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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 Mắt Hay Ra Đi Raw - C32

A- A+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화
‘일단 빠르게 할 일부터 해치운다.’
우선 광고판 주변에서 사람들의 질문과 요청에 어버버 거리는 선아현을 잡았다.
“폰 줘.”
“어, 어?”
“인증 사진 찍어야지.”
“…!”
선아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슬금슬금 자신의 광고판 앞으로 향했다. 나는 건네받은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켰다.
사람들은 즉시 반응했다.
“아, 사진!”
“저희 좀 비킵시다~”
“애들 사진 찍어요!”
놀랍게도, 격정적으로 몰려들던 사람들이 자진해서 거리를 두고 물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목숨 걸고 사진 건지려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좀 걱정이 과했나 싶기도 하다.
“어깨 펴고.”
“으, 으응!”
“아현아 너무 잘생겼어!”
마지막 말은 내가 한 게 아니라, 선아현 팬으로 보이는 분이 외친 말이다.
선아현은 고장 난 것처럼 얼굴이 벌게졌다.
“아, 아, 아아니에요…….”
그렇게 몇 번 중얼거린 선아현은 삐걱삐걱 몸을 폈다.
어쨌든 나는 기계적으로 구도를 맞춰서 사진을 찍었고, 스마트폰을 내리는 순간 옆에서 큰세진이 외쳤다.
“문대! 나도 나도!”
나는 선아현의 스마트폰을 쥔 그대로 몸을 돌려서 큰세진의 인증 사진도 찍어주었다.
큰세진이 몇 번이나 포즈를 바꾸는 통에 찍기 귀찮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그 광경을 또 촬영하고 있었다.
“귀여워…….”
“다른 포즈도 해줘~”
‘…이러면 인증 사진 굳이 내가 찍을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닌가?’
그냥 오늘 들어가서 인터넷에 뜨는 거 아무거나 다운로드받으면 됐지 않나.
“문대야 너도!”
“아.”
일단 나만 안 찍는 것도 이상하니, 나도 내 광고판 앞으로 이동했다.
사람이 다 물러가고 완전히 드러난 광고판을 코앞에서 보니, 그 크기에 위압감까지 느껴졌다.
박문대의 광고판 사용된 사진은 제작발표회 때 찍힌 것이었다.
다행히 볼 콕이나 손가락 하트 사진은 아니었지만, 대문짝만한 얼굴이 좀 민망했다.
‘…눈 마주치지 말자.’
쓱 고개를 돌리니, 배경에 적힌 문구가 보였다.
[박문대]
[혜성처럼 나타난 우량주!]
맨 밑에 작은 글씨로 ‘많은 매수 부탁드립니다♡’까지 붙어 있었다.
“…….”
굉장히 임팩트 넘치는 문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고생하셨겠네.’
나는 묵묵히 인증 사진을 찍었다. 이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광고판에서 떨어지자마자, 다시 사람들의 말이 쏟아졌다.
“광고 보러온 거야?”
“아, 어떡해….”
“촬영 잘했어요?”
“저 투표하고 있어요!”
슬슬 통행에 방해될 만큼 사람이 불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혼자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을 때보다 심했다. 셋이서 온 단점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민폐라고 까이겠는데?
뭘 좀 해주고 가고 싶었는데, 힘들 것 같다.
‘셋이 온 장점을 써먹어야겠군.’
나는 다른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다행히 신호를 알아들은 표정이다.
우리는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가까운 출구로 뛰었다.
키 큰 남자 셋이 한꺼번에 뛰니 자연스럽게 길이 열렸다.
“저희 들어가 볼게요~ 감사합니다!”
큰세진이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며 외쳤다. 눈치껏 따라 하니 대답하는 목소리가 여럿 들렸다.
“어? 얘들아!”
“잘 들어가!”
“화이팅!!”
다행히 무례하다고 느낀 사람은 없었는지, 밝은 목소리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응원 소리를 들으면서 달리는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굉장히… 오묘했다.
튀어나온 입구에서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아! 진짜 좋았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큰세진이 히죽히죽 웃으며 한 말이다.
선아현도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게, 어지간히 신이 난 기색이었다.
‘그렇게 좋았나?’
물론 고맙다 못해 부채감이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아본다고 특별히 기분이 고조되지는 않았다.
기질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이 문제일 수도 있지.’
저놈들은 다 21살이니 말이다.
혼자 떨떠름하게 생각할 때 즈음, 큰세진이 갑자기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내 폰에 진동이 왔다.
[(사진) (사진)]
박문대의 광고판 앞에서 찍은 내 사진이었다.
노출값이 잘못됐는지 색이 다 날아가서 허옇게 뜬 광고판 위로 다 흔들려서 뭉개진 내 얼굴이 떠 있었다.
