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8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84화
드라이아이스 너머에서 으로 뜬금없이 류청우가 등장한 뒤 30분 후.
“그럼 이번 퍼포먼스에서는 더 발전된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예!”
보충반 투입과 팀 정리가 끝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습 파트로 넘어가기 전 짧은 이동 겸 휴식 시간.
물론 카메라는 나와 류청우의 대담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따라붙는 중이다.
아까 류청우가 에 설 때도 실컷 대화 컷을 따갔으면서 욕심도 많군.
-…형, 놀랐어?
-응.
-많이?
-응.
안 봐도 본방송에서 얼마나 얼빠진 꼴로 나올지 뻔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뭐가 들어갈지도.
‘인터뷰 왕창 때려 넣겠군….’
아니나 다를까, 제작진과 인터뷰하는 순서도 제일 먼저 잡혀서 역대급으로 오래 답을 캐낸다.
“혹시 청우 씨가 참가하시는 건 미리 알고 계셨나요? 시그널이라도? 아, 전혀 모르셨어요?”
“두 분 같이 자취하신다면서요~”
“청우 씨가 참가하면서 기대하시는 점은 있을까요?”
“반대로 좀 이런 부분은 견제가 된다, 조심해야겠다, 하는 것도 있을 텐데요. 경쟁자가 됐잖아요.”
신났구만.
나는 당황했다는 것을 심각하지 않게 표현한 뒤, 적당히 온순한 대답을 이었다.
“우리 둘 다 잘해야 하니까, 이번 무대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더 어그로를 끌 거나 과장할 필요도 없다.
[그, 그런가요?]
어.
‘어차피 방영되는 순간 지랄 날 예정이니까….’
같은 학교 다니는 금메달리스트 친척이 갑자기 출연? X발, 나라도 보겠네.
나는 침음을 참으며 인터뷰 장소에서 연습실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타자를 지목했다.
류청우.
“작가님이 너 부르신다.”
“형.”
나는 녀석에게 손을 저어 보이고는, 노트를 내려놓는 척 놈에게 카메라 사각에서 문장을 보여줬다.
이 정도는 말해줘야겠지.
-무조건 돌려서 부드럽게 대답해.
“…!”
류청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에 연습실을 나선다.
‘저 꼴을 보면 눈치가 뒈진 건 아닌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다. 대학 잘 다니던 놈이 왜 갑자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냐고.
‘…일부러 권유도 안 했는데.’
워낙 잘 지내는 것 같은 데다가 저놈도 이 소속사가 좋아할 인상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왜 직접 나온 거지. 말도 없이.
“…….”
[흠흠, 직접 물어보는 건….]
아니, 카메라 돌 때 그런 직구는 안 된다. BGM 넣으면 바로 갈등 구간 편집에 쓰이니까.
‘나중에 취침 전에 최대한 부드럽게.’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류청우라는 변수가 포함된 개인전 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 * *
인터뷰가 길어진 탓에 연습은 한 박 늦게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복귀한 류청우는 방송 분위기를 적절히 눈치챘는지, 얕고 부드럽게 자진 납세했다.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그날 아침에 갑자기 합격 연락을 받았거든…. 혹시 형 컨디션 방해할까 봐 말 안 했어.”
이건 가볍게 넘긴다.
나는 놈의 등을 한 대 치고 피식 웃었다.
“그래, 알았어.”
“…!”
“네가 그냥 재밌어 보인다고 함부로 뭐든 시도하는 타입도 아니고. 당연히 진지하게 할 거라고 믿는다.”
“…응. 당연하지. 그럴게.”
류청우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인터뷰랑 조합해서 훈훈한 느낌으로 가긴 하겠지.’
물론 ‘경쟁인데 혈연이라고 느슨해지는 건 별로임’ 같은 반응을 예상해서 한마디 붙이고.
“안 봐줘.”
“하하, 알았어.”
좋아. 이 정도면 카메라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리고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약간 난감한 것처럼 우리를 쳐다보던 다른 팀원 한 명이 입을 연다.
사실상 이 팀 퍼포먼스의 소유자인 놈. VTIC 전 메인보컬 말이다.
“음… 이제 곡에 대해서 좀 알려드리려고 하는데요. 괜찮으시죠?”
“아, 예. 감사합니다.”
딱 봐도 분량 뺏길 느낌이 보이는지 놈은 좀 짜증이 나는 것 같았지만, 카메라가 돌자 금방 기색을 다듬었다.
흠.
‘머리가 없는 건 아니고.’
그리고 절대 선곡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것’으로 박아놓고 시작한다.
‘주도권을 딱 잡으려고 드는군.’
이놈은 나보다 두 살 어리다. 보통 팀 전이면 긴장도 풀 겸 편하게 말 놓으라고 하는 게 보통인데, 계속 상호 존대로 끌고 간다.
‘머리 적당히 돌아가고, 자존심 강하고.’
그러면 이놈이 밀고 나갈 무대 타입이야 한 가지지.
“아무래도 이 팀은 보컬 포지션 지망이 모였으니까, 보컬 위주로 무대를 구성했어요.”
“아, 네.”
