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6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60화
당근 코인을 모조리 털렸다는 게 밝혀진 후 1시간 경과.
“그아아악.”
안락한 숙소 안은 정신적 난장판이다.
해당 쪽지를 뽑은 장본인인 김래빈은 식은땀으로 샤워한 것 같은 꼴로 구석에 박혀 있다.
“당근이… 당근이,”
충격이 큰 모양이다.
“그러니까….”
류청우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 돈 한 푼 없는 상태라는 거구나.”
둥!
편집을 거쳤다면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을 것이다. 이놈들 정말 현실적으로 충격받았네.
나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말했다.
“한마디로 거지죠.”
“거, 거지….”
“아니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곤 개 한 마리뿐이다.
망연자실한 놈들을 주위로 털 뭉치가 힘내라는 듯이 펄쩍 뛴다.
뫄아앙! 꺙!
멤버들의 안색이 좀 밝아진다.
“그래, 우리 뭉게뭉게는 안 훔쳐 가서 다행이야. 그치?”
“으, 으응!”
“…아직 새끼기도 하고. 그럴 위험이 있긴 했는데 다행이지. 다치지도 않았잖아.”
진심인가.
아니, 막말로 예능 돈 좀 사라졌다고 이럴 일인가 싶다만, 지난 이틀간 있는 대로 사람을 이완시켜 놓은 부작용….
“…!”
아니, 부작용이 아니군.
‘당했다.’
이 새끼들 이걸 다 계획하고 그렇게 잘해줬던 거였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충격받은 모습을 제대로 뽑아내기 위해서….
‘기가 막히게 해놨네.’
-어어? 어쩌죠? 하필 이걸 뽑으셔서~ 다른 쪽지는 그 내용이 아니었을 텐데.
-그럼 보여주세요, 확인 좀 하게!
-어어~ 그러시면 안 되죠! 다음에도 써야 해요 저희!
-으아악! 진짜!
‘그놈 분명 둘 다 코인 털리는 내용으로 쪽지 준비했을 거야.’
나는 뻔뻔하게 지껄이던 PD 놈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욕을 참았다.
힐링이라며 개X끼야!
아니… 침착하자. 프로그램적으로는 이제 한참 재밌을 구간이다. 힐링… 그래, 힐링 분량은 이틀 했으면 차고 넘치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그렇게 생각한다. 빡치지 말아라, 여기서 빡치면 지는 거다.
그 와중에 선아현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결심한 듯이 손을 들었다.
“그래, 아현아.”
“시, 실이 있으니까… 제가, 뭐라도 만들어서, 그… 사실 분 있을지 알아볼까요…?”
“우와.”
“음, 손재주 있는 사람은 이런 발상도 가능하구나.”
괜찮은 발상이었다. 1군 아이돌이 모여앉아서 인형 눈깔 붙이는 수공업하는 모습도 절박하다면 색다르고 웃길 것이다.
다만 이런 건 제작진의 의도가 중요하다.
“…그, 네가 대단한 건 맞는데… 그것보단 범인 잡아내는 쪽이 최우선 아니야? 제작진도 그렇게 말했고.”
그래, 그쪽이 이 프로그램이 선호하는 방향이겠지.
-대체 누가요?? 누가 훔쳤다고요?
-네! 이 정체불명의 밤손님은 현재 이 마을 내에 거주 중인 누군가입니다!
배세진이 침을 삼켰다.
“대놓고 잡으라는 거잖아.”
“으음.”
멤버들은 고민에 잠겼다. 잠시 후, 김래빈이 허옇게 뜬 얼굴로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해코지라도 당하면….”
“아, 그건 안 되지.”
“네, 네. 위험, 할 수도 있고….”
아니, 과몰입이다. 이게 장르 예능도 아니고 웃기는 걸 지상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는 제작진 놈들이 그럴 리가.
큰세진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위험할 수도 있어.”
너는 너무 신났다. 드디어 고난과 역경이 닥쳐서 분량을 뽑을 수 있다, 이거냐.
류청우가 중재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것부터 부족하니… 우선은 일 도와드리고 코인을 버는 거로 할까.”
“예!”
“그러면서 누가 도둑일지 좀 살펴보자. 분명 힌트가 있을 거야.”
“좋은…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그 정도는 좋다. 몰입한 느낌도 나고, 전날 하하 호호 봉사 활동하던 그림이랑 비교하면 정말… 웃기겠군.
