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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386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86화
이 타이밍에 뽑기에서 류청우가 나와?
사실 이 동료 뽑기 시스템도 전에 큰달이 운영하던 특성 뽑기 시스템처럼 그때그때 내가 필요한 걸 뱉는 의지라도 있는 거 아니냐.
‘…그러고 보니 이세진 보고 돌렸더니 진짜 이세진이 나오기도 했군.’
물론 이름만 같지, 다른 녀석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혹시 몰라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여기서도 힘쓸 수 있었냐.’
[아, 아니요. 이제 그런 건 못 하는 것 같은데… 사실 몇 번 해보려고 했거든요.]
풀 죽은 듯 작은 팝업이 뜬다.
‘아니, 잘됐어. 괜히 시스템하고 더 섞였다가 문제 생기는 것보다 깔끔한 편이 낫다.’
[]
알았지.
[아, 네넵…!]
그래.
어쨌든 내가 지금 고려할 선택지는 하나다.
[동료 : 류청우를 각성하시겠습니까?]
-Exp 1000 사용
류청우의 각성.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느낀 몰입과 보람으로 눈을 빛내는 당사자가 보인다.
‘흠.’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류청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소감문은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고.”
이런 건 모르고 즐겨야 제맛이긴 하니, 각성 버튼은 잠시 후에 누르도록 할까.
탈락자 발표 이후로 말이다.
“소감문?”
“너 붙는 순간에 제작진이 무조건 소감을 물어볼 테니까.”
류청우의 얼굴에서 쑥스러움이 지나갔다. 네가 당연히 이길 것이란 격려라도 받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진짜 충고였는데 말이지.
“음… 그러면 그냥 감사하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보단 좀 더 감격했다는 걸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 낫겠는데. 드라마틱하게.”
“…?”
생각 있는 제작진이라면 이걸 무조건 대반전으로 다룰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관객들이 다 빠져나간 스테이지에서 마침내 탈락자가 하나둘씩 공개됐을 때.
“지금, 공개합니다!”
[ 류청우]
[참가자 확정!]
류청우는 정말로 이 모든 판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것도 보충반 중에 유일한 잔류자.
실력이 비슷하더라도 낯선 얼굴 대신 익숙한 참가자를 찍어줄 것이란 제작진의 계산에서 단 하나의 예외가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음…….”
기어코 마이크를 잡게 된 놈은 떨리는 목소리로도 최대한 담담히 말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저렇게 동요하는 건 합격 이후로 처음이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뭘 해본 게 정말 오랜만이라… 좀 압도당한 것 같은데요. 다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대 놓치지 않고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담백하지만 진심으로 이 일에 꽂혔다는 뉘앙스가 충분하군. 훌륭하다.
게다가 누가 들어도 양궁 그만둔 사정이 있다는 투로 오해하게 생겼다. 아니,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서사가 생기는 건 좋지.
“이것으로 탈락자 발표를 마칩니다.”
그리고 클럽 메보는 사장이 직접 뽑은 두 명이 더해진 탈락자 아홉 명에 포함되어 사라졌다.
남은 건 12명.
-원래 내 그룹이 몇 명이었는지 알아요?
-아홉 명.
그 숫자에 점점 근접해간다. 이번에는 몇 명으로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과연 청려는 본인 그룹이 아닌 이 단기 프로젝트 그룹에는 몇 명이 적정하다고 생각할까.
