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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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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5화
KPOP. 주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을 의미하는 신조어.
사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붙인 명칭은 아니다.
‘아마도 한류 시절부터 알음알음 외국에서 말 나오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새 미션이 ‘KPOP 레코드 경신’이라고 한다면, 국외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기록만 인정될 확률이 높지 않나?
상태창 본인에게 확인받기 위해 문자로 물어보았다.
[그런 식으로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맞는 것 같아요 세상에]
“…….”
설마 아무 듣보잡 레코드나 통했는데 내가 이걸 물어봐서 갱신된 건 아니겠지.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닫았다.
숙소에 귀가한 뒤, 지금은 내 방 침대에 앉아있는 중이다.
잘 거냐고? 스페셜 무대 안무 완성본 오는 대로 연습실에 가야 한다. 연말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시즌이 아니라서 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본인 침대에 앉아 대기하던 룸메이트가 입을 열었다.
“기록을 경신해야 한다면, 결국 모든 선임자보다 잘해야 하겠지.”
“그렇죠.”
차에서부터 ‘생각해 볼게’라고 하더니 정말로 고심한 모양이었다. 과연 성실한 놈이다.
이어진 말도 놈의 성격다웠다.
“최근에 새롭게 생긴 평가 항목을 노려보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새 항목이 기록을 만들긴 수월해.”
과연 운동선수로 뛰어본 사람다운 현실적인 발언이었다. 나는 턱을 괬다.
“한번 보죠. 일단 아시아권에서는 웬만한 기록은….”
VTIC이 다 먹었군. X발.
“하하. 선배님들이 열심히 활동하셨지?”
“예.”
정말 그랬다. 몇십 주 1위, 밀리언셀러, 돔 투어까지 이미 기록이란 기록은 다 세운 상태.
심지어 테스타가 국내 입지 확보를 주로 삼는 동안, VTIC은 글로벌 입지를 더 확고히 하기까지 했으니… 닥닥 긁어먹었다고 볼 수 있다.
“남미도 마찬가지죠.”
“그래.”
기존에 케이팝 시장이 히트한 동네는 다 쟁쟁한 기록이 있다. 이걸 내년 여름 중에 갱신하는 건 딱 실탄 하나로 하는 무모한 도전이다.
그리고 꼭 선임자들의 기록만이 방해물인 것도 아니다.
“지금도 다들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요. 성적도 좋고.”
글로벌로 친다면 VTIC뿐만 아니라 꽤 많은 그룹이 테스타보다 성적이 좋다.
류청우도 회사 브리핑에서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렵긴 해.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무대를 만들어도 꼭 결과가 좋을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연예계가 원래 그렇지.
“타이밍과 운의 문제가 크죠.”
“그래.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이런 부분에서 스포츠와 좀 다른 것 같아.”
류청우가 쓰게 웃었다.
“기록 경신은 선수 생활할 때도 도전해 봤지만, 연예인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 참 복잡한 것 같다.”
“그러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류청우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로 분위기가 흘러가는군. 약간 잡는 편이 낫겠지.
나는 화제를 살짝 환기했다.
“듣다 보니 전에 도전하셨던 기록은 뭐였는지도 궁금한데요.”
“응? 하하. 별건 아니고 다들 도전하는 건데.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 3금 말이야. 그걸 최연소로 해보겠다, 그런 애들 소리지.”
“…….”
3금?
한국 양궁은 대체 뭐 하는 업계인지 모르겠다.
‘무슨 금메달을 지역 리그 우승처럼 말하냐.’
저기 생태계야말로 상식 이상이군.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긴, 실패했어. 세계선수권에서 선발로 못 뽑혔거든.”
류청우는 좀 민망해하듯이 씩 웃었다.
“그래도 올림픽 최연소 기록 하나는 건졌어.”
“그것도 충분히 대단한데요.”
“하하, 또 금방 깨질걸? 어린 친구들도 선발 본선에 많이 올라와서….”
“…!”
잠깐. 저 말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 같은데.
‘최연소라.’
갑자기 머릿속에 길 하나가 새롭게 번뜩인다.
‘…그렇지. 그런 접근이 가능하군.’
단순히 통틀어 최고 성적을 노리는 게 아니라, 기록 항목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세분화하는 것 말이다.
대외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있어 보이는 항목’ 쪽으로.
‘좋아, 나왔다.’
