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9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3화
인터넷에는 방영된 화들의 반응이 쭉 쌓여 있었다. 시간순으로 정렬해서 주행해 보자.
우선 7화부터인데, 그 전에 기본 여론부터 살피도록 할까.
청려가 열외인 류건우를 픽업해서 완성한 섹시 키워드 컨셉 무대가 방영된 6화 이후의 생태계 말이다.
-이게 바로 레티의 정수다 외치는 것 같은 무대
-살다살다 무대바닥이 부러운 적은 처음이다…
-그냥 이대로 데뷔해도 내 적금 가져갈 듯 서바이벌 왜 해? 다 데뷔시켜ㅕㅕ
-제일 놀라운 점은 이 무대에 새 연생 보충반 출신이 둘이라는 것임 워낙 기획사의 색이 분명하고 그걸 완벽히 소화하는 신재현이라는 리더가… [더보기]
솔직히 섹시 같은 키워드를 써먹어서 말초적인 반응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지금 시점에선 도리어 무대에 대한 분석 댓글들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돌아와서 계속 보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
그리고 서사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점점 그룹의 이미지를 갖춰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차유진도 완전히 받아들여졌군.’
이질적이던 차유진이 레티 색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까지 시너지가 나며 무대 자체에 대한 유입이 생긴다.
그래, 시청자들은 이때쯤 이미 데뷔 멤버 라인업을 예측 중이었다.
-내가 예상한 김태인 픽 데뷔조 9명 (사진)
-추가로 누가 되냐가 관건일걸 사장이 본인 고집 밀고 나갈지 대중 눈치 볼지ㅇㅇ
└사장 김태인씨 눈치 좀 챙기게 다들 빠른 투표 부탁합니다(링크)
슬슬 프로그램 이후 데뷔 그룹의 윤곽을 더듬는 사람이 많아진 상태.
6화 마지막에 나온 대국민 지원 보충반 등장 예고 어그로도 썩 안 먹힐 정도였다.
그냥 지나가는 장애물로 다들 생각하고 기존 참가자들에 집중하는 흐름이었단 거지.
그런데 7화.
류청우가 등장한 것이다.
-헐
-스포 맞았네
-미친 건우 친척임? 뭐야 다들 알았음? 나만 모름?
처음에는 예상도 못 한 타 분야 거물급 뉴페이스에 다들 기겁하면서도 대단히 흥미진진해 했다.
…내 반응도 한몫한 것 같고.
[지금부터 같이 자취 중이던 친척이 갑자기 촬영장에 참가자로 출연했을 때 장본인의 반응을 보시겠습니다.]
빨간 글씨로 주르륵 흘러가는 자막 위, 내 인터뷰 컷이 나온다.
[류건우 : …그러니까,]
[류건우 : (말을 잇지 못함)]
[※건우가 유창한 말솜씨를 되찾는 데까지 하루가 소요되었습니다.]
‘망할.’
이럴 줄 알았다 방송국 놈들….
절묘하게 클로즈업해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 비슷한 몰골의 인터뷰 컷과 엇갈리는 게,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 예능 컷으로 잘 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충격 심했나 봐
-아 거누 귀여워 근데 나도 그랬을 듯 사실 지금도 그럼 무슨 일임
└그라데이션 혼란
-진짜 어쩌다 나오신 건지..?
그리고 진솔한 류청우의 인터뷰와 진지하고 협조적인 준비 과정이 나오며 나름대로 온에어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스포일러가 광범위하게 퍼지기 전까진 말이다.
========================
[레티서바 ㅅㅍ봤어?]
류청우 붙고 최태준 떨어진다는데 진짜일까
========================
-??
-사장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일ㄴㄴ
└방청객 투표점수로 탈락자 선정했대…
└헐
-아 설마.. 이건 진짜 아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가짜 스포나 분탕이라는 여론도 커서 그럭저럭 긴장 속에서 물 밑에 있었나 보다.
그리고 설마설마하던 시청자 여론은 8화가 방영되고 나서야 폭발한다.
-스포 다 맞았네 미친
-쟤 국대 그만두고 쌩 대학 갈 때부터 아쉽긴 했는데 아이돌까지 찍먹하니까 뭐하는 거지 싶기도 함
-솔직히 ㅊㅌㅈ이 말아먹어서지 누굴 탓해ㅋㅋㅋ 천재즈 <-이것도 솔직히 걔 빠들이 억지로 민거고
└탈락자한테 말하는 것 좀 봐 너 이거 악플이야 알아?
└ㅋㅋㅋㅋㅋㅋㅋ발작 투명하고~
-류청우가 존잘에 무대도 잘한 걸 어쩌란 말임
└류건우랑 같은 팀이 아니었어도 이런 말 했을지는 잘 생각해봐
부정적인 쪽의 중론은 내가 잘해서 친척인 류청우가 버스 탔다는 것이다.
메인보컬 VS 메인보컬 대전에 뛰어드는 류건우의 도전 정신 자체는 서바이벌에서 어필할 만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하필 류청우가 그 팀을 골라 나온 것도 수상하다… 라.