“…….”
이 새끼 사진 더럽게 못 찍네.
“야, 흔들려서 오히려 현장감이 살아 있지 않냐?”
현장감이 너무 넘쳐서 현장감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할 사진이다.
말없이 놈을 쳐다보니, 큰세진이 웃음소리를 내며 모른 척 선아현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맞다, 아현아! 내 인증샷도 네 폰에 있지?”
“으응! 자, 잠깐.”
선아현이 허둥지둥 자신의 스마트폰을 켜더니, 단체방에 사진을 올렸다.
내가 찍은 큰세진과 선아현의 사진들이었다.
‘네 사진은 왜 올리냐.’
아마 당황해서 한꺼번에 올린 모양이다.
“오~ 문대가 찍어준 사진은…….”
유쾌한 척 화면을 들여다보던 큰세진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멈췄다.
그리고 약간 당황한 얼굴로, 이번에는 진짜 같은 감탄사를 내기 시작했다.
“어, 오……. 너 사진 진짜 잘 찍네.”
몇 년 그걸로 밥 벌어먹었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힐끗 화면을 봤다.
수평 구도가 완벽하고 인체 비율이 어색하지 않으며 표정과 포즈를 잘 잡아낸 사진이 인당 네댓 장씩 올라와 있었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약간 뿌듯해하고 있으니, 큰세진이 머쓱한 말투로 덧붙였다.
“…음, 다음에는 나도 좀 잘 찍어줄게. 미안하네.”
이것도 진심인 것 같았다.
비즈니스의 맛이 안 나는 큰세진이라니 오늘은 별걸 다 보는군.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뭐… 현장감 살아 있는 사진도 괜찮아.”
“…!”
큰세진이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얼른 씩 웃고 화제를 돌렸다.
“그치? 아, 그러고 보니 아현이가 추천한 맛집은 이렇게 물 건너가나? 아쉽네.”
“괘, 괜찮아. 다, 다음에 같이 오면…….”
“…흠.”
그래. 그 이야기도 했었지.
지금 선아현이 찾아온 음식점들을 가는 건 무리였다.
SNS에서 유행하는 곳들만 뽑아온지라 이 인원으로 갔다가는 식사를 남의 SNS로 생중계하게 될 판이다.
게다가 선아현이 그다지 서치에는 재능이 없는지, 바이럴 마케팅의 냄새가 나는 곳들이라 가성비가 별로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대역을 지나던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기사님, 저희 연희동으로 꺾어주실 수 있을까요.”
“되기는 하지요~”
“예, 그럼….”
나는 뒷자리의 둘을 돌아보았다.
“나 아는 조용한 집 있는데, 거기 갈래?”
“올~ 당연히 찬성!”
“조, 좋지!”
됐네. 나는 기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내비게이션을 조작해 음식점을 찍었다.
그리고 식사가 다 끝난 후에야, 굳이 할 필요 없는 짓을 자진해서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친해지고 있잖아!
* * *
“흐으으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여성은 고통스러운 침음성과 함께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화면에는 그녀를 번뇌의 늪에 빠뜨린 선택지가 떠올라 있었다.
[아이돌 주식회사의 주식 패키지 대할인! ~80%]
커다란 배너 아래에는 가 방영되는 채널인 Tnet의 그룹사에서 파는 온갖 서비스와 묶인 주식들이 보였다.
가령 여기 Tnet의 음원사이트 패키지를 사면, 50% 할인된 3개월 스트리밍 이용권과 주식 20주 매수 권한도 받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대에게 20표를 더 줄 수 있었다.
이 방송국 놈들은 하루에 한 표씩 더 줄 수 있는 월정액권 외에는 전부 이딴 식의 패키지 형태로 주식을 팔았다!
무서운 건 이 패키지가 할인율이 높아서, 기존 서비스 이용자들이 할인받으려고 이 패키지를 샀다가 에 빠지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짜 상술 지독하다…….’
여성은 한숨을 쉬며 페이지 스크롤을 달각거리다가, 방금 온 메시지가 팝업에 뜬 것을 보았다.
방청 신청으로 자신의 입에 박문대를 떠먹여 준, 그 친구의 메시지였다.
[연주 : 미친미친ㅠㅠ 문대 목격담 떴어! (링크)]
‘허억.’
황급히 클릭한 링크는 SNS 게시글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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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나 방금 혈육이랑 밥 먹으러 나왔다가 아주사 참가자 봤다 그 말랑달콤 노래한 애들인 듯?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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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사진에는 칸막이 처진 테이블에서 삼계탕이 든 뚝배기를 받는 박문대와 선아현, 큰세진이 보였다.
사진 아래로 길게 반응글이 이어졌다.
-삼계탕 보는 눈 좀 봐 얘들아 튀어나오겠다ㅋㅋㅋ
-역시 근본 없는 치킨보다는 K-삼계탕이지 뭘 좀 아는군
└치킨차별을 멈춰주세요ㅠ
-얘네 셋 계속 친하게 지내는 거 저는 찬성입니다.
-아 광고판 보고 이거 먹으러 갔나 봐ㅠㅠ 귀여운 놈들 사랑한다ㅠㅠ
‘광고판?’
여성은 혹시 하는 마음에 ‘박문대 광고판’을 검색해 봤다.
