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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358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8화
테스타가 국내외로 흠잡을 곳 없는 명실상부 1군이 된 올해 5월 말.
그 직속 후배인 미리내는, 그러니까 사실상 미리내의 리더인 박민하는 테스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긴… 그냥 선배라고 생각하지.’
애초에 최근 들어선 별로 본 적도 없다. 회사에서도 레이블은 따로 구역을 만드느니 뭐니 해서 동선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건 있다.
‘…좋겠다! 부럽다!’
자기들끼리 본부장의 손에서 빠져나간 테스타가 좀 얄밉기도 했으나, 사실 그보다 부러운 롤모델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아주 크게 기여한 특정 선배 멤버도 있었고 말이다.
‘…레이블을 선수 쳐서 시상식 때 발표해 버린 것도… 일부러 그러신 거겠지?’
그렇다.
바로 테스타의 메인보컬이자 ‘말랑 콩떡사과떡 강아지’를 맡고 있는 박문대다.
박민하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강아지는 무슨!’
회사를 주물럭대는, 비범하다 못해 비상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신 차리면 적재적소에 있는… 아무튼 그 사람이?
“…….”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어떤 의미에선 천상 아이돌 체질이긴 한데.’
어쨌든 무섭긴 했다.
덕분에 잘나가는 선배 그룹이니 잘 지내보자 시도하려는 멤버들을 뜯어말리느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성 친분은 아이돌의 독이라고 우리 언니 동생들 보내 버리면 어떡해…!’
그런데 그런 무서운 사람이 카메라만 돌아가면 무슨 수로 그렇게까지 무해하게 보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실제로는 좀, 다가가기 힘든 인상인데.’
다년간의 자기 관리, 그리고 (박민하는 모르지만) 스탯 투자로 박문대는 이미 누가 봐도 카메라가 붙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도 영상을 보면 친근한 강아지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는 게 섬뜩할 지경이다.
귀감이 될 만했다.
‘…대단하시다. 진짜.’
그러니 나름대로 다짐도 하게 되는 것이다.
‘재계약 시즌만 오면 진짜 우리도 제대로 할 거야!’
똑 부러진 일 처리로 절대 호구 잡히지 않고 이 그룹을 지키리라…!
그런데 한참 그러고 있을 타이밍에 당사자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그것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혹시 요즘 고민 없으신가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박민하의 머릿속에 온갖 가능한 배드 엔딩이 떠올랐다.
뭐지? 뭐지?
‘무, 무슨 생각이시지….’
그래서 일단 리액션 로봇처럼 무난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다른 분들도 하시는 정도의 고민은 합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 아이돌로 이렇게 팬분들을 만날 수 있는 생활에 만족하고….”
-음. 예.
박문대는 특별히 말을 끊지 않고 그 이야기를 모두 경청했다.
덕분에 사회생활 답변용 레퍼토리는 빠르게 고갈되어갔다.
‘으악!’
뭔가를 더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은 심해진다.
‘아 제발 좀!’
우리가 고민 상담할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선배님!
다행히, 박문대는 박민하가 숨넘어가기 직전에 힌트를 줬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고민은 없으신가요.
“……그, 다르다고 하시면 어떤 종류의 것을 말씀하시는지….”
-혹시 최근 회사는 괜찮은가 싶어서요.
“회사요?”
-예. 테스타가 레이블로 독립해서 나가면서 거리가 좀 생겨서 잘 모릅니다.
박문대는 담담히 서술했다.
-하지만 모든 그룹을 계속 미국 중심으로 운영하시는 것 같아서요. 저희도 요즘 그쪽으로 활동 중이니까, 혹시 후배분들은 어떤가요.
“아.”
그거라면.
박민하는 순간 조건반사처럼 입을 열었다.
그건 정말로 고민하고 있던 문제였기 때문에, 쌓인 게 많았기 때문에.
비록 말하고 난 후엔 ‘낚였구나’ 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그건 함정이 아니라 정말로 미리내에게도 괜찮은 제안의 디딤돌이었다.
물론 박문대가 낚은 것도 맞긴 했고.