‘이건… 상의 한번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뭐, 각설하고.
이제 할 일을 하자.
“형, 고마워요.”
“네가 한 건데 내가 뭘.”
카메라가 꺼지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류청우는 감사 인사를 하더니, 좀 더 힘이 들어간 말투로 말한다.
“연습 열심히 해야겠어. 따라가려면.”
“음.”
아무래도 분위기 보고 이미 결론을 내린 모양인지, 다음 촬영까지 연습실에 박혀서 밤새며 연습할 것 같은 어투다.
아무리 너라도 체력이 박살 날 테니 그건 오히려 역효과일 텐데.
“처음에 형이 한다고 할 때 나도 같이할 걸 그랬나. 좀 아까워.”
“왜.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서?”
“…….”
실력을 키우기엔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쉬운지 류청우가 답지 않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안 아쉬워해도 되겠군.’
네 연습 시간을 돌려줄 수 있으니 말이다.
“자.”
“응?”
가져라. 나는 류청우의 각성 버튼을 눌렀다.
[비상을 향한 도약….]
그리고, 처음으로 직접 ‘동료’의 각성 장면을 확인했다.
즉시 류청우가 비틀거린다. 생각보다 크게.
“뭘…. 아.”
“…!”
이거… 반응이 원래 이 정도로 강한 건가?
“거기 괜찮아요?”
“누구야?”
스탭까지 반응할 정도였다. 하지만 류청우는 벽에 몸을 숙인 채 기대서 말이 없었다.
‘X발.’
이 반응이 맞는 건가?
상태창이든 119 호출이든 행동하려던 찰나, 다행히 놈이 곧 고개를 든다.
침착한 목소리.
“……아, 음, 괜찮습니다.”
온화한 표정.
“죄송해요.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봅니다.”
“아~”
스탭들이 멀쩡히 웃는 류청우를 보고 물러간다.
그리고 류청우는 스탭들이 다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다만 천천히 얼굴이 벌게진다.
“…….”
“…….”
“……그, 문대니?”
“예.”
그리고 짧고 굵은 침묵이 흐른 뒤.
“후우…….”
류청우가 도로 고개를 숙이고 길게 신음을 뱉는다.
[어어, 저분…….]
그래.
당황, 공포, 혼란, 안도에 앞서서….
‘…민망함부터 찾아왔군.’
나는 자신이 보였던 온갖 21살 다운 어린 면모를 떠올리는 리더를 조용히 모른 척해줬다.
“그러니까… 음, 일종의 사고 상황이구나.”
“예.”
얼마 후, 짐을 정리하며 정신을 차린 류청우에게 현 상황에 대해서 빠른 브리핑을 마쳤다.
다른 놈이 들어봐야 워낙 비현실적이라 영화나 게임 이야긴 줄 알았을 테니 거릴 건 없다.
그리고 원래 내가 몸이 바뀐 것을 알고 있던 놈답게 상황 파악은 빨랐다.
“좀 이상하긴 했어. 이렇게 보니까 알겠다. 현실과 다른 부분들이 어색했던 것 같아.”
류청우는 평행차원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는 대신 깔끔히 이 상황을 루시드 드림이나 환상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내가 그럴 것 같지 않은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야 하나.”
양궁뿐만 아니라 몇 가지 예시가 더 생각난 것 같았지만, 류청우는 굳이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이 말은 굳이 했지만.
“그러면 아까 타이밍이 딱 맞게, 내가 정신 차릴 방법이 생긴 거였구나.”
“예.”
“그럼 일부러 탈락자 발표 후까지 기다린 거네. 내가 첫 무대에서 관람객 투표로 이긴 보람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려고.”
“…….”
“고마워.”
“……촬영 중이라 그런 거니 고마워하실 건 아니고요.”
“하하!”
류청우는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말 편하게 해요. 형, 사실 정말 형도 맞잖아요.”
“…!”
“어쩐지, 동갑인데도 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더니.”
이런 것도 이상한 부분이었다며 류청우는 쑥스럽게 웃었다.
“돌아가서도 말 놔도 괜찮아요. 우리가 5년 넘게 얼굴 보고 지냈는데, 말 놓을 때도 됐지.”
“…그러든가.”
류청우는 시원하게 웃고 넘겼다.
‘이런 놈인 줄은 알았지만….’
