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9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2화
마이크를 넘기고 걸어오던 류청우는 대기실 소파 옆에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좋은 무대 잘 봤어요.”
“네.”
그리고 잠시 후에 짧게 묻는다.
“좀 괜찮아?”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이놈도 눈치챘군.
“어. 괜찮네.”
이제 좀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머리로 돌이켜 봐도 웃기는 일이었다. 첫 무대 덮어쓰기 한다고 이렇게까지 신경 줄이 긁히다니.
‘좀 찝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차피 탈출할 거 그냥 대충 써먹자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아니죠! 충분히 충격받을 만한 상황이었어요!]
그러냐?
솔직히 보자.
나는 자잘한 감정싸움으로 타격 입는 류의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하게 군 건지 이유를 이제 좀 알겠고.
[무슨….]
간단하다.
‘서러웠다 이거지.’
첫 홈마 탈주부터 시작해서 ‘넌 이제 테스타 박문대가 아니다’ 인증샷 같은 증명 계속되니 비합리적으로 멘탈이 박살 난 거다.
그만큼… 내가 그 현실에 정 좀 붙였다는 뜻이겠고.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나는 팔짱을 꼈다.
‘…처음인데.’
[네?]
그리고 인정했다.
‘이런 일로 컨디션까지 나빠지는 건 처음이었다고.’
[헉!]
무슨 누가 죽은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사기 쳐서 보증금 못 받게 된 것도 아닌데 무력감까지 느낄 줄은 몰랐다.
나는 입을 열어 덧붙였다.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처음이라 대처가 미흡했던 것이다. 앞으론 그럴 일 없다. 제어하는 방법을 알았으니까.
[오오~ 어떤 방법이요?]
이놈 왜 이렇게 큰세진처럼 적는 거지.
나는 담담히 선언했다.
당장 다른 해결책은 안 나오는데 그냥 하기엔 감정적으로 안 내키는 일이 있다?
‘그럼 더 생각을 안 하면 된다.’
[앗.]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상황상 해야 하면 하는 거고, 능률 안 나올 정도로 기분 나쁘면 때려치워.’
이게 제일 빠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안 수행했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형 그거… 그거 진짜 건강한 방법인 건 맞아요? 제 생각엔]
내 생각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 알았냐?
[예….]
팝업이 흔들렸다. 그리고 류청우의 답변이 동시에 들렸다.
“너라면 정말 그럴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복잡할 땐 털어놓는 것도 괜찮아.”
고개를 돌리자, 류청우가 살짝 작은 손동작을 한다.
…테스타 로고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알겠지?”
“…….”
[들었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청우는 다른 말 없이 그냥 웃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방청객이 돌아간 빈 스테이지로 다시 올라가서 이번 촬영분 피날레컷을 찍었다.
사장 얼굴을 보아하니 이번 공연이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덩달아 참가자들도 좀 들떴고, 드물게 괜찮은 분위기에서 촬영이 종료되었다.
“건우 형! 몸살에 걸리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김래빈에게 ‘몸살에 좋다’는 할머니표 수정과를 받아 든 채로 귀가 준비를 하게 되었다.
“…??”
참고로 이놈 먹으라고 챙겨주신 것 같아 거절하려고 했는데, 거절 시 이놈이 할 법한 여러 오해 목록이 떠올랐다.
-모양이 누추해서!
-타인이 만든 음식물은 섭취하지 않아서!
-촬영 후반이라 수정과의 섭취 기한이 지났을까 봐!
…깔끔하게 승낙하게 되었다. 저놈 할머님과 문제없으려면 다음 촬영 전에 한번 불러서 먹을 거나 해줘야겠군.
그래서 짐을 쌀 때 이 물통까지 가방에 집어넣고 있다는 소리다.
주변에서는 대기실 같이 쓰는 놈들의 들뜬 소리가 들린다.
“야 우리 이대로 다 같이 데뷔하는 거 아니야?”