‘부작용이 나올 줄은 알았는데 말이지.’
실제로 조작이나 적폐 이야기까지 선 넘어서 나오는 분위기였으나 시청자가 아닌 대중까지 이 어그로를 물면서 또 뒤집힌다.
-헐 류청우 선수 아이돌 도전함?ㅋㅋㅋㅋㅋ
-막냉이 언제 이렇게 컸어 여전히 대존잘이네;
류청우는 금메달리스트니까.
‘대중 호감도가 전반적으로 무조건 높지.’
가 대단히 잘되고 있다고 해봤자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 하나일 뿐이다. 일반 대중과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투표에서 이겼다고 욕하는 거야?;;; 와 기괴
-아ㅋㅋ 이건 선넘었지
-돌빠들 특히 레티빠들 이래서 문제임 너무 고였어.. 아이돌 연생 응원하겠다고 금메달 따온 국대까지 패고 있네
덕분에 프로그램 안 보는 사람까지 가세해서 개판이 될… 뻔했으나, 자정 작용이 어느 정도 먹혀서 욕하던 사람들이 눌렸다.
그래도 수면 아래에서는 부글부글 반감이 들끓고 있었는데….
게릴라 콘서트 전에 이게 터진 것이다.
[와이즈 최태준 영상 뜸]
클럽 메보 이 새끼의 술 담배 영상 캡처가.
모 술집에서 생일 파티를 했던 사람이 SNS에 올린 몇 년 전 영상 끝에 몇 초 잡힌 것이 발견되어 끌어올려졌다.
당시 놈의 인상착의와 비교하니 빼도 박도 못하고 본인 인증까지 끝났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모두가 시원하게 태세를 전환했다.
-선견지명 오졌다
-김태인 1승
-방청단의 안목은 머한민국 1프로입니다 무지몽매한 제자신을 반성합니다
-와 이걸 피했네
이제 중간에 터졌으면 팬들 머리가 터져나가게 고통스러울 뻔했거든.
최태준은 실력 좋고 팬도 꽤 붙은 데다 사장 픽이라 어지간하면 탈락할 일이 없으니까.
사장이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할까 봐 뜬눈으로 밤새며 고통스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참가자 이슈가 터지면 사내 서바이벌이니만큼 프로그램 이미지에도 악영향이다.
‘그런데 이걸 류청우가 직전에 스나이핑으로 잘라낸 게 돼버린 거지.’
덕분에 무슨 히어로 취급이다.
-류형제.. 당신들 대체 어디까지 본 겁니까
-지금 보니 국대님 레티상인 것 같음 암튼 맞음
└ㅋㅋㅋㅋㅋㅋ세뇌를 하네 아주!
재평가가 또 재밌다 보니, 온갖 참가자의 팬들이 다 신나서 우호적으로 한 마디씩 얹은 것이고.
‘어쩐지 클럽메보랑 프로그램에서 전혀 안 엮인 놈들 팬들이 많더라니.’
이 사태에 말 안 보탠 진영에서 제일 신나서 놀던 중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게릴라 콘서트에서 테스타 때의 기량을 되찾은 류청우가 날아다니는 직캠까지 업로드되며 게임이 끝났다.
-이렇게 실력 늘어나는 게… 가능한 거임?
-그래 둘 다 아이돌 하자
-양궁에 뺏길 뻔했던 거네ㅇㅇ납득
이제 류청우는 적어도 파이널까지는 배척당할 일이 없다.
‘깔끔하다.’
누가 그림이라도 그린 것처럼.
“……나 참.”
그리고 여기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대체 누구겠는가.
[신재현 : 순조로운 진행에 기뻐하는 중 (^-^)]
이놈 솜씨지.
나는 동료 목록을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신재현 : 걸려 온 동료의 전화를 받는 중 (^?^*)]
얼마 안 가서 통화가 연결되고 직접 물어본 결과.
-음, 원래 이때쯤 터졌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글쎄. 시기가 너무 절묘하면 누군가 절묘하게 만든 거겠지.”
통화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하네요.
사실상 시인이나 다름없었다.
“원래는 어떻게 이게 안 터진 거냐.”
-원래는… 글쎄요. 영상을 올린 분이 모종의 이유로 계정을 해킹당해서 조용히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
오냐,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알겠군.
이 새끼 진짜 논란 하나하나까지 VTIC을 제대로 관리한 모양이다. 하기야 그러니까 10년 동안 1군 해 먹었겠지.
‘그건 인정할 만하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우호적으로 물었다.
“이제 곧 프로그램 파이널인데, 또 보낼 놈 있냐.”
-아, 직접 해보고 싶어서?
“못 할 건 없지.”
놈은 웃다가 대답한다.
-하나 있긴 한데… 이건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탈락해야 균형이 맞을 것 같긴 하죠.
“누군데.”
-글쎄요.
뭐?
-내가 하는 게 깔끔하니까. 후배님에겐 추측하는 재미를 남겨줄게요.
“…….”
정말 한결같이 사람 꼴 받게 하는 새끼였다. 눈앞에 있었으면 주먹이 나갔을 것이다.
