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0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07화
아직도 해가 뜨지 않는 숙소 방 안.
나는 방석을 깔고 앉은 채, 낮은 목소리로 서른 번째 분석을 말했다.
왜 현실이 더 나은가.
“VTIC은 개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서 아직도 이미지 소비가 크지 않아.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할 텐데. 그건 여기선 이미 소비한 가치지.”
“글쎄요. 반대로 말하면 여기서는 개인 활동으로 인지도와 역량을 증명한 상태라는 뜻 아닌가.”
“…그룹 팬덤이 박살 났잖아.”
이 새끼야. 나는 한숨을 참았고, 놈은 실실 웃는다.
“그거야 내년쯤 그룹 활동에 주력하면서 안정화하면 되죠. 이미지 소비량과 컨셉도 그때부터 다듬으면 되고.”
“…그러니까, 뭐하러 그런 짓을 하냐고. 돌아가면 이미 잘 정착한 팬덤과 컨셉 잡힌 그룹이 있는데.”
“그렇긴 하네요.”
놈은 선선히 동의했다. 그러나 난 속지 않았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만 고려하면 이쪽이 규모는 더 키울 수도 있죠. 이미 검증된 구성원과 곡이 있으니까.”
X발 진짜.
나는 미간을 눌렀다. 이놈과의 대화는 아까부터 이런 식이었다.
이 새끼는 극단적으로 여기 남자고 발광하진 않는다.
단지 돌아가야 한다는 내 논리에서 계속 반박하고, 나도 거기에 다시 반박하는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룹의 가능성, 시장 분포, 개인 성취, 이미지, 성적….
말 그대로, 끝장 토론.
‘망할.’
말꼬리 무는 게 몇 시간짼지 모르겠다. 머리가 지근거린다.
배가 고프지도 생리현상이 생기지도 않으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음, 물이라도 마셔볼래요? 마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됐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문득, 원론적인 질문을 떠올렸다.
‘…왜 이걸 하는 거지?’
사실상 이성적으로 결론이 날 리가 없는 문제다.
둘 다 하나의 결론에 승복하자고?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한 절대적 가치라도 나와야 하는데, 불가능하지 않은가.
예체능 커리어로 비교가 들어가면 모든 게 가능성의 영역일 뿐이니까.
도리어 이 세계가… 약간 우위다.
‘…이게 아니야.’
멍청했군.
이 새끼 기세에 끌려가서는 밀리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청려는 전과 똑같은 자세로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자세를 바꾸었다.
“너도 알 텐데. 이건 결론이 날 문제가 아니야. 애초에 어느 쪽이 더 아이돌로 성공할 수 있는지 재보고 돌아가자고 한 것도 아니고.”
“…….”
애초에 이 새끼는 다 알면서 내 미래 없는 일회용 대상 그룹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돌아가는 쪽에 배팅했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이러는 건….
나는 아까 놈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원래는 후배님 의견에 그냥 따라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후배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네.
그리고 몇 시간을 거처 식은 머리가 결론을 도출해 낸다.
“너… 지금까지 나한테 일방적으로 협조해 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협조해 줬는데, 뭐 하나 숨겼다고 나한테 추궁당해서 빡쳤냐는 거다.
‘그러니 협조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다. 시스템이 친히 내려준 GM이라는 게 보통 비밀도 아니고 X발 적반하장이 따로 없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러나 놈은 부정하지 않았다.
“글쎄요. 후배님이 목표보다 사람 챙기는 데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이길래, 나도 좀 생각해봤다는 거죠.”
놈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랬더니… 말했잖아.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그 관점으로 보면 없겠지.”
나는 숨을 들이켰다. 머리가 좀 맑아졌다.
이놈 뭘 착각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나도 그럴 뻔했고.
“내가 잘못 말했다.”
“음?”
“커리어를 빼고 생각해 봐.”
그건 비교도 불가능할뿐더러, 애초에 1군 아이돌로서의 커리어가 완벽하니 그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려던 게 아니니까.
나는 이전에, 이 새끼한테 자살 종용당할 때 아가리를 갈겨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VTIC은 하락세 좀 맞으면 안 됩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단순히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말해야 했다.
