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3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34화
큰세진이 믿었다.
‘이게 어떻게 됐냐.’
나도 모르겠다. 어젯밤에 내가 무슨 보정이라도 받았나 싶어서 상태창까지 켜봤지만 별일 없었다.
완전히 평시 상태에서 큰세진은 내 사정을 납득했다.
‘이게… 된다고.’
아직도 얼떨떨하다. 하지만… 당연히 싫은 건 아니다.
좀 이상하긴 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태도가 변하지 않을 거란 예측도 하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오늘 콘서트를 좀… 과하게 한 것 같다만.
‘폐 떨어질 것 같네.’
“여기요!”
“감사, 합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스탭에게 받은 수건과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심지어… 여기까지도 안 갔어.’
사실, 이 안에는 내가 어젯밤 폭로를 위해 마련한 대비책이 있었다.
‘큰세진은 현실적인 성격이다.’
그리고 그런 놈이 웹소설에나 나올 개소리를 납득하려면 실물 증거라도 들이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그나마 있는 건 정황뿐이다.
‘관계자들의 증언.’
내가 쓸 수 있는 패가 말뿐이니, 그거라도 다양하게 수종별로 확보하려고 했었지.
일단 류청우.
-내가 도움이 되면 당연히 해야지.
그러면서도 일단 둘이 대화부터 해보라고 했지.
다음은 큰달.
-저… 이세진 님이랑 화상 통화해요?
이놈이야 대환영이었다.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큰달과는 나중에 한 번 만나기로 큰세진을 끼고 약속까지 잡아놨다.
다음이 문제다.
“…….”
나와 우호적이거나, 큰세진 본인이 잘 모르는 놈만 섭외해 봤자 의심할 구석이 있지 않은가.
큰세진이 봤을 때 적대관계인 관계자도 하나 섭외해야 스펙트럼이 맞았다.
청려.
-그래요?
놈은 ‘굳이 그 짓을 왜 하냐’고 의아해하는 것 같았지만 거절하진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을 뿐이지.
-상관은 없지만… 난 추천은 안 하는데요.
-안 믿을 테니까.
그래 X발. 사실 나도 그렇게 의심했다.
그런데 믿었다.
‘내 설명만 듣고 믿었다고.’
부정하진 않겠다.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탓일 수도 있겠지만, 다 끝나고 야밤에 내 방으로 돌아가는데 정수리까지 짜릿했다.
덕분에 나는 어제 인터넷에 올라오면 논란으로 매장당할 짓을 했다.
잠들기 전 새벽, 대선배에게 문자를 넣은 것이다.
[믿었는데요]
그리고 오늘 아침에 온 답장이 이것이다.
[그래요?]
[다음에 한 번 데려와요^^]
미쳤나.
‘뭘 자연스럽게 초대를 하고 있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나는 찜찜한 눈으로 스마트폰에서 눈을 뗐다.
그때였다.
“…뭐 해?”
“뭐 연락 온 건 없나 해서요.”
“그렇구나.”
배세진이 마침 말을 걸었다. 녀석은 뜸을 들이더니, 결국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너희… 화해한 거지?”
나는 웃었다. 콘서트 준비하느라 말할 타이밍이 없다 싶더니, 끝나자마자 물어보는군.
“네.”
“후우우….”
배세진은 긴장이 풀린 듯이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땅 꺼지겠다.
나는 새삼스레 놈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 덕에 집합 시간을 늦춰줬다고 했지.
“고맙습니다.”
“뭐, 뭘.”
“시간도 그렇고, 이세진한테 저랑 대화하라고 말해주신 거요.”
“…! 드, 들었어?”
“네. 일부러는 아니고 우연히. 덕분에 저도 사과할 용기가 생겼거든요.”
배세진 얼굴이 터질 듯이 벌게졌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근데 형까지 걔한테 사과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알아, 그냥 말 트려고 한 얘기지…!”
“…….”
그랬냐.
“걔 완전 너랑 분위기가….”
“…….”
그렇게까지 티가 났냐.
배세진은 거의 입에서 혼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몰골이었다.
“내가, 내가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잘한 건지 모르겠는데.”
“잘하셨다니까요.”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
그래도 배세진의 말 자체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저놈이 또래 사이를 중재하려고 시도해 본 역사가 있겠는가.
‘학교 다닐 때도 본인이 자발적으로 다른 놈들을 다 따돌리고 다닌 것 같던데.’
저놈도 자기 첫 시도가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몰랐나 보다.