이쪽으로 일단 가닥을 잡아야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네 질문은 좀 더 생각해 볼게. 당장은 쓸 만한 이야기 못 해줘서 미안하네.”
“아뇨, 감사합니다. 힌트를 얻은 것 같아요.”
“…?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대체 어디서 얻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으나, 류청우는 그냥 웃어넘겼다.
나는 혹시 몰라 말을 덧붙였다.
“테스타 공동 이득에 해가 되는 쪽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 걱정은 한 적이 없는데… 알았어.”
류청우는 그 정도로 수긍했다.
지난번에 내가 ‘대상을 타야 한다’고 했을 때 보였던 반응과 다를 게 없는 담백함이다.
“…….”
그러고 보니, 심지어 저놈은 끝까지 내가 왜 이런 걸 물어보았는지는 되묻지 않았지. 부담스러울 것을 짐작한 것 같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아까는 차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도 답지 않게 상황에 좀 감명해 버린 바람에 얼결에 감동적으로 비비고 넘어갔다만….
생각해 보니 대체 이 상황을 이놈이 어떻게 납득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초자연현상을 아예 안 믿는 타입 같았는데.’
귀신도 아예 취급을 안 하는 놈 아닌가.
아무리 전에 밑밥이 있었다고 해도, 대충 저놈이 겪어온 박문대에 대한 신뢰로 퉁 치고 넘어가기엔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지 않나?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진 않다만.’
나는 목 뒤를 문지르다가, 그냥 한숨을 쉬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물어보자.
“형.”
“응?”
“아까 차에서 말했던 거 말인데… 형이 어떻게 제 사정을 확신하신 건지 궁금해서요.”
“…….”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은데요.”
‘류건우와 박문대는 몸이 바뀐 것이다’란 명제는 말이다.
류청우는 멋쩍게 웃었다.
“음, 사실 다른 설명을 떠올려보려고도 해봤는데… 다 빈틈이 생기더라.”
“…….”
“그래도 처음엔 둘이 서로서로 큰 영향을 받아서 하나처럼 공유하는 게 많은 건가 싶었어. 그런 걸 잘 고려해서 대해야겠다고도 생각했지.”
나는 놈이 내게 ‘말을 편하게 해도 좋다’고 제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였나.’
하지만 설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류건우’ 씨를 만났는데… 거기서 아닌 걸 깨달았지.”
류청우는 담담히 결론 내렸다.
“둘이 굉장히 다르더라. …서로 바뀐 것처럼.”
“…….”
“그러니까 네가 지난번 등산 때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 무슨 번개처럼.”
-그냥… 저는 저 그대로 행동한 겁니다.
류청우는 웃었다.
“그걸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동안 의문이 생겼던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잖아. 깨끗하게.”
“…….”
“네 지식이나 대처 능력, 트라우마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너와 류건우 씨의 반응들이 말이야.”
류청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왜 네가 이전에 나한테 화를 내며 피했던 건지… 같은 것도.”
“…….”
“너무 잘 이해되더라.”
그놈의 썸머 패키지.
내가 왜 본인의 교통사고 이야기에 발작했던 건지, 거기까지 이미 범주에 넣고 생각했나.
나는 입을 다물었고, 류청우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때는 내가 널 일방적으로 이해해 준 것처럼 이야기가 됐었지만… 사실 너도 날 많이 봐줬던 거야. 그렇지? 미안해.”
“……아니.”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무조건 내가 사과할 일이 맞아.”
류청우는 웃어넘겼다.
“고집은 집안 내력인가 봐요.”
“…….”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된 거야. 물론 원리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굳이 몰라도 괜찮아. 그걸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결국 이놈은… 이성을 토대로 해서 본능적인 판단력을 발휘한 것이다.
거기에 워낙 무던한 놈이기도 하니, 상황이 겹겹이 잘 맞아떨어지며 여기까지 부드럽게 흘러온 것 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들으니 정보 값이 유독 많긴 했군.’
결국 나도 웃어버렸다.
“저는 설명 제대로 못 하면서 매번 설명만 들으니 민망한데요. 감사합니다.”
“괜찮다니까.”
류청우는 씩 웃었으나, 곧 무언가 떠올랐는지 표정이 바뀌었다.
“음, 생각해 보니 그게 끝은 아니었어.”
“예?”
뭐가 더 있냐?
“사실… 본의 아니게 직접 듣기도 했거든.”
류청우는 좀 민망해 보였다.
“아까 레스토랑에서 통화한다고 나갔을 때, 들어오기 전에 잠깐 타이밍 잡으려고 문밖에 서 있었는데…….”
잠깐.
“……그러니까 혹시,”
“응. 그분이 너한테 굉장히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부르더라.”
