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7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70화
생방송을 앞에 두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상식 백스테이지 현장.
“언니 이거!”
“소현 씨 도착했어요!”
올해도 말랑달콤은 미친 듯이 바빴다. 개인 스케줄 때문에 늦게 도착해 허겁지겁 준비하는 멤버가 일상일 정도였다.
공연 준비 중이던 스텝이 괜히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진짜 다 예뻐.’
피곤해 보였지만 이미 수위에 오른 아이돌 그룹답게 말랑달콤은 특히 관리를 잘 받은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애초에 예쁜 애들을 뽑아놓은 거겠지만.’
이 추측을 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옆에 있었다.
“제대로 하자.”
“예!”
같이 온 연습생 댄서들의 면면도 화려했기 때문이다.
‘레티가 이번 남자 그룹에 사활 걸었다고 그러더만.’
은근히 도는 연예계 가십들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일곱 명쯤으로 보이는 그들은 대부분 누가 봐도 잘난 생김새였다.
‘흠.’
잠깐 손이 빈 틈을 타서, 스텝은 슬쩍 그 면면을 살폈다. 내년 즈음 음악 프로그램에서 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일방적인 관찰과 추측은 재밌으니까!
그러다가, 유독 차분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 쟤는 진짜 레티상이다.’
검은 슬랙스에 셔츠를 입은, 살짝 어두운 인상의 소년. 단정한 인상이었지만 선이 정제된 느낌의 미형이었다.
그리고 다소 차가워 보이는 섬세한 담백함이 있기도 했다.
‘오.’
스텝이 살짝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스탭들을 향해 연습생이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황급히 관찰하지 않은 것처럼 눈을 돌리려던 순간.
‘앗 웃는다.’
연습생이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자연스럽게 웃는 것이, 마치 이런 일은 골백번도 더 해본 것 같은 부드러움이 묻어난다.
부담스럽게 티가 나는 가식이 없다고 해야 할까.
스텝은 얼른 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감탄했다.
‘와… 교육 제대로 받았나 보네.’
아니었다.
류건우, 본래 5년 차 대상 아이돌 테스타였던 현 레티 연습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내 마이크 달라고 할 뻔했네.’
이런 분위기가 워낙 익숙해서 무의식이 편안함을 느껴버린 탓이었다.
게다가 얼굴에 걸친 얇은 안경이 좀 떨떠름해 그쪽이 더 신경 쓰이기도 했다.
‘렌즈를 꼈는데 그 위로 알 없는 가짜 안경…….’
대체 무슨 포인트로 셀링하려는 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연습생 댄서가 아이돌 본인보다 스타일링이 튀어서 무슨 욕을 먹으려고?
‘이때도 이미 그런 짓은 욕 처먹지 않았나.’
더 원색적으로 먹었으면 먹었지, 덜먹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말랑달콤의 의상을 보는 순간 그런 가치 판단은 싹 날아갔다.
‘…무슨 저렇게까지.’
겹겹의 쉬폰과 반짝이는 인공 수정이 난무한다. 영화제 레드 카펫용처럼 보였다.
저걸 입고 춤은 출 수 있을까 싶은 수준이었으나, 어쨌든 류건우는 자신의 의상과 비교해 본 뒤 납득했다.
‘대충 집사나 하인 컨셉 같은 건가 보군.’
오글거리기는 했으나 한참 과한 컨셉이 난무할 시기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존재만 알려지면 그만이다.’
그가 맡은 파트는 인트로의 짧은 춤일 뿐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사내 리허설 때 딱 한 번 맞춰본 소현과 고개를 꾸벅거린 뒤, 그는 다른 연습생들과 발맞춰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서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X나 이쁘네.”
“어어. 야 근데 성격이 좀….”
‘이야.’
덕분에 류건우는 청려의 VTIC 멤버 픽업을 성의껏 납득했다.
괜히 저 라인업 뒷줄에 있던 신오와 주단을 잡아다 넣은 게 아니던 것이다.
‘불발탄 천지네.’
소속사가 눈이 뒤집혀서 얼굴과 끼만 보고 모아둔 건지, 공석에서 할 말 못 할 말 구분은 못 한다.
“음?”
“아니.”
마침 옆에 서 있던 청려는 류건우의 시선을 눈치채고 부연 설명까지 한다.
“아아, 저거. 시험 삼아 데려가 본 적도 있는데… 데뷔 3년 차에 여자친구가 인성 폭로 글을 올려서요.”
