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3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35화
이번엔 OST니, 기존에 만들던 앨범 곡과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엔 다들 동의했다.
“게임처럼 콜라보도 아니니까 그냥 영화에 맞게 만들어줘야지.”
“그러면서 테스타 색은 딱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중심을 영화에 두고 테스타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베이스로 깔리는 것.
다만 문제가 있다.
“으응… 게, 게임처럼 메인 멜로디가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자료를 줘야 만들든 말든 하지.”
영화사에서 제공한 게 별로 없었다.
‘유출 문제로 제한’이라면서 준 키워드와 시나리오 요약 일부는 생각보다도 부실했다.
키워드부터 보자.
[우주, 사이버펑크, 초능력, 전투, 포커스]
줄거리는 뻔한 SF 히어로 영화 수준이다. 세계관 설명도 거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지나친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비밀유지 각서라도 쓰면 되지, 오디션 보러 오는 놈들에게 알려주는 것보다도 적을 것 같다.
“우선 영화 OST 작법에 맞게 배경 음악이라는 것을 의식한 상태에서 작곡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김래빈은 비장하게 외치고 작업에 돌입해도 나머지 멤버들은 딱히 맡을 게 없어졌다.
‘OST 작법을 모르는데 제로베이스에서 뭐 할 게 있나.’
나흘 남았는데 이제 와서 속성으로 배워서 벼락치기 하기도 힘들다.
‘기껏해야 멜로디나 만져야겠군….’
브레인스토밍할 거리도 없다. 이대론 잉여 인력으로 김래빈이 만든 것에 피드백이나 하게 생겼다.
‘이 사태를 피하려고 캠프를 시작했는데.’
지금 OST 작곡에서는 별수 없이 전을 답습하는 게 입이 좀 쓰다. 나는 목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대 형 어디 가요?”
“물 마시러.”
“저도 가요!”
차유진이 따라붙었다. 어쩐지 주방에만 가면 따라오는 것 같은데… 착각은 아닌 것 같군.
“이거 먹어도 돼요?”
“그래.”
어차피 비용처리 되니 사실상 절반은 네가 내는 거나 다름없다는 건 굳이 말해주지 말자. 이놈도 돈은 충분하니까.
그렇게 호텔 냉장고 속 스낵을 찾아서 입에 털어 넣던 차유진은 갑자기 말을 던졌다.
[형 얼굴에서 고민이 보이는데요?]
“…뭐.”
“이거 맛있어요! 받아요!”
필요 없다.
나는 얼결에 놈이 내미는 견과류를 받아 씹으며 중얼거렸다.
“고민 있어요?”
뭐, 뻔하지 않나.
“나흘 만에 OST 뽑기가 강행군이라 그렇지. 회사가 준 재료도 별로 없고.”
현실적인 말에 휘둘리는 놈은 아니니 이 정도 말은 해도 괜찮겠지.
예상대로 차유진은 멀쩡해 보였으나,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폭탄 발언을 했다.
“저 회사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
차유진은 스낵 봉투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탕.
“일부러라고.”
[그렇죠. 이건 완전히 명확한데요. 음, 이 회사는 우리에게 일을 주기 싫은 것 같죠?]
“…….”
계속 말해봐라.
나는 벽에 기대섰다. 차유진은 마찬가지로 벽에 기댔다.
[우리가 갑자기 끼어들어서 불쾌하단 거예요. 뭐, 약간의 편견이 작용했을 수도 있죠.]
아.
‘인종 차별 쪽인가.’
현지인이었던 놈이니 도리어 잘 알겠군.
“경험담이냐?”
“없지 않아요! 근데 신경 안 써요.”
이젠 이중부정도 쓰는군.
뭐 차유진의 한국어 실력이 어쨌든, 대수롭지 않다는 놈의 표정을 보니 심각한 일은 없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것도 알아요. 잘하면 말 못 해요.”
오.
“그리고 안 해도 돼요. 우리는 OST 안 해도 멋져요!”
“너 미국 가고 싶어 했잖아.”
[뭐, 언제나 다른 옵션이 있잖아요!]