가령.
“네가 X 같은 일이 벌어져도 현실을 살기로 마음먹고… 멤버 하나 탈퇴한 뒤에 낸 앨범과 경험들 말이야.”
“…….”
“그런 건 안 아깝냐.”
현실에서, 네 개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너한테 의미 있는 게 없냐?
실패하는 순간 삶을 갈아치우려 들지 않고, 계속 그냥 살아보기로 결심한 뒤 했던 경험들이 말이다.
사용해 본 적 없는 새 곡으로 채워 낸 앨범, 처음 해보는 솔로 활동, 답안지를 모르는 상황.
결국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그룹. 성취감.
새로운 수상 소감.
“너 사실 그런 것도 포함해서 현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던 거잖아. 나한테 일방적으로 협조한 게 아니라. 그게 아깝고 그리웠던 거 아니냐고.”
청려는 처음으로 동요했다. 나는 놈이 손을 깍지껴 무릎에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답은 왜곡된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여기서 다시 해보면 되겠네요.”
X발.
나는 머리를 휘저었다.
“다시 할 수 없어서 의미가 있는 거라고…!”
“…….”
“아니, 애초에… 야, 여긴 말 그대로 시스템이 만든 거라고. 들어.”
나는 오늘, 선아현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추리해낸 결과를 놈에게 전달했다.
이 세계는 일종의 상태이상, 왜곡일 뿐이라는 걸.
우리가 처음 상정한 기대대로, 현실은 정말 따로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까지.
“…그러니까, 이건 진짜 시스템 X대로 굴러가는 세상이야.”
나는 거칠게 침대를 쳤다.
“너 진짜 여기서 시스템 끼고 살 생각이냐? GM인지 뭔지 하면서 꿀 빨 수 있으니까?”
“…….”
“넌 X발 시스템 때문에 그 개고생한 새끼가 배알도 없냐.”
“…….”
청려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나온 목소리는….
“개고생?”
의아해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건… 좀 동의하기 힘든데.”
“…!”
“결국 재시작할 수 있어서 성공할 기회를 얻은 건 맞지 않나.”
아, 망할.
“시스템을 없애는 건 이 혜택이 제어하지 못할 타인에게 가는 걸 막기 위한 일이었지. 시스템을 도구화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
“물론 불쾌감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움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침음 했다. 이 새끼는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재시작이 일단 이득이라고 정신 개조된 놈인데.’
이걸 어떻게 설득하냐고.
“…….”
다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전의를 상실한 기분으로 침대에 머리를 기댔다.
네놈 말대로 시간이 무한하다니 편하게 입 좀 닥치고 있어야겠다.
다만 놀라운 점은 잠시 후.
이 새끼가 먼저 입을 열었다는 것이다.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지만 감정적인 이유만이라면, 후배님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건 알겠어요.”
“…!”
“그래. 후배님 부모님 문제도 있었으니까.”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넌 그때도 말 안 했지.”
내가 기억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집어서 말했는데도 말이다.
“그건…….”
놈의 말투가 덜 무미건조해진다. 약간 떨렸다.
“…미안해요.”
“…….”
나는 한숨을 참으며 눈을 감았다.
“너는… 네가 상태창 있는 걸 말했으면 내가 무조건 널 의심하고 능률이 박살 났을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웃기는 새끼다.
“그냥 믿었을걸.”
“…!”
“물론 쓸데없는 짓 안 하나 감시를 더 하긴 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다르게 써먹을 구석을 찾아내려고 기를 쓰고 연구했을 것 같은데.”
능률 박살 안 났을 거라고 개자식아.
“…그래요?”
“어.”
나는 뒤척였다.
“내가 처음부터 상태창 생긴 것까지 너한테 솔직히 다 불었잖아. 내가 말 안 한 건 프라이버시 문제 정도였어.”
“…….”
뒤통수 갈긴 건 너라고.
곧, 순순히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후.
나는 얼굴을 문질렀다.
저 새끼가 한풀 죽었다.
‘그 외에도 골드2 문제가 있긴 한데….’
나도 안다.