-그럼 푹 쉬고, 연습실에서 봐요.
“말할 준비나 해놔라.”
-하하.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촬영 시작 전에 불게 만들어야겠군.’
나는 이를 갈며 통화 페이지를 닫았다.
그러자 화면에서 아까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 팝업들이 보인다.
-배세진 형 : 고생했어 나도 아직 그 안무 기억해
이건 이번 촬영 이야기를 들은 놈이 연락해서 잠깐 이야기 나눈 흔적이고.
다음은 지금 막 온 메시지다.
-멋진 동생 세진 : 형 촬영 끝났어? 게릴라 콘서트 어땠어요?ㅋㅋ
이세진.
촬영 끝날 시기에 맞춰서 연락한 모양이다.
지난번에 투어에 관해서 몇 번 물어봐 뒀더니 이런 질문이 나오는군.
나는 적당히 답장했다.
-좀 짧았지만 재밌었어
-멋진 동생 세진 : 그치그치ㅎㅎ
-멋진 동생 세진 : 근데 그게 짧다니 완전 야심만만한데ㅋㅋ 형님 데뷔하면 날아다니시는 거 아닙니까?
서로 얼굴에 금칠 좀 해주자는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너야말로 투어에서 날아다니던데
즉시 답장이 쏟아진다.
-멋진 동생 세진 : 오 정답 (폭죽 이모티콘) 세진이가 좀 하지ㅋㅋ
-멋진 동생 세진 : 아 맞다 우리 투어 영상 나온다? 내일!
-멋진 동생 세진 : 밤에 시간 되면 같이 보실?ㅋㅋ 형 게릴라 콘서트 소감도 들을 겸
음?
이놈 관리 텀상 아직 안 봐도 괜찮은 정도 아닌가. 파이널 끝나고서야 약속 이야기 나올 줄 알았는데.
‘뭐… 당장 촬영도 끝났으니 거절할 필요는 없긴 하지.’
이놈도 여론을 잘 읽어내니, 를 보면서 내가 미처 다 알아내지 못한 부분을 좀 잡아낼 수도 있고.
나는 선선히 답장했다.
-너 시간 낼 수 있으면.
그리고 속전속결로 약속이 잡혔다.
지난번처럼 외출해서 보기엔 시간도 애매하고 목격담도 신경 쓰이니 장소는 저놈 집 아니면 내 집이다.
그럼 숙소 사는 놈을 제외하면… 사실 결론이 나온다.
띵동.
“안녕하세요~”
밤 9시. 이세진이 선물 세트를 들고 오피스텔에 찾아왔다.
물론 집에 나만 있던 건 아니지만.
“안녕하세요, 오~ 같이 사신다고 말씀 전해 들었어요! 프로그램 잘 보고 있습니다.”
“Welcome!”
“음.”
“…?”
신나게 손을 흔드는 차유진 너머, 류청우는 오랜만에 보는 팀 멤버를 유심히 보다가 씩 웃는다.
“잘 놀다 가세요. 아, 선배님이시니까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가요?”
“에이~ 편하게 하세요! 형님이신 거 아는데.”
“하하, 그럴까? 고마워.”
이세진은 선물 세트를 넘기고 오피스텔에 입장했다. 그리고 ‘집이 참 멋지다’라는 사교적인 멘트를 꺼내며 거실 소파까지 왔을 때.
“소파 등받이 이렇게 하면 올라가요.”
“방석 뺀다.”
“…아~ 네! 오케이.”
선호 스타일을 반사적으로 맞춰주니 놈 얼굴에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 순간 스쳐 지나갈 뻔했다.
그래도 이세진은 얼굴을 성공적으로 수습하고 붙임성 있게 잡담을 계속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류청우와 차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린 장 보고 올게.”
“제가 맛있는 거 찾아오면 먹어요!”
내가 야식 제조 담당이라, 재료 수급은 저놈들이 하기로 했거든.
“헉, 괜찮으시면 제가 배달로 좀 시켜볼까요?”
“It’s totally OK~ 즐겨요!”
차유진은 간단히 이세진에게 대답했고, 그렇게 둘은 나갔다.
띠리릭.
이세진은 닫힌 정문을 보며 적당히 예의 바르고 넉살맞게 반응했다.
“아이고… 죄송하네.”
“너 와서 그런 것보다도 원래 저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나는 피식 웃었다.
“너 투어나 좀 보자.”
“으으음, 그럴까?”
이세진은 깔끔히 태세를 바꿔서 적극적으로 기기를 조작했다.
놈이 가져온 블루레이 디스크가 재생되며, 성공적으로 TV 화면에 영상이 뜬다.
[자이롭(GY-ROP) – FIRST DROP : THE OPENING CONCERT]
“아 글자 엄청 크게 넣으셨네~”
“잘 보이니까 됐지.”
그리고 제법 대규모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첫 곡.
“오.”
격렬한 비트의 힙합 베이스 곡의 오프닝을 지나, 가벼운 레게톤 댄스곡이 이어진다.
나는 턱을 괬다.
‘그룹 색이 보이는 선택이군.’