“…….”
아니, 열받지 말라니까.
어쨌든, 우리는 그 길로 카메라를 달고 주민들을 찾아 떠났다.
“아버님~ 저희 혹시 어제 하던 마당 청소 계속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코인 조금 주시면 진짜~ 잘해드릴게요!”
“어어? 괜찮혀.”
그러나 놀라울 만큼 사람들이 일감을 주지 않는다.
“…?”
“지금 우리 몇 집 거절당했죠?”
“다섯 집.”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상황.
심지어 여섯 번째 집의 할머니는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 코인? 그거는 이제 나도 없서라. 야들 그냥 그 밥이라두 한 술 들고 가면 안 되는가?”
제작진은 해맑게 대신 대답했다.
“안 됩니다~”
“아니 왜 대신 대답하세요?!”
“룰이에요 룰! 보수 체계 다 아시는 분들이 왜 이러세요!”
‘이 자식들이 진짜.’
제작진이 부르짖던 시골의 정은 하루아침에 급사한 모양이다.
이쯤 되니 성인군자도 빡 돌 판인지, 류청우도 헛웃음을 지으며 되묻는다.
“그럼 저희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만일을 위해 저희가 준비한 게 있죠~”
그래, 그렇겠지.
‘분명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노동을 시킬….’
“바로 당근 농장입니다!”
“…!”
이건 생각했던 스케일이 아닌데.
우리는 바로 버스를 타고 짧게 이동해, 평지에 펼쳐진 푸른 농원 한끝에 도착했다.
“와….”
“엄청 넓네요.”
이걸 대체 무슨 수로 컨택한… 아니, 이걸 컨택하고 숙소랑 코인 종류를 정한 거겠군.
PD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실물 당근이 일대일로 당근 코인과 교환된다고 말씀드렸었죠?”
“아~ 기억나요!”
“맞아.”
감탄하는 멤버들 사이, 김래빈이 안도하는 얼굴로 반색한다.
저런.
“그렇다면 수확하는 당근을 직접 코인으로 교환해 주시는 겁니까…?”
“어허~ 여러분, 그 당근들은 다른 분이 밭에서 농사지어서 한참 전부터 키운 건데, 여러분은 수확만 한다고 주는 건 당연히 아니죠~”
“…….”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PD는 날강도 같은 제안을 한다.
“일단 오늘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캐시면 일당으로 인당 5코인!”
“히이익!”
“아 나 안 해!!”
“저 나갈래요.”
기겁한 놈들을 보며 제작진들이 웃음을 참는다.
웃기냐?
“여러분, 밥은 먹어야죠~”
“…….”
프로그램의 불합리에 익숙해진 놈들은 황망한 눈도 잠시, 곧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저기부터 할까요?”
“그래.”
“저 당근 싫어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호미를 잡아서 땅을 파며 주홍색 뿌리채소를 줄줄 잡아서 꺼냈다.
‘그림은 잘 나오겠군.’
떠도 초심을 잃지 않은 채 요령 안 부리고 열심히 일하는, 순수하고 성실한 청년들로 나올 것이다.
아니면 또 속는 호구 새끼들이나.
‘X발.’
어느 쪽이든 이득인데… 페이크에 걸려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지 상당히 얼얼하다.
‘원양 어선 육지 버전인가.’
“여기 넣자!”
“오케이.”
거대한 바구니를 채우는 중노동의 시간이 계속된다.
PD는 메가폰을 잡았다.
“자~ 다섯 개! 뽑을 때까지 허리 펴지 않습니다~”
“으아악! 저희 허리 나가면 책임져 주실 거예요?”
“어어? 일당이 너무 많나?”
“죄송합니다.”
솔직히, 몸에 무리일 수준은 아니다. 한참 활동하면서 퍼포먼스를 연습할 때와 비견하면 그냥 피곤한 정도지.
“일해라 일!”
“…….”
그래도 분위기가 제대로란 말이다.
저 중세시대 농노처럼 부려먹는 분위기가 열받는데… 편집 거치면 당연히 재밌어진다, 이거겠지.
‘이해는 한다.’
나는 가끔 억울한 눈으로 제작진을 쳐다보면서 열심히 당근이나 캤다.
여기까진 참을 만했다.
문제는 다음부터 발생한다.
“여기 일당!”
