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5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5화
“박문대!”
“너…….”
“괜찮으십니까?”
나와 선아현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동거인들의 따스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너 이 새끼 미쳤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게 맞지만, 혹시 이놈이 맛 간 건 아닌지 걱정되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그 분위기 말이다.
나는 선수 쳐서 대가리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생각 좀 하러 나간 건데 폰을 두고 간 줄 몰랐습니다.”
“아….”
“그래, 그랬구나.”
내 면상이 제법 멀쩡해 보였는지 순간 안도하는 분위기가 쭉 깔린다.
콜라 마시던 차유진은 호쾌하게 대답한다.
“OK~ 다음에는 말해요!”
“오케이는 무슨 오케이야!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다들!”
고맙다, 어그로 가져가 줘서.
배세진이 시뻘게진 얼굴로 선아현을 돌아보았다.
“너도! 무슨 생각인지 이야기는 하고 나갔어야…… 선아현?”
“…….”
“저기…….”
“…네, 네! 죄, 죄송해요. 마, 말도 없이, 함부로 움직여서…. 죄송합니다.”
“어, 그래. 그… 고생했고.”
선아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숙소 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
충격이 큰 모양이다.
내가 ‘제대로 알려주겠다’ 발언을 한 직후 이놈의 반응을 다시 보자.
-그, 그게…. 그, 무, 문대야.
-뭐든 잘 들어주겠다며.
-…마, 맞아.
말은 긍정하면서도 ‘이게 아닌데’라고 쓰인 얼굴이었지.
물론, 그래서 당근을 주긴 했다만.
-그리고 이번에 결론이 어떻게 나든 무조건 상담은 받으러 간다.
-…!
-이건 녹음해도 괜찮은데.
-아, 아니야…! 으응, 고, 고마워…. 고마워 문대야…!
절박하게 외치던 놈은 막상 숙소에 도착하니 별걱정과 예상을 다 하는지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졌다 이 말이다.
나는 목을 주물렀다.
‘길게 안 간다.’
스케줄도 빼서 시간이 있으니 지금 바로 해야 한다.
관계자들에게 더 손해를 입힐 수도 없다.
‘활동기 사흘 빼면 수익 포기가 얼마냐.’
정산 수익으로 따지면 벌써 눈치 보기 시작할 액수였다.
게다가 우리 상태를 두고 또 루머 양성하며 떠들어댈 놈들 입 다물게 하려면 속도전은 필수고.
‘흠.’
마침 필요한 사람이 말을 건다.
“둘이 이야기는 잘했어?”
나는 류청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놀라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류청우는 빙긋 웃었다.
“그래. 그건 맞아.”
“…….”
“아침에 알람은 울리는데 휴대폰 주인이 없더라. 다들 유진이 없어졌을 때보다 서너 배씩은 놀랐을 거야.”
“…예.”
더럽게 쪽팔리네, 이거.
나는 차유진이 없어졌을 때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잠시 침묵했다. 류청우가 등을 두드린다.
“고생했어.”
“예.”
병 주고 약 주는군. 나는 만든 업보를 생각하며 참았다.
‘그리고 다음 놈은….’
큰세진.
그놈은 류청우의 옆에서 스마트폰을 잡고 뭔가를 작성 중이었다.
아까 내가 들어올 때도 별말 없더니 여전히 고개를 안 든다.
“…뭐 하냐.”
녀석은 폰을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음, 업로드.”
아.
나는 SNS를 확인했다. 테스타 계정에 새 글이 올라와 있다.
========================
ㅠㅠ이 날씨에 감기몸살…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얼른 나아서 찾아갈게요. 러뷰어 걱정 마세요, 저희 약 먹고 으쌰으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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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른 대처였다.
“…고맙다.”
“뭘.”
놈은 그제야 애써 씩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몸은 좀 괜찮아?”
“그래.”
사실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선아현이랑 어떻게 됐는지, 대체 내가 새벽에 나가서 뭘 했는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묻기엔 염치가 없다 이거군.’
여기가 무슨 조선시대 조정도 아니고 뭐 이렇게 자기 탓이라는 새끼들이 많냐.