“…….”
“하하, 사람 참 안 변하죠?”
류건우는 저놈이 어느 시간 선에서는 시멘트에 묻혀 한강에 던져졌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잡설은 그걸로 끝이었다.
“첫 무대라고 너무 힘주는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요.”
“어. 알아서 한다.”
연습생들은 각자의 사정을 생각하며, 말랑달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
연예인 이야기, 특히 아이돌 이야기만 하는 인터넷의 한 커뮤니티에서는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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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티 차기 남돌 데뷔조 후보 라입업 추가]
아까 골디 말랑달콤 인트로에 나온 애들이 데뷔조라는 게 학계의 정설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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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글은 외곽에 잠깐 잡힌 연습생 댄서들을 GIF 파일과, 기존에 유출된 그들의 셀카 등을 조합해서 설명해 나갔다.
대부분은 이미 기획사의 고인물 팬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사람들이었으나, 뉴페이스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말랑달콤 소현과 짧게 페어를 추고 들어가는 류건우다.
========================
원래 비공개 연습생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데뷔조 합류한 듯?
=======================
올해도 말랑달콤은 소위 말하는 ‘병맛’ 컨셉 무대를 냈지만, 인트로 자체는 휘황찬란한 공주 컨셉을 과할 정도로 잘 구현했었다.
덕분에 무대가 그 분위기에 지배당해 굳이 연습생 댄서들이 실력이나 외모로 화제될 것도 없었으나, 특이점이 있었다.
-와 비공 연생 눈 봐ㅋㅋㅋㅋㅋ
-귀신같이 아이컨택하네
류건우가 무심코 카메라를 너무 정확히 찾아냈기 때문이다.
과하게 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그것까진 짬밥으로 인한 불가항력이었다.
카메라를 외면하는 게 더 어색해 보였을 것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선택.
그러나 효과는 도리어 거기서 터졌다.
-비공 연생 소현이랑 같이 카메라로 얼굴 돌리는 거 뭐임 존잘존예 얼굴 그림체 합 무슨 일
-그러게 재현?이랑 비공 연생만 카메라 딱딱 잡아내네 딱봐도 둘 주축으로 데뷔조 뽑을 듯ㅋㅋㅋ
-어떡하냐 레티의 외거노비 또 심장이 뜀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적절히 자신의 농도를 조절한 청려와 함께, 류건우는 댓글에서 제법 많이 언급되었다.
-레티 레알 소나무네ㅋㅋ
-와 얼굴상 계보가 확실ㅋㅋㅋㅋ
-제발 자비로운 레티 잘알들아 내게 답을 줘 안경 쓴 존잘 어디 출신 누구야 제발 플리즈
└우리도 몰러… 비공연생이야
└사생이나 알 듯
물론 반응은 그걸로 끝이었다.
애초에 댄서로 한번 출연한 것이니 레티에 관심이 깊은 아이돌 팬들이나 살짝 보고 지나가는 수준.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그것도 제법 감회가 새로웠다.
‘이런 모니터링도 오랜만이군.’
류건우는 보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내렸다.
어떻게든 완급 조절한답시고 표정은 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는 그리 튀지 않았다.
그러나, 새롭게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묘하게 첫 무대 공개 날을 생각나도록 만들었다.
“…….”
응원 댓글 몇 개 봤다고 이상하게 기분이 괜찮아지던 그 상태가.
묘한 향수가 밀려왔다.
[♪♪♬♪♩♬♪~]
TV에서는 골드디스크 재방송이 한창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PPT를 만들던 류청우도 고개를 들다가 제법 놀랐다.
“…! 저기 뒷사람이 형이에요?”
“어.”
갑자기 아이돌 연습생이 된다 싶더니, 벌써 스크린 데뷔를 한 것이다.
‘와.’
그러나 이렇게 TV 화면에 나오는 건 처음일 텐데도 지금 그의 친척에게선 큰 설렘이나 긴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흡족?’
그렇다. 그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자신의 첫 무대를 보고 저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저렇게 침착한 사람이니까 어릴 때 형으로 오해까지 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잠시 PPT를 내린 뒤, 류건우가 보고 있는 TV 화면을 같이 보았다.
“아, 저기 또 나오네.”
“그래.”
혹시라도 놀리진 말자고 생각했지만, 그럴 것도 없었다.