“아 좀 많은데… 나 탈락하느니 그게 나을 듯.”
“오 이득 좀 볼 줄 아는 놈인가.”
참고로 청려가 손절한 새끼들이니 같이 갈 일은 없다.
‘몇 년 차에 무슨 짓을 했냐.’
나는 아직까진 멀쩡해 보이는 두 놈을 보다가 짐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다른 놈들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촬영장에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복도 너머에서 들어본 목소리가 울린다.
“아현 씨,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선아현과 직원이다.
직원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선아현은 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음.’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녀석이 곧바로 걸어왔다.
“안 그래도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뵙네요!”
“아, 예.”
나는 일단 공연을 잘 끝낸 멘토를 만난 참가자답게 고개를 숙였다.
참고로 이 녀석이 다른 팀 공연에 점수를 퍼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냉철히 점수를 때려준 덕분에 순조로운 우등반 유지 각이 보였다.
멘토로 최고사양이긴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대를 잘 마쳤습니다.”
“아뇨! 저야말로 덕분에 참 재밌는 공연을 해봤어요.”
선아현이 살짝 손을 내젓더니, 얼굴을 붉혔다.
“이런 식으로 가요를 이용한 무대를 해볼 일은 거의 없어서…. 신선했어요. 감사합니다.”
“…….”
자, 생각을 멈추고. 인사나 마저 하고 헤어진다. 그렇게 가자.
그러나 선아현이 다시 말을 붙인다.
“그리고…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었는데, 수정해 주신 시안이 전보다 더 좋았어요.”
“…….”
“더 좋은 정답을 찾아내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아현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붙였다.
“상담해 주시는 선생님 소개… 지금도 괜찮아요.”
아.
이건 좀 물어봐야겠군.
이놈 여기서는 대체 왜 상담사를 만나고 있는 거지?
“혹시 어떻게 만나신 상담사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정도면 적당히 흥미 겸 신뢰도 검증 정도로 느껴지겠지.
나는 놈이 머뭇거리면 질문을 철회할 단계까지 미리 구상했다.
그러나 선아현은 선선히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은 제 에이전시 계약 사항에 기재되어 계셨어요.”
음?
“아무래도 예체능은 항상 자기 자신과의 전투니까요. 상담이 기본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기도 해요.”
“……아.”
그러니까… 아티스트 복지였다는 건데.
‘그럼 그 자기도 고통스러웠다는 말은 무슨 맥락에서 나온 거지.’
나는 혹시 거짓말인지 놈을 살폈다. 현실에서는 못할 수준으로 티가 나는 놈이었으나, 여기서는 제법 잘 감출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기색은 없다.
‘거짓말은 아니군.’
그리고 내가 고민 중이라고 생각했는지, 선아현이 말을 덧붙인다.
“퍼포머는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의 컨디션도 조절해야 하잖아요.”
“음, 네.”
“그러니까, 혹시 원하시면 제가 미리 연락드려 둘게요. 그… 아마도 5회 정도는 무료로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
나는 거기까지 가서야, 미소 띤 선아현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이거… 그랬군.
‘일부러 고통 같은 소리를 했던 거야.’
공감대 형성으로 허들을 낮춰서, 우울한 놈이 순순히 곤란한 점을 말하고 편해지라고 말이다.
‘이걸 눈치를 못 채다니.’
나는 좀 떨떠름한 눈으로 놈을 쳐다보았다.
잠깐 그렇다면… 이놈은 그냥 지극히 건강한 상태란 뜻 아닌가.
케어받을 수 있는 데까지 잘 받으면서 커리어 쌓고 있다는 뜻이다.
[그… 그렇네요?]
그래.
머리 복잡해 보이는 생판 남에게 말 걸고 호의를 베풀 정도로 여유도 있고.
긴장이 탁 풀린다.
‘나 참.’
“…괜찮습니다. 사실 친구에게 미리 추천받은 분이 계셔서.”
“아… 그렇군요.”