낯간지럽기 짝이 없다. 나는 졸지에 다른 놈들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다행히 귀띔해 둔 대로, 다른 대기실에서 환복을 끝낸 우등반 녀석들이 곧 로비 뒤쪽으로 뛰어나왔다.
“문대 형! 청우 형 이제 기억해요?”
“유진아.”
“Wooow!”
차유진이 달려와서 하이파이브를 갈긴다.
저놈은 김래빈이 있는데도 아주 편하게 박문대로 날 부르는군.
하지만 김래빈은 뇌 안에서 자동으로 ‘문대 = 건우 형의 별명’ 처리를 한 건지 별 반응이 없긴 했다.
인사만 열심히 할 뿐이다.
“형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무대도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아, 지금 래빈이도….”
“음.”
내 반응에 김래빈은 기억이 없다는 것을 눈치를 챈 류청우가 말투를 바꿨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함부로 말을 놨죠?”
“예? 아닙니다! 연장자이시며 같은 참가자인 이상 당연히 그러실 권리가 있습니다.”
류청우는 웃어버렸다.
“똑같네, 똑같아.”
“……?”
“맞아요. 김래빈 똑같은 사람이에요.”
“…! 설마 기존에 프로그램에서 봤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발전이 없다는 뜻이신지…….”
“아니야, 바보야!”
“…?!”
나는 세 녀석이 떠들게 두고, 그 뒤로 오는 놈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다른 놈들의 배웅 인사를 받은 뒤 천천히 합류하는 중이었다.
“축하해요. 다음에는 우등반으로 보겠네요.”
청려.
“인원이 줄었으니 모르지.”
“음? 지금도 못 올라오면 곤란한데. 설마 그렇게 생각해요?”
“…….”
“농담이에요. 전 형을 믿어요.”
소름이 쭉 돋는다.
“항상 데뷔조에서 자리가 확고했던 메인보컬을 이겼잖아요. 당연히 다음 촬영부터 우등반 오실 거예요.”
“…….”
나는 나머지 참가자가 로비를 나가는 것과 다른 셋이 대화에 열중한 것을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그 새끼는 대체 어떻게 7년이나 버텼냐.”
“다루기 쉬워서.”
놈은 작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자의식이 커지고, 스스로에 대한 이유 없는 확신으로 다른 패턴을 보여주기도 하고.”
“…….”
“음… 놓친 건 내 실수였으니까, 변명은 안 할게요.”
나는 VTIC 전 메인보컬이 클럽 논란을 내고 탈퇴한 후의 행보를 떠올렸다.
쉬웠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흔한 SNS 하나 개설하지 않고, 근황 기사나 목격담 하나 없이 조용했다.
누가 했겠냐.
“하지만 약점이 분명한 부류는 다루기 쉽거든요. 아쉽지 않아요? 이번엔 큰 변수 없이 다룰 수 있었는데.”
“그럼 패자부활전이라도 하든가.”
“하하!”
놈이 실실 웃었다.
“괜찮아요. 나는 안 아쉽거든.”
“…….”
“혹시라도 형이 아쉬워하실까 봐 물어봤어요.”
호칭이 바뀌었다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다른 세 명이 대화를 끝내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청려도 그쪽을 본다.
정확히는 류청우를.
“이쪽도?”
기억이 돌아왔냐는 뜻이겠지.
“그래.”
“흐음.”
놈이 감정하듯이 류청우를 짧게 훑어본다.
아니, ‘하듯이’가 아니지.
[특성 : 감정 (A)]
-가치 있는 건 드물고, 쓰레기는 널렸다.
: 인적 자원 판단력 +150%
본인 특성을 발휘하고 있겠지.
그리고 곧 웃으며 손을 내민다.
“잘 부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둘은 악수했다.
일단 청려가 차유진과 만났을 때처럼 지랄하진 않는군.
‘안 싸우면 됐다.’
당장 뭐가 터질 것 같진 않으니, 나는 짬 난 틈을 타서 나는 상태창부터 살피기로 했다.
방금 메인 퀘스트가 깨졌기 때문이다.
[퀘스트 : 동료 각성] -> 완료!
내가 지금까지 각성시킨 건 차유진, 배세진, 류청우.
총 3인을 각성하는 게 조건이었나 보다.
‘그럼 청려는 예외인가.’
무슨 그런 놈을 스타팅 취급이냐.
어쨌든, 동료를 충분히 모으는 것에 성공했다면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뭐긴 뭐야, 스테이지 진행이지.’
