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6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68화
‘…그러니까, 이게.’
나는 20살쯤으로 보이는 청려와 남의 소속사 연습실에서 정신을 차렸다.
미친 상황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벽면을 다 차지한 거대한 전신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친다.
“……!”
“후배님 예전 모습이잖아요. 그렇죠?”
그렇다.
전신거울에 비치는 건 류건우였다. 원래 내 몸이었던 놈.
그러나 공시에 찌든 20대 후반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정도로 보이는, 지금 청려와 또래로 보이는 외관.
나는 침을 삼키고 손을 들었다. 거울 속 어린 류건우가 따라 든다.
‘…류건우.’
그러나 어딘가… 당시의 나와 인상이 좀 다르다.
눈가나, 분위기나 골격 같은 것들이.
“박문대의 외양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섞인 것처럼? 하하, 특이하네.”
소름이 끼친다.
‘아니, X발. 단정하지 마.’
표정 탓일지도 몰랐다.
이때쯤의 나는 입시와 생활 문제로 썩 몰골이 좋지 않았는데, 거울 속 놈은 제법 관리한 것 같은 꼴이었기 때문이다.
‘…….’
왜 관리한 거지?
“이번엔 시작 지점이 달라졌네요. 음, 나이도 다르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청려는 어느새 본인의 스마트폰을 찾아서 날짜와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내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구형 스마트폰이 잡힌다.
“나이가 다르다고.”
“그래요. 원래 재시작은 항상 18살이었거든요. 그런데 20살에 날짜는 몇 년 후라… 흠, 안 맞는데. 누가 같이 재시작해서 그런 건가?”
나는 내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화면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201X / 01 / 08]
“…!”
확실히, 날짜가 이상했다.
지금 내가 20살쯤이라면 지금보다 몇 년 더 전이어야 하는데.
애초에 류건우는 청려보다 나이가 많아야 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이대가 비슷해 보인다.
‘이것도 저것도 말이 안 돼.’
그제야 머리가 맑아진다. 경로가 명확하다.
‘백일몽’이랑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이건 꿈이다.”
“네?”
“확신할 수는 없다만, 비슷한 일을 경험해서.”
나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서 겪었던 백일몽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청려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들었다.
“…그리고 넌 나이대와 연도가 안 맞지. 나 역시 생김새도, 정신을 차린 장소도 안 맞아.”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건 과거가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 꿈속인 것 같은데.”
“아.”
청려가 실실 웃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니라?”
“…….”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면 지금 상황에 그것보다 괜찮은 추측이 있냐.”
“과거로 돌아오는 초현실적인 상황이 이미 일어났는데, 다른 요소가 모순적이니 꿈이라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자의적인 판단 아닌가.”
“…….”
“당연히 현실이라 생각하고 움직여야죠 후배님. 아니, 음… 건우 형이라고 불러줘요?”
“그만.”
이 새끼야말로 너무 앞서나가는군.
그러나 나는 심호흡 후, 침착함을 되찾았다.
틀린 말은 없었으니까.
“일단… 네 말이 맞아. 현실적으로 대응해야겠지.”
“네.”
믿고 싶은 대로 상황을 보는 건 멍청한 짓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행동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새끼… 눈이 맛이 갔는데.’
본인이 자진해서 따라붙어서 이 꼴이 난 것이긴 했으나, 아무튼 이 미친 짓에 휘말려서… 도로 재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됐으니.
들뜬 건지 누굴 죽이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면상이다.
‘정신 차려야겠군.’
무슨 돌발행동이 나올지 모른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원인 파악.
‘어디서 오류가 난 거지.’
당시 비행기에서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우리 주변에 에러가 난 상태창이 폭주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뜨고, 저놈은….
-음… 이건 보이네.
“…!”
청려도 상태창을 보았다!
머리를 후려갈기는 것 같은 직감이 온다.
‘설마.’
이 새끼… 설마 시스템이 이놈에게 들어가서 비활성화된 상태이상이 다시 작동한 건가.
이놈의 상태이상.
무한히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가기.
[교정 (비활성화)]
: 다시 해보자
-실패 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미 선아현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비활성화 상태인 상태이상은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시스템이 직접 들어간 게 아니라도, 일종의 촉매가 됐다면.’
나는 즉시 청려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태창.’
아니,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창은 뜨지 않았다.
치치칙!
대신 이상한 글리치 같은 것이 튀더니, 사라졌다.