그럴 줄 알았다.
‘이 새끼 춤은 별로 자신 없어.’
연습생 3년 차인데도 스탯이 기껏해야 C+다. 때 내 수준이라는 뜻이다.
좋은 실력만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면? 보컬만 극대화하는 무대를 고르는 게 맞지.
‘저놈 보컬이 A-니까.’
그리고 본인과 내 보컬 실력이 비슷하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럼 선곡에서 판가름 난다고 생각하겠지.’
좋아. 마음껏 해라. 마침 류청우도 저놈과 춤 스탯이 비슷하니 규격이 맞겠다.
‘류청우가 춤 못 따라가고 골골대는 분량은 별로 없겠군.’
나는 눈앞에 있는 류청우의 스테이터스창을 불러왔다.
[이름 : 류청우]
가창 : B (S-)
춤 : C+ (A)
외모 : A- (A+)
끼 : B (A)
특성 : 풀 드로 (B)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대학생이 이 정도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은 기함할 일이다.
‘내가 소속사 관계자였다면 어떻게든 잡아다 계약서 쓰게 하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문제는 내가 현실, 5년 차 1군 아이돌 테스타에서의 류청우 능력치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해 볼까.
[이름 : 류청우]
가창 : A (S-)
춤 : B+ (A)
외모 : A- (A+)
끼 : A- (A)
특성 : 풀 드로 (S)
완벽한 가창 중심 올라운더다.
타 그룹에 가면 메인에 세워도 충분할 리드보컬에, 센터에 세워도 부족하지 않을 안무 완성도와 끼.
하지만 지금 이곳의 류청우는 기본기 연습도 하지 않은 날 것이다. 외모를 제외하면 때보다도 한두 단계씩 능력치가 떨어진 상태.
‘그리고 특성도 이상한데.’
나는 원본 류청우의 특성치를 떠올렸다.
[풀 드로(Full draw) (S)]
-네가 시위를 당길 때, 정확한 위치에 있을 거야.
: 퍼포먼스 평정심 +150%
무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해주는 보정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프로의 이미지.
이게 분명 출연할 때부터 압도적인 S였는데 말이다.
‘왜 여기 놈은 등급이 B인 거지.’
이건 분명 양궁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법한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더 고민해 볼 시간은 없었다.
촬영 중이니까.
가사지를 들여다보던 클럽 메보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파트는… 일단 이게 룰이 정해져서요.”
“예.”
일단 이 새끼부터 상대하고.
나는 내심 웃으며 입을 열었다.
“룰이 있으니까요.”
자기 입으로 말하면 이기적으로 보일까 봐, 이건 내가 말하도록 미적거린다 이거지.
나는 사장의 발언을 떠올렸다.
-곡의 주인인 멤버가 이 곡을 이끌어가는 거고요. 나머지 멤버는 피처링이라고 생각하세요.
“룰은 당연히 지켜야죠. 태준 씨가 메인으로 곡 절반 해주세요. 이 곡의 주인이잖아요. 저희는 도전자고.”
“아… 아뇨. 다 같이 만드는 무댄데 아무래도 룰이 그러니까요.”
그래, 열심히 겸손한 모습을 어필해라. 무슨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지 알겠지만….
‘그러면 주도권은 넘어갈 텐데.’
남에게 말하게 하면 남한테 발언권이 생기거든.
기껏 선곡 잘 잡아놓고 파트에서 이러면 쓰나. 차라리 반대로 하지.
나야 좋다만.
“역시 곡을 전체적으로 다 부르실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퍼포먼스를 잡고 계셔야 하니까.”
“네… 음. 감사합니다.”
나는 적당히 놈에게 브릿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의 파트에 클라이맥스까지 얻어 줬다. 놈은 냉큼 챙겨간다.
[으으윽, 너무 많이 준 거 아닌……. 아아아~ 아니구나! 알겠어요!]
그래, 적절하다.
나는 내 생각을 읽고 감탄하는 놈의 팝업을 보며 내심 웃은 뒤, 남은 파트 절반을 들고 류청우에게 흔들었다.
“하고 싶은 파트 있어?”
“아, 여기를 한번 불러보고 싶은데.”
나와 클럽메보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던 녀석은 질문이 들어올 땐 빼지 않았다.
‘필요한 구간에서 딱 적극적이군.’
나는 녀석의 의견을 다 들은 뒤, 바로 클럽 메보를 호출했다.
“저희는 남은 파트에서 딱 절반씩 가져갈까 하는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예? 아, 당연히 괜찮죠.”
흔쾌히 대답했지만 별 관심 없는 건 알겠다. 누가 어느 파트를 가져가든 어차피 자기가 유리한 고지다 이거다.
‘다른 사람 타이르고 전체 퀄리티 올리는 데엔 별로 관심 없고.’
자기가 남들에게 잘나 보이고 손해 안 보면 나머지는 관심 없다는 마인드다. 청려가 몇 년간 어떻게 컨트롤했는지 알겠군.
“네. 잘 부탁합니다.”
나는 이후로도 클럽메보를 살살 띄워가며 연습을 진행했고, 일부러 류청우와 둘만 따로 이야기하는 시간은 만들지 않았다.
