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1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16화
대체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동종업계 경쟁자의 친필 사인 브로마이드가 이 집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다른 놈도 아니고 청려라니.
‘지금이 이 새끼가 한참 내 뒤통수 갈기던 때 아닌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리셋증후군 새끼 사인까지 받게 됐느냔 말이다.
이놈이 복권 당첨됐다고 팬 사인회에 돈 박을 성향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다른 이유가 있었다.
[아! 그거 옷 사다가 당첨이 돼서요!]
다짜고짜 초기화된 맨몸으로 살다 보니, 아무리 옷에 관심 없는 놈이어도 여유가 생기자 생존을 위해 대량 구매를 했던 모양이다.
특히 겨울옷은… 외투가 없으면 얼어 죽기 딱 좋으니 코트나 패딩류까지 한꺼번에 세일 기간에 구매했다고 한다.
[제가 옷을 잘 몰라서… 그냥 한 매장에서 추천해 주시는 걸 그대로 샀거든요…….]
마침 그 매장이 VTIC이 광고하는 아웃도어 브랜드였다 이거다.
그리고 재미 삼아 추첨에 넣은 응모증으로 광고 모델의 팬 사인회가 당첨된 것이다.
“…….”
차라리 테스타가 광고하는 걸… 아니, 그러면 이상하게 꼬였겠지.
‘애초에 뭐하러 남자 아이돌 팬 사인회 추첨에 응모를 했…….’
[지난번에 저희 보러 갔던 공연이 멋있어서… 아이돌이라고 하니까 관심이 생겨서요. 그, 형이랑 같이 예능도 나왔던 분도 계시고….]
“…….”
내 탓이었군. 잘 알겠다.
나는 찜찜한 눈으로 브로마이드에서 시선을 뗐다.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으니 큰 상관은 없겠지.
“언제 갔었는데.”
[어제요!]
아무래도 지난번처럼 1차 시험 끝난 기념 삼아 간 모양이다.
어차피 1년 유예가 또 주어지니, 2차 너무 의식하지 말고 1차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해 뒀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사실, 1차랑 비슷한 형태로 과락만 면하는 상태이상이 뜰 것 같았고.
[!상태이상 : 합격이 아니면 죽음을! (3)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의 2차 필기시험에서 과락 없는 성적표를 받지 못할 시, 사망
그래, 이럴 줄 알았다.
그러니 내년엔 1차 붙고 2차는 과락만 면하면 된다. 그리고 내년 기출까진 내가 아니까 별문제 없을 것이다.
그걸 설명해 주려 했으나, 이놈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저… 사실 지금 2차까지 본 상태인데, 가채점으로만 봐선… 아마 과락은 없을 것 같아요!]
“…!”
[찍은 게 굉장히 운 좋게 많이 맞았거든요! 붙진 못할 것 같지만…….]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성취였다.
“충분해. 잘했어.”
[…! 네!! 감사합니다!]
그럼 새 상태이상을 한 달 안에 날로 먹을 수 있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했다.
“그래도 바로 클리어 처리하지 말고 꼭 내년 2차 성적 나오기 직전까지 시간 끈 후에 지워라. 여유 시간을 확보해 둬.”
[넵!]
그럼 대충… 내년에도 9월에 돌아오려나.
나는 스마트폰으로 현재 날짜를 확인했다. 9월이 맞다. 내가 꽉 채워서 1년 만에 다시 이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도 기다리라고 하셔서 최대한 참고, 시간 끌어봤어요…!]
“그것도 잘했다.”
공명이 이리저리 튀기는 것처럼 울렸다. 아마 웃는 것 같다.
‘그러면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없는 건가.’
지난 1년간 저놈의 사인 외에 특수한 사건은 없었는지 떠보며 시간을 보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주식 어플에 접속해 팔아치울 놈들을 고르며 ‘박문대’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숙학원은 어때.”
[좋아요! 사람들도 친절하고… 공부도 잘 가르쳐 주셔서 진짜 잘 지냈어요. 밥도 맛있구요…!]
그렇군. 나는 주식 매도와 매수를 몇 번 반복한 후에 어플을 껐다.
‘이 정도면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해도 돈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거고.’
그리고 공명이 계속 1년 치 본인 일과를 떠드는 것을 들으며 거실로 나가는 순간, 굉장히 인상적인 꼴을 봤다.