“그래, 아무튼… 화해해서 다행이고….”
배세진은 색다른 경험에 생명력이라도 소모했는지 하얗게 불탄 것 같았으나, 썩 뿌듯해 보였다.
‘야식이라도 하나 만들어줘야 하나.’
나는 입을 열려다가, 큰세진이 류청우와 대화하다 말고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확인했다.
‘설마 류청우랑 하나씩 나눠서 마크했냐.’
이런 취급은 또 처음이다.
그리고 다가온 큰세진은 내게 몇 번 눈짓한 뒤, 배세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형.”
“어어?”
“감사합니다. 청우 형한테 들었어요. 집합 시간 늦춰주셨다면서요?”
‘그걸 너한테도 말했냐’는 얼굴이 배세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으나, 곧 뿌듯함이 이긴 것 같았다.
“큼, 우린 그룹이잖아. 이런 건 다 같이 그, 양해하는 게 좋지. …그리고! 나만 생각한 건 아니고… 다들 동의했어.”
“…….”
“뭐, 음, 너는 왜 일에 지장을 줬냐,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그런 생각 안 해요.”
“…!”
큰세진은 목을 만지작거렸다. 저 새끼 쪽팔리나 본데.
“형이 여기 그렇게 신경 쓸 줄은 몰랐거든요. 아니,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요.”
“…….”
놔두고 슬쩍 빠져나갈까 했으나, 혹시 또 개싸움이 날 수도 있으니 일단 있어 보기로 했다.
배세진은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으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긴 했다.
“왜… 내가 신경 안 쓸 줄 알았다는 건데?”
“다른 멤버 일을 신경은 쓰셔도 피하실 줄 알았어요. 거북하잖아요.”
“…!”
참고로, 놀란 건 나다.
‘이 새끼가 웬일로 대가리에 든 그대로 말하고 있냐.’
심지어 억지로 필터를 거쳐 말하던 배세진의 입도 슬슬 자유분방해지기 시작했다.
“거북하긴 하지.”
“네.”
“그런데 내일 콘서트기도 했고, 내가 너희 싸운 데 끼기도 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해본 거야.”
“…….”
“너도 그랬을 거잖아.”
“…!”
큰세진은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이 됐다. 배세진은 제법 그럴싸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흠, 아니야?”
“…아뇨.”
그 순간, 큰세진이 표정을 풀고 씩 웃었다.
“당연히 그랬겠죠. 형, 아무튼 제가 쓸데없이 오해한 거였네요. 죄송해요.”
“…….”
“그리고 감사해요. 정말요.”
“그래. 음, 고생했어.”
분위기가 훅 가벼워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박문대! 너도 고생했고!”
민망하니까 날 끌어들이는군.
“뭘요. 저희 슬슬 내려가죠.”
“아, 그래.”
그제야 우리 셋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른 놈들은 이미 다 대기실로 간 후였다.
그 와중에 큰세진은 문득 피식피식 웃더니, 농담까지 던졌다.
“혹시 형 저희 룸메이트 할 때 거실에 나가 있던 것도 그래서예요? 할 수 있는 일을 해본다?”
“아니… 그건 불편한 거 맞는데.”
“…….”
“…….”
“예. 뭐.”
“크흠, 다음에 룸메이트 되면… 그, 대화도 좀 해보고 하자.”
큰세진이 한 번 더 도전했다.
“형 제가 말 걸어도 제대로 대답도 안 하셨으면서!”
“아니! 그건 진짜 할 말이 없어서!”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말하니까 훨씬 낫군.
‘서로 악의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감을 못 했나 본데.’
지금 체감한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 가끔 형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거 아시죠?”
“알아. 나도 그래.”
큰세진과 배세진은 이번엔 저 정도 선에서 정리될 모양이다.
큰 진전이었다.
‘같이 붙여놔도 폭발하진 않겠어.’
나는 의외의 소득을 제법 기껍게 받아들였다.
* * *
대기실에 들어와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형들! 잘 오셨습니다!
-형 이거 맛있어요. 먹어요!
나름대로 감추려고 하지만 이놈들 다 티가 나더라고.
‘난 너희가 싸웠고 화해한 걸 알고 있으며 거기 나름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다’… 분위기 말이다.
심지어 스탭까지 소문이 났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지나간다. 아 망할.
-아하하, 고마워~
큰세진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 알고 있었다는 게 상당히 쪽팔린 모양이군. 안다. 나도 그러거든.
그러면서도 놈은 내게 조용히 말을 남겼다.