메인 컨텐츠다.
[퀘스트 : 명성 수집 활동 1/N]
-명성을 수집하자
필요한 누적 명성치 : 1000000 Exp
단위가 미쳤지만, 원래 유명세는 유명세를 부르는 법이니 기간 수정은 필요 없다. 넘기고.
나는 가장 아래의 팝업을 불러왔다. 동료 상태창이다.
[동료 목록]
[신재현 : 새롭게 추가된 자원을 계산 중 (*^-^)]
[차유진 : 즐거운 기억을 회상 중 (+ㅅ+~♬)]
[류청우 :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 중 (???]) ]
새로 추가된 류청우까지, 다 특이사항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본인 같은 상태다.
자리에 없는 한 놈 빼고.
[배세진 : 사장의 석고대죄를 받는 중 (?ㅅ´=3)]
“…….”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당장 놈에게 연락해 볼 심산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뜬 메시지를 보게 된다.
-이세진 선배님 : 안녕하세요 건우 씨! 저 5화 봤어요. (웃는 이모티콘) 무대 정말 멋질 것 같은데요??
이세진이 이틀 전에 보낸 메시지였다.
* * *
자이롭의 숙소.
지이잉.
“으음.”
오랜만에 자정 전에 침대에 누워 자기 직전이었지만, 이세진은 버릇처럼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온 답장을 보았다.
-와이즈 류건우님 : 이제야 귀가해서 답장을 늦게 드리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와이즈 류건우님 : 칭찬 감사합니다. 정말 무대가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
드디어 촬영이 끝났나 보다.
분명 정기적으로 하는 인맥 관리 중에 생각이 나서 그냥 한 통 보낸 건데도, 이세진은 왠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답장을 쳤다.
-죄송하다니요! 촬영 중에 문자한 제 탓인데요 뭘 (우는 이모티콘)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제가 무슨 대선배도 아니고 형님께 존댓말 듣기 쑥스럽네요!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1’이 사라지고, 새 답장이 온다.
-와이즈 류건우님 : 고맙다?
-와이즈 류건우님 : 너도 편하게 해.
“그렇지~”
역시 아직 데뷔 전이라 허들이 낮다. 이세진은 이번엔 좀 더 빠르게 답장을 쳤다.
-ㅋㅋ나는 사양 안 하는데! 고마워 형!
-나 저장명도 바꿔줘 멋진 세진 동생으로ㅋㅋㅋ
그리고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게 무슨 오버지?’
누가 보면 사기꾼이나 친구가 없어서 거리감 못 재는 놈인 줄 알만한 급발진이었다.
‘아, 왜 이래!’
그가 수습을 시도하려던 순간, 바로 답장이 온다.
-와이즈 류건우님 : 알았어
“…??”
이게 통해?
‘선배라고 비위 맞춰주는 건가?’
실수한 상황인데,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답장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와이즈 류건우님 : 세진 동생은 처음이네 세진 형은 있는데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스몰토크인가?
-오ㅋㅋ맞아 나 동명이인 좀 있는 편이긴 해!
이세진은 적당한 답변을 얼른 생각해서 보냈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자야겠단 감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온 답장은… 뜻밖이었다.
-와이즈 류건우님 : 너도 아는 사람일 것 같다. 성까지 똑같거든
“…….”
나도 안다고?
‘잠깐.’
이세진이 아는 동명이인.
류건우보다 나이가 많고, 둘 다 알 법한 사람으로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류건우의 답장이 도착했다.
-와이즈 류건우님 : 배우인데, 며칠 내로 한번 만나서 놀기로 했어
-와이즈 류건우님 : 너도 같이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때
이세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86화

