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2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6화
내가 본부장에게 ‘대상 수상 시 독립 레이블 설립’ 딜을 걸 때, 조건으로 달았던 시상식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었다.
기간 내로 달성하기 힘들어 보여서 회사가 경각심을 낮추고 사인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지.
-‘연간 시상식’이란 그해 음악 시장에서의 판매 수치를 70% 이상 방영하는, 음원 혹은 음반 플랫폼 주체가 개최하는 시상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탄 대상을 보자.
음원 플랫폼에서 주최하며 판매 수치를 75%까지 반영하는 시상식에서 받았다.
‘흠잡을 곳 없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조건 달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나보다 먼저 발언한 놈이 있다.
“우리… 이제 독립할 수 있어!”
오늘 연습실에서 매니저가 사라지자마자 배세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친 소리다.
“도, 독립이요…?”
“형 집 나가요? 독립 그거 아니에요?”
물론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는 반응이 돌아왔고 배세진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놈은 꿋꿋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기억 안 나? 박문대가 계약서 가지고 왔었잖아. 우리 대상 타면 레이블 세울 수 있게 해준다고!”
“…!”
마침 잘됐군. 다른 놈이 총대 메줘서 말 꺼내기가 수월해졌다. 나는 나를 돌아보는 놈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전담팀을 아예 레이블로 독립시켜서 산하 편성해달라고 했었죠.”
“오오오.”
“그간 수많은 일을 경험하며 잊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순히 좋은 반응을 보인다.
망할 교통사고로부터 시간도 꽤 지나서 회사에 대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든 상태라지만, 그렇다고 망한 평판이 회복될 일도 없어서 말이다.
“그래. 세진이가 말 잘 꺼냈어. 회사에 이야기해 봐야겠네.”
“크흠,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 매니저님 돌아오면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
그러나 모두가 이 말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큰세진은 연습실 거울과 배세진을 몇 번 눈으로 흘끗거리는 것 같더니, 곧 서글서글하게 말을 꺼냈다.
“아~ 정말 좋은 일이긴 한데요, 일단 시상식 시즌 끝나면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지금은 저희 준비할 것도 많고….”
“무슨 소리야, 할 수 있을 때 바로 이야기해야 다른 소리 못 하지…!”
“…….”
큰세진은 잠깐 입술을 꿈틀거렸으나, 곧 다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형님 생각해 보세요. 올해엔 저희가 대상을 몇 곳에서는 더 받지 않을까요?”
음, 그렇지.
“내년 초에 시상식 많은데, 저희가 거기서도 대상 몇 번 더 받고 나서 딱 정리한 뒤에 이야기하면 회사가 정말로 다른 소리 못할 것 같아요. 무조건 가는 거죠~”
“오우~”
큰세진은 차유진의 추임새에 엄지를 들어 보인 다음,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당장 시상식 준비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무대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물론 그냥 제 의견이지만요.”
“…….”
그리고 이 말이 뭘 건드렸는지, 배세진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무대 준비를 소홀히 하겠다는 뜻은 아니잖아. 열심히 할 거야.”
“저도 그런 뜻이…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안 맞는 놈들끼리 정중해지려고 애쓰는군. 나는 그쯤에서 대화를 끊었다.
“좀 일찍 말하냐 나중에 말하냐 차이 가지고 서로 힘 빼지 말죠.”
어차피 답은 하나 아닌가. 나는 팔짱을 꼈다.
“어떻게 되든 무조건 레이블 차려서 나올 거니까.”
“…….”
“그, 그렇지.”
“암, 우리 그래야지.”
뭐, 왜.
“음… 그럼 다수결로 할까?”
상황을 정리하러 나온 류청우가 제안한 대로, 작은 분쟁은 깔끔히 투표로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박빙이었다.
“4:3이야.”
당장 말하자는 쪽에 투표를 넣은 건 배세진, 선아현, 류청우.
그리고… 여기 더해진 한 표로 승자가 정해졌다.
“문대도 바로 이쪽이지?”
“네.”
바로 나다.
“…!”
류청우는 곧바로 선언했다.
“바로 말씀드리자는 쪽이 더 많네. 그럼 이쪽으로 진행 방향 잡는 걸로?”
