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7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76화
무대 위에 오르는 두 사람.
정확히는 세 사람이나, 투입된 연습생 하나는 기세에 눌려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 연습생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둘이 이미 대상까지 타 본, 직업군의 정수를 모두 맛보고 온 경력직이라 문제였다.
차유진과 신재현.
‘크흐음.’
그 사실을 모르는 사장의 눈에도 극렬한 그 대비감이 보였다.
똑같은 양식의 검은 교복 의상을 입고 선 두 사람은 입은 방식에서부터 선 자세까지 차이가 도드라졌다.
그런데도 긴장감 하나 안 보이는 자연스러운 태도까지.
‘저거, 저거.’
사장은 입을 씰룩거렸다.
사실 보충반 대부분은 탈락해야 구성이 맞고, 전원 탈락이라도 괜찮았다.
‘봐라, 우리 연습생들이 이렇게 잘났다’를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기 서 있는 보충반이 싹수가 보여도 웬만하면 여기서 보내버릴 것이다.
약간 사심도 있었고.
‘너무 딴따라같이 생긴 놈이야.’
대중의 그 편견 어린 시선을 싫어하던 사장은 투덜거렸지만, 어쨌든 차유진의 보충반 투입 자체에는 반발하지 않았다.
그 실력과 외모만은 왜 아직까지 연습생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웠을 정도였으니까. 미국인이라는 설명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었다.
‘한둘 정도는 잘해야 균형이 맞지.’
아까 랩을 기가 막히게 한 잘생긴 친구를 붙인 것에는 아무 아쉬움이 없었다. 어차피 최종에서 탈락시키고 차기용으로 뺄 생각이니까.
다만 회상은 거기까지.
이제 무대에서는, 불이 꺼졌다.
“…….”
훅.
아래로 드라이아이스가 깔리고 붉고 푸른 조명이 내리꽂힌다.
추락하는 것 같은 허밍.
[Um, Umumum uum um]
우울하고 서늘한 음색과 베이스라인으로 유명한 솔로 여가수의 팝송.
간주의 시작.
쿵
단조의 기타 리프와 함께, 드럼에 맞춰 세 사람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안무가 시작된다.
[His growling, howling,
raise me up]
과격할 정도로 사지를 쓰는 동작이 난이도 있게 들어가는 듯하더니, 몸이 누군가가 끌어당긴 듯한 움직임으로 바로 선다.
센터의 신재현이 카메라를 보고 손을 돌린다.
손 관절에서 시작한 동작이 전신으로 이어지며, 상체를 교묘히 사용하고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음울한 미소와 함께 튀는 조명.
[To the darkness, absence…
No]
뚝 끊기는 노랫소리와 침묵.
퍼지는 동선.
상체를 꺾어 허리를 튕긴 후, 뒤로 넘어가 그대로 바닥을 짚고 곡예를 넘는다.
음악이 터진다.
[Tonight
he’s gonna find your room
and
take you to the wood]
그 격렬한 동작에서도 능숙하게 조절되는 보컬로 긁는 소리가 정확한 강도로 들어간다.
기괴하고 강렬한 음조와 동작들이 교복과 함께 아주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후렴.
[Watch out!]
차유진이 가운데에서 내리꽂히듯 등장한다.
순간, 시선이 쭉 빨려든다.
[Watch out!
for wolves]
발을 교묘히 움직여 앞으로 나온 차유진이 일부러 카메라를 속도감 있게 휙 잡았다가, 손을 뗀다.
안광이 번뜩인다.
“…!”
연출은 임팩트만 남기고 무대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대는 시선을 잡는다.
[Wo, wowo woof
Wolf]
어깨와 목을 움직이는 제자리 동작.
그리고 댄스 브레이크.
가운데 선 사람을 일종의 부표처럼 이용해, 양옆에서 좀 더 난이도 있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각은 정확히 맞다.
그러나 동작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
잡아먹을 듯 강렬한 쪽과 농도 있는 듯 절묘한 쪽.
[Your guest who-o-o
comes in the dead
of the night]
쿵.
곡은 불협화음의 피아노 음 하나만 남기고 끝난다.
허공을 보고 바닥으로 쓰러진 참가자들.
“…….”
숨을 헐떡이는 소리만 옅게 회장에 퍼진다.
그리고 한발 늦게.
짝. 짝짜작……!
드문드문한 박수가 회장을 채운다.
아직 관객을 부르지 않은 촬영장 무대, 그래도 분위기를 위해 쳐주던 제작진과 참가자들의 박수가 버벅인다.
사장은 약간 당황했다.
‘뭐야.’
무대가 기대했던 연습생의 퀄리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느 방송사의 연말 무대 같았다.
심지어 두 사람 때문에 다른 한 명이 제대로 눈에 안 들어와서 퀄리티에 거슬리는지도 모를 지경.