이 새끼한테 권희승이 불쌍하지 않냐 같은 건 안 먹힌다. 그런 걸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놈이 아니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놈이니까.
하지만, 그 리셋증후군이던 미친 오함마 때로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데려왔어요. (사진)
-콩이가 아파요.
그건 또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막다른 길목이었다. 이 새끼는 본인이 왜 돌아가고 싶은지 제대로 납득하지 못하면….
‘또 훼방 놓을 수도 있나.’
그건 용납이 안 돼서 말이다.
‘저거 정신머리 고치고 나간다.’
나는 결론을 내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뜬금없이 보았다.
팝업을.
[Error : 문대야…?]
“…!!”
뛰어오를 뻔했다.
[Error : !]
[Error : 문대가 확인한 것 같아!]
팝업이 기쁜 듯이 갱신된다.
거기까진 큰달인가 했다.
이것들이 뜨기 전까지는.
[RAB : 드디어 확인하셨군요. 혹시 위급한 상황일까 몹시 염려했습니다.]
[Sejini : 박문대 너 괜찮아? 문대문대 이렇게 불러야 알아보나?]
[BaeSJ : 대답 좀 해]
뭐야 이게.
* * *
큰달은 선아현의 앞에서 온갖 쇼를 했다.
시간이 멈추고 문대 형이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쏟아내며 동시에 선아현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열심히 떠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선아현이 당황했다고 바보가 되진 않았다.
그는 차분히 요구했다.
“…믿을 수 있게, 증거를 보여줘.”
[그!]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으나 사실 본인도 알았다.
증거는 없었다….
‘으흐흑….’
몸이 없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게임 진행이 멈추자, 본인이 슬슬 인간적인 감각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는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한 명을 떠올렸다.
[래빈 님이 저에 대해서 알아요!]
지옥의 질문 순환에 질린 류건우가 큰달의 존재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인증까지 해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래빈이를 만날 수 있어?”
[아….]
문제는 지금 김래빈도 멈춰 있다는 점이지만….
‘뭐 없을까?’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는 열심히 상태창을 돌리며, UI창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 뒤, 복잡한 알고리즘의 세부 코드 같은 정신세계를….
‘어라?’
그러다가, 지금 ‘환경 설정’ 중이기 때문에 건드릴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 하단에 한 줄, 급하게 추가한 것 같은 기능.
[골드 상점]
골드?
‘…접속!’
류건우의 추리 쇼를 이미 본 큰달은 당장 그것을 켰다.
그러자 단출한 목록이 뜬다.
[채팅방 개설 – 5000G]
[초대 – 1000G]
그는 바로 깨달았다.
이거였다.
‘형, 함부로 써서 죄송하지만 그래도 형을 도우려는 거니까…!’
그는 당장 두 가지를 전부 구매했다.
새로운 기능이 개방된다.
그는 팝업을 조작했다.
[채팅방에 입장하시겠습니까?]
“…!”
[래빈 님을 불러올게요!]
그리고 선아현이 고민 끝에 그 팝업에서 입장을 수락하는 순간, 미친 듯이 날아서 서울로 갔다.
그리고 기어코 화보 촬영장에서 수정 메이크업을 받던 김래빈과 접촉했다.
당연하지만, 김래빈은 에러가 아니라 정지한 상태.
‘그렇지만!’
그는 이미 채팅창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 알았다.
시스템의 상태이상을 상쇄하는 사람.
[채팅방에 입장하시겠습니까?]
김래빈의 접속계에 금색 동그라미가 흡수되며, 에러가 퍼진다.
‘된다!’
선아현과 채팅창, 즉 큰달의 정신인 상태창을 매개로 연결되며 에러가 공유된다.
그리고 새 채팅.
[RAB : …??]
[RAB : 혹시 이건 꿈입니까?]
큰달은 환호를 참았다.
* * *
[Error : 그렇게 문대에게 메시지를 띄울 수 있게 된 거야]
‘…그래.’
나는 채팅방에 정신없이 오간 대화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해는 했다. 권희승이 눈물의 SOS를 보내고 있는 걸 큰달이 잘해 먹었다는 거군.
그런데 말이다.
‘…필요한 건가, 이게?’