‘두 놈이 친목질하며 저 새끼 소외시킨다는 프레임은 곤란하니까.’
이 클럽메보를 잘 챙겨주는 그림은 놓치지 않고 가져가는 중이란 말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다른 반발 없이 연습을 착실히 따라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예? 잘하시는데요?]
괜찮긴 하지.
하지만 일반인인 데다가 다른 놈에게 권한이 다 있는 팀 상황에 따라가는 중이다 보니 임팩트가 약하다는 뜻이다.
‘흠.’
…기왕 류청우가 참가했으니, 어떻게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이놈을 동료로 뽑아다가 각성시키자 따위가 아니고서야 현실적으로 힘들다. 기간이 너무 짧아서.
‘게다가 이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
별수 없군.
일단은 류청우가 여기서 욕 안 먹고 신선한 경험 했다 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구도를 짜봐야겠다.
[아…….]
나는 클럽메보를 툭툭 건드려 본인이 직접 무대를 수정하도록 유도해가며, 천천히 전략을 맞춰 갔다.
그렇게 사흘이 휙 지났다.
이런 외딴 장소에 틀어박혀서 연습만 하면 늘 그렇듯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리고 류청우는… 놀랍게도, 비인간적인 속도로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
[청우 님 춤 스탯이 B-가 됐는데요…?]
이게 말이 되냐.
내가 이놈을 몰랐다면 연습생 생활 안 해봤다는 것을 개소리 취급하며 과거를 의심했을 정도였다.
[…잠깐, 그거 에서 형이 듣던 소린데…….]
그건 상태창빨이고. 류청우는 아니지.
‘그런데… 그래 봤자 여기서 다 밀고 데뷔할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중후반에 투입된 놈이 밀어버리려면 압도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금메달리스트 인지도와 혈연 버스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각성도 안 하고 트라우마도 없는 놈이 괜찮을지 모르겠군.
[ㅠㅠ]
어쩔 수 없지.
나는 입맛을 다시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을 정리할 겸, 이 새벽에 일어나 복도를 걷는 중이다.
이러고 있으니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 쓰면서 열심히 구르던 시절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엇 저기!]
음?
아직 불이 켜진 연습실이 보인다. 그리고 저거 방금까지 내가 쓰던 연습실인데.
‘…설마.’
나는 문고리를 잡아 미닫이문을 열었다.
드르륵.
“…!”
곧바로 팀원의 얼굴이 보인다.
땀 범벅이 된 류청우다.
“안 자냐.”
“아, 조금 더 할까 하고.”
무인 카메라도 배터리가 나가서 안 돌아가는 새벽 3시. 이놈이 아직 연습실에 있었다.
“형은?”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참고로 클럽메보는 카메라 꺼지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사라졌다. 숙소에도 없는 걸 보니 다른 연습생들이랑 뭘 하나 보지.
“…….”
잠깐, 설마 이놈 실력이 빨리 늘어난 게… 새벽마다 이 지랄을 하고 있었나? 본인 체력을 믿고?
“너 계속 이러고 있었냐.”
“음… 아무래도 아쉬워서.”
“체력 챙겨. 그러다가 본 무대 못 하면 안 되니까.”
“응. 그래야지.”
류청우는 고분고분히 대답하며 연습실 바닥에 누웠다. 말을 저렇게 해도 숙소 돌아갈 생각은 없다는 뜻 같군.
‘나 참.’
나는 일단 문을 닫았다.
그러자 천장을 보며 누워있던 놈이 불쑥 다시 입을 연다.
“미안해, 형. 형 무대를 방해하려고 지원한 건 아니었어요.”
“…!”
“는 어떤 작가분이 추천했어요. …그때 좀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방송이잖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말투가 변했어.’
신경 써서 반말만 쓰고 있었나 보다. 동갑이 존댓말 쓰는 게 방송을 타면 괜히 류건우가 욕먹을까 봐 말이다.
“……그건 나도 아니까 사과할 필요 없고.”
나는 조용히 놈의 옆에 앉아서 툭 물었다.
“그래서, 진짜 어쩌다가 여기 참가한 건데.”
제작진이 등록금이라도 대신 내줬냐?
“그건….”
류청우는 느릿하게 대답했다.
“형이 좀 달라 보여서요.”
나는 조용히 굳었다.
하지만 녀석은 눈치채지 못한 듯, 다음 말을 이었다.
“새해 기념으로 금주 달력 만들었던 거, 기억나?”
“…….”
뭐라고.
“형이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냉장고에 달력이 대놓고 붙어 있다 보니까, 저절로 알게 되더라.”
여기 나는 굳이 술 끊을 이유가 없을 텐데 대체 그런 짓은 왜… 아무튼, 그래서 이놈 설마.
‘날 의심하나.’
류청우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고, 나는 여러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굴렸다.
“그런데 형이 술을 흔쾌히 마셔서….”
그래서.
“너무 힘드니까 술을 거절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보니까, 그만큼 재밌는 건가 싶었지.”
“……!”
나는 놈과 했던 몇 번의 대화 패턴을 떠올렸다.