‘차라리 한 손 거들어 달라고 말하게 돼서 다행인가.’
나는 한숨을 참으며 본론이나 꺼냈다.
“그런데… 네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지.”
“어?”
“청우 형도요.”
“음? 나?”
“예.”
일단 물량으로 밀고 시작할까.
* * *
선아현은 심호흡을 했다.
룸메이트는 ‘모쪼록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를 외치며 전자기기를 싸 들고 배세진과 차유진의 방으로 갔다.
그러나 선아현의 머리는 쉴 수 없었다. 머리에선 끊임없이 결심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반응하는 거야.’
그래.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잘못된 반응으로 문대가 받았을 충격을 완화할 기회.
“휴우.”
‘우선, 나에게 진지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선아현은 몇 번 머릿속으로 자신의 반응을 끝까지 점검한 뒤, 박문대와 대화하기로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문대의 방에 찾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똑똑.
“들어간다.”
“…!”
약속 시각이 되기도 전에 박문대가 먼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세팅할 게 있어서 좀 일찍 왔어. 잠깐 래빈이 컴퓨터 좀.”
컴퓨터?
“시작하자. 아, 이건 김래빈이 전해달라고 했고.”
“어어,”
“마시면서 들어라.”
문을 열고 들어온 박문대는 손에 들고 있던 차를 내밀더니, 자신의 앞에는 노트와 펜을 툭 내려두었다.
‘노트…?’
그리고 쉴 틈도 없이 정보 전달을 시작했다.
“일단 증인부터 시작하려고 하는데.”
“…즈, 증인…?”
박문대는 잠깐 멈칫하더니, 약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네가 더 헷갈릴까 봐 말을 안 했는데, 사실 과거로 돌아온 케이스는 나 혼자가 아니야.”
“…??”
상상도 못 한 발언이었다.
선아현은 차를 손에 든 채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박문대는 곧바로 섭외한 인물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몰아쳐야 한다.’
방식은 화상 채팅.
“녹음이나 녹화 안 되는 어플을 써야해서 준비했어. 그리고 너도 얼굴을 직접 보는 편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 거고.”
박문대는 대놓고 스토어에서 어플을 찾아 설치하는 모습을 선아현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김래빈의 컴퓨터 화면에는 사람 얼굴이 떴다.
“…!?”
선아현은 자기도 모르게 침대에서 일어날 뻔했다.
[음.]
VTIC의 청려.
방금도 만났던 대선배가 대놓고 성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냥 아까 만났을 때 했으면 편하지 않았나요?]
“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참 빠르네요.]
청려는 그 이후로도 빈정대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투로 박문대와 말싸움 같은 대화를 잠깐 했지만, 곧 순순히 시인했다.
[맞아요. 내가 문대 씨 전에 미래를 알던 사람이고… 문대 씨, 그러니까 건우 씨가 다음이고요.]
“…….”
이게 정말 현실일까?
[후배님이 본래 나보다 연상이라 나한테까지 반말로 말하는데. 아까 못 들었나.]
그냥… 많이 친해졌기에 간혹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부러워했을 뿐이다.
[녹음 녹화 안 한다면서 기어코 지금은 존댓말 쓰는 것도 재밌고.]
“시끄러.”
[하하!]
청려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적당한 보증을 마무리했다.
[갚아야 할 게 많아지네요, 후배님.]
“들어가라.”
[저런. 부정을 못 하네.]
그리고 청려는 화면에서 사라졌다.
“후.”
박문대는 짜증을 참는 것처럼 한번 심호흡을 했다.
“짜증 나는 놈인데,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가끔 보고 있다.”
“…….”
그리고 굳은 얼굴로 컴퓨터를 다시 조작하면서도, 약간 뿌듯한 투로 덧붙였다.
“조작은 없어. 내 컴퓨터도 아니고 남의 컴퓨터인 데다가 저장 매체 안 건드리는 건 너도 봤겠지.”
“…….”
“원하면 지금 직접 다시 보러 갈 수도 있고. 흠, 그럴까.”
“아, 아니야.”