완벽한 압도였다.
‘아니, 설마 그것까지 의도하고 구성한 건…….’
…아니, 그럴 거였으면 저놈들이 사장했지!
사장은 잡념을 버리고, 어쨌든 감탄 어린 눈으로 무대의 두 사람을 보았다.
진심이었다. 이렇게까지 잘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는데.
‘운과 시너지의 문제겠지.’
어쨌든, 무대 하나 제대로 건진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연습 분위기 양호
-선곡으로 가벼운 마찰
제작진이 넘긴 연습 과정 요약까지 읽은 뒤, 사장은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대단한 칭찬을 쏟아낸 뒤,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선곡은 누가 했죠?”
“다 같이 했습니다.”
일어나서 바로 옷매무새를 다듬은 신재현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팝송이면 차유진 씨에게 유리한 조건일 수도 있었는데요.”
신재현은 알겠다는 듯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놈.’
사장은 제법 뿌듯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진심이었던 감상을.
“그런데… 왜 제 눈에는 재현이가 원본 같죠?”
“…!”
그렇다.
얼핏 보면, 이 강렬한 무대는 정확히 차유진이 선호하는 류의 것처럼 보인다.
화려하고 도전적인.
그러나 사실 이 곡의 메시지는 좀 더 다층적이다.
‘우울증.’
신재현은 가볍게 생각했다.
이 곡은 화자의 깊은 우울증에 대한 공포와 체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현은 그것을 숨 쉬듯 표현할 수 있었다.
같은 곡으로 여러 번 퍼포먼스해 봐서는 아니다. 이 시간이 뒤틀린 기묘한 세계에서는 선곡도 바뀌었다.
단지….
같은 곡이 아니라도, 비슷한 것은 너무나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런 어두운 컨셉은 VTIC이 4년 차에 접어든 순간부터 연마다 한 번씩은 꼬박꼬박 챙긴 스테디셀러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LeTi 사장 취향이 이런 거라서.’
그는 굳이 고개를 돌려 경쟁자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차유진.
본인이 곡을 잡아먹을 것 같은, 압도적인 박력과 끼. 눈부신 재능.
그러나 그것만이 평가항목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 재현아?”
신재현은 마이크를 들었다.
“굳이 대답을 찾자면… 그냥 분위기의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이런 분위기를 오래 연습했으니까요.”
정답지.
정답지.
“맞아요.”
사장이 웃는다.
“오늘 재현이가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이, 가장 LeTi다운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재현은 일부러 고개를 약간 숙였다. 감격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장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차유진은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봤던 대조적인 느낌의 잔상이 남아 있다.
‘흠.’
그는 마음을 살짝 바꿨다.
이건 그림이 된다.
“발표합니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배경에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결과가 뜬다.
[ 신재현 ?Win!]
[우등반 확정!]
“축하합니다.”
신재현의 승리였다.
그러나.
사장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다만, 제게는 제작진이 준 딱 하나의 권한이 있습니다.”
최종에서 떨어뜨리더라도, 일단 붙여서 이 대비 효과를 더 봐야겠다!
“바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 오로지 단 한 명, 한 연습생을 아무 조건 없이 탈락 위기에서 무효화 할 수 있습니다.”
“…!”
사장은 결정했다.
‘일단 잡아놓고 고쳐보려는 시도라도 해보자고.’
여기서 붙여주면 분명 ‘인정받았다’는 느낌에 감격해서 인정해 준 사람의 입맛에 맞게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보려 할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시장에 못 나오게 해야지.’
어디 못 뜰 만한 중소라도 연결해 주면 그만이다. 사장은 진중하게 깍지를 끼며 계산을 끝냈다.
“차유진 씨는 졌지만, 분명 저는 그 안에서 가능성이 보여요. LeTi의 훌륭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
“그러니, 제 권한으로 차유진 씨를 정원 외 참가자로 받습니다.”
쾅.
화면 뒤에 글자가 뜬다.
[Boss Pass!]
[ 차유진 ? 참가자 확정]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실 수 있죠?”
“당연해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감격할 줄 알았던 차유진은 그냥 씩 웃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붙일 줄 알았다는 듯, 혹은 그저 본인이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낀 것 같은 태도.
산뜻했다.
부채감과 감격은 일체없다.
‘…저거, 저거.’
사장은 자신의 다른 팀원들과 악수하고 등을 두드리는 차유진을 보며 표정을 관리했다.
‘하여간 미국물 먹은 놈들이 그렇지.’
버릇 잡으려면 직원들이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쓴 패스, 철회할 순 없으니 사장은 그저 멋지게 고개만 끄덕였다.
‘신재현 띄우는 데 도움이 되겠어.’
시너지가 있으니 저런 고퀄리티의 무대가 운이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여겼다.