“…….”
꽃 대가리.
내가 에 나갔을 때 만든 홀로그램 캐릭터, ‘5월의 신랑’ 인형이 소파 정중앙에 앉아 있다.
‘뭐냐.’
굉장히… 본인 몸의 활약을 인상적으로 지켜본 모양이다.
“이것도 샀냐.”
[형 노래 정말 잘 부르셔서… 하나 정도는 기념으로 괜찮지 않을까 해서요….]
달마다 스트레스 해소 비용을 책정해 놓은 건 나다. 그러니 본인이 좋다면야 상관없겠다만….
나는 다소 떨떠름한 심정으로 인형을 미루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공명은 벼르고 있던 것 같은 본론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저, 2차 성적이 나오고 나면… 혹시 테스타 연말 콘서트에 형 보러 가도 괜찮을까요? 올해 초에는 공부하느라 못 갔거든요….]
아무래도 어제부터 준비한 문구 같은데.
나는 피식 웃었다.
“뭘 허락을 받아. 가도 괜찮을 것 같으면 가도 되는 거지.”
[…! 예! 감사합니다!]
고마울 건 없다. 물론 내 몸으로 남자 아이돌 콘서트에 가는 건 좀 눈에 띄는 행동이긴… 잠깐.
“저거 팬 사인회.”
[…??]
“…어제 갔다고 했지.”
[네!]
나는 VTIC의 사인이 올라간 브로마이드를 다시 살폈다.
앨범에 붙은 팬 사인회가 아니라 광고 모델 사인회는 팬 아닌 사람도 제법 오긴 한다만… 그래도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굉장히 친절하시더라구요.]
더 불길하다.
나는 혹시 몰라서 위튜브에 접속해 검색어를 넣었다.
오늘의 날짜와 활동명, 그리고 의류 브랜드명을 조합하면… 역시 팬 사인회 직캠 영상이 나온다.
댓글을 쭉 내려보니, 우려했던 내용이 나온다.
-22:34 남팬 응대하는 청려 존웃ㅋㅋㅋㅋㅋㅋ
“…….”
해당 시간을 클릭하자, 사인을 받는 ‘류건우’의 그늘진 뒷모습이 반쯤 잡혔다.
공명이 비명처럼 울린다.
[으허헉! 이, 이렇게 올라오는 줄 몰랐어요….]
나는 그것을 캡처해서 색을 보정했다.
[형?]
모자를 쓴 착장, 아마 안경도 썼을 것 같은데….
이거, 내가 놈한테 말했던 류건우의 인상착의랑 똑같지 않나.
‘망할.’
나는 혹시 몰라서 이놈이 사인을 받은 브로마이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받은 사람 이름.
‘설마 류건우로….’
-To. 큰달님
“…….”
큰달?
[저, 예전에 쓰던 닉네임인데… 왠지 형 이름으로 받기 죄송해서.]
훌륭한 판단력이다.
‘후.’
나는 화면에서 웃으며 사인을 하는 청려를 얼른 치웠다.
“이놈은 앞으로 피해.”
[처, 청려를요?]
“그래. 미친놈이니까.”
[으허업.]
내가 ‘류건우’의 행방을 찾기 위해 놈에게 힌트를 주긴 했다만, 이젠 행방을 알다 못해 번호와 주소까지 아니 상관없다.
굳이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새끼를 만나게 해서 변수를 늘릴 필요는 없지.
‘그러고 보니, 행방이 묘연했던 것도 내가 이놈을 기숙학원에 박아놔서 그런 거였나.’
이제야 말이 된다. 나는 턱을 문질렀다.
‘그럼 이걸 끝내고 돌아가면, 이놈에게 연락해서….’
아니. 지금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될지 어떻게 알아.’
나는 이놈의 상태이상이 다 끝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보상 수령이 끝났다며 이놈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몸에 그대로 남게 되더라도… 본인 몸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지금 사인도 본인 전 닉네임으로 받은 걸 봐라.
“…….”
[청려 씨랑 친하신 줄 알았는데, 이상한 사람일 줄이야… 어, 형?]
“안 친해. 방송용이야.”
[아…….]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군.
오늘은 시간이 나서 다행이었다. 실컷 뇌를 돌릴 수 있겠다.
나는 몇 가지 가설과 대비책을 세우며,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특별히 급박하거나 처리해야 할 일은 없었다.
