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9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6화
하차하겠다는 VTIC 놈을 제압하는 것에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압박을 못 이기고 하차하겠다는 의미로 오해했는지 하마터면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뛰어올 뻔했으나, 그 전에 진정시켜서 다행이었다.
‘진짜 말아먹을 뻔했네.’
그리고 여기서 이놈 제압에 투입된 것이 차유진과 류청우, 그리고… 청려다.
그래. 껄끄러움이고 나발이고 이 돌발 상황에 대가리가 있으면 불러야 하는 인선이지.
“…….”
“…….”
그리고 좁은 보컬 연습실 안은 성인 5명이 꽉 끼어서 뒈질 듯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X발…….’
지금 표 잡을 작전이나 세워야 할 류청우까지 떨떠름하게 웃으면서 서 있는 걸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앞으로 중간 보상이 랜덤 소포면 무시한다.’
이 빌어먹을 양산형 모바일 게임 같은 시스템 새끼야.
나는 미간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선배님, 저희도 지금 다 비슷한 상황인데요.”
나는 이젠 순 심란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는 주단을 보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차 떼고 포 떼고, 핵심만 말한다.
-이상한 평행세계에 끌려와서 탈출하려고 하는 중이다.
자세한 사정도 없이 이딴 말을 믿을 놈이 있을까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놈에게 ‘내가 사실 박문대가 아니고…’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 봐라. 그거야말로 미친놈 같지.
‘일단 여기서 반박 들어오는 대로 찬찬히 설명하면서 진행한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청려가 굳이 끼어들지 않고 웃고 있지만 해서 별수 없이 원맨쇼를 하고 있을 무렵.
“잠시만.”
마침내 주단이 손을 들었다.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예.”
“32 곱하기 6은?”
“……192죠.”
“예.”
그리고 놈은 한 놈씩 돌아가면서 수학 문제를 냈다. 곱셈 정도라 어려울 게 없어서 다들 적당히 생각해 보고 답을 말한다.
‘이놈 대체 뭘 하는 거지?’
그리고 한 바퀴 돌아 청려까지 답을 하고 나자, 놈은 고개를 끄덕였다.
“꿈은 아니군요. 흠.”
“…….”
“어떤 상황인지 대강 알겠습니다.”
“…??”
“서브 컬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접할 문법이군요.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놈은 무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턱을 만졌다.
“아니, 아직도 꿈일 가능성이 있으니… 어쨌든 잠시 세수라도 하고 오겠습니다. 찬물이 찬물 같은지도 확인해 봐야겠죠.”
그렇게 말한 놈은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드르륵- 탁.
문이 열리고 닫힌다.
주단이 혼자 떠들기 시작한 지 10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뭐… 뭘 아셨다는 걸까요?]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이제야 짐작이 가는군.
‘…숫자로.’
[???]
‘꿈에서는 논리성이 떨어져서 보통 빠르고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거든.’
[아….]
그런데 보통은 본인을 꼬집어보거나 하지 쓸데없이 이런 방법을 쓰지는 않을 텐데.
이 새끼… 원래 이런 놈이었나?
“원래도 독특한 컨셉에 관심이 많은 타입이었는데, 여전하네요. 이런 상황에 적응하려 들고.”
문밖 모서리 너머에서 설치되고 있을 카메라를 의식한 청려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인다.
“뭘 남의 그룹처럼 이야기하고 있냐, 네 멤버한테.”
“음, 오랜만에 써봐서.”
놈이 실실 웃는다. 그리고 상대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더 낮춘다.
“순종적인 것 같지만 때때로 조용히 비협조적인 부류라… 다룰 때 한 번 더 계산해야 하는 게 번거로웠거든요.”
단어 선택 한번 환상적이군.
“어쨌든 다루는 게 불가능하진 않으니, 큰 변수로 번지진 않을 거예요.”
“…….”
놈은 아무렇지 않게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서 더 묘하다.