괜히 근거도 없이 과추측했군. 내 상태가 별로라 거기까지 사고가 굴러간 간 모양이다. 나는 혀를 차며 추측을 다 철회했다.
선아현은 미소 띤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럼… 가끔 저희 안부라도 주고받을까요?”
“좋죠.”
나는 별문제 없이 놈의 스마트폰에 번호를 찍어주었다. 여기서 거절하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면상에 장갑 던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발레 하러 출국하면 여기서 다시 직접 볼일도 없을 테지만.’
현실로 돌아가서 보면 될 것 아닌가. …여기 사는 이놈이 그걸 반길지는, 이젠 솔직히 모르겠다만.
‘뭐 이런 건 뽑기에서 나오고서야 고민하든가.’
뽑지도 못하면서 입 털어 봤자 김칫국이다. 나는 바로 생각을 멈췄다.
‘이런 식으로 제어한다는 뜻이지.’
잘되는군.
나는 연락처 교환한 업계 사람과 그랬듯이 버릇처럼 놈과 악수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멘토님도 잘 들어가세요.”
“이제 멘토도 아니니까, 정말 편하게 부르셔도 괜찮아요.”
끈질긴 놈. 내가 너까지 이 호칭으로 불러야 할 줄은 몰랐다.
“…그럼 형, 잘 들어가세요.”
선아현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저, 고민이 생기시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셔도 괜찮아요.”
“이제 막 지인이 된 사람한테 너무 후하신데요.”
선아현은 멍한 얼굴이 됐다가, 작게 웃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그래, 여전히 호구인 건 변한 게 없긴 하군.
나는 그렇게, 발레리노 선아현과 없이도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연락처를 얻게 되었다.
[선아현 형]
…저장 명이 이렇기는 했지만.
[아, 형! 로비!]
“아.”
그렇지.
나는 선아현과 헤어진 뒤 곧바로 로비로 나왔다.
그리고 정문으로 가기도 전에 다시 한번 붙들렸다.
“건우 형! 들어가세요?”
바로 이번 팀전에서 팀원이었던 두 사람.
주단과 채율이다.
“그래. 들어가는 중인데.”
오늘 너무 많은 놈들과 대화를 해서 슬슬 피곤했다. 하지만 방금 공연까지 같이한 놈들을 홀대할 수는 없으니 멈춰 섰다.
‘무대 이야기하려나.’
그러자 둘이 푹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진채율이 이렇게 말한다.
“몸 안 좋으신데도 저희 매번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는 좀 더 믿음직한 모습의 팀원이 되겠습니다.”
주단이 말을 덧붙인다.
“데뷔하면 더요.”
“맞아, 데뷔하면 더!”
“…….”
분명 내 상태가 썩 달갑지 않았을 텐데, 도리어 감사 인사나 하냐.
게다가 내가 수정하며 요구한 구성은, 이미 데뷔한 놈들도 어려울 만큼 표현력이 중요했다.
능력치가 아직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놈들이 따라오긴 힘들었을 텐데 입 다물고 열심히 따라오기만 했지.
‘…근성이 괜찮은 놈들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다. 나야말로 관리 잘해서 앞으로는 건강하게 올게.”
“…! 네!”
인정하겠다. 같이 일할 만한 놈들이었다.
나는 볼 터질 듯이 웃고 있는 진채율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번 무대도 그 홈마가 이놈 때문에 볼지도 모르겠지만… 뭐, 내 팀에 누구라도 좋아하는 편이 낫지 않나.
아예 내 무대를 안 보는 것보다는 말이다.
“무대도 정말 좋았어. 덕분에 즐거웠다. 고마워.”
“하하….”
“저도요.”
생각을 의식적으로 멈추지 않아도, 마음은 의외로 편했다.
“저희 무대 얼른 방송됐으면 좋겠어요! 아, 저희 같이 볼까요?”
“아니, 그건 좀.”