선아현은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느낌표와 물음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넘어가고. 이번엔 내 다음으로 이 이상한 상황을 겪고 있는 놈이 나올 건데.”
“으응….”
“아, 혹시 질문할 게 있으면 편하게 노트에 적어뒀다가 해라. 뭐든 상관없으니까.”
“…….”
그래서… 가져온 거였구나?
선아현은 반사적으로 노트를 잡았으나 팔다리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걱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아는 얼굴이 화면에 떴을 때, 내면에서 비명을 질렀다.
[헐, 형 진짜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권희승.
박문대가 ‘골드 2’라고 내심 지칭 중인 후배의 얼굴이었다.
[이번에 아현 형님에게 말씀드리는 거구나… 아, 형, 안녕하세요.]
“아, 안녕.”
선아현은 순간 허벅지를 꼬집었으나 아프기만 했다.
화면의 권희승은 자신의 경험담-사람 구하고 한강에서 떨어졌더니 과거로 왔다!-를 신나게 말하더니, 박문대에게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형 너무 동료 수집하고 다니는 거 아니에요?? 우리 약간 비밀조직? 그런 거 아니었나?]
“억울하면 너도 말하든가.”
[그…… 저희 그룹이 그럴 사이는 아직 또 아니죠….]
권희승은 씁쓸하게 ‘부모님께도 슬쩍 말해보려고 했는데 정신 차리라고 등짝을 때리셨다’ 같은 소리를 몇 번 한 뒤, 한숨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참고로 선아현은 노트에 한 자도 기록하지 못했다.
“자, 저놈이 그래서 내 다음으로 과거로 돌아온 놈이고.”
“…….”
“실제로 저놈이 돌아온 시점부터 사댄 주식 수익률이 15배쯤 돼. 너 원하면 인증샷도 보여준다고 한다.”
“…그.”
“참고로 이 사례 중에 몸이 바뀐 건 나뿐이야. 이건 이유가 있어.”
‘질문받는다면서…!’
선아현은 극히 드물게도 박문대에게 내면으로나마 반박했지만, 박문대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렸다.
“그래서 또 당사자를 불러봤다.”
잠깐.
또?
선아현은 정신적으로 헐떡였다.
그리고 스스로 물었다.
이렇게까지 방대하게, 이 많은 관계자를 끌어들여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
‘아니, 아니야.’
박문대처럼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내가 편한 대로 믿어버리면 문대가….’
잠깐.
“…어?”
선아현은 모순을 알아차렸다.
‘내가 믿어도… 어차피 문대는 무조건, 상담을 받겠다고 했잖아.’
그러면… 괜찮은 것 아닌가?
‘내가 어떻게 생각해도.’
선아현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박문대가 도움이 필요할 시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면 말이다.
‘그… 렇네.’
목구멍까지 차 있던 것이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에, 선아현은 작게 심호흡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공포가 녹아내렸다.
고정된 결론은 박문대의 노림수대로 제 역할을 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뭔가… 뭔가, 선아현이 예측하고 대비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그… 좀 더 깊은 대화를.’
할 줄 알았건만, 이건 순 작곡 캠프에서 일할 때 자료를 수집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
우스운 것은, 당황과 혼란 중에도 선아현의 이성이 판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증거 제출에 말이다.
이건 상담이 아니라 작업이었다.
[안녕하세요, 아현 님…!]
“자, 원래 박문대였던 류건우. 지금 나랑 몸이 바뀐 상태야.”
“…….”
“참고로 청우 형은 내 친가 쪽 사촌이었어.”
하지만 이다음에 닥친 상황은… 선아현으로서도 생각하지 못한 초자연적 증명이었다.
박문대는 가벼운 인사를 주선한 뒤에, 선아현에게 갑자기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내가 홀로그램을 본다고 하는 게 가장 신경 쓰였을 것 같은데. 아닌가.”
“…….”
“환각이잖아. 제일 심각하지.”
박문대는 선아현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 전에, 이게 환각이 아닌 것부터 증명하고 가자고.”
“…….”
“노트에 적은 질문이 있지.”