‘이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그래도 본인 그룹 놈 기억이 돌아왔으면 재밌어하든 날 죽이려고 하든 무슨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대단히 전략적이다.
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놈은 바로 목소리를 키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주단과 좀 더 세밀한 조율을 작업해야겠지만. 음, 그 전에 저쪽은 돌려보내야겠는데요.”
“…!”
청려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차유진과 류청우를 암묵적으로 가리키는 것이고, 본인들도 알았을 터.
그러나 차유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있고 싶은 곳에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나가면 되겠네요. 옆 연습실로 가요.”
“잠깐.”
이놈들은 대화할 때마다 이러네.
그러나 내가 중재하기 전에 류청우가 난처한 듯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유진아. 일단 우리가 나가드리자. 아무래도 같은 그룹이시니까 따로 대화하고 싶으시겠지.”
차유진은 그 설명에는 반발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OK. 두 선배님 대화해요.”
다만 뒷말이 붙었다.
“문대 형 같이 가요!”
그건 좀.
“…설명도 하던 놈이 하는 게 낫지.”
“문대 형 VTIC 팬이에요?”
그래서 하는 거겠냐?
“설명비 받을 거야.”
“오우!”
이제 가라.
나는 류청우가 차유진을 끌고 나가도록 방임했다. 그러나 류청우가 나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 문대야.”
“네.”
“내 표는 너무 걱정하지 마. 여기서 탈락할 정도면 팀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니까.”
“…!”
“그리고 그런 평가 받을 생각은 없어.”
놈은 부드럽고 단호하게 마무리했다.
“표는 내가 알아서 받을게.”
“…….”
굳이 박문대라고 부르면서까지 한 말이니, 이건 그룹 리더로서 하는 말이군.
그렇다면야.
“예.”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류청우는 한번 웃어 보인 뒤, 시큰둥한 얼굴인 차유진을 끌고 보컬 연습실을 나갔다.
드르륵- 탁.
“…….”
“설명비를 받아요?”
“진짜 그러겠냐?”
“하하.”
나는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다행히 내가 방을 뛰쳐나가기 전에 주단이 돌아왔다.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
“현실 같습니다.”
“…….”
놈이 중얼거렸다.
“미쳤거나, 꿈이거나… 최악의 경우엔 무슨 괴담 현상에 휘말린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이 제일 정답에 가까웠다니.”
잠깐.
“설마 그래서 하차하려고 하신 겁니까?”
“예. 원래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행동해야 하잖아요.”
“……아, 예.”
이게… 아니 됐다. 어쨌든 현실이라고 납득했다니 다음 말을 하기가 더 쉽겠군.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는 최대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선배님께서도 협력해 주시면 합니다.”
여기서부터가 난관이군.
이놈이 만일 이 상황을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상당히 골 아픈….
“당연하죠.”
“…?”
즉답이 나왔다.
“이런 판타지다운 전개를 겪어보는 걸 어릴 적에 꿈꿔보긴 했는데, 지금은 꿈도 희망도 없는 어른으로 자라서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놈은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건물과 통장과 명예가 있는 10년 차 대상 아이돌의 삶은 포기 못 해요.”
“…….”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 군대 가시는데요.”
“여기서도 가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돈도 위치도 없이 데뷔부터의 개고생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다니 이건 비교가 실례일 지경입니다.”
놈은 고개 까닥였다.
“어른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다 거짓말일 겁니다. 일단 기반이 생기면 그 개고생을 다시 하고 싶을 리가 없죠. 다 편의적인 설정입니다.”
하마터면 청려를 돌아볼 뻔했다.
“어쨌든 이건 일종의 게임 형식이고, 문대 후배님이 키플레이어인 거군요.”
“일단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예. 고생하십니다.”
놈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까닥했다.
“그러면 난… 후반부에 등장해서 분량이 많지 않지만 꽤 쓸 만한 조력을 해줄 조연쯤일 것 같고.”
이 미친놈이 뭐라고 하는 거지.