“와아아악!”
“우리 한동안 당근은 안 먹습니다. 당근 케이크도 입에 안 댈 거예요.”
“그래 문대야.”
열심히 번 코인으로 그래도 저녁을 사 먹겠다고 마트에 간 우리는… 어마어마한 물가에 직면한다.
“그… 열 개만 주셔!”
“…!?”
갑자기 달고나 가격이 열 배로 뛰었다.
“한 근에 20개?”
“저희 죽어요!”
고기도 폭등.
당연하지만 눈 돌아간 놈들은 제작진에게 달려가 외쳤다.
“조작 없다면서요!”
“저희가 절대! 임의로 가격을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절대 아니에요!”
김래빈은 거의 넋이 나갈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이 상황은 대체….”
“아니, 저희가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다들 원하는 가격으로 파는 거죠.”
“…….”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의견 낸 놈이 누군진 몰라도 진심으로 딱 한 대만 쥐어박고 싶었다.
결국 지난 이틀과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장바구니를 들고 귀가했다.
나는 덤덤히 선언했다.
“수제비나 해 먹죠.”
“아아…….”
“수제비… 맛있지.”
그래도 리액션은 하는 게 용하다.
“죄송합니다…. 모든 일의 시발점은…… 저의 불찰….”
“너,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연히 PD님이 수작 부린 거지!”
쪽지를 뽑은 김래빈은 거의 넋이 나갔고, 배세진과 개가 붙어서 위로 중이다.
“…….”
안 되겠군.
나는 부엌에 짐을 두던 큰세진을 툭 쳤다.
“밀가루랑 버터 남았지.”
“어? 어어. 남긴 했는데… 왜?”
“잠시만.”
나는 첫날 과소비하며 샀던 버터를 확인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제작진 욕하라고 준 자유 시간,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이겠지.
* * *
박문대가 뭔가를 만든다.
‘으으음.’
류청우는 씻고 나오자마자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부엌에서 착착 움직이는 박문대의 뒷모습을 보았다.
‘…양식인가? 수제비라더니.’
그 와중에도 카메라 각도를 의식하면서 조리 과정이 잘 찍히게 신경 쓴다는 점이 과연 본인다운 행동이었다.
‘참 침착하네.’
분명 열받을 만한 상황인데, 현실적인 답을 묵묵히 만들어간다. 이런 데에서 형이라는 느낌이 났다.
류청우는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거 있어?”
“거의 끝났어요. 괜찮습니다. 다른 녀석들이 도와줬고.”
박문대는 에어 프라이어를 열었다.
그러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노란 쿠키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식이나 한 점 하실래요.”
“아.”
쿠키였구나.
그 순간 차유진이 튀어나왔다.
“저 먹을래요!”
“뜨거우니까 조심해라.”
“후후!”
류청우는 쿠키를 입에 넣고선 눈을 빛내며 엄지를 치켜드는 차유진을 보고 깨달았다.
‘과자를 팔아볼 생각인가 보구나.’
참 괜찮은 발상이었다. 당근밭에 또 가고 싶지 않은 멤버들의 반응도 좋을 것 같았다.
“…! 맛있네.”
“다행입니다.”
류청우는 맛과 아이디어 모두에 감탄했다.
‘잘 봐두고 대량으로 조리할 때 보조해야겠네.’
그러나 그 생각은 금방 박살 난다.
과자가 좀 식자마자 반 이상 통에 쓸어 담은 박문대가 이렇게 발언했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은 수제비 만들 거고… 형, 같이 가시죠.”
“…나?”
어디를?
그리고 박문대는 자신을 대동하고 걸어서… 막 저녁 식사를 끝낸 마을 회관으로 갔다.
‘…??’
대체 무슨 일일까?
“안녕하세요, 어르신.”
“아! 너그, 그 서울서 카메라 들고 온 스~타 아닌가!”
“오늘도 카메라가 같이 왔어요. 그리고 제가 뭘 좀 만들어왔는데요. 부드러워서 지금 드시기 딱 좋을 거예요.”
“아이고 또 뭘!”
박문대는 오랜만에 재밌는 것을 발견한 어르신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쿠키를 마구 뿌렸다.
류청우는 얼떨결에 그 행동에 동참했다.
박문대는 한술 더 떠서 류청우 본인까지 팔아넘겼다.
“이 형이 양궁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셨어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어머머!”