-박문대 문제 생기면 언제든 말해라? 소개해 준다던 분도 얼른 보고 싶네~
그래.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야 나쁘지 않다.
‘류청우랑은 알아서 대화한 것 같고.’
…좀 홀가분했다. 나는 어깨를 폈다. 그러다 눈에 다른 놈이 들어왔다.
선아현.
놈은 혼자 구석에 앉아서 뭔가를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 왜, 왜…?”
“아니.”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입장에서는 팀에서 본인을 제외한 동갑 둘이 싸웠다가 화해한 건데, 가시방석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까지 다 알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앞으로도 좀… 이놈을 빼놓고 말할 일이 또 생기게 생겼군.
나는 일단 얼버무렸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 아냐…! 걱정은 했지만, 화, 화해할 줄 알았어.”
선아현은 작게 웃더니, 곧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기… 무, 문대가 고민 생기면, 나한테도, 언제든지 말해도 괜찮아.”
“…….”
이놈 설마 다 알고 떠보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
“고마워.”
“뭐, 뭘.”
선아현은 웃으며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코 고민했다.
‘혹시 이놈이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큰세진도 믿을지 몰랐는데 무슨.
뭐, 어차피 큰세진을 이 판에 그렇게 끌어들일 생각도 없으니 크게 선아현이 소외될 일은 없겠지.
나도 놈의 옆에서 내 소지품이나 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발견했다. 배세진의 전자기기… 음, 전자책 리더기인가.
“이거 형 거죠.”
“어? 그래.”
나는 그것을 든 김에 놈에게 건넸고, 그 과정에서 기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잠금이 걸려 있었으나 책 제목은 보였다.
[싸워도 괜찮은 하루]
“…….”
“…참고삼아서!”
“네.”
자기계발서다.
진짜… 열심히 했나 본데.
‘여기서 칭찬 안 박으면 웃기겠군.’
나는 당장 입을 열었다.
“형이 확실히… 일단 하면 잘하시는 것 같아요.”
“…!”
놀랍게도 배세진은 이 말에 기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약간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프로듀싱도 그렇고. 그, 내가 못 할 것 같았는데 일단 시도하면 잘되는 것도 있었구나 싶어서… 놀랐어.”
“…….”
“앞으로… 좀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좋은 생각입니다.”
“응.”
배세진은 새롭게 다짐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다짐을 실행할 만한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며칠 후.
“영화사에서 답변이 왔어.”
“오오오.”
폐허공장의 게임 세계관을 차용해 만드는 영화의 OST 문의는 T1을 타고 무사히 전달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회사의 연락을 받은 류청우가 난감하게 웃었다.
‘…난감?’
“긍정적이야.”
“대박!”
“Woooow!”
제일 기대하던 차유진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류청우의 난감한 기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근데… 기한이 엄청 촉박해.”
“예?”
설마.
“지금 우리가 밀고 들어가는 상황인가 봐. 그래서 진짜 참여할 마음이 있다면….”
“있다면?”
“나흘 안에 데모를 내놔야 한다는데?”
“…!”
미친 소리였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김래빈을 보았다. 전문가의 고견이 필요한 상황이 맞았으니까.
그러나 난 이미 답을 알았다.
‘안 봐도 뻔하지.’
예상대로 김래빈은…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과연 문대 형님이십니다. 이 사태를 우려하셔서 일주일에 사흘간 합숙이라는 강력한 정책을 가져오셨군요!”
“…….”
그렇다고 치자.
케이팝 불지옥 캠프… 재개장.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34화
큰세진이 믿었다.
‘이게 어떻게 됐냐.’
나도 모르겠다. 어젯밤에 내가 무슨 보정이라도 받았나 싶어서 상태창까지 켜봤지만 별일 없었다.
완전히 평시 상태에서 큰세진은 내 사정을 납득했다.
‘이게… 된다고.’
아직도 얼떨떨하다. 하지만… 당연히 싫은 건 아니다.
좀 이상하긴 했다.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말해본 적이 없었으니까.
모든 이야기를 다 듣고 나서도 태도가 변하지 않을 거란 예측도 하지 않았으니까.
덕분에 오늘 콘서트를 좀… 과하게 한 것 같다만.
‘폐 떨어질 것 같네.’
“여기요!”
“감사, 합니다.”
나는 숨을 몰아쉬며 스탭에게 받은 수건과 스마트폰을 내려다보았다.
‘심지어… 여기까지도 안 갔어.’