이 타이밍에 뽑기에서 류청우가 나와?

사실 이 동료 뽑기 시스템도 전에 큰달이 운영하던 특성 뽑기 시스템처럼 그때그때 내가 필요한 걸 뱉는 의지라도 있는 거 아니냐.

‘…그러고 보니 이세진 보고 돌렸더니 진짜 이세진이 나오기도 했군.’

물론 이름만 같지, 다른 녀석이긴 했지만 말이다.

나는 혹시 몰라 입을 열었다.

‘너 혹시 여기서도 힘쓸 수 있었냐.’

풀 죽은 듯 작은 팝업이 뜬다.

‘아니, 잘됐어. 괜히 시스템하고 더 섞였다가 문제 생기는 것보다 깔끔한 편이 낫다.’

알았지.

그래.

어쨌든 내가 지금 고려할 선택지는 하나다.

-Exp 1000 사용

류청우의 각성.

나는 고개를 들었다. 오랜만에 느낀 몰입과 보람으로 눈을 빛내는 당사자가 보인다.

‘흠.’

나는 대답을 기다리는 류청우를 보며 입을 열었다.

“아니, 소감문은 준비해 두는 게 좋겠다고.”

이런 건 모르고 즐겨야 제맛이긴 하니, 각성 버튼은 잠시 후에 누르도록 할까.

탈락자 발표 이후로 말이다.

“소감문?”

“너 붙는 순간에 제작진이 무조건 소감을 물어볼 테니까.”

류청우의 얼굴에서 쑥스러움이 지나갔다. 네가 당연히 이길 것이란 격려라도 받았다고 생각했나 보다.

진짜 충고였는데 말이지.

“음… 그러면 그냥 감사하다고 하면 되지 않을까?”

“그것보단 좀 더 감격했다는 걸 솔직하게 드러내는 편이 낫겠는데. 드라마틱하게.”

“…?”

생각 있는 제작진이라면 이걸 무조건 대반전으로 다룰 테니까.

그리고 잠시 후.

관객들이 다 빠져나간 스테이지에서 마침내 탈락자가 하나둘씩 공개됐을 때.

“지금, 공개합니다!”

류청우는 정말로 이 모든 판의 최종 승자가 되었다.

그것도 보충반 중에 유일한 잔류자.

실력이 비슷하더라도 낯선 얼굴 대신 익숙한 참가자를 찍어줄 것이란 제작진의 계산에서 단 하나의 예외가 된 것이다.

“감사합니다, 음…….”

기어코 마이크를 잡게 된 놈은 떨리는 목소리로도 최대한 담담히 말하려 애쓰는 것 같았다.

저렇게 동요하는 건 합격 이후로 처음이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뭘 해본 게 정말 오랜만이라… 좀 압도당한 것 같은데요. 다음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절대 놓치지 않고 더 좋은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담백하지만 진심으로 이 일에 꽂혔다는 뉘앙스가 충분하군. 훌륭하다.

게다가 누가 들어도 양궁 그만둔 사정이 있다는 투로 오해하게 생겼다. 아니, 부디 그랬으면 좋겠군. 서사가 생기는 건 좋지.

“이것으로 탈락자 발표를 마칩니다.”

그리고 클럽 메보는 사장이 직접 뽑은 두 명이 더해진 탈락자 아홉 명에 포함되어 사라졌다.

남은 건 12명.

-원래 내 그룹이 몇 명이었는지 알아요?

-아홉 명.

그 숫자에 점점 근접해간다. 이번에는 몇 명으로 결론이 날지는 알 수 없지만 말이다.

과연 청려는 본인 그룹이 아닌 이 단기 프로젝트 그룹에는 몇 명이 적정하다고 생각할까.

‘이건… 상의 한번 해봐야 할지도 모르겠군.’

뭐, 각설하고.

이제 할 일을 하자.

“형, 고마워요.”

“네가 한 건데 내가 뭘.”

카메라가 꺼지고 무대 아래로 내려오자마자 류청우는 감사 인사를 하더니, 좀 더 힘이 들어간 말투로 말한다.

“연습 열심히 해야겠어. 따라가려면.”

“음.”

아무래도 분위기 보고 이미 결론을 내린 모양인지, 다음 촬영까지 연습실에 박혀서 밤새며 연습할 것 같은 어투다.

아무리 너라도 체력이 박살 날 테니 그건 오히려 역효과일 텐데.

“처음에 형이 한다고 할 때 나도 같이할 걸 그랬나. 좀 아까워.”

“왜. 시간이 부족한 것 같아서?”

“…….”

실력을 키우기엔 시간이 촉박한 것이 아쉬운지 류청우가 답지 않게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이제 안 아쉬워해도 되겠군.’