솔직히 이놈들에게 채팅만으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니, 채팅이 아니라고 해도 당장 이 새끼 두들겨 팬다고 뭐 수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큰달이 청려 놈 하는 꼴을 보고 놀라서 급발진한 것 같다. 나는 다소 떨떠름하게 채팅창을 훑었다.
[Tiger : 형 무슨 상황이에요? 싸워요?]
[BaeSJ : 설마 우릴 여기 처박은 놈이랑 만났어?]
게다가 이놈들 자세한 설명을 못 들었는지 그냥 내가 곤경에 처했다는 것만 아는 것 같다.
나는 약간 고민하다가, 채팅을 보냈다.
생각으로 되는군.
[Apple : 그런 건 아니고, 누굴 설득해야 하는데요]
[BaeSJ : 누구!]
그 순간, 갑자기 상단에 팝업이 뜬다.
[인원 8]
[※!남은 골드 : 5000G※]
음?
[Leader : 얘들아. 아무래도 채팅을 칠 때마다 에너지가 소모되는 형태 같아. 문대만 이야기하고 우리는 조언하는 정도로만 하자]
다들 상황 파악을 했는지 수긍하는 답장도 오지 않았다.
“…….”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채팅을 쳤다.
이게 뭔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Apple : 다들 현실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드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힌트를 얻을지도 모르니까.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잠시 후, 채팅창이 꽉 채운 글자로 갱신된다.
[Tiger : 우리 무대 하고 싶을 때!]
[RAB : 다양한 사례가 있었습니다만, 가장 빈도가 번번한 것은 저희가 발표했던 앨범을 몹시 들어보고 싶어지는 순간입니다.]
[Error : 오늘 혼자 공항에 가니까, 같이 지내던 시간이 떠올라. 그런 때인 것 같아.]
공연, 앨범, 활동, 숙소, 다양한 대답이 채운다.
구호를 외칠 때 테스타 구호가 떠오른다는 류청우, 위튜브로 아이돌 무대가 알고리즘에 뜰 때 그렇다는 배세진.
그리고 마지막 답변.
[Sejini : 그때의 내가 그리울 때]
공통점은….
강한 그리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감정적 기억.
“…….”
나는 채팅을 입력했다.
[Apple : 도움이 됐어. 고맙다.]
골드가 하락했다는 알림창이 또 뜨는 순간.
말소리가 들린다.
“뭘 보는 거지.”
놀랍진 않았다. 일부러 대놓고 하기도 했고.
나는 놈에게 입을 열었다.
“나한테 지금 동료로 채운 채팅창이 하나 뜨는데.”
“음?”
“혹시 모르니 넌 확인하려고 하지 마라. 편법 같으니까.”
GM이 보면 안 되지. 시스템이 막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자 놈이 실소한다.
“철저하네.”
“그래.”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놈에게 물었다.
“여기서 내 상태창 기능 쓸 수 있을까.”
“관리자 허가가 있으면.”
“해보고 싶은데.”
“…….”
청려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동료 목록을 불러왔다.
[신재현 : 동료의 말을 생각하는 중 (//~^)]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처음부터 동료 목록에 있었지.”
“그렇죠. GM이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기억이 있었어.”
고개를 들었다. 청려가 서 있었다.
“한 번도 각성해 본 적이 없지.”
“…….”
그 기능을 생각해 보자.
애초에 각성에 기억을 돌려주는 기능을 넣은 것은 나와 큰달이 의 설명문에서 뽑아낸 편법 기능이다.
시스템이 정식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그토록 거친 방식인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상정되지 않은 기능이니까.
‘감정과 기억의 파도가 몰아쳐 오는 것 같다… 고 했던가.’
나는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볼 생각 없냐.”
“이유는?”
“그게 너한테 새로운 정보를 줄 수도 있으니까.”
“…….”
놈은 잠시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묘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동료 신재현의 각성 버튼을 눌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07화
아직도 해가 뜨지 않는 숙소 방 안.
나는 방석을 깔고 앉은 채, 낮은 목소리로 서른 번째 분석을 말했다.
왜 현실이 더 나은가.