[형, 요리도 잘하시네요….]
“어, 고맙다.”
감각을 공유하다 보니 1인분만 해도 되는 것도 편했고.
저녁 황금시간대 TV에선 마침 내가 선아현과 출연했던 예능이 나오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 떨어져서 문제 푸는 것 말이다.
‘이때가 회사 내부 산업스파이 색출했던 때였던가.’
참 열심히 살긴 했다. 나는 잘난 척하는 내 모습을 별 감흥 없이 쳐다보았다.
[예능도 좋지만, 역시 무대에 서실 때가 더 멋진 것 같아요. ‘행차’가 진짜 멋있었거든요…! 얼른 또 컴백하셨으면 좋겠어요….]
내가 스탯을 대놓고 올리긴 했다만, 본인 얼굴을 보고 그렇게까지 말하나…?
그러나 칭찬은 칭찬이고 기분이 나쁘진 않다.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컴백 바로 다음 달 14일인데.”
[헉…!]
“이야기하고 다니진 말고.”
[네! 저 말할 사람도 없어요!! 학원에서도 다들 아이돌 이야기는 안 해요!]
당연한 말을 한다.
공명은 신나게 알 수 없는 파동으로 요동쳤으나, 곧 진정했는지 부드럽게 웅웅대기 시작했다.
조금 조심스러운 투였다.
[저, 형. 이렇게 매번 도움만 받는데… 제가 도울 일은 없을까요? 그, 지난번에 경찰서 전화하신 것처럼요. 하실 일 있으면 제가 해놓을게요!]
내가 해놓을 일?
음, 그러고 보니 다다음 달에 청려가 날 죽이려 들긴 하지.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충분히 알아서 잘 처리해왔다. 본인 상태이상이나 신경 써야 할 놈한테 뭘 더 시킬 순 없지.
“딱히 더 없어.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라.”
[예…….]
풀이 죽은 것 같다. 나 참.
그리고 자정이 다가올수록 그 기색은 더 심해졌다. 공명은 거의 불안하게까지 들린다.
‘말은 안 해도 혼자 1년 보내면서 힘들었나 본데.’
사정을 다 까놓고 말할 사람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라도 공부 말고 할 일이나 생각할 일이 필요한 걸 수도 있겠고.
그래서 나는 자러 갈 때쯤 화제를 새로 꺼냈다.
“넌 따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냐.”
[저요?]
그래.
공명은 머뭇거리는 것 같았지만 곧 작게 다시 울렸다.
[그럼 형, 혹시… 제 닉네임 보시고 어떠셨어요?]
“닉네임?”
큰달. 본명인 ‘문대’에서 나온 닉네임인 건 알겠다만, 썩 독특한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것 같은데….
[그… 제가 예전에 형이 운영하시던, 그 계정 있잖아요. 거기 자주 댓글을 남겼었는데.]
아.
“그게 너였냐.”
[…! 기억나세요?]
“그래. 매번 꼬박꼬박 남겼잖아.”
[네…!!]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진실 확인’에서 봤던 이놈 닉네임이 그거였군.
실제로 나도 댓글을 별로 안 보긴 했다만, 거의 올리자마자 달리니 봤던 게 이제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매치가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돌 무대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이렇게 활자로 생긴 안면을 깨달으니 독특한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분야에 관심 있으면 너도 카메라 하나 사서 찍고 다녀 봐도 될 것 같은데.”
[…그, 그럴까요?]
“물론 이 시험이 다 끝나면.”
[물론이죠! 그래도요… 와.]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공명이 좀 더 편안히 울린다.
그리고 마침 시간도 다 됐다.
“그래. 그럼 한번 생각해 봐라. 내년에 보자.”
[네….]
천천히 잠이 밀려왔다. 제법 평온했다.
* * *
[형? …형?]
나는 눈을 떴다.
저번과 똑같은 아침이다. 온도도 비슷한 것 같으니 아마도 다음 해 9월….
[건우 형 맞죠?? 형!!]
“그래.”
이놈 패닉 상태인 것 같은데. 혹시 문제 생겨서 부른 건가?
나는 당장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먼저 공명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흐느끼는 것 같다.
[형, 형 교통사고….]
아.
‘X발.’
나는 당장 스마트폰을 열었다.