“…….”
거기서 확정됐냐.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군. 잘 알겠다.
나는 우려했던 사태에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으나, 곧 벗어났다.
‘어쨌든 잘 풀리긴 했고.’
전화위복인 셈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류청우를 보았다.
그리고 불쑥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나야말로 잘 부탁해.”
나는 그렇게 졸지에 내 정체성을 숨길 필요가 없는 조력자 하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벌컥 열리고 다른 놈들이 얼굴을 들이민다.
“여러분~ 안무 왔어요~”
다시 연습 시간이 된 것이다.
“그래? 잠시만.”
류청우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내게 덧붙이듯 말했다.
“그 KPOP 기록 이야기는 돌아와서 계속 이야기하자.”
“네.”
슬슬 혼자 생각해도 될 것 같다만, 어차피 단독 행동할 게 아니면 꾸준히 이야기는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반응은 도리어 류청우가 나간 뒤 다른 놈에게서 나왔다.
큰세진 말이다.
“문대문대, KPOP 기록 뭐야?”
“우리 다음 목표로 삼을 만한 게 뭘지 논의 중이었어.”
누가 봐도 리더와 할 만한 생산적인 생각 아닌가.
“오~ 문대 룸메이트 되더니 청우 형이랑 많이 편해진 것 같다?”
큰세진은 씩 웃었다. 그리고는 일부러 우는 시늉을 한다.
“흑흑, 아까도 둘만 놀러 나가던데 세진이 소외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잖아….”
이 눈치 빠른 새끼 몰래 나갔는데 어떻게 알았냐.
“너 그때 예능 MC랑 통화하고 있었으면서 무슨.”
“에이, 우리 메인보컬, 베스트 프렌드 문대가 부르면 바로 끊고 달려갔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천연덕스럽게도 말한다.
나는 놈의 등이라도 한 대 치려다가,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놈에게 내 사정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면 말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미 류청우에게 먼저 들켰군.
“…….”
“문대?”
역시 도리상 이놈한테 자발적으로 설명해야 하나?
그런데 이게… 들킨 것도 아니고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단 말이다. 리스크가 너무 큰데?
직접 말했다가 설득 실패했다고 도로 재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이 새끼는 털어놓는 순간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어야 할 성격이다.’
상태창이 뭔지도 모를 새끼한테 그걸 다 설명한 생각을 하면 믿냐 안 믿냐를 떠나서 수치사하지나 않을까도 걱정이다.
나는 잠시 침묵했으나, 곧 한숨을 참고 입을 열었다.
“…그럼 시간 될 때 우리끼리 한번 나가든가.”
그래도 기회 되면 말을 해보긴 해야겠지. 류청우는 알고 이놈만 모르는 것도 나중에 말실수하는 순간 그림 이상해진다.
“…! 문대 드디어 집 밖을 나가고 싶어졌구나! 좋아 좋아~ 내가 딱 볼게!”
아니다 이놈아.
큰세진은 킬킬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으나, 나는 침음하며 멤버들과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할 일이 늘었군….’
저놈에게 이 비현실적인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건지 말이다.
‘이건 슬슬 눈치 보면서 정하고.’
나는 일단 그 생각을 접고, 원래 하던 고민을 다시 불러왔다.
‘그러니까, 미션 목표인 KPOP 기록 경신을 그나마 수월하게 해보려면….’
1. 새로운 시장 개척
2. 새로운 평가항목 세분화
이렇게 정리되는군.
그럼 항목을 세분해도 권위 있어 보일 만큼 시장 크고 대중 인지도가 좋으면서, 아직 우리가 먹을 파이가 남아있을 만한 곳은….
나는 무의식중에 예상 답안 하나를 뱉었다.
“미국.”
“우리 미국 가요??”
“아니.”
후보군일 뿐이다.
“우우….”
번개같이 반응했던 차유진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내 옆을 지나 차에 올라탔다. 그래도 별수 없다.
‘미국 진출해서 실패한 사례가 한둘도 아니고.’
선행해야 할 건 따로 있다.
‘분석부터지.’
어느 시장에서 테스타가 유리할지부터 데이터값 쭉 뽑아서, 방법을 구축하고 진입한다.
되는 대로 미국에 대가리 박는 짓은 절대 안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기획과 활동 플랜을 좀 더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겠고.
나는 목을 꺾었다.
‘때가 됐다.’
그리고 본부장과 갱신했던 계약 내용을 떠올렸다.
-테스타가 다음의 연도 중 연간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 시, 테스타의 새로운 독립적 레이블 수립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여기서 대상은 이미 탔다.
그러니까, 테스타용 독립 레이블을 만들 때가 됐다는 것이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5화