의미 하나는 확실했다.
‘…큰달이.’
그놈이, 상태창으로 나타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지.
나는 주먹을 쥐었다.
‘X발.’
제대로 망한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망한 건지가 오리무중이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저, 형님들.”
“…!”
어느새 열린 연습실 문에서 웬 껑충한 놈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아는 얼굴이었다.
“아, 음, 안녕하십니까…!”
VTIC의 멤버, 신오다.
물론 현실에서보다 나이는 한참 어려 보였다. 놈은 좀 긴장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실장님이 부르셨는데, 아직 집합 안 하셔서 절 보내셨는데요….”
“그래? 잠시만.”
청려는 부드럽게 놈의 말을 받더니, 내게 말했다.
“갈까요?”
“…예.”
일단 상황을 따라간다.
나와 청려는 신오를 따라 이동했다.
낯선 소속사의 복도를 걸어서.
도착한 곳은 사무실이었다.
그리고 일수꾼처럼 생긴 실장이란 놈이 어린놈들을 잔뜩 불러 모아 빽빽이 세워뒀다.
아마 다 연습생이겠지.
‘20명 정도인가.’
이 회사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히 전체 인원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너희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어서 지금 격려 차 부른 거야. 알았어?”
“예!”
불려온 놈 중에 익숙한 얼굴도 몇 보인다. 몇 년 후에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하는 얼굴 몇.
그리고 내가 아는 VTIC 멤버 얼굴도 보인다.
‘일단 우릴 불러온 놈, 신오. 그 옆은… 저건 주단인가.’
둘 다 아무리 봐도 데뷔조가 아닌 듯 줄 한참 뒤에 서 있다.
뻔하다.
‘청려가 솎아냈군.’
이 자리에 없는 채율은 심지어 따로 픽업이라도 해온 모양이다.
나는 새삼 내 옆의 놈이 다양한 시도로 현실을 조합해본 경험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와중에 실장은 한 놈, 한 놈 떠보듯이 골라서 격려와 질문을 하는 중이다.
“신재현, 네가 애들 잘 챙기고.”
“예.”
신재현, 아직 청려라는 예명을 받지 못한 놈은 아무렇지 않게 평이한 얼굴로 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은 대체 이 순간을 몇 번이나 겪었는가.
그때였다.
“그리고 류건우.”
“…! 예.”
왜 갑자기 날 부르냐.
실장이라는 놈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입을 놀린다.
“건우도 나이 괜찮은 데다 학벌도 좋으니 메리트가 있어. 쓸데없는 걱정 말고 연습 더 열심히 해.”
“……예.”
류건우가 LeTi에서 데뷔 조언이나 듣다니 별 헛소리 같은 상황을 다 만나는군.
‘흠.’
나는 주변 놈들의 태도와 표정, 그리고 내가 선 위치를 확인했다.
억지로 웃는 놈들, 청려 옆 1열.
그리고 실장의 말까지 조합하면….
‘내가 1군이군.’
여기의 내가 LeTi의 연습생이라도 되나 보다. 그것도 데뷔조.
아무튼, 실장이라는 작자는 적당히 간 보는 것 같은 말을 몇 마디 더 하고는 연습생들을 해산시켰다.
“재현 형, 남아서 연습하세요?”
“음, 보고.”
“넵.”
나는 데뷔조 연습생들이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눈을 찌푸렸다.
‘실장이 뭘 탐색하는 것 같은 기색이었는데.’
일단 우선순위는 이 회사 실장따리의 음모는 아니니 제쳐 두자.
‘당장 이 꿈에서 나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현실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대체 무슨 개판이 난 건지 알 수가 없다.
‘힌트부터.’
나는 이곳에서의 내 위치를 확인하기로 했다.
‘이건 무조건 스마트폰부터다.’
개인정보 덩어리니까.
나는 복도를 걸으며, 구형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화면을 조작….
“…….”
잠금 패턴을 모르네 X발.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다 막혔다. 그리고 무슨 대단한 걸 해놓은 건진 모르겠다만… 그럼 우회하면 그만이다.
“신재현.”
“음?”
“스마트폰으로 류건우랑 대화한 내역 있냐.”
아까 같이 연습하고 뻗은 것 같은 상황을 생각하면 안면은 있다는 거겠지.
“있었죠. 여기.”
역시.