* * *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음.”
나는 박민하가 꽤 자세히 설명하는, 현재 미리내의 처지와, 은근히 행간에서 얻은 그 신인 그룹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우선 미리내는 현재 포지션이….
‘애매하군.’
정체 중이다.
이 녀석도 생각이 있으니 회사 욕을 하는 대신 좋게좋게 얼버무렸지만, 데뷔 당시의 기세와 논란은 많이 죽은 걸 스스로 아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자꾸 해외에 먹힐 만한 음악만 만들고 프로모션도 그쪽 위주로 도니 국내 대중과 연결고리가 약해지지.
‘그래도 팬덤은 괜찮고.’
자체 컨텐츠가 좋고 활동 자본 퀄리티가 좋다 보니 팬덤 유입 자체는 꾸준하다.
‘그렇게 패턴화됐군.’
한마디로, 대중 관심이 떨어지며 음원은 약간 약해졌지만, 음반 판매량은 아직 오르는 팬덤형 아이돌이 됐다.
‘이 정도면 어쨌든 성공한 아이돌로 정착하긴 했어.’
다만 어떻게 한 번만 대중성을 잘 터뜨리면 정말 다 잡은 그룹이 될 수도 있으나 회사는 계속 미국만 노리니 속이 터질 것이다.
그 와중에 영린 회사에서 그 신인 여자 아이돌이 나왔다.
그리고 대박을 치기 시작했다.
-그, 그렇죠, 요새는 워낙 잘하시는 분들이 많죠! 저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더 생각 중입니다….
이 말뜻은 결국 그거다.
‘포지션이 겹쳐서 위협을 느끼긴 하는군.’
글로벌하게, 특히 서구권에서 인지도가 있는 트랜디한 여자 아이돌.
비슷한 이미지의 둘.
단순히 미국 시장에서 이미지가 겹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셀링 포인트도 흐려진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더 강렬한 후발주자가 보통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그 신인 여자아이돌 쪽으로 화제성 쭉 넘어가기 전인 지금이 적기다.
나는 스마트폰을 목 사이에 낀 채로 팔짱을 꼈다.
‘…괜찮은데.’
미리내는 기존에 쌓아온 1군 이미지가 있고, 음반 판매량이 강력하다.
신인 여자아이돌, 파우티 쪽은 당장 음판은 약해도 해외 음원이 강하고, 그 화제성을 토대로 국내 음원도 오르는 추세.
각자 강점과 약점이 있군.
‘게임이 딱 돼서 더 판 짜기 좋아.’
비슷한 포지션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만큼 재밌는 싸움 구경도 없지.
나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더 남긴 했다.
‘남의 일이니까.’
당사자의 의사 말이다.
나는 박민하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기다리다가, 마무리될 때쯤에 도로 입을 열었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요.”
-예?
나는 천천히 물었다.
“혹시 조금 소란스러워지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그룹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 나으신가요.”
-…….
‘소란스러워지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 거다.
‘욕먹는 거 말이지.’
당연하지만, 화제성이 낮아지면 욕도 덜 먹는다.
말투, 손동작, 성형, 과거 사진… 얼토당토않은 루머에 뇌를 두들겨 맞는 고통을 느끼느니 차라리 안정된 현 상황을 선호하냐는 거다.
‘ 경험자에겐 트라우마가 있어도 안 이상하지.’
나는 대기했다.
하지만 잠시 후, 전화기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나왔다.
-당연하죠.
좋아. 배짱 있군.
나는 만족스럽게 나온 결론을 통과시켰다.
“그럼 그렇게 회사가 진행해도 될까요.”
-어, 어떻게요?
이렇게.
바로 다음 날부터, 연예면 프론트에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신인 파우티의 파죽지세 글로벌 선전… ‘걸그룹 기록 완파’?]
[파우티, 미리내·블루레인 제치고 ‘검색지수 1위’]
[미리내 컴백 예고, ‘괴물 신인’ 의식했나.]
기사들은 노골적으로 언급하기도 하고, 살짝 감추기도 했지만 결국 논조는 같았다.
‘파우티가 데뷔하자마자 미리내를 이기지 않았냐?’
은근히 파우티의 우세를 점치는 내용들이 기사 내용을 채웠다.
그리고 당연히 그 반응으로 나올 만한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극단적인 아우성.
-ㅅㅂ머리채 그만 잡아
-이럴 거면 영린이나 컴백시켜줘…신인에 눈돌아갔네 미친새끼들 니들 건물 누가 세워줬는데
-근데 객관적으로 미리내보다 성적 좋은 건 맞지 않나 왜 이렇게 유난이지ㅋㅋ
└어그로 관종 꺼져
└알았어 어그로라고 믿고 싶긴 하겠다ㅠㅠ
다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가 당연히 영린의 회사에서 이 홍보 자료식 기사를 주도했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유사한 포지션의 선배 연예인을 저격하는 언론 플레이는 전통적으로 잘 먹히는 인지도 상승법이니까.