간혹 화면에 잡히는 류건우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류청우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형, 괜히 아이돌 하려던 게 아니었구나. 잘한다.”
“뭐.”
그러나 그 형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는 것은 미처 보지 못했다.
* * *
들어왔다!
나는 시상식이 재방송되고서야 드디어 뜬 상태창 팝업을 뜯어보았다.
[명성이 증가하고 있다….]
+Exp 10000
정산된 명성 Exp가 무려 10000.
‘진짜 퍼주는군.’
아무리 초반이라지만 겨우 연습생으로 공개됐다고 이렇게까지? 진짜 게임이었으면 망했을 것이다.
‘알 게 뭐야.’
나는 떨떠름하게 보면서도 기꺼이 명성치를 다 써주기로 했다.
마침 또 뭐가 연달아 뜨기도 했고.
[조건 충족]
: 이 해금되었다!
-> 이동
‘드디어.’
새 기능이 나왔다.
아예 거창하게 이미지 배너 있는 탭까지 만들어놨다. 어두운 그림자 형상이 악수하고 있는 그림이다.
[동료 모집]
인연이 있는 동료를 찾아냅니다.
역시.
에서 따왔다고 할 때부터 짐작했다만 이 형식은 그거다.
‘캐릭터 뽑기.’
누가 동료로 나올지는 랜덤이란 뜻이다.
특성 뽑기 할 때보다 형태만 더 진짜 모바일 게임처럼 된 거지, 사실 내용은 별로 다를 게 없군.
하지만 단어를 봐서는 인연이 있는 놈이 나온다고 하니…….
나는 힐끗, 옆에 앉은 류청우를 쳐다보았다.
“음? 왜?”
“아니.”
박문대인 내 사정을 다 알고 있던 놈이나, 여기서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돌려보자.’
나는 거실에서 일어나서 내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형! 지금 하실 건가요? 화이팅!]
“그래.”
나는 큰달이 떠드는 것을 보며 손가락을 옮겼다.
‘10연속 뽑기… 는 됐고.’
일단 하나만 모집한다.
버튼을 누르자, 핑그르르 화면이 돌아가는 모션과 함께, 검은 우주에서부터 빛나는 별이 날아오다가….
…꺼진다?
[실패!]
“…….”
뭐.
[다시 시도하시겠습니까?]
-Exp 1000 사용
나는 할 말을 잃고 상태창을 보다가, 현실을 깨달았다.
명성치 1000이 그냥 날아갔다.
“…….”
이… X 망할 현질 게임이.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이렇게 한 건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안다.”
생각해 보니, 에… 낮은 확률로 이런 개 같은 꽝도 있었지.
그리고 이 쓰레기 같은 교환비를 책정한 건 BM, 그러니까 게임 수익모델을 이렇게 개발한 게임사 새끼들 탓이다.
T1!
‘…말하고 보니 내 회사군.’
아무렴 어떠냐. 그 자식들이 돈에 미친 새끼들인 건 직접 계약한 내가 보증한다.
‘잠깐.’
그렇게 생각하니 눈이 뜨인다. 나는 당장 상태창을 넘겨 지난 팝업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동료를 모집해 각성해라.]
모집과 각성은 별개.
이거 설마…….
“…이거 모집에 쓰는 경험치와 각성에 쓰는 경험치 따로 책정했네.”
그러니까, 동료를 모집한 후에 따로 각성에도 또 명성치가 든다…….
[으아아악1!]
그렇지.
각성은 레벨업이고 모집은 뽑기니… 일단 뽑아서 레벨업시키는 데엔 당연히 따로 돈이 들지.
당연한… 게임 상식 아닌가.
“……후우.”
나는 심호흡했다.
[혀, 형 괜찮아요??]
“어.”
아주 괜찮다.
아주.
나는 눈을 누른 후에 다시 ‘1회 모집’ 버튼을 툭툭 눌렀다.
그러자 대충 황동색과 은색이 임팩트 없이 검은 우주를 휘몰아치고 지나가며, 사진이 뜬다.
이번엔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 같…….
[★★ 김익제 / 서브보컬]
[★ 이하람 / 서브댄서]
[이대로 맞이하시겠습니까?]
너흰 누구냐.
아니, 감탄사도 필요 없다.
‘모르는 새끼들이 왜 나오냐고.’
뻔하다.
별이 한두 개? 무조건 뽑기 풀 채워놓는 더미 캐릭터다.
나는 침음을 참으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런데 별은 어디서 튀어나왔어.’
