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9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8화
류건우는 전광판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전광판에서는 계속 말이 흘러나왔다.
[우리 건우 아이돌 하고 싶다더니, 정말 이렇게 프로그램까지 나와서 멋진 모습 보여주고 있는 줄은 엄마 아빠 다 몰랐어.]
‘정말…!’
왜 방송국들이란 어느 세대든 변치 않고 저토록 말초적인 저차원 자극을 선호한단 말인가.
배세진은 마스크 아래에서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가 그러든 말든, ‘류건우 감동했나 봐’ 따위의 억측은 댓글을 타고 잘 번졌다.
[꼭 데뷔해서 얼굴 보자. 파이팅, 우리 아들!]
류건우는 양손을 꽉 쥔 채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배세진이 느끼기엔, 잔인할 정도로 천천히 전광판이 넘어간다.
‘하….’
신재현의 어머니가 남긴 짧은 메시지가 지나가고, 감동적인 BGM이 부드럽게 촬영장을 적시며 사장의 멘트가 나온다.
[이렇게 스테이지 위에서 가족분들의 메시지를 확인한 소감을 부탁드립니다.]
카메라가 마이크를 받아드는 몇몇 참가자들을 순서대로 클로즈업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코를 삼키는 김래빈은 제법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지만, 마이크가 넘어가며 마침내 류건우에게 도달한 순간이 문제였다.
류건우는 마이크를 양손으로 잡고, 생방송에서 간신히 허락될 수준으로 길게 침묵했다.
그리고서야 입을 열었다.
[…감사합니다.]
그는 깊게 고개를 숙인 뒤, 제법 씩씩하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동요가 묻어난다.
[꼭 데뷔해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부모님께인지 대중에게인지 알 수 없는 인사말이나, 감정에 떨리는 것 같아서 반응은 좋았다.
아아아~!
안타까운 듯 귀여워하는 것 같은 감탄사들.
하지만 진실을 아는 배세진은 착잡했다.
‘힘들어 보이잖아.’
감격해서 입술을 악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슬픔이나 충격을 참는 것이겠….
…어?
‘잠깐.’
배세진은 순간 감상에 빠질 뻔한 자신을 되찾고, 객관적으로 다시 그 표정을 봤다.
입술 안을 씹고 있는 박문대.
저거 그냥 순수하게 이 악물고 있는 거다.
속된 말로 개빡침의 표현.
“…??”
‘쟤 머리끝까지… 열받은 것 같은데…?’
스테이지의 류건우는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바로 섰다.
영문을 알 수 없게도 의욕으로 들끓는 눈이었다.
-부모님 오랜만에 봬서 기합 들어갔나봐ㅠㅠ 그래 모범생 이 맛에 좋아하는 거지
-건 우 제 발 데 뷔 해
-이세진 자기가 왜 감격해서 넋 나갔냐고 개웃기네 진짴ㅋㅋㅋㅋ
덕분에 배세진이 혼란에 빠진 것과 상관없이, 파이널은 착착 또 나아간다.
사장은 관계자들과 심사숙고해 결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미래를 아는 누군가의 입김이 방향성을 정한 합격자 목록을 발표한다.
적당한 뜸 들임과 함께 하나씩 발표되는 인원.
[신재현.]
하나씩 불리고 연습생이 소감을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류건우, 진채율, 정우단, 차유진, 오윤신….
[이 친구는 고민을 많이 했는데, 이렇게 단기간에 동료들에게 많은 신임을 얻은 것을 크게 봤습니다.]
류청우까지.
7명으로 홀수가 딱 맞자, 사람들이 설마 여기서 끝이냐고 불안해하며 참가자들의 얼굴에서도 기대가 죽었을 때였다.
‘더없이 값진 경험이었지!’
아니, 정확히는 벌써 여운에 휩싸인 김래빈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의 얼굴이 그랬을 때.
사장이 굉장히 극적인 것처럼 아닌 척 뜸을 들이다가 마지막 추가 합격자를 말한다.
차기를 위해 묶어둘 생각이었으나, ‘오케스트라 콜라보’를 거친 뒤 그룹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을 참지 못하고 한 선택.
[김래빈.]
