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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38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8화
“일단… 하고 싶은데.”
“……!!”
선아현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설마 내가 본인의 선곡에 동조해 줄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예상 못 했다는 태도다.
“저, 저, 정말?”
“그래.”
가 좋은 곡인 것도 맞고, 5년 전 곡이라는 점에 가산점이 들어갔다.
김래빈이 말한 은 재작년 곡이었다.
‘첫 번째 팀전 때도 생각했지만, VTIC 최신곡은 부담스럽다.’
김래빈 본인은 자신 있어 보였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편곡을 주도할 김래빈의 의견을 아예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놈의 특성, 를 활용하려면 뭐라도 취향에 맞는 키워드를 던져줘야 했다.
마침 선아현의 기뻐 죽겠단 표정과 반대로, 김래빈은 약간 침울한 표정이었다.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나 보다.
“하지만 ‘자체 제작’이 이번 팀전 주제니까, 원곡을 그대로 쓰기는 힘들지.”
“아…….”
“그러니까 좀 파격적인 편곡이 들어가면 좋겠어. 개인적으로 아까 래빈이가 의견 낸 것 중에 ‘동양풍’이 좋아 보이는데.”
“그건,”
김래빈은 생각에 잠긴 듯 멍해졌다가, 곧바로 반색했다.
“확실히, 가사도 어색하지 않고……. 악기만 잘 고르면 굉장히 재밌는 편곡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무도 편곡에 맞춰서 수정하면 아주 인상적인 무대 장면도 가능할 겁니다.”
“다행이네.”
일단 이걸로 김래빈은 넘어갔다.
그럼 남은 건 큰세진과 골드 1인가.
고개를 돌려 둘을 훑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큰세진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씩 웃었다.
“그럼 섹시한 동양풍으로 편곡하는 건?”
“…!”
“어차피 동양풍으로 가도 그 안에서 어떤 분위기를 쓸 건지 정해야 하잖아요. 기왕이면 임팩트 있게 섹시 쓰자, 이 말입니다!”
틀린 말은 없었다.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겠군…….’
지금까지 나온 의견 중에 ‘섹시 컨셉’을 못 쓸 의견은 없었으니, 아마 내가 무슨 대답을 해도 이렇게 엮을 작정이었을 것이다.
‘적당히 웃기게, 거절하기도 난감하게 잘 말하는군.’
아니나 다를까, 골드 1이 장난스럽게 탄식했다.
“너어는 정말 대단한 놈이다, 진짜…….”
사실상 그러자는 뜻이었다. 다른 두 사람도 표정으로 보니 이미 넘어갔다.
“하하, 제가 좀?”
큰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걸로 선곡에 팀원 넷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남은 한 놈도 챙겨가자.’
훈훈하고 민주적인 팀 분위기 싫어할 시청자는 드물었다. 나는 덤덤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토끼도 쓸까요.”
“엥?”
골드 1이 손사래를 쳤다.
“아, 내가 말한 거? 괜찮아. 그냥 해본 말이야.”
“아뇨.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토끼가?”
“예.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토끼 있잖아요.”
다른 팀원들은 각자 나름대로 이야기를 떠올린 것 같았다.
“벼, 별주부전?”
“그… 토끼와 거북이 달리기하는 게 우리나라 이야기던가?”
“그건 이솝우화입니다.”
수군대는 팀원들 사이에서 큰세진만 씩 웃었다. 눈치 빠른 놈.
“달토끼?”
“달토끼. 맞아.”
달에서 방아로 떡을 만든다는 옛날이야기 속 토끼였다. 일명 옥토끼.
계수나무 밑에 있다는 가사의 동요로도 유명하다.
“…걔를 무슨 수로 섹시하게 만들어?”
동심 파괴 아니냐며 골드 1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무슨 플레이보이 잡지 식 토끼라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래빈은 이 키워드가 마음에 들었는지, 벌써부터 눈을 번쩍번쩍하며 정정했다. 입 열 필요가 없으니 솔직히 편했다.
“그대로 쓰지 않고 모티브만 따서 재구성하면 될 것 같습니다. 환상의 동물이라는 이미지를 잘 살릴 수 있다면 매력적인 컨셉입니다.”