반항아에 칼군무를 더한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래도 곡과 안무 퀄리티가 좋아서 팬은 많을 것 같았고.
“잘한다.”
“아하하… 고마워.”
말은 천연덕스럽도록 밝게 하면서도, 이세진은 제법 가라앉은 눈으로 화면을 본다.
신나서 자기 영상 가져온 놈답지 않은 기색.
그 이유도 알겠다.
‘혼자 튄다는 말을 좀 들었겠는데.’
웃긴 일이었다. 이놈은 그룹 곡에서는 전체 균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안무 연습마다 차유진 잡고 배세진 끌어올리는 게 이놈 일상이었는데 말이지.
그 뜻은….
‘저 새끼들이 눈에 보이게 날려 춘다는 거야.’
라이브 한다는 명목으로 안무 선을 덜 잡고 있다. 그러니 이세진이 정석대로 추면 도리어 튄다. 동작이 혼자 크게 보이니까.
가뜩이나 체격이 큰 놈이다 보니 의식해서 조심하는 게 보였는데, 곡이 더 진행될수록 몰입하다 보니 동작이 다시 커진다.
게다가 셋이 하는 유닛곡에서는… 퀄리티 차이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Yes 전진, 전진! 그저 더 앞으로~]
나는 제스처를 하는 척 눕는 안무를 숙이다시피 하고 대충 넘어가는 놈을 확인한 뒤 대놓고 물었다.
“아깝지 않았냐.”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X발 말하는 편이 속 시원하니까 듣는 놈도 그렇겠…….
“아까워.”
“…!”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놈은 연달아 다시 쾌활해졌다.
“…저 때 저 형님이 좀 아팠거든~ 그래서 서로 좀 아쉬워한 무대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짧게 침묵이 흘렀다.
“아~ 그래도 내 무대를 형한테 이렇게 계속 보여주니까 민망하네. 술 할래? 형은 무알콜… 아.”
놈은 말하다가 멈췄다. 나도 움직임을 멈춘 순간.
“아닌가? 아 지난번에 그렇게 들은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
나는 다시 움직였다.
“아니, 무알콜 좋지.”
“아, 그래? 그럼 내가 가져올까?”
“근데 집에 없어.”
놈이 빵 터진다.
“아~ 형 뭐야 그게!”
나는 음료수나 꺼내왔다. 이세진이 제법 공손히 받는다.
“아, 감사합니다~”
“뭘.”
분위기는 다시 풀렸다. 나는 자리에 앉아, 다시 자이롭 투어 영상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원래는 함께 저 일을 했다가, 지금은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는 녀석들을.
배세진, 선아현.
그리고 화면 속 당사자인… 큰세진.
“…….”
사실 합리적으론 이미 결론을 내렸지 않은가.
‘더는 뽑기 돌려도 아무 의미가 없다.’
김래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차라리 각성 포인트를 나한테 몰아서 모든 능력치를 EX로 만드는 치트급 개짓거리를 해보는 게 낫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열받는단 말이지.’
같은 그룹인 새끼가 저기서 폐급이랑 한계를 느끼고 빌빌대는 꼴을 보니 말이다.
차라리 본인의 진짜 처지를 아는 게 본인도 속 편하지 않나.
‘여유도 충분한데.’
명성치는 꾸준히 들어오고 있으니까.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상태창을 켰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정도의 동작으로, 팝업의 10연속 버튼을 연타했다.
빛, 빛, 빛.
그런데 이러다가 선아현이 나오면 어쩔 거냐.
‘몰라 X발!’
그때 가서 생각한다.
자이롭의 투어 화면 주변으로 별빛이 끊이지 않고 튄다.
[저, 저희 십만 포인트쯤 쓴 것 같은데요…?! 100번!]
그러냐? 나는 계속 눌렀다.
그리고 그렇게 열두 번쯤 눌렀을까.
[어어?]
팝업에서 드디어 강한 빛이 터져 나온다.
자이롭의 투어 화면을 가릴 만큼 강렬한 빛.
그리고 상태창에 표기되는 별들.
[후~]
[★★★★★ 이세진 / 메인댄서]
“…….”
뽑았다.
[이대로 맞이하시겠습니까?]
상태창이 묻는다.
나는 음료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열었다.
이세진에게.
“그냥 하는 말인데.”
“응?”
“만약에 어딘가에 네가 알아차리지 못한 네 성공이 더 있다면.”
“…….”
“그러니까… 네 노력의 결과물이 또 있는데 그걸 네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라면 말이지.”
나는 물었다.
“그걸 알 방법이 있다면, 써보고 싶을 것 같냐.”
“어.”
“…!”
틈 하나 없이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놈을 돌아보았다. 이세진은 표정 없이 나를 본다.
“해봐.”
“…….”
“그게 뭔데?”
나는 손을 뻗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3화
인터넷에는 방영된 화들의 반응이 쭉 쌓여 있었다. 시간순으로 정렬해서 주행해 보자.
우선 7화부터인데, 그 전에 기본 여론부터 살피도록 할까.