[…!?]
[그룹의 마지막 멤버입니다.]
거의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한 김래빈은 마이크를 거꾸로 받을 뻔했다.
본인 혼자만 아닌 밤 중의 홍두깨였다.
[저, 저저저가? ……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래빈이 표정 왜 저랰ㅋㅋㅋㅋ
-강의에서 교수님이 아는 척했을 때 내 얼굴 같은데요
김래빈의 살벌한 인상이 찐빵처럼 변하는 것이 큰 웃음을 주며 감동적으로 발표가 마무리된다.
VTIC 절반, 테스타 절반.
‘동점이네.’
가장 처음으로 불린 VTIC의 리더는 박문대와의 내기를 떠올리며 짧은 감흥을 느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파이널은 성공적이었다.
두 명의 추가 탈락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불러왔지만, 어쨌든 사장이 제법 괜찮게 뽑았다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냉정히 말하자면 탈락자도 잘 잘라냈다는 말이 나올 정도.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미 한번 검증된 아이돌 멤버들의 조합이었으니까.
[역대급 조합이라는 말 나오는 돌 서바이벌]
[방급 끝난 레티 서바 최종 합격자 명단]
[와이즈 새 그룹 이름 떴다]
그러나 꽃이 휘날리고 폭죽이 터지는 스테이지 위에서 마침내 썩 괜찮은 스타트를 끊은 테스타의 박문대는….
여전히 머릿속이 차갑게 들끓고 있었다.
‘X발 새끼가.’
모종의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 * *
-큰세진 : 문대문대 고생했다 개 멋졌음 (엄지 이모티콘) 오늘 푹 쉬고!
나는 놈이 첨부한 치킨 기프티콘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러겠다’는 답변을 보낼 때.
슬그머니 팝업이 뜬다.
[형… 괜찮아요?]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안 괜찮은데.”
[]
차마 아무 단어도 칠 수 없다는 듯이 팝업이 멈춘다.
무슨 추측을 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내가 괜찮지 않은 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
개짓거리에 낚였다는 빡침 때문이지.
“거짓말이야.”
[…예?]
“부모님이 살아 있는 건 거짓말이라고.”
이딴 농락에 걸리다니.
[!!!]
나는 미친 듯이 진동하다가 오타를 쏟아내는 팝업을 무시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앞뒤가 안 맞아.”
논리적 허점이 너무 많다.
“애초에 통화가 안 되는 거면 모를까, 메일을 받을 수 있는 거면 인터넷이 된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굳이 음성 통화로 연결할 필요는 없어. 비디오로 받거나 화상통화 요구가 낫지.”
아무리 인터넷이 느려도 하다못해 사진 한 장 보내지 못할 리가 있는가.
시간 텀을 두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반응이 온다.
[부모님께서 얼굴 공개를 거절하신 걸 수도 있지 않을까요…?]
“변명은 그걸로 나오겠지. 하지만 내가 의심하는 건 그게 다가 아니라.”
나는 스마트폰을 껐다.
처음에는 충격 때문에 추리하지 못했으나, 아까 ‘남극 기지에서 온 편지’라는 전광판 내역을 본 순간 든 생각이 있다.
“우리 부모님이 연구원이 맞았나?”
[!??]
“내 머리에서는 당연히 맞다고 넘겼는데, 그런 것 치고는 부모님 직장과 관련된 추억이 전혀 없어.”
갑자기 집에 들어오자마자 연구원이 아니게 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다못해 근무지에 대한 감상이라도 남아 있을 법한데, 그냥 출근하시고 퇴근하셨다는 것뿐이지.”
슬그머니 끝에서야 덧붙인 설정처럼 말이다.
“정상은 아니야. 절대.”
팝업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으나, 곧 작게 글을 쏟아냈다.
[사실… 저도 비슷한 궁금증은 있었어요. 연구원은 안정적인 직장이잖아요. 그런데도 형이 돈을 물려받으셨던 것 같진 않아서…….]
“그래.”
그것도 사실 의심했다. 연구원이면 고소득 직종인데, 도벽이든 주식이든 날려 먹은 기억도 없는데 내가 물려받은 재산이 거의 없다는 게.