곧 무대가 정리되고, 그도 마음을 정리했을 때쯤 다음 팀이 올라온다.
화면에 참가자 성명이 뜬다.
[우등반 류건우]
‘흠.’
이번에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흰 점퍼를 걸친 셋은 긴장한 것 같았지만, 척 보기에도 서로를 견제하는 눈치는 없다.
오히려 가운데 선 연습생을 자꾸 쳐다보며 그 손짓에 따라 동선과 자리를 맞춘다.
‘오호.’
저걸 그 분위기 있는 재즈 불렀던 놈이…?
사장은 미리 받아둔 각 팀의 연습 과정 중 특이점 요약을 떠올리며, 그는 그들의 차림을 보았다.
아이돌이 데뷔하면 신인 때 한 번씩은 거쳐 간다는 그 차림.
푸른색 카라와 흰옷이 조합된 마린룩이었다.
심지어 한 놈은 반바지다. 사장은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의상을 보니 귀여운 컨셉인 것 같은데, 맞나요?”
“저희 나름대로 새로운 느낌으로 구성해 봤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은 류건우가 힐끗 자신의 경쟁자들을 보더니, 그냥 옅게 웃고 말을 잇는다.
“귀여움도 포함해서요.”
그러자 주변 놈들이 히히 웃는 것이다. 누가 보면 팀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훈훈했다.
‘흐음.’
-갈등 소지 없음
-류건우 주도적 진행
요약을 쓱 훑고, 일단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합시다.”
무대를 봐야 스토리라인이 나올 것 같았다.
“네!”
곧 고개를 꾸벅거린 연습생들이 무대 중앙에 놓인 소파 주변으로 대형을 잡는다.
앉은 건 보충반, 선 건 열등반.
그리고 걸터앉은 류건우.
[으음!]
반주가 나오는 순간.
청량한 비트에 맞춰서 소파 주변 인원이 쿠션처럼 통통 튄다.
[Oh, Ohoh Icy eyes
차가워, 그래도 좋아!]
박자를 묘하게 바꾸고, ‘Ohoh’ 추임새의 피치를 바꾸었다.
덕분에 원본의 부담스러울 만큼 당기는 느낌 대신 톡톡 튀듯 끊기는 발음이 산다.
[탄산같이 톡 쏘는 말투가
얼음처럼 단단한 눈빛이]
소파에 앉았다가 일어나고, 날아가듯 모션을 취해 타고 넘어 일어나서는 안무를 맞춘다.
[Oh, 너무 예뻐!]
원곡과 달리 고음이 터지지만, 점프는 각도를 맞춰서 높게.
무겁지 않고 산뜻한 박자를 유쾌히 타고 곡과 안무가 흐른다.
[I see the butterflies
가슴 속에 벌이 날아다니듯
복잡한 기분]
‘오.’
제스처를 사용해 클로즈업이 들어올 만한 킬링 파트마다 채율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당황스러울 만큼 파트를 딱 맞게 소화한다.
[아직은 괜찮아
그래도 아이 시려워, 그만 녹아줘]
이 가사가 오글거리지 않는다.
‘뭐야?’
그리고 돌아온 후렴.
[Oh, Ohoh Icy eyes
차가워, 그래도 좋아]
놀랍게도 류건우는 후렴을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게 부르며 표정을 지었다.
동그란 모자가 너무 잘 받아서 이상했다.
[Oh, Ohoh Icy Ice
그대의 눈빛은 차가워]
고음은 예상대로 깔끔했으나, 좀 어색할 줄 알았던 청량한 산뜻함이 깔끔히 잘 붙는다.
‘…??’
그가 강아지를 별명으로 5년간 아이돌 업계에서 생존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장만 당황했다.
[다가가 손 내밀면
따듯한 눈으로 마주 봐요]
템포가 가속되고, 소파를 뒤로한 그들이 한층 더 복잡한 안무를 무대 앞에서 소화한다.
댄스 브레이크 센터는 또 다른 연습생이었다.
그리고 다음 후렴은 이 연습생과 보충반이 나누어 부른다.
‘흐음.’
사장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So cool!]
박문대가 이 파트가 ‘강렬하다’라며 사기를 쳤던 부분은 밝고 쾌활하게 폭죽처럼 무대를 덮었다.
[Oh, Ohoh Icy eyes]
점프와 고음, 적당한 높이의 맑은 원음이 화음과 균형을 이루며 거슬리는 곳 없이 무대를 꽉 채운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산뜻한 무대.
이 기획사에서의 연습생 기간이 짧은 둘과 비연습생이 한 무대다웠다.
‘LeTi 느낌이 없어.’
단언컨대 LeTi 사장의 취향은 아니었으나, 나쁘지 않았다.
좋은 무대는 취향을 떠나서 좋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좋아!]