여전하다. 쿨하게 거절해도 손해 볼 건 없다 이거군.
‘이놈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머리 쓰는 티를 내는 건 오랜만인데.’
좀 흥미롭다. 부추겨 볼까.
“그럼 그만두긴 싫은데, 이 새끼들이 괘씸하면?”
“[그럼 뭐, 나는 100% 제대로 된 의뢰서를 원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죠. 스타들은 원래 그렇잖아요. 그리고] 저는 하고 싶어요! 우리 회사가 메일 보내요.”
흠.
확실히 시원한 방법이긴 하다만… 우리가 T1 라인을 타고 비집고 들어간 것도 맞으니, 굳이 상대에게 대놓고 반박할 빌미를 줄 건 없지.
나는 씩 웃었다.
“더 조용하고 시원한 방법이 있다면?”
“…! 저 알려줘요!”
그래.
“음… 이놈들이 일을 주는 척 부당하게 나오는 것부터 보자면.”
오히려 좋은 상황이다.
나는 웃으며 페트병을 땄다.
“그렇게 돌려 말할 정도라는데 주목해야지.”
“두 개가 달라요?”
“달라.”
나는 물을 마셨다.
“딱 잘라 거절 못 하는 상태라는 거야.”
그러니까 아닌 척 무리한 요구나 하는 거 아니냐.
“Oh….”
차유진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좋아요?”
“우리 회사가 힘 좀 쓰고 있다는 뜻이야.”
“우리 회사 라임스톤보다 강해요?”
그 미친 저작권 대기업을 상대로 아무리 T1이라도 그럴 리가 있냐.
“그건 아니고 유착 관계라 그렇지. 한국에서 라임스톤 영화 배급을 다 T1 엔터가 하거든.”
“오우.”
분명 영화사가 거절 못 한 이유가 있다. 뭔진 몰라도 T1이 예상보다 괜찮은 딜을 내놓은 것이다.
아마도 T1은 우리가 한 제안을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보내는 아부의 청신호로 본 거겠지.
‘직속 레이블 제안이 무산돼서 빈정 상하려던 참에, 우리가 알아서 숙이고 들어왔다고 생각했나.’
완전히 오해지만 써먹기 좋게 됐다.
아무튼 대상 가수의 해외 파이를 키우고 싶은 건 T1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신나서 영화사와 컨택해서 빅딜은 한 것 같다.
근데 영화사는 T1과 사이를 고려해서 일단 오케이는 했는데, 막상 실무진은 뜬금없이 미국인도 아닌 KPOP 아이돌이 끼어드니 짜증 났다 이거지.
나는 턱을 만졌다.
‘영화사 중간선 어딘가에서 누가 장난치고 있군.’
기껏해야 외국 놈들에 OST 한 곡 정도니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나.
“라임스톤 쪽 실무진 대가리 중에 누가 우릴 고깝게 보나 본데.”
“알았어요! 근데 방법 언제 알려줘요?”
“지금.”
보채긴. 나는 씩 웃었다.
“그래. 지금까지 한 설명의 뜻은….”
“알려주세요!”
당당하군.
“일단 이놈들이 부른 터무니없는 조건을 맞추면, 무조건 우릴 오케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야.”
“음?”
“윗사람들끼리는 다 합의된 상황이잖아. 명분 없으면 거절 못 해. 수정 요청이라면 모를까.”
그럼 질러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방법은… 일단 잘 만든 완성본을 보내는 거야.”
“부우우우. 그거 지는 거예요.”
이놈이.
“그냥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키워드 이상을 덧붙여서 만드는 거지.”
나는 물을 마셨다.
“이 영화사의 기존 히어로 영화와 게임사의 게임 세계관 키워드를 자체적으로 추가해서, 정교하게 추가 작업을 하는 거야.”
“왜 그렇게 해줘요?”
“부끄럽게 만들어야 해서.”
“음?”
나는 빈 페트병을 구겼다.
“그걸 보내면서 솔직히 덧붙이는 거지. 너희가 뭘 너무 안 보내줘서 알아서 자료를 수집해 만들었다고.”
