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40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04화
…선아현이 당시의 이벤트를 기억한다.
놈이 폭탄 발언을 던지고 사라진 후, 나는 내 상태창을 다시 한번 탈탈 터는 수준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선아현이 언급된 곳은 없다.
동료 뽑기든, 우편이든.
‘이 시스템의 영향이 아닌 건가.’
[혹시 비슷한 경험이 이 세상에서도 있던 건…?]
그것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타이밍이 절묘하지.’
종료가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1:2 비율의 랜덤박스 교환 신청. 너무 유사한 상황 아닌가.
게다가 여기 발레리노 선아현이 굳이 ‘금색 공을 벨 울리기 전에 받는’ 독특한 경험을 저렇게 의미심장하게 떠올린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더 가능성이 낮아.’
[그럼 역시 선아현 님이…?]
그래.
나는 그날 촬영이 끝나자마자 테스타 단체 메시지방에 글을 올렸다.
-혹시 기억 되찾기 전에 현실에 관한 잔상 같은 게 스친 사람 있나요
새롭게 들어온 김래빈에게 농담을 쏟아내던 이전 기록을 밀어내며 답변이 쏟아진다.
-차유진 : 저는 그 사람 아니에요!
-류청우 형 : 특별히 그런 건 없었지만 위화감은 느꼈던 것 같아
-큰세진 : ㅎㅎ우리 멤버들 보고 막 친근감 들었는뎅 그것도 쳐주나?
그리고 제법 심사숙고했는지 한발 늦은 대답까지.
-김래빈 : 그러고 보니 처음 딸기 하우스 앞에서 뵀을 때 어딘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 것은 아니니 해당하지 않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렴풋한 느낌을 받은 놈은 있어도 구체적인 장면이나 정보를 떠올린 사람은 없다.
‘흠.’
나는 턱을 눌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배세진 형]
답변이 오지 않았던 놈이다.
“…?”
설마 전화로 해야 할 만큼 거창한 사례라도 있는 건가.
나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전화를 받자마자 이놈은 경험담을 늘어놓는 대신 정곡을 찌른다.
-선아현 이야기야?
“…!”
-우리 중에 남은 건 선아현뿐이니까, 걔잖아. …아니야?
매번 책을 끼고 살더니, 추리 소설도 좀 읽어봤다 이건가.
‘후.’
“맞긴 한데요.”
-…!!
굳이 부정하는 것도 웃기지. 그러자 스피커에서 살짝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린다.
-선아현이 뭘 기억했는데??
“그냥, 별건 아니고요.”
나는 당시 상황을 대강 설명했다. 배세진은 제법 잘 경청했지만, 결국 이렇게 반응했다.
-…그래. 그런데 이런 게 왜 중요한 건진 모르겠어. 어차피 기억 돌려준 다음에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마음대로 그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너 지금까지 다른 애들은 다 정신 차리게 만들었잖아. 선아현한테도 확률은 있는 거 아니야?
놈은 제법 침착한 목소리로 낮게 말을 잇는다.
-내가 보기엔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는 것처럼 보여.
“…….”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렇게 예리해진 거지.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포기라기보단 그냥, 필요가 없으니까요. 선아현이 지금도 잘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발레리노로 성공도 했고.”
-뭐?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무조건 잘살고 있다는 뜻은 아니야.
놈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다음 문장에선 좀 머뭇거렸다.
-…그, 트라우마나 이런 게 없어 보이는 것 때문이라면…… 나도 이해는 가는데.
하지만 다시 목소리가 단호해진다.
-그래도 겉이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속까지 똑같을지는 모르는 거야.
“…….”
-…나도, 그, 내가 힘든 상황일 때 그걸 막 떠들고 다니진 않았으니까.
나는 에서의 놈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과는 상대도 안 될 수준으로 공격적이고 비협조적이던 놈을.
그래서 그냥 성향이 영 못 써먹을 놈인 줄 알았는데, 같이 지내보니 나름의 사정이 있고 장점이 있는 놈이었지.
‘나 참.’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렇긴 하죠. 그럼 앞의 제 말은 철회하고… 그냥, 이놈이 기억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로 하겠습니다.”