아이돌에 대한 질문.
-어때?
-재밌어. 살면서 했던 것 중에 제일 보람도 있고.
그걸… 해석을 그렇게 했냐.
“그리고 올해 들어서 형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많이 변한 것 같아서….”
놈은 약간 머뭇거렸지만, 다음 말을 이었다.
“좀…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
“부럽기도 하고.”
뭐?
류청우는 낮게 읊조렸다.
“사실… 내가 양궁을 왜 그만둔 건지 잘 모르겠거든.”
“…!”
“원래는 죽을 듯이 했었는데. 갑자기 못 해도 별 상관없을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 아마도.”
나는 저놈 말뜻에서 반사적으로 추리를 완성했다.
원래 류청우는 부상으로 울고불고 활까지 부러뜨리며 억지로 양궁을 그만둔다.
‘그런데 부상이 없어진 대신….’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가장 적당하고 무난한 이유가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냥… 안 해도 될 것 같았어.”
“…….”
대학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랬던 건가.
‘후.’
그리고 지금, 충동적으로 친척이 하는 업계에 뛰어든 놈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밤새는 건 오랜만이야. 이게… 지금은 역부족인 것 같은데, 할 때마다 느는 것 같은 느낌이 좋다. 이것도 오랜만이라.”
“…….”
“형도 이래서 좋다고 한 거겠지. 이젠 알겠어.”
류청우는 소리 내서 짧게 웃었다.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결국 이렇게 물었다.
“너 여기서 이기고 싶냐.”
“응?”
계속하고 싶냐고.
류청우는 약간 당황한 얼굴이었으나, 곧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형, 지고 싶은 사람은 없어.”
그리고 제법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인다.
“나도 마찬가지야.”
“…….”
나는 몸을 일으켰다.
사실 나는 류청우에게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도록 적당한 깍두기 포지션을 주고, 결정적인 파트에서 클럽메보의 목을 딸 생각이었으나….
좀 생각이 바뀌었다.
“알았어.”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나는 다음날, 트레이너에게 가기 전에 클럽 메보에게 가사지를 내밀었다.
종이엔 새로운 표기가 달려 있다.
“저기, 어차피 이번 퍼포먼스가 이런 구도라면… 좀 더 무대 완성도를 올리는 방향으로 보충 드리고 싶은데요.”
“예?”
놈은 귀찮은 듯이 힐끗 새 가사지를 보았으나, 표기를 확인한 순간 집중력이 살아났다.
그리고 눈에서 참지 못하고 빠져나오는 것은… 욕심이다.
‘그렇지.’
“그리고… 이러면 좀 더 태준 씨 무대라는 게 강조될 것 같아서요. 그게 퍼포먼스 주제에 맞으니까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아.”
이 녀석도 안다. 이건 몇 번 사양하는 것이 그림상 좋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지, 주장하는 구도가 아니다.
한번 거절하는 순간 미련 없이 ‘역시 그런가요’하고 돌아설 분위기.
그리고 놈은 이걸 참지 못했다.
“으음… 네네. 완성도를 위해서라면요.”
좋아. 물었군.
[허어억 그럼 청우 님이 이 사람을 무조건 이길 수 있는 건가요?]
그건 아니다.
나는 냉정히 계산했다.
이 사내 서바이벌 특성상….
‘뚜껑 열어봐야 알 것 같은데.’
[ㅠㅠ그래도 저는 희망을 가질래요…….]
그거야 뭐 개인 자유지.
그러나 나는 너무 낙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최악이라도 욕은 안 먹겠지.’
이때는 에서부터 이미 느꼈던 명제가 이번에도 일을 할 줄은 몰랐거든.
바로….
류청우는 서바이벌 프로에서 손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무대 전날 드레스 리허설.
사장이 선고하듯 이야기한다.
“신곡 퍼포먼스를 하지 못하는 인원 중에 반드시 탈락자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건 꼭 한 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정원 감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번엔 팀 전원 생존은 꿈도 꾸지 말라는, 기껏 준비한 놈들 멘탈 다 깨지는 소리… 라고 생각하는데.
다음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퍼포먼스의 판정단은 제가 아닙니다.”
설마.
“바로 가장 냉정한 비평가인 대중. 관객분들의 투표입니다.”
“…….”
나는 주먹을 짧게 쥐었다.
이겼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84화
드라이아이스 너머에서 으로 뜬금없이 류청우가 등장한 뒤 30분 후.
“그럼 이번 퍼포먼스에서는 더 발전된 여러분의 모습을 기대하겠습니다.”
“예!”
보충반 투입과 팀 정리가 끝났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연습 파트로 넘어가기 전 짧은 이동 겸 휴식 시간.
물론 카메라는 나와 류청우의 대담을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듯 끈질기게 따라붙는 중이다.
아까 류청우가 에 설 때도 실컷 대화 컷을 따갔으면서 욕심도 많군.
-…형, 놀랐어?
-응.
-많이?
-응.
안 봐도 본방송에서 얼마나 얼빠진 꼴로 나올지 뻔하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뭐가 들어갈지도.