“으, 으응.”
“나한테 보여줘. 그런데 그전에.”
박문대는 일어나더니, 모니터를 뒤로 돌렸다.
“이러면 화면에 있는 ‘류건우’한테는 네 노트가 안 보일 거야. 그렇지?”
“마, 맞아….”
“아니다. 잠깐.”
박문대는 아예 모니터를 껐다.
“…!”
“이러면 스피커만 살아 있는 거지. 꼼수는 못 써. 애초에 내 컴퓨터도 아니고.”
“…….”
박문대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선아현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박문대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나한테 노트를 보여줘.”
“……응.”
선아현은 거스르지 않고 조용히,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돌려서 박문대에게 보여주었다.
유려한 필기체였다.
-왜 문대는 류건우와 몸이 바뀌었을까.
곧 박문대가 설명할 질문이었다.
정확히는… ‘대체 왜 바뀌었다고 생각할까’에 가까웠을 것이라 박문대는 쉽게 짐작했지만.
큰달은 아니었다.
[제가 건우 형에게 정말 많은 도움을 받아서… 형의 행복을 빌었는데 그게 안 좋게 꼬여서!]
“…!!”
선아현은 귀를 의심했다.
꺼진 모니터.
그 옆의 스피커.
[물론 결과는 괜찮다고 생각해요. 형이 아이돌 활동하는 걸 보면 정말 멋지잖아요….]
듣기 좋게 상냥한 남성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저, 그런데 여기 주어가 형 맞죠? 그, 저일까요? 어쨌든, 답변은 크게 달라지진 않는데요….]
“…….”
노트에 적힌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찰팍.
노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선아현은 피가 식는 기분으로, 노트를 내려다보았다가… 문대에게로 고개를 올렸다.
박문대는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그램창으로 연결되어 있거든.”
소름이 쭉 돋았다.
“그냥 아무거나 써서 보여줘 봐. 이걸로 전달할 테니까.”
선아현은 이를 악물고 노트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이나 적었다.
짐작으로는 절대 맞출 수 없는 것으로.
외국어.
-pas de deux
그리고 소리가 울린다.
[죄송한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요. 파스 데 데스?]
“…….”
[아, 아~ 발레 용어구나. 그렇네요. 아현님은 원래 발레를 하셨으니까!]
이게… 이게?
선아현은 탁자를 움켜쥐었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상식이… 파괴당하고 있었다.
여긴 자신의 방이었다. 아무 장치가 없는 건 본인이 알고, 박문대에게도 뭔가를 따로 설치할 수 있는 어떤 여유도 없었다.
심지어 박문대가 선수 쳐서 말하고 있다.
흰 반 팔에 주머니 없는 잠옷 바지 차림인 박문대는 가볍게 자리에서 뛰었다.
“지금 내 차림에 소형 카메라 숨기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일단 네 카메라 탐지기 좀 빌린다.”
“…….”
그리고 알아서 선아현의 책상 구석에 놓인 카메라 탐지기를 들어서 자신의 몸과 탁자 주변을 한 바퀴 돌렸다.
물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선아현은 눈을 깜박였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하지만 그 머리에서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도 전.
“하지만 역시 하나는 신뢰가 떨어지지.”
“…??”
선아현은 고개를 들었다.
박문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다른 사람도 끼워서 해보자. 청우 형이랑 이세진 지금 부른다.”
“…….”
“그거 외에도 뭐, 의심 가는 점 있으면 바로 말하고.”
박문대는 웃었다.
“내일까지 시간 많으니까.”
스토리를 풀기 전에, 철저히 실증적 증명부터 하고 가려는 계획의 시작 단계.
그렇게 박문대의 증명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5화
“박문대!”
“너…….”
“괜찮으십니까?”
나와 선아현은 숙소에 들어가자마자 동거인들의 따스한 환영 인사를 받았다.
‘너 이 새끼 미쳤냐’라고 소리를 지르는 게 맞지만, 혹시 이놈이 맛 간 건 아닌지 걱정되니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그 분위기 말이다.
나는 선수 쳐서 대가리를 박았다.