사실, 이 안에는 내가 어젯밤 폭로를 위해 마련한 대비책이 있었다.
‘큰세진은 현실적인 성격이다.’
그리고 그런 놈이 웹소설에나 나올 개소리를 납득하려면 실물 증거라도 들이밀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그나마 있는 건 정황뿐이다.
‘관계자들의 증언.’
내가 쓸 수 있는 패가 말뿐이니, 그거라도 다양하게 수종별로 확보하려고 했었지.
일단 류청우.
-내가 도움이 되면 당연히 해야지.
그러면서도 일단 둘이 대화부터 해보라고 했지.
다음은 큰달.
-저… 이세진 님이랑 화상 통화해요?
이놈이야 대환영이었다. 뭐 더 말할 것도 없다.
더불어 큰달과는 나중에 한 번 만나기로 큰세진을 끼고 약속까지 잡아놨다.
다음이 문제다.
“…….”
나와 우호적이거나, 큰세진 본인이 잘 모르는 놈만 섭외해 봤자 의심할 구석이 있지 않은가.
큰세진이 봤을 때 적대관계인 관계자도 하나 섭외해야 스펙트럼이 맞았다.
청려.
-그래요?
놈은 ‘굳이 그 짓을 왜 하냐’고 의아해하는 것 같았지만 거절하진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했을 뿐이지.
-상관은 없지만… 난 추천은 안 하는데요.
-안 믿을 테니까.
그래 X발. 사실 나도 그렇게 의심했다.
그런데 믿었다.
‘내 설명만 듣고 믿었다고.’
부정하진 않겠다. 졸려서 제정신이 아닌 탓일 수도 있겠지만, 다 끝나고 야밤에 내 방으로 돌아가는데 정수리까지 짜릿했다.
덕분에 나는 어제 인터넷에 올라오면 논란으로 매장당할 짓을 했다.
잠들기 전 새벽, 대선배에게 문자를 넣은 것이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온 답장이 이것이다.
미쳤나.
‘뭘 자연스럽게 초대를 하고 있어.’
무슨 속셈인지 모르겠군. 나는 찜찜한 눈으로 스마트폰에서 눈을 뗐다.
그때였다.
“…뭐 해?”
“뭐 연락 온 건 없나 해서요.”
“그렇구나.”
배세진이 마침 말을 걸었다. 녀석은 뜸을 들이더니, 결국 기대에 찬 얼굴로 말했다.
“너희… 화해한 거지?”
나는 웃었다. 콘서트 준비하느라 말할 타이밍이 없다 싶더니, 끝나자마자 물어보는군.
“네.”
“후우우….”
배세진은 긴장이 풀린 듯이 길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땅 꺼지겠다.
나는 새삼스레 놈을 쳐다보았다.
이 녀석 덕에 집합 시간을 늦춰줬다고 했지.
“고맙습니다.”
“뭐, 뭘.”
“시간도 그렇고, 이세진한테 저랑 대화하라고 말해주신 거요.”
“…! 드, 들었어?”
“네. 일부러는 아니고 우연히. 덕분에 저도 사과할 용기가 생겼거든요.”
배세진 얼굴이 터질 듯이 벌게졌다. 나는 피식 웃었다.
“근데 형까지 걔한테 사과하실 필요는 없었는데.”
“나도 알아, 그냥 말 트려고 한 얘기지…!”
“…….”
그랬냐.
“걔 완전 너랑 분위기가….”
“…….”
그렇게까지 티가 났냐.
배세진은 거의 입에서 혼이라도 나올 것 같은 몰골이었다.
“내가, 내가 이런 상황이 처음이라…. 잘한 건지 모르겠는데.”
“잘하셨다니까요.”
지금까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무슨 소리냐.
그래도 배세진의 말 자체는 무슨 뜻인지 이해했다. 저놈이 또래 사이를 중재하려고 시도해 본 역사가 있겠는가.
‘학교 다닐 때도 본인이 자발적으로 다른 놈들을 다 따돌리고 다닌 것 같던데.’
저놈도 자기 첫 시도가 이렇게 잘 먹힐 줄은 몰랐나 보다.
“그래, 아무튼… 화해해서 다행이고….”
배세진은 색다른 경험에 생명력이라도 소모했는지 하얗게 불탄 것 같았으나, 썩 뿌듯해 보였다.
‘야식이라도 하나 만들어줘야 하나.’
나는 입을 열려다가, 큰세진이 류청우와 대화하다 말고 이쪽으로 접근하는 것을 확인했다.