잔박 많은 멜로디와 맞춘 마지막 동작까지 깔끔히 맞아떨어지며, 방긋 웃는 얼굴로 무대가 끝났다.
‘오.’
짝짝짝짝!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기분 좋게 박수가 터져 나온다.
전 무대만큼 압도적이진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가는, 기분 좋은 방향으로 퀄리티 좋고 밀도 찬 좋은 무대였기 때문이다.
사장은 기꺼이 마이크를 들었다.
“굉장히 기분 좋게 봤어요. 세 분 합도 잘 맞고… 너무 좋네요.”
그는 개개인-특히 보충반에게 몇 마디씩 칭찬을 던진 뒤, 본론을 꺼냈다.
“혹시 연습 어땠어요?”
얼굴이 밝아진 연습생들이 얼른 대답한다.
“정말 재밌게 열심히 했습니다!”
“네. 형이 잘 이끌어주셔서… 저희 다 재밌게 연습했어요.”
류건우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이었으나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은 하하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연습생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바로 이 순간이다.
“근데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문제점이기도 하죠?”
“…!”
사장은 류건우를 돌아보았다.
“왜 절박함이 안 보이죠?”
“…!”
“건우야, 이건 건우가 제일 잘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우리 두 번째 무대죠?”
“…예.”
“그러면 지금은 제일 잘하는 걸 열심히 어필하고 보여줘도 모자랄 시간이 아닌가요? 지금 파트도 다 양보했죠.”
사장은 진지하게 눈을 맞추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동생들한테 맞춰줄 게 아니라, 좀 더 보여주기 위해 욕심을 냈어야죠. 이거 데스매치였어요.”
“…….”
도리어 주변에 서 있던 두 참가자의 눈이 겁과 걱정으로 주눅이 든 것 같았으나, 류건우는 침을 한 번 삼켰을 뿐이다.
그 배짱도 마음에 들었다!
“이 일은 재밌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간절함이 필요하죠.”
그러니 사자가 자기 새끼를 벼랑에서 떨어뜨리듯이, 그도 한 건 올릴 생각이었다.
“잘했지만, 오늘은 잘하기만 했어요. 이건 학생이 받는 칭찬이에요. 프로가 아니라.”
류건우는 표정 없는 얼굴이었으나, 티 나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래, 그거지.’
자극을 받아야 한다.
너도, 시청자도!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참으며, 고뇌에 찬 얼굴로 버튼을 눌렀다.
“승자 발표합니다.”
[ 진채율 ?Win!]
[참가자 확정!]
채율.
“축하합니다. 이제 참가자입니다.”
“…! 가,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충격에 빠진 듯 비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류건우 씨는 탈락 위기입니다.”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
바로 지나갔지만, 왠지 류건우가 얼핏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허탈함 때문인가?’
그러나 다시 보니 그냥 기분 탓이었던 것 같다. 사장은 어깨를 으쓱한 뒤, 진중하게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들어가 보세요. 잘 봤습니다.”
그렇게 평가가 끝났다.
그리고 무대 뒤.
차유진은 눈물을 쏟는 진채율을 적당히 카메라 보기 좋게 달래서 보낸 박문대 형을 발견했다.
카메라는 이미 빠졌다. 그러니 다가가서 툭툭 쳤다.
“형!”
“그래.”
박문대는 별 감흥 없는 얼굴이었다. 얼굴이 변했어도 그 평온한 듯 묘한 표정은 여전했다.
그리고 은근한 친절함까지.
“져서 아쉽냐.”
“아니요.”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무대를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진짜 승패를 판정하는 건 저 나이 든 남자 한 명이 아니잖아요.]
“…!”
그의 형은 잠시 당황한 것 같았으나, 아마도 곧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이 녀석… 일부러 그렇게 했군.’
따위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곧 나와요. 내가 이겼다는 게.]
“그러냐.”
차유진은 일부러 툭툭 어깨를 쳤다. 여느 때처럼 슬금슬금 피한다.
“형은 아쉬워요?”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박문대는 작게 웃었다.
“마찬가지지.”
그날 촬영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LeTi 사내 서바이벌 는 드디어 방송을 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76화
무대 위에 오르는 두 사람.
정확히는 세 사람이나, 투입된 연습생 하나는 기세에 눌려 거의 보이지 않을 지경이었다.
사실 그 연습생의 문제는 아니었다. 다른 둘이 이미 대상까지 타 본, 직업군의 정수를 모두 맛보고 온 경력직이라 문제였다.
차유진과 신재현.
‘크흐음.’
그 사실을 모르는 사장의 눈에도 극렬한 그 대비감이 보였다.
똑같은 양식의 검은 교복 의상을 입고 선 두 사람은 입은 방식에서부터 선 자세까지 차이가 도드라졌다.
그런데도 긴장감 하나 안 보이는 자연스러운 태도까지.
‘저거, 저거.’