거기에 의문을 가진 기억도 없다는 것까지.
“그러니까… 이곳의 남극 기지 연구원 부모님은 거짓말일 확률이 높아.”
[…….]
“만들어낸 거지.”
시스템이 폭주하면서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 안에 살짝 ‘연구원’ 명제를 심어서 자연스럽게 납득하도록 만든 게 아닌가.
진짜 박문대와 만났을 당시의 내 기억도 날려 먹었으니 그 정도 암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진 않은 것 같고.”
[…형이 지금 자발적으로 눈치채셨으니까요?]
“그래. 아마 직접 만나면 위화감이 드니까 굳이 남극에 보내서 못 보게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연구원이 된 부모님의 사진 등을 접하면 더 큰 위화감을 느낄까 봐 아예 시각 정보를 차단한 것 아닌가.
팝업이 뒤틀린다.
[너무 비열하게 못됐어요.]
시스템이 개짓거리 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새삼 그럴 것도 없다. 단지 이렇게 낚인 게 X 같을 뿐이다.
‘남의 기억 건드렸다는 건 더 빡치고.’
그것도… 이런, 얼마 남지도 않은 기억을 말이다.
“…….”
아니, 감상에 빠지지 말자. 그럴 시간은 없다.
나는 추리를 계속했고, 큰달도 계속 바쁘게 본인 추리를 말한다.
[그렇다면… 그럼 여기는 확실히 과거가 아닌 거죠? 꿈 같은 걸까요? 제가 만들었던 그 백일몽처럼요.]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확실하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현실에서 이미 없는 사람은 못 나오는 걸 보니까, 아예 과거로 돌아온 건 아닐 거야.”
애초부터 온갖 설정값이 뒤죽박죽이었으니까.
[…….]
“좋은 일일 수도 있어.”
동기부여는 확실할 테니 말이다.
[형.]
결정을 내렸다.
나는 해당 사항을 청려에게 굳이 숨기지 않고 공유했다.
이곳의 불완전함에 대해서.
이제 곧 철거될 촬영 세트장 대기실에 앉아 있던 놈은 내 말을 경청한 뒤, 별 동요도 없이 평론했다.
“결국 우리 목표에 변화는 없네요. 맞죠?”
“…그렇긴 하지만, 뭘 선택할 때 좀 더 신중해질 필요는 있겠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에 오류가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지점이 달라지며 나비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한 번씩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는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청려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후배님. 진행에 필요한 정보값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아요. 기억이라는 원래 쌓일수록 왜곡되기 마련이라.”
“…….”
“경계해야 할 건… 기억 때문에 생기는 부가적 효과죠.”
뭐.
“감정.”
“…!”
“정보값, 이성, 판단력만 있으면 실수할 일이 없지. 특별히 잘못 선택할 건 없어요. 결국 하나만 고르면 되니까.”
놈은 선언했다.
“목표만.”
“…….”
“그렇죠?”
“그래.”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만, 이놈과 대화하는 것으로 머리가 좀 깨끗해진 것 같았다.
나는 이를 갈며 선언했다.
“무조건 빨리 대상 받고 여길 뜬다. 그게 목표고.”
“후배님은 당연한 말을 한 번 더 하는 게 버릇인가 봐요.”
시끄럽다.
나는 몸을 곧게 펴고 자리에 앉았다.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자.
“일단… 우리 데뷔 컨셉 말인데.”
놈의 얼굴에서 실실거림이 약간 가신다. 나는 팔짱을 꼈다.
“VTIC 1집 컨셉은 세계관 빌드업 용이었지.”
“테스타도 다르진 않을 텐데요.”
“글쎄. 우린 음원 순위가 높아서.”
“하하, 순간 시청률이 두 자리가 나온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답네요.”
서바이벌 아니면 그 등수 꿈도 못 꿨다고 말하고 싶은 거로군.
“…아무튼, 너희 건 중장기용이라 단기용으론 너무 마이너하지 않겠냐는 거지.”
“글쎄요. 해외에선 확실히 반응이 좋았는데.”
…그랬나? 내가 남자 아이돌을 찍으면 찍었지 굳이 데뷔곡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의상 분석할 일은 없어서 말이다.