“VTIC은 개인 활동을 거의 하지 않아서 아직도 이미지 소비가 크지 않아. 장기적으로 훨씬 유리할 텐데. 그건 여기선 이미 소비한 가치지.”
“글쎄요. 반대로 말하면 여기서는 개인 활동으로 인지도와 역량을 증명한 상태라는 뜻 아닌가.”
“…그룹 팬덤이 박살 났잖아.”
이 새끼야. 나는 한숨을 참았고, 놈은 실실 웃는다.
“그거야 내년쯤 그룹 활동에 주력하면서 안정화하면 되죠. 이미지 소비량과 컨셉도 그때부터 다듬으면 되고.”
“…그러니까, 뭐하러 그런 짓을 하냐고. 돌아가면 이미 잘 정착한 팬덤과 컨셉 잡힌 그룹이 있는데.”
“그렇긴 하네요.”
놈은 선선히 동의했다. 그러나 난 속지 않았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만 고려하면 이쪽이 규모는 더 키울 수도 있죠. 이미 검증된 구성원과 곡이 있으니까.”
X발 진짜.
나는 미간을 눌렀다. 이놈과의 대화는 아까부터 이런 식이었다.
이 새끼는 극단적으로 여기 남자고 발광하진 않는다.
단지 돌아가야 한다는 내 논리에서 계속 반박하고, 나도 거기에 다시 반박하는 식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룹의 가능성, 시장 분포, 개인 성취, 이미지, 성적….
말 그대로, 끝장 토론.
‘망할.’
말꼬리 무는 게 몇 시간짼지 모르겠다. 머리가 지근거린다.
배가 고프지도 생리현상이 생기지도 않으니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음, 물이라도 마셔볼래요? 마실 수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됐다.”
나는 이마를 짚었다.
그리고 문득, 원론적인 질문을 떠올렸다.
‘…왜 이걸 하는 거지?’
사실상 이성적으로 결론이 날 리가 없는 문제다.
둘 다 하나의 결론에 승복하자고?
논리적으로 완전무결한 절대적 가치라도 나와야 하는데, 불가능하지 않은가.
예체능 커리어로 비교가 들어가면 모든 게 가능성의 영역일 뿐이니까.
도리어 이 세계가… 약간 우위다.
‘…이게 아니야.’
멍청했군.
이 새끼 기세에 끌려가서는 밀리지 않으려고 쓸데없는 짓을 했다.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청려는 전과 똑같은 자세로 책상 앞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자세를 바꾸었다.
“너도 알 텐데. 이건 결론이 날 문제가 아니야. 애초에 어느 쪽이 더 아이돌로 성공할 수 있는지 재보고 돌아가자고 한 것도 아니고.”
“…….”
애초에 이 새끼는 다 알면서 내 미래 없는 일회용 대상 그룹 계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돌아가는 쪽에 배팅했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이러는 건….
나는 아까 놈이 했던 말들을 떠올렸다.
-원래는 후배님 의견에 그냥 따라줄 생각이었는데, 이렇게 된 이상 후배님 이야기를 좀 더 들어보고 싶네.
그리고 몇 시간을 거처 식은 머리가 결론을 도출해 낸다.
“너… 지금까지 나한테 일방적으로 협조해 줬다고 말하고 싶은 거냐.”
다른 선택지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협조해 줬는데, 뭐 하나 숨겼다고 나한테 추궁당해서 빡쳤냐는 거다.
‘그러니 협조할 이유가 사라졌다고.’
말하면서도 어이가 없다. 시스템이 친히 내려준 GM이라는 게 보통 비밀도 아니고 X발 적반하장이 따로 없군.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러나 놈은 부정하지 않았다.
“글쎄요. 후배님이 목표보다 사람 챙기는 데에 관심이 더 많아 보이길래, 나도 좀 생각해봤다는 거죠.”
놈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랬더니… 말했잖아. 굳이 돌아갈 이유가 없다고.”
“그 관점으로 보면 없겠지.”
나는 숨을 들이켰다. 머리가 좀 맑아졌다.
이놈 뭘 착각하고 있었다.
방금까지 나도 그럴 뻔했고.