“어, 그러려나? 물론, 나야 내 의견 써주면 좋지만.”
골드 1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세진이 곧바로 상황을 정리했다.
“음~ 저도 마음에 듭니다! 그럼 우리 일단 거수로 결정할까요?”
주변의 몇 팀은 벌써 곡을 정해서 제작진에게 알리는 중이다.
시간상 슬슬 우리 팀도 선곡 결론을 내리고 세부사항으로 넘어갈 타이밍이긴 했다.
“이번 무대, 를 달토끼를 곁들인 섹시한 동양풍 컨셉으로 재해석하자는 의견에 찬성하시는 분, 손들어주시죠!”
곧바로 전원의 손이 올라왔다. 말이 끝나자마자 본인도 손을 든 큰세진이 웃었다.
“크, 진짜 민주적이었다~ 우리 의견이 다 반영되었네요. 열심히 해봅시다!”
“넵!”
“예이~”
그렇게 토의는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기애애한 박수 소리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그때였다.
“싫다니까!”
저 옆의 다른 팀에서 누군가 소리 지르며 일어났다.
마침 시야에 얼굴이 걸렸다. 이세진이다.
“뭐야?”
“어…….”
“싸우나?”
주변에서 참가자들이 작게 속닥거렸다.
하지만 다들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건 편집의 희생양이 되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이세진은 맞은편의 참가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굳은 표정의 최원길과 풀 죽은 표정의 차유진이 보였다.
하지만 대치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일어난 이세진은 이를 악문 채로, 촬영장에서 뒤돌아 뛰어나갔다.
“…!!”
“헐. 쟤네…….”
다행히 류청우가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고 이세진을 따라 나갔다.
“너희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세진아? 이세진!”
한 카메라가 황급히 류청우에게 따라붙었다.
“…….”
와 저기는 정말… 텄네.
뇌 맑은 차유진까지 말려든 정도면 분위기가 알만했다.
“허이고…….”
골드 1이 짧게 탄식 소리를 냈다.
김래빈은 지난 팀전의 트라우마가 도지는지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누구도 굳이 저 팀에 다가가서 위로나 질문을 할 만큼 눈치 없진 않았다.
촬영이 몇 주째인데,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하는 참가자는 없던 것이다.
‘오지랖은 방송용 제물이지.’
그래서 이 은 얼른 제작진에게 선곡 보고를 끝마치고 연습실로 이동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 * *
이 숙소로 복귀한 것은 자정을 한참 넘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시든 콩나물 같은 꼴이었다.
“침실 좋다…….”
큰세진이 죽는소리를 내며 침대로 엎어졌다.
열흘 동안 편곡에 안무 수정에 무대 컨셉까지 알아서 하라는 돌아버린 스케줄을 견디지 못하고 K.O 당한 모습이다.
“씨, 씻고 올…….”
선아현은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
편곡 진행에 맞춰서 안무를 계속 재창작하는 내내 극도의 긴장 상태더니, 결국 정신력이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골드 1은 뭐라도 먹어야겠다며 흐느적흐느적 다른 방으로 갔다. 골드 2의 컵라면을 얻어먹을 생각인 것 같은데, 뭐 알아서 하겠지.
“…먼저 샤워기 좀 이용해도 괜찮을까요…….”
“그래.”
김래빈은 선아현을 몇 번 부르다가, 대답이 없자 내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래서 이 방에서 제정신인 건 나만 남게 되었다.
아, 나는 왜 비교적 멀쩡하냐고?
당연히 상태창빨이다. 나는 상태창 하단에 떠 있을 새로운 특성을 떠올렸다.
[특성 : 바쿠스500(B)]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
:모든 피로 누적 속도 ?50%
지난번 팀전 무대가 방영된 뒤, ‘명성 업적’ 다음 단계 보상으로 뽑은 특성이었다.
[명성의 무르익음!]
500,000명의 사람들이 당신의 존재를 기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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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실감 나지 않는 수치다.
50만 명?