“정확히 어떤 컨셉인데.”
“사후세계요.”
“큽.”
사레들릴 뻔했다.
나는 간신히 대꾸했다.
“너무 과해.”
“하하, 테스타한테 그런 말을?”
“…….”
“투자가 충분하면 과할 건 없어요. 중요한 건 완성도지.”
[저거 형이 하던 소리….]
어, 아니까 조용히 해라.
“어차피 이 시기에 대중성을 노리는 건 썩 좋은 전략이 아니기도 하고.”
청려가 턱을 두드리며 말을 계속했다.
“LeTi가 전통적으로 해외 KPOP 팬덤에서 지지도가 괜찮았으니까 그쪽을 잡고 가야죠.”
“해외를.”
“네. 위튜브에 업로드한 영문 자막판이 조회수가 꽤 잘 나와서. 내가 서바이벌로 받아봤던 것 중에 제일 괜찮은 성적표기도 하고.”
놈이 웃는다.
“이대로 해외를 잡고 음반 판매량 기반으로 가죠.”
“잠깐.”
어딜 마음대로 정하냐.
“음원만 잘 뽑으면 충분히 국내에서도 성적 낼 수 있어. 아직 남자 아이돌 대중성도 괜찮은 시기 아닌가?”
몇 년 후에야 견고한 1군이 아니고서야 음원에서 선전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여긴 아직 성적 내는 놈들이 꽤 있는 시기 아닌가.
“그래서 안 된다는 건데.”
뭐?
청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도로 심드렁함이 올라온다.
“효율이 최악이거든요.”
“…….”
“이미 대중성으로 볼 재미는 다 보고 있는 그룹이 있잖아요.”
그리고 나는 이놈이 누굴 이야기하는 건지 깨달았다.
“…티홀릭.”
현실에서는 예능으로 그룹을 유지 중인 원로 아이돌일 뿐이다.
우리도 그놈들의 예능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음악 성적으로는 더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며 예능감으로 화제성을 채우는 오래된 그룹.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여기는… 티홀릭이 한창 활발히 활동할 시기다.
“네.”
청려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상대는 최전성기 티홀릭이에요.”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8화
류건우는 전광판을 돌아보지 않았다. 하지만 전광판에서는 계속 말이 흘러나왔다.
‘정말…!’
왜 방송국들이란 어느 세대든 변치 않고 저토록 말초적인 저차원 자극을 선호한단 말인가.
배세진은 마스크 아래에서 이를 갈았다. 그리고 그가 그러든 말든, ‘류건우 감동했나 봐’ 따위의 억측은 댓글을 타고 잘 번졌다.
류건우는 양손을 꽉 쥔 채로 고개를 들지 않았다. 그리고 배세진이 느끼기엔, 잔인할 정도로 천천히 전광판이 넘어간다.
‘하….’
신재현의 어머니가 남긴 짧은 메시지가 지나가고, 감동적인 BGM이 부드럽게 촬영장을 적시며 사장의 멘트가 나온다.
카메라가 마이크를 받아드는 몇몇 참가자들을 순서대로 클로즈업했다.
눈물을 글썽이며 코를 삼키는 김래빈은 제법 안쓰러우면서도 귀여웠지만, 마이크가 넘어가며 마침내 류건우에게 도달한 순간이 문제였다.
류건우는 마이크를 양손으로 잡고, 생방송에서 간신히 허락될 수준으로 길게 침묵했다.
그리고서야 입을 열었다.
그는 깊게 고개를 숙인 뒤, 제법 씩씩하게 고개를 들었다.
하지만 목소리에는 동요가 묻어난다.
부모님께인지 대중에게인지 알 수 없는 인사말이나, 감정에 떨리는 것 같아서 반응은 좋았다.
아아아~!
안타까운 듯 귀여워하는 것 같은 감탄사들.
하지만 진실을 아는 배세진은 착잡했다.
‘힘들어 보이잖아.’
감격해서 입술을 악물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슬픔이나 충격을 참는 것이겠….
…어?
‘잠깐.’
배세진은 순간 감상에 빠질 뻔한 자신을 되찾고, 객관적으로 다시 그 표정을 봤다.