-크흠, 그래.
이유를 모르게 뿌듯해하는 것 같던 놈은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반색한다.
또 뭐냐.
-…! 그러면 차라리 선아현을 한 번 더 떠보는 건 어때? 내가 자리 만들어볼 테니까!
“…??”
무슨 수로 말인가.
“형이요?”
-그래. 그러면 너는… 시간 좀 내면 되겠다.
“무슨 시간이요.”
-연습 시간.
* * *
몇 주 후.
위시즈의 이번 곡, ‘Timer’는 완전히 최상위권 알박기에 성공했다.
아직도 일간 차트 3위 안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 미친 유지력은 음주운전했던 놈의 원곡보다도 강력했다.
김래빈의 편곡과 완벽한 노출 전략은 완벽한 시너지를 내며 균형을 이룬 것이다.
‘좋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월.
이제 사람들은 슬슬 위시즈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떠들기 시작했다.
명성과 인기는 아직 티홀릭에 비할 바가 안 된다.
하지만 음원 성적만 차갑게 본다면, 그리고 기획사 이름값을 고려하면, 슬슬 이 사람들에게도 각이 보였기 때문이다.
[위시즈 대상 가능성 있을까?]
[성적으로 끊으면 위시즈가 받는 게 맞아]
[티홀릭이 이렇게 밀리는 건가ㅠ 아쉬워 팬들 고민 많겠다]
[위시즈 다음 앨범 진짜 잘 가지고 와야 할 듯 분열 조짐 심해서…]
적당히 기 싸움 하는 곳에서는 이 정도.
-ㅋㅋㅋㅋ퇴홀릭됐네 하긴 어리고 착한 갓기즈 있는데 왜 아재 빨아ㅠ
-위조즈 음차 주작으로 올라온 거 누가 모름? 레티도 음원 사재기ㅉㅉ 주작 1위ㅊㅋ
└신인한테 열폭해서 루머 만드는 ㅎㅌㅊ인생 ㅊㅋ
-위선즈 판 진짜 시간 조금만 지나면 정병 걸리기 딱 좋다 갠팬 무더기에 편가르기 오져 지금 미친 성적으로 간신히 봉합된 거ㅇㅇ
└이게 다 보충반 탓이다
└갠활 못 받아먹는 개노잼 오윤따리 빠시구나 알지알지
물밑에서는 이런 개판이 서서히 빌드업되고 있을 달이었다.
너무 급속도로 라이징하니 도리어 이런 잡음성 논란이 한발 늦게 따라온다고, 박문대는 생각했다.
그리고 가요계와는 그다지 상관없지만, 연예계에서는 이번 달에 그럭저럭 주목할 만한 이벤트가 하나 있다.
바로 시상식.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제다.
국가 주최로 예술인들에게 상을 주는, 상당히 권위 있는 시상식.
인터넷과 TV 양쪽으로 생방송 송출된 이 행사에는 적당한 수준의 시청자가 붙었다.
-ㅊㅋㅊㅋ
-이세진 나왔어요?ㅠ
-☆☆☆이세진 가끔 카메라가 리액션 컷 비춰줌 질문 그만☆☆☆
-최구 어르신 리액션 좋으시네ㅋㅋㅋ
한창 주가가 상승세인 배우 이세진 출연 소식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좀 늘었을 뿐이다.
최근 핫하다는 젊은 연예인보다는 나이 지긋한 예술인들 사이로 유명 배우 몇 명이 보이는 수준의 라인업이기에 시끌벅적하진 않았다.
1부가 끝나며 한 코너가 나오기 전까지는.
[축하 무대]
-아 기념 공연 나온다
-오오 누구징
-웨일러 예정이래요! 🙂
시상식에서 으레 하는 공연이라 생각한 시청자들이 적당히 격식 있는 라인업을 떠올릴 때.
화면에 무대 위 공연자들을 향한 클로즈업이 들어온다.
그리고 댓글창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
-헐
-뭐야뭐야ㅕ
-실화냐
-내가 본 거 맞음?????
무대 위에는 키 큰 남성 셋이 서 있었다.