나는 청려가 순순히 내미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LeTi 16기 신재현 : 형 이사 가신 곳 주소 좀 알려줘요 ^^]
[알아서 뭐 하게]
…그런데 이러고선 굳이 그 밑에 왜 주소를 적어놓은 답장을 보내고 지랄이냐.
‘미쳤나.’
청려가 쪼개는 소리가 들린다.
“음, 우리 친했었나 봐요. 편리한 구조네요.”
“…….”
“아, 잠금 패턴을 몰라서 물어봤구나. 마름모예요. 지금쯤 회사에서 관리상 데뷔조 스마트폰 패턴을 통일할 때라.”
프라이버시라곤 없는 미친 새끼들과 일하게 됐다는 뜻이군.
아주 잘 돌아간다. 개판이었다.
* * *
“후.”
밤 11시.
나는 청려의 메시지에 찍힌 대로 류건우의 자취방이라는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휴대폰 잠금은 어떻냐고? 놀랍게도 회사용이라는 마름모 패턴도 실패해서 혹시 몰라 그냥 둔 상태다.
-그래요? 류건우 씨는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나 보네요.
‘망할.’
추리는 거기까지였다.
내일이라도 서비스센터 가져가서 풀어야겠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발을 옮겼다.
청려도 본인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우선 합의했다.
-각자 상황 파악한 뒤에 다시 이야기하지.
-그래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리고 도착한 내 자취방 건물이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는 점이다.
‘오피스텔이잖아.’
무슨 돈으로 이걸 했냐.
겉으로만 봐도 제법 큼직하게 평형이 빠졌을 것 같은 건물을 떨떠름히 보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이것만 봐도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
띠리리릭-
그리고 다행히, 스마트폰에 붙은 카드키 스티커로 건물 현관이 통과되었다.
여차하면 회사 연습실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 집 대문도 되겠지.’
나는 호수를 찾아 올라가서 마찬가지로 문 잠금도 해제한 뒤, 손을 뻗어 문고리를 당겼다.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그러나 분명 아무도 없을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형 왔어?”
“…!”
“오늘 연습 오래 했구나.”
편안한 복장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은….
류청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20살쯤으로 보이는.
‘이게 뭐야.’
“형?”
이곳의 류건우는… 친척인 류청우와 같이 자취하고 있던 것이다.
“형 혹시 이 교양 들어봤어요?”
“…교수가 학점을 잘 안 준다는데.”
“음, 그렇구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20살짜리 류청우가 보여주는 3학점짜리 교양을 반사적으로 평가하며, 눈을 굴렸다.
그리고 보았다.
거실 장에는 대학 입학식에서 쓸데없이 주는… 곰 인형이 진열되어 있다.
그것도 두 점이.
‘미치겠군.’
완전히 확정이다.
이곳의 류청우는 나와 같은 대학에 입학한 게 분명했다.
심지어 저 곰 인형 두 개는 생긴 게 똑같다.
‘같은 연도에 입학했다는 뜻인데.’
근데 왜 저놈은 날 형이라고 부르는 거지. 내가 굳이 현역 때와 같은 대학 가려고 재수했을 리는 없는데.
“…….”
자연스럽게 타박하듯이 물어보자.
“너 동갑이면서 왜 계속 존댓말을 쓰고 있냐.”
최악의 경우라도 술 마셨다고 변명할 수 있다.
“아, 음, 어릴 때 형인 줄 알았다니까… 이미 입에 붙었어. 정말 안 불편하니까 걱정 마.”
류청우는 약간 멋쩍게 웃는다. 그러냐? 설정이 쓸데없이 참 세심도 하군.
나는 침음을 참으며 반사적으로 타당한 의문을 떠올렸다.
‘…양궁은?’
저 나이면 분명 아직 양궁을 하고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지금 대학에 입학한 것도 이상했다.
그러나 자취까지 같이하는 친척이 그것까지 물어보는 수상쩍은 짓거리를 하려던 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푸르고 투명한 선을.
“…….”
처음엔 환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비집고 올라오듯… 허공에 선이 길게 그려지고, 마침내 사각형이 된다.
그리고 선 사이에 생긴 면에서 뜨는 글자.
[$@&!5 형!]
상태창. 큰달.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당장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쿵.
‘너 어떤 상태야.’
[저도 잘모르겠어요 먹히는것 같았는데 피했어요 지금은괜 찮아요]
비좁은 틈을 간신히 비집고 나오듯 드문드문 문자가 튀어나온다.
괜찮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자는 멈추지 않는다.