“죄송합니다. 생각 좀 하러 나간 건데 폰을 두고 간 줄 몰랐습니다.”
“아….”
“그래, 그랬구나.”
내 면상이 제법 멀쩡해 보였는지 순간 안도하는 분위기가 쭉 깔린다.
콜라 마시던 차유진은 호쾌하게 대답한다.
“OK~ 다음에는 말해요!”
“오케이는 무슨 오케이야! 갑자기 사라져서 걱정했잖아 다들!”
고맙다, 어그로 가져가 줘서.
배세진이 시뻘게진 얼굴로 선아현을 돌아보았다.
“너도! 무슨 생각인지 이야기는 하고 나갔어야…… 선아현?”
“…….”
“저기…….”
“…네, 네! 죄, 죄송해요. 마, 말도 없이, 함부로 움직여서…. 죄송합니다.”
“어, 그래. 그… 고생했고.”
선아현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숙소 거실로 들어왔다. 그리고 소파에 앉았다.
충격이 큰 모양이다.
내가 ‘제대로 알려주겠다’ 발언을 한 직후 이놈의 반응을 다시 보자.
-그, 그게…. 그, 무, 문대야.
-뭐든 잘 들어주겠다며.
-…마, 맞아.
말은 긍정하면서도 ‘이게 아닌데’라고 쓰인 얼굴이었지.
물론, 그래서 당근을 주긴 했다만.
-그리고 이번에 결론이 어떻게 나든 무조건 상담은 받으러 간다.
-…!
-이건 녹음해도 괜찮은데.
-아, 아니야…! 으응, 고, 고마워…. 고마워 문대야…!
절박하게 외치던 놈은 막상 숙소에 도착하니 별걱정과 예상을 다 하는지 완전히 혼란 상태에 빠졌다 이 말이다.
나는 목을 주물렀다.
‘길게 안 간다.’
스케줄도 빼서 시간이 있으니 지금 바로 해야 한다.
관계자들에게 더 손해를 입힐 수도 없다.
‘활동기 사흘 빼면 수익 포기가 얼마냐.’
정산 수익으로 따지면 벌써 눈치 보기 시작할 액수였다.
게다가 우리 상태를 두고 또 루머 양성하며 떠들어댈 놈들 입 다물게 하려면 속도전은 필수고.
‘흠.’
마침 필요한 사람이 말을 건다.
“둘이 이야기는 잘했어?”
나는 류청우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놀라셨을 텐데 죄송합니다.”
류청우는 빙긋 웃었다.
“그래. 그건 맞아.”
“…….”
“아침에 알람은 울리는데 휴대폰 주인이 없더라. 다들 유진이 없어졌을 때보다 서너 배씩은 놀랐을 거야.”
“…예.”
더럽게 쪽팔리네, 이거.
나는 차유진이 없어졌을 때 내가 했던 말들을 떠올리며 잠시 침묵했다. 류청우가 등을 두드린다.
“고생했어.”
“예.”
병 주고 약 주는군. 나는 만든 업보를 생각하며 참았다.
‘그리고 다음 놈은….’
큰세진.
그놈은 류청우의 옆에서 스마트폰을 잡고 뭔가를 작성 중이었다.
아까 내가 들어올 때도 별말 없더니 여전히 고개를 안 든다.
“…뭐 하냐.”
녀석은 폰을 내리면서 중얼거렸다.
“…음, 업로드.”
아.
나는 SNS를 확인했다. 테스타 계정에 새 글이 올라와 있다.
========================
ㅠㅠ이 날씨에 감기몸살… 정말 죄송합니다. 저희 얼른 나아서 찾아갈게요. 러뷰어 걱정 마세요, 저희 약 먹고 으쌰으쌰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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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빠른 대처였다.
“…고맙다.”
“뭘.”
놈은 그제야 애써 씩 웃으며 내 어깨를 쳤다.
“몸은 좀 괜찮아?”
“그래.”
사실 묻고 싶은 건 그게 아니라 선아현이랑 어떻게 됐는지, 대체 내가 새벽에 나가서 뭘 했는지였을 것이다.