“Uuuuuh!”
“그리고 다음 말이 중요해.”
“뭐예요?”
나는 웃었다.
“담당자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OST 데모 의뢰할 때 보통 이런 수준의 정보와 기간이 필요하다고 친절히 알려주는 거야.”
“…!”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미팅할 때는 이런 걸 준비해야 한다고 유치원생 가르치듯이 알려주면 된다. 그럼 끝이야.”
아무리 OST 한 곡이라도 외부인 첫 미팅 준비를 윗선 보고 없이 누락할 수는 없을 테지.
그럼 장난친 놈이 누군지 몰라도 도망칠 구석은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양측 회사에 스스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WOW.”
차유진이 태세를 전환했다.
“형 그거 완전 Badass예요!”
“마음에 드냐.”
“저 좋아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차유진은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더니, 심지어 호텔 응접실로 달려가서 자기가 먼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 멋진 OST 만들어서 부끄럽게 만들어요!”
“뭐?”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차유진의 말을 보충해 가며 설명을 완성했다. 멤버들은 얼떨떨한 얼굴이었으나 곧 진지해졌다.
“품위 있는 방법이네.”
“괜찮네요~ 혹시 일 틀어져도 저희는 최선을 다한 거잖아요.”
이러면 혹시 일 틀어지더라도 여론전에서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그것도 고려했지.
“다수결 한번 해볼까요?”
“그래.”
즉각 만장일치로 오케이가 떨어지는 순간, 차유진은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 멤버들 정말 멋져요!”
그리고 김래빈은 또 신나기 시작했다.
“그럼 얼른 작업에 착수해야겠군요.”
“그래. 우리가 얼른 영화랑 게임 레퍼런스 끌어올게~ 우리 래빈이 화이팅!”
“예!”
그렇게 김래빈을 제외한 잉여 인력도 할 일이 생겼다.
“음, 그럼 그쪽에 보낼 설명문은 회사에 말씀드려 놓을까?”
“음, 그것도 우리가 써야 더 효과가 좋을 것 같긴 한데요.”
이 단기간에 미묘한 뉘앙스를 다 살리는 통역사를 붙여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차라리 당사자인 우리가 품을 좀 더 들이는 게 낫다.
‘마침 적임자도 있고.’
“저 해요??”
“아니. 넌 레퍼런스 모아라. 미국 문화를 잘 아니까.”
“OK~”
차유진은 아니다. 적극적이긴 하다만 솔직히 공문서 어휘를 잘 쓸 것 같진 않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현아.”
“으응…?”
“영문으로 우리 작업 설명문 만들 수 있을까.”
선아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으으응…!”
해외 명문 사립에서 유학하고 영문 어휘도 고급스러우니 이쪽이 낫겠지. 보내기 전에 전문가에게 검수 한번 받으면 된다.
게다가 선아현은 프로듀싱에 잘 참여하지 못하니,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 기꺼운 모양이다.
“열심히, 할게…!”
“좋아.”
이걸로 선아현도 마음의 부담을 좀 던 것 같군.
큰세진이 씩 웃었다.
“아~ 다 정리된 것 같은데, 다시 우리 화이팅하고 가볼까요?”
“그러자!”
공기가 다시 활기차졌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김래빈은 이제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럼 설명문과 번역을 고려해서… 데드라인이 한나절 줄었군요.”
“…….”
“…….”
김래빈은 엄지를 들었다.
“예정 캠프 일자가 애초에 사흘이었으니 딱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네가 괜찮다면 우리는 다 괜찮다.
* * *
“아… 피곤한데.”
T1 ENT의 대외협력부서 당직 근무자는 한숨을 쉬었다.
국외 연락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도 오니, 어쩔 수 없이 주에 하루 긴급 대기를 서는 게 최악이었다.
쪽잠도 자고 넷플러스도 보긴 하지만 그래도 지루했다.
‘애초에 이 시간에 오는 건 나한테 열람 권한도 거의 없고.’