“내가 잘못 말했다.”
“음?”
“커리어를 빼고 생각해 봐.”
그건 비교도 불가능할뿐더러, 애초에 1군 아이돌로서의 커리어가 완벽하니 그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하려던 게 아니니까.
나는 이전에, 이 새끼한테 자살 종용당할 때 아가리를 갈겨주고 했던 말을 떠올렸다.
-VTIC은 하락세 좀 맞으면 안 됩니까?
그러니까 말이다.
단순히 숫자로 표현할 수 있는 사회적 성공이 아니라 다른 가치를 말해야 했다.
가령.
“네가 X 같은 일이 벌어져도 현실을 살기로 마음먹고… 멤버 하나 탈퇴한 뒤에 낸 앨범과 경험들 말이야.”
“…….”
“그런 건 안 아깝냐.”
현실에서, 네 개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너한테 의미 있는 게 없냐?
실패하는 순간 삶을 갈아치우려 들지 않고, 계속 그냥 살아보기로 결심한 뒤 했던 경험들이 말이다.
사용해 본 적 없는 새 곡으로 채워 낸 앨범, 처음 해보는 솔로 활동, 답안지를 모르는 상황.
결국 실패를 딛고 일어서는 그룹. 성취감.
새로운 수상 소감.
“너 사실 그런 것도 포함해서 현실로 돌아가기로 마음먹었던 거잖아. 나한테 일방적으로 협조한 게 아니라. 그게 아깝고 그리웠던 거 아니냐고.”
청려는 처음으로 동요했다. 나는 놈이 손을 깍지껴 무릎에 올리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답은 왜곡된다.
“생각해 보니, 그것도 여기서 다시 해보면 되겠네요.”
X발.
나는 머리를 휘저었다.
“다시 할 수 없어서 의미가 있는 거라고…!”
“…….”
“아니, 애초에… 야, 여긴 말 그대로 시스템이 만든 거라고. 들어.”
나는 오늘, 선아현이 기억을 되찾는 과정에서 추리해낸 결과를 놈에게 전달했다.
이 세계는 일종의 상태이상, 왜곡일 뿐이라는 걸.
우리가 처음 상정한 기대대로, 현실은 정말 따로 있을 확률이 높다는 것까지.
“…그러니까, 이건 진짜 시스템 X대로 굴러가는 세상이야.”
나는 거칠게 침대를 쳤다.
“너 진짜 여기서 시스템 끼고 살 생각이냐? GM인지 뭔지 하면서 꿀 빨 수 있으니까?”
“…….”
“넌 X발 시스템 때문에 그 개고생한 새끼가 배알도 없냐.”
“…….”
청려는 한참 대답이 없었다.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천천히 나온 목소리는….
“개고생?”
의아해하고 있었다.
소름이 돋았다.
“그건… 좀 동의하기 힘든데.”
“…!”
“결국 재시작할 수 있어서 성공할 기회를 얻은 건 맞지 않나.”
아, 망할.
“시스템을 없애는 건 이 혜택이 제어하지 못할 타인에게 가는 걸 막기 위한 일이었지. 시스템을 도구화하는 게 불가능하니까.”
“…….”
“물론 불쾌감도 이유 중 하나겠지만… 단순히 그것만으로 움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침음 했다. 이 새끼는 여기서부터가 문제였다.
‘재시작이 일단 이득이라고 정신 개조된 놈인데.’
이걸 어떻게 설득하냐고.
“…….”
다시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전의를 상실한 기분으로 침대에 머리를 기댔다.
네놈 말대로 시간이 무한하다니 편하게 입 좀 닥치고 있어야겠다.
다만 놀라운 점은 잠시 후.
이 새끼가 먼저 입을 열었다는 것이다.
약간 가라앉은 목소리로.
“하지만 감정적인 이유만이라면, 후배님이 돌아가고 싶어 하는 건 알겠어요.”
“…!”
“그래. 후배님 부모님 문제도 있었으니까.”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넌 그때도 말 안 했지.”
내가 기억 오류가 있는 것 같다고 집어서 말했는데도 말이다.
“그건…….”
놈의 말투가 덜 무미건조해진다. 약간 떨렸다.