물론 영린 회사도 바보가 아닌 이상 슬슬 비슷한 보도자료를 뿌릴 생각이었을 테고, 실제로 그렇다는 걸 확인은 했다.
우리 회사 직원이 언론사에 컨택해보니 이미 그 소속사에서 먼저 홍보용으로 넘기기로 약속한 내용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덕분에 편했다.
-그래서 좋던데요? 주어만 바꾸면 딱이더라구요.
직원은 약간 신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니까….
‘이건 도와주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기부행위다.
원래도 할 언플, 좀 선수 쳐서 거들어준 것 아닌가. 회사 차원에선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뭐, 그쪽이 저격하려던 건 미리내가 아니라 테스타였겠지만… 우리가 알 반가.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시원히 내렸다.
온갖 곳에서 기사를 가져가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버즈량 좋고.”
미리내 팬들이 좀 피곤하긴 하겠다만 언급량 죽고 침체하는 것보다는 핫한 게 소비하기에도 낫다.
라이벌은 동기부여에 좋으니까.
‘심지어 미리내는 곧 컴백이지.’
이게 국내 화제성으로 연결되면 좋겠는데 말이다.
-네. 곡 좋아요!
자신 있어 보이던데.
나는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을 던졌다.
이제 미리내가 컴백하고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뜸을 들이기만 하면 된다.
‘무르익을 쯤 회사에서 알아서 우리 기록에 대한 보도자료 좀 넣을 테니… 빠르면 2주 내로 미션 결과가 뜨겠군.’
그럼 다른 이변만 없다면 이번 관문은 통과하는 것이다.
‘깔끔해.’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하나 더 챙길 게 있긴 하다.
결과가 뜰 때까지 테스타는 이 녀석들과 전혀 관계없는 이미지로 독주 중이어야 한다.
그걸 도와줄… 화제성도 있으면서 환기도 되는 독자적 활동.
뭐겠는가.
‘잘나가는 단독 예능이지.’
마침 우릴 미국에서 호떡 팔이 시키던 예능 제작진 놈들이 또 컨택을 해왔거든.
아주 적기였다.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테스타분들 얼른 앉으세요! 아이고!”
며칠 후, 우리는 신작 예능을 위한 미팅에 불려 나갔다.
“타이틀부터 보시면….”
프레젠테이션용 자료를 보자 벌써 로고까지 뽑혀서 나와 있다.
네이밍 센스부터 감이 온다.
‘환장스러운 구성이겠군.’
개짓거리 할 것 같은 느낌이 확실해서 오히려 좋다.
낯익은 작가진 몇몇이 신난 얼굴로 이렇게 설명했다.
“내려가셔서 소소하게 요리도 하시고, 텃밭도 가꾸시고… 진짜 힐링되는 그런 걸 준비했어요.”
“아하하, 넵!”
당연히 함정이겠군. 멤버들이 서로서로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뭘까.’
‘극기 훈련을 시킬 것 같아.’
‘그것도 일리 있네요.’
이번엔 시골에서 빚져서 어선이라도 타나?
그러나 작가들은 꿋꿋했다.
“아, 이번에는! 절대 낚시 아니고요! 미니게임으로 좀 재미 챙기시는 건데… 아무튼 절대 아니에요.”
그래. 좀 낚여주는 척하자.
“정말요?”
“네!”
작가는 격하게 긍정한다. 우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작가는 말을 덧붙였다.
억울함으로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아니면 고소하셔도 괜찮아요, 정말!”
“…….”
고소?
류청우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미소가 뜬다. 다른 놈들도 비슷하다.
‘야, 진심인 것 같은데.’
정말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박한 힐링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이거냐.
“아이돌이시니까 좀 직업적 소양하고 엮어서 의미 있는 느낌으로 갈 수도 있고요! 주민들께 공연도 보여드리고….”
김래빈이 탄복했다.
“…! 그건 정말 뜻깊은 기회일 것 같습니다!”
“음, 그러게. 취지가 좋네요.”
배세진은 좀 안도한 얼굴로 다시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고, 선아현은 뭔가를 필기하고 있다.
다들 평화로운 분위기다.
“…예.”
그리고 나는 큰세진을 돌아보았다.
놈은 필사적으로 싹싹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가를 떨었다.
‘그래.’
큰일 났다.
‘힐링 같은 소리 하네.’
이 제작진 놈들 순 예능감을 잃어버렸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8화