다만, 그 면면이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이다.
신인 아이돌 류건우, 발레리노 선아현.
그리고… 배우 이세진.
-??? 이세진 거기 왜 있어
-선아현 이세진 옆 누구야
-미친 류거눜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위시즈가 아니라 왜??
-와 뭐야 이겤ㅋㅋㅋㅋㅋ
-세 분 뭐 하세요
‘후.’
무대에 선 류건우는 약간 흥분한 배세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몇 달 전 이 계획을 떠들 때였다.
-이 시상식 나도 가거든? 내가 듣기로는 선아현도 특별상 받으러 온대.
-예.
-그러면 우리 여기서 공연하자.
-…??
-선아현이랑 기념 공연하자고! 그러면서 관찰 좀 해봐!
…일단, 처음부터 생각해 보자.
현실로 실현될 가능성은… 놀랍지만 있었다.
사실 이 시상식이 워낙 나이로든 위상으로든 시대의 아이콘 수준으로 짬 찬 원로 수상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뽕 네임드 발레리노라도 좀 밀리지.’
특별 무대 자체는 선아현에게 돌아가도 그렇게까지 무리수는 아니었다.
‘문제는 설득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수상자가 무대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위상 높은 공연팀을 부르면 모를까.
박문대는 그게 관건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그가 뭘 손 쓸 것도 없이 쉽게 설득되었다고 한다.
-선아현이… 이런 가요 공연에 관심 생겼었다고 하더라.
…드문 일이었다.
‘무슨 연예 대상도 아니고 타 분야 국뽕 네임드가 가요 커버 무대를 고민도 없이 오케이하냐.’
하지만 그 드문 일은 순조롭게 성사되었고, 결국 사람들은 무대에 선 이 세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
시작 대형을 잡으며, 고개를 돌린 곳에서는 선아현이 서 있다.
그리고 류건우는 마지막 당부를 떠올렸다.
-근데 걔 에이전시가 너무 직접적인 아이돌 무대는 피해달라고 했다던데.
그건 오히려 좋았다.
바로 생각나는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인원이라면.’
이거지.
[음~!]
직후, 스테이지를 밝은 기타 음향과 고전적인 드럼 사운드가 채운다.
익숙하고 친숙한 멜로디.
무대에 선 류건우, 박문대는 알고 있었다.
‘선아현은 유독 현실과 겹쳐지는 상황을 몇 번 경험했지.’
말랑달콤 곡의 흡혈귀 버전 커버라든가, 랜덤박스 바꾸기 따위의 일을.
그리고 박문대는 이번엔 의도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부여해 본 것이다.
무대에 음악이 깔리고,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세 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
-헐
-대대대존잘
자막이 뜬다.
[그대는 놀라워
by 선아현, 이세진, 류건우 (위시즈)]
테스타의 첫 콘서트. 재롱으로 가득했던 유닛 무대의 재현.
그때보다는 좀 더 시상식에 맞도록 격식 있는, 원곡과 유사한 편곡이 약간의 안정감을 가진 채 무대 위로 흐른다.
[마음이 들려요
수줍은 가슴의 떨림이]
파트도 그때와 정확히 똑같이 나눴다.
다른 점은 류건우가 더는 박문대의 몸이 아니라는 것과….
사람들의 기대치.
-미친
-왜 잘해??
-이세진 춤선 무슨 일임
배우가 왜 이렇게 무대를 잘해…?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안무와 보컬, 무대 위 표정 연기를 소화하는 배우 이세진을 보고 압도적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곧 극도로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이세진이 하겠다고 한 게 분명함
-세진오빠 덕업일치 무슨 일이에요진짴ㅋㅋㅠㅠㅠ
-그렇게 위시즈 덕질로 인하트는 이용당하더니 결국 계탔네
-너희집 웰시코기 실물 후기 부탁드립니다
박문대의 대상을 위한 배세진의 적극적 홍보 행동이 일종의 덕질 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가수의 고전 가요를 즐겁게 소화하는 세 사람과, 웃으며 박수를 보내는 예술인들의 리액션을 신나게 관람했다.
아주 유쾌한 반전이라고 생각하면서.