“…미안해요.”
“…….”
나는 한숨을 참으며 눈을 감았다.
“너는… 네가 상태창 있는 걸 말했으면 내가 무조건 널 의심하고 능률이 박살 났을 거라고 생각하나 본데.”
웃기는 새끼다.
“그냥 믿었을걸.”
“…!”
“물론 쓸데없는 짓 안 하나 감시를 더 하긴 했겠지. 하지만 그것보다 다르게 써먹을 구석을 찾아내려고 기를 쓰고 연구했을 것 같은데.”
능률 박살 안 났을 거라고 개자식아.
“…그래요?”
“어.”
나는 뒤척였다.
“내가 처음부터 상태창 생긴 것까지 너한테 솔직히 다 불었잖아. 내가 말 안 한 건 프라이버시 문제 정도였어.”
“…….”
뒤통수 갈긴 건 너라고.
곧, 순순히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알았어요.”
후.
나는 얼굴을 문질렀다.
저 새끼가 한풀 죽었다.
‘그 외에도 골드2 문제가 있긴 한데….’
나도 안다.
이 새끼한테 권희승이 불쌍하지 않냐 같은 건 안 먹힌다. 그런 걸 고려하면서 움직이는 놈이 아니다. 사람을 자원으로 보는 놈이니까.
하지만, 그 리셋증후군이던 미친 오함마 때로부터 전혀 변하지 않았냐고 물어본다면….
-데려왔어요. (사진)
-콩이가 아파요.
그건 또 아닐 것이다.
하지만 막다른 길목이었다. 이 새끼는 본인이 왜 돌아가고 싶은지 제대로 납득하지 못하면….
‘또 훼방 놓을 수도 있나.’
그건 용납이 안 돼서 말이다.
‘저거 정신머리 고치고 나간다.’
나는 결론을 내리고 눈을 떴다.
그리고 뜬금없이 보았다.
팝업을.
“…!!”
뛰어오를 뻔했다.
팝업이 기쁜 듯이 갱신된다.
거기까진 큰달인가 했다.
이것들이 뜨기 전까지는.
뭐야 이게.
* * *
큰달은 선아현의 앞에서 온갖 쇼를 했다.
시간이 멈추고 문대 형이 협박(?)을 당하고 있다는 말을 쏟아내며 동시에 선아현에게 자신이 누구인지 열심히 떠들었다는 뜻이다.
물론 선아현이 당황했다고 바보가 되진 않았다.
그는 차분히 요구했다.
“…믿을 수 있게, 증거를 보여줘.”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으나 사실 본인도 알았다.
증거는 없었다….
‘으흐흑….’
몸이 없는 게 이렇게 아쉬울 수 없었다.
게임 진행이 멈추자, 본인이 슬슬 인간적인 감각을 되찾고 있다는 것을 까마득히 모르는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한 명을 떠올렸다.
지옥의 질문 순환에 질린 류건우가 큰달의 존재를 상세한 설명과 함께 인증까지 해준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 래빈이를 만날 수 있어?”
문제는 지금 김래빈도 멈춰 있다는 점이지만….
‘뭐 없을까?’
큰달은 열심히 머리를 굴렸다. 그는 열심히 상태창을 돌리며, UI창을 뒤적거렸다.
그리고 그 뒤, 복잡한 알고리즘의 세부 코드 같은 정신세계를….
‘어라?’
그러다가, 지금 ‘환경 설정’ 중이기 때문에 건드릴 수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저 하단에 한 줄, 급하게 추가한 것 같은 기능.
골드?
‘…접속!’
류건우의 추리 쇼를 이미 본 큰달은 당장 그것을 켰다.
그러자 단출한 목록이 뜬다.
그는 바로 깨달았다.
이거였다.
‘형, 함부로 써서 죄송하지만 그래도 형을 도우려는 거니까…!’
그는 당장 두 가지를 전부 구매했다.
새로운 기능이 개방된다.
그는 팝업을 조작했다.
“…!”
그리고 선아현이 고민 끝에 그 팝업에서 입장을 수락하는 순간, 미친 듯이 날아서 서울로 갔다.