테스타가 국내외로 흠잡을 곳 없는 명실상부 1군이 된 올해 5월 말.

그 직속 후배인 미리내는, 그러니까 사실상 미리내의 리더인 박민하는 테스타를 어떻게 생각하는가.

‘어떻긴… 그냥 선배라고 생각하지.’

애초에 최근 들어선 별로 본 적도 없다. 회사에서도 레이블은 따로 구역을 만드느니 뭐니 해서 동선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이건 있다.

‘…좋겠다! 부럽다!’

자기들끼리 본부장의 손에서 빠져나간 테스타가 좀 얄밉기도 했으나, 사실 그보다 부러운 롤모델도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아주 크게 기여한 특정 선배 멤버도 있었고 말이다.

‘…레이블을 선수 쳐서 시상식 때 발표해 버린 것도… 일부러 그러신 거겠지?’

그렇다.

바로 테스타의 메인보컬이자 ‘말랑 콩떡사과떡 강아지’를 맡고 있는 박문대다.

박민하는 내적 비명을 질렀다.

‘강아지는 무슨!’

회사를 주물럭대는, 비범하다 못해 비상한,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정신 차리면 적재적소에 있는… 아무튼 그 사람이?

“…….”

‘이렇게 나열하고 보니 어떤 의미에선 천상 아이돌 체질이긴 한데.’

어쨌든 무섭긴 했다.

덕분에 잘나가는 선배 그룹이니 잘 지내보자 시도하려는 멤버들을 뜯어말리느라 식은땀이 날 지경이었다.

‘이성 친분은 아이돌의 독이라고 우리 언니 동생들 보내 버리면 어떡해…!’

그런데 그런 무서운 사람이 카메라만 돌아가면 무슨 수로 그렇게까지 무해하게 보일 수 있는지는 모르겠다.

‘…실제로는 좀, 다가가기 힘든 인상인데.’

다년간의 자기 관리, 그리고 (박민하는 모르지만) 스탯 투자로 박문대는 이미 누가 봐도 카메라가 붙는 직업에 종사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금도 영상을 보면 친근한 강아지 이미지가 잘 어울린다는 게 섬뜩할 지경이다.

귀감이 될 만했다.

‘…대단하시다. 진짜.’

그러니 나름대로 다짐도 하게 되는 것이다.

‘재계약 시즌만 오면 진짜 우리도 제대로 할 거야!’

똑 부러진 일 처리로 절대 호구 잡히지 않고 이 그룹을 지키리라…!

그런데 한참 그러고 있을 타이밍에 당사자에게 전화가 온 것이다.

그것도 매우 의미심장하게.

-혹시 요즘 고민 없으신가요.