‘그런데 묻기엔 염치가 없다 이거군.’
여기가 무슨 조선시대 조정도 아니고 뭐 이렇게 자기 탓이라는 새끼들이 많냐.
‘차라리 한 손 거들어 달라고 말하게 돼서 다행인가.’
나는 한숨을 참으며 본론이나 꺼냈다.
“그런데… 네 도움이 필요해서 말이지.”
“어?”
“청우 형도요.”
“음? 나?”
“예.”
일단 물량으로 밀고 시작할까.
* * *
선아현은 심호흡을 했다.
룸메이트는 ‘모쪼록 편히 쉬시길 바랍니다!’를 외치며 전자기기를 싸 들고 배세진과 차유진의 방으로 갔다.
그러나 선아현의 머리는 쉴 수 없었다. 머리에선 끊임없이 결심을 반복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반응하는 거야.’
그래. 어쩌면 이건 기회일지도 몰랐다. 자신의 잘못된 반응으로 문대가 받았을 충격을 완화할 기회.
“휴우.”
‘우선, 나에게 진지하게 말해줘서 정말 고맙다고, 말하고…….’
선아현은 몇 번 머릿속으로 자신의 반응을 끝까지 점검한 뒤, 박문대와 대화하기로 약속된 시간에 맞추어 문대의 방에 찾아갈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똑똑.
“들어간다.”
“…!”
약속 시각이 되기도 전에 박문대가 먼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세팅할 게 있어서 좀 일찍 왔어. 잠깐 래빈이 컴퓨터 좀.”
컴퓨터?
“시작하자. 아, 이건 김래빈이 전해달라고 했고.”
“어어,”
“마시면서 들어라.”
문을 열고 들어온 박문대는 손에 들고 있던 차를 내밀더니, 자신의 앞에는 노트와 펜을 툭 내려두었다.
‘노트…?’
그리고 쉴 틈도 없이 정보 전달을 시작했다.
“일단 증인부터 시작하려고 하는데.”
“…즈, 증인…?”
박문대는 잠깐 멈칫하더니, 약간 힘이 들어간 목소리로 말했다.
“…전에, 네가 더 헷갈릴까 봐 말을 안 했는데, 사실 과거로 돌아온 케이스는 나 혼자가 아니야.”
“…??”
상상도 못 한 발언이었다.
선아현은 차를 손에 든 채로 얼어붙었다.
그러나 박문대는 곧바로 섭외한 인물들을 꺼내기 시작했다.
‘몰아쳐야 한다.’
방식은 화상 채팅.
“녹음이나 녹화 안 되는 어플을 써야해서 준비했어. 그리고 너도 얼굴을 직접 보는 편이 더 받아들이기 쉬울 거고.”
박문대는 대놓고 스토어에서 어플을 찾아 설치하는 모습을 선아현에게 보여주었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김래빈의 컴퓨터 화면에는 사람 얼굴이 떴다.
“…!?”
선아현은 자기도 모르게 침대에서 일어날 뻔했다.
VTIC의 청려.
방금도 만났던 대선배가 대놓고 성의 없는 미소를 띠고 있었다.
“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청려는 그 이후로도 빈정대는 건지 웃는 건지 모를 투로 박문대와 말싸움 같은 대화를 잠깐 했지만, 곧 순순히 시인했다.
“…….”
이게 정말 현실일까?
그냥… 많이 친해졌기에 간혹 툭툭 튀어나오는 것이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조금 부러워했을 뿐이다.
“시끄러.”
청려는 그렇게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적당한 보증을 마무리했다.
“들어가라.”
그리고 청려는 화면에서 사라졌다.
“후.”
박문대는 짜증을 참는 것처럼 한번 심호흡을 했다.
“짜증 나는 놈인데, 아무튼… 그런 이유로 가끔 보고 있다.”
“…….”
그리고 굳은 얼굴로 컴퓨터를 다시 조작하면서도, 약간 뿌듯한 투로 덧붙였다.
“조작은 없어. 내 컴퓨터도 아니고 남의 컴퓨터인 데다가 저장 매체 안 건드리는 건 너도 봤겠지.”