‘설마 류청우랑 하나씩 나눠서 마크했냐.’
이런 취급은 또 처음이다.
그리고 다가온 큰세진은 내게 몇 번 눈짓한 뒤, 배세진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형.”
“어어?”
“감사합니다. 청우 형한테 들었어요. 집합 시간 늦춰주셨다면서요?”
‘그걸 너한테도 말했냐’는 얼굴이 배세진의 얼굴을 스쳐 지나갔으나, 곧 뿌듯함이 이긴 것 같았다.
“큼, 우린 그룹이잖아. 이런 건 다 같이 그, 양해하는 게 좋지. …그리고! 나만 생각한 건 아니고… 다들 동의했어.”
“…….”
“뭐, 음, 너는 왜 일에 지장을 줬냐, 뭐 그럴 수도 있겠지만 이것도….”
“그런 생각 안 해요.”
“…!”
큰세진은 목을 만지작거렸다. 저 새끼 쪽팔리나 본데.
“형이 여기 그렇게 신경 쓸 줄은 몰랐거든요. 아니, 비꼬는 게 아니라, 진짜요.”
“…….”
놔두고 슬쩍 빠져나갈까 했으나, 혹시 또 개싸움이 날 수도 있으니 일단 있어 보기로 했다.
배세진은 화가 난 것 같지는 않았으나, 표정이 차분히 가라앉긴 했다.
“왜… 내가 신경 안 쓸 줄 알았다는 건데?”
“다른 멤버 일을 신경은 쓰셔도 피하실 줄 알았어요. 거북하잖아요.”
“…!”
참고로, 놀란 건 나다.
‘이 새끼가 웬일로 대가리에 든 그대로 말하고 있냐.’
심지어 억지로 필터를 거쳐 말하던 배세진의 입도 슬슬 자유분방해지기 시작했다.
“거북하긴 하지.”
“네.”
“그런데 내일 콘서트기도 했고, 내가 너희 싸운 데 끼기도 했으니까… 할 수 있는 일을 해본 거야.”
“…….”
“너도 그랬을 거잖아.”
“…!”
큰세진은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이 됐다. 배세진은 제법 그럴싸한 표정으로 말했다.
“크흠, 아니야?”
“…아뇨.”
그 순간, 큰세진이 표정을 풀고 씩 웃었다.
“당연히 그랬겠죠. 형, 아무튼 제가 쓸데없이 오해한 거였네요. 죄송해요.”
“…….”
“그리고 감사해요. 정말요.”
“그래. 음, 고생했어.”
분위기가 훅 가벼워졌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박문대! 너도 고생했고!”
민망하니까 날 끌어들이는군.
“뭘요. 저희 슬슬 내려가죠.”
“아, 그래.”
그제야 우리 셋은 복도를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다른 놈들은 이미 다 대기실로 간 후였다.
그 와중에 큰세진은 문득 피식피식 웃더니, 농담까지 던졌다.
“혹시 형 저희 룸메이트 할 때 거실에 나가 있던 것도 그래서예요? 할 수 있는 일을 해본다?”
“아니… 그건 불편한 거 맞는데.”
“…….”
“…….”
“예. 뭐.”
“크흠, 다음에 룸메이트 되면… 그, 대화도 좀 해보고 하자.”
큰세진이 한 번 더 도전했다.
“형 제가 말 걸어도 제대로 대답도 안 하셨으면서!”
“아니! 그건 진짜 할 말이 없어서!”
이럴 줄 알았다.
그래도 솔직히 마음에 안 드는 점을 말하니까 훨씬 낫군.
‘서로 악의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실감을 못 했나 본데.’
지금 체감한 모양이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저 가끔 형 진짜 이해가 안 되는 거 아시죠?”
“알아. 나도 그래.”
큰세진과 배세진은 이번엔 저 정도 선에서 정리될 모양이다.
큰 진전이었다.
‘같이 붙여놔도 폭발하진 않겠어.’
나는 의외의 소득을 제법 기껍게 받아들였다.
* * *
대기실에 들어와 돌아갈 준비를 하면서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형들! 잘 오셨습니다!
-형 이거 맛있어요. 먹어요!
나름대로 감추려고 하지만 이놈들 다 티가 나더라고.
‘난 너희가 싸웠고 화해한 걸 알고 있으며 거기 나름 기여한 것 같아 뿌듯하다’… 분위기 말이다.
심지어 스탭까지 소문이 났는지 싱글벙글 웃으며 지나간다. 아 망할.