127섹션은 별 개념이 없는데 어디서 양산형 뽑기 게임 제도를 가져왔냐고 이 새끼야.
[ㅈ;ㅔ제제가 한 게 아닌,]
“안다.”
시스템이겠지.
내가 뭔가 착각한 것 같다. 이 새끼는 내가 여기에 정착하길 바라는 게 아니었나 보다. 이딴 개짓거리를 해?
…아니면.
‘방해하는 건가?’
각성에 설명문을 추가한 걸 보고 어떻게든 포기하게 만들려고 이 지랄이냐?
‘웃기네.’
도박에 돈 꼬라박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의지력도 필요 없다. 그냥 손가락만 누르면 된다고!
나는 뽑은 동료를 맞이하지 않고 예비용 인벤토리로 보냈다.
그리고 남은 7000 Exp 중 5000 Exp를 들여, 버튼을 5번 연타했다.
다다다다닥!
[어어억!]
기겁하지 마라, 어차피 이만큼은 꼴아 박으려고 했으니까!
그리고 또 성의 없이 빛이 번뜩인다.
[★ 최동호 / 서브래퍼]
[실패!]
[★★ 진윤태 / 비주얼]
[★ 김석원 / 서브댄서]
또 모르는 인명들이 쓱쓱 스쳐 지나간다. 그 와중에 실패까지 하나.
‘X발!’
그러나 마지막.
오로라 빛이 번뜩인다.
[~♪♬♪~]
별 위로 지나가는 음표.
“…!!”
나는 침을 삼켰다.
‘설마.’
이번에야말로 사정을 아는 놈이?
눈이 돌아가게 화려한 빛이 우주를 건너 상태창으로부터 터져 나온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오는 문구는….
[WOW!]
[★★★★★ 차유진 / 센터]
“…….”
[…….]
어…?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70화
생방송을 앞에 두고 정신없이 돌아가는 시상식 백스테이지 현장.
“언니 이거!”
“소현 씨 도착했어요!”
올해도 말랑달콤은 미친 듯이 바빴다. 개인 스케줄 때문에 늦게 도착해 허겁지겁 준비하는 멤버가 일상일 정도였다.
공연 준비 중이던 스텝이 괜히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애들이 진짜 다 예뻐.’
피곤해 보였지만 이미 수위에 오른 아이돌 그룹답게 말랑달콤은 특히 관리를 잘 받은 사람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애초에 예쁜 애들을 뽑아놓은 거겠지만.’
이 추측을 하게 만든 이유 중 하나가 바로 옆에 있었다.
“제대로 하자.”
“예!”
같이 온 연습생 댄서들의 면면도 화려했기 때문이다.
‘레티가 이번 남자 그룹에 사활 걸었다고 그러더만.’
은근히 도는 연예계 가십들을 다 믿을 수는 없지만, 절반 정도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일곱 명쯤으로 보이는 그들은 대부분 누가 봐도 잘난 생김새였다.
‘흠.’
잠깐 손이 빈 틈을 타서, 스텝은 슬쩍 그 면면을 살폈다. 내년 즈음 음악 프로그램에서 볼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이런 일방적인 관찰과 추측은 재밌으니까!
그러다가, 유독 차분한 한 사람을 발견했다.
‘…! 쟤는 진짜 레티상이다.’
검은 슬랙스에 셔츠를 입은, 살짝 어두운 인상의 소년. 단정한 인상이었지만 선이 정제된 느낌의 미형이었다.
그리고 다소 차가워 보이는 섬세한 담백함이 있기도 했다.
‘오.’
스텝이 살짝 감탄하는 순간이었다.
갑자기, 할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스탭들을 향해 연습생이 고개를 돌렸다.
“…!”
그리고 눈이 마주쳤다.
‘아이고.’
황급히 관찰하지 않은 것처럼 눈을 돌리려던 순간.
‘앗 웃는다.’
연습생이 부드럽게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자연스럽게 웃는 것이, 마치 이런 일은 골백번도 더 해본 것 같은 부드러움이 묻어난다.
부담스럽게 티가 나는 가식이 없다고 해야 할까.
스텝은 얼른 같이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내심 감탄했다.
‘와… 교육 제대로 받았나 보네.’
아니었다.
류건우, 본래 5년 차 대상 아이돌 테스타였던 현 레티 연습생은 내심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었다.
‘내 마이크 달라고 할 뻔했네.’