청려가 열외인 류건우를 픽업해서 완성한 섹시 키워드 컨셉 무대가 방영된 6화 이후의 생태계 말이다.
-이게 바로 레티의 정수다 외치는 것 같은 무대
-살다살다 무대바닥이 부러운 적은 처음이다…
-그냥 이대로 데뷔해도 내 적금 가져갈 듯 서바이벌 왜 해? 다 데뷔시켜ㅕㅕ
-제일 놀라운 점은 이 무대에 새 연생 보충반 출신이 둘이라는 것임 워낙 기획사의 색이 분명하고 그걸 완벽히 소화하는 신재현이라는 리더가… [더보기]
솔직히 섹시 같은 키워드를 써먹어서 말초적인 반응이 더 많을 줄 알았는데, 지금 시점에선 도리어 무대에 대한 분석 댓글들이 상위권을 점령했다.
‘돌아와서 계속 보는 사람이 많다는 거지.’
그리고 서사를 부여하는 사람이 많다는 뜻이다. 점점 그룹의 이미지를 갖춰간다는 뜻이기도 하고.
‘차유진도 완전히 받아들여졌군.’
이질적이던 차유진이 레티 색을 완전히 받아들인 것까지 시너지가 나며 무대 자체에 대한 유입이 생긴다.
그래, 시청자들은 이때쯤 이미 데뷔 멤버 라인업을 예측 중이었다.
-내가 예상한 김태인 픽 데뷔조 9명 (사진)
-추가로 누가 되냐가 관건일걸 사장이 본인 고집 밀고 나갈지 대중 눈치 볼지ㅇㅇ
└사장 김태인씨 눈치 좀 챙기게 다들 빠른 투표 부탁합니다(링크)
슬슬 프로그램 이후 데뷔 그룹의 윤곽을 더듬는 사람이 많아진 상태.
6화 마지막에 나온 대국민 지원 보충반 등장 예고 어그로도 썩 안 먹힐 정도였다.
그냥 지나가는 장애물로 다들 생각하고 기존 참가자들에 집중하는 흐름이었단 거지.
그런데 7화.
류청우가 등장한 것이다.
-헐
-스포 맞았네
-미친 건우 친척임? 뭐야 다들 알았음? 나만 모름?
처음에는 예상도 못 한 타 분야 거물급 뉴페이스에 다들 기겁하면서도 대단히 흥미진진해 했다.
…내 반응도 한몫한 것 같고.
빨간 글씨로 주르륵 흘러가는 자막 위, 내 인터뷰 컷이 나온다.
‘망할.’
이럴 줄 알았다 방송국 놈들….
절묘하게 클로즈업해 멍청해 보이는 얼굴이 비슷한 몰골의 인터뷰 컷과 엇갈리는 게, 긴장감 넘치는 분위기 속 예능 컷으로 잘 살았다.
-ㅋㅋㅋㅋㅋㅋㅋㅋ충격 심했나 봐
-아 거누 귀여워 근데 나도 그랬을 듯 사실 지금도 그럼 무슨 일임
└그라데이션 혼란
-진짜 어쩌다 나오신 건지..?
그리고 진솔한 류청우의 인터뷰와 진지하고 협조적인 준비 과정이 나오며 나름대로 온에어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스포일러가 광범위하게 퍼지기 전까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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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청우 붙고 최태준 떨어진다는데 진짜일까
========================
-??
-사장이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일ㄴㄴ
└방청객 투표점수로 탈락자 선정했대…
└헐
-아 설마.. 이건 진짜 아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는 가짜 스포나 분탕이라는 여론도 커서 그럭저럭 긴장 속에서 물 밑에 있었나 보다.
그리고 설마설마하던 시청자 여론은 8화가 방영되고 나서야 폭발한다.
-스포 다 맞았네 미친
-쟤 국대 그만두고 쌩 대학 갈 때부터 아쉽긴 했는데 아이돌까지 찍먹하니까 뭐하는 거지 싶기도 함
-솔직히 ㅊㅌㅈ이 말아먹어서지 누굴 탓해ㅋㅋㅋ 천재즈 <-이것도 솔직히 걔 빠들이 억지로 민거고
└탈락자한테 말하는 것 좀 봐 너 이거 악플이야 알아?
└ㅋㅋㅋㅋㅋㅋㅋ발작 투명하고~
-류청우가 존잘에 무대도 잘한 걸 어쩌란 말임
└류건우랑 같은 팀이 아니었어도 이런 말 했을지는 잘 생각해봐
부정적인 쪽의 중론은 내가 잘해서 친척인 류청우가 버스 탔다는 것이다.
메인보컬 VS 메인보컬 대전에 뛰어드는 류건우의 도전 정신 자체는 서바이벌에서 어필할 만한 캐릭터였다.
그러나 하필 류청우가 그 팀을 골라 나온 것도 수상하다… 라.
‘부작용이 나올 줄은 알았는데 말이지.’
실제로 조작이나 적폐 이야기까지 선 넘어서 나오는 분위기였으나 시청자가 아닌 대중까지 이 어그로를 물면서 또 뒤집힌다.