-6월 22일
데뷔 기념일로부터 나흘 뒤.
내가 정신 나간 전 매니저 새끼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때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16화
대체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기에 동종업계 경쟁자의 친필 사인 브로마이드가 이 집에 있는 건지 알 수가 없다.
그것도 다른 놈도 아니고 청려라니.
‘지금이 이 새끼가 한참 내 뒤통수 갈기던 때 아닌가.’
무슨 바람이 불어서 이 리셋증후군 새끼 사인까지 받게 됐느냔 말이다.
이놈이 복권 당첨됐다고 팬 사인회에 돈 박을 성향 같지는 않았는데 말이지.
아니나 다를까 다른 이유가 있었다.
다짜고짜 초기화된 맨몸으로 살다 보니, 아무리 옷에 관심 없는 놈이어도 여유가 생기자 생존을 위해 대량 구매를 했던 모양이다.
특히 겨울옷은… 외투가 없으면 얼어 죽기 딱 좋으니 코트나 패딩류까지 한꺼번에 세일 기간에 구매했다고 한다.
마침 그 매장이 VTIC이 광고하는 아웃도어 브랜드였다 이거다.
그리고 재미 삼아 추첨에 넣은 응모증으로 광고 모델의 팬 사인회가 당첨된 것이다.
“…….”
차라리 테스타가 광고하는 걸… 아니, 그러면 이상하게 꼬였겠지.
‘애초에 뭐하러 남자 아이돌 팬 사인회 추첨에 응모를 했…….’
“…….”
내 탓이었군. 잘 알겠다.
나는 찜찜한 눈으로 브로마이드에서 시선을 뗐다. 공부는 제대로 하고 있는 것 같으니 큰 상관은 없겠지.
“언제 갔었는데.”
아무래도 지난번처럼 1차 시험 끝난 기념 삼아 간 모양이다.
어차피 1년 유예가 또 주어지니, 2차 너무 의식하지 말고 1차만 집중하라고 이야기해 뒀으니까 그럴 만도 했다.
그리고 사실, 1차랑 비슷한 형태로 과락만 면하는 상태이상이 뜰 것 같았고.
‘7급 공개경쟁채용시험’의 2차 필기시험에서 과락 없는 성적표를 받지 못할 시, 사망
그래, 이럴 줄 알았다.
그러니 내년엔 1차 붙고 2차는 과락만 면하면 된다. 그리고 내년 기출까진 내가 아니까 별문제 없을 것이다.
그걸 설명해 주려 했으나, 이놈이 의외의 말을 꺼냈다.
“…!”
그래도 말도 안 되는 성취였다.
“충분해. 잘했어.”
그럼 새 상태이상을 한 달 안에 날로 먹을 수 있겠군.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계산했다.
“그래도 바로 클리어 처리하지 말고 꼭 내년 2차 성적 나오기 직전까지 시간 끈 후에 지워라. 여유 시간을 확보해 둬.”
그럼 대충… 내년에도 9월에 돌아오려나.
나는 스마트폰으로 현재 날짜를 확인했다. 9월이 맞다. 내가 꽉 채워서 1년 만에 다시 이 몸으로 돌아온 것이다.
“그것도 잘했다.”
공명이 이리저리 튀기는 것처럼 울렸다. 아마 웃는 것 같다.
‘그러면 오늘은 특별히 할 일이 없는 건가.’
지난 1년간 저놈의 사인 외에 특수한 사건은 없었는지 떠보며 시간을 보내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주식 어플에 접속해 팔아치울 놈들을 고르며 ‘박문대’와 이야기를 계속했다.
“기숙학원은 어때.”
그렇군. 나는 주식 매도와 매수를 몇 번 반복한 후에 어플을 껐다.
‘이 정도면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해도 돈 문제 생길 일은 없을 거고.’
그리고 공명이 계속 1년 치 본인 일과를 떠드는 것을 들으며 거실로 나가는 순간, 굉장히 인상적인 꼴을 봤다.
“…….”
꽃 대가리.
내가 에 나갔을 때 만든 홀로그램 캐릭터, ‘5월의 신랑’ 인형이 소파 정중앙에 앉아 있다.
‘뭐냐.’
굉장히… 본인 몸의 활약을 인상적으로 지켜본 모양이다.
“이것도 샀냐.”
달마다 스트레스 해소 비용을