“세진 형 말 멋있어요! 투표가 이상….”
“에이 유진이 왜 그래! 깨끗이 승복해야지!”
큰세진은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팀 의견이 그렇다면야 뭐~ 대신 다들 연습 평소처럼 열심히 하는 거예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물론이지.”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연습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연습 도중 화장실에 가다가 뒤따라온 큰세진에게 헤드록을 걸렸다.
“문대문대 이건 배신이야…! 하나씩 제대로 처리해야지 이게 뭐냐고~ 회사하고 이미 이야기라도 됐어?”
결과에 승복은 개뿔. 이놈 역시 아닌 척하더니 빡쳤군.
나는 가까스로 벗어나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아니면?”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그냥 이 새끼들한테 빨리 레이블 뜯고 싶어서 말이지….”
“…….”
아니, 꼭 미션 때문이 아니더라도 회사 경영진 돌아가는 꼴이 짜증 나잖냐.
선 넘는 것도 한두 번이다. 매번 이러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큰세진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문대 넌 그럴 수 있겠다….”
왜? 아, 내가 교통사고로 제일 크게 다쳐서 정상 참착해 줬다 이거군.
‘반대로 생각하면 말 꺼낸 다른 놈은 이해 못 하겠다는 뜻이고.’
배세진 말이다.
전부터 슬슬 약발 떨어지고 있단 생각은 들었다만, 특히 연말 연초나 활동기처럼 감정, 체력 소모가 심한 시즌에는 둘이 참고 넘어가는 정도가 간당간당해지는군.
팀으로 오래 지내며 암묵 서열이 무너진 탓에 전처럼 일방적으로 큰세진이 강자의 입장은 아니었으나, 동등해서 생기는 새로운 잡음도 있다.
‘흠.’
나는 직접 배세진을 옹호하려다 분위기 말아먹는 대신 살짝 돌려 말했다.
“무대 준비에는 문제없게 잘 조절할 테니까 걱정 말고.”
“알지… 그런데 그것도 다 신경 쓸 일이잖냐.”
큰세진은 한숨을 쉬며 걸었다.
“전체적으로 다들 너무 마음이 급해. 레이블 독립이 장난도 아니고, 회사가 쉽게 안 풀어주려고 할 텐데…. 뭐하러 미리 이야기해서 대처할 시간을 주는 거야…… 후.”
그래, 그 말이 옳다. 계약서만 믿을 순 없고, 환경을 충분히 갖추는 게 좋지.
나는 솔직히 인정했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네 이야기가 맞아.”
“야, 그 이야기를 아까 했어야지!”
그럼 표가 바뀔 수도 있는데 안 되지 새끼야.
그래도 저 말을 하는 심정은 알겠으니, 나는 그 대신 내 추측을 말했다.
“문제는 그 합리적인 생각을 회사도 했을 거란 점이지.”
“…….”
큰세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곧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벌써 알고 있겠네.”
“그렇지.”
회사가 우리 같은 돈줄이 은근히 발 빼는 건을 깜빡할 리가 있나.
분명 우리가 대상을 타는 그 순간에 관련 미팅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빨리 말하는 편이 명분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말이야.”
“…휴.”
큰세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지부진 짜증 나겠어.”
그리고 그 말대로 사건은 전개되었다.
연습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매니저를 통해 전달한 ‘레이블 설립’ 이야기는 다음 날 느지막하게 답장이 왔다.
“지금 연말, 연초 시즌이라 소속사 내부에서도 한창 의사 결정할 일이 많아서 미팅을 바로 잡기는 힘들 것 같다고…….”
까고 있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바로 수작부터 부리는군.’
1번. 시간 벌기다.
일단 어떻게든 약속 이행 기간 미뤄보려고 수작질 부리는 거다. 그사이에 변호사 만나고 있겠지.
‘계약 다 채우면 재계약 때 레이블 넣어주겠다’ 따위의 오퍼를 만들면서 말이다.
‘계약서에 이행 기간 표기를 따로 안 했으니까.’
그것까지 적는 순간 굉장히 귀찮게 나올 것 같아서 일단 뺐지.