[그리고 상태창 #$@^ 있어요]
지직거리며 팝업이 뜬다.
익숙한 문구.
[Enjoy your]
그렇지.
백일몽에서 봤던 그 단어들로 시작하는 문장이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섣부른 감정이었다.
문장의 끝이 달랐기 때문이다.
[Enjoy your reality :D]
…….
dream이 아니라, reality.
‘현실.’
찬물을 처맞은 것처럼 뇌가 식었다.
팝업이 다시 흔들렸다.
[제가 적은 게 아니에요 형 이게 어떻게든 해볼게요 일단 재부팅!@^]
뭐?
“잠깐, 너 위험…….”
할 수도 있으니 일단 기다려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상태창은 사라졌다.
‘망할!’
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말을 안 처 듣는단 말인가. 나는 초조하게 욕실 벽을 주먹으로 갈겼다.
그때였다.
네온사인처럼 불빛이 터진다.
[START / 등록 완료!]
플레이어 : 류건우 (박문대)
눈앞이 밝아지듯, 홀로그램에 프리즘과 빛이 들어온다.
폭죽처럼 광택이 번쩍이며, 새로운 창이 생성된다.
[퀘스트가 도착했습니다!]
각성 가능한 동료 : ?
필요한 명성치 : 1000 Exp
큰달의 팝업창에 작은 글씨가 솟아난다.
[이거…]
새로운, 게임시스템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68화
‘…그러니까, 이게.’
나는 20살쯤으로 보이는 청려와 남의 소속사 연습실에서 정신을 차렸다.
미친 상황이었다.
고개를 돌렸다. 그제야 벽면을 다 차지한 거대한 전신거울 속 나와 눈이 마주친다.
“……!”
“후배님 예전 모습이잖아요. 그렇죠?”
그렇다.
전신거울에 비치는 건 류건우였다. 원래 내 몸이었던 놈.
그러나 공시에 찌든 20대 후반은 아니다.
고등학교를 막 졸업했을 정도로 보이는, 지금 청려와 또래로 보이는 외관.
나는 침을 삼키고 손을 들었다. 거울 속 어린 류건우가 따라 든다.
‘…류건우.’
그러나 어딘가… 당시의 나와 인상이 좀 다르다.
눈가나, 분위기나 골격 같은 것들이.
“박문대의 외양이 남아 있는 것 같기도 하네요. 섞인 것처럼? 하하, 특이하네.”
소름이 끼친다.
‘아니, X발. 단정하지 마.’
표정 탓일지도 몰랐다.
이때쯤의 나는 입시와 생활 문제로 썩 몰골이 좋지 않았는데, 거울 속 놈은 제법 관리한 것 같은 꼴이었기 때문이다.
‘…….’
왜 관리한 거지?
“이번엔 시작 지점이 달라졌네요. 음, 나이도 다르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청려는 어느새 본인의 스마트폰을 찾아서 날짜와 상황을 확인하고 있다.
내 트레이닝복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구형 스마트폰이 잡힌다.
“나이가 다르다고.”
“그래요. 원래 재시작은 항상 18살이었거든요. 그런데 20살에 날짜는 몇 년 후라… 흠, 안 맞는데. 누가 같이 재시작해서 그런 건가?”
나는 내 주머니의 스마트폰을 꺼내, 잠금화면으로 날짜를 확인했다.
“…!”
확실히, 날짜가 이상했다.
지금 내가 20살쯤이라면 지금보다 몇 년 더 전이어야 하는데.
애초에 류건우는 청려보다 나이가 많아야 하는데, 지금은 거의 나이대가 비슷해 보인다.
‘이것도 저것도 말이 안 돼.’
그제야 머리가 맑아진다. 경로가 명확하다.
‘백일몽’이랑 다를 게 없지 않은가.
“이건 꿈이다.”
“네?”
“확신할 수는 없다만, 비슷한 일을 경험해서.”
나는 교통사고로 혼수상태에서 겪었던 백일몽에 대해서 간단히 설명했다. 청려는 별 표정 변화 없이 들었다.
“…그리고 넌 나이대와 연도가 안 맞지. 나 역시 생김새도, 정신을 차린 장소도 안 맞아.”
나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니까 이건 과거가 아니라, 앞뒤가 안 맞는 꿈속인 것 같은데.”
“아.”
청려가 실실 웃었다.
“그렇게 믿고 싶은 게 아니라?”
“…….”
나는 손을 움켜쥐었다.