KPOP. 주로 한국의 아이돌 음악을 의미하는 신조어.

사실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붙인 명칭은 아니다.

‘아마도 한류 시절부터 알음알음 외국에서 말 나오던 것 같은데.’

그러니까 새 미션이 ‘KPOP 레코드 경신’이라고 한다면, 국외에서도 인지도가 있는 기록만 인정될 확률이 높지 않나?

상태창 본인에게 확인받기 위해 문자로 물어보았다.

“…….”

설마 아무 듣보잡 레코드나 통했는데 내가 이걸 물어봐서 갱신된 건 아니겠지.

나는 찜찜한 마음으로 스마트폰을 닫았다.

숙소에 귀가한 뒤, 지금은 내 방 침대에 앉아있는 중이다.

잘 거냐고? 스페셜 무대 안무 완성본 오는 대로 연습실에 가야 한다. 연말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시즌이 아니라서 말이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본인 침대에 앉아 대기하던 룸메이트가 입을 열었다.

“기록을 경신해야 한다면, 결국 모든 선임자보다 잘해야 하겠지.”

“그렇죠.”

차에서부터 ‘생각해 볼게’라고 하더니 정말로 고심한 모양이었다. 과연 성실한 놈이다.

이어진 말도 놈의 성격다웠다.

“최근에 새롭게 생긴 평가 항목을 노려보는 게 어떨까? 아무래도 새 항목이 기록을 만들긴 수월해.”

과연 운동선수로 뛰어본 사람다운 현실적인 발언이었다. 나는 턱을 괬다.

“한번 보죠. 일단 아시아권에서는 웬만한 기록은….”

VTIC이 다 먹었군. X발.

“하하. 선배님들이 열심히 활동하셨지?”

“예.”

정말 그랬다. 몇십 주 1위, 밀리언셀러, 돔 투어까지 이미 기록이란 기록은 다 세운 상태.

심지어 테스타가 국내 입지 확보를 주로 삼는 동안, VTIC은 글로벌 입지를 더 확고히 하기까지 했으니… 닥닥 긁어먹었다고 볼 수 있다.

“남미도 마찬가지죠.”

“그래.”

기존에 케이팝 시장이 히트한 동네는 다 쟁쟁한 기록이 있다. 이걸 내년 여름 중에 갱신하는 건 딱 실탄 하나로 하는 무모한 도전이다.

그리고 꼭 선임자들의 기록만이 방해물인 것도 아니다.

“지금도 다들 열심히 활동하고 있고요. 성적도 좋고.”

글로벌로 친다면 VTIC뿐만 아니라 꽤 많은 그룹이 테스타보다 성적이 좋다.

류청우도 회사 브리핑에서 들었던 내용을 떠올리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음, 어렵긴 해. 최대한 노력해서 좋은 무대를 만들어도 꼭 결과가 좋을 거란 보장이 없으니까.”

연예계가 원래 그렇지.

“타이밍과 운의 문제가 크죠.”

“그래. 비슷한 부분도 많지만, 이런 부분에서 스포츠와 좀 다른 것 같아.”

류청우가 쓰게 웃었다.