그 즉시, 만 단위로 공유되고 있던 몇 시간 전 글이 상단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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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 광고판 인증샷 찍고 갔어ㅠㅠ 사람 넘 많이 몰려서 오래 못 있었는데도 귀엽고 친절해서 수니심장 박살냈음 마스크 썼는데도 잘생김이 뚫고 나옴 실물 존잘ㅠㅠ (짧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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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동영상을 재생하자, 청바지에 검은 후드, 검은 야구모자를 쓴 박문대가 자신의 광고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왔다.
[잘생겼어요!]
[주식 많이 살게 문대야!]
[으음, 감사합니다….]
박문대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말에 약간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 두 사람과 함께 유쾌하게 질주해서 사라지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귀 여 워
-문대 생각보다 사교적인걸?
-ㅠㅠ역시 문댕댕은 뇌피셜이 아니라 공식이다ㅠㅠ 뭐, 티벳여우? 이단이다!
-눈새로 편집한 피디놈 죽어 제발 우리 애 그냥 차분한 거였잖아
-금발이 모자 써도 개찰떡
‘귀여워…! 너무 귀여워!!’
발을 구르던 그녀는, 문득 박문대의 광고판 사진이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가 자신이 찍었다며 보여준 사진이었다!
그녀는 얼른 메시지를 작성했다.
[민소 : 와 이거 니가 건 거 아니야? 축하해 문대가 보고 갔대! (링크)]
[연주 : 안 그래도 그거 보고 혼절해 있다가 지금 정신차렸음… 내가 건 거는 아니고 팬 연합에서 한 거긴 한데 그래도 너무 설레… 벅차…]
‘왜 이거부터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너무 심장이 떨려서 타자가 안 쳐짐’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여성은 키득거리며 축하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뭔가 해주고 싶다.’
박문대가 잘돼서, 멋진 무대를 많이 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방금의 구매 페이지로 돌아가서 음원 패키지를 구매했다.
흐뭇하게 문대의 주식을 매수한 후, 다른 내용은 없나 확인해 본 삼계탕집 목격담 글에서는 어느새 싸움이 터져 있었다.
-사진 내려주세요. 스토킹은 범죄입니다.
└아니 어쩌다 우연히 본 건데요 무슨 스토킹;; 걍 목격담임
└남 밥 먹는 거 도촬이 목격담인가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응 차단했음 ㅅㄱ
이 대화 이후, 불타오르던 사람들의 반응은 머쓱하게 흐지부지되었다.
박문대의 소식을 접하기 힘들었기에 드문 목격담에 반사적으로 흥분했다가, 사생활 침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여성도 머쓱해하며 창을 껐다. 아직 문대가 데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그거야… 그렇게 잘했으니까…!’
그녀는 다시 생각해도 정신이 멍해지는 직전 방청 경험을 떠올리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것을 생각해 냈다.
“헉! 본방!”
그렇다. 애초에 아이돌 주식회사 방영을 기다리며 막간을 이용해 주식구매 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허겁지겁 채널을 틀었고, 다행히 막 시작하는 방송의 로고를 볼 수 있었다.
“휴…….”
안도하며 마음을 놓은 것도 잠시, 갑자기 MC의 의미심장한 얼굴이 방송을 탔다.
“…?”
[여러분, 혹시 의 약속, 기억하십니까?]
마치 토의실 책상 앞에 앉아 발언하는 것처럼, MC가 진지하게 책상을 쳤다.
[모든 것을 여러분의 뜻대로 진행하겠다, 약속드렸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저희 홈페이지에서 최종 데뷔 인원수, 평가 선곡 등 수많은 투표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참고로, 슬슬 ‘초반에 최종 데뷔 인원수를 너무 작게 투표해 버렸다’며 우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오늘, 그 약속을 하나 더 실행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지금까지 시청하시며 보기 싫은 참가자가 생기셨습니까?]
‘무슨…?’
방송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이게 뭔지 혼란스러워하는 시청자의 앞에, 제작진은 거대한 똥을 투척했다.
[그럼 그 참가자의 주식을 팔아버리십시오! 새롭게 도입된 , 주주 여러분은 앞으로 보고 싶지 않은 참가자의 주식을 깎을 수 있습니다!]
“…?!?!”
[주주 여러분께서 구매하시는 ‘주식 매수권’은, 앞으로 ‘주식 매도권’으로도 이용하실 수 있습니다. 즉! 특정 참가자의 주식을 사는 대신 팔아서 마이너스로 만들 수 있는 겁니다!]
바야흐로 지옥의 도래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2화