-헐 류청우 선수 아이돌 도전함?ㅋㅋㅋㅋㅋ
-막냉이 언제 이렇게 컸어 여전히 대존잘이네;
류청우는 금메달리스트니까.
‘대중 호감도가 전반적으로 무조건 높지.’
가 대단히 잘되고 있다고 해봤자 아이돌 서바이벌 예능 하나일 뿐이다. 일반 대중과 괴리가 생기는 것이다.
-그러니까 투표에서 이겼다고 욕하는 거야?;;; 와 기괴
-아ㅋㅋ 이건 선넘었지
-돌빠들 특히 레티빠들 이래서 문제임 너무 고였어.. 아이돌 연생 응원하겠다고 금메달 따온 국대까지 패고 있네
덕분에 프로그램 안 보는 사람까지 가세해서 개판이 될… 뻔했으나, 자정 작용이 어느 정도 먹혀서 욕하던 사람들이 눌렸다.
그래도 수면 아래에서는 부글부글 반감이 들끓고 있었는데….
게릴라 콘서트 전에 이게 터진 것이다.
클럽 메보 이 새끼의 술 담배 영상 캡처가.
모 술집에서 생일 파티를 했던 사람이 SNS에 올린 몇 년 전 영상 끝에 몇 초 잡힌 것이 발견되어 끌어올려졌다.
당시 놈의 인상착의와 비교하니 빼도 박도 못하고 본인 인증까지 끝났다.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리고 모두가 시원하게 태세를 전환했다.
-선견지명 오졌다
-김태인 1승
-방청단의 안목은 머한민국 1프로입니다 무지몽매한 제자신을 반성합니다
-와 이걸 피했네
이제 중간에 터졌으면 팬들 머리가 터져나가게 고통스러울 뻔했거든.
최태준은 실력 좋고 팬도 꽤 붙은 데다 사장 픽이라 어지간하면 탈락할 일이 없으니까.
사장이 어떻게든 데려가려고 할까 봐 뜬눈으로 밤새며 고통스러워하게 되는 것이다.
게다가 참가자 이슈가 터지면 사내 서바이벌이니만큼 프로그램 이미지에도 악영향이다.
‘그런데 이걸 류청우가 직전에 스나이핑으로 잘라낸 게 돼버린 거지.’
덕분에 무슨 히어로 취급이다.
-류형제.. 당신들 대체 어디까지 본 겁니까
-지금 보니 국대님 레티상인 것 같음 암튼 맞음
└ㅋㅋㅋㅋㅋㅋ세뇌를 하네 아주!
재평가가 또 재밌다 보니, 온갖 참가자의 팬들이 다 신나서 우호적으로 한 마디씩 얹은 것이고.
‘어쩐지 클럽메보랑 프로그램에서 전혀 안 엮인 놈들 팬들이 많더라니.’
이 사태에 말 안 보탠 진영에서 제일 신나서 놀던 중이었던 것 같다.
게다가 게릴라 콘서트에서 테스타 때의 기량을 되찾은 류청우가 날아다니는 직캠까지 업로드되며 게임이 끝났다.
-이렇게 실력 늘어나는 게… 가능한 거임?
-그래 둘 다 아이돌 하자
-양궁에 뺏길 뻔했던 거네ㅇㅇ납득
이제 류청우는 적어도 파이널까지는 배척당할 일이 없다.
‘깔끔하다.’
누가 그림이라도 그린 것처럼.
“……나 참.”
그리고 여기서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게 대체 누구겠는가.
이놈 솜씨지.
나는 동료 목록을 확인하자마자 전화를 걸었다.
얼마 안 가서 통화가 연결되고 직접 물어본 결과.
-음, 원래 이때쯤 터졌을 거란 생각은 안 해봤어요?
“글쎄. 시기가 너무 절묘하면 누군가 절묘하게 만든 거겠지.”
통화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들린다.
-그렇게 볼 수도 있긴 하네요.
사실상 시인이나 다름없었다.
“원래는 어떻게 이게 안 터진 거냐.”
-원래는… 글쎄요. 영상을 올린 분이 모종의 이유로 계정을 해킹당해서 조용히 사라지지 않았을까요?
“…….”
오냐, 어떻게 돌아간 건지 알겠군.
이 새끼 진짜 논란 하나하나까지 VTIC을 제대로 관리한 모양이다. 하기야 그러니까 10년 동안 1군 해 먹었겠지.
‘그건 인정할 만하군.’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우호적으로 물었다.
“이제 곧 프로그램 파이널인데, 또 보낼 놈 있냐.”
-아, 직접 해보고 싶어서?
“못 할 건 없지.”
놈은 웃다가 대답한다.
-하나 있긴 한데… 이건 프로그램에서 자연스럽게 탈락해야 균형이 맞을 것 같긴 하죠.
“누군데.”
-글쎄요.
뭐?
-내가 하는 게 깔끔하니까. 후배님에겐 추측하는 재미를 남겨줄게요.
“…….”
정말 한결같이 사람 꼴 받게 하는 새끼였다. 눈앞에 있었으면 주먹이 나갔을 것이다.