[우우우 놀라워!
그대의 모든 것이]
-와 선아현 미쳤나봐 진짜 잘생겼다
-여권뺏어 얼른
-보컬댄스비주얼 왜 프로무대처럼 셋 밸런스가 오지는 거지요…? 농담이 아니라 데뷔해;
그리고 배우 이세진의 놀라운 취미 역량에 대한 임팩트에 밀려서 하나를 놓쳤다.
[난 매일 두근대!
오늘도 잠들 수 없어요]
아무리 발레리노가 무대 공연을 한다고 해도, 가요나 아이돌 무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연이라는 것을.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한 군데도 어색하지 않도록 딱 맞는 리듬의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그대는 정말 놀라워요]
선아현이 웃으며 턴을 돌았다.
* * *
파란만장한 특별 공연 후.
“꽤 괜찮게 한 것 같아…!”
“예.”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오면서도 배세진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몇 주간 기어코 새벽 시간을 빼거나 화상 통화까지 해가며 동선을 맞추더니, 잘 구현한 게 뿌듯한 모양이다.
그리고 숨을 들이켜며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다.
“…재밌다. 이거지!”
“…….”
이렇게까지 무대뽕이 찬 놈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역시 줬다 뺏는 게 제일 감질 맛나게 하는 건가.
심지어 배세진은 대놓고 선아현에게 물었다.
“크흠, 그, 너도 재밌다고 생각해??”
“…! 아.”
놈은 약간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새롭네요. 그러니까… 느낌이요.”
“그렇지. 오랜만에 하니까 더 그 감명도 깊고!”
그때, 옆에서 발을 동동대던 스탭이 말을 건다.
“저… 세진 씨 저희 시간이.”
“…! 아, 예.”
배세진은 얼굴이 시뻘게진 것을 순식간에 가라앉히고 얼른 자기 자리로 복귀하기 위해 이동했다. 아직 노미네이트가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이 남긴 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
“…….”
의도한 건 아니지만, 선택의 시간이었다.
나는 지난 몇 달의 연습 기간을 돌아보았다.
선아현은 가끔 스케줄 때문에 불출하는 것을 제외하면 성실히 참여하며 별다른 돌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나나 배세진도 거의 떠보는 것은 포기하고, 관찰이나 하고 있었지만….
‘…무대는 확실히, 재밌어했어.’
나는 이놈도 얼굴이 벌겋게 올라서 배세진과 내려오는 걸 확인했다.
발레에 뭐 인생을 다 투신했다고 하지만, 발레에만 감흥을 느끼는 건 또 아닌가 보지.
‘그렇다면.’
…이 정도라면.
나는 스탭에게 스마트폰을 받고, 그 사람이 멀어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빈 복도, 아무도 우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콘서트에서 했었거든.”
“…네?”
“이 무대를 콘서트에서 했었잖아.”
나는 이전, 내가 알던 선아현에게 말하듯이 계속 놈과 눈을 마주치고 중얼거렸다.
“우리 첫 유닛 공연. 반응 괜찮았었지. 너도 재밌어했고.”
“…….”
침묵 후.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코, 콘서트요.”
“그래.”
나는 몇 초 기다렸다. 선아현은 고개를 숙였고, 다른 반응은 없었다.
‘…망했나.’
갑자기 말놓고 개소리해서 당황한 것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대충 ‘죄송하다. 농담 좀 해보려다가 망했다’ 같은 말로 변명할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이었다.
“…그때,”
팔을 잡혔다.
“풍선, 들고 했잖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문대야.”
놈은 웃었다.
나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04화
…선아현이 당시의 이벤트를 기억한다.
놈이 폭탄 발언을 던지고 사라진 후, 나는 내 상태창을 다시 한번 탈탈 터는 수준으로 확인했다.
하지만 어디에도 선아현이 언급된 곳은 없다.
동료 뽑기든, 우편이든.
‘이 시스템의 영향이 아닌 건가.’
그것도 의심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만…….
‘그렇다고 보기엔 너무 타이밍이 절묘하지.’