‘일단 빠르게 할 일부터 해치운다.’

우선 광고판 주변에서 사람들의 질문과 요청에 어버버 거리는 선아현을 잡았다.

“폰 줘.”

“어, 어?”

“인증 사진 찍어야지.”

“…!”

선아현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는 슬금슬금 자신의 광고판 앞으로 향했다. 나는 건네받은 스마트폰의 카메라를 켰다.

사람들은 즉시 반응했다.

“아, 사진!”

“저희 좀 비킵시다~”

“애들 사진 찍어요!”

놀랍게도, 격정적으로 몰려들던 사람들이 자진해서 거리를 두고 물러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내가 너무 목숨 걸고 사진 건지려는 사람들을 많이 봐서 그런지, 좀 걱정이 과했나 싶기도 하다.

“어깨 펴고.”

“으, 으응!”

“아현아 너무 잘생겼어!”

마지막 말은 내가 한 게 아니라, 선아현 팬으로 보이는 분이 외친 말이다.

선아현은 고장 난 것처럼 얼굴이 벌게졌다.

“아, 아, 아아니에요…….”

그렇게 몇 번 중얼거린 선아현은 삐걱삐걱 몸을 폈다.

어쨌든 나는 기계적으로 구도를 맞춰서 사진을 찍었고, 스마트폰을 내리는 순간 옆에서 큰세진이 외쳤다.

“문대! 나도 나도!”

나는 선아현의 스마트폰을 쥔 그대로 몸을 돌려서 큰세진의 인증 사진도 찍어주었다.

큰세진이 몇 번이나 포즈를 바꾸는 통에 찍기 귀찮았다.

하지만 사람들은 열심히 스마트폰으로 그 광경을 또 촬영하고 있었다.

“귀여워…….”

“다른 포즈도 해줘~”

‘…이러면 인증 사진 굳이 내가 찍을 필요가 없었던 게 아닌가?’

그냥 오늘 들어가서 인터넷에 뜨는 거 아무거나 다운로드받으면 됐지 않나.

“문대야 너도!”

“아.”

일단 나만 안 찍는 것도 이상하니, 나도 내 광고판 앞으로 이동했다.