-그럼 푹 쉬고, 연습실에서 봐요.
“말할 준비나 해놔라.”
-하하.
그리고 전화는 끊어졌다.
‘촬영 시작 전에 불게 만들어야겠군.’
나는 이를 갈며 통화 페이지를 닫았다.
그러자 화면에서 아까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 팝업들이 보인다.
-배세진 형 : 고생했어 나도 아직 그 안무 기억해
이건 이번 촬영 이야기를 들은 놈이 연락해서 잠깐 이야기 나눈 흔적이고.
다음은 지금 막 온 메시지다.
-멋진 동생 세진 : 형 촬영 끝났어? 게릴라 콘서트 어땠어요?ㅋㅋ
이세진.
촬영 끝날 시기에 맞춰서 연락한 모양이다.
지난번에 투어에 관해서 몇 번 물어봐 뒀더니 이런 질문이 나오는군.
나는 적당히 답장했다.
-좀 짧았지만 재밌었어
-멋진 동생 세진 : 그치그치ㅎㅎ
-멋진 동생 세진 : 근데 그게 짧다니 완전 야심만만한데ㅋㅋ 형님 데뷔하면 날아다니시는 거 아닙니까?
서로 얼굴에 금칠 좀 해주자는 건가.
나는 피식 웃으며 답장을 보냈다.
-너야말로 투어에서 날아다니던데
즉시 답장이 쏟아진다.
-멋진 동생 세진 : 오 정답 (폭죽 이모티콘) 세진이가 좀 하지ㅋㅋ
-멋진 동생 세진 : 아 맞다 우리 투어 영상 나온다? 내일!
-멋진 동생 세진 : 밤에 시간 되면 같이 보실?ㅋㅋ 형 게릴라 콘서트 소감도 들을 겸
음?
이놈 관리 텀상 아직 안 봐도 괜찮은 정도 아닌가. 파이널 끝나고서야 약속 이야기 나올 줄 알았는데.
‘뭐… 당장 촬영도 끝났으니 거절할 필요는 없긴 하지.’
이놈도 여론을 잘 읽어내니, 를 보면서 내가 미처 다 알아내지 못한 부분을 좀 잡아낼 수도 있고.
나는 선선히 답장했다.
-너 시간 낼 수 있으면.
그리고 속전속결로 약속이 잡혔다.
지난번처럼 외출해서 보기엔 시간도 애매하고 목격담도 신경 쓰이니 장소는 저놈 집 아니면 내 집이다.
그럼 숙소 사는 놈을 제외하면… 사실 결론이 나온다.
띵동.
“안녕하세요~”
밤 9시. 이세진이 선물 세트를 들고 오피스텔에 찾아왔다.
물론 집에 나만 있던 건 아니지만.
“안녕하세요, 오~ 같이 사신다고 말씀 전해 들었어요! 프로그램 잘 보고 있습니다.”
“Welcome!”
“음.”
“…?”
신나게 손을 흔드는 차유진 너머, 류청우는 오랜만에 보는 팀 멤버를 유심히 보다가 씩 웃는다.
“잘 놀다 가세요. 아, 선배님이시니까 이렇게 말하면 좀 그런가요?”
“에이~ 편하게 하세요! 형님이신 거 아는데.”
“하하, 그럴까? 고마워.”
이세진은 선물 세트를 넘기고 오피스텔에 입장했다. 그리고 ‘집이 참 멋지다’라는 사교적인 멘트를 꺼내며 거실 소파까지 왔을 때.
“소파 등받이 이렇게 하면 올라가요.”
“방석 뺀다.”
“…아~ 네! 오케이.”
선호 스타일을 반사적으로 맞춰주니 놈 얼굴에 대체 어떻게 알았냐는 표정이 순간 스쳐 지나갈 뻔했다.
그래도 이세진은 얼굴을 성공적으로 수습하고 붙임성 있게 잡담을 계속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류청우와 차유진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우린 장 보고 올게.”
“제가 맛있는 거 찾아오면 먹어요!”
내가 야식 제조 담당이라, 재료 수급은 저놈들이 하기로 했거든.
“헉, 괜찮으시면 제가 배달로 좀 시켜볼까요?”
“It’s totally OK~ 즐겨요!”
차유진은 간단히 이세진에게 대답했고, 그렇게 둘은 나갔다.
띠리릭.
이세진은 닫힌 정문을 보며 적당히 예의 바르고 넉살맞게 반응했다.
“아이고… 죄송하네.”
“너 와서 그런 것보다도 원래 저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나는 피식 웃었다.
“너 투어나 좀 보자.”
“으으음, 그럴까?”
이세진은 깔끔히 태세를 바꿔서 적극적으로 기기를 조작했다.
놈이 가져온 블루레이 디스크가 재생되며, 성공적으로 TV 화면에 영상이 뜬다.
“아 글자 엄청 크게 넣으셨네~”
“잘 보이니까 됐지.”
그리고 제법 대규모 공연장에서 펼쳐지는 첫 곡.
“오.”
격렬한 비트의 힙합 베이스 곡의 오프닝을 지나, 가벼운 레게톤 댄스곡이 이어진다.