종료가 얼마 안 남은 상태에서 1:2 비율의 랜덤박스 교환 신청. 너무 유사한 상황 아닌가.
게다가 여기 발레리노 선아현이 굳이 ‘금색 공을 벨 울리기 전에 받는’ 독특한 경험을 저렇게 의미심장하게 떠올린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그게 더 가능성이 낮아.’
그래.
나는 그날 촬영이 끝나자마자 테스타 단체 메시지방에 글을 올렸다.
-혹시 기억 되찾기 전에 현실에 관한 잔상 같은 게 스친 사람 있나요
새롭게 들어온 김래빈에게 농담을 쏟아내던 이전 기록을 밀어내며 답변이 쏟아진다.
-차유진 : 저는 그 사람 아니에요!
-류청우 형 : 특별히 그런 건 없었지만 위화감은 느꼈던 것 같아
-큰세진 : ㅎㅎ우리 멤버들 보고 막 친근감 들었는뎅 그것도 쳐주나?
그리고 제법 심사숙고했는지 한발 늦은 대답까지.
-김래빈 : 그러고 보니 처음 딸기 하우스 앞에서 뵀을 때 어딘지 낯이 익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다만 구체적인 이미지가 떠오른 것은 아니니 해당하지 않는 듯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어렴풋한 느낌을 받은 놈은 있어도 구체적인 장면이나 정보를 떠올린 사람은 없다.
‘흠.’
나는 턱을 눌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전화가 걸려왔다.
답변이 오지 않았던 놈이다.
“…?”
설마 전화로 해야 할 만큼 거창한 사례라도 있는 건가.
나는 수신 버튼을 눌렀다.
그러나 전화를 받자마자 이놈은 경험담을 늘어놓는 대신 정곡을 찌른다.
-선아현 이야기야?
“…!”
-우리 중에 남은 건 선아현뿐이니까, 걔잖아. …아니야?
매번 책을 끼고 살더니, 추리 소설도 좀 읽어봤다 이건가.
‘후.’
“맞긴 한데요.”
-…!!
굳이 부정하는 것도 웃기지. 그러자 스피커에서 살짝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들린다.
-선아현이 뭘 기억했는데??
“그냥, 별건 아니고요.”
나는 당시 상황을 대강 설명했다. 배세진은 제법 잘 경청했지만, 결국 이렇게 반응했다.
-…그래. 그런데 이런 게 왜 중요한 건진 모르겠어. 어차피 기억 돌려준 다음에 직접 물어보면 되잖아.
“마음대로 그게 되는 건 아니니까요.”
-너 지금까지 다른 애들은 다 정신 차리게 만들었잖아. 선아현한테도 확률은 있는 거 아니야?
놈은 제법 침착한 목소리로 낮게 말을 잇는다.
-내가 보기엔 시도도 안 하고 포기하는 것처럼 보여.
“…….”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렇게 예리해진 거지.
나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포기라기보단 그냥, 필요가 없으니까요. 선아현이 지금도 잘사는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요. 발레리노로 성공도 했고.”
-뭐? 사회적으로 성공했다고 해서 무조건 잘살고 있다는 뜻은 아니야.
놈은 단호하게 말했지만, 다음 문장에선 좀 머뭇거렸다.
-…그, 트라우마나 이런 게 없어 보이는 것 때문이라면…… 나도 이해는 가는데.
하지만 다시 목소리가 단호해진다.
-그래도 겉이 그렇게 보인다고 해서 속까지 똑같을지는 모르는 거야.
“…….”
-…나도, 그, 내가 힘든 상황일 때 그걸 막 떠들고 다니진 않았으니까.
나는 에서의 놈의 모습을 떠올렸다.
지금과는 상대도 안 될 수준으로 공격적이고 비협조적이던 놈을.
그래서 그냥 성향이 영 못 써먹을 놈인 줄 알았는데, 같이 지내보니 나름의 사정이 있고 장점이 있는 놈이었지.
‘나 참.’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렇긴 하죠. 그럼 앞의 제 말은 철회하고… 그냥, 이놈이 기억이 있는지 의심스럽다로 하겠습니다.”
-크흠, 그래.