입술 안을 씹고 있는 박문대.
저거 그냥 순수하게 이 악물고 있는 거다.
속된 말로 개빡침의 표현.
“…??”
‘쟤 머리끝까지… 열받은 것 같은데…?’
스테이지의 류건우는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바로 섰다.
영문을 알 수 없게도 의욕으로 들끓는 눈이었다.
-부모님 오랜만에 봬서 기합 들어갔나봐ㅠㅠ 그래 모범생 이 맛에 좋아하는 거지
-건 우 제 발 데 뷔 해
-이세진 자기가 왜 감격해서 넋 나갔냐고 개웃기네 진짴ㅋㅋㅋㅋ
덕분에 배세진이 혼란에 빠진 것과 상관없이, 파이널은 착착 또 나아간다.
사장은 관계자들과 심사숙고해 결정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미래를 아는 누군가의 입김이 방향성을 정한 합격자 목록을 발표한다.
적당한 뜸 들임과 함께 하나씩 발표되는 인원.
하나씩 불리고 연습생이 소감을 말할 때마다 사람들이 환호한다.
류건우, 진채율, 정우단, 차유진, 오윤신….
류청우까지.
7명으로 홀수가 딱 맞자, 사람들이 설마 여기서 끝이냐고 불안해하며 참가자들의 얼굴에서도 기대가 죽었을 때였다.
‘더없이 값진 경험이었지!’
아니, 정확히는 벌써 여운에 휩싸인 김래빈을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들의 얼굴이 그랬을 때.
사장이 굉장히 극적인 것처럼 아닌 척 뜸을 들이다가 마지막 추가 합격자를 말한다.
차기를 위해 묶어둘 생각이었으나, ‘오케스트라 콜라보’를 거친 뒤 그룹의 완성도에 대한 욕심을 참지 못하고 한 선택.
거의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한 김래빈은 마이크를 거꾸로 받을 뻔했다.
본인 혼자만 아닌 밤 중의 홍두깨였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래빈이 표정 왜 저랰ㅋㅋㅋㅋ
-강의에서 교수님이 아는 척했을 때 내 얼굴 같은데요
김래빈의 살벌한 인상이 찐빵처럼 변하는 것이 큰 웃음을 주며 감동적으로 발표가 마무리된다.
VTIC 절반, 테스타 절반.
‘동점이네.’
가장 처음으로 불린 VTIC의 리더는 박문대와의 내기를 떠올리며 짧은 감흥을 느꼈다.
그래서 종합적으로 결론을 내리자면, 파이널은 성공적이었다.
두 명의 추가 탈락자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불러왔지만, 어쨌든 사장이 제법 괜찮게 뽑았다는 말이 지배적이었다.
사실 냉정히 말하자면 탈락자도 잘 잘라냈다는 말이 나올 정도.
당연한 일일지도 몰랐다. 이미 한번 검증된 아이돌 멤버들의 조합이었으니까.
그러나 꽃이 휘날리고 폭죽이 터지는 스테이지 위에서 마침내 썩 괜찮은 스타트를 끊은 테스타의 박문대는….
여전히 머릿속이 차갑게 들끓고 있었다.
‘X발 새끼가.’
모종의 확신을 했기 때문이다.
* * *
-큰세진 : 문대문대 고생했다 개 멋졌음 (엄지 이모티콘) 오늘 푹 쉬고!
나는 놈이 첨부한 치킨 기프티콘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러겠다’는 답변을 보낼 때.
슬그머니 팝업이 뜬다.
나는 담담히 대답했다.
“안 괜찮은데.”
차마 아무 단어도 칠 수 없다는 듯이 팝업이 멈춘다.
무슨 추측을 하고 있는지 알겠지만, 내가 괜찮지 않은 건 그것 때문이 아니다.
개짓거리에 낚였다는 빡침 때문이지.
“거짓말이야.”
“부모님이 살아 있는 건 거짓말이라고.”
이딴 농락에 걸리다니.
나는 미친 듯이 진동하다가 오타를 쏟아내는 팝업을 무시하며 계속 중얼거렸다.
“앞뒤가 안 맞아.”
논리적 허점이 너무 많다.