‘인터뷰 왕창 때려 넣겠군….’
아니나 다를까, 제작진과 인터뷰하는 순서도 제일 먼저 잡혀서 역대급으로 오래 답을 캐낸다.
“혹시 청우 씨가 참가하시는 건 미리 알고 계셨나요? 시그널이라도? 아, 전혀 모르셨어요?”
“두 분 같이 자취하신다면서요~”
“청우 씨가 참가하면서 기대하시는 점은 있을까요?”
“반대로 좀 이런 부분은 견제가 된다, 조심해야겠다, 하는 것도 있을 텐데요. 경쟁자가 됐잖아요.”
신났구만.
나는 당황했다는 것을 심각하지 않게 표현한 뒤, 적당히 온순한 대답을 이었다.
“우리 둘 다 잘해야 하니까, 이번 무대 더 열심히 준비해야겠구나 싶기도 하고요.”
더 어그로를 끌 거나 과장할 필요도 없다.
어.
‘어차피 방영되는 순간 지랄 날 예정이니까….’
같은 학교 다니는 금메달리스트 친척이 갑자기 출연? X발, 나라도 보겠네.
나는 침음을 참으며 인터뷰 장소에서 연습실로 복귀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 타자를 지목했다.
류청우.
“작가님이 너 부르신다.”
“형.”
나는 녀석에게 손을 저어 보이고는, 노트를 내려놓는 척 놈에게 카메라 사각에서 문장을 보여줬다.
이 정도는 말해줘야겠지.
-무조건 돌려서 부드럽게 대답해.
“…!”
류청우는 살짝 고개를 끄덕인 후에 연습실을 나선다.
‘저 꼴을 보면 눈치가 뒈진 건 아닌데.’
이게 대체 무슨 일이냔 말이다. 대학 잘 다니던 놈이 왜 갑자기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냐고.
‘…일부러 권유도 안 했는데.’
워낙 잘 지내는 것 같은 데다가 저놈도 이 소속사가 좋아할 인상은 아닌 것 같아서, 그냥 두려고 했었다.
그런데 왜 직접 나온 거지. 말도 없이.
“…….”
아니, 카메라 돌 때 그런 직구는 안 된다. BGM 넣으면 바로 갈등 구간 편집에 쓰이니까.
‘나중에 취침 전에 최대한 부드럽게.’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전략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류청우라는 변수가 포함된 개인전 팀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 * *
인터뷰가 길어진 탓에 연습은 한 박 늦게 시작했다.
그리고 인터뷰에서 복귀한 류청우는 방송 분위기를 적절히 눈치챘는지, 얕고 부드럽게 자진 납세했다.
“미리 말하려고 했는데, 그날 아침에 갑자기 합격 연락을 받았거든…. 혹시 형 컨디션 방해할까 봐 말 안 했어.”
이건 가볍게 넘긴다.
나는 놈의 등을 한 대 치고 피식 웃었다.
“그래, 알았어.”
“…!”
“네가 그냥 재밌어 보인다고 함부로 뭐든 시도하는 타입도 아니고. 당연히 진지하게 할 거라고 믿는다.”
“…응. 당연하지. 그럴게.”
류청우가 희미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면 인터뷰랑 조합해서 훈훈한 느낌으로 가긴 하겠지.’
물론 ‘경쟁인데 혈연이라고 느슨해지는 건 별로임’ 같은 반응을 예상해서 한마디 붙이고.
“안 봐줘.”
“하하, 알았어.”
좋아. 이 정도면 카메라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그리고 그렇게 상황이 정리되자, 약간 난감한 것처럼 우리를 쳐다보던 다른 팀원 한 명이 입을 연다.
사실상 이 팀 퍼포먼스의 소유자인 놈. VTIC 전 메인보컬 말이다.
“음… 이제 곡에 대해서 좀 알려드리려고 하는데요. 괜찮으시죠?”
“아, 예. 감사합니다.”
딱 봐도 분량 뺏길 느낌이 보이는지 놈은 좀 짜증이 나는 것 같았지만, 카메라가 돌자 금방 기색을 다듬었다.
흠.
‘머리가 없는 건 아니고.’
그리고 절대 선곡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이미 정해진 것’으로 박아놓고 시작한다.
‘주도권을 딱 잡으려고 드는군.’
이놈은 나보다 두 살 어리다. 보통 팀 전이면 긴장도 풀 겸 편하게 말 놓으라고 하는 게 보통인데, 계속 상호 존대로 끌고 간다.
‘머리 적당히 돌아가고, 자존심 강하고.’
그러면 이놈이 밀고 나갈 무대 타입이야 한 가지지.
“아무래도 이 팀은 보컬 포지션 지망이 모였으니까, 보컬 위주로 무대를 구성했어요.”
“아, 네.”
그럴 줄 알았다.
‘이 새끼 춤은 별로 자신 없어.’
연습생 3년 차인데도 스탯이 기껏해야 C+다. 때 내 수준이라는 뜻이다.
좋은 실력만을 확실히 보여주고 싶다면? 보컬만 극대화하는 무대를 고르는 게 맞지.
‘저놈 보컬이 A-니까.’