대체 프로그램이 얼마나 떴으면 일개 참가자를 50만 명 이상이 기억한단 말인가. 아무리 상위권 참가자라도 놀라운 숫자였다.
속도로 봐서는 100만 명도 금방 돌파할 것 같다는 점이 약간 섬뜩하기까지 했다.
‘100만 명이 나를… 아니, ‘박문대’를 기억하게 되는 건가.’
이럴 때는 차라리 남의 몸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어쨌든, 50만 명 단위의 명성 업적 뽑기는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얻었던 것 중에 서바이벌 환경에서 제일 유용했다.
폐활량이 당장 늘어나거나 근력이 붙은 건 아니었으나, 바쁘고 체력 소모가 큰 날이 확실히 수월해졌다.
‘이렇게 빡세게 달렸는데도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남아 있으니 말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기지개를 켰다. 어쨌든 피곤하고 나른하긴 했다.
‘김래빈 나오면 바로 씻고 자야겠군.’
그때, 방문에서 소리가 났다.
똑똑.
“…?”
골드 1인가? 하지만 그놈이면 굳이 노크 같은 걸 하고 들어올 리가 없었다.
‘스탭이면 벌써 본인이 누군지 이야기했을 테고.’
짐작가는 바가 전혀 없었다.
똑똑똑똑!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됐다. 그러나 방문 안 팀원들은 전멸상태다.
‘…귀찮게 됐군.’
나는 한숨을 쉬고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
밖에는 차유진이 서 있었다.
여기까지야 좀 의외긴 하지만 납득할 만했다. 같은 소속사 출신인 김래빈이라도 만나러 왔나 보다 할 테니까.
문제는 질질 짜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유진은 눈물 콧물 다 빼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
‘…이건 왜 여기 와서 우냐?’
굉장히 당혹스럽다.
숙소 복도와 방 안에도 고정캠이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놈이 울면서 여기 온 것도 다 잡혔을 텐데, 대체 방송에 어떻게 나올지 감도 안 왔다.
아니, 그런 것보다도 왜 굳이 여기로 기어 들어왔단 말인가.
‘류청우하고 상담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류청우 성격이면 벌써 잘 다독였을 것이다. 왜 다른 팀에 와서 분란의 소지를 만든단 말인가.
‘하기야, 그 방면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놈 같지는 않다…….’
나는 짧은 침묵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래빈이 보러왔어?”
“크흥, 형하고 김래빈이 만나려고요,”
차유진은 불명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나는 왜?’
별 친분을 쌓았던 것 같지는 않다만… 뭐, 어지간히 지난 팀전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어쨌든 결과가 좋았고 과정도 (차유진의 입장에서야) 별 고민 없이 재밌었을 법도 하지.
‘이번 팀전의 지옥을 맛보고 나니 새삼 그리워졌나 보군.’
아무튼 여기서 돌려보내면 방송에 어떤 그림으로 나오든 긍정적으로 편집해주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대답했다.
“들어와. 래빈이는 씻고 있어.”
“네…….”
차유진은 계속 훌쩍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에서는 다른 팀원들이 죽은 듯이 숙면 중이다. 이 정도 소음으로는 절대 깨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했기 때문에 굳이 소리를 낮추지는 않았다.
일단 근처 탁자 앞에 앉혔다.
‘뭐라도 쥐어줘야 하나.’
나는 심란하게 차유진의 몰골을 보다가, 가방에서 초코바를 몇 개 꺼내서 쥐여줬다.
단 거라도 들어가면 좀 낫겠지.
“고맙븝니다…….”
차유진은 다 뭉개진 발음으로 초코바를 받아다가 입에 물었다.
“…….”
우물우물 초콜릿 씹는 소리만 방에 울렸다. 나는 심란해졌다.
‘이걸… X발 뭐라도 물어봐야 하나?’
괜히 물어봤다가 남의 팀 사정에 끼어들어야 하면 그것만큼 끔찍한 사태도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입 다물고 김래빈하고 떠들게 놔둬도 문제다.
‘김래빈도 그렇게 사회성이 출중한 부류는 아니다.’
혹시라도 이 상황이 무슨 사태로 번질지 몰랐다. 중간에 거처 간 나한테까지 화살이 돌아오면 곤란했다.
결국, 나는 지뢰 제거하는 기분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8화