“…….”
“원하면 지금 직접 다시 보러 갈 수도 있고. 흠, 그럴까.”
“아, 아니야.”
선아현은 반사적으로 대꾸했다.
그러나 머릿속은 느낌표와 물음표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럼 넘어가고. 이번엔 내 다음으로 이 이상한 상황을 겪고 있는 놈이 나올 건데.”
“으응….”
“아, 혹시 질문할 게 있으면 편하게 노트에 적어뒀다가 해라. 뭐든 상관없으니까.”
“…….”
그래서… 가져온 거였구나?
선아현은 반사적으로 노트를 잡았으나 팔다리가 고장 난 것처럼 삐걱대고 있었다.
그리고 또 아는 얼굴이 화면에 떴을 때, 내면에서 비명을 질렀다.
권희승.
박문대가 ‘골드 2’라고 내심 지칭 중인 후배의 얼굴이었다.
“아, 안녕.”
선아현은 순간 허벅지를 꼬집었으나 아프기만 했다.
화면의 권희승은 자신의 경험담-사람 구하고 한강에서 떨어졌더니 과거로 왔다!-를 신나게 말하더니, 박문대에게 투덜거리기까지 했다.
“억울하면 너도 말하든가.”
권희승은 씁쓸하게 ‘부모님께도 슬쩍 말해보려고 했는데 정신 차리라고 등짝을 때리셨다’ 같은 소리를 몇 번 한 뒤, 한숨과 함께 통화를 종료했다.
참고로 선아현은 노트에 한 자도 기록하지 못했다.
“자, 저놈이 그래서 내 다음으로 과거로 돌아온 놈이고.”
“…….”
“실제로 저놈이 돌아온 시점부터 사댄 주식 수익률이 15배쯤 돼. 너 원하면 인증샷도 보여준다고 한다.”
“…그.”
“참고로 이 사례 중에 몸이 바뀐 건 나뿐이야. 이건 이유가 있어.”
‘질문받는다면서…!’
선아현은 극히 드물게도 박문대에게 내면으로나마 반박했지만, 박문대는 폭주 기관차처럼 달렸다.
“그래서 또 당사자를 불러봤다.”
잠깐.
또?
선아현은 정신적으로 헐떡였다.
그리고 스스로 물었다.
이렇게까지 방대하게, 이 많은 관계자를 끌어들여서 자신의 정신세계를 정당화할 수 있는가?
그건 불가능….
‘아니, 아니야.’
박문대처럼 똑똑하고 대단한 사람은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 내가 편한 대로 믿어버리면 문대가….’
잠깐.
“…어?”
선아현은 모순을 알아차렸다.
‘내가 믿어도… 어차피 문대는 무조건, 상담을 받겠다고 했잖아.’
그러면… 괜찮은 것 아닌가?
‘내가 어떻게 생각해도.’
선아현이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박문대가 도움이 필요할 시 전문가를 만날 수 있다면 말이다.
‘그… 렇네.’
목구멍까지 차 있던 것이 천천히 가라앉는 느낌에, 선아현은 작게 심호흡했다.
잘못된 선택에 대한 공포가 녹아내렸다.
고정된 결론은 박문대의 노림수대로 제 역할을 했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이 뭔가… 뭔가, 선아현이 예측하고 대비하던 방향이 아니었다.
‘그… 좀 더 깊은 대화를.’
할 줄 알았건만, 이건 순 작곡 캠프에서 일할 때 자료를 수집하는 것 같은 분위기였다!
“…….”
우스운 것은, 당황과 혼란 중에도 선아현의 이성이 판단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증거 제출에 말이다.
이건 상담이 아니라 작업이었다.
“자, 원래 박문대였던 류건우. 지금 나랑 몸이 바뀐 상태야.”
“…….”
“참고로 청우 형은 내 친가 쪽 사촌이었어.”
하지만 이다음에 닥친 상황은… 선아현으로서도 생각하지 못한 초자연적 증명이었다.
박문대는 가벼운 인사를 주선한 뒤에, 선아현에게 갑자기 날카로운 질문을 했다.