그리고 본인과 내 보컬 실력이 비슷하다고 믿는 모양이다.
‘그럼 선곡에서 판가름 난다고 생각하겠지.’
좋아. 마음껏 해라. 마침 류청우도 저놈과 춤 스탯이 비슷하니 규격이 맞겠다.
‘류청우가 춤 못 따라가고 골골대는 분량은 별로 없겠군.’
나는 눈앞에 있는 류청우의 스테이터스창을 불러왔다.
가창 : B (S-)
춤 : C+ (A)
외모 : A- (A+)
끼 : B (A)
특성 : 풀 드로 (B)
나쁘지 않다. 아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냥 대학생이 이 정도 성적표를 받았다는 것은 기함할 일이다.
‘내가 소속사 관계자였다면 어떻게든 잡아다 계약서 쓰게 하겠지.’
…그렇지만 말이다.
문제는 내가 현실, 5년 차 1군 아이돌 테스타에서의 류청우 능력치를 알고 있다는 점이다.
비교해 볼까.
가창 : A (S-)
춤 : B+ (A)
외모 : A- (A+)
끼 : A- (A)
특성 : 풀 드로 (S)
완벽한 가창 중심 올라운더다.
타 그룹에 가면 메인에 세워도 충분할 리드보컬에, 센터에 세워도 부족하지 않을 안무 완성도와 끼.
하지만 지금 이곳의 류청우는 기본기 연습도 하지 않은 날 것이다. 외모를 제외하면 때보다도 한두 단계씩 능력치가 떨어진 상태.
‘그리고 특성도 이상한데.’
나는 원본 류청우의 특성치를 떠올렸다.
-네가 시위를 당길 때, 정확한 위치에 있을 거야.
: 퍼포먼스 평정심 +150%
무대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표현하고, 자연스럽게 행동하도록 해주는 보정치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프로의 이미지.
이게 분명 출연할 때부터 압도적인 S였는데 말이다.
‘왜 여기 놈은 등급이 B인 거지.’
이건 분명 양궁할 때부터 가지고 있었을 법한 특성이라고 생각했는데….
하지만 더 고민해 볼 시간은 없었다.
촬영 중이니까.
가사지를 들여다보던 클럽 메보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파트는… 일단 이게 룰이 정해져서요.”
“예.”
일단 이 새끼부터 상대하고.
나는 내심 웃으며 입을 열었다.
“룰이 있으니까요.”
자기 입으로 말하면 이기적으로 보일까 봐, 이건 내가 말하도록 미적거린다 이거지.
나는 사장의 발언을 떠올렸다.
-곡의 주인인 멤버가 이 곡을 이끌어가는 거고요. 나머지 멤버는 피처링이라고 생각하세요.
“룰은 당연히 지켜야죠. 태준 씨가 메인으로 곡 절반 해주세요. 이 곡의 주인이잖아요. 저희는 도전자고.”
“아… 아뇨. 다 같이 만드는 무댄데 아무래도 룰이 그러니까요.”
그래, 열심히 겸손한 모습을 어필해라. 무슨 이미지를 만들고 싶은지 알겠지만….
‘그러면 주도권은 넘어갈 텐데.’
남에게 말하게 하면 남한테 발언권이 생기거든.
기껏 선곡 잘 잡아놓고 파트에서 이러면 쓰나. 차라리 반대로 하지.
나야 좋다만.
“역시 곡을 전체적으로 다 부르실 수 있는 게 좋을 것 같아요. 퍼포먼스를 잡고 계셔야 하니까.”
“네… 음. 감사합니다.”
나는 적당히 놈에게 브릿지를 제외한 모든 구간의 파트에 클라이맥스까지 얻어 줬다. 놈은 냉큼 챙겨간다.
그래, 적절하다.
나는 내 생각을 읽고 감탄하는 놈의 팝업을 보며 내심 웃은 뒤, 남은 파트 절반을 들고 류청우에게 흔들었다.
“하고 싶은 파트 있어?”
“아, 여기를 한번 불러보고 싶은데.”
나와 클럽메보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고 고개만 끄덕이던 녀석은 질문이 들어올 땐 빼지 않았다.
‘필요한 구간에서 딱 적극적이군.’
나는 녀석의 의견을 다 들은 뒤, 바로 클럽 메보를 호출했다.
“저희는 남은 파트에서 딱 절반씩 가져갈까 하는데, 혹시 괜찮으실까요.”
“예? 아, 당연히 괜찮죠.”
흔쾌히 대답했지만 별 관심 없는 건 알겠다. 누가 어느 파트를 가져가든 어차피 자기가 유리한 고지다 이거다.
‘다른 사람 타이르고 전체 퀄리티 올리는 데엔 별로 관심 없고.’
자기가 남들에게 잘나 보이고 손해 안 보면 나머지는 관심 없다는 마인드다. 청려가 몇 년간 어떻게 컨트롤했는지 알겠군.
“네. 잘 부탁합니다.”
나는 이후로도 클럽메보를 살살 띄워가며 연습을 진행했고, 일부러 류청우와 둘만 따로 이야기하는 시간은 만들지 않았다.