사장은 입을 씰룩거렸다.
사실 보충반 대부분은 탈락해야 구성이 맞고, 전원 탈락이라도 괜찮았다.
‘봐라, 우리 연습생들이 이렇게 잘났다’를 어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저기 서 있는 보충반이 싹수가 보여도 웬만하면 여기서 보내버릴 것이다.
약간 사심도 있었고.
‘너무 딴따라같이 생긴 놈이야.’
대중의 그 편견 어린 시선을 싫어하던 사장은 투덜거렸지만, 어쨌든 차유진의 보충반 투입 자체에는 반발하지 않았다.
그 실력과 외모만은 왜 아직까지 연습생이 아니었는지 의심스러웠을 정도였으니까. 미국인이라는 설명을 보고서야 고개를 끄덕였었다.
‘한둘 정도는 잘해야 균형이 맞지.’
아까 랩을 기가 막히게 한 잘생긴 친구를 붙인 것에는 아무 아쉬움이 없었다. 어차피 최종에서 탈락시키고 차기용으로 뺄 생각이니까.
다만 회상은 거기까지.
이제 무대에서는, 불이 꺼졌다.
“…….”
훅.
아래로 드라이아이스가 깔리고 붉고 푸른 조명이 내리꽂힌다.
추락하는 것 같은 허밍.
우울하고 서늘한 음색과 베이스라인으로 유명한 솔로 여가수의 팝송.
간주의 시작.
쿵
단조의 기타 리프와 함께, 드럼에 맞춰 세 사람은 무릎을 꿇는다.
그리고 안무가 시작된다.
raise me up]
과격할 정도로 사지를 쓰는 동작이 난이도 있게 들어가는 듯하더니, 몸이 누군가가 끌어당긴 듯한 움직임으로 바로 선다.
센터의 신재현이 카메라를 보고 손을 돌린다.
손 관절에서 시작한 동작이 전신으로 이어지며, 상체를 교묘히 사용하고 고개를 든다.
그리고 음울한 미소와 함께 튀는 조명.
No]
뚝 끊기는 노랫소리와 침묵.
퍼지는 동선.
상체를 꺾어 허리를 튕긴 후, 뒤로 넘어가 그대로 바닥을 짚고 곡예를 넘는다.
음악이 터진다.
he’s gonna find your room
and
take you to the wood]
그 격렬한 동작에서도 능숙하게 조절되는 보컬로 긁는 소리가 정확한 강도로 들어간다.
기괴하고 강렬한 음조와 동작들이 교복과 함께 아주 묘한 분위기를 만든다.
그리고 후렴.
차유진이 가운데에서 내리꽂히듯 등장한다.
순간, 시선이 쭉 빨려든다.
for wolves]
발을 교묘히 움직여 앞으로 나온 차유진이 일부러 카메라를 속도감 있게 휙 잡았다가, 손을 뗀다.
안광이 번뜩인다.
“…!”
연출은 임팩트만 남기고 무대의 일부가 된다.
그러나 영향력은 사라지지 않는다.
무대는 시선을 잡는다.
Wolf]
어깨와 목을 움직이는 제자리 동작.
그리고 댄스 브레이크.
가운데 선 사람을 일종의 부표처럼 이용해, 양옆에서 좀 더 난이도 있는 퍼포먼스가 펼쳐진다.
각은 정확히 맞다.
그러나 동작이 주는 느낌이 다르다.
잡아먹을 듯 강렬한 쪽과 농도 있는 듯 절묘한 쪽.
comes in the dead
of the night]
쿵.
곡은 불협화음의 피아노 음 하나만 남기고 끝난다.
허공을 보고 바닥으로 쓰러진 참가자들.
“…….”
숨을 헐떡이는 소리만 옅게 회장에 퍼진다.
그리고 한발 늦게.
짝. 짝짜작……!
드문드문한 박수가 회장을 채운다.
아직 관객을 부르지 않은 촬영장 무대, 그래도 분위기를 위해 쳐주던 제작진과 참가자들의 박수가 버벅인다.
사장은 약간 당황했다.
‘뭐야.’
무대가 기대했던 연습생의 퀄리티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차라리 어느 방송사의 연말 무대 같았다.
심지어 두 사람 때문에 다른 한 명이 제대로 눈에 안 들어와서 퀄리티에 거슬리는지도 모를 지경.
완벽한 압도였다.
‘아니, 설마 그것까지 의도하고 구성한 건…….’
…아니, 그럴 거였으면 저놈들이 사장했지!
사장은 잡념을 버리고, 어쨌든 감탄 어린 눈으로 무대의 두 사람을 보았다.
진심이었다. 이렇게까지 잘할 거라곤 예상치 못했는데.
‘운과 시너지의 문제겠지.’
어쨌든, 무대 하나 제대로 건진 것이 매우 만족스러웠다.