사람이 다 물러가고 완전히 드러난 광고판을 코앞에서 보니, 그 크기에 위압감까지 느껴졌다.

박문대의 광고판 사용된 사진은 제작발표회 때 찍힌 것이었다.

다행히 볼 콕이나 손가락 하트 사진은 아니었지만, 대문짝만한 얼굴이 좀 민망했다.

‘…눈 마주치지 말자.’

쓱 고개를 돌리니, 배경에 적힌 문구가 보였다.

맨 밑에 작은 글씨로 ‘많은 매수 부탁드립니다♡’까지 붙어 있었다.

“…….”

굉장히 임팩트 넘치는 문구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겠다.

‘고생하셨겠네.’

나는 묵묵히 인증 사진을 찍었다. 이건 이 정도 성의는 보여야 했다.

그리고 사진을 찍고 광고판에서 떨어지자마자, 다시 사람들의 말이 쏟아졌다.

“광고 보러온 거야?”

“아, 어떡해….”

“촬영 잘했어요?”

“저 투표하고 있어요!”

슬슬 통행에 방해될 만큼 사람이 불어나고 있었다. 확실히 내가 혼자 버스정류장에서 내렸을 때보다 심했다. 셋이서 온 단점이었다.

이거 잘못하면 민폐라고 까이겠는데?

뭘 좀 해주고 가고 싶었는데, 힘들 것 같다.

‘셋이 온 장점을 써먹어야겠군.’

나는 다른 두 사람에게 눈짓했다. 다행히 신호를 알아들은 표정이다.

우리는 꾸벅꾸벅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가장 가까운 출구로 뛰었다.

키 큰 남자 셋이 한꺼번에 뛰니 자연스럽게 길이 열렸다.

“저희 들어가 볼게요~ 감사합니다!”

큰세진이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며 외쳤다. 눈치껏 따라 하니 대답하는 목소리가 여럿 들렸다.

“어? 얘들아!”

“잘 들어가!”

“화이팅!!”

다행히 무례하다고 느낀 사람은 없었는지, 밝은 목소리들이었다.

그렇게 많은 응원 소리를 들으면서 달리는 건 처음이었다.

기분이 굉장히… 오묘했다.

튀어나온 입구에서 곧바로 택시를 잡아탔다.

“아! 진짜 좋았다!”

택시가 출발하자마자, 큰세진이 히죽히죽 웃으며 한 말이다.

선아현도 고개를 마구 끄덕이는 게, 어지간히 신이 난 기색이었다.

‘그렇게 좋았나?’

물론 고맙다 못해 부채감이 느껴지긴 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알아본다고 특별히 기분이 고조되지는 않았다.

기질의 문제일까? 아니면…….

‘…나이 문제일 수도 있지.’

저놈들은 다 21살이니 말이다.

혼자 떨떠름하게 생각할 때 즈음, 큰세진이 갑자기 ‘아!’ 하는 감탄사와 함께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리고 곧바로 내 폰에 진동이 왔다.

박문대의 광고판 앞에서 찍은 내 사진이었다.

노출값이 잘못됐는지 색이 다 날아가서 허옇게 뜬 광고판 위로 다 흔들려서 뭉개진 내 얼굴이 떠 있었다.

“…….”

이 새끼 사진 더럽게 못 찍네.

“야, 흔들려서 오히려 현장감이 살아 있지 않냐?”

현장감이 너무 넘쳐서 현장감 외에는 아무것도 알아보지 못할 사진이다.

말없이 놈을 쳐다보니, 큰세진이 웃음소리를 내며 모른 척 선아현에게 말을 걸었다.

“하하… 맞다, 아현아! 내 인증샷도 네 폰에 있지?”

“으응! 자, 잠깐.”

선아현이 허둥지둥 자신의 스마트폰을 켜더니, 단체방에 사진을 올렸다.

내가 찍은 큰세진과 선아현의 사진들이었다.

‘네 사진은 왜 올리냐.’

아마 당황해서 한꺼번에 올린 모양이다.

“오~ 문대가 찍어준 사진은…….”

유쾌한 척 화면을 들여다보던 큰세진은, 잠시 말문이 막힌 듯 입을 멈췄다.