이런 분위기가 워낙 익숙해서 무의식이 편안함을 느껴버린 탓이었다.
게다가 얼굴에 걸친 얇은 안경이 좀 떨떠름해 그쪽이 더 신경 쓰이기도 했다.
‘렌즈를 꼈는데 그 위로 알 없는 가짜 안경…….’
대체 무슨 포인트로 셀링하려는 건지 모를 일이기 때문이다. 연습생 댄서가 아이돌 본인보다 스타일링이 튀어서 무슨 욕을 먹으려고?
‘이때도 이미 그런 짓은 욕 처먹지 않았나.’
더 원색적으로 먹었으면 먹었지, 덜먹진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말랑달콤의 의상을 보는 순간 그런 가치 판단은 싹 날아갔다.
‘…무슨 저렇게까지.’
겹겹의 쉬폰과 반짝이는 인공 수정이 난무한다. 영화제 레드 카펫용처럼 보였다.
저걸 입고 춤은 출 수 있을까 싶은 수준이었으나, 어쨌든 류건우는 자신의 의상과 비교해 본 뒤 납득했다.
‘대충 집사나 하인 컨셉 같은 건가 보군.’
오글거리기는 했으나 한참 과한 컨셉이 난무할 시기였기에 그러려니 했다.
‘존재만 알려지면 그만이다.’
그가 맡은 파트는 인트로의 짧은 춤일 뿐이었다.
“잘 부탁합니다~”
“감사합니다, 선배님.”
사내 리허설 때 딱 한 번 맞춰본 소현과 고개를 꾸벅거린 뒤, 그는 다른 연습생들과 발맞춰 걸음을 옮겼다.
근처에서 한껏 목소리를 낮추고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X나 이쁘네.”
“어어. 야 근데 성격이 좀….”
‘이야.’
덕분에 류건우는 청려의 VTIC 멤버 픽업을 성의껏 납득했다.
괜히 저 라인업 뒷줄에 있던 신오와 주단을 잡아다 넣은 게 아니던 것이다.
‘불발탄 천지네.’
소속사가 눈이 뒤집혀서 얼굴과 끼만 보고 모아둔 건지, 공석에서 할 말 못 할 말 구분은 못 한다.
“음?”
“아니.”
마침 옆에 서 있던 청려는 류건우의 시선을 눈치채고 부연 설명까지 한다.
“아아, 저거. 시험 삼아 데려가 본 적도 있는데… 데뷔 3년 차에 여자친구가 인성 폭로 글을 올려서요.”
“…….”
“하하, 사람 참 안 변하죠?”
류건우는 저놈이 어느 시간 선에서는 시멘트에 묻혀 한강에 던져졌다고 해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어쨌든, 잡설은 그걸로 끝이었다.
“첫 무대라고 너무 힘주는 짓은 안 할 거라고 생각은 하는데요.”
“어. 알아서 한다.”
연습생들은 각자의 사정을 생각하며, 말랑달콤과 함께 무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날 밤.
연예인 이야기, 특히 아이돌 이야기만 하는 인터넷의 한 커뮤니티에서는 글이 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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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까 골디 말랑달콤 인트로에 나온 애들이 데뷔조라는 게 학계의 정설임
=======================
그리고 글은 외곽에 잠깐 잡힌 연습생 댄서들을 GIF 파일과, 기존에 유출된 그들의 셀카 등을 조합해서 설명해 나갔다.
대부분은 이미 기획사의 고인물 팬들 사이에서는 알음알음 소문이 퍼진 사람들이었으나, 뉴페이스가 하나 있었다.
바로 말랑달콤 소현과 짧게 페어를 추고 들어가는 류건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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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비공개 연습생이라고 하는데 이번에 데뷔조 합류한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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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말랑달콤은 소위 말하는 ‘병맛’ 컨셉 무대를 냈지만, 인트로 자체는 휘황찬란한 공주 컨셉을 과할 정도로 잘 구현했었다.
덕분에 무대가 그 분위기에 지배당해 굳이 연습생 댄서들이 실력이나 외모로 화제될 것도 없었으나, 특이점이 있었다.
-와 비공 연생 눈 봐ㅋㅋㅋㅋㅋ
-귀신같이 아이컨택하네
류건우가 무심코 카메라를 너무 정확히 찾아냈기 때문이다.
과하게 굴지 않으려 노력했으나, 그것까진 짬밥으로 인한 불가항력이었다.