나는 턱을 괬다.
‘그룹 색이 보이는 선택이군.’
반항아에 칼군무를 더한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그래도 곡과 안무 퀄리티가 좋아서 팬은 많을 것 같았고.
“잘한다.”
“아하하… 고마워.”
말은 천연덕스럽도록 밝게 하면서도, 이세진은 제법 가라앉은 눈으로 화면을 본다.
신나서 자기 영상 가져온 놈답지 않은 기색.
그 이유도 알겠다.
‘혼자 튄다는 말을 좀 들었겠는데.’
웃긴 일이었다. 이놈은 그룹 곡에서는 전체 균형에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덕분에 안무 연습마다 차유진 잡고 배세진 끌어올리는 게 이놈 일상이었는데 말이지.
그 뜻은….
‘저 새끼들이 눈에 보이게 날려 춘다는 거야.’
라이브 한다는 명목으로 안무 선을 덜 잡고 있다. 그러니 이세진이 정석대로 추면 도리어 튄다. 동작이 혼자 크게 보이니까.
가뜩이나 체격이 큰 놈이다 보니 의식해서 조심하는 게 보였는데, 곡이 더 진행될수록 몰입하다 보니 동작이 다시 커진다.
게다가 셋이 하는 유닛곡에서는… 퀄리티 차이로까지 느껴질 정도다.
나는 제스처를 하는 척 눕는 안무를 숙이다시피 하고 대충 넘어가는 놈을 확인한 뒤 대놓고 물었다.
“아깝지 않았냐.”
당연히 아니라고 하겠지만, 그래도 X발 말하는 편이 속 시원하니까 듣는 놈도 그렇겠…….
“아까워.”
“…!”
무미건조한 목소리였다.
하지만 놈은 연달아 다시 쾌활해졌다.
“…저 때 저 형님이 좀 아팠거든~ 그래서 서로 좀 아쉬워한 무대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
짧게 침묵이 흘렀다.
“아~ 그래도 내 무대를 형한테 이렇게 계속 보여주니까 민망하네. 술 할래? 형은 무알콜… 아.”
놈은 말하다가 멈췄다. 나도 움직임을 멈춘 순간.
“아닌가? 아 지난번에 그렇게 들은 줄 알았네. 죄송합니다~”
“…….”
나는 다시 움직였다.
“아니, 무알콜 좋지.”
“아, 그래? 그럼 내가 가져올까?”
“근데 집에 없어.”
놈이 빵 터진다.
“아~ 형 뭐야 그게!”
나는 음료수나 꺼내왔다. 이세진이 제법 공손히 받는다.
“아, 감사합니다~”
“뭘.”
분위기는 다시 풀렸다. 나는 자리에 앉아, 다시 자이롭 투어 영상에 시선을 주었다.
그리고 떠올렸다.
원래는 함께 저 일을 했다가, 지금은 각기 다른 곳에서 일하는 녀석들을.
배세진, 선아현.
그리고 화면 속 당사자인… 큰세진.
“…….”
사실 합리적으론 이미 결론을 내렸지 않은가.
‘더는 뽑기 돌려도 아무 의미가 없다.’
김래빈이 나오지 않는 이상, 차라리 각성 포인트를 나한테 몰아서 모든 능력치를 EX로 만드는 치트급 개짓거리를 해보는 게 낫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열받는단 말이지.’
같은 그룹인 새끼가 저기서 폐급이랑 한계를 느끼고 빌빌대는 꼴을 보니 말이다.
차라리 본인의 진짜 처지를 아는 게 본인도 속 편하지 않나.
‘여유도 충분한데.’
명성치는 꾸준히 들어오고 있으니까.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상태창을 켰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정도의 동작으로, 팝업의 10연속 버튼을 연타했다.
빛, 빛, 빛.
그런데 이러다가 선아현이 나오면 어쩔 거냐.
‘몰라 X발!’
그때 가서 생각한다.
자이롭의 투어 화면 주변으로 별빛이 끊이지 않고 튄다.
그러냐? 나는 계속 눌렀다.
그리고 그렇게 열두 번쯤 눌렀을까.
팝업에서 드디어 강한 빛이 터져 나온다.
자이롭의 투어 화면을 가릴 만큼 강렬한 빛.
그리고 상태창에 표기되는 별들.
“…….”
뽑았다.
상태창이 묻는다.
나는 음료에 시선을 둔 채로 입을 열었다.
이세진에게.
“그냥 하는 말인데.”
“응?”
“만약에 어딘가에 네가 알아차리지 못한 네 성공이 더 있다면.”
“…….”
“그러니까… 네 노력의 결과물이 또 있는데 그걸 네가 알아차리지 못한 상태라면 말이지.”
나는 물었다.
“그걸 알 방법이 있다면, 써보고 싶을 것 같냐.”
“어.”
“…!”
틈 하나 없이 대답이 돌아온다.
나는 놈을 돌아보았다. 이세진은 표정 없이 나를 본다.
“해봐.”
“…….”
“그게 뭔데?”
나는 손을 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