네 연습 시간을 돌려줄 수 있으니 말이다.

“자.”

“응?”

가져라. 나는 류청우의 각성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처음으로 직접 ‘동료’의 각성 장면을 확인했다.

즉시 류청우가 비틀거린다. 생각보다 크게.

“뭘…. 아.”

“…!”

이거… 반응이 원래 이 정도로 강한 건가?

“거기 괜찮아요?”

“누구야?”

스탭까지 반응할 정도였다. 하지만 류청우는 벽에 몸을 숙인 채 기대서 말이 없었다.

‘X발.’

이 반응이 맞는 건가?

상태창이든 119 호출이든 행동하려던 찰나, 다행히 놈이 곧 고개를 든다.

침착한 목소리.

“……아, 음, 괜찮습니다.”

온화한 표정.

“죄송해요. 긴장이 풀려서 그랬나 봅니다.”

“아~”

스탭들이 멀쩡히 웃는 류청우를 보고 물러간다.

그리고 류청우는 스탭들이 다 사라진 후에도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다만 천천히 얼굴이 벌게진다.

“…….”

“…….”

“……그, 문대니?”

“예.”

그리고 짧고 굵은 침묵이 흐른 뒤.

“후우…….”

류청우가 도로 고개를 숙이고 길게 신음을 뱉는다.

그래.

당황, 공포, 혼란, 안도에 앞서서….

‘…민망함부터 찾아왔군.’

나는 자신이 보였던 온갖 21살 다운 어린 면모를 떠올리는 리더를 조용히 모른 척해줬다.

“그러니까… 음, 일종의 사고 상황이구나.”

“예.”

얼마 후, 짐을 정리하며 정신을 차린 류청우에게 현 상황에 대해서 빠른 브리핑을 마쳤다.

다른 놈이 들어봐야 워낙 비현실적이라 영화나 게임 이야긴 줄 알았을 테니 거릴 건 없다.

그리고 원래 내가 몸이 바뀐 것을 알고 있던 놈답게 상황 파악은 빨랐다.

“좀 이상하긴 했어. 이렇게 보니까 알겠다. 현실과 다른 부분들이 어색했던 것 같아.”

류청우는 평행차원이니 뭐니 하는 소리를 하는 대신 깔끔히 이 상황을 루시드 드림이나 환상으로 해석한 것 같았다.

“내가 그럴 것 같지 않은 지점에서 다른 선택을 했다고 해야 하나.”

양궁뿐만 아니라 몇 가지 예시가 더 생각난 것 같았지만, 류청우는 굳이 구구절절 늘어놓지 않는다.

이 말은 굳이 했지만.

“그러면 아까 타이밍이 딱 맞게, 내가 정신 차릴 방법이 생긴 거였구나.”

“예.”

“그럼 일부러 탈락자 발표 후까지 기다린 거네. 내가 첫 무대에서 관람객 투표로 이긴 보람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려고.”

“…….”

“고마워.”

“……촬영 중이라 그런 거니 고마워하실 건 아니고요.”

“하하!”

류청우는 웃더니 말을 덧붙였다.

“말 편하게 해요. 형, 사실 정말 형도 맞잖아요.”

“…!”

“어쩐지, 동갑인데도 형이라고 불러야 할 것 같더니.”

이런 것도 이상한 부분이었다며 류청우는 쑥스럽게 웃었다.

“돌아가서도 말 놔도 괜찮아요. 우리가 5년 넘게 얼굴 보고 지냈는데, 말 놓을 때도 됐지.”

“…그러든가.”

류청우는 시원하게 웃고 넘겼다.

‘이런 놈인 줄은 알았지만….’

낯간지럽기 짝이 없다. 나는 졸지에 다른 놈들이 오기를 기다리게 되었다.

다행히 귀띔해 둔 대로, 다른 대기실에서 환복을 끝낸 우등반 녀석들이 곧 로비 뒤쪽으로 뛰어나왔다.

“문대 형! 청우 형 이제 기억해요?”

“유진아.”

“Wooow!”

차유진이 달려와서 하이파이브를 갈긴다.