신의성실의 원칙 같은 걸 들먹이며 윽박지를 수도 있지만, 레이블을 설립해도 어차피 T1 산하니까 여기선 눈치껏 적당히 재촉해야 한다.
‘아예 T1을 나가고 싶은 것처럼 과격해 보이면 안 돼.’
어디까지나 아티스트로서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어서라는 느낌을 줘야 한다.
“흠….”
나는 연습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짧게 생각을 정리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달칵.
“저기.”
연습실 문을 열고 나온 놈이 말을 걸었다. 배세진이다.
‘뭐지.’
놈은 문을 닫고 주변을 둘러본 뒤, 내 쪽으로 걸어와서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
“그, 내 의견 동의해 줘서 고맙다고!!”
아, 어제.
배세진은 숨을 내쉬며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더니, 꽤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안 될 거라는 생각도 했어. 아무래도, 내가 요령이 없고 상황 파악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
그렇군.
회사 소송 때도 그렇고, 배세진은 팀에서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너무 자주 겪긴 했다.
“아뇨. 저랑 생각이 겹치셨는데요. 저야말로 먼저 말 꺼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래.”
배세진은 그제야 얼굴을 풀었다. 내심 뿌듯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굳이 시간까지 따로 내서 말할 일인가….’
과연. 무대포에 예민하고 직설적인 놈치고는 본인을 지지해주는 것에 약한 놈이다.
대쪽 같은데도 굉장히 사기꾼에게 털어 먹히기 쉬운 스타일이란 거지.
“……음.”
잠깐.
“왜, 왜?!”
아니, 그렇게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이다.
‘…내가 류건우 몸으로 비슷한 걸 한 것 같은데.’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만났을 때 말이다.
-아까 무대 잘 봤습니다. 언제나 표정이 정말 좋으신 것 같아요.
배세진이 인정 못 받는 상황에서 격려를 했었지.
‘설마 그때 들은 말도 기억할 정도로 인정이나 칭찬에 약한 건 아니겠지.’
나는 유독 ‘배세진 무대 변천사’ 따위를 위튜브에서 찾아보는 놈을 떠올리며 의심했으나 곧 생각을 지웠다.
‘설마.’
아무리 욕먹어도 테스타 될 정도로 팬은 많았던 놈이다. 그런 사건이 한둘이었을 리가 없지.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자.
“그냥, 회사 하는 걸 보니까 레이블 독립이 안 내키는 건 맞구나 싶어서요.”
“그치… 내가 맞은 거 맞지? 이놈들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 그, 더 강하게 나가야 하나…?”
“잠시만요.”
나는 놈을 멈췄다.
“그쪽에 강하게 나갈 필요는 없어요. 그냥… 먼저 움직이면 됩니다.”
“…?”
사실 방금 떠올린 방법이 있거든.
내가 괜히 계약서에서 기간 관련 이야기를 뺀 게 아니다.
‘회사랑 갑을 관계가 박살 난 게 언젠데.’
아까도 생각했던 건이지만, 우리가 레이블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쨌든 T1과의 긴장도를 높여선 안 된다.
하지만 그래 봤자 테스타 받으려고 급조한 자회사인 데다가 우리가 독립하면 자체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T1 Stars’는?
‘명분 있으면 X밥이지.’
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형, 제가 생각이 하나 있는데요.”
* * *
며칠 후, T1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인 ToneA.
아주 고풍스러운 분수대 세트 앞에서 근대식 정장을 입고 무대를 마친 우리는 예정된 것처럼 상을 탔다.
올해의 가수상을.
“축하합니다, 테스타!”
꽃보라와 환호. 이젠 두 번째랍시고 좀 익숙해진 놈들이 환하게 웃으며 단상으로 올라간다.
‘솔직히 이걸 받을지 몰랐다면 말도 안 되는 거고.’
“감사합니다. 32개국에서 생방송 중인 ToneA의 각국 KPOP 리스너분들 앞에서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 대단한 영광이며 무엇보다도 러뷰어분들께 이 기쁨과 감사를 돌리고 싶…….”