“안타고니스트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 죄송합니다. 최근에 할 게 없어서 소설과 영상물을 많이 보는 바람에.”
어째 변명 같군.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놈의 안정을 위해 맞장구를 쳐줬다.
“아이돌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취미니까요.”
“네.”
놈은 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뭐라 더 말하고 싶은 듯 입을 우물거렸으나, 곧 다시 사무적인 투로 돌아왔다.
“그럼 지금은 류청우 후배님, 아니, 이제 류청우 형이라고 불러드려야겠군요. 아무튼 그분께 표만 드리면 제가 따로 할 일은 없겠죠.”
일단은 그렇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다른 목소리가 대신 자르듯 선언한다.
부드럽고 차갑다.
“그렇진 않은데.”
“…!”
움찔한 주단의 목소리에 약간의 정중함이 어렸다.
“형.”
“지금 기량이 전 같지 않을 거야. 그렇지?”
VTIC 놈은 청려의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러면 우선 네 기량부터 회복해야지.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계획을 세우더라도 무대 퀄리티가 부족하면 불가능하니까.”
희미한 미소를 띤 놈이 주단을 응시하며 말을 계속한다.
“네 말대로 10년 차 아이돌로서의 기억과 자아가 돌아왔다 하더라도, 정작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네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잖아.”
“……!”
“네게 재산과 명예를 기꺼이 준 사람들이 아까워하지 않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알았지?”
“……예.”
뻔뻔할 만큼 괴상한 소리를 하던 놈이 군기가 바짝 잡힌다. 반항하거나 말대꾸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도 굴러서 틀이 잡힌 모양인데.’
아주 쥐락펴락한다. 꽉 틀어쥐었다고 슬쩍 풀어주기도 하고.
“그래.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든든하다. 알지?”
“…네, 감사합니다.”
주단은 청려에게 연습 루틴에 대한 조언의 탈을 쓴 훈련표를 받고서야 보컬 연습실을 나설 수 있었다.
“…….”
‘난놈은 난놈이군.’
사람 다루는 건 이골이 난 모양이다.
나는 팔짱을 끼며 웃는 청려를 쳐다보았다.
“일단 효율을 챙기는 방향으로 가봤는데. 괜찮네요.”
“좀 더 달래는 편이 멘탈에 좋았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좀 압박해야 움직이는 타입이라. 도리어 풀어주면 요령을 부려서.”
놈은 태연히 대답했다.
“잘 찌르면 앨범에 대해서 가끔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도 하죠. 괜찮은 구성원이 될 거예요.”
“…그래.”
오래 본 놈이 더 잘 알겠지.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놈은 턱을 괬다.
“데뷔 이후 계획을 좀 더 수정 봐야겠네요. 음, 지루할 틈이 없네.”
잠깐.
“너 보내 버릴 놈 투표는.”
그게 우선순위라는 걸 까먹진 않았겠지.
그러나 놈은 고개를 옆으로 숙인다.
“음? 벌써 다 끝났죠. 그건 파이널에서 탈락할 거예요.”
뭐?
“이런, 후배님은 아직 시작도 못 했나. 아니면 아까 말대로 본인을 믿고 넘기게요?”
“알아서 한다.”
“하하.”
놈은 더 긁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풀고 입을 열었다.
원래 하려던 말이 있었다.
주단이 기억을 찾은 사태에 대해.
“…이번은 돌발 상황이었어.”
“네.”
“하지만 아이돌로 더 유명해지면서 동료 찾기를 계속하게 되면, 다른 VTIC한테도 기억을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음.”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좀 지켜보죠. 패가 늘어난 것 같긴 하지만 그게 꼭 좋은 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
그렇다면야.
나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때였다.
“그래도 처음이긴 하네요.”
“…!”
놈은 시선을 내리고 읊조렸다.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이런 거였나.”
“…….”
나는 물었다.
“기분이 나쁘냐?”