그리고 기어코 화보 촬영장에서 수정 메이크업을 받던 김래빈과 접촉했다.
당연하지만, 김래빈은 에러가 아니라 정지한 상태.
‘그렇지만!’
그는 이미 채팅창에 누가 들어와 있는지 알았다.
시스템의 상태이상을 상쇄하는 사람.
김래빈의 접속계에 금색 동그라미가 흡수되며, 에러가 퍼진다.
‘된다!’
선아현과 채팅창, 즉 큰달의 정신인 상태창을 매개로 연결되며 에러가 공유된다.
그리고 새 채팅.
큰달은 환호를 참았다.
* * *
‘…그래.’
나는 채팅방에 정신없이 오간 대화들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충 이해는 했다. 권희승이 눈물의 SOS를 보내고 있는 걸 큰달이 잘해 먹었다는 거군.
그런데 말이다.
‘…필요한 건가, 이게?’
솔직히 이놈들에게 채팅만으로 무슨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모르겠는데.
‘아니, 채팅이 아니라고 해도 당장 이 새끼 두들겨 팬다고 뭐 수가 나오는 게 아니라서.’
아무리 생각해도 큰달이 청려 놈 하는 꼴을 보고 놀라서 급발진한 것 같다. 나는 다소 떨떠름하게 채팅창을 훑었다.
게다가 이놈들 자세한 설명을 못 들었는지 그냥 내가 곤경에 처했다는 것만 아는 것 같다.
나는 약간 고민하다가, 채팅을 보냈다.
생각으로 되는군.
그 순간, 갑자기 상단에 팝업이 뜬다.
음?
다들 상황 파악을 했는지 수긍하는 답장도 오지 않았다.
“…….”
나는 잠깐 고민하다가, 채팅을 쳤다.
이게 뭔 의미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힌트를 얻을지도 모르니까. 안 하는 것보다 낫겠지.
잠시 후, 채팅창이 꽉 채운 글자로 갱신된다.
공연, 앨범, 활동, 숙소, 다양한 대답이 채운다.
구호를 외칠 때 테스타 구호가 떠오른다는 류청우, 위튜브로 아이돌 무대가 알고리즘에 뜰 때 그렇다는 배세진.
그리고 마지막 답변.
공통점은….
강한 그리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순간이다.
감정적 기억.
“…….”
나는 채팅을 입력했다.
골드가 하락했다는 알림창이 또 뜨는 순간.
말소리가 들린다.
“뭘 보는 거지.”
놀랍진 않았다. 일부러 대놓고 하기도 했고.
나는 놈에게 입을 열었다.
“나한테 지금 동료로 채운 채팅창이 하나 뜨는데.”
“음?”
“혹시 모르니 넌 확인하려고 하지 마라. 편법 같으니까.”
GM이 보면 안 되지. 시스템이 막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자 놈이 실소한다.
“철저하네.”
“그래.”
나는 잠시 침묵하다가, 놈에게 물었다.
“여기서 내 상태창 기능 쓸 수 있을까.”
“관리자 허가가 있으면.”
“해보고 싶은데.”
“…….”
청려는 거절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동료 목록을 불러왔다.
나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너는 처음부터 동료 목록에 있었지.”
“그렇죠. GM이니까.”
“그리고 처음부터 기억이 있었어.”
고개를 들었다. 청려가 서 있었다.
“한 번도 각성해 본 적이 없지.”
“…….”
그 기능을 생각해 보자.
애초에 각성에 기억을 돌려주는 기능을 넣은 것은 나와 큰달이 의 설명문에서 뽑아낸 편법 기능이다.
시스템이 정식으로 넣은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게 그토록 거친 방식인 것도 이해할 수 있다. 애초에 상정되지 않은 기능이니까.
‘감정과 기억의 파도가 몰아쳐 오는 것 같다… 고 했던가.’
나는 입을 열었다.
“한번 해볼 생각 없냐.”
“이유는?”
“그게 너한테 새로운 정보를 줄 수도 있으니까.”
“…….”
놈은 잠시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그러나 곧, 묘한 눈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는 동료 신재현의 각성 버튼을 눌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