“그래, 기억나는 것 같아, 야~”
“하하하.”
류청우는 웃으며 열심히 악수를 하고 안마도 해드렸지만, 여전히 박문대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제가 한 곡 해볼까요.”
“그려, 그려~”
심지어 박문대는 자체적으로 트로트를 부르고 ‘POP★CON’까지 추며 온갖 재롱을 다 떨었다.
“……??”
류청우는 더 심경이 복잡해졌으나, 일단 군말 없이 맞춰서 본인도 노래를 한 소절 뽑고 열심히 어르신들의 질문들에 대답했다.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고 어르신들의 방벽이 내려갔을 때.
박문대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 병뚜껑 말인데요,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오늘 이거에 대해서 따로 말한 거 없나요.”
“아아, 그거!”
카메라 감독이 당황한 가운데, 박문대는 마침내 진실을 듣게 된다.
“그것이….”
* * *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근 코인 제일 많이 가진 주민 열 분께 최신형 안마의자를 드리기로 하셨다면서요.”
“…!”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멤버들이 모두 모여서 제작진과 툇마루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
PD는 시선을 피하려는 것 같더니, 곧 더 뻔뻔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걸 듣고 오셨어요?”
“으아악!”
“맞잖아!”
“우리한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정말!”
비난이 폭주한다.
심지어 선아현까지 얼굴을 붉혔다.
“힐링, 아, 아니면, 고소하라고 하셨으면서…!”
“어어?”
PD가 천연덕스럽게 권했다.
“하세요~ 고소하세요!”
“…!!”
“아니, 당근 코인이라는 게~ 이게 실체가 있는 화폐인가? 병뚜껑이라~ 될지 모르겠네!”
“크아악!”
부들부들.
배세진이 어깨를 떨며 이를 악물고 중얼거린다.
“잊지 않겠습니다….”
“PD님~ 언젠가 이게 다 업보로 돌아오실 거예요!”
그러자 PD도 좀 찔렸는지, 황급히 변명한다.
“아니, 여러분… 저한테 이러실 게 아니에요. 훔쳐 간 범인! 분명히 있습니다!”
“…!”
“그 범인만 찾으시면! 코인 다 반환하고… 저희도 자체적으로 상금 드릴게요! 100코인!”
“…! 저, 정말요?”
“정말이죠~ 속고만 사셨어요?”
어, 네가 속였지.
“…….”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이래야 웃기고 재밌지.
테스타는 다수의 사기 경험으로 이 제작진에게 익숙해진 상태다.
그러니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게 맞다.
‘애들이 목숨 걸고 어르신들과 제작진들 앞에서 범인 찾고 재롱떨게 만드는 컷 뽑는 데도 최고고.’
“…….”
근데… 왜 이렇게 꼴 받냐?
남 설계에 예상 못 하고 당하는 그림? 내가 안 웃긴다. 내가.
“무, 문대야…? 괜찮아?”
“……어.”
나는 결심했다.
PD의 목소리가 울린다.
“범인 찾아오세요~”
그날 자정 너머 꼭두새벽. 제작진들도 무인 카메라만 두고 다 철수한 시점.
드르륵.
나는 조용히 대문을 열고 나왔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저… 문대 형.”
트레이닝복 차림의 김래빈은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주춤주춤 따라붙었다.
“저는… 어쩐 일로 대동하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삽 들고 따라와라.”
“…??”
“지금부터 당근 캐러 간다.”
가만두지 않겠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60화
당근 코인을 모조리 털렸다는 게 밝혀진 후 1시간 경과.
“그아아악.”
안락한 숙소 안은 정신적 난장판이다.
해당 쪽지를 뽑은 장본인인 김래빈은 식은땀으로 샤워한 것 같은 꼴로 구석에 박혀 있다.
“당근이… 당근이,”
충격이 큰 모양이다.
“그러니까….”
류청우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지금 돈 한 푼 없는 상태라는 거구나.”
둥!
편집을 거쳤다면 머리 위에 느낌표가 떴을 것이다. 이놈들 정말 현실적으로 충격받았네.
나는 팔짱을 끼고 묵묵히 말했다.
“한마디로 거지죠.”
“거, 거지….”
“아니 어떻게 하루아침에 이런 일이.”
있는 거라곤 개 한 마리뿐이다.
망연자실한 놈들을 주위로 털 뭉치가 힘내라는 듯이 펄쩍 뛴다.