“애초에 통화가 안 되는 거면 모를까, 메일을 받을 수 있는 거면 인터넷이 된다는 뜻이지.”
그렇다면.
“굳이 음성 통화로 연결할 필요는 없어. 비디오로 받거나 화상통화 요구가 낫지.”
아무리 인터넷이 느려도 하다못해 사진 한 장 보내지 못할 리가 있는가.
시간 텀을 두고, 굉장히 조심스럽게 반응이 온다.
“변명은 그걸로 나오겠지. 하지만 내가 의심하는 건 그게 다가 아니라.”
나는 스마트폰을 껐다.
처음에는 충격 때문에 추리하지 못했으나, 아까 ‘남극 기지에서 온 편지’라는 전광판 내역을 본 순간 든 생각이 있다.
“우리 부모님이 연구원이 맞았나?”
“내 머리에서는 당연히 맞다고 넘겼는데, 그런 것 치고는 부모님 직장과 관련된 추억이 전혀 없어.”
갑자기 집에 들어오자마자 연구원이 아니게 되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하다못해 근무지에 대한 감상이라도 남아 있을 법한데, 그냥 출근하시고 퇴근하셨다는 것뿐이지.”
슬그머니 끝에서야 덧붙인 설정처럼 말이다.
“정상은 아니야. 절대.”
팝업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으나, 곧 작게 글을 쏟아냈다.
“그래.”
그것도 사실 의심했다. 연구원이면 고소득 직종인데, 도벽이든 주식이든 날려 먹은 기억도 없는데 내가 물려받은 재산이 거의 없다는 게.
거기에 의문을 가진 기억도 없다는 것까지.
“그러니까… 이곳의 남극 기지 연구원 부모님은 거짓말일 확률이 높아.”
“만들어낸 거지.”
시스템이 폭주하면서 뭘 어떻게 한 건지는 모르겠다만, 내 안에 살짝 ‘연구원’ 명제를 심어서 자연스럽게 납득하도록 만든 게 아닌가.
진짜 박문대와 만났을 당시의 내 기억도 날려 먹었으니 그 정도 암시는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이다.
“하지만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자연스럽진 않은 것 같고.”
“그래. 아마 직접 만나면 위화감이 드니까 굳이 남극에 보내서 못 보게 하는 거지.”
그리고 내가 연구원이 된 부모님의 사진 등을 접하면 더 큰 위화감을 느낄까 봐 아예 시각 정보를 차단한 것 아닌가.
팝업이 뒤틀린다.
시스템이 개짓거리 한 게 한두 번도 아니고 새삼 그럴 것도 없다. 단지 이렇게 낚인 게 X 같을 뿐이다.
‘남의 기억 건드렸다는 건 더 빡치고.’
그것도… 이런, 얼마 남지도 않은 기억을 말이다.
“…….”
아니, 감상에 빠지지 말자. 그럴 시간은 없다.
나는 추리를 계속했고, 큰달도 계속 바쁘게 본인 추리를 말한다.
“후자는 몰라도 전자는 확실하지.”
나는 조용히 중얼거렸다.
“현실에서 이미 없는 사람은 못 나오는 걸 보니까, 아예 과거로 돌아온 건 아닐 거야.”
애초부터 온갖 설정값이 뒤죽박죽이었으니까.
“좋은 일일 수도 있어.”
동기부여는 확실할 테니 말이다.
결정을 내렸다.
나는 해당 사항을 청려에게 굳이 숨기지 않고 공유했다.
이곳의 불완전함에 대해서.
이제 곧 철거될 촬영 세트장 대기실에 앉아 있던 놈은 내 말을 경청한 뒤, 별 동요도 없이 평론했다.
“결국 우리 목표에 변화는 없네요. 맞죠?”
“…그렇긴 하지만, 뭘 선택할 때 좀 더 신중해질 필요는 있겠지.”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기억에 오류가 있으면 결정적인 순간에 잘못된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까.”
그게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말이다.
별거 아닌 것 같은 사소한 지점이 달라지며 나비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는 일이다.
‘한 번씩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는지 점검해 볼 필요는 있다.’