‘두 놈이 친목질하며 저 새끼 소외시킨다는 프레임은 곤란하니까.’
이 클럽메보를 잘 챙겨주는 그림은 놓치지 않고 가져가는 중이란 말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다른 반발 없이 연습을 착실히 따라왔지만… 그게 전부였다.
괜찮긴 하지.
하지만 일반인인 데다가 다른 놈에게 권한이 다 있는 팀 상황에 따라가는 중이다 보니 임팩트가 약하다는 뜻이다.
‘흠.’
…기왕 류청우가 참가했으니, 어떻게 끌고 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거짓말이겠지.
하지만 지금은 어떻게든 이놈을 동료로 뽑아다가 각성시키자 따위가 아니고서야 현실적으로 힘들다. 기간이 너무 짧아서.
‘게다가 이놈이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겠고.’
“…….”
별수 없군.
일단은 류청우가 여기서 욕 안 먹고 신선한 경험 했다 치고 돌아갈 수 있도록 구도를 짜봐야겠다.
나는 클럽메보를 툭툭 건드려 본인이 직접 무대를 수정하도록 유도해가며, 천천히 전략을 맞춰 갔다.
그렇게 사흘이 휙 지났다.
이런 외딴 장소에 틀어박혀서 연습만 하면 늘 그렇듯이, 시간은 쏜살같이 흘러간다.
그리고 류청우는… 놀랍게도, 비인간적인 속도로 실력이 좋아지고 있다.
이게 말이 되냐.
내가 이놈을 몰랐다면 연습생 생활 안 해봤다는 것을 개소리 취급하며 과거를 의심했을 정도였다.
그건 상태창빨이고. 류청우는 아니지.
‘그런데… 그래 봤자 여기서 다 밀고 데뷔할 정도는 아닌 것 같기도 하고.’
이렇게 중후반에 투입된 놈이 밀어버리려면 압도적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애매하게 금메달리스트 인지도와 혈연 버스로 올라왔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각성도 안 하고 트라우마도 없는 놈이 괜찮을지 모르겠군.
어쩔 수 없지.
나는 입맛을 다시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
생각을 정리할 겸, 이 새벽에 일어나 복도를 걷는 중이다.
이러고 있으니 ‘잠은 죽어서 자는 것이다’ 쓰면서 열심히 구르던 시절이 생각나는 것 같기도 하고….
음?
아직 불이 켜진 연습실이 보인다. 그리고 저거 방금까지 내가 쓰던 연습실인데.
‘…설마.’
나는 문고리를 잡아 미닫이문을 열었다.
드르륵.
“…!”
곧바로 팀원의 얼굴이 보인다.
땀 범벅이 된 류청우다.
“안 자냐.”
“아, 조금 더 할까 하고.”
무인 카메라도 배터리가 나가서 안 돌아가는 새벽 3시. 이놈이 아직 연습실에 있었다.
“형은?”
“좀 생각할 게 있어서.”
참고로 클럽메보는 카메라 꺼지는 타이밍에 딱 맞춰서 사라졌다. 숙소에도 없는 걸 보니 다른 연습생들이랑 뭘 하나 보지.
“…….”
잠깐, 설마 이놈 실력이 빨리 늘어난 게… 새벽마다 이 지랄을 하고 있었나? 본인 체력을 믿고?
“너 계속 이러고 있었냐.”
“음… 아무래도 아쉬워서.”
“체력 챙겨. 그러다가 본 무대 못 하면 안 되니까.”
“응. 그래야지.”
류청우는 고분고분히 대답하며 연습실 바닥에 누웠다. 말을 저렇게 해도 숙소 돌아갈 생각은 없다는 뜻 같군.
‘나 참.’
나는 일단 문을 닫았다.
그러자 천장을 보며 누워있던 놈이 불쑥 다시 입을 연다.
“미안해, 형. 형 무대를 방해하려고 지원한 건 아니었어요.”
“…!”
“는 어떤 작가분이 추천했어요. …그때 좀 더 생각했어야 했는데. 방송이잖아.”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말투가 변했어.’
신경 써서 반말만 쓰고 있었나 보다. 동갑이 존댓말 쓰는 게 방송을 타면 괜히 류건우가 욕먹을까 봐 말이다.
“……그건 나도 아니까 사과할 필요 없고.”
나는 조용히 놈의 옆에 앉아서 툭 물었다.
“그래서, 진짜 어쩌다가 여기 참가한 건데.”
제작진이 등록금이라도 대신 내줬냐?
“그건….”
류청우는 느릿하게 대답했다.
“형이 좀 달라 보여서요.”
나는 조용히 굳었다.
하지만 녀석은 눈치채지 못한 듯, 다음 말을 이었다.
“새해 기념으로 금주 달력 만들었던 거, 기억나?”
“…….”
뭐라고.
“형이 말을 해주진 않았지만, 냉장고에 달력이 대놓고 붙어 있다 보니까, 저절로 알게 되더라.”
여기 나는 굳이 술 끊을 이유가 없을 텐데 대체 그런 짓은 왜… 아무튼, 그래서 이놈 설마.