“내가 홀로그램을 본다고 하는 게 가장 신경 쓰였을 것 같은데. 아닌가.”
“…….”
“환각이잖아. 제일 심각하지.”
박문대는 선아현의 얼굴이 어두워지는 것을 보고 피식 웃었다.
“그럼 자세한 이야기 전에, 이게 환각이 아닌 것부터 증명하고 가자고.”
“…….”
“노트에 적은 질문이 있지.”
“으, 으응.”
“나한테 보여줘. 그런데 그전에.”
박문대는 일어나더니, 모니터를 뒤로 돌렸다.
“이러면 화면에 있는 ‘류건우’한테는 네 노트가 안 보일 거야. 그렇지?”
“마, 맞아….”
“아니다. 잠깐.”
박문대는 아예 모니터를 껐다.
“…!”
“이러면 스피커만 살아 있는 거지. 꼼수는 못 써. 애초에 내 컴퓨터도 아니고.”
“…….”
박문대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건지 선아현은 짐작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박문대는 멈추지 않았다.
“이제 나한테 노트를 보여줘.”
“……응.”
선아현은 거스르지 않고 조용히, 떨리는 손으로 노트를 돌려서 박문대에게 보여주었다.
유려한 필기체였다.
-왜 문대는 류건우와 몸이 바뀌었을까.
곧 박문대가 설명할 질문이었다.
정확히는… ‘대체 왜 바뀌었다고 생각할까’에 가까웠을 것이라 박문대는 쉽게 짐작했지만.
큰달은 아니었다.
“…!!”
선아현은 귀를 의심했다.
꺼진 모니터.
그 옆의 스피커.
듣기 좋게 상냥한 남성의 목소리가 부드럽게 흘러나오고 있었다.
“…….”
노트에 적힌 질문에 대한 대답이었다.
찰팍.
노트가 바닥에 떨어졌다.
선아현은 피가 식는 기분으로, 노트를 내려다보았다가… 문대에게로 고개를 올렸다.
박문대는 천연덕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홀로그램창으로 연결되어 있거든.”
소름이 쭉 돋았다.
“그냥 아무거나 써서 보여줘 봐. 이걸로 전달할 테니까.”
선아현은 이를 악물고 노트를 주워 들었다.
그리고 아무 생각이나 적었다.
짐작으로는 절대 맞출 수 없는 것으로.
외국어.
-pas de deux
그리고 소리가 울린다.
“…….”
이게… 이게?
선아현은 탁자를 움켜쥐었다. 눈앞이 핑글핑글 돌기 시작했다.
상식이… 파괴당하고 있었다.
여긴 자신의 방이었다. 아무 장치가 없는 건 본인이 알고, 박문대에게도 뭔가를 따로 설치할 수 있는 어떤 여유도 없었다.
심지어 박문대가 선수 쳐서 말하고 있다.
흰 반 팔에 주머니 없는 잠옷 바지 차림인 박문대는 가볍게 자리에서 뛰었다.
“지금 내 차림에 소형 카메라 숨기는 건 불가능하지만… 그래도 일단 네 카메라 탐지기 좀 빌린다.”
“…….”
그리고 알아서 선아현의 책상 구석에 놓인 카메라 탐지기를 들어서 자신의 몸과 탁자 주변을 한 바퀴 돌렸다.
물론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아.’
선아현은 눈을 깜박였다.
‘그렇다면, 그렇다면….’
하지만 그 머리에서 논리적인 결론을 도출하기도 전.
“하지만 역시 하나는 신뢰가 떨어지지.”
“…??”
선아현은 고개를 들었다.
박문대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제 다른 사람도 끼워서 해보자. 청우 형이랑 이세진 지금 부른다.”
“…….”
“그거 외에도 뭐, 의심 가는 점 있으면 바로 말하고.”
박문대는 웃었다.
“내일까지 시간 많으니까.”
스토리를 풀기 전에, 철저히 실증적 증명부터 하고 가려는 계획의 시작 단계.
그렇게 박문대의 증명은 해가 질 때까지 계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