뫄아앙! 꺙!
멤버들의 안색이 좀 밝아진다.
“그래, 우리 뭉게뭉게는 안 훔쳐 가서 다행이야. 그치?”
“으, 으응!”
“…아직 새끼기도 하고. 그럴 위험이 있긴 했는데 다행이지. 다치지도 않았잖아.”
진심인가.
아니, 막말로 예능 돈 좀 사라졌다고 이럴 일인가 싶다만, 지난 이틀간 있는 대로 사람을 이완시켜 놓은 부작용….
“…!”
아니, 부작용이 아니군.
‘당했다.’
이 새끼들 이걸 다 계획하고 그렇게 잘해줬던 거였다.
무장 해제된 상태에서 충격받은 모습을 제대로 뽑아내기 위해서….
‘기가 막히게 해놨네.’
-어어? 어쩌죠? 하필 이걸 뽑으셔서~ 다른 쪽지는 그 내용이 아니었을 텐데.
-그럼 보여주세요, 확인 좀 하게!
-어어~ 그러시면 안 되죠! 다음에도 써야 해요 저희!
-으아악! 진짜!
‘그놈 분명 둘 다 코인 털리는 내용으로 쪽지 준비했을 거야.’
나는 뻔뻔하게 지껄이던 PD 놈의 얼굴을 떠올리다가 욕을 참았다.
힐링이라며 개X끼야!
아니… 침착하자. 프로그램적으로는 이제 한참 재밌을 구간이다. 힐링… 그래, 힐링 분량은 이틀 했으면 차고 넘치지.
그렇게 생각해야 한다. 무조건 그렇게 생각한다. 빡치지 말아라, 여기서 빡치면 지는 거다.
그 와중에 선아현이 입을 꾹 다물고 있다가, 결심한 듯이 손을 들었다.
“그래, 아현아.”
“시, 실이 있으니까… 제가, 뭐라도 만들어서, 그… 사실 분 있을지 알아볼까요…?”
“우와.”
“음, 손재주 있는 사람은 이런 발상도 가능하구나.”
괜찮은 발상이었다. 1군 아이돌이 모여앉아서 인형 눈깔 붙이는 수공업하는 모습도 절박하다면 색다르고 웃길 것이다.
다만 이런 건 제작진의 의도가 중요하다.
“…그, 네가 대단한 건 맞는데… 그것보단 범인 잡아내는 쪽이 최우선 아니야? 제작진도 그렇게 말했고.”
그래, 그쪽이 이 프로그램이 선호하는 방향이겠지.
-대체 누가요?? 누가 훔쳤다고요?
-네! 이 정체불명의 밤손님은 현재 이 마을 내에 거주 중인 누군가입니다!
배세진이 침을 삼켰다.
“대놓고 잡으라는 거잖아.”
“으음.”
멤버들은 고민에 잠겼다. 잠시 후, 김래빈이 허옇게 뜬 얼굴로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해코지라도 당하면….”
“아, 그건 안 되지.”
“네, 네. 위험, 할 수도 있고….”
아니, 과몰입이다. 이게 장르 예능도 아니고 웃기는 걸 지상 최우선 과제로 두고 있는 제작진 놈들이 그럴 리가.
큰세진이 심각하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지. 위험할 수도 있어.”
너는 너무 신났다. 드디어 고난과 역경이 닥쳐서 분량을 뽑을 수 있다, 이거냐.
류청우가 중재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당장 먹을 것부터 부족하니… 우선은 일 도와드리고 코인을 버는 거로 할까.”
“예!”
“그러면서 누가 도둑일지 좀 살펴보자. 분명 힌트가 있을 거야.”
“좋은… 현명한 판단이십니다.”
그 정도는 좋다. 몰입한 느낌도 나고, 전날 하하 호호 봉사 활동하던 그림이랑 비교하면 정말… 웃기겠군.
“…….”
아니, 열받지 말라니까.
어쨌든, 우리는 그 길로 카메라를 달고 주민들을 찾아 떠났다.
“아버님~ 저희 혹시 어제 하던 마당 청소 계속해 드려도 괜찮을까요? 코인 조금 주시면 진짜~ 잘해드릴게요!”
“어어? 괜찮혀.”
그러나 놀라울 만큼 사람들이 일감을 주지 않는다.
“…?”