나는 숨도 안 쉬고 소감을 뱉어낸 김래빈을 지나, 이전에 하지 못했던 다른 멤버들이 소감을 말하는 것을 경청했다.
그리고 끝의 끝, 프롬프터에 재촉글이 뜰 때.
다들 소감이 마무리되는구나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막 생각난 것처럼 급하게 밝은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질렀다.
“저희 대상 기념으로 레이블 출범해요!”
“…!”
미안한데 너희 추가 계약서에 비밀 엄수 조항을 안 넣었더라고.
‘뭐 어쩔 건데.’
이미 계약 조건도 달성됐겠다, 회사에도 말했겠다, 우리야 감격에 겨워 언급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와하!!”
“잘 부탁드립니다~”
멤버들도 전혀 이 발언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기쁘게 웃고 한마디씩 보태고 있다. 잘하고 있다.
‘좋아.’
게다가 이 선방은 그냥 공표 이상의 추가 효과가 있었다. 절대로 회사가 정정하지 못할 수준의.
‘벌써 반응이 기대되는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회사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더 멋진 모습으로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마이크를 놓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무섭게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6화
내가 본부장에게 ‘대상 수상 시 독립 레이블 설립’ 딜을 걸 때, 조건으로 달았던 시상식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었다.
기간 내로 달성하기 힘들어 보여서 회사가 경각심을 낮추고 사인하도록 만들기 위해서였지.
-‘연간 시상식’이란 그해 음악 시장에서의 판매 수치를 70% 이상 방영하는, 음원 혹은 음반 플랫폼 주체가 개최하는 시상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우리가 탄 대상을 보자.
음원 플랫폼에서 주최하며 판매 수치를 75%까지 반영하는 시상식에서 받았다.
‘흠잡을 곳 없다.’
논쟁의 여지가 없는 조건 달성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걸 나보다 먼저 발언한 놈이 있다.
“우리… 이제 독립할 수 있어!”
오늘 연습실에서 매니저가 사라지자마자 배세진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친 소리다.
“도, 독립이요…?”
“형 집 나가요? 독립 그거 아니에요?”
물론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냐는 반응이 돌아왔고 배세진의 얼굴이 붉어졌으나, 놈은 꿋꿋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기억 안 나? 박문대가 계약서 가지고 왔었잖아. 우리 대상 타면 레이블 세울 수 있게 해준다고!”
“…!”
마침 잘됐군. 다른 놈이 총대 메줘서 말 꺼내기가 수월해졌다. 나는 나를 돌아보는 놈들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전담팀을 아예 레이블로 독립시켜서 산하 편성해달라고 했었죠.”
“오오오.”
“그간 수많은 일을 경험하며 잊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순순히 좋은 반응을 보인다.
망할 교통사고로부터 시간도 꽤 지나서 회사에 대한 감정은 많이 누그러든 상태라지만, 그렇다고 망한 평판이 회복될 일도 없어서 말이다.
“그래. 세진이가 말 잘 꺼냈어. 회사에 이야기해 봐야겠네.”
“크흠, 그렇지. 그러니까 지금 매니저님 돌아오면 바로 이야기를 해보자.”
그러나 모두가 이 말에 동의한 것은 아니었다.
큰세진은 연습실 거울과 배세진을 몇 번 눈으로 흘끗거리는 것 같더니, 곧 서글서글하게 말을 꺼냈다.
“아~ 정말 좋은 일이긴 한데요, 일단 시상식 시즌 끝나면 이야기하는 게 어떨까요? 지금은 저희 준비할 것도 많고….”
“무슨 소리야, 할 수 있을 때 바로 이야기해야 다른 소리 못 하지…!”
“…….”
큰세진은 잠깐 입술을 꿈틀거렸으나, 곧 다시 부드럽게 말을 이었다.
“형님 생각해 보세요. 올해엔 저희가 대상을 몇 곳에서는 더 받지 않을까요?”
음, 그렇지.
“내년 초에 시상식 많은데, 저희가 거기서도 대상 몇 번 더 받고 나서 딱 정리한 뒤에 이야기하면 회사가 정말로 다른 소리 못할 것 같아요. 무조건 가는 거죠~”
“오우~”
큰세진은 차유진의 추임새에 엄지를 들어 보인 다음, 말을 마무리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당장 시상식 준비에 좀 더 집중했으면 좋겠어요. 아무래도 무대가 제일 중요하니까요~ 물론 그냥 제 의견이지만요.”