“아… 죄,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우리 촬영 시작한 다음에 방영되는데.”
“흐압.”
나는 그냥 웃고 넘겼다.
어쨌든 지금 이놈들이랑 데뷔까지 해야 하는데, 뭐… 그렇게 살기 더럽게 힘들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귀가를 시작했을 때는, 바깥에서 이미 가 게릴라 콘서트 화까지 완전히 방영된 상황이었다.
‘여론 한번 확인해 봐야겠지.’
그동안 스마트폰과 멀어졌던 만큼 점검은 필수였다. 나는 즉시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당황했다.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나 완벽한 조합 찾아냄 바로 류건우청우단임 정우단까지 넣으니까 얼굴합 돌았다
-늑대 류청우 허스키 류건우 북극여우 채율이… 우린 이걸 강쥐상 스펙트럼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아이돌 해줘서 고맙습니다 정말… 당신을 사랑해
“…….”
클럽메보 조져서 혈연 적폐니 뭐니 한참 피크로 욕먹고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탈락자 손절한 파티 분위기다.
심지어 온갖 참가자가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한 계정이 다 붙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시청자들이 전부 류청우에게 플래카드라도 내걸 기세.
‘뭐야.’
나는 당장 검색 엔진에 접속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92화
마이크를 넘기고 걸어오던 류청우는 대기실 소파 옆에 앉으며 말문을 열었다.
“좋은 무대 잘 봤어요.”
“네.”
그리고 잠시 후에 짧게 묻는다.
“좀 괜찮아?”
나는 피식 웃었다. 역시 이놈도 눈치챘군.
“어. 괜찮네.”
이제 좀 이성적으로 돌아가는 머리로 돌이켜 봐도 웃기는 일이었다. 첫 무대 덮어쓰기 한다고 이렇게까지 신경 줄이 긁히다니.
‘좀 찝찝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차피 탈출할 거 그냥 대충 써먹자 할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
그러냐?
솔직히 보자.
나는 자잘한 감정싸움으로 타격 입는 류의 사람은 아니다. 그런데도 내가 왜 그렇게 멍청하게 군 건지 이유를 이제 좀 알겠고.
간단하다.
‘서러웠다 이거지.’
첫 홈마 탈주부터 시작해서 ‘넌 이제 테스타 박문대가 아니다’ 인증샷 같은 증명 계속되니 비합리적으로 멘탈이 박살 난 거다.
그만큼… 내가 그 현실에 정 좀 붙였다는 뜻이겠고.
……아니, ‘좀’이 아니라 ‘많이’.
나는 팔짱을 꼈다.
‘…처음인데.’
그리고 인정했다.
‘이런 일로 컨디션까지 나빠지는 건 처음이었다고.’
무슨 누가 죽은 것도 아니고, 집주인이 사기 쳐서 보증금 못 받게 된 것도 아닌데 무력감까지 느낄 줄은 몰랐다.
나는 입을 열어 덧붙였다.
“앞으론 이런 일 없을 거야.”
처음이라 대처가 미흡했던 것이다. 앞으론 그럴 일 없다. 제어하는 방법을 알았으니까.
이놈 왜 이렇게 큰세진처럼 적는 거지.
나는 담담히 선언했다.
당장 다른 해결책은 안 나오는데 그냥 하기엔 감정적으로 안 내키는 일이 있다?
‘그럼 더 생각을 안 하면 된다.’
‘생각하지 말고 그냥 상황상 해야 하면 하는 거고, 능률 안 나올 정도로 기분 나쁘면 때려치워.’
이게 제일 빠르다.
이 간단한 진리를 안 수행했다니 믿기지가 않는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내 생각이니 내 마음대로 한다. 알았냐?
팝업이 흔들렸다. 그리고 류청우의 답변이 동시에 들렸다.
“너라면 정말 그럴 수 있겠지만, 그래도 마음이 복잡할 땐 털어놓는 것도 괜찮아.”