“지금 우리 몇 집 거절당했죠?”
“다섯 집.”
누가 봐도 부자연스러운 상황.
심지어 여섯 번째 집의 할머니는 혀를 차며 이렇게 말했다.
“아이고… 그 코인? 그거는 이제 나도 없서라. 야들 그냥 그 밥이라두 한 술 들고 가면 안 되는가?”
제작진은 해맑게 대신 대답했다.
“안 됩니다~”
“아니 왜 대신 대답하세요?!”
“룰이에요 룰! 보수 체계 다 아시는 분들이 왜 이러세요!”
‘이 자식들이 진짜.’
제작진이 부르짖던 시골의 정은 하루아침에 급사한 모양이다.
이쯤 되니 성인군자도 빡 돌 판인지, 류청우도 헛웃음을 지으며 되묻는다.
“그럼 저희 어떻게 하나요.”
“그래서! 만일을 위해 저희가 준비한 게 있죠~”
그래, 그렇겠지.
‘분명 우리에게 말도 안 되는 노동을 시킬….’
“바로 당근 농장입니다!”
“…!”
이건 생각했던 스케일이 아닌데.
우리는 바로 버스를 타고 짧게 이동해, 평지에 펼쳐진 푸른 농원 한끝에 도착했다.
“와….”
“엄청 넓네요.”
이걸 대체 무슨 수로 컨택한… 아니, 이걸 컨택하고 숙소랑 코인 종류를 정한 거겠군.
PD는 싱글벙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제가 실물 당근이 일대일로 당근 코인과 교환된다고 말씀드렸었죠?”
“아~ 기억나요!”
“맞아.”
감탄하는 멤버들 사이, 김래빈이 안도하는 얼굴로 반색한다.
저런.
“그렇다면 수확하는 당근을 직접 코인으로 교환해 주시는 겁니까…?”
“어허~ 여러분, 그 당근들은 다른 분이 밭에서 농사지어서 한참 전부터 키운 건데, 여러분은 수확만 한다고 주는 건 당연히 아니죠~”
“…….”
그럴 줄 알았다.
그리고 PD는 날강도 같은 제안을 한다.
“일단 오늘 여기부터 저기까지 다 캐시면 일당으로 인당 5코인!”
“히이익!”
“아 나 안 해!!”
“저 나갈래요.”
기겁한 놈들을 보며 제작진들이 웃음을 참는다.
웃기냐?
“여러분, 밥은 먹어야죠~”
“…….”
프로그램의 불합리에 익숙해진 놈들은 황망한 눈도 잠시, 곧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저기부터 할까요?”
“그래.”
“저 당근 싫어요.”
투덜거리면서도 결국 최선을 다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호미를 잡아서 땅을 파며 주홍색 뿌리채소를 줄줄 잡아서 꺼냈다.
‘그림은 잘 나오겠군.’
떠도 초심을 잃지 않은 채 요령 안 부리고 열심히 일하는, 순수하고 성실한 청년들로 나올 것이다.
아니면 또 속는 호구 새끼들이나.
‘X발.’
어느 쪽이든 이득인데… 페이크에 걸려서 제대로 뒤통수를 맞아서 그런지 상당히 얼얼하다.
‘원양 어선 육지 버전인가.’
“여기 넣자!”
“오케이.”
거대한 바구니를 채우는 중노동의 시간이 계속된다.
PD는 메가폰을 잡았다.
“자~ 다섯 개! 뽑을 때까지 허리 펴지 않습니다~”
“으아악! 저희 허리 나가면 책임져 주실 거예요?”
“어어? 일당이 너무 많나?”
“죄송합니다.”
솔직히, 몸에 무리일 수준은 아니다. 한참 활동하면서 퍼포먼스를 연습할 때와 비견하면 그냥 피곤한 정도지.
“일해라 일!”
“…….”
그래도 분위기가 제대로란 말이다.
저 중세시대 농노처럼 부려먹는 분위기가 열받는데… 편집 거치면 당연히 재밌어진다, 이거겠지.
‘이해는 한다.’
나는 가끔 억울한 눈으로 제작진을 쳐다보면서 열심히 당근이나 캤다.
여기까진 참을 만했다.
문제는 다음부터 발생한다.
“여기 일당!”
“와아아악!”
“우리 한동안 당근은 안 먹습니다. 당근 케이크도 입에 안 댈 거예요.”