“…….”
그리고 이 말이 뭘 건드렸는지, 배세진은 한참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
“…내가 무대 준비를 소홀히 하겠다는 뜻은 아니잖아. 열심히 할 거야.”
“저도 그런 뜻이…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안 맞는 놈들끼리 정중해지려고 애쓰는군. 나는 그쯤에서 대화를 끊었다.
“좀 일찍 말하냐 나중에 말하냐 차이 가지고 서로 힘 빼지 말죠.”
어차피 답은 하나 아닌가. 나는 팔짱을 꼈다.
“어떻게 되든 무조건 레이블 차려서 나올 거니까.”
“…….”
“그, 그렇지.”
“암, 우리 그래야지.”
뭐, 왜.
“음… 그럼 다수결로 할까?”
상황을 정리하러 나온 류청우가 제안한 대로, 작은 분쟁은 깔끔히 투표로 마무리되었다.
결과는 박빙이었다.
“4:3이야.”
당장 말하자는 쪽에 투표를 넣은 건 배세진, 선아현, 류청우.
그리고… 여기 더해진 한 표로 승자가 정해졌다.
“문대도 바로 이쪽이지?”
“네.”
바로 나다.
“…!”
류청우는 곧바로 선언했다.
“바로 말씀드리자는 쪽이 더 많네. 그럼 이쪽으로 진행 방향 잡는 걸로?”
“세진 형 말 멋있어요! 투표가 이상….”
“에이 유진이 왜 그래! 깨끗이 승복해야지!”
큰세진은 웃으며 두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 팀 의견이 그렇다면야 뭐~ 대신 다들 연습 평소처럼 열심히 하는 거예요?”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물론이지.”
그렇게 훈훈한 분위기에서 연습이 재개되었다.
그러나 잠시 후.
나는 연습 도중 화장실에 가다가 뒤따라온 큰세진에게 헤드록을 걸렸다.
“문대문대 이건 배신이야…! 하나씩 제대로 처리해야지 이게 뭐냐고~ 회사하고 이미 이야기라도 됐어?”
결과에 승복은 개뿔. 이놈 역시 아닌 척하더니 빡쳤군.
나는 가까스로 벗어나며 말했다.
“그런 건 아니고.”
“아니면?”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중얼거렸다.
“그냥 이 새끼들한테 빨리 레이블 뜯고 싶어서 말이지….”
“…….”
아니, 꼭 미션 때문이 아니더라도 회사 경영진 돌아가는 꼴이 짜증 나잖냐.
선 넘는 것도 한두 번이다. 매번 이러는 것도 재주라면 재주였다.
큰세진은 한숨을 쉬었다.
“그래, 문대 넌 그럴 수 있겠다….”
왜? 아, 내가 교통사고로 제일 크게 다쳐서 정상 참착해 줬다 이거군.
‘반대로 생각하면 말 꺼낸 다른 놈은 이해 못 하겠다는 뜻이고.’
배세진 말이다.
전부터 슬슬 약발 떨어지고 있단 생각은 들었다만, 특히 연말 연초나 활동기처럼 감정, 체력 소모가 심한 시즌에는 둘이 참고 넘어가는 정도가 간당간당해지는군.
팀으로 오래 지내며 암묵 서열이 무너진 탓에 전처럼 일방적으로 큰세진이 강자의 입장은 아니었으나, 동등해서 생기는 새로운 잡음도 있다.
‘흠.’
나는 직접 배세진을 옹호하려다 분위기 말아먹는 대신 살짝 돌려 말했다.
“무대 준비에는 문제없게 잘 조절할 테니까 걱정 말고.”
“알지… 그런데 그것도 다 신경 쓸 일이잖냐.”
큰세진은 한숨을 쉬며 걸었다.
“전체적으로 다들 너무 마음이 급해. 레이블 독립이 장난도 아니고, 회사가 쉽게 안 풀어주려고 할 텐데…. 뭐하러 미리 이야기해서 대처할 시간을 주는 거야…… 후.”