고개를 돌리자, 류청우가 살짝 작은 손동작을 한다.
…테스타 로고다.
“우리는 서로 이해할 수 있으니까. 알겠지?”
“…….”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류청우는 다른 말 없이 그냥 웃었다.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 후, 우리는 방청객이 돌아간 빈 스테이지로 다시 올라가서 이번 촬영분 피날레컷을 찍었다.
사장 얼굴을 보아하니 이번 공연이 하나같이 다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덩달아 참가자들도 좀 들떴고, 드물게 괜찮은 분위기에서 촬영이 종료되었다.
“건우 형! 몸살에 걸리셨다고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김래빈에게 ‘몸살에 좋다’는 할머니표 수정과를 받아 든 채로 귀가 준비를 하게 되었다.
“…??”
참고로 이놈 먹으라고 챙겨주신 것 같아 거절하려고 했는데, 거절 시 이놈이 할 법한 여러 오해 목록이 떠올랐다.
-모양이 누추해서!
-타인이 만든 음식물은 섭취하지 않아서!
-촬영 후반이라 수정과의 섭취 기한이 지났을까 봐!
…깔끔하게 승낙하게 되었다. 저놈 할머님과 문제없으려면 다음 촬영 전에 한번 불러서 먹을 거나 해줘야겠군.
그래서 짐을 쌀 때 이 물통까지 가방에 집어넣고 있다는 소리다.
주변에서는 대기실 같이 쓰는 놈들의 들뜬 소리가 들린다.
“야 우리 이대로 다 같이 데뷔하는 거 아니야?”
“아 좀 많은데… 나 탈락하느니 그게 나을 듯.”
“오 이득 좀 볼 줄 아는 놈인가.”
참고로 청려가 손절한 새끼들이니 같이 갈 일은 없다.
‘몇 년 차에 무슨 짓을 했냐.’
나는 아직까진 멀쩡해 보이는 두 놈을 보다가 짐을 챙겨 복도로 나왔다. 다른 놈들은 로비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번에야말로 촬영장에서 나가려던 순간이었다.
복도 너머에서 들어본 목소리가 울린다.
“아현 씨, 잠시만,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네.”
…선아현과 직원이다.
직원이 어딘가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리고 선아현은 모퉁이를 돌아 나온다.
‘음.’
그리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녀석이 곧바로 걸어왔다.
“안 그래도 인사드리려고 했는데, 이렇게 뵙네요!”
“아, 예.”
나는 일단 공연을 잘 끝낸 멘토를 만난 참가자답게 고개를 숙였다.
참고로 이 녀석이 다른 팀 공연에 점수를 퍼줄 줄 알았는데, 의외로 냉철히 점수를 때려준 덕분에 순조로운 우등반 유지 각이 보였다.
멘토로 최고사양이긴 했다.
“감사합니다. 덕분에 무대를 잘 마쳤습니다.”
“아뇨! 저야말로 덕분에 참 재밌는 공연을 해봤어요.”
선아현이 살짝 손을 내젓더니, 얼굴을 붉혔다.
“이런 식으로 가요를 이용한 무대를 해볼 일은 거의 없어서…. 신선했어요. 감사합니다.”
“…….”
자, 생각을 멈추고. 인사나 마저 하고 헤어진다. 그렇게 가자.
그러나 선아현이 다시 말을 붙인다.
“그리고… 이 말씀 꼭 드리고 싶었는데, 수정해 주신 시안이 전보다 더 좋았어요.”
“…….”
“더 좋은 정답을 찾아내셨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선아현은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다음 말을 붙였다.
“상담해 주시는 선생님 소개… 지금도 괜찮아요.”
아.
이건 좀 물어봐야겠군.
이놈 여기서는 대체 왜 상담사를 만나고 있는 거지?
“혹시 어떻게 만나신 상담사분인지 여쭤봐도 될까요.”
이 정도면 적당히 흥미 겸 신뢰도 검증 정도로 느껴지겠지.