“그러면 지금 상황에 그것보다 괜찮은 추측이 있냐.”
“과거로 돌아오는 초현실적인 상황이 이미 일어났는데, 다른 요소가 모순적이니 꿈이라고 생각해요? 지나치게 자의적인 판단 아닌가.”
“…….”
“당연히 현실이라 생각하고 움직여야죠 후배님. 아니, 음… 건우 형이라고 불러줘요?”
“그만.”
이 새끼야말로 너무 앞서나가는군.
그러나 나는 심호흡 후, 침착함을 되찾았다.
틀린 말은 없었으니까.
“일단… 네 말이 맞아. 현실적으로 대응해야겠지.”
“네.”
믿고 싶은 대로 상황을 보는 건 멍청한 짓이다. 최악의 상황을 가정하고 행동하는 게 합리적이다.
그리고 하나 더.
‘이 새끼… 눈이 맛이 갔는데.’
본인이 자진해서 따라붙어서 이 꼴이 난 것이긴 했으나, 아무튼 이 미친 짓에 휘말려서… 도로 재시작한 것처럼 보이는 상태가 됐으니.
들뜬 건지 누굴 죽이고 싶은 건지 모르겠는 면상이다.
‘정신 차려야겠군.’
무슨 돌발행동이 나올지 모른다.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원인 파악.
‘어디서 오류가 난 거지.’
당시 비행기에서의 상황을 되짚어보자.
우리 주변에 에러가 난 상태창이 폭주하는 것처럼 미친 듯이 뜨고, 저놈은….
-음… 이건 보이네.
“…!”
청려도 상태창을 보았다!
머리를 후려갈기는 것 같은 직감이 온다.
‘설마.’
이 새끼… 설마 시스템이 이놈에게 들어가서 비활성화된 상태이상이 다시 작동한 건가.
이놈의 상태이상.
무한히 스타트 지점으로 돌아가기.
: 다시 해보자
-실패 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미 선아현의 사례에서 확인했듯이, 비활성화 상태인 상태이상은 다시 활성화될 가능성이 있다.
‘시스템이 직접 들어간 게 아니라도, 일종의 촉매가 됐다면.’
나는 즉시 청려의 상태를 확인했다.
‘상태창.’
아니, 확인하려 했다.
그러나… 창은 뜨지 않았다.
치치칙!
대신 이상한 글리치 같은 것이 튀더니, 사라졌다.
의미 하나는 확실했다.
‘…큰달이.’
그놈이, 상태창으로 나타날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지.
나는 주먹을 쥐었다.
‘X발.’
제대로 망한 것 같은데, 어디서부터 망한 건지가 오리무중이다.
그때였다.
등 뒤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린다.
“저, 형님들.”
“…!”
어느새 열린 연습실 문에서 웬 껑충한 놈이 고개를 들이밀고 있다.
아는 얼굴이었다.
“아, 음, 안녕하십니까…!”
VTIC의 멤버, 신오다.
물론 현실에서보다 나이는 한참 어려 보였다. 놈은 좀 긴장한 얼굴로 다시 입을 열었다.
“실장님이 부르셨는데, 아직 집합 안 하셔서 절 보내셨는데요….”
“그래? 잠시만.”
청려는 부드럽게 놈의 말을 받더니, 내게 말했다.
“갈까요?”
“…예.”
일단 상황을 따라간다.
나와 청려는 신오를 따라 이동했다.
낯선 소속사의 복도를 걸어서.
도착한 곳은 사무실이었다.
그리고 일수꾼처럼 생긴 실장이란 놈이 어린놈들을 잔뜩 불러 모아 빽빽이 세워뒀다.
아마 다 연습생이겠지.
‘20명 정도인가.’
이 회사 규모를 생각하면 당연히 전체 인원은 아닌 것 같았다.
“내가 너희 특별히 눈여겨보고 있어서 지금 격려 차 부른 거야. 알았어?”
“예!”
불려온 놈 중에 익숙한 얼굴도 몇 보인다. 몇 년 후에 중소 기획사에서 데뷔하는 얼굴 몇.
그리고 내가 아는 VTIC 멤버 얼굴도 보인다.
‘일단 우릴 불러온 놈, 신오. 그 옆은… 저건 주단인가.’
둘 다 아무리 봐도 데뷔조가 아닌 듯 줄 한참 뒤에 서 있다.
뻔하다.
‘청려가 솎아냈군.’