“특별히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은 지 꽤 돼서. 낯설긴 한데.”
놈은 표정 없이 초점을 흐렸다. ‘이런 상황’을 기대하거나 상상했을 때를 어렴풋이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이.
‘…그래.’
감명이 없지는 않았나 보지.
나는 굳이 놈의 상태를 캐묻지 않고 바닥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그리고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스탭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천천히 일어나서 연습실을 나왔다.
놈이 다시 그 화제를 꺼내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다음에도 게임 소포가 오면 무조건 클릭하지 않기로 생각했던 결론을 일단 보류로 돌렸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다.
주단의 돌발 사태가 거짓말처럼 촬영장은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그대로의 상태다. 이미 카메라는 켜진 것이다.
‘기다린다.’
나는 그날 촬영이 다 끝나고, 다시 배터리가 다 되어 공백이 생기는 자정 이후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파이널 직전답게 새벽까지 연습에 여념이 없는 놈들 사이에서, 침실에 들어갈까 갈등 중인 놈을 발견했다.
“선배님.”
주단은 연습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의심을 살 수도 있는 행동은 피하죠. 전처럼 편하게 갑시다.”
뭐, 본인이 그렇다면야.
나는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우단아. 너 참가자 중에 누구랑 친하냐.”
“…뭐, 딱히 친한 사람은 없습니다. 같이 다니던 연습생들은 참가를 못 해서.”
잘 알겠다.
그럼 질문을 바꿔볼까.
“누가 누구랑 친하거나 싫어하는지는 대강 알지.”
“남들 아는 만큼은 알죠.”
그거면 됐다.
기존 연습생이 가진 정보가 필요했거든.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풀 수 있는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
놈은 무슨 생각인지 잠시 대답이 없더니, 불쑥 대답했다.
“제가 다른 사람 설득을 잘 못 합니다.”
류청우 선거운동이라도 같이해 달라는 뜻으로 들었나 보다.
나는 피식 웃으며 편하게 앉았다.
“그걸 부탁하려는 건 아닌데.”
“그럼?”
“나랑 대화만 좀 해주면 된다. 남들 앞에서.”
류청우가 먹을 표는 한정되어 있다.
서바이벌에서 이미 친분이 있는 연습생과 강력한 경쟁자인 뉴페이스 중에 익명으로 고르자면 당연히 전자를 고르겠지.
아마 어지간한 유인책이 아니고서야 굳이 류청우를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표를 분산시키면 된다.’
류청우를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 중 누구를 투표할 것인지를 건드린다.
“욕도 아니고, 칭찬 좀 할 거야.”
류청우가 말한 대로, 본인 표는 본인이 알아서 챙기게 존중해 줄 것이다.
나는 류청우를 찍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다른 놈을 안 찍게 만들려는 것뿐이거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6화
하차하겠다는 VTIC 놈을 제압하는 것에는 꽤 긴 시간이 소요되었다.
압박을 못 이기고 하차하겠다는 의미로 오해했는지 하마터면 제작진이 카메라를 들고 뛰어올 뻔했으나, 그 전에 진정시켜서 다행이었다.
‘진짜 말아먹을 뻔했네.’
그리고 여기서 이놈 제압에 투입된 것이 차유진과 류청우, 그리고… 청려다.
그래. 껄끄러움이고 나발이고 이 돌발 상황에 대가리가 있으면 불러야 하는 인선이지.
“…….”
“…….”
그리고 좁은 보컬 연습실 안은 성인 5명이 꽉 끼어서 뒈질 듯한 침묵이 흐르고 있다.
‘X발…….’
지금 표 잡을 작전이나 세워야 할 류청우까지 떨떠름하게 웃으면서 서 있는 걸 보니 어처구니가 없다.
‘앞으로 중간 보상이 랜덤 소포면 무시한다.’
이 빌어먹을 양산형 모바일 게임 같은 시스템 새끼야.
나는 미간을 누르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선배님, 저희도 지금 다 비슷한 상황인데요.”