나는 놈이 머뭇거리면 질문을 철회할 단계까지 미리 구상했다.
그러나 선아현은 선선히 이렇게 대답했다.
“그분은 제 에이전시 계약 사항에 기재되어 계셨어요.”
음?
“아무래도 예체능은 항상 자기 자신과의 전투니까요. 상담이 기본 커리큘럼에 포함되어 있기도 해요.”
“……아.”
그러니까… 아티스트 복지였다는 건데.
‘그럼 그 자기도 고통스러웠다는 말은 무슨 맥락에서 나온 거지.’
나는 혹시 거짓말인지 놈을 살폈다. 현실에서는 못할 수준으로 티가 나는 놈이었으나, 여기서는 제법 잘 감출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기색은 없다.
‘거짓말은 아니군.’
그리고 내가 고민 중이라고 생각했는지, 선아현이 말을 덧붙인다.
“퍼포머는 신체뿐만 아니라 마음의 컨디션도 조절해야 하잖아요.”
“음, 네.”
“그러니까, 혹시 원하시면 제가 미리 연락드려 둘게요. 그… 아마도 5회 정도는 무료로 받으실 수 있을 거예요.”
“…….”
나는 거기까지 가서야, 미소 띤 선아현의 얼굴을 보고 깨달았다.
이거… 그랬군.
‘일부러 고통 같은 소리를 했던 거야.’
공감대 형성으로 허들을 낮춰서, 우울한 놈이 순순히 곤란한 점을 말하고 편해지라고 말이다.
‘이걸 눈치를 못 채다니.’
나는 좀 떨떠름한 눈으로 놈을 쳐다보았다.
잠깐 그렇다면… 이놈은 그냥 지극히 건강한 상태란 뜻 아닌가.
케어받을 수 있는 데까지 잘 받으면서 커리어 쌓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
머리 복잡해 보이는 생판 남에게 말 걸고 호의를 베풀 정도로 여유도 있고.
긴장이 탁 풀린다.
‘나 참.’
“…괜찮습니다. 사실 친구에게 미리 추천받은 분이 계셔서.”
“아… 그렇군요.”
괜히 근거도 없이 과추측했군. 내 상태가 별로라 거기까지 사고가 굴러간 간 모양이다. 나는 혀를 차며 추측을 다 철회했다.
선아현은 미소 띤 얼굴로 다시 물었다.
“그럼… 가끔 저희 안부라도 주고받을까요?”
“좋죠.”
나는 별문제 없이 놈의 스마트폰에 번호를 찍어주었다. 여기서 거절하는 것도 웃기지 않는가. 면상에 장갑 던지는 것도 아니고.
‘어차피 발레 하러 출국하면 여기서 다시 직접 볼일도 없을 테지만.’
현실로 돌아가서 보면 될 것 아닌가. …여기 사는 이놈이 그걸 반길지는, 이젠 솔직히 모르겠다만.
‘뭐 이런 건 뽑기에서 나오고서야 고민하든가.’
뽑지도 못하면서 입 털어 봤자 김칫국이다. 나는 바로 생각을 멈췄다.
‘이런 식으로 제어한다는 뜻이지.’
잘되는군.
나는 연락처 교환한 업계 사람과 그랬듯이 버릇처럼 놈과 악수한 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보겠습니다. 멘토님도 잘 들어가세요.”
“이제 멘토도 아니니까, 정말 편하게 부르셔도 괜찮아요.”
끈질긴 놈. 내가 너까지 이 호칭으로 불러야 할 줄은 몰랐다.
“…그럼 형, 잘 들어가세요.”
선아현이 밝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네. …저, 고민이 생기시면 언제든 편하게 연락 주셔도 괜찮아요.”
“이제 막 지인이 된 사람한테 너무 후하신데요.”
선아현은 멍한 얼굴이 됐다가, 작게 웃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요.”
그래, 여전히 호구인 건 변한 게 없긴 하군.