당부받은 몇 가지 거래처에서 긴급이 오면 빨리 연락 돌리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다. 근무자는 한숨과 함께 회사 ERP 시스템을 굴렸다.
그러다가 문서가 하나 보였다.
[테스타(TeSTAR) 영화 협력 건]
워낙 핫한 아이돌이라 알음알음 부서 내 소문을 듣긴 했다.
‘라임스톤이랑 일하겠다고 먼저 말했지.’
그리고 그저께쯤 실제 데모를 보냈다고 들은 것 같다.
열람 권한이 없어서 어깨너머로 살짝 확인한 정도지만, 부록으로 붙은 설명문까지 굉장히 정성껏 만들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찜찜했다.
‘이렇게까지 하나….’
솔직히, 좀 비굴해 보일 정도였다.
‘누가 봐도 얘네 무시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에서 대상까지 탄 아이돌이….’
회사가 시킨 게 아닐까?
어쩐지 대리로 자존심이 상해서, 근무자는 핑계 삼아 신나게 회사 욕이나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도 짬을 바탕으로 짧게 예측했다.
‘간택하듯이 오케이 사인 주면 그걸로 또 언플이나 싸갈기겠지, 이 망할 회사….’
그때였다.
새 메일이 도착했다.
[Fw: In response to your request of…….]
수신자부터 눈에 들어왔다.
‘라임스톤!’
얼른 클릭해 보…고 싶어도 권한은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겉핥기라도 하고 있는 근무자의 눈에, 하나가 들어 왔다.
첨부 파일 용량.
‘어….’
도착한 것은, 테스타가 보낸 수준으로 볼륨이 큰 파일 더미였다…!
‘대체 뭘 보내서 그런 거지?’
단순한 오케이 사인이라면 이렇게 클 리가 없고, 계약 조항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씨!’
열람 권한이 없어서 볼 수 없다는 게 답답할 지경이었다…! 당직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날이 밝은 뒤, 당직자는 기어코 메일의 사정을 얻어듣게 된다.
그것이 돌려돌려 보낸 자진 납세 및 화해의 제스처라는 것을.
‘우아아악!’
시원한 대리 사이다였다.
‘대체 뭐라고 보낸 거지? 아니, 그보다 얼마나 곡을 잘 만든 거야?’
* * *
“제대로 된 의뢰서가 왔어.”
“오.”
통했군.
물론 실제로 미팅 자리 나가면 또 무슨 소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 이렇게 되면 미팅 없이 그냥 메일만 주고받을 수도 있겠어.’
그래도 나는 멤버들이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1승은 1승이지.’
류청우는 웃으며 브리핑을 계속했다.
“수정 요청은 거의 없고, 곡 구조 관련해서 편곡 요청만 좀 있어.”
“어렵지 않습니다!”
김래빈은 거의 날아다니고 있다. 사흘간 카페인 음료를 물처럼 들이키며 작업한 놈이라곤 믿을 수 없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재밌나 보군.’
그때였다. 류청우가 의아한 기색을 내비친 것이.
“그리고… 카메오 출연까지 묶어서 계약하자는데?”
“…?”
“진짜요? 영화 카메오?”
“응.”
나는 감탄했다.
이 새끼들….
일이 이렇게 됐다고 정말 한국 흥행 뽕을 뽑아먹으려 드는군.
“이 영화 말씀하시는 거 맞죠?”
“응. 그냥 배경에 지나가듯이 나오나 봐.”
“그 정도라면….”
“괜찮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 같이 한 놈을 쳐다보았다.
“왜, 왜…?”
“형만 믿을게요.”
“…!?”
천재 아역배우 배세진. 할리우드 도전의 때가 왔다.
“믿지 마!”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35화
이번엔 OST니, 기존에 만들던 앨범 곡과는 좀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엔 다들 동의했다.
“게임처럼 콜라보도 아니니까 그냥 영화에 맞게 만들어줘야지.”
“그러면서 테스타 색은 딱 보여주는 것도 중요하잖아요~”
중심을 영화에 두고 테스타는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만 베이스로 깔리는 것.
다만 문제가 있다.
