 잘 모르는 것 같다. 나는 덤덤히 설명했다.
“나도 알아봤는데, 네 팬분 중에서도 합성인 걸 알아본 분들 분명 있을걸.”
“아!”
“그, 그럼 그냥 기다리면, 패, 팬분들이…….”
“아니, 내 말은……. 합성이라고 볼 만한 지점이 있어도 욕하는 게 재밌으니까 안 믿을 거란 뜻이야. 큰세진을 좋아하니까 그렇게 주장하는 거라고 비꼬겠지.”
“……아.”
방 분위기가 작살나기 전에 당장 부연설명부터 붙여줘야겠다.
“그러니까 찾아라.”
“어?”
“원본사진. 원본하고 같이 올리면 합성이란 말에 반박 못 할 테니까.”
사진의 큰세진이 렌즈를 응시하고 있는 걸 보니 카메라의 존재를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인 중 누군가가 찍었을 가능성이 컸다.
‘하지만 이 상황에서 지인들에게 전부 연락을 돌린다는 건 위험하다.’
지인이 올렸을지도 모르니까.
‘고발 글 올린 놈이 자신 있게 사진을 넣은 걸 봐서는, 이 사진 원본 가진 사람이 별로 없을 거라고 확신하는 것 같긴 한데…….’
아니, 잠깐. 이건 특정되기 쉬우니까 오히려 아닐 것 같기도 하다.
‘흠, 그게 아니면…….’
나는 생각에 잠겼다가, 큰세진에게 물었다.
“다른 사람들하고 사진 찍으면 다 저장하는 편이야?”
“내가 나온 건, 그렇지.”
“그럼 일단……. 앨범에서 무슨 행사나 모임 때문에 사진 대량으로 찍었던 날부터 살펴보는 게 어때.”
여러 장 찍은 단체 사진에서 큰세진만 크롭한 후 배경을 바꿨다면, 원본사진을 못 찾을 거라고 의기양양할 만도 했다.
“문대야 너 원래 대체 뭐 하던 놈이야? 사실 국정원 직원이지?”
“그럴 리가요.”
골드 1의 헛소리를 빠르게 넘겼다.
다른 팀원들은 진작에 큰세진의 옆에 붙어서 부리부리한 눈으로 사진을 함께 찾아보고 있었다.
“단독 사진 말고 단체 사진도 봐. 확대한 걸 수도 있어.”
“오케이.”
겨우 평소 말투로 돌아온 큰세진이 재빠르게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갤러리를 열었다.
그리고 눈 아픈 탐색 시간이 이어졌다.
큰세진 이놈은 사진을 얼마나 많이 찍었는지. 고등학교 때 사진이 끝도 없이 나왔다.
아직 1학년이 끝나지도 않았는데 반 시간이 경과했다.
“세, 세진이는, 친구가 참 많네.”
“…하하.”
오죽하면 선아현이 질린 목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릴 정도였다. 큰세진은 민망한 웃음소리를 내며, 사진을 휙휙 넘겼다.
그리고 2학년 1학기 사진이 나올 무렵.
“형, 이거!”
“…!”
김래빈이 손가락으로 넘어가는 사진 하나를 찍었다. 큰세진이 얼른 사진을 확인했다.
대여섯 명이 모여 서서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이 사진의 앞뒤로 같은 곳에서 찍은, 포즈만 다른 사진이 여러 장 있었다.
큰세진은 구석에 약간 떨어져 있었다. 그리고 상체를 확대하니 확실히 보였다.
고발 글에 들어간 사진이었다.
“……하.”
큰세진은 고개를 푹 숙이고, 긴 안도의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어쩐지 허탈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선거 운동 때 사진이네.”
“흠.”
그러고 보니 고발 글 초반에 학생회장 출마가 어쩌고 하는 말이 있었다. 누군진 몰라도 이게 어지간히 고까웠나 보군.
‘진작 이때 사진부터 찾아보라고 할 걸 그랬나.’
그래도 어쨌든 찾았으니 됐다.
“허어…….”
큰세진은 긴장이 풀렸는지 뒤로 뻗었다. 침대 뒤 벽에 머리를 박을 뻔했지만, 지금 그런 건 신경도 못 쓸 게 분명했다.
“다행이다. 내 사진첩에 있어서.”
“그러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옆에서 골드 1이 힘차게 말했다.
“좋아! 너 소속사 있었지? 그거 보내 버려! 반박문 내자고 해!”
상식적인 조언이었다. 이미 일이 커졌으니 차라리 공식적으로 증거자료하고 함께 대응하는 게 깔끔하겠지.
그러나 떨떠름한 반응이 돌아왔다.
“소속사에?”
큰세진이 오묘한 표정으로 자신의 목 뒤를 쓸었다.
“음……. 그건 좀.”
“…?”
이런 거 하라고 있는 게 소속사인데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