나는 이젠 순 심란한 얼굴로 허공을 보고 있는 주단을 보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차 떼고 포 떼고, 핵심만 말한다.
-이상한 평행세계에 끌려와서 탈출하려고 하는 중이다.
자세한 사정도 없이 이딴 말을 믿을 놈이 있을까 싶지만 어쩔 수 없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놈에게 ‘내가 사실 박문대가 아니고…’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해 봐라. 그거야말로 미친놈 같지.
‘일단 여기서 반박 들어오는 대로 찬찬히 설명하면서 진행한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청려가 굳이 끼어들지 않고 웃고 있지만 해서 별수 없이 원맨쇼를 하고 있을 무렵.
“잠시만.”
마침내 주단이 손을 들었다.
“질문을 하나 드리겠습니다.”
“예.”
“32 곱하기 6은?”
“……192죠.”
“예.”
그리고 놈은 한 놈씩 돌아가면서 수학 문제를 냈다. 곱셈 정도라 어려울 게 없어서 다들 적당히 생각해 보고 답을 말한다.
‘이놈 대체 뭘 하는 거지?’
그리고 한 바퀴 돌아 청려까지 답을 하고 나자, 놈은 고개를 끄덕였다.
“꿈은 아니군요. 흠.”
“…….”
“어떤 상황인지 대강 알겠습니다.”
“…??”
“서브 컬쳐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쉽게 접할 문법이군요. 직접 경험하게 될 줄은 몰랐는데.”
놈은 무표정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더니, 턱을 만졌다.
“아니, 아직도 꿈일 가능성이 있으니… 어쨌든 잠시 세수라도 하고 오겠습니다. 찬물이 찬물 같은지도 확인해 봐야겠죠.”
그렇게 말한 놈은 벌떡 일어나서 화장실로 향했다.
드르륵- 탁.
문이 열리고 닫힌다.
주단이 혼자 떠들기 시작한 지 10초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이제야 짐작이 가는군.
‘…숫자로.’
‘꿈에서는 논리성이 떨어져서 보통 빠르고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거든.’
그런데 보통은 본인을 꼬집어보거나 하지 쓸데없이 이런 방법을 쓰지는 않을 텐데.
이 새끼… 원래 이런 놈이었나?
“원래도 독특한 컨셉에 관심이 많은 타입이었는데, 여전하네요. 이런 상황에 적응하려 들고.”
문밖 모서리 너머에서 설치되고 있을 카메라를 의식한 청려가 목소리를 낮춰 속삭인다.
“뭘 남의 그룹처럼 이야기하고 있냐, 네 멤버한테.”
“음, 오랜만에 써봐서.”
놈이 실실 웃는다. 그리고 상대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더 낮춘다.
“순종적인 것 같지만 때때로 조용히 비협조적인 부류라… 다룰 때 한 번 더 계산해야 하는 게 번거로웠거든요.”
단어 선택 한번 환상적이군.
“어쨌든 다루는 게 불가능하진 않으니, 큰 변수로 번지진 않을 거예요.”
“…….”
놈은 아무렇지 않게 결론을 내렸지만, 그래서 더 묘하다.
‘이놈은 아무렇지도 않은 건가?’
그래도 본인 그룹 놈 기억이 돌아왔으면 재밌어하든 날 죽이려고 하든 무슨 반응이 있을 줄 알았는데, 대단히 전략적이다.
턱을 손가락으로 두드리던 놈은 바로 목소리를 키워 다음 단계로 나아간다.
“주단과 좀 더 세밀한 조율을 작업해야겠지만. 음, 그 전에 저쪽은 돌려보내야겠는데요.”
“…!”
청려는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차유진과 류청우를 암묵적으로 가리키는 것이고, 본인들도 알았을 터.
그러나 차유진은 눈 하나 깜박하지 않았다.
“저는 제가 있고 싶은 곳에 있어요.”