“으응… 게, 게임처럼 메인 멜로디가 있다면, 더 좋을 텐데.”
“…자료를 줘야 만들든 말든 하지.”
영화사에서 제공한 게 별로 없었다.
‘유출 문제로 제한’이라면서 준 키워드와 시나리오 요약 일부는 생각보다도 부실했다.
키워드부터 보자.
줄거리는 뻔한 SF 히어로 영화 수준이다. 세계관 설명도 거의 없다.
‘아무리 그래도 지나친데.’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비밀유지 각서라도 쓰면 되지, 오디션 보러 오는 놈들에게 알려주는 것보다도 적을 것 같다.
“우선 영화 OST 작법에 맞게 배경 음악이라는 것을 의식한 상태에서 작곡을 진행해 보겠습니다….”
그러니 김래빈은 비장하게 외치고 작업에 돌입해도 나머지 멤버들은 딱히 맡을 게 없어졌다.
‘OST 작법을 모르는데 제로베이스에서 뭐 할 게 있나.’
나흘 남았는데 이제 와서 속성으로 배워서 벼락치기 하기도 힘들다.
‘기껏해야 멜로디나 만져야겠군….’
브레인스토밍할 거리도 없다. 이대론 잉여 인력으로 김래빈이 만든 것에 피드백이나 하게 생겼다.
‘이 사태를 피하려고 캠프를 시작했는데.’
지금 OST 작곡에서는 별수 없이 전을 답습하는 게 입이 좀 쓰다. 나는 목을 돌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문대 형 어디 가요?”
“물 마시러.”
“저도 가요!”
차유진이 따라붙었다. 어쩐지 주방에만 가면 따라오는 것 같은데… 착각은 아닌 것 같군.
“이거 먹어도 돼요?”
“그래.”
어차피 비용처리 되니 사실상 절반은 네가 내는 거나 다름없다는 건 굳이 말해주지 말자. 이놈도 돈은 충분하니까.
그렇게 호텔 냉장고 속 스낵을 찾아서 입에 털어 넣던 차유진은 갑자기 말을 던졌다.
“…뭐.”
“이거 맛있어요! 받아요!”
필요 없다.
나는 얼결에 놈이 내미는 견과류를 받아 씹으며 중얼거렸다.
“고민 있어요?”
뭐, 뻔하지 않나.
“나흘 만에 OST 뽑기가 강행군이라 그렇지. 회사가 준 재료도 별로 없고.”
현실적인 말에 휘둘리는 놈은 아니니 이 정도 말은 해도 괜찮겠지.
예상대로 차유진은 멀쩡해 보였으나,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폭탄 발언을 했다.
“저 회사 일부러 그러는 거예요!”
“…!”
차유진은 스낵 봉투를 구겨서 쓰레기통에 던졌다.
탕.
“일부러라고.”
“…….”
계속 말해봐라.
나는 벽에 기대섰다. 차유진은 마찬가지로 벽에 기댔다.
아.
‘인종 차별 쪽인가.’
현지인이었던 놈이니 도리어 잘 알겠군.
“경험담이냐?”
“없지 않아요! 근데 신경 안 써요.”
이젠 이중부정도 쓰는군.
뭐 차유진의 한국어 실력이 어쨌든, 대수롭지 않다는 놈의 표정을 보니 심각한 일은 없던 모양이었다.
“그래서 이것도 알아요. 잘하면 말 못 해요.”
오.
“그리고 안 해도 돼요. 우리는 OST 안 해도 멋져요!”
“너 미국 가고 싶어 했잖아.”
여전하다. 쿨하게 거절해도 손해 볼 건 없다 이거군.
‘이놈이 이렇게 적극적으로 머리 쓰는 티를 내는 건 오랜만인데.’
좀 흥미롭다. 부추겨 볼까.
“그럼 그만두긴 싫은데, 이 새끼들이 괘씸하면?”
“[그럼 뭐, 나는 100% 제대로 된 의뢰서를 원한다고 소리를 지르는 거죠. 스타들은 원래 그렇잖아요. 그리고] 저는 하고 싶어요! 우리 회사가 메일 보내요.”