-아하하, 고마워~
큰세진은 웃음을 멈추지 않았다. 다 알고 있었다는 게 상당히 쪽팔린 모양이군. 안다. 나도 그러거든.
그러면서도 놈은 내게 조용히 말을 남겼다.
-박문대 문제 생기면 언제든 말해라? 소개해 준다던 분도 얼른 보고 싶네~
그래.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면야 나쁘지 않다.
‘류청우랑은 알아서 대화한 것 같고.’
…좀 홀가분했다. 나는 어깨를 폈다. 그러다 눈에 다른 놈이 들어왔다.
선아현.
놈은 혼자 구석에 앉아서 뭔가를 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소스라치게 놀랐다.
“…? 왜, 왜…?”
“아니.”
그러고 보니 이 녀석 입장에서는 팀에서 본인을 제외한 동갑 둘이 싸웠다가 화해한 건데, 가시방석 아니었을까 싶다.
‘이렇게까지 다 알 줄은 몰랐는데.’
게다가 앞으로도 좀… 이놈을 빼놓고 말할 일이 또 생기게 생겼군.
나는 일단 얼버무렸다.
“신경 쓰이게 해서 미안하다고.”
“아, 아냐…! 걱정은 했지만, 화, 화해할 줄 알았어.”
선아현은 작게 웃더니, 곧 작은 목소리로 덧붙였다.
“저기… 무, 문대가 고민 생기면, 나한테도, 언제든지 말해도 괜찮아.”
“…….”
이놈 설마 다 알고 떠보는… 건 당연히 아니겠지.
“고마워.”
“뭐, 뭘.”
선아현은 웃으며 자신의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코 고민했다.
‘혹시 이놈이 알게 되면 어떻게 반응할지는…….’
모르겠다. 애초에 큰세진도 믿을지 몰랐는데 무슨.
뭐, 어차피 큰세진을 이 판에 그렇게 끌어들일 생각도 없으니 크게 선아현이 소외될 일은 없겠지.
나도 놈의 옆에서 내 소지품이나 들어 올리기도 했다.
그러다 발견했다. 배세진의 전자기기… 음, 전자책 리더기인가.
“이거 형 거죠.”
“어? 그래.”
나는 그것을 든 김에 놈에게 건넸고, 그 과정에서 기기 화면에 불이 들어왔다.
잠금이 걸려 있었으나 책 제목은 보였다.
“…….”
“…참고삼아서!”
“네.”
자기계발서다.
진짜… 열심히 했나 본데.
‘여기서 칭찬 안 박으면 웃기겠군.’
나는 당장 입을 열었다.
“형이 확실히… 일단 하면 잘하시는 것 같아요.”
“…!”
놀랍게도 배세진은 이 말에 기겁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약간 들뜬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러게. 프로듀싱도 그렇고. 그, 내가 못 할 것 같았는데 일단 시도하면 잘되는 것도 있었구나 싶어서… 놀랐어.”
“…….”
“앞으로… 좀 적극적으로 해보려고.”
“좋은 생각입니다.”
“응.”
배세진은 새롭게 다짐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다짐을 실행할 만한 기회는 머지않아 찾아왔다.
며칠 후.
“영화사에서 답변이 왔어.”
“오오오.”
폐허공장의 게임 세계관을 차용해 만드는 영화의 OST 문의는 T1을 타고 무사히 전달된 모양이었다.
그러나 회사의 연락을 받은 류청우가 난감하게 웃었다.
‘…난감?’
“긍정적이야.”
“대박!”
“Woooow!”
제일 기대하던 차유진이 휘파람을 불었다. 그러나 류청우의 난감한 기색은 사라지지 않았다.
“근데… 기한이 엄청 촉박해.”
“예?”
설마.
“지금 우리가 밀고 들어가는 상황인가 봐. 그래서 진짜 참여할 마음이 있다면….”
“있다면?”
“나흘 안에 데모를 내놔야 한다는데?”
“…!”
미친 소리였다.
모두가 반사적으로 김래빈을 보았다. 전문가의 고견이 필요한 상황이 맞았으니까.
그러나 난 이미 답을 알았다.
‘안 봐도 뻔하지.’
예상대로 김래빈은… 눈을 번쩍이고 있었다.
“과연 문대 형님이십니다. 이 사태를 우려하셔서 일주일에 사흘간 합숙이라는 강력한 정책을 가져오셨군요!”
“…….”
그렇다고 치자.
케이팝 불지옥 캠프… 재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