“그러면 우리가 나가면 되겠네요. 옆 연습실로 가요.”
“잠깐.”
이놈들은 대화할 때마다 이러네.
그러나 내가 중재하기 전에 류청우가 난처한 듯이 웃으며 끼어들었다.
“유진아. 일단 우리가 나가드리자. 아무래도 같은 그룹이시니까 따로 대화하고 싶으시겠지.”
차유진은 그 설명에는 반발 없이 어깨를 으쓱했다.
“OK. 두 선배님 대화해요.”
다만 뒷말이 붙었다.
“문대 형 같이 가요!”
그건 좀.
“…설명도 하던 놈이 하는 게 낫지.”
“문대 형 VTIC 팬이에요?”
그래서 하는 거겠냐?
“설명비 받을 거야.”
“오우!”
이제 가라.
나는 류청우가 차유진을 끌고 나가도록 방임했다. 그러나 류청우가 나가다 말고 뒤를 돌아보았다.
“아. 문대야.”
“네.”
“내 표는 너무 걱정하지 마. 여기서 탈락할 정도면 팀에 도움이 안 된다는 뜻이니까.”
“…!”
“그리고 그런 평가 받을 생각은 없어.”
놈은 부드럽고 단호하게 마무리했다.
“표는 내가 알아서 받을게.”
“…….”
굳이 박문대라고 부르면서까지 한 말이니, 이건 그룹 리더로서 하는 말이군.
그렇다면야.
“예.”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류청우는 한번 웃어 보인 뒤, 시큰둥한 얼굴인 차유진을 끌고 보컬 연습실을 나갔다.
드르륵- 탁.
“…….”
“설명비를 받아요?”
“진짜 그러겠냐?”
“하하.”
나는 내 얼굴을 때리고 싶은 충동을 참았다.
다행히 내가 방을 뛰쳐나가기 전에 주단이 돌아왔다.
머리에서 물을 뚝뚝 흘리면서.
“현실 같습니다.”
“…….”
놈이 중얼거렸다.
“미쳤거나, 꿈이거나… 최악의 경우엔 무슨 괴담 현상에 휘말린 걸 수도 있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이 제일 정답에 가까웠다니.”
잠깐.
“설마 그래서 하차하려고 하신 겁니까?”
“예. 원래 사람은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고 행동해야 하잖아요.”
“……아, 예.”
이게… 아니 됐다. 어쨌든 현실이라고 납득했다니 다음 말을 하기가 더 쉽겠군.
나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저희는 최대한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선배님께서도 협력해 주시면 합니다.”
여기서부터가 난관이군.
이놈이 만일 이 상황을 또 다른 기회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상당히 골 아픈….
“당연하죠.”
“…?”
즉답이 나왔다.
“이런 판타지다운 전개를 겪어보는 걸 어릴 적에 꿈꿔보긴 했는데, 지금은 꿈도 희망도 없는 어른으로 자라서 빨리 돌아가고 싶습니다.”
놈은 무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건물과 통장과 명예가 있는 10년 차 대상 아이돌의 삶은 포기 못 해요.”
“…….”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선배님 군대 가시는데요.”
“여기서도 가잖아요.”
그건… 그렇지.
“그런데 돈도 위치도 없이 데뷔부터의 개고생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다니 이건 비교가 실례일 지경입니다.”
놈은 고개 까닥였다.
“어른들이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는 건 다 거짓말일 겁니다. 일단 기반이 생기면 그 개고생을 다시 하고 싶을 리가 없죠. 다 편의적인 설정입니다.”
하마터면 청려를 돌아볼 뻔했다.
“어쨌든 이건 일종의 게임 형식이고, 문대 후배님이 키플레이어인 거군요.”
“일단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예. 고생하십니다.”
놈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까닥했다.
“그러면 난… 후반부에 등장해서 분량이 많지 않지만 꽤 쓸 만한 조력을 해줄 조연쯤일 것 같고.”
이 미친놈이 뭐라고 하는 거지.