흠.
확실히 시원한 방법이긴 하다만… 우리가 T1 라인을 타고 비집고 들어간 것도 맞으니, 굳이 상대에게 대놓고 반박할 빌미를 줄 건 없지.
나는 씩 웃었다.
“더 조용하고 시원한 방법이 있다면?”
“…! 저 알려줘요!”
그래.
“음… 이놈들이 일을 주는 척 부당하게 나오는 것부터 보자면.”
오히려 좋은 상황이다.
나는 웃으며 페트병을 땄다.
“그렇게 돌려 말할 정도라는데 주목해야지.”
“두 개가 달라요?”
“달라.”
나는 물을 마셨다.
“딱 잘라 거절 못 하는 상태라는 거야.”
그러니까 아닌 척 무리한 요구나 하는 거 아니냐.
“Oh….”
차유진이 심드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근데 왜 좋아요?”
“우리 회사가 힘 좀 쓰고 있다는 뜻이야.”
“우리 회사 라임스톤보다 강해요?”
그 미친 저작권 대기업을 상대로 아무리 T1이라도 그럴 리가 있냐.
“그건 아니고 유착 관계라 그렇지. 한국에서 라임스톤 영화 배급을 다 T1 엔터가 하거든.”
“오우.”
분명 영화사가 거절 못 한 이유가 있다. 뭔진 몰라도 T1이 예상보다 괜찮은 딜을 내놓은 것이다.
아마도 T1은 우리가 한 제안을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보내는 아부의 청신호로 본 거겠지.
‘직속 레이블 제안이 무산돼서 빈정 상하려던 참에, 우리가 알아서 숙이고 들어왔다고 생각했나.’
완전히 오해지만 써먹기 좋게 됐다.
아무튼 대상 가수의 해외 파이를 키우고 싶은 건 T1도 마찬가지였을 테니, 신나서 영화사와 컨택해서 빅딜은 한 것 같다.
근데 영화사는 T1과 사이를 고려해서 일단 오케이는 했는데, 막상 실무진은 뜬금없이 미국인도 아닌 KPOP 아이돌이 끼어드니 짜증 났다 이거지.
나는 턱을 만졌다.
‘영화사 중간선 어딘가에서 누가 장난치고 있군.’
기껏해야 외국 놈들에 OST 한 곡 정도니 이래도 된다고 생각했나.
“라임스톤 쪽 실무진 대가리 중에 누가 우릴 고깝게 보나 본데.”
“알았어요! 근데 방법 언제 알려줘요?”
“지금.”
보채긴. 나는 씩 웃었다.
“그래. 지금까지 한 설명의 뜻은….”
“알려주세요!”
당당하군.
“일단 이놈들이 부른 터무니없는 조건을 맞추면, 무조건 우릴 오케이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야.”
“음?”
“윗사람들끼리는 다 합의된 상황이잖아. 명분 없으면 거절 못 해. 수정 요청이라면 모를까.”
그럼 질러도 된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방법은… 일단 잘 만든 완성본을 보내는 거야.”
“부우우우. 그거 지는 거예요.”
이놈이.
“그냥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키워드 이상을 덧붙여서 만드는 거지.”
나는 물을 마셨다.
“이 영화사의 기존 히어로 영화와 게임사의 게임 세계관 키워드를 자체적으로 추가해서, 정교하게 추가 작업을 하는 거야.”
“왜 그렇게 해줘요?”
“부끄럽게 만들어야 해서.”
“음?”
나는 빈 페트병을 구겼다.
“그걸 보내면서 솔직히 덧붙이는 거지. 너희가 뭘 너무 안 보내줘서 알아서 자료를 수집해 만들었다고.”
“Uuuuuh!”
“그리고 다음 말이 중요해.”
“뭐예요?”
나는 웃었다.
“담당자가 잘 모르는 것 같은데, OST 데모 의뢰할 때 보통 이런 수준의 정보와 기간이 필요하다고 친절히 알려주는 거야.”