나는 그렇게, 발레리노 선아현과 없이도 커뮤니케이션 가능한 연락처를 얻게 되었다.
…저장 명이 이렇기는 했지만.
“아.”
그렇지.
나는 선아현과 헤어진 뒤 곧바로 로비로 나왔다.
그리고 정문으로 가기도 전에 다시 한번 붙들렸다.
“건우 형! 들어가세요?”
바로 이번 팀전에서 팀원이었던 두 사람.
주단과 채율이다.
“그래. 들어가는 중인데.”
오늘 너무 많은 놈들과 대화를 해서 슬슬 피곤했다. 하지만 방금 공연까지 같이한 놈들을 홀대할 수는 없으니 멈춰 섰다.
‘무대 이야기하려나.’
그러자 둘이 푹 고개를 숙인다.
그리고 진채율이 이렇게 말한다.
“몸 안 좋으신데도 저희 매번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해요! 다음에는 좀 더 믿음직한 모습의 팀원이 되겠습니다.”
주단이 말을 덧붙인다.
“데뷔하면 더요.”
“맞아, 데뷔하면 더!”
“…….”
분명 내 상태가 썩 달갑지 않았을 텐데, 도리어 감사 인사나 하냐.
게다가 내가 수정하며 요구한 구성은, 이미 데뷔한 놈들도 어려울 만큼 표현력이 중요했다.
능력치가 아직 완전히 올라오지 않은 놈들이 따라오긴 힘들었을 텐데 입 다물고 열심히 따라오기만 했지.
‘…근성이 괜찮은 놈들이다.’
나는 입을 열었다.
“…고생 많았다. 나야말로 관리 잘해서 앞으로는 건강하게 올게.”
“…! 네!”
인정하겠다. 같이 일할 만한 놈들이었다.
나는 볼 터질 듯이 웃고 있는 진채율을 쳐다보았다.
어쩌면 이번 무대도 그 홈마가 이놈 때문에 볼지도 모르겠지만… 뭐, 내 팀에 누구라도 좋아하는 편이 낫지 않나.
아예 내 무대를 안 보는 것보다는 말이다.
“무대도 정말 좋았어. 덕분에 즐거웠다. 고마워.”
“하하….”
“저도요.”
생각을 의식적으로 멈추지 않아도, 마음은 의외로 편했다.
“저희 무대 얼른 방송됐으면 좋겠어요! 아, 저희 같이 볼까요?”
“아니, 그건 좀.”
“아… 죄, 죄송해요.”
“그게 아니라 우리 촬영 시작한 다음에 방영되는데.”
“흐압.”
나는 그냥 웃고 넘겼다.
어쨌든 지금 이놈들이랑 데뷔까지 해야 하는데, 뭐… 그렇게 살기 더럽게 힘들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마침내 귀가를 시작했을 때는, 바깥에서 이미 가 게릴라 콘서트 화까지 완전히 방영된 상황이었다.
‘여론 한번 확인해 봐야겠지.’
그동안 스마트폰과 멀어졌던 만큼 점검은 필수였다. 나는 즉시 인터넷에 접속했다.
그리고 당황했다.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류형제 미쳤어?
-나 완벽한 조합 찾아냄 바로 류건우청우단임 정우단까지 넣으니까 얼굴합 돌았다
-늑대 류청우 허스키 류건우 북극여우 채율이… 우린 이걸 강쥐상 스펙트럼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아이돌 해줘서 고맙습니다 정말… 당신을 사랑해
“…….”
클럽메보 조져서 혈연 적폐니 뭐니 한참 피크로 욕먹고 있을 줄 알았는데. 벌써 탈락자 손절한 파티 분위기다.
심지어 온갖 참가자가 얼굴을 프로필 사진으로 한 계정이 다 붙었다.
너나 할 것 없이 시청자들이 전부 류청우에게 플래카드라도 내걸 기세.
‘뭐야.’
나는 당장 검색 엔진에 접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