“안타고니스트가 아니라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아, 죄송합니다. 최근에 할 게 없어서 소설과 영상물을 많이 보는 바람에.”
어째 변명 같군.
하지만 상황이 상황이니 놈의 안정을 위해 맞장구를 쳐줬다.
“아이돌이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취미니까요.”
“네.”
놈은 좀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뭐라 더 말하고 싶은 듯 입을 우물거렸으나, 곧 다시 사무적인 투로 돌아왔다.
“그럼 지금은 류청우 후배님, 아니, 이제 류청우 형이라고 불러드려야겠군요. 아무튼 그분께 표만 드리면 제가 따로 할 일은 없겠죠.”
일단은 그렇다고 대답하려는 찰나, 다른 목소리가 대신 자르듯 선언한다.
부드럽고 차갑다.
“그렇진 않은데.”
“…!”
움찔한 주단의 목소리에 약간의 정중함이 어렸다.
“형.”
“지금 기량이 전 같지 않을 거야. 그렇지?”
VTIC 놈은 청려의 눈치를 보는 것 같더니, 조용히 고개를 끄덕인다.
“…예.”
“그러면 우선 네 기량부터 회복해야지. 우리가 얼마나 괜찮은 계획을 세우더라도 무대 퀄리티가 부족하면 불가능하니까.”
희미한 미소를 띤 놈이 주단을 응시하며 말을 계속한다.
“네 말대로 10년 차 아이돌로서의 기억과 자아가 돌아왔다 하더라도, 정작 모습이 그렇지 못하다면 네 것이라고 주장할 수 없잖아.”
“……!”
“네게 재산과 명예를 기꺼이 준 사람들이 아까워하지 않을 만한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알았지?”
“……예.”
뻔뻔할 만큼 괴상한 소리를 하던 놈이 군기가 바짝 잡힌다. 반항하거나 말대꾸할 생각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하도 굴러서 틀이 잡힌 모양인데.’
아주 쥐락펴락한다. 꽉 틀어쥐었다고 슬쩍 풀어주기도 하고.
“그래. 그래도 네가 있으니까 든든하다. 알지?”
“…네, 감사합니다.”
주단은 청려에게 연습 루틴에 대한 조언의 탈을 쓴 훈련표를 받고서야 보컬 연습실을 나설 수 있었다.
“…….”
‘난놈은 난놈이군.’
사람 다루는 건 이골이 난 모양이다.
나는 팔짱을 끼며 웃는 청려를 쳐다보았다.
“일단 효율을 챙기는 방향으로 가봤는데. 괜찮네요.”
“좀 더 달래는 편이 멘탈에 좋았을 것 같은데.”
“괜찮아요. 좀 압박해야 움직이는 타입이라. 도리어 풀어주면 요령을 부려서.”
놈은 태연히 대답했다.
“잘 찌르면 앨범에 대해서 가끔 좋은 아이디어를 가져오기도 하죠. 괜찮은 구성원이 될 거예요.”
“…그래.”
오래 본 놈이 더 잘 알겠지. 나는 굳이 반박하지 않았다.
놈은 턱을 괬다.
“데뷔 이후 계획을 좀 더 수정 봐야겠네요. 음, 지루할 틈이 없네.”
잠깐.
“너 보내 버릴 놈 투표는.”
그게 우선순위라는 걸 까먹진 않았겠지.
그러나 놈은 고개를 옆으로 숙인다.
“음? 벌써 다 끝났죠. 그건 파이널에서 탈락할 거예요.”
뭐?
“이런, 후배님은 아직 시작도 못 했나. 아니면 아까 말대로 본인을 믿고 넘기게요?”
“알아서 한다.”
“하하.”
놈은 더 긁지 않았다. 나는 팔짱을 풀고 입을 열었다.
원래 하려던 말이 있었다.
주단이 기억을 찾은 사태에 대해.
“…이번은 돌발 상황이었어.”
“네.”