저놈은 김래빈이 있는데도 아주 편하게 박문대로 날 부르는군.

하지만 김래빈은 뇌 안에서 자동으로 ‘문대 = 건우 형의 별명’ 처리를 한 건지 별 반응이 없긴 했다.

인사만 열심히 할 뿐이다.

“형들 안녕하십니까! 오늘 무대도 정말 인상 깊게 봤습니다.”

“아, 지금 래빈이도….”

“음.”

내 반응에 김래빈은 기억이 없다는 것을 눈치를 챈 류청우가 말투를 바꿨다.

“이런, 죄송합니다. 제가 함부로 말을 놨죠?”

“예? 아닙니다! 연장자이시며 같은 참가자인 이상 당연히 그러실 권리가 있습니다.”

류청우는 웃어버렸다.

“똑같네, 똑같아.”

“……?”

“맞아요. 김래빈 똑같은 사람이에요.”

“…! 설마 기존에 프로그램에서 봤던 모습과 비교했을 때 발전이 없다는 뜻이신지…….”

“아니야, 바보야!”

“…?!”

나는 세 녀석이 떠들게 두고, 그 뒤로 오는 놈을 쳐다보았다.

녀석은 다른 놈들의 배웅 인사를 받은 뒤 천천히 합류하는 중이었다.

“축하해요. 다음에는 우등반으로 보겠네요.”

청려.

“인원이 줄었으니 모르지.”

“음? 지금도 못 올라오면 곤란한데. 설마 그렇게 생각해요?”

“…….”

“농담이에요. 전 형을 믿어요.”

소름이 쭉 돋는다.

“항상 데뷔조에서 자리가 확고했던 메인보컬을 이겼잖아요. 당연히 다음 촬영부터 우등반 오실 거예요.”

“…….”

나는 나머지 참가자가 로비를 나가는 것과 다른 셋이 대화에 열중한 것을 확인한 뒤, 목소리를 낮춰서 물었다.

“그 새끼는 대체 어떻게 7년이나 버텼냐.”

“다루기 쉬워서.”

놈은 작게 입술을 비틀었다.

“그런데 사람은 변하기 마련이잖아요. 자의식이 커지고, 스스로에 대한 이유 없는 확신으로 다른 패턴을 보여주기도 하고.”

“…….”

“음… 놓친 건 내 실수였으니까, 변명은 안 할게요.”

나는 VTIC 전 메인보컬이 클럽 논란을 내고 탈퇴한 후의 행보를 떠올렸다.

쉬웠다.

아무것도 없으니까.

그 흔한 SNS 하나 개설하지 않고, 근황 기사나 목격담 하나 없이 조용했다.

누가 했겠냐.

“하지만 약점이 분명한 부류는 다루기 쉽거든요. 아쉽지 않아요? 이번엔 큰 변수 없이 다룰 수 있었는데.”

“그럼 패자부활전이라도 하든가.”

“하하!”

놈이 실실 웃었다.

“괜찮아요. 나는 안 아쉽거든.”

“…….”

“혹시라도 형이 아쉬워하실까 봐 물어봤어요.”

호칭이 바뀌었다 싶어서 고개를 돌리니, 어느새 다른 세 명이 대화를 끝내고 이쪽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청려도 그쪽을 본다.

정확히는 류청우를.

“이쪽도?”

기억이 돌아왔냐는 뜻이겠지.

“그래.”

“흐음.”

놈이 감정하듯이 류청우를 짧게 훑어본다.

아니, ‘하듯이’가 아니지.

-가치 있는 건 드물고, 쓰레기는 널렸다.

: 인적 자원 판단력 +150%

본인 특성을 발휘하고 있겠지.

그리고 곧 웃으며 손을 내민다.

“잘 부탁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둘은 악수했다.

일단 청려가 차유진과 만났을 때처럼 지랄하진 않는군.

‘안 싸우면 됐다.’

당장 뭐가 터질 것 같진 않으니, 나는 짬 난 틈을 타서 나는 상태창부터 살피기로 했다.

방금 메인 퀘스트가 깨졌기 때문이다.