“…!”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미팅할 때는 이런 걸 준비해야 한다고 유치원생 가르치듯이 알려주면 된다. 그럼 끝이야.”
아무리 OST 한 곡이라도 외부인 첫 미팅 준비를 윗선 보고 없이 누락할 수는 없을 테지.
그럼 장난친 놈이 누군지 몰라도 도망칠 구석은 없다.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 양측 회사에 스스로 설명해야 할 것이다.
“WOW.”
차유진이 태세를 전환했다.
“형 그거 완전 Badass예요!”
“마음에 드냐.”
“저 좋아요!”
마음에 든다니 다행이군.
차유진은 하이파이브를 요청하더니, 심지어 호텔 응접실로 달려가서 자기가 먼저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희 멋진 OST 만들어서 부끄럽게 만들어요!”
“뭐?”
이럴 줄 알았다.
나는 차유진의 말을 보충해 가며 설명을 완성했다. 멤버들은 얼떨떨한 얼굴이었으나 곧 진지해졌다.
“품위 있는 방법이네.”
“괜찮네요~ 혹시 일 틀어져도 저희는 최선을 다한 거잖아요.”
이러면 혹시 일 틀어지더라도 여론전에서 무조건 이길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그것도 고려했지.
“다수결 한번 해볼까요?”
“그래.”
즉각 만장일치로 오케이가 떨어지는 순간, 차유진은 휘파람을 불었다.
“우리 멤버들 정말 멋져요!”
그리고 김래빈은 또 신나기 시작했다.
“그럼 얼른 작업에 착수해야겠군요.”
“그래. 우리가 얼른 영화랑 게임 레퍼런스 끌어올게~ 우리 래빈이 화이팅!”
“예!”
그렇게 김래빈을 제외한 잉여 인력도 할 일이 생겼다.
“음, 그럼 그쪽에 보낼 설명문은 회사에 말씀드려 놓을까?”
“음, 그것도 우리가 써야 더 효과가 좋을 것 같긴 한데요.”
이 단기간에 미묘한 뉘앙스를 다 살리는 통역사를 붙여줄 것 같지도 않고 말이다. 차라리 당사자인 우리가 품을 좀 더 들이는 게 낫다.
‘마침 적임자도 있고.’
“저 해요??”
“아니. 넌 레퍼런스 모아라. 미국 문화를 잘 아니까.”
“OK~”
차유진은 아니다. 적극적이긴 하다만 솔직히 공문서 어휘를 잘 쓸 것 같진 않고.
나는 고개를 돌렸다.
“아현아.”
“으응…?”
“영문으로 우리 작업 설명문 만들 수 있을까.”
선아현의 얼굴이 환해졌다.
“으으응…!”
해외 명문 사립에서 유학하고 영문 어휘도 고급스러우니 이쪽이 낫겠지. 보내기 전에 전문가에게 검수 한번 받으면 된다.
게다가 선아현은 프로듀싱에 잘 참여하지 못하니,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것이 기꺼운 모양이다.
“열심히, 할게…!”
“좋아.”
이걸로 선아현도 마음의 부담을 좀 던 것 같군.
큰세진이 씩 웃었다.
“아~ 다 정리된 것 같은데, 다시 우리 화이팅하고 가볼까요?”
“그러자!”
공기가 다시 활기차졌다.
그리고 그 분위기에서, 김래빈은 이제 깨달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그럼 설명문과 번역을 고려해서… 데드라인이 한나절 줄었군요.”
“…….”
“…….”
김래빈은 엄지를 들었다.
“예정 캠프 일자가 애초에 사흘이었으니 딱 맞을 것 같습니다!”
그래, 네가 괜찮다면 우리는 다 괜찮다.
* * *
“아… 피곤한데.”
T1 ENT의 대외협력부서 당직 근무자는 한숨을 쉬었다.
국외 연락은 한국 시간으로 새벽에도 오니, 어쩔 수 없이 주에 하루 긴급 대기를 서는 게 최악이었다.
쪽잠도 자고 넷플러스도 보긴 하지만 그래도 지루했다.