“…….”

그 말을 듣는 순간, 박민하의 머릿속에 온갖 가능한 배드 엔딩이 떠올랐다.

뭐지? 뭐지?

‘무, 무슨 생각이시지….’

그래서 일단 리액션 로봇처럼 무난한 대답이 튀어나왔다.

“다른 분들도 하시는 정도의 고민은 합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 아이돌로 이렇게 팬분들을 만날 수 있는 생활에 만족하고….”

-음. 예.

박문대는 특별히 말을 끊지 않고 그 이야기를 모두 경청했다.

덕분에 사회생활 답변용 레퍼토리는 빠르게 고갈되어갔다.

‘으악!’

뭔가를 더 말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은 심해진다.

‘아 제발 좀!’

우리가 고민 상담할 사이는 아니지 않습니까, 선배님!

다행히, 박문대는 박민하가 숨넘어가기 직전에 힌트를 줬다.

-그렇다면 다행입니다. 그런데 다른 종류의 고민은 없으신가요.

“……그, 다르다고 하시면 어떤 종류의 것을 말씀하시는지….”

-혹시 최근 회사는 괜찮은가 싶어서요.

“회사요?”

-예. 테스타가 레이블로 독립해서 나가면서 거리가 좀 생겨서 잘 모릅니다.

박문대는 담담히 서술했다.

-하지만 모든 그룹을 계속 미국 중심으로 운영하시는 것 같아서요. 저희도 요즘 그쪽으로 활동 중이니까, 혹시 후배분들은 어떤가요.

“아.”

그거라면.

박민하는 순간 조건반사처럼 입을 열었다.

그건 정말로 고민하고 있던 문제였기 때문에, 쌓인 게 많았기 때문에.

비록 말하고 난 후엔 ‘낚였구나’ 하고 후회한다. 하지만 그건 함정이 아니라 정말로 미리내에게도 괜찮은 제안의 디딤돌이었다.

물론 박문대가 낚은 것도 맞긴 했고.

* * *

-…그래서, 지금도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음.”

나는 박민하가 꽤 자세히 설명하는, 현재 미리내의 처지와, 은근히 행간에서 얻은 그 신인 그룹에 대한 정보를 정리했다.

우선 미리내는 현재 포지션이….

‘애매하군.’

정체 중이다.

이 녀석도 생각이 있으니 회사 욕을 하는 대신 좋게좋게 얼버무렸지만, 데뷔 당시의 기세와 논란은 많이 죽은 걸 스스로 아는 모양이다.

그럴 만도 하다. 자꾸 해외에 먹힐 만한 음악만 만들고 프로모션도 그쪽 위주로 도니 국내 대중과 연결고리가 약해지지.

‘그래도 팬덤은 괜찮고.’

자체 컨텐츠가 좋고 활동 자본 퀄리티가 좋다 보니 팬덤 유입 자체는 꾸준하다.

‘그렇게 패턴화됐군.’

한마디로, 대중 관심이 떨어지며 음원은 약간 약해졌지만, 음반 판매량은 아직 오르는 팬덤형 아이돌이 됐다.

‘이 정도면 어쨌든 성공한 아이돌로 정착하긴 했어.’

다만 어떻게 한 번만 대중성을 잘 터뜨리면 정말 다 잡은 그룹이 될 수도 있으나 회사는 계속 미국만 노리니 속이 터질 것이다.

그 와중에 영린 회사에서 그 신인 여자 아이돌이 나왔다.

그리고 대박을 치기 시작했다.

-그, 그렇죠, 요새는 워낙 잘하시는 분들이 많죠! 저희도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더 생각 중입니다….

이 말뜻은 결국 그거다.

‘포지션이 겹쳐서 위협을 느끼긴 하는군.’

글로벌하게, 특히 서구권에서 인지도가 있는 트랜디한 여자 아이돌.

비슷한 이미지의 둘.

단순히 미국 시장에서 이미지가 겹치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에서의 셀링 포인트도 흐려진다는 게 문제다.