“기록 경신은 선수 생활할 때도 도전해 봤지만, 연예인은 단순히 이기고 지는 게 아니라… 사람 마음을 얻어야 한다는 점이 참 복잡한 것 같다.”

“그러게요.”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류청우는 생각에 잠긴 것 같았다.

생각보다 깊은 이야기로 분위기가 흘러가는군. 약간 잡는 편이 낫겠지.

나는 화제를 살짝 환기했다.

“듣다 보니 전에 도전하셨던 기록은 뭐였는지도 궁금한데요.”

“응? 하하. 별건 아니고 다들 도전하는 건데. 아시안게임, 세계선수권, 올림픽 3금 말이야. 그걸 최연소로 해보겠다, 그런 애들 소리지.”

“…….”

3금?

한국 양궁은 대체 뭐 하는 업계인지 모르겠다.

‘무슨 금메달을 지역 리그 우승처럼 말하냐.’

저기 생태계야말로 상식 이상이군.

“대단하십니다.”

“대단하긴, 실패했어. 세계선수권에서 선발로 못 뽑혔거든.”

류청우는 좀 민망해하듯이 씩 웃었다.

“그래도 올림픽 최연소 기록 하나는 건졌어.”

“그것도 충분히 대단한데요.”

“하하, 또 금방 깨질걸? 어린 친구들도 선발 본선에 많이 올라와서….”

“…!”

잠깐. 저 말에서 뭔가 떠오르는 것 같은데.

‘최연소라.’

갑자기 머릿속에 길 하나가 새롭게 번뜩인다.

‘…그렇지. 그런 접근이 가능하군.’

단순히 통틀어 최고 성적을 노리는 게 아니라, 기록 항목 자체를 다른 방향으로 세분화하는 것 말이다.

대외적으로 통용될 정도로 ‘있어 보이는 항목’ 쪽으로.

‘좋아, 나왔다.’

이쪽으로 일단 가닥을 잡아야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튼 네 질문은 좀 더 생각해 볼게. 당장은 쓸 만한 이야기 못 해줘서 미안하네.”

“아뇨, 감사합니다. 힌트를 얻은 것 같아요.”

“…? 그래? 그렇다면 다행이다.”

대체 어디서 얻은 건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이었으나, 류청우는 그냥 웃어넘겼다.

나는 혹시 몰라 말을 덧붙였다.

“테스타 공동 이득에 해가 되는 쪽으로는 절대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런 걱정은 한 적이 없는데… 알았어.”

류청우는 그 정도로 수긍했다.

지난번에 내가 ‘대상을 타야 한다’고 했을 때 보였던 반응과 다를 게 없는 담백함이다.

“…….”

그러고 보니, 심지어 저놈은 끝까지 내가 왜 이런 걸 물어보았는지는 되묻지 않았지. 부담스러울 것을 짐작한 것 같았다.

‘뭐 이런 놈이 다 있냐.’

아까는 차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도 답지 않게 상황에 좀 감명해 버린 바람에 얼결에 감동적으로 비비고 넘어갔다만….

생각해 보니 대체 이 상황을 이놈이 어떻게 납득하고 있는 건지 의문이다.

‘초자연현상을 아예 안 믿는 타입 같았는데.’

귀신도 아예 취급을 안 하는 놈 아닌가.

아무리 전에 밑밥이 있었다고 해도, 대충 저놈이 겪어온 박문대에 대한 신뢰로 퉁 치고 넘어가기엔 너무 비현실적인 상황이지 않나?

‘다른 꿍꿍이가 있어 보이진 않다만.’

나는 목 뒤를 문지르다가, 그냥 한숨을 쉬었다.

에라 모르겠다. 그냥 물어보자.

“형.”

“응?”

“아까 차에서 말했던 거 말인데… 형이 어떻게 제 사정을 확신하신 건지 궁금해서요.”

“…….”

“솔직히 말도 안 되는 것처럼 보였을 것 같은데요.”

‘류건우와 박문대는 몸이 바뀐 것이다’란 명제는 말이다.

류청우는 멋쩍게 웃었다.

“음, 사실 다른 설명을 떠올려보려고도 해봤는데… 다 빈틈이 생기더라.”

“…….”