“일단… 하고 싶은데.”

“……!!”

선아현이 눈에 띄게 동요했다.

설마 내가 본인의 선곡에 동조해 줄 것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예상 못 했다는 태도다.

“저, 저, 정말?”

“그래.”

가 좋은 곡인 것도 맞고, 5년 전 곡이라는 점에 가산점이 들어갔다.

김래빈이 말한 은 재작년 곡이었다.

‘첫 번째 팀전 때도 생각했지만, VTIC 최신곡은 부담스럽다.’

김래빈 본인은 자신 있어 보였지만 굳이 위험을 감수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편곡을 주도할 김래빈의 의견을 아예 반영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저놈의 특성, 를 활용하려면 뭐라도 취향에 맞는 키워드를 던져줘야 했다.

마침 선아현의 기뻐 죽겠단 표정과 반대로, 김래빈은 약간 침울한 표정이었다.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나 보다.

“하지만 ‘자체 제작’이 이번 팀전 주제니까, 원곡을 그대로 쓰기는 힘들지.”

“아…….”

“그러니까 좀 파격적인 편곡이 들어가면 좋겠어. 개인적으로 아까 래빈이가 의견 낸 것 중에 ‘동양풍’이 좋아 보이는데.”

“그건,”

김래빈은 생각에 잠긴 듯 멍해졌다가, 곧바로 반색했다.

“확실히, 가사도 어색하지 않고……. 악기만 잘 고르면 굉장히 재밌는 편곡이 나올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안무도 편곡에 맞춰서 수정하면 아주 인상적인 무대 장면도 가능할 겁니다.”

“다행이네.”

일단 이걸로 김래빈은 넘어갔다.

그럼 남은 건 큰세진과 골드 1인가.

고개를 돌려 둘을 훑었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큰세진이 태연자약한 얼굴로 씩 웃었다.

“그럼 섹시한 동양풍으로 편곡하는 건?”

“…!”

“어차피 동양풍으로 가도 그 안에서 어떤 분위기를 쓸 건지 정해야 하잖아요. 기왕이면 임팩트 있게 섹시 쓰자, 이 말입니다!”

틀린 말은 없었다.

‘애초에 이럴 생각이었겠군…….’

지금까지 나온 의견 중에 ‘섹시 컨셉’을 못 쓸 의견은 없었으니, 아마 내가 무슨 대답을 해도 이렇게 엮을 작정이었을 것이다.

‘적당히 웃기게, 거절하기도 난감하게 잘 말하는군.’

아니나 다를까, 골드 1이 장난스럽게 탄식했다.

“너어는 정말 대단한 놈이다, 진짜…….”

사실상 그러자는 뜻이었다. 다른 두 사람도 표정으로 보니 이미 넘어갔다.

“하하, 제가 좀?”

큰세진이 어깨를 으쓱거렸다. 이걸로 선곡에 팀원 넷의 의견이 반영되었다.

‘기왕 이렇게 됐으니, 남은 한 놈도 챙겨가자.’

훈훈하고 민주적인 팀 분위기 싫어할 시청자는 드물었다. 나는 덤덤하게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럼 토끼도 쓸까요.”

“엥?”

골드 1이 손사래를 쳤다.

“아, 내가 말한 거? 괜찮아. 그냥 해본 말이야.”

“아뇨. 잘 어울릴 것 같아서.”

“…토끼가?”

“예. 우리나라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토끼 있잖아요.”

다른 팀원들은 각자 나름대로 이야기를 떠올린 것 같았다.

“벼, 별주부전?”

“그… 토끼와 거북이 달리기하는 게 우리나라 이야기던가?”

“그건 이솝우화입니다.”

수군대는 팀원들 사이에서 큰세진만 씩 웃었다. 눈치 빠른 놈.

“달토끼?”

“달토끼. 맞아.”

달에서 방아로 떡을 만든다는 옛날이야기 속 토끼였다. 일명 옥토끼.

계수나무 밑에 있다는 가사의 동요로도 유명하다.

“…걔를 무슨 수로 섹시하게 만들어?”

동심 파괴 아니냐며 골드 1이 황망하게 중얼거렸다. 아무래도 무슨 플레이보이 잡지 식 토끼라도 떠올린 모양이었다.

그러나 김래빈은 이 키워드가 마음에 들었는지, 벌써부터 눈을 번쩍번쩍하며 정정했다. 입 열 필요가 없으니 솔직히 편했다.

“그대로 쓰지 않고 모티브만 따서 재구성하면 될 것 같습니다. 환상의 동물이라는 이미지를 잘 살릴 수 있다면 매력적인 컨셉입니다.”

“어, 그러려나? 물론, 나야 내 의견 써주면 좋지만.”

골드 1이 떨떠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큰세진이 곧바로 상황을 정리했다.

“음~ 저도 마음에 듭니다! 그럼 우리 일단 거수로 결정할까요?”

주변의 몇 팀은 벌써 곡을 정해서 제작진에게 알리는 중이다.

시간상 슬슬 우리 팀도 선곡 결론을 내리고 세부사항으로 넘어갈 타이밍이긴 했다.