그리고 약간 당황한 얼굴로, 이번에는 진짜 같은 감탄사를 내기 시작했다.

“어, 오……. 너 사진 진짜 잘 찍네.”

몇 년 그걸로 밥 벌어먹었었는데 당연한 일이었다.

나도 힐끗 화면을 봤다.

수평 구도가 완벽하고 인체 비율이 어색하지 않으며 표정과 포즈를 잘 잡아낸 사진이 인당 네댓 장씩 올라와 있었다.

실력이 녹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약간 뿌듯해하고 있으니, 큰세진이 머쓱한 말투로 덧붙였다.

“…음, 다음에는 나도 좀 잘 찍어줄게. 미안하네.”

이것도 진심인 것 같았다.

비즈니스의 맛이 안 나는 큰세진이라니 오늘은 별걸 다 보는군. 나는 그냥 어깨를 으쓱했다.

“뭐… 현장감 살아 있는 사진도 괜찮아.”

“…!”

큰세진이 잠깐 놀란 얼굴을 했다가, 얼른 씩 웃고 화제를 돌렸다.

“그치? 아, 그러고 보니 아현이가 추천한 맛집은 이렇게 물 건너가나? 아쉽네.”

“괘, 괜찮아. 다, 다음에 같이 오면…….”

“…흠.”

그래. 그 이야기도 했었지.

지금 선아현이 찾아온 음식점들을 가는 건 무리였다.

SNS에서 유행하는 곳들만 뽑아온지라 이 인원으로 갔다가는 식사를 남의 SNS로 생중계하게 될 판이다.

게다가 선아현이 그다지 서치에는 재능이 없는지, 바이럴 마케팅의 냄새가 나는 곳들이라 가성비가 별로였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이대역을 지나던 내비게이션을 확인했다.

“기사님, 저희 연희동으로 꺾어주실 수 있을까요.”

“되기는 하지요~”

“예, 그럼….”

나는 뒷자리의 둘을 돌아보았다.

“나 아는 조용한 집 있는데, 거기 갈래?”

“올~ 당연히 찬성!”

“조, 좋지!”

됐네. 나는 기사분께 양해를 구하고 내비게이션을 조작해 음식점을 찍었다.

그리고 식사가 다 끝난 후에야, 굳이 할 필요 없는 짓을 자진해서 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맙소사. 친해지고 있잖아!

* * *

“흐으으음.”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여성은 고통스러운 침음성과 함께 고민의 고민을 거듭했다.

화면에는 그녀를 번뇌의 늪에 빠뜨린 선택지가 떠올라 있었다.

커다란 배너 아래에는 가 방영되는 채널인 Tnet의 그룹사에서 파는 온갖 서비스와 묶인 주식들이 보였다.

가령 여기 Tnet의 음원사이트 패키지를 사면, 50% 할인된 3개월 스트리밍 이용권과 주식 20주 매수 권한도 받는 것이다.

한마디로, 문대에게 20표를 더 줄 수 있었다.

이 방송국 놈들은 하루에 한 표씩 더 줄 수 있는 월정액권 외에는 전부 이딴 식의 패키지 형태로 주식을 팔았다!

무서운 건 이 패키지가 할인율이 높아서, 기존 서비스 이용자들이 할인받으려고 이 패키지를 샀다가 에 빠지는 이중 구조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짜 상술 지독하다…….’

여성은 한숨을 쉬며 페이지 스크롤을 달각거리다가, 방금 온 메시지가 팝업에 뜬 것을 보았다.

방청 신청으로 자신의 입에 박문대를 떠먹여 준, 그 친구의 메시지였다.

‘허억.’

황급히 클릭한 링크는 SNS 게시글로 연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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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사진에는 칸막이 처진 테이블에서 삼계탕이 든 뚝배기를 받는 박문대와 선아현, 큰세진이 보였다.

사진 아래로 길게 반응글이 이어졌다.

-삼계탕 보는 눈 좀 봐 얘들아 튀어나오겠다ㅋㅋㅋ

-역시 근본 없는 치킨보다는 K-삼계탕이지 뭘 좀 아는군

└치킨차별을 멈춰주세요ㅠ

-얘네 셋 계속 친하게 지내는 거 저는 찬성입니다.