‘날 의심하나.’
류청우의 설명은 끝나지 않았고, 나는 여러 가능성을 머릿속에서 굴렸다.
“그런데 형이 술을 흔쾌히 마셔서….”
그래서.
“너무 힘드니까 술을 거절하지 않는 것 같은데, 그래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걸 보니까, 그만큼 재밌는 건가 싶었지.”
“……!”
나는 놈과 했던 몇 번의 대화 패턴을 떠올렸다.
아이돌에 대한 질문.
-어때?
-재밌어. 살면서 했던 것 중에 제일 보람도 있고.
그걸… 해석을 그렇게 했냐.
“그리고 올해 들어서 형이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면서 많이 변한 것 같아서….”
놈은 약간 머뭇거렸지만, 다음 말을 이었다.
“좀… 낯설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
“부럽기도 하고.”
뭐?
류청우는 낮게 읊조렸다.
“사실… 내가 양궁을 왜 그만둔 건지 잘 모르겠거든.”
“…!”
“원래는 죽을 듯이 했었는데. 갑자기 못 해도 별 상관없을 것처럼 느껴졌던 것 같아. 아마도.”
나는 저놈 말뜻에서 반사적으로 추리를 완성했다.
원래 류청우는 부상으로 울고불고 활까지 부러뜨리며 억지로 양궁을 그만둔다.
‘그런데 부상이 없어진 대신….’
공백이 생긴 것이다.
그리고 가장 적당하고 무난한 이유가 들어갔다.
“그러니까 그냥… 안 해도 될 것 같았어.”
“…….”
대학 잘 다니고 있는 줄 알았는데, 그랬던 건가.
‘후.’
그리고 지금, 충동적으로 친척이 하는 업계에 뛰어든 놈이 단단한 목소리로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밤새는 건 오랜만이야. 이게… 지금은 역부족인 것 같은데, 할 때마다 느는 것 같은 느낌이 좋다. 이것도 오랜만이라.”
“…….”
“형도 이래서 좋다고 한 거겠지. 이젠 알겠어.”
류청우는 소리 내서 짧게 웃었다. 나는 잠시 대답하지 못하고 가만히 있다가, 결국 이렇게 물었다.
“너 여기서 이기고 싶냐.”
“응?”
계속하고 싶냐고.
류청우는 약간 당황한 얼굴이었으나, 곧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형, 지고 싶은 사람은 없어.”
그리고 제법 단호한 목소리로 덧붙인다.
“나도 마찬가지야.”
“…….”
나는 몸을 일으켰다.
사실 나는 류청우에게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도록 적당한 깍두기 포지션을 주고, 결정적인 파트에서 클럽메보의 목을 딸 생각이었으나….
좀 생각이 바뀌었다.
“알았어.”
계획을 수정해야겠다.
나는 다음날, 트레이너에게 가기 전에 클럽 메보에게 가사지를 내밀었다.
종이엔 새로운 표기가 달려 있다.
“저기, 어차피 이번 퍼포먼스가 이런 구도라면… 좀 더 무대 완성도를 올리는 방향으로 보충 드리고 싶은데요.”
“예?”
놈은 귀찮은 듯이 힐끗 새 가사지를 보았으나, 표기를 확인한 순간 집중력이 살아났다.
그리고 눈에서 참지 못하고 빠져나오는 것은… 욕심이다.
‘그렇지.’
“그리고… 이러면 좀 더 태준 씨 무대라는 게 강조될 것 같아서요. 그게 퍼포먼스 주제에 맞으니까요. 혹시 어떻게 생각하실까요.”
“아.”
이 녀석도 안다. 이건 몇 번 사양하는 것이 그림상 좋다는 것을.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지, 주장하는 구도가 아니다.
한번 거절하는 순간 미련 없이 ‘역시 그런가요’하고 돌아설 분위기.
그리고 놈은 이걸 참지 못했다.
“으음… 네네. 완성도를 위해서라면요.”
좋아. 물었군.
그건 아니다.
나는 냉정히 계산했다.
이 사내 서바이벌 특성상….
‘뚜껑 열어봐야 알 것 같은데.’
그거야 뭐 개인 자유지.
그러나 나는 너무 낙관적으로 상황을 보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최악이라도 욕은 안 먹겠지.’
이때는 에서부터 이미 느꼈던 명제가 이번에도 일을 할 줄은 몰랐거든.
바로….
류청우는 서바이벌 프로에서 손해를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바로 무대 전날 드레스 리허설.
사장이 선고하듯 이야기한다.
“신곡 퍼포먼스를 하지 못하는 인원 중에 반드시 탈락자가 발생합니다. 그리고 그건 꼭 한 명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
정원 감축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리고 이번엔 팀 전원 생존은 꿈도 꾸지 말라는, 기껏 준비한 놈들 멘탈 다 깨지는 소리… 라고 생각하는데.
다음 말이 이어진다.
“그리고 퍼포먼스의 판정단은 제가 아닙니다.”
설마.
“바로 가장 냉정한 비평가인 대중. 관객분들의 투표입니다.”
“…….”
나는 주먹을 짧게 쥐었다.
이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