이유를 모르게 뿌듯해하는 것 같던 놈은 잠시 침묵하다가, 갑자기 반색한다.
또 뭐냐.
-…! 그러면 차라리 선아현을 한 번 더 떠보는 건 어때? 내가 자리 만들어볼 테니까!
“…??”
무슨 수로 말인가.
“형이요?”
-그래. 그러면 너는… 시간 좀 내면 되겠다.
“무슨 시간이요.”
-연습 시간.
* * *
몇 주 후.
위시즈의 이번 곡, ‘Timer’는 완전히 최상위권 알박기에 성공했다.
아직도 일간 차트 3위 안에 끈질기게 붙어 있는 미친 유지력은 음주운전했던 놈의 원곡보다도 강력했다.
김래빈의 편곡과 완벽한 노출 전략은 완벽한 시너지를 내며 균형을 이룬 것이다.
‘좋아.’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월.
이제 사람들은 슬슬 위시즈의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도 떠들기 시작했다.
명성과 인기는 아직 티홀릭에 비할 바가 안 된다.
하지만 음원 성적만 차갑게 본다면, 그리고 기획사 이름값을 고려하면, 슬슬 이 사람들에게도 각이 보였기 때문이다.
적당히 기 싸움 하는 곳에서는 이 정도.
-ㅋㅋㅋㅋ퇴홀릭됐네 하긴 어리고 착한 갓기즈 있는데 왜 아재 빨아ㅠ
-위조즈 음차 주작으로 올라온 거 누가 모름? 레티도 음원 사재기ㅉㅉ 주작 1위ㅊㅋ
└신인한테 열폭해서 루머 만드는 ㅎㅌㅊ인생 ㅊㅋ
-위선즈 판 진짜 시간 조금만 지나면 정병 걸리기 딱 좋다 갠팬 무더기에 편가르기 오져 지금 미친 성적으로 간신히 봉합된 거ㅇㅇ
└이게 다 보충반 탓이다
└갠활 못 받아먹는 개노잼 오윤따리 빠시구나 알지알지
물밑에서는 이런 개판이 서서히 빌드업되고 있을 달이었다.
너무 급속도로 라이징하니 도리어 이런 잡음성 논란이 한발 늦게 따라온다고, 박문대는 생각했다.
그리고 가요계와는 그다지 상관없지만, 연예계에서는 이번 달에 그럭저럭 주목할 만한 이벤트가 하나 있다.
바로 시상식.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제다.
국가 주최로 예술인들에게 상을 주는, 상당히 권위 있는 시상식.
인터넷과 TV 양쪽으로 생방송 송출된 이 행사에는 적당한 수준의 시청자가 붙었다.
-ㅊㅋㅊㅋ
-이세진 나왔어요?ㅠ
-☆☆☆이세진 가끔 카메라가 리액션 컷 비춰줌 질문 그만☆☆☆
-최구 어르신 리액션 좋으시네ㅋㅋㅋ
한창 주가가 상승세인 배우 이세진 출연 소식에 기웃거리는 사람이 좀 늘었을 뿐이다.
최근 핫하다는 젊은 연예인보다는 나이 지긋한 예술인들 사이로 유명 배우 몇 명이 보이는 수준의 라인업이기에 시끌벅적하진 않았다.
1부가 끝나며 한 코너가 나오기 전까지는.
-아 기념 공연 나온다
-오오 누구징
-웨일러 예정이래요! 🙂
시상식에서 으레 하는 공연이라 생각한 시청자들이 적당히 격식 있는 라인업을 떠올릴 때.
화면에 무대 위 공연자들을 향한 클로즈업이 들어온다.
그리고 댓글창은 비명으로 가득 찼다.
-????
-헐
-뭐야뭐야ㅕ
-실화냐
-내가 본 거 맞음?????
무대 위에는 키 큰 남성 셋이 서 있었다.
다만, 그 면면이 전혀 예상치 못한 조합이다.
신인 아이돌 류건우, 발레리노 선아현.
그리고… 배우 이세진.
-??? 이세진 거기 왜 있어
-선아현 이세진 옆 누구야
-미친 류거눜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위시즈가 아니라 왜??