이 자리에 없는 채율은 심지어 따로 픽업이라도 해온 모양이다.
나는 새삼 내 옆의 놈이 다양한 시도로 현실을 조합해본 경험자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 와중에 실장은 한 놈, 한 놈 떠보듯이 골라서 격려와 질문을 하는 중이다.
“신재현, 네가 애들 잘 챙기고.”
“예.”
신재현, 아직 청려라는 예명을 받지 못한 놈은 아무렇지 않게 평이한 얼굴로 실장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놈은 대체 이 순간을 몇 번이나 겪었는가.
그때였다.
“그리고 류건우.”
“…! 예.”
왜 갑자기 날 부르냐.
실장이라는 놈은 손가락을 까닥거리며 입을 놀린다.
“건우도 나이 괜찮은 데다 학벌도 좋으니 메리트가 있어. 쓸데없는 걱정 말고 연습 더 열심히 해.”
“……예.”
류건우가 LeTi에서 데뷔 조언이나 듣다니 별 헛소리 같은 상황을 다 만나는군.
‘흠.’
나는 주변 놈들의 태도와 표정, 그리고 내가 선 위치를 확인했다.
억지로 웃는 놈들, 청려 옆 1열.
그리고 실장의 말까지 조합하면….
‘내가 1군이군.’
여기의 내가 LeTi의 연습생이라도 되나 보다. 그것도 데뷔조.
아무튼, 실장이라는 작자는 적당히 간 보는 것 같은 말을 몇 마디 더 하고는 연습생들을 해산시켰다.
“재현 형, 남아서 연습하세요?”
“음, 보고.”
“넵.”
나는 데뷔조 연습생들이 복도 너머로 사라지는 것을 확인한 뒤, 눈을 찌푸렸다.
‘실장이 뭘 탐색하는 것 같은 기색이었는데.’
일단 우선순위는 이 회사 실장따리의 음모는 아니니 제쳐 두자.
‘당장 이 꿈에서 나가야 한다.’
최대한 빨리.
현실에서 시간이 어떻게 흐르는지, 대체 무슨 개판이 난 건지 알 수가 없다.
‘힌트부터.’
나는 이곳에서의 내 위치를 확인하기로 했다.
‘이건 무조건 스마트폰부터다.’
개인정보 덩어리니까.
나는 복도를 걸으며, 구형 스마트폰을 꺼내 들어 화면을 조작….
“…….”
잠금 패턴을 모르네 X발.
몇 번 시도해 봤지만 다 막혔다. 그리고 무슨 대단한 걸 해놓은 건진 모르겠다만… 그럼 우회하면 그만이다.
“신재현.”
“음?”
“스마트폰으로 류건우랑 대화한 내역 있냐.”
아까 같이 연습하고 뻗은 것 같은 상황을 생각하면 안면은 있다는 거겠지.
“있었죠. 여기.”
역시.
나는 청려가 순순히 내미는 스마트폰 화면을 보았다.
…그런데 이러고선 굳이 그 밑에 왜 주소를 적어놓은 답장을 보내고 지랄이냐.
‘미쳤나.’
청려가 쪼개는 소리가 들린다.
“음, 우리 친했었나 봐요. 편리한 구조네요.”
“…….”
“아, 잠금 패턴을 몰라서 물어봤구나. 마름모예요. 지금쯤 회사에서 관리상 데뷔조 스마트폰 패턴을 통일할 때라.”
프라이버시라곤 없는 미친 새끼들과 일하게 됐다는 뜻이군.
아주 잘 돌아간다. 개판이었다.
* * *
“후.”
밤 11시.
나는 청려의 메시지에 찍힌 대로 류건우의 자취방이라는 곳으로 이동하는 중이다.
휴대폰 잠금은 어떻냐고? 놀랍게도 회사용이라는 마름모 패턴도 실패해서 혹시 몰라 그냥 둔 상태다.
-그래요? 류건우 씨는 회사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됐나 보네요.
‘망할.’
추리는 거기까지였다.
내일이라도 서비스센터 가져가서 풀어야겠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발을 옮겼다.
청려도 본인 집으로 돌아가는 것으로 우선 합의했다.
-각자 상황 파악한 뒤에 다시 이야기하지.
-그래요.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문제는… 그리고 도착한 내 자취방 건물이 생각보다 좋아 보인다는 점이다.
‘오피스텔이잖아.’
무슨 돈으로 이걸 했냐.