그리고 더 강렬한 후발주자가 보통 자연스럽게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그러니 어쩌면, 그 신인 여자아이돌 쪽으로 화제성 쭉 넘어가기 전인 지금이 적기다.

나는 스마트폰을 목 사이에 낀 채로 팔짱을 꼈다.

‘…괜찮은데.’

미리내는 기존에 쌓아온 1군 이미지가 있고, 음반 판매량이 강력하다.

신인 여자아이돌, 파우티 쪽은 당장 음판은 약해도 해외 음원이 강하고, 그 화제성을 토대로 국내 음원도 오르는 추세.

각자 강점과 약점이 있군.

‘게임이 딱 돼서 더 판 짜기 좋아.’

비슷한 포지션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것만큼 재밌는 싸움 구경도 없지.

나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거쳐야 할 관문이 하나 더 남긴 했다.

‘남의 일이니까.’

당사자의 의사 말이다.

나는 박민하의 말에 적당히 맞장구를 치며 기다리다가, 마무리될 때쯤에 도로 입을 열었다.

“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질문이 하나 더 있는데요.”

-예?

나는 천천히 물었다.

“혹시 조금 소란스러워지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그룹의 활동에 관심을 가지는 편이 나으신가요.”

-…….

‘소란스러워지다’라는 게 무슨 뜻인지는 알 거다.

‘욕먹는 거 말이지.’

당연하지만, 화제성이 낮아지면 욕도 덜 먹는다.

말투, 손동작, 성형, 과거 사진… 얼토당토않은 루머에 뇌를 두들겨 맞는 고통을 느끼느니 차라리 안정된 현 상황을 선호하냐는 거다.

‘ 경험자에겐 트라우마가 있어도 안 이상하지.’

나는 대기했다.

하지만 잠시 후, 전화기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나왔다.

-당연하죠.

좋아. 배짱 있군.

나는 만족스럽게 나온 결론을 통과시켰다.

“그럼 그렇게 회사가 진행해도 될까요.”

-어, 어떻게요?

이렇게.

바로 다음 날부터, 연예면 프론트에 기사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 * *

기사들은 노골적으로 언급하기도 하고, 살짝 감추기도 했지만 결국 논조는 같았다.

‘파우티가 데뷔하자마자 미리내를 이기지 않았냐?’

은근히 파우티의 우세를 점치는 내용들이 기사 내용을 채웠다.

그리고 당연히 그 반응으로 나올 만한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온갖 종류의 극단적인 아우성.

-ㅅㅂ머리채 그만 잡아

-이럴 거면 영린이나 컴백시켜줘…신인에 눈돌아갔네 미친새끼들 니들 건물 누가 세워줬는데

-근데 객관적으로 미리내보다 성적 좋은 건 맞지 않나 왜 이렇게 유난이지ㅋㅋ

└어그로 관종 꺼져

└알았어 어그로라고 믿고 싶긴 하겠다ㅠㅠ

다만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모두가 당연히 영린의 회사에서 이 홍보 자료식 기사를 주도했을 것이라 믿은 것이다.

유사한 포지션의 선배 연예인을 저격하는 언론 플레이는 전통적으로 잘 먹히는 인지도 상승법이니까.

물론 영린 회사도 바보가 아닌 이상 슬슬 비슷한 보도자료를 뿌릴 생각이었을 테고, 실제로 그렇다는 걸 확인은 했다.

우리 회사 직원이 언론사에 컨택해보니 이미 그 소속사에서 먼저 홍보용으로 넘기기로 약속한 내용이 있었다고 하더라고.

덕분에 편했다.

-그래서 좋던데요? 주어만 바꾸면 딱이더라구요.

직원은 약간 신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었다.

그러니까….

‘이건 도와주는 거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종의 기부행위다.

원래도 할 언플, 좀 선수 쳐서 거들어준 것 아닌가. 회사 차원에선 고마워해야 할 일이었다.

뭐, 그쪽이 저격하려던 건 미리내가 아니라 테스타였겠지만… 우리가 알 반가.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시원히 내렸다.