-연습 분위기 양호
-선곡으로 가벼운 마찰
제작진이 넘긴 연습 과정 요약까지 읽은 뒤, 사장은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대단한 칭찬을 쏟아낸 뒤,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선곡은 누가 했죠?”
“다 같이 했습니다.”
일어나서 바로 옷매무새를 다듬은 신재현이 부드럽게 대답했다.
“팝송이면 차유진 씨에게 유리한 조건일 수도 있었는데요.”
신재현은 알겠다는 듯 희미한 미소만 짓고 있을 뿐 대꾸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도 애매하기 때문이다.
‘똑똑한 놈.’
사장은 제법 뿌듯하게 다음 말을 이었다.
진심이었던 감상을.
“그런데… 왜 제 눈에는 재현이가 원본 같죠?”
“…!”
그렇다.
얼핏 보면, 이 강렬한 무대는 정확히 차유진이 선호하는 류의 것처럼 보인다.
화려하고 도전적인.
그러나 사실 이 곡의 메시지는 좀 더 다층적이다.
‘우울증.’
신재현은 가볍게 생각했다.
이 곡은 화자의 깊은 우울증에 대한 공포와 체념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신재현은 그것을 숨 쉬듯 표현할 수 있었다.
같은 곡으로 여러 번 퍼포먼스해 봐서는 아니다. 이 시간이 뒤틀린 기묘한 세계에서는 선곡도 바뀌었다.
단지….
같은 곡이 아니라도, 비슷한 것은 너무나 많이 해봤기 때문에.
이런 어두운 컨셉은 VTIC이 4년 차에 접어든 순간부터 연마다 한 번씩은 꼬박꼬박 챙긴 스테디셀러였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LeTi 사장 취향이 이런 거라서.’
그는 굳이 고개를 돌려 경쟁자의 얼굴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차유진.
본인이 곡을 잡아먹을 것 같은, 압도적인 박력과 끼. 눈부신 재능.
그러나 그것만이 평가항목이 아니었다.
“왜 그럴까, 재현아?”
신재현은 마이크를 들었다.
“굳이 대답을 찾자면… 그냥 분위기의 문제가 아닐까요. 저는 이런 분위기를 오래 연습했으니까요.”
정답지.
정답지.
“맞아요.”
사장이 웃는다.
“오늘 재현이가 무대에서 보여준 모습이, 가장 LeTi다운 퍼포먼스였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합니다.”
신재현은 일부러 고개를 약간 숙였다. 감격을 표시하기 위해서.
그리고 사장은 고개를 슬쩍 돌렸다.
차유진은 그냥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봤던 대조적인 느낌의 잔상이 남아 있다.
‘흠.’
그는 마음을 살짝 바꿨다.
이건 그림이 된다.
“발표합니다.”
무대의 불이 꺼지고, 배경에 빛이 들어온다.
그리고 당연하다는 듯이 결과가 뜬다.
“축하합니다.”
신재현의 승리였다.
그러나.
사장은 다시 마이크를 들었다.
“다만, 제게는 제작진이 준 딱 하나의 권한이 있습니다.”
최종에서 떨어뜨리더라도, 일단 붙여서 이 대비 효과를 더 봐야겠다!
“바로 이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중 오로지 단 한 명, 한 연습생을 아무 조건 없이 탈락 위기에서 무효화 할 수 있습니다.”
“…!”
사장은 결정했다.
‘일단 잡아놓고 고쳐보려는 시도라도 해보자고.’
여기서 붙여주면 분명 ‘인정받았다’는 느낌에 감격해서 인정해 준 사람의 입맛에 맞게 자기 자신을 발전시켜보려 할 것이다.
그래도 안 된다면?
‘시장에 못 나오게 해야지.’
어디 못 뜰 만한 중소라도 연결해 주면 그만이다. 사장은 진중하게 깍지를 끼며 계산을 끝냈다.
“차유진 씨는 졌지만, 분명 저는 그 안에서 가능성이 보여요. LeTi의 훌륭한 아티스트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
“그러니, 제 권한으로 차유진 씨를 정원 외 참가자로 받습니다.”
쾅.
화면 뒤에 글자가 뜬다.
“제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해주실 수 있죠?”
“당연해요! 감사합니다!”
그러나 감격할 줄 알았던 차유진은 그냥 씩 웃고 그렇게 말했을 뿐이다.
붙일 줄 알았다는 듯, 혹은 그저 본인이 계속할 수 있다는 것에 순수하게 즐거움을 느낀 것 같은 태도.
산뜻했다.
부채감과 감격은 일체없다.
‘…저거, 저거.’
사장은 자신의 다른 팀원들과 악수하고 등을 두드리는 차유진을 보며 표정을 관리했다.
‘하여간 미국물 먹은 놈들이 그렇지.’