‘애초에 이 시간에 오는 건 나한테 열람 권한도 거의 없고.’
당부받은 몇 가지 거래처에서 긴급이 오면 빨리 연락 돌리는 것 외에는 할 게 없다. 근무자는 한숨과 함께 회사 ERP 시스템을 굴렸다.
그러다가 문서가 하나 보였다.
워낙 핫한 아이돌이라 알음알음 부서 내 소문을 듣긴 했다.
‘라임스톤이랑 일하겠다고 먼저 말했지.’
그리고 그저께쯤 실제 데모를 보냈다고 들은 것 같다.
열람 권한이 없어서 어깨너머로 살짝 확인한 정도지만, 부록으로 붙은 설명문까지 굉장히 정성껏 만들었다는 건 알 수 있었다.
그래서 찜찜했다.
‘이렇게까지 하나….’
솔직히, 좀 비굴해 보일 정도였다.
‘누가 봐도 얘네 무시하는 것 같았는데 우리나라에서 대상까지 탄 아이돌이….’
회사가 시킨 게 아닐까?
어쩐지 대리로 자존심이 상해서, 근무자는 핑계 삼아 신나게 회사 욕이나 했다.
그리고 앞으로의 미래도 짬을 바탕으로 짧게 예측했다.
‘간택하듯이 오케이 사인 주면 그걸로 또 언플이나 싸갈기겠지, 이 망할 회사….’
그때였다.
새 메일이 도착했다.
수신자부터 눈에 들어왔다.
‘라임스톤!’
얼른 클릭해 보…고 싶어도 권한은 없었다. 그래서 아쉬운 대로 겉핥기라도 하고 있는 근무자의 눈에, 하나가 들어 왔다.
첨부 파일 용량.
‘어….’
도착한 것은, 테스타가 보낸 수준으로 볼륨이 큰 파일 더미였다…!
‘대체 뭘 보내서 그런 거지?’
단순한 오케이 사인이라면 이렇게 클 리가 없고, 계약 조항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아이씨!’
열람 권한이 없어서 볼 수 없다는 게 답답할 지경이었다…! 당직자는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날이 밝은 뒤, 당직자는 기어코 메일의 사정을 얻어듣게 된다.
그것이 돌려돌려 보낸 자진 납세 및 화해의 제스처라는 것을.
‘우아아악!’
시원한 대리 사이다였다.
‘대체 뭐라고 보낸 거지? 아니, 그보다 얼마나 곡을 잘 만든 거야?’
* * *
“제대로 된 의뢰서가 왔어.”
“오.”
통했군.
물론 실제로 미팅 자리 나가면 또 무슨 소리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아니, 이렇게 되면 미팅 없이 그냥 메일만 주고받을 수도 있겠어.’
그래도 나는 멤버들이 웃으며 하이파이브를 하는 것을 굳이 말리지 않았다.
‘1승은 1승이지.’
류청우는 웃으며 브리핑을 계속했다.
“수정 요청은 거의 없고, 곡 구조 관련해서 편곡 요청만 좀 있어.”
“어렵지 않습니다!”
김래빈은 거의 날아다니고 있다. 사흘간 카페인 음료를 물처럼 들이키며 작업한 놈이라곤 믿을 수 없는 적극성을 보여준다.
‘재밌나 보군.’
그때였다. 류청우가 의아한 기색을 내비친 것이.
“그리고… 카메오 출연까지 묶어서 계약하자는데?”
“…?”
“진짜요? 영화 카메오?”
“응.”
나는 감탄했다.
이 새끼들….
일이 이렇게 됐다고 정말 한국 흥행 뽕을 뽑아먹으려 드는군.
“이 영화 말씀하시는 거 맞죠?”
“응. 그냥 배경에 지나가듯이 나오나 봐.”
“그 정도라면….”
“괜찮나?”
그리고 자연스럽게 우리는 다 같이 한 놈을 쳐다보았다.
“왜, 왜…?”
“형만 믿을게요.”
“…!?”
천재 아역배우 배세진. 할리우드 도전의 때가 왔다.
“믿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