온갖 곳에서 기사를 가져가서 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버즈량 좋고.”

미리내 팬들이 좀 피곤하긴 하겠다만 언급량 죽고 침체하는 것보다는 핫한 게 소비하기에도 낫다.

라이벌은 동기부여에 좋으니까.

‘심지어 미리내는 곧 컴백이지.’

이게 국내 화제성으로 연결되면 좋겠는데 말이다.

-네. 곡 좋아요!

자신 있어 보이던데.

나는 피식 웃으며 스마트폰을 던졌다.

이제 미리내가 컴백하고 결과물이 나올 때까지 뜸을 들이기만 하면 된다.

‘무르익을 쯤 회사에서 알아서 우리 기록에 대한 보도자료 좀 넣을 테니… 빠르면 2주 내로 미션 결과가 뜨겠군.’

그럼 다른 이변만 없다면 이번 관문은 통과하는 것이다.

‘깔끔해.’

나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

하나 더 챙길 게 있긴 하다.

결과가 뜰 때까지 테스타는 이 녀석들과 전혀 관계없는 이미지로 독주 중이어야 한다.

그걸 도와줄… 화제성도 있으면서 환기도 되는 독자적 활동.

뭐겠는가.

‘잘나가는 단독 예능이지.’

마침 우릴 미국에서 호떡 팔이 시키던 예능 제작진 놈들이 또 컨택을 해왔거든.

아주 적기였다.

* * *

“안녕하세요~”

“안녕하십니까!”

“아이고 테스타분들 얼른 앉으세요! 아이고!”

며칠 후, 우리는 신작 예능을 위한 미팅에 불려 나갔다.

“타이틀부터 보시면….”

프레젠테이션용 자료를 보자 벌써 로고까지 뽑혀서 나와 있다.

네이밍 센스부터 감이 온다.

‘환장스러운 구성이겠군.’

개짓거리 할 것 같은 느낌이 확실해서 오히려 좋다.

낯익은 작가진 몇몇이 신난 얼굴로 이렇게 설명했다.

“내려가셔서 소소하게 요리도 하시고, 텃밭도 가꾸시고… 진짜 힐링되는 그런 걸 준비했어요.”

“아하하, 넵!”

당연히 함정이겠군. 멤버들이 서로서로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인다.

‘뭘까.’

‘극기 훈련을 시킬 것 같아.’

‘그것도 일리 있네요.’

이번엔 시골에서 빚져서 어선이라도 타나?

그러나 작가들은 꿋꿋했다.

“아, 이번에는! 절대 낚시 아니고요! 미니게임으로 좀 재미 챙기시는 건데… 아무튼 절대 아니에요.”

그래. 좀 낚여주는 척하자.

“정말요?”

“네!”

작가는 격하게 긍정한다. 우리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려 했으나, 그보다 먼저 작가는 말을 덧붙였다.

억울함으로 활활 타오르는 눈으로.

“아니면 고소하셔도 괜찮아요, 정말!”

“…….”

고소?

류청우의 얼굴에 당혹스러운 미소가 뜬다. 다른 놈들도 비슷하다.

‘야, 진심인 것 같은데.’

정말 지친 현대인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소박한 힐링 프로그램을 만들겠다 이거냐.

“아이돌이시니까 좀 직업적 소양하고 엮어서 의미 있는 느낌으로 갈 수도 있고요! 주민들께 공연도 보여드리고….”

김래빈이 탄복했다.

“…! 그건 정말 뜻깊은 기회일 것 같습니다!”

“음, 그러게. 취지가 좋네요.”

배세진은 좀 안도한 얼굴로 다시 자료를 뒤적거리고 있고, 선아현은 뭔가를 필기하고 있다.

다들 평화로운 분위기다.

“…예.”

그리고 나는 큰세진을 돌아보았다.

놈은 필사적으로 싹싹한 미소를 짓고 있다가, 눈이 마주치는 순간 눈가를 떨었다.

‘그래.’

큰일 났다.

‘힐링 같은 소리 하네.’

이 제작진 놈들 순 예능감을 잃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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