카메라를 외면하는 게 더 어색해 보였을 것이라 울며 겨자 먹기로 한 선택.
그러나 효과는 도리어 거기서 터졌다.
-비공 연생 소현이랑 같이 카메라로 얼굴 돌리는 거 뭐임 존잘존예 얼굴 그림체 합 무슨 일
-그러게 재현?이랑 비공 연생만 카메라 딱딱 잡아내네 딱봐도 둘 주축으로 데뷔조 뽑을 듯ㅋㅋㅋ
-어떡하냐 레티의 외거노비 또 심장이 뜀
수십 년간의 경험을 토대로 적절히 자신의 농도를 조절한 청려와 함께, 류건우는 댓글에서 제법 많이 언급되었다.
-레티 레알 소나무네ㅋㅋ
-와 얼굴상 계보가 확실ㅋㅋㅋㅋ
-제발 자비로운 레티 잘알들아 내게 답을 줘 안경 쓴 존잘 어디 출신 누구야 제발 플리즈
└우리도 몰러… 비공연생이야
└사생이나 알 듯
물론 반응은 그걸로 끝이었다.
애초에 댄서로 한번 출연한 것이니 레티에 관심이 깊은 아이돌 팬들이나 살짝 보고 지나가는 수준.
그러나 당사자에게는 그것도 제법 감회가 새로웠다.
‘이런 모니터링도 오랜만이군.’
류건우는 보고 있던 스마트폰 화면을 내렸다.
어떻게든 완급 조절한답시고 표정은 쓰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그는 그리 튀지 않았다.
그러나, 새롭게 알려진다는 것 자체가 묘하게 첫 무대 공개 날을 생각나도록 만들었다.
“…….”
응원 댓글 몇 개 봤다고 이상하게 기분이 괜찮아지던 그 상태가.
묘한 향수가 밀려왔다.
TV에서는 골드디스크 재방송이 한창이다.
아무 생각 없이 거실에서 노트북으로 PPT를 만들던 류청우도 고개를 들다가 제법 놀랐다.
“…! 저기 뒷사람이 형이에요?”
“어.”
갑자기 아이돌 연습생이 된다 싶더니, 벌써 스크린 데뷔를 한 것이다.
‘와.’
그러나 이렇게 TV 화면에 나오는 건 처음일 텐데도 지금 그의 친척에게선 큰 설렘이나 긴장은 보이지 않았다.
대신…….
‘…흡족?’
그렇다. 그쪽에 더 가까워 보였다.
자신의 첫 무대를 보고 저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니.
저렇게 침착한 사람이니까 어릴 때 형으로 오해까지 하지 않았는가.
‘내가 이상한 게 아니라니까.’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잠시 PPT를 내린 뒤, 류건우가 보고 있는 TV 화면을 같이 보았다.
“아, 저기 또 나오네.”
“그래.”
혹시라도 놀리진 말자고 생각했지만, 그럴 것도 없었다.
간혹 화면에 잡히는 류건우는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러워 보였다.
류청우는 순수하게 감탄했다.
“…형, 괜히 아이돌 하려던 게 아니었구나. 잘한다.”
“뭐.”
그러나 그 형이 주먹을 불끈 쥐고 있다는 것은 미처 보지 못했다.
* * *
들어왔다!
나는 시상식이 재방송되고서야 드디어 뜬 상태창 팝업을 뜯어보았다.
+Exp 10000
정산된 명성 Exp가 무려 10000.
‘진짜 퍼주는군.’
아무리 초반이라지만 겨우 연습생으로 공개됐다고 이렇게까지? 진짜 게임이었으면 망했을 것이다.
‘알 게 뭐야.’
나는 떨떠름하게 보면서도 기꺼이 명성치를 다 써주기로 했다.
마침 또 뭐가 연달아 뜨기도 했고.
: 이 해금되었다!
-> 이동
‘드디어.’
새 기능이 나왔다.
아예 거창하게 이미지 배너 있는 탭까지 만들어놨다. 어두운 그림자 형상이 악수하고 있는 그림이다.
인연이 있는 동료를 찾아냅니다.
역시.
에서 따왔다고 할 때부터 짐작했다만 이 형식은 그거다.
‘캐릭터 뽑기.’
누가 동료로 나올지는 랜덤이란 뜻이다.
특성 뽑기 할 때보다 형태만 더 진짜 모바일 게임처럼 된 거지, 사실 내용은 별로 다를 게 없군.