“하지만 아이돌로 더 유명해지면서 동료 찾기를 계속하게 되면, 다른 VTIC한테도 기억을 돌려줄 수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음.”
청려는 눈을 가늘게 떴다.
“그건 좀 지켜보죠. 패가 늘어난 것 같긴 하지만 그게 꼭 좋은 패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
그렇다면야.
나는 더 묻지 않기로 했다.
그때였다.
“그래도 처음이긴 하네요.”
“…!”
놈은 시선을 내리고 읊조렸다. 무덤덤한 목소리였다.
“이런 거였나.”
“…….”
나는 물었다.
“기분이 나쁘냐?”
“특별히 그런 건 아니지만… 이런 상황을 생각해 보지 않은 지 꽤 돼서. 낯설긴 한데.”
놈은 표정 없이 초점을 흐렸다. ‘이런 상황’을 기대하거나 상상했을 때를 어렴풋이 떠올리기라도 하는 듯이.
‘…그래.’
감명이 없지는 않았나 보지.
나는 굳이 놈의 상태를 캐묻지 않고 바닥에 한동안 앉아있었다.
그리고 촬영 시작을 알리는 스탭의 목소리를 들은 후에야 천천히 일어나서 연습실을 나왔다.
놈이 다시 그 화제를 꺼내는 일은 없었지만, 나는 다음에도 게임 소포가 오면 무조건 클릭하지 않기로 생각했던 결론을 일단 보류로 돌렸다.
그리고 또 시간이 흐른다.
주단의 돌발 사태가 거짓말처럼 촬영장은 묘한 긴장감이 감도는 그대로의 상태다. 이미 카메라는 켜진 것이다.
‘기다린다.’
나는 그날 촬영이 다 끝나고, 다시 배터리가 다 되어 공백이 생기는 자정 이후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파이널 직전답게 새벽까지 연습에 여념이 없는 놈들 사이에서, 침실에 들어갈까 갈등 중인 놈을 발견했다.
“선배님.”
주단은 연습실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조용히 중얼거렸다.
“의심을 살 수도 있는 행동은 피하죠. 전처럼 편하게 갑시다.”
뭐, 본인이 그렇다면야.
나는 몸을 기울이고 물었다.
“우단아. 너 참가자 중에 누구랑 친하냐.”
“…뭐, 딱히 친한 사람은 없습니다. 같이 다니던 연습생들은 참가를 못 해서.”
잘 알겠다.
그럼 질문을 바꿔볼까.
“누가 누구랑 친하거나 싫어하는지는 대강 알지.”
“남들 아는 만큼은 알죠.”
그거면 됐다.
기존 연습생이 가진 정보가 필요했거든.
그리고 자연스럽게 말을 풀 수 있는
“도움 좀 받을 수 있을까.”
놈은 무슨 생각인지 잠시 대답이 없더니, 불쑥 대답했다.
“제가 다른 사람 설득을 잘 못 합니다.”
류청우 선거운동이라도 같이해 달라는 뜻으로 들었나 보다.
나는 피식 웃으며 편하게 앉았다.
“그걸 부탁하려는 건 아닌데.”
“그럼?”
“나랑 대화만 좀 해주면 된다. 남들 앞에서.”
류청우가 먹을 표는 한정되어 있다.
서바이벌에서 이미 친분이 있는 연습생과 강력한 경쟁자인 뉴페이스 중에 익명으로 고르자면 당연히 전자를 고르겠지.
아마 어지간한 유인책이 아니고서야 굳이 류청우를 투표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표를 분산시키면 된다.’
류청우를 제외한 나머지 참가자 중 누구를 투표할 것인지를 건드린다.
“욕도 아니고, 칭찬 좀 할 거야.”
류청우가 말한 대로, 본인 표는 본인이 알아서 챙기게 존중해 줄 것이다.
나는 류청우를 찍게 만들려는 게 아니라, 다른 놈을 안 찍게 만들려는 것뿐이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