“그래 문대야.”
열심히 번 코인으로 그래도 저녁을 사 먹겠다고 마트에 간 우리는… 어마어마한 물가에 직면한다.
“그… 열 개만 주셔!”
“…!?”
갑자기 달고나 가격이 열 배로 뛰었다.
“한 근에 20개?”
“저희 죽어요!”
고기도 폭등.
당연하지만 눈 돌아간 놈들은 제작진에게 달려가 외쳤다.
“조작 없다면서요!”
“저희가 절대! 임의로 가격을 책정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절대 아니에요!”
김래빈은 거의 넋이 나갈 것 같은 얼굴로 물었다.
“그럼 이 상황은 대체….”
“아니, 저희가 사람 마음을 어떻게 알겠어요~? 다들 원하는 가격으로 파는 거죠.”
“…….”
나는 주먹을 쥐었다.
의견 낸 놈이 누군진 몰라도 진심으로 딱 한 대만 쥐어박고 싶었다.
결국 지난 이틀과 비교도 안 되는 초라한 장바구니를 들고 귀가했다.
나는 덤덤히 선언했다.
“수제비나 해 먹죠.”
“아아…….”
“수제비… 맛있지.”
그래도 리액션은 하는 게 용하다.
“죄송합니다…. 모든 일의 시발점은…… 저의 불찰….”
“너, 너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당연히 PD님이 수작 부린 거지!”
쪽지를 뽑은 김래빈은 거의 넋이 나갔고, 배세진과 개가 붙어서 위로 중이다.
“…….”
안 되겠군.
나는 부엌에 짐을 두던 큰세진을 툭 쳤다.
“밀가루랑 버터 남았지.”
“어? 어어. 남긴 했는데… 왜?”
“잠시만.”
나는 첫날 과소비하며 샀던 버터를 확인하고 부엌으로 향했다.
제작진 욕하라고 준 자유 시간, 어떻게 쓰든 내 마음이겠지.
* * *
박문대가 뭔가를 만든다.
‘으으음.’
류청우는 씻고 나오자마자 고소한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부엌에서 착착 움직이는 박문대의 뒷모습을 보았다.
‘…양식인가? 수제비라더니.’
그 와중에도 카메라 각도를 의식하면서 조리 과정이 잘 찍히게 신경 쓴다는 점이 과연 본인다운 행동이었다.
‘참 침착하네.’
분명 열받을 만한 상황인데, 현실적인 답을 묵묵히 만들어간다. 이런 데에서 형이라는 느낌이 났다.
류청우는 조심스럽게 부엌으로 들어갔다.
“필요한 거 있어?”
“거의 끝났어요. 괜찮습니다. 다른 녀석들이 도와줬고.”
박문대는 에어 프라이어를 열었다.
그러자 고소한 냄새와 함께… 노란 쿠키가 모습을 드러낸다.
“시식이나 한 점 하실래요.”
“아.”
쿠키였구나.
그 순간 차유진이 튀어나왔다.
“저 먹을래요!”
“뜨거우니까 조심해라.”
“후후!”
류청우는 쿠키를 입에 넣고선 눈을 빛내며 엄지를 치켜드는 차유진을 보고 깨달았다.
‘과자를 팔아볼 생각인가 보구나.’
참 괜찮은 발상이었다. 당근밭에 또 가고 싶지 않은 멤버들의 반응도 좋을 것 같았다.
“…! 맛있네.”
“다행입니다.”
류청우는 맛과 아이디어 모두에 감탄했다.
‘잘 봐두고 대량으로 조리할 때 보조해야겠네.’
그러나 그 생각은 금방 박살 난다.
과자가 좀 식자마자 반 이상 통에 쓸어 담은 박문대가 이렇게 발언했기 때문이다.
“다른 애들은 수제비 만들 거고… 형, 같이 가시죠.”
“…나?”
어디를?
그리고 박문대는 자신을 대동하고 걸어서… 막 저녁 식사를 끝낸 마을 회관으로 갔다.
‘…??’
대체 무슨 일일까?
“안녕하세요, 어르신.”
“아! 너그, 그 서울서 카메라 들고 온 스~타 아닌가!”
“오늘도 카메라가 같이 왔어요. 그리고 제가 뭘 좀 만들어왔는데요. 부드러워서 지금 드시기 딱 좋을 거예요.”