“그래도 처음엔 둘이 서로서로 큰 영향을 받아서 하나처럼 공유하는 게 많은 건가 싶었어. 그런 걸 잘 고려해서 대해야겠다고도 생각했지.”

나는 놈이 내게 ‘말을 편하게 해도 좋다’고 제안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래서였나.’

하지만 설명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류건우’ 씨를 만났는데… 거기서 아닌 걸 깨달았지.”

류청우는 담담히 결론 내렸다.

“둘이 굉장히 다르더라. …서로 바뀐 것처럼.”

“…….”

“그러니까 네가 지난번 등산 때 했던 말이 떠오르더라고. 무슨 번개처럼.”

-그냥… 저는 저 그대로 행동한 겁니다.

류청우는 웃었다.

“그걸 말 그대로 받아들이면 그동안 의문이 생겼던 모든 게 딱 맞아떨어지잖아. 깨끗하게.”

“…….”

“네 지식이나 대처 능력, 트라우마 같은 것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너와 류건우 씨의 반응들이 말이야.”

류청우가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왜 네가 이전에 나한테 화를 내며 피했던 건지… 같은 것도.”

“…….”

“너무 잘 이해되더라.”

그놈의 썸머 패키지.

내가 왜 본인의 교통사고 이야기에 발작했던 건지, 거기까지 이미 범주에 넣고 생각했나.

나는 입을 다물었고, 류청우는 조용히 말을 이었다.

“그때는 내가 널 일방적으로 이해해 준 것처럼 이야기가 됐었지만… 사실 너도 날 많이 봐줬던 거야. 그렇지? 미안해.”

“……아니.”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무조건 내가 사과할 일이 맞아.”

류청우는 웃어넘겼다.

“고집은 집안 내력인가 봐요.”

“…….”

“어쨌든, 그렇게 알게 된 거야. 물론 원리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굳이 몰라도 괜찮아. 그걸 꼭 들어야 하는 건 아니니까.”

결국 이놈은… 이성을 토대로 해서 본능적인 판단력을 발휘한 것이다.

거기에 워낙 무던한 놈이기도 하니, 상황이 겹겹이 잘 맞아떨어지며 여기까지 부드럽게 흘러온 것 같았다.

‘게다가, 이렇게 들으니 정보 값이 유독 많긴 했군.’

결국 나도 웃어버렸다.

“저는 설명 제대로 못 하면서 매번 설명만 들으니 민망한데요. 감사합니다.”

“괜찮다니까.”

류청우는 씩 웃었으나, 곧 무언가 떠올랐는지 표정이 바뀌었다.

“음, 생각해 보니 그게 끝은 아니었어.”

“예?”

뭐가 더 있냐?

“사실… 본의 아니게 직접 듣기도 했거든.”

류청우는 좀 민망해 보였다.

“아까 레스토랑에서 통화한다고 나갔을 때, 들어오기 전에 잠깐 타이밍 잡으려고 문밖에 서 있었는데…….”

잠깐.

“……그러니까 혹시,”

“응. 그분이 너한테 굉장히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부르더라.”

“…….”

거기서 확정됐냐.

역시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군. 잘 알겠다.

나는 우려했던 사태에 뒷골이 당기는 것을 느꼈으나, 곧 벗어났다.

‘어쨌든 잘 풀리긴 했고.’

전화위복인 셈이다. 나는 새삼스럽게 류청우를 보았다.

그리고 불쑥 말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하하, 나야말로 잘 부탁해.”

나는 그렇게 졸지에 내 정체성을 숨길 필요가 없는 조력자 하나를 만들게 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문이 벌컥 열리고 다른 놈들이 얼굴을 들이민다.

“여러분~ 안무 왔어요~”

다시 연습 시간이 된 것이다.

“그래? 잠시만.”

류청우는 바로 몸을 일으키며 내게 덧붙이듯 말했다.

“그 KPOP 기록 이야기는 돌아와서 계속 이야기하자.”

“네.”

슬슬 혼자 생각해도 될 것 같다만, 어차피 단독 행동할 게 아니면 꾸준히 이야기는 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으나, 반응은 도리어 류청우가 나간 뒤 다른 놈에게서 나왔다.

큰세진 말이다.