버릇 잡으려면 직원들이 고생 좀 할 것 같았다. 하지만 이미 쓴 패스, 철회할 순 없으니 사장은 그저 멋지게 고개만 끄덕였다.
‘신재현 띄우는 데 도움이 되겠어.’
시너지가 있으니 저런 고퀄리티의 무대가 운이라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는 그렇게 여겼다.
곧 무대가 정리되고, 그도 마음을 정리했을 때쯤 다음 팀이 올라온다.
화면에 참가자 성명이 뜬다.
‘흠.’
이번에는 아까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흰 점퍼를 걸친 셋은 긴장한 것 같았지만, 척 보기에도 서로를 견제하는 눈치는 없다.
오히려 가운데 선 연습생을 자꾸 쳐다보며 그 손짓에 따라 동선과 자리를 맞춘다.
‘오호.’
저걸 그 분위기 있는 재즈 불렀던 놈이…?
사장은 미리 받아둔 각 팀의 연습 과정 중 특이점 요약을 떠올리며, 그는 그들의 차림을 보았다.
아이돌이 데뷔하면 신인 때 한 번씩은 거쳐 간다는 그 차림.
푸른색 카라와 흰옷이 조합된 마린룩이었다.
심지어 한 놈은 반바지다. 사장은 헛웃음을 터뜨릴 뻔했다.
“의상을 보니 귀여운 컨셉인 것 같은데, 맞나요?”
“저희 나름대로 새로운 느낌으로 구성해 봤습니다.”
자연스럽게 마이크를 잡은 류건우가 힐끗 자신의 경쟁자들을 보더니, 그냥 옅게 웃고 말을 잇는다.
“귀여움도 포함해서요.”
그러자 주변 놈들이 히히 웃는 것이다. 누가 보면 팀전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훈훈했다.
‘흐음.’
-갈등 소지 없음
-류건우 주도적 진행
요약을 쓱 훑고, 일단 사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시작합시다.”
무대를 봐야 스토리라인이 나올 것 같았다.
“네!”
곧 고개를 꾸벅거린 연습생들이 무대 중앙에 놓인 소파 주변으로 대형을 잡는다.
앉은 건 보충반, 선 건 열등반.
그리고 걸터앉은 류건우.
반주가 나오는 순간.
청량한 비트에 맞춰서 소파 주변 인원이 쿠션처럼 통통 튄다.
차가워, 그래도 좋아!]
박자를 묘하게 바꾸고, ‘Ohoh’ 추임새의 피치를 바꾸었다.
덕분에 원본의 부담스러울 만큼 당기는 느낌 대신 톡톡 튀듯 끊기는 발음이 산다.
얼음처럼 단단한 눈빛이]
소파에 앉았다가 일어나고, 날아가듯 모션을 취해 타고 넘어 일어나서는 안무를 맞춘다.
원곡과 달리 고음이 터지지만, 점프는 각도를 맞춰서 높게.
무겁지 않고 산뜻한 박자를 유쾌히 타고 곡과 안무가 흐른다.
가슴 속에 벌이 날아다니듯
복잡한 기분]
‘오.’
제스처를 사용해 클로즈업이 들어올 만한 킬링 파트마다 채율이 들어가 있었다.
그리고 당황스러울 만큼 파트를 딱 맞게 소화한다.
그래도 아이 시려워, 그만 녹아줘]
이 가사가 오글거리지 않는다.
‘뭐야?’
그리고 돌아온 후렴.
차가워, 그래도 좋아]
놀랍게도 류건우는 후렴을 기가 막히게 자연스럽게 부르며 표정을 지었다.
동그란 모자가 너무 잘 받아서 이상했다.
그대의 눈빛은 차가워]
고음은 예상대로 깔끔했으나, 좀 어색할 줄 알았던 청량한 산뜻함이 깔끔히 잘 붙는다.
‘…??’
그가 강아지를 별명으로 5년간 아이돌 업계에서 생존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장만 당황했다.
따듯한 눈으로 마주 봐요]
템포가 가속되고, 소파를 뒤로한 그들이 한층 더 복잡한 안무를 무대 앞에서 소화한다.
댄스 브레이크 센터는 또 다른 연습생이었다.
그리고 다음 후렴은 이 연습생과 보충반이 나누어 부른다.
‘흐음.’
사장은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마지막.
박문대가 이 파트가 ‘강렬하다’라며 사기를 쳤던 부분은 밝고 쾌활하게 폭죽처럼 무대를 덮었다.
점프와 고음, 적당한 높이의 맑은 원음이 화음과 균형을 이루며 거슬리는 곳 없이 무대를 꽉 채운다.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는 산뜻한 무대.
이 기획사에서의 연습생 기간이 짧은 둘과 비연습생이 한 무대다웠다.
‘LeTi 느낌이 없어.’