그래, 그 말이 옳다. 계약서만 믿을 순 없고, 환경을 충분히 갖추는 게 좋지.
나는 솔직히 인정했다.
“사실 합리적으로 생각하면 네 이야기가 맞아.”
“야, 그 이야기를 아까 했어야지!”
그럼 표가 바뀔 수도 있는데 안 되지 새끼야.
그래도 저 말을 하는 심정은 알겠으니, 나는 그 대신 내 추측을 말했다.
“문제는 그 합리적인 생각을 회사도 했을 거란 점이지.”
“…….”
큰세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가, 곧 뒤통수라도 한 대 맞은 것 같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
“벌써 알고 있겠네.”
“그렇지.”
회사가 우리 같은 돈줄이 은근히 발 빼는 건을 깜빡할 리가 있나.
분명 우리가 대상을 타는 그 순간에 관련 미팅이 들어갔을 것이다.
“그러면 차라리 빨리 말하는 편이 명분이라도 생길 것 같아서 말이야.”
“…휴.”
큰세진이 쓴웃음을 지었다.
“지지부진 짜증 나겠어.”
그리고 그 말대로 사건은 전개되었다.
연습을 끝내고 돌아가는 길, 매니저를 통해 전달한 ‘레이블 설립’ 이야기는 다음 날 느지막하게 답장이 왔다.
“지금 연말, 연초 시즌이라 소속사 내부에서도 한창 의사 결정할 일이 많아서 미팅을 바로 잡기는 힘들 것 같다고…….”
까고 있네. 나는 코웃음을 쳤다.
‘바로 수작부터 부리는군.’
1번. 시간 벌기다.
일단 어떻게든 약속 이행 기간 미뤄보려고 수작질 부리는 거다. 그사이에 변호사 만나고 있겠지.
‘계약 다 채우면 재계약 때 레이블 넣어주겠다’ 따위의 오퍼를 만들면서 말이다.
‘계약서에 이행 기간 표기를 따로 안 했으니까.’
그것까지 적는 순간 굉장히 귀찮게 나올 것 같아서 일단 뺐지.
신의성실의 원칙 같은 걸 들먹이며 윽박지를 수도 있지만, 레이블을 설립해도 어차피 T1 산하니까 여기선 눈치껏 적당히 재촉해야 한다.
‘아예 T1을 나가고 싶은 것처럼 과격해 보이면 안 돼.’
어디까지나 아티스트로서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하고 싶어서라는 느낌을 줘야 한다.
“흠….”
나는 연습실 복도를 왔다 갔다 하며 짧게 생각을 정리했다. 쉬는 시간이 끝나기 전에는 들어갈 생각이었다.
그때였다.
달칵.
“저기.”
연습실 문을 열고 나온 놈이 말을 걸었다. 배세진이다.
‘뭐지.’
놈은 문을 닫고 주변을 둘러본 뒤, 내 쪽으로 걸어와서 작게 중얼거렸다.
“…고마워.”
“…?”
“그, 내 의견 동의해 줘서 고맙다고!!”
아, 어제.
배세진은 숨을 내쉬며 흥분 상태를 가라앉히더니, 꽤 진지하게 말을 이었다.
“사실 안 될 거라는 생각도 했어. 아무래도, 내가 요령이 없고 상황 파악을 못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아서….”
“…….”
그렇군.
회사 소송 때도 그렇고, 배세진은 팀에서 자기 의견이 받아들여지지 않는 상황을 너무 자주 겪긴 했다.
“아뇨. 저랑 생각이 겹치셨는데요. 저야말로 먼저 말 꺼내주셔서 감사했어요.”
“…그래.”
배세진은 그제야 얼굴을 풀었다. 내심 뿌듯한 모양이었다.
‘그렇다고 이걸 굳이 시간까지 따로 내서 말할 일인가….’
과연. 무대포에 예민하고 직설적인 놈치고는 본인을 지지해주는 것에 약한 놈이다.
대쪽 같은데도 굉장히 사기꾼에게 털어 먹히기 쉬운 스타일이란 거지.
“……음.”
잠깐.