“문대문대, KPOP 기록 뭐야?”

“우리 다음 목표로 삼을 만한 게 뭘지 논의 중이었어.”

누가 봐도 리더와 할 만한 생산적인 생각 아닌가.

“오~ 문대 룸메이트 되더니 청우 형이랑 많이 편해진 것 같다?”

큰세진은 씩 웃었다. 그리고는 일부러 우는 시늉을 한다.

“흑흑, 아까도 둘만 놀러 나가던데 세진이 소외감이 이만저만이 아니잖아….”

이 눈치 빠른 새끼 몰래 나갔는데 어떻게 알았냐.

“너 그때 예능 MC랑 통화하고 있었으면서 무슨.”

“에이, 우리 메인보컬, 베스트 프렌드 문대가 부르면 바로 끊고 달려갔지~”

입에 침도 안 바르고 천연덕스럽게도 말한다.

나는 놈의 등이라도 한 대 치려다가, 순간 떠오르는 생각에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이놈에게 내 사정에 대해 말할 수 있으면 말하겠다고 했었는데.’

…이미 류청우에게 먼저 들켰군.

“…….”

“문대?”

역시 도리상 이놈한테 자발적으로 설명해야 하나?

그런데 이게… 들킨 것도 아니고 대놓고 말해도 되는 건가 모르겠단 말이다. 리스크가 너무 큰데?

직접 말했다가 설득 실패했다고 도로 재시작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나.

‘게다가 이 새끼는 털어놓는 순간 대체 이게 무슨 일인지 하나부터 열까지 다 들어야 할 성격이다.’

상태창이 뭔지도 모를 새끼한테 그걸 다 설명한 생각을 하면 믿냐 안 믿냐를 떠나서 수치사하지나 않을까도 걱정이다.

나는 잠시 침묵했으나, 곧 한숨을 참고 입을 열었다.

“…그럼 시간 될 때 우리끼리 한번 나가든가.”

그래도 기회 되면 말을 해보긴 해야겠지. 류청우는 알고 이놈만 모르는 것도 나중에 말실수하는 순간 그림 이상해진다.

“…! 문대 드디어 집 밖을 나가고 싶어졌구나! 좋아 좋아~ 내가 딱 볼게!”

아니다 이놈아.

큰세진은 킬킬 웃으며 내 등을 두드렸으나, 나는 침음하며 멤버들과 함께 현관문을 나섰다.

‘할 일이 늘었군….’

저놈에게 이 비현실적인 사태를 어떻게 설명할 건지 말이다.

‘이건 슬슬 눈치 보면서 정하고.’

나는 일단 그 생각을 접고, 원래 하던 고민을 다시 불러왔다.

‘그러니까, 미션 목표인 KPOP 기록 경신을 그나마 수월하게 해보려면….’

1. 새로운 시장 개척

2. 새로운 평가항목 세분화

이렇게 정리되는군.

그럼 항목을 세분해도 권위 있어 보일 만큼 시장 크고 대중 인지도가 좋으면서, 아직 우리가 먹을 파이가 남아있을 만한 곳은….

나는 무의식중에 예상 답안 하나를 뱉었다.

“미국.”

“우리 미국 가요??”

“아니.”

후보군일 뿐이다.

“우우….”

번개같이 반응했던 차유진이 어깨를 늘어뜨리며 내 옆을 지나 차에 올라탔다. 그래도 별수 없다.

‘미국 진출해서 실패한 사례가 한둘도 아니고.’

선행해야 할 건 따로 있다.

‘분석부터지.’

어느 시장에서 테스타가 유리할지부터 데이터값 쭉 뽑아서, 방법을 구축하고 진입한다.

되는 대로 미국에 대가리 박는 짓은 절대 안 한다.

그리고 그러려면… 기획과 활동 플랜을 좀 더 원하는 대로 주무를 수 있어야겠고.

나는 목을 꺾었다.

‘때가 됐다.’

그리고 본부장과 갱신했던 계약 내용을 떠올렸다.

-테스타가 다음의 연도 중 연간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 시, 테스타의 새로운 독립적 레이블 수립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여기서 대상은 이미 탔다.

그러니까, 테스타용 독립 레이블을 만들 때가 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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