내가 지금까지 각성시킨 건 차유진, 배세진, 류청우.

총 3인을 각성하는 게 조건이었나 보다.

‘그럼 청려는 예외인가.’

무슨 그런 놈을 스타팅 취급이냐.

어쨌든, 동료를 충분히 모으는 것에 성공했다면 다음 순서는 무엇인가.

‘뭐긴 뭐야, 스테이지 진행이지.’

메인 컨텐츠다.

-명성을 수집하자

필요한 누적 명성치 : 1000000 Exp

단위가 미쳤지만, 원래 유명세는 유명세를 부르는 법이니 기간 수정은 필요 없다. 넘기고.

나는 가장 아래의 팝업을 불러왔다. 동료 상태창이다.

새로 추가된 류청우까지, 다 특이사항 없이 눈에 보이는 대로 본인 같은 상태다.

자리에 없는 한 놈 빼고.

“…….”

대체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거냐.

나는 당장 놈에게 연락해 볼 심산으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상단에 뜬 메시지를 보게 된다.

-이세진 선배님 : 안녕하세요 건우 씨! 저 5화 봤어요. (웃는 이모티콘) 무대 정말 멋질 것 같은데요??

이세진이 이틀 전에 보낸 메시지였다.

* * *

자이롭의 숙소.

지이잉.

“으음.”

오랜만에 자정 전에 침대에 누워 자기 직전이었지만, 이세진은 버릇처럼 바로 스마트폰을 들었다.

그리고 뒤늦게 온 답장을 보았다.

-와이즈 류건우님 : 이제야 귀가해서 답장을 늦게 드리게 됐습니다. 죄송합니다.

-와이즈 류건우님 : 칭찬 감사합니다. 정말 무대가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아.”

드디어 촬영이 끝났나 보다.

분명 정기적으로 하는 인맥 관리 중에 생각이 나서 그냥 한 통 보낸 건데도, 이세진은 왠지 반가운 마음에 얼른 답장을 쳤다.

-죄송하다니요! 촬영 중에 문자한 제 탓인데요 뭘 (우는 이모티콘)

-아, 말씀 편하게 하세요! 제가 무슨 대선배도 아니고 형님께 존댓말 듣기 쑥스럽네요!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1’이 사라지고, 새 답장이 온다.

-와이즈 류건우님 : 고맙다?

-와이즈 류건우님 : 너도 편하게 해.

“그렇지~”

역시 아직 데뷔 전이라 허들이 낮다. 이세진은 이번엔 좀 더 빠르게 답장을 쳤다.

-ㅋㅋ나는 사양 안 하는데! 고마워 형!

-나 저장명도 바꿔줘 멋진 세진 동생으로ㅋㅋㅋ

그리고 보내고 나서야 깨달았다.

‘…이게 무슨 오버지?’

누가 보면 사기꾼이나 친구가 없어서 거리감 못 재는 놈인 줄 알만한 급발진이었다.

‘아, 왜 이래!’

그가 수습을 시도하려던 순간, 바로 답장이 온다.

-와이즈 류건우님 : 알았어

“…??”

이게 통해?

‘선배라고 비위 맞춰주는 건가?’

실수한 상황인데,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하지만 답장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와이즈 류건우님 : 세진 동생은 처음이네 세진 형은 있는데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지. 스몰토크인가?

-오ㅋㅋ맞아 나 동명이인 좀 있는 편이긴 해!

이세진은 적당한 답변을 얼른 생각해서 보냈다. 적당히 마무리하고 자야겠단 감각은 어느새 사라졌다.

그리고 온 답장은… 뜻밖이었다.

-와이즈 류건우님 : 너도 아는 사람일 것 같다. 성까지 똑같거든

“…….”

나도 안다고?

‘잠깐.’

이세진이 아는 동명이인.

류건우보다 나이가 많고, 둘 다 알 법한 사람으로 떠오르는 건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연달아 류건우의 답장이 도착했다.

-와이즈 류건우님 : 배우인데, 며칠 내로 한번 만나서 놀기로 했어

-와이즈 류건우님 : 너도 같이 보면 재밌을 것 같은데, 어때

이세진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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