“왜, 왜?!”
아니, 그렇게 보니 생각나는 게 있어서 말이다.
‘…내가 류건우 몸으로 비슷한 걸 한 것 같은데.’
화장실 세면대 앞에서 만났을 때 말이다.
-아까 무대 잘 봤습니다. 언제나 표정이 정말 좋으신 것 같아요.
배세진이 인정 못 받는 상황에서 격려를 했었지.
‘설마 그때 들은 말도 기억할 정도로 인정이나 칭찬에 약한 건 아니겠지.’
나는 유독 ‘배세진 무대 변천사’ 따위를 위튜브에서 찾아보는 놈을 떠올리며 의심했으나 곧 생각을 지웠다.
‘설마.’
아무리 욕먹어도 테스타 될 정도로 팬은 많았던 놈이다. 그런 사건이 한둘이었을 리가 없지.
하던 이야기나 계속하자.
“그냥, 회사 하는 걸 보니까 레이블 독립이 안 내키는 건 맞구나 싶어서요.”
“그치… 내가 맞은 거 맞지? 이놈들 일부러 이러는 거잖아! 그, 더 강하게 나가야 하나…?”
“잠시만요.”
나는 놈을 멈췄다.
“그쪽에 강하게 나갈 필요는 없어요. 그냥… 먼저 움직이면 됩니다.”
“…?”
사실 방금 떠올린 방법이 있거든.
내가 괜히 계약서에서 기간 관련 이야기를 뺀 게 아니다.
‘회사랑 갑을 관계가 박살 난 게 언젠데.’
아까도 생각했던 건이지만, 우리가 레이블을 만드는 과정에서 어쨌든 T1과의 긴장도를 높여선 안 된다.
하지만 그래 봤자 테스타 받으려고 급조한 자회사인 데다가 우리가 독립하면 자체 매출이 절반 이하로 떨어질 ‘T1 Stars’는?
‘명분 있으면 X밥이지.’
나는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형, 제가 생각이 하나 있는데요.”
* * *
며칠 후, T1에서 주최하는 시상식인 ToneA.
아주 고풍스러운 분수대 세트 앞에서 근대식 정장을 입고 무대를 마친 우리는 예정된 것처럼 상을 탔다.
올해의 가수상을.
“축하합니다, 테스타!”
꽃보라와 환호. 이젠 두 번째랍시고 좀 익숙해진 놈들이 환하게 웃으며 단상으로 올라간다.
‘솔직히 이걸 받을지 몰랐다면 말도 안 되는 거고.’
“감사합니다. 32개국에서 생방송 중인 ToneA의 각국 KPOP 리스너분들 앞에서 이렇게 큰 상을 받게 되어 대단한 영광이며 무엇보다도 러뷰어분들께 이 기쁨과 감사를 돌리고 싶…….”
나는 숨도 안 쉬고 소감을 뱉어낸 김래빈을 지나, 이전에 하지 못했던 다른 멤버들이 소감을 말하는 것을 경청했다.
그리고 끝의 끝, 프롬프터에 재촉글이 뜰 때.
다들 소감이 마무리되는구나 생각할 때.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막 생각난 것처럼 급하게 밝은 얼굴로 마이크를 잡았다.
그리고 질렀다.
“저희 대상 기념으로 레이블 출범해요!”
“…!”
미안한데 너희 추가 계약서에 비밀 엄수 조항을 안 넣었더라고.
‘뭐 어쩔 건데.’
이미 계약 조건도 달성됐겠다, 회사에도 말했겠다, 우리야 감격에 겨워 언급했다고 하면 그만이다.
“와하!!”
“잘 부탁드립니다~”
멤버들도 전혀 이 발언에 위화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처럼 기쁘게 웃고 한마디씩 보태고 있다. 잘하고 있다.
‘좋아.’
게다가 이 선방은 그냥 공표 이상의 추가 효과가 있었다. 절대로 회사가 정정하지 못할 수준의.
‘벌써 반응이 기대되는군.’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시는 회사 분들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더 멋진 모습으로 활동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웃으며 마이크를 놓았다.
그리고 그날 저녁부터 무섭게 기사가 뜨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