“이번 무대, 를 달토끼를 곁들인 섹시한 동양풍 컨셉으로 재해석하자는 의견에 찬성하시는 분, 손들어주시죠!”

곧바로 전원의 손이 올라왔다. 말이 끝나자마자 본인도 손을 든 큰세진이 웃었다.

“크, 진짜 민주적이었다~ 우리 의견이 다 반영되었네요. 열심히 해봅시다!”

“넵!”

“예이~”

그렇게 토의는 시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화기애애한 박수 소리와 함께 마무리되었다.

그때였다.

“싫다니까!”

저 옆의 다른 팀에서 누군가 소리 지르며 일어났다.

마침 시야에 얼굴이 걸렸다. 이세진이다.

“뭐야?”

“어…….”

“싸우나?”

주변에서 참가자들이 작게 속닥거렸다.

하지만 다들 말을 아끼는 분위기였다.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건 편집의 희생양이 되고 싶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그 와중에도 이세진은 맞은편의 참가자들을 노려보고 있었다.

굳은 표정의 최원길과 풀 죽은 표정의 차유진이 보였다.

하지만 대치 상황은 오래 가지 않았다.

일어난 이세진은 이를 악문 채로, 촬영장에서 뒤돌아 뛰어나갔다.

“…!!”

“헐. 쟤네…….”

다행히 류청우가 곧바로 침착함을 되찾고 이세진을 따라 나갔다.

“너희 잠시만 기다리고 있어. …세진아? 이세진!”

한 카메라가 황급히 류청우에게 따라붙었다.

“…….”

와 저기는 정말… 텄네.

뇌 맑은 차유진까지 말려든 정도면 분위기가 알만했다.

“허이고…….”

골드 1이 짧게 탄식 소리를 냈다.

김래빈은 지난 팀전의 트라우마가 도지는지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러나 누구도 굳이 저 팀에 다가가서 위로나 질문을 할 만큼 눈치 없진 않았다.

촬영이 몇 주째인데, 아직도 상황파악을 못 하는 참가자는 없던 것이다.

‘오지랖은 방송용 제물이지.’

그래서 이 은 얼른 제작진에게 선곡 보고를 끝마치고 연습실로 이동했다.

현명한 판단이었다.

* * *

이 숙소로 복귀한 것은 자정을 한참 넘은 시간이었다.

모두가 시든 콩나물 같은 꼴이었다.

“침실 좋다…….”

큰세진이 죽는소리를 내며 침대로 엎어졌다.

열흘 동안 편곡에 안무 수정에 무대 컨셉까지 알아서 하라는 돌아버린 스케줄을 견디지 못하고 K.O 당한 모습이다.

“씨, 씻고 올…….”

선아현은 그 말을 남기고 그대로 침대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

편곡 진행에 맞춰서 안무를 계속 재창작하는 내내 극도의 긴장 상태더니, 결국 정신력이 버티지 못한 모양이었다.

골드 1은 뭐라도 먹어야겠다며 흐느적흐느적 다른 방으로 갔다. 골드 2의 컵라면을 얻어먹을 생각인 것 같은데, 뭐 알아서 하겠지.

“…먼저 샤워기 좀 이용해도 괜찮을까요…….”

“그래.”

김래빈은 선아현을 몇 번 부르다가, 대답이 없자 내게 양해를 구하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래서 이 방에서 제정신인 건 나만 남게 되었다.

아, 나는 왜 비교적 멀쩡하냐고?

당연히 상태창빨이다. 나는 상태창 하단에 떠 있을 새로운 특성을 떠올렸다.

-맑은 정신과 건강한 육체!

:모든 피로 누적 속도 ?50%

지난번 팀전 무대가 방영된 뒤, ‘명성 업적’ 다음 단계 보상으로 뽑은 특성이었다.

500,000명의 사람들이 당신의 존재를 기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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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실감 나지 않는 수치다.

50만 명?

대체 프로그램이 얼마나 떴으면 일개 참가자를 50만 명 이상이 기억한단 말인가. 아무리 상위권 참가자라도 놀라운 숫자였다.

속도로 봐서는 100만 명도 금방 돌파할 것 같다는 점이 약간 섬뜩하기까지 했다.

‘100만 명이 나를… 아니, ‘박문대’를 기억하게 되는 건가.’

이럴 때는 차라리 남의 몸인 게 그나마 다행이다 싶었다.