-와 뭐야 이겤ㅋㅋㅋㅋㅋ
-세 분 뭐 하세요
‘후.’
무대에 선 류건우는 약간 흥분한 배세진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몇 달 전 이 계획을 떠들 때였다.
-이 시상식 나도 가거든? 내가 듣기로는 선아현도 특별상 받으러 온대.
-예.
-그러면 우리 여기서 공연하자.
-…??
-선아현이랑 기념 공연하자고! 그러면서 관찰 좀 해봐!
…일단, 처음부터 생각해 보자.
현실로 실현될 가능성은… 놀랍지만 있었다.
사실 이 시상식이 워낙 나이로든 위상으로든 시대의 아이콘 수준으로 짬 찬 원로 수상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국뽕 네임드 발레리노라도 좀 밀리지.’
특별 무대 자체는 선아현에게 돌아가도 그렇게까지 무리수는 아니었다.
‘문제는 설득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수상자가 무대를 할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적당히 위상 높은 공연팀을 부르면 모를까.
박문대는 그게 관건일 것이라 생각했으나, 의외로 그가 뭘 손 쓸 것도 없이 쉽게 설득되었다고 한다.
-선아현이… 이런 가요 공연에 관심 생겼었다고 하더라.
…드문 일이었다.
‘무슨 연예 대상도 아니고 타 분야 국뽕 네임드가 가요 커버 무대를 고민도 없이 오케이하냐.’
하지만 그 드문 일은 순조롭게 성사되었고, 결국 사람들은 무대에 선 이 세 사람을 보게 된 것이다.
“…….”
시작 대형을 잡으며, 고개를 돌린 곳에서는 선아현이 서 있다.
그리고 류건우는 마지막 당부를 떠올렸다.
-근데 걔 에이전시가 너무 직접적인 아이돌 무대는 피해달라고 했다던데.
그건 오히려 좋았다.
바로 생각나는 무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인원이라면.’
이거지.
직후, 스테이지를 밝은 기타 음향과 고전적인 드럼 사운드가 채운다.
익숙하고 친숙한 멜로디.
무대에 선 류건우, 박문대는 알고 있었다.
‘선아현은 유독 현실과 겹쳐지는 상황을 몇 번 경험했지.’
말랑달콤 곡의 흡혈귀 버전 커버라든가, 랜덤박스 바꾸기 따위의 일을.
그리고 박문대는 이번엔 의도적으로 비슷한 경험을 부여해 본 것이다.
무대에 음악이 깔리고, 청바지에 흰 티를 입은 세 명에게 스포트라이트가 비춘다.
-헐
-대대대존잘
자막이 뜬다.
by 선아현, 이세진, 류건우 (위시즈)]
테스타의 첫 콘서트. 재롱으로 가득했던 유닛 무대의 재현.
그때보다는 좀 더 시상식에 맞도록 격식 있는, 원곡과 유사한 편곡이 약간의 안정감을 가진 채 무대 위로 흐른다.
수줍은 가슴의 떨림이]
파트도 그때와 정확히 똑같이 나눴다.
다른 점은 류건우가 더는 박문대의 몸이 아니라는 것과….
사람들의 기대치.
-미친
-왜 잘해??
-이세진 춤선 무슨 일임
배우가 왜 이렇게 무대를 잘해…?
사람들은 천연덕스럽게 안무와 보컬, 무대 위 표정 연기를 소화하는 배우 이세진을 보고 압도적 혼란에 휩싸였다.
그리고 곧 극도로 유쾌해지기 시작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이거 이세진이 하겠다고 한 게 분명함
-세진오빠 덕업일치 무슨 일이에요진짴ㅋㅋㅠㅠㅠ
-그렇게 위시즈 덕질로 인하트는 이용당하더니 결국 계탔네
-너희집 웰시코기 실물 후기 부탁드립니다
박문대의 대상을 위한 배세진의 적극적 홍보 행동이 일종의 덕질 밈이 되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여가수의 고전 가요를 즐겁게 소화하는 세 사람과, 웃으며 박수를 보내는 예술인들의 리액션을 신나게 관람했다.