단언컨대 LeTi 사장의 취향은 아니었으나, 나쁘지 않았다.
좋은 무대는 취향을 떠나서 좋기 때문이다.
잔박 많은 멜로디와 맞춘 마지막 동작까지 깔끔히 맞아떨어지며, 방긋 웃는 얼굴로 무대가 끝났다.
‘오.’
짝짝짝짝!
이번에는 여기저기서 기분 좋게 박수가 터져 나온다.
전 무대만큼 압도적이진 않았다.
그렇지만 마음이 가는, 기분 좋은 방향으로 퀄리티 좋고 밀도 찬 좋은 무대였기 때문이다.
사장은 기꺼이 마이크를 들었다.
“굉장히 기분 좋게 봤어요. 세 분 합도 잘 맞고… 너무 좋네요.”
그는 개개인-특히 보충반에게 몇 마디씩 칭찬을 던진 뒤, 본론을 꺼냈다.
“혹시 연습 어땠어요?”
얼굴이 밝아진 연습생들이 얼른 대답한다.
“정말 재밌게 열심히 했습니다!”
“네. 형이 잘 이끌어주셔서… 저희 다 재밌게 연습했어요.”
류건우는 약간 쑥스러운 얼굴이었으나 부정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은 하하 웃었다.
“그럴 것 같았어요.”
연습생들의 얼굴이 밝아진다.
바로 이 순간이다.
“근데 아이러니하지만… 그게 문제점이기도 하죠?”
“…!”
사장은 류건우를 돌아보았다.
“왜 절박함이 안 보이죠?”
“…!”
“건우야, 이건 건우가 제일 잘하는 게 아닌 것 같은데… 지금 우리 두 번째 무대죠?”
“…예.”
“그러면 지금은 제일 잘하는 걸 열심히 어필하고 보여줘도 모자랄 시간이 아닌가요? 지금 파트도 다 양보했죠.”
사장은 진지하게 눈을 맞추고 말했다.
“일방적으로 동생들한테 맞춰줄 게 아니라, 좀 더 보여주기 위해 욕심을 냈어야죠. 이거 데스매치였어요.”
“…….”
도리어 주변에 서 있던 두 참가자의 눈이 겁과 걱정으로 주눅이 든 것 같았으나, 류건우는 침을 한 번 삼켰을 뿐이다.
그 배짱도 마음에 들었다!
“이 일은 재밌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에요. 간절함이 필요하죠.”
그러니 사자가 자기 새끼를 벼랑에서 떨어뜨리듯이, 그도 한 건 올릴 생각이었다.
“잘했지만, 오늘은 잘하기만 했어요. 이건 학생이 받는 칭찬이에요. 프로가 아니라.”
류건우는 표정 없는 얼굴이었으나, 티 나게 어깨를 움찔 떨었다.
‘그래, 그거지.’
자극을 받아야 한다.
너도, 시청자도!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참으며, 고뇌에 찬 얼굴로 버튼을 눌렀다.
“승자 발표합니다.”
채율.
“축하합니다. 이제 참가자입니다.”
“…! 가, 감사합니다…….”
감사하다고 말하는 것치고는 충격에 빠진 듯 비틀거리고 있다.
“그리고 류건우 씨는 탈락 위기입니다.”
사장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 순간이었다.
‘어?’
바로 지나갔지만, 왠지 류건우가 얼핏 미소를 지은 것 같았다.
‘…허탈함 때문인가?’
그러나 다시 보니 그냥 기분 탓이었던 것 같다. 사장은 어깨를 으쓱한 뒤, 진중하게 마이크를 다시 들었다.
“들어가 보세요. 잘 봤습니다.”
그렇게 평가가 끝났다.
그리고 무대 뒤.
차유진은 눈물을 쏟는 진채율을 적당히 카메라 보기 좋게 달래서 보낸 박문대 형을 발견했다.
카메라는 이미 빠졌다. 그러니 다가가서 툭툭 쳤다.
“형!”
“그래.”
박문대는 별 감흥 없는 얼굴이었다. 얼굴이 변했어도 그 평온한 듯 묘한 표정은 여전했다.
그리고 은근한 친절함까지.
“져서 아쉽냐.”
“아니요.”
차유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무대를 올려다보며, 씩 웃었다.
“…!”
그의 형은 잠시 당황한 것 같았으나, 아마도 곧 상황을 이해한 것 같았다.
‘이 녀석… 일부러 그렇게 했군.’
따위로 말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답이었다!
“그러냐.”
차유진은 일부러 툭툭 어깨를 쳤다. 여느 때처럼 슬금슬금 피한다.
“형은 아쉬워요?”
“아니.”
‘그럴 리가 있나.’
박문대는 작게 웃었다.
“마찬가지지.”
그날 촬영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LeTi 사내 서바이벌 는 드디어 방송을 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