어쨌든, 50만 명 단위의 명성 업적 뽑기는 대박을 터뜨렸다. 지금까지 얻었던 것 중에 서바이벌 환경에서 제일 유용했다.

폐활량이 당장 늘어나거나 근력이 붙은 건 아니었으나, 바쁘고 체력 소모가 큰 날이 확실히 수월해졌다.

‘이렇게 빡세게 달렸는데도 생각을 정리할 여유가 남아 있으니 말이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짧게 기지개를 켰다. 어쨌든 피곤하고 나른하긴 했다.

‘김래빈 나오면 바로 씻고 자야겠군.’

그때, 방문에서 소리가 났다.

똑똑.

“…?”

골드 1인가? 하지만 그놈이면 굳이 노크 같은 걸 하고 들어올 리가 없었다.

‘스탭이면 벌써 본인이 누군지 이야기했을 테고.’

짐작가는 바가 전혀 없었다.

똑똑똑똑!

하지만 문을 두드리는 소리는 계속됐다. 그러나 방문 안 팀원들은 전멸상태다.

‘…귀찮게 됐군.’

나는 한숨을 쉬고 일어나서 방문을 열었다.

“…!”

밖에는 차유진이 서 있었다.

여기까지야 좀 의외긴 하지만 납득할 만했다. 같은 소속사 출신인 김래빈이라도 만나러 왔나 보다 할 테니까.

문제는 질질 짜고 있었다는 점이다.?

차유진은 눈물 콧물 다 빼며 훌쩍거리고 있었다.

“…….”

‘…이건 왜 여기 와서 우냐?’

굉장히 당혹스럽다.

숙소 복도와 방 안에도 고정캠이 설치되어 있다. 그렇다면 이놈이 울면서 여기 온 것도 다 잡혔을 텐데, 대체 방송에 어떻게 나올지 감도 안 왔다.

아니, 그런 것보다도 왜 굳이 여기로 기어 들어왔단 말인가.

‘류청우하고 상담하는 게 상식적이지 않나?’

류청우 성격이면 벌써 잘 다독였을 것이다. 왜 다른 팀에 와서 분란의 소지를 만든단 말인가.

‘하기야, 그 방면으로 머리가 돌아가는 놈 같지는 않다…….’

나는 짧은 침묵의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다 하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

“…래빈이 보러왔어?”

“크흥, 형하고 김래빈이 만나려고요,”

차유진은 불명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나는 왜?’

별 친분을 쌓았던 것 같지는 않다만… 뭐, 어지간히 지난 팀전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어쨌든 결과가 좋았고 과정도 (차유진의 입장에서야) 별 고민 없이 재밌었을 법도 하지.

‘이번 팀전의 지옥을 맛보고 나니 새삼 그리워졌나 보군.’

아무튼 여기서 돌려보내면 방송에 어떤 그림으로 나오든 긍정적으로 편집해주진 않을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대답했다.

“들어와. 래빈이는 씻고 있어.”

“네…….”

차유진은 계속 훌쩍거리며 방 안으로 들어왔다.

침대에서는 다른 팀원들이 죽은 듯이 숙면 중이다. 이 정도 소음으로는 절대 깨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신했기 때문에 굳이 소리를 낮추지는 않았다.

일단 근처 탁자 앞에 앉혔다.

‘뭐라도 쥐어줘야 하나.’

나는 심란하게 차유진의 몰골을 보다가, 가방에서 초코바를 몇 개 꺼내서 쥐여줬다.

단 거라도 들어가면 좀 낫겠지.

“고맙븝니다…….”

차유진은 다 뭉개진 발음으로 초코바를 받아다가 입에 물었다.

“…….”

우물우물 초콜릿 씹는 소리만 방에 울렸다. 나는 심란해졌다.

‘이걸… X발 뭐라도 물어봐야 하나?’

괜히 물어봤다가 남의 팀 사정에 끼어들어야 하면 그것만큼 끔찍한 사태도 없었다.

그렇다고 나는 입 다물고 김래빈하고 떠들게 놔둬도 문제다.

‘김래빈도 그렇게 사회성이 출중한 부류는 아니다.’

혹시라도 이 상황이 무슨 사태로 번질지 몰랐다. 중간에 거처 간 나한테까지 화살이 돌아오면 곤란했다.

결국, 나는 지뢰 제거하는 기분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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