아주 유쾌한 반전이라고 생각하면서.
그대의 모든 것이]
-와 선아현 미쳤나봐 진짜 잘생겼다
-여권뺏어 얼른
-보컬댄스비주얼 왜 프로무대처럼 셋 밸런스가 오지는 거지요…? 농담이 아니라 데뷔해;
그리고 배우 이세진의 놀라운 취미 역량에 대한 임팩트에 밀려서 하나를 놓쳤다.
오늘도 잠들 수 없어요]
아무리 발레리노가 무대 공연을 한다고 해도, 가요나 아이돌 무대와는 전혀 다른 종류의 공연이라는 것을.
그런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한 군데도 어색하지 않도록 딱 맞는 리듬의 무대를 보여주고 있다는 것을.
선아현이 웃으며 턴을 돌았다.
* * *
파란만장한 특별 공연 후.
“꽤 괜찮게 한 것 같아…!”
“예.”
무대 아래로 뛰어 내려오면서도 배세진은 웃음을 감추지 못했다.
지난 몇 주간 기어코 새벽 시간을 빼거나 화상 통화까지 해가며 동선을 맞추더니, 잘 구현한 게 뿌듯한 모양이다.
그리고 숨을 들이켜며 이렇게까지 말하는 것이다.
“…재밌다. 이거지!”
“…….”
이렇게까지 무대뽕이 찬 놈을 보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역시 줬다 뺏는 게 제일 감질 맛나게 하는 건가.
심지어 배세진은 대놓고 선아현에게 물었다.
“크흠, 그, 너도 재밌다고 생각해??”
“…! 아.”
놈은 약간 멍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새롭네요. 그러니까… 느낌이요.”
“그렇지. 오랜만에 하니까 더 그 감명도 깊고!”
그때, 옆에서 발을 동동대던 스탭이 말을 건다.
“저… 세진 씨 저희 시간이.”
“…! 아, 예.”
배세진은 얼굴이 시뻘게진 것을 순식간에 가라앉히고 얼른 자기 자리로 복귀하기 위해 이동했다. 아직 노미네이트가 남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놈이 남긴 말이 마음에 걸리는지,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오랜만…?”
“…….”
의도한 건 아니지만, 선택의 시간이었다.
나는 지난 몇 달의 연습 기간을 돌아보았다.
선아현은 가끔 스케줄 때문에 불출하는 것을 제외하면 성실히 참여하며 별다른 돌출 행동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사실 나나 배세진도 거의 떠보는 것은 포기하고, 관찰이나 하고 있었지만….
‘…무대는 확실히, 재밌어했어.’
나는 이놈도 얼굴이 벌겋게 올라서 배세진과 내려오는 걸 확인했다.
발레에 뭐 인생을 다 투신했다고 하지만, 발레에만 감흥을 느끼는 건 또 아닌가 보지.
‘그렇다면.’
…이 정도라면.
나는 스탭에게 스마트폰을 받고, 그 사람이 멀어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다.
그리고 빈 복도, 아무도 우릴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입을 열었다.
“콘서트에서 했었거든.”
“…네?”
“이 무대를 콘서트에서 했었잖아.”
나는 이전, 내가 알던 선아현에게 말하듯이 계속 놈과 눈을 마주치고 중얼거렸다.
“우리 첫 유닛 공연. 반응 괜찮았었지. 너도 재밌어했고.”
“…….”
침묵 후.
떨리는 목소리가 들린다.
“코, 콘서트요.”
“그래.”
나는 몇 초 기다렸다. 선아현은 고개를 숙였고, 다른 반응은 없었다.
‘…망했나.’
갑자기 말놓고 개소리해서 당황한 것 외에는 설명이 불가능했다.
나는 쓴 입맛을 다시며 몸을 돌렸다.
대충 ‘죄송하다. 농담 좀 해보려다가 망했다’ 같은 말로 변명할 생각을 하면서.
그 순간이었다.
“…그때,”
팔을 잡혔다.
“풍선, 들고 했잖아….”
나는 고개를 돌렸다.
“…문대야.”
놈은 웃었다.
나는 들고 있던 스마트폰을 떨어뜨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