하지만 단어를 봐서는 인연이 있는 놈이 나온다고 하니…….
나는 힐끗, 옆에 앉은 류청우를 쳐다보았다.
“음? 왜?”
“아니.”
박문대인 내 사정을 다 알고 있던 놈이나, 여기서 가까운 사이가 아닐까 하는데 말이다.
‘어쨌든 돌려보자.’
나는 거실에서 일어나서 내 침대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문을 닫았다.
“그래.”
나는 큰달이 떠드는 것을 보며 손가락을 옮겼다.
‘10연속 뽑기… 는 됐고.’
일단 하나만 모집한다.
버튼을 누르자, 핑그르르 화면이 돌아가는 모션과 함께, 검은 우주에서부터 빛나는 별이 날아오다가….
…꺼진다?
“…….”
뭐.
-Exp 1000 사용
나는 할 말을 잃고 상태창을 보다가, 현실을 깨달았다.
명성치 1000이 그냥 날아갔다.
“…….”
이… X 망할 현질 게임이.
“……안다.”
생각해 보니, 에… 낮은 확률로 이런 개 같은 꽝도 있었지.
그리고 이 쓰레기 같은 교환비를 책정한 건 BM, 그러니까 게임 수익모델을 이렇게 개발한 게임사 새끼들 탓이다.
T1!
‘…말하고 보니 내 회사군.’
아무렴 어떠냐. 그 자식들이 돈에 미친 새끼들인 건 직접 계약한 내가 보증한다.
‘잠깐.’
그렇게 생각하니 눈이 뜨인다. 나는 당장 상태창을 넘겨 지난 팝업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찾았다.
모집과 각성은 별개.
이거 설마…….
“…이거 모집에 쓰는 경험치와 각성에 쓰는 경험치 따로 책정했네.”
그러니까, 동료를 모집한 후에 따로 각성에도 또 명성치가 든다…….
그렇지.
각성은 레벨업이고 모집은 뽑기니… 일단 뽑아서 레벨업시키는 데엔 당연히 따로 돈이 들지.
당연한… 게임 상식 아닌가.
“……후우.”
나는 심호흡했다.
“어.”
아주 괜찮다.
아주.
나는 눈을 누른 후에 다시 ‘1회 모집’ 버튼을 툭툭 눌렀다.
그러자 대충 황동색과 은색이 임팩트 없이 검은 우주를 휘몰아치고 지나가며, 사진이 뜬다.
이번엔 정상적으로 작동한 것 같…….
너흰 누구냐.
아니, 감탄사도 필요 없다.
‘모르는 새끼들이 왜 나오냐고.’
뻔하다.
별이 한두 개? 무조건 뽑기 풀 채워놓는 더미 캐릭터다.
나는 침음을 참으며 손으로 얼굴을 덮었다.
‘그런데 별은 어디서 튀어나왔어.’
127섹션은 별 개념이 없는데 어디서 양산형 뽑기 게임 제도를 가져왔냐고 이 새끼야.
“안다.”
시스템이겠지.
내가 뭔가 착각한 것 같다. 이 새끼는 내가 여기에 정착하길 바라는 게 아니었나 보다. 이딴 개짓거리를 해?
…아니면.
‘방해하는 건가?’
각성에 설명문을 추가한 걸 보고 어떻게든 포기하게 만들려고 이 지랄이냐?
‘웃기네.’
도박에 돈 꼬라박는 건 아무나 할 수 있다.
의지력도 필요 없다. 그냥 손가락만 누르면 된다고!
나는 뽑은 동료를 맞이하지 않고 예비용 인벤토리로 보냈다.
그리고 남은 7000 Exp 중 5000 Exp를 들여, 버튼을 5번 연타했다.
다다다다닥!
기겁하지 마라, 어차피 이만큼은 꼴아 박으려고 했으니까!
그리고 또 성의 없이 빛이 번뜩인다.
또 모르는 인명들이 쓱쓱 스쳐 지나간다. 그 와중에 실패까지 하나.
‘X발!’
그러나 마지막.
오로라 빛이 번뜩인다.
별 위로 지나가는 음표.
“…!!”
나는 침을 삼켰다.
‘설마.’
이번에야말로 사정을 아는 놈이?
눈이 돌아가게 화려한 빛이 우주를 건너 상태창으로부터 터져 나온다.
그리고 다음으로 나오는 문구는….
“…….”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