“아이고 또 뭘!”
박문대는 오랜만에 재밌는 것을 발견한 어르신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쿠키를 마구 뿌렸다.
류청우는 얼떨결에 그 행동에 동참했다.
박문대는 한술 더 떠서 류청우 본인까지 팔아넘겼다.
“이 형이 양궁으로 올림픽에서 금메달 따셨어요. 혹시 기억하시나요.”
“어머머!”
“그래, 기억나는 것 같아, 야~”
“하하하.”
류청우는 웃으며 열심히 악수를 하고 안마도 해드렸지만, 여전히 박문대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몰랐다.
“제가 한 곡 해볼까요.”
“그려, 그려~”
심지어 박문대는 자체적으로 트로트를 부르고 ‘POP★CON’까지 추며 온갖 재롱을 다 떨었다.
“……??”
류청우는 더 심경이 복잡해졌으나, 일단 군말 없이 맞춰서 본인도 노래를 한 소절 뽑고 열심히 어르신들의 질문들에 대답했다.
‘생각이 있겠지.’
그리고 분위기가 완전히 무르익고 어르신들의 방벽이 내려갔을 때.
박문대는 본론으로 들어갔다.
“혹시 이 병뚜껑 말인데요, 서울에서 온 사람들이 오늘 이거에 대해서 따로 말한 거 없나요.”
“아아, 그거!”
카메라 감독이 당황한 가운데, 박문대는 마침내 진실을 듣게 된다.
“그것이….”
* * *
나는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당근 코인 제일 많이 가진 주민 열 분께 최신형 안마의자를 드리기로 하셨다면서요.”
“…!”
사건의 전말을 전해 들은 멤버들이 모두 모여서 제작진과 툇마루에서 대치하고 있는 상황.
PD는 시선을 피하려는 것 같더니, 곧 더 뻔뻔하게 중얼거렸다.
“아니, 그걸 듣고 오셨어요?”
“으아악!”
“맞잖아!”
“우리한테 어떻게 그러실 수 있어요, 정말!”
비난이 폭주한다.
심지어 선아현까지 얼굴을 붉혔다.
“힐링, 아, 아니면, 고소하라고 하셨으면서…!”
“어어?”
PD가 천연덕스럽게 권했다.
“하세요~ 고소하세요!”
“…!!”
“아니, 당근 코인이라는 게~ 이게 실체가 있는 화폐인가? 병뚜껑이라~ 될지 모르겠네!”
“크아악!”
부들부들.
배세진이 어깨를 떨며 이를 악물고 중얼거린다.
“잊지 않겠습니다….”
“PD님~ 언젠가 이게 다 업보로 돌아오실 거예요!”
그러자 PD도 좀 찔렸는지, 황급히 변명한다.
“아니, 여러분… 저한테 이러실 게 아니에요. 훔쳐 간 범인! 분명히 있습니다!”
“…!”
“그 범인만 찾으시면! 코인 다 반환하고… 저희도 자체적으로 상금 드릴게요! 100코인!”
“…! 저, 정말요?”
“정말이죠~ 속고만 사셨어요?”
어, 네가 속였지.
“…….”
나는 심호흡을 했다.
그래. 이래야 웃기고 재밌지.
테스타는 다수의 사기 경험으로 이 제작진에게 익숙해진 상태다.
그러니 더 자극적이고 재밌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서는 이게 맞다.
‘애들이 목숨 걸고 어르신들과 제작진들 앞에서 범인 찾고 재롱떨게 만드는 컷 뽑는 데도 최고고.’
“…….”
근데… 왜 이렇게 꼴 받냐?
남 설계에 예상 못 하고 당하는 그림? 내가 안 웃긴다. 내가.
“무, 문대야…? 괜찮아?”
“……어.”
나는 결심했다.
PD의 목소리가 울린다.
“범인 찾아오세요~”
그날 자정 너머 꼭두새벽. 제작진들도 무인 카메라만 두고 다 철수한 시점.
드르륵.
나는 조용히 대문을 열고 나왔다.
물론 혼자는 아니다.
“저… 문대 형.”
트레이닝복 차림의 김래빈은 혼란스럽다는 얼굴로 주춤주춤 따라붙었다.
“저는… 어쩐 일로 대동하시려는 건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삽 들고 따라와라.”
“…??”
“지금부터 당근 캐러 간다.”
가만두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