그러나 청려는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후배님. 진행에 필요한 정보값만 제대로 기억하고 있으면 괜찮아요. 기억이라는 원래 쌓일수록 왜곡되기 마련이라.”
“…….”
“경계해야 할 건… 기억 때문에 생기는 부가적 효과죠.”
뭐.
“감정.”
“…!”
“정보값, 이성, 판단력만 있으면 실수할 일이 없지. 특별히 잘못 선택할 건 없어요. 결국 하나만 고르면 되니까.”
놈은 선언했다.
“목표만.”
“…….”
“그렇죠?”
“그래.”
이런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만, 이놈과 대화하는 것으로 머리가 좀 깨끗해진 것 같았다.
나는 이를 갈며 선언했다.
“무조건 빨리 대상 받고 여길 뜬다. 그게 목표고.”
“후배님은 당연한 말을 한 번 더 하는 게 버릇인가 봐요.”
시끄럽다.
나는 몸을 곧게 펴고 자리에 앉았다.
빠르게 본론으로 들어가자.
“일단… 우리 데뷔 컨셉 말인데.”
놈의 얼굴에서 실실거림이 약간 가신다. 나는 팔짱을 꼈다.
“VTIC 1집 컨셉은 세계관 빌드업 용이었지.”
“테스타도 다르진 않을 텐데요.”
“글쎄. 우린 음원 순위가 높아서.”
“하하, 순간 시청률이 두 자리가 나온 서바이벌 프로그램 출신답네요.”
서바이벌 아니면 그 등수 꿈도 못 꿨다고 말하고 싶은 거로군.
“…아무튼, 너희 건 중장기용이라 단기용으론 너무 마이너하지 않겠냐는 거지.”
“글쎄요. 해외에선 확실히 반응이 좋았는데.”
…그랬나? 내가 남자 아이돌을 찍으면 찍었지 굳이 데뷔곡 뮤직비디오를 보거나 의상 분석할 일은 없어서 말이다.
“정확히 어떤 컨셉인데.”
“사후세계요.”
“큽.”
사레들릴 뻔했다.
나는 간신히 대꾸했다.
“너무 과해.”
“하하, 테스타한테 그런 말을?”
“…….”
“투자가 충분하면 과할 건 없어요. 중요한 건 완성도지.”
어, 아니까 조용히 해라.
“어차피 이 시기에 대중성을 노리는 건 썩 좋은 전략이 아니기도 하고.”
청려가 턱을 두드리며 말을 계속했다.
“LeTi가 전통적으로 해외 KPOP 팬덤에서 지지도가 괜찮았으니까 그쪽을 잡고 가야죠.”
“해외를.”
“네. 위튜브에 업로드한 영문 자막판이 조회수가 꽤 잘 나와서. 내가 서바이벌로 받아봤던 것 중에 제일 괜찮은 성적표기도 하고.”
놈이 웃는다.
“이대로 해외를 잡고 음반 판매량 기반으로 가죠.”
“잠깐.”
어딜 마음대로 정하냐.
“음원만 잘 뽑으면 충분히 국내에서도 성적 낼 수 있어. 아직 남자 아이돌 대중성도 괜찮은 시기 아닌가?”
몇 년 후에야 견고한 1군이 아니고서야 음원에서 선전을 기대하기 힘들지만, 여긴 아직 성적 내는 놈들이 꽤 있는 시기 아닌가.
“그래서 안 된다는 건데.”
뭐?
청려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사라지고, 도로 심드렁함이 올라온다.
“효율이 최악이거든요.”
“…….”
“이미 대중성으로 볼 재미는 다 보고 있는 그룹이 있잖아요.”
그리고 나는 이놈이 누굴 이야기하는 건지 깨달았다.
“…티홀릭.”
현실에서는 예능으로 그룹을 유지 중인 원로 아이돌일 뿐이다.
우리도 그놈들의 예능에 출연한 적이 있었다. 음악 성적으로는 더 큰 기대를 하지 않으며 예능감으로 화제성을 채우는 오래된 그룹.
‘하지만 지금은 아니지.’
여기는… 티홀릭이 한창 활발히 활동할 시기다.
“네.”
청려가 고개를 끄덕인다.
“우리 상대는 최전성기 티홀릭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