-아 광고판 보고 이거 먹으러 갔나 봐ㅠㅠ 귀여운 놈들 사랑한다ㅠㅠ

‘광고판?’

여성은 혹시 하는 마음에 ‘박문대 광고판’을 검색해 봤다.

그 즉시, 만 단위로 공유되고 있던 몇 시간 전 글이 상단에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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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대 광고판 인증샷 찍고 갔어ㅠㅠ 사람 넘 많이 몰려서 오래 못 있었는데도 귀엽고 친절해서 수니심장 박살냈음 마스크 썼는데도 잘생김이 뚫고 나옴 실물 존잘ㅠㅠ (짧은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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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부된 동영상을 재생하자, 청바지에 검은 후드, 검은 야구모자를 쓴 박문대가 자신의 광고판 앞에서 사진을 찍는 모습이 나왔다.

박문대는 사람들의 쏟아지는 말에 약간 부끄러운 듯이 대답했다.

그리고 다른 참가자 두 사람과 함께 유쾌하게 질주해서 사라지는 것으로 영상이 끝났다.

-귀 여 워

-문대 생각보다 사교적인걸?

-ㅠㅠ역시 문댕댕은 뇌피셜이 아니라 공식이다ㅠㅠ 뭐, 티벳여우? 이단이다!

-눈새로 편집한 피디놈 죽어 제발 우리 애 그냥 차분한 거였잖아

-금발이 모자 써도 개찰떡

‘귀여워…! 너무 귀여워!!’

발을 구르던 그녀는, 문득 박문대의 광고판 사진이 익숙하다는 걸 깨달았다. 친구가 자신이 찍었다며 보여준 사진이었다!

그녀는 얼른 메시지를 작성했다.

‘왜 이거부터 알려주지 않았느냐’고 묻자, ‘너무 심장이 떨려서 타자가 안 쳐짐’이라는 대답이 나왔다.

여성은 키득거리며 축하 이모티콘을 보냈다. 그리고 생각했다.

‘나도 뭔가 해주고 싶다.’

박문대가 잘돼서, 멋진 무대를 많이 보고 싶었다.

결국, 그녀는 방금의 구매 페이지로 돌아가서 음원 패키지를 구매했다.

흐뭇하게 문대의 주식을 매수한 후, 다른 내용은 없나 확인해 본 삼계탕집 목격담 글에서는 어느새 싸움이 터져 있었다.

-사진 내려주세요. 스토킹은 범죄입니다.

└아니 어쩌다 우연히 본 건데요 무슨 스토킹;; 걍 목격담임

└남 밥 먹는 거 도촬이 목격담인가요? 상식적으로 말이 되는 소리를 하세요.

└응 차단했음 ㅅㄱ

이 대화 이후, 불타오르던 사람들의 반응은 머쓱하게 흐지부지되었다.

박문대의 소식을 접하기 힘들었기에 드문 목격담에 반사적으로 흥분했다가, 사생활 침해일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여성도 머쓱해하며 창을 껐다. 아직 문대가 데뷔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깜박했던 것이다.

‘그거야… 그렇게 잘했으니까…!’

그녀는 다시 생각해도 정신이 멍해지는 직전 방청 경험을 떠올리다가, 문득 잊고 있던 것을 생각해 냈다.

“헉! 본방!”

그렇다. 애초에 아이돌 주식회사 방영을 기다리며 막간을 이용해 주식구매 페이지를 살펴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허겁지겁 채널을 틀었고, 다행히 막 시작하는 방송의 로고를 볼 수 있었다.

“휴…….”

안도하며 마음을 놓은 것도 잠시, 갑자기 MC의 의미심장한 얼굴이 방송을 탔다.

“…?”

마치 토의실 책상 앞에 앉아 발언하는 것처럼, MC가 진지하게 책상을 쳤다.

참고로, 슬슬 ‘초반에 최종 데뷔 인원수를 너무 작게 투표해 버렸다’며 우는 사람들이 나오고 있었다.

‘무슨…?’

방송 시작하자마자 갑자기 이게 뭔지 혼란스러워하는 시청자의 앞에, 제작진은 거대한 똥을 투척했다.

“…?!?!”

바야흐로 지옥의 도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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