겉으로만 봐도 제법 큼직하게 평형이 빠졌을 것 같은 건물을 떨떠름히 보며, 나는 걸음을 옮겼다.
이것만 봐도 현실이 아니라 꿈이었다.
띠리리릭-
그리고 다행히, 스마트폰에 붙은 카드키 스티커로 건물 현관이 통과되었다.
여차하면 회사 연습실로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럼 집 대문도 되겠지.’
나는 호수를 찾아 올라가서 마찬가지로 문 잠금도 해제한 뒤, 손을 뻗어 문고리를 당겼다.
부드럽게 문이 열린다.
그러나 분명 아무도 없을 집에는… 불이 켜져 있었다.
그리고 목소리가 들렸다.
“형 왔어?”
“…!”
“오늘 연습 오래 했구나.”
편안한 복장으로,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은….
류청우였다.
나와 마찬가지로, 20살쯤으로 보이는.
‘이게 뭐야.’
“형?”
이곳의 류건우는… 친척인 류청우와 같이 자취하고 있던 것이다.
“형 혹시 이 교양 들어봤어요?”
“…교수가 학점을 잘 안 준다는데.”
“음, 그렇구나.”
내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나는 20살짜리 류청우가 보여주는 3학점짜리 교양을 반사적으로 평가하며, 눈을 굴렸다.
그리고 보았다.
거실 장에는 대학 입학식에서 쓸데없이 주는… 곰 인형이 진열되어 있다.
그것도 두 점이.
‘미치겠군.’
완전히 확정이다.
이곳의 류청우는 나와 같은 대학에 입학한 게 분명했다.
심지어 저 곰 인형 두 개는 생긴 게 똑같다.
‘같은 연도에 입학했다는 뜻인데.’
근데 왜 저놈은 날 형이라고 부르는 거지. 내가 굳이 현역 때와 같은 대학 가려고 재수했을 리는 없는데.
“…….”
자연스럽게 타박하듯이 물어보자.
“너 동갑이면서 왜 계속 존댓말을 쓰고 있냐.”
최악의 경우라도 술 마셨다고 변명할 수 있다.
“아, 음, 어릴 때 형인 줄 알았다니까… 이미 입에 붙었어. 정말 안 불편하니까 걱정 마.”
류청우는 약간 멋쩍게 웃는다. 그러냐? 설정이 쓸데없이 참 세심도 하군.
나는 침음을 참으며 반사적으로 타당한 의문을 떠올렸다.
‘…양궁은?’
저 나이면 분명 아직 양궁을 하고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지금 대학에 입학한 것도 이상했다.
그러나 자취까지 같이하는 친척이 그것까지 물어보는 수상쩍은 짓거리를 하려던 순간, 나는 보았다.
갑자기 나타난 푸르고 투명한 선을.
“…….”
처음엔 환각인 줄 알았다.
그러나 비집고 올라오듯… 허공에 선이 길게 그려지고, 마침내 사각형이 된다.
그리고 선 사이에 생긴 면에서 뜨는 글자.
상태창. 큰달.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당장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았다.
쿵.
‘너 어떤 상태야.’
비좁은 틈을 간신히 비집고 나오듯 드문드문 문자가 튀어나온다.
괜찮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문자는 멈추지 않는다.
지직거리며 팝업이 뜬다.
익숙한 문구.
그렇지.
백일몽에서 봤던 그 단어들로 시작하는 문장이다. 나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섣부른 감정이었다.
문장의 끝이 달랐기 때문이다.
…….
dream이 아니라, reality.
‘현실.’
찬물을 처맞은 것처럼 뇌가 식었다.
팝업이 다시 흔들렸다.
뭐?
“잠깐, 너 위험…….”
할 수도 있으니 일단 기다려보라는 말을 하기도 전에, 상태창은 사라졌다.
‘망할!’
이 새끼들은 왜 이렇게 말을 안 처 듣는단 말인가. 나는 초조하게 욕실 벽을 주먹으로 갈겼다.
그때였다.
네온사인처럼 불빛이 터진다.
플레이어 : 류건우 (박문대)
눈앞이 밝아지듯, 홀로그램에 프리즘과 빛이 들어온다.
폭죽처럼 광택이 번쩍이며, 새로운 창이 생성된다.
각성 가능한 동료 : ?
필요한 명성치 : 1000 Exp
큰달의 팝업창에 작은 글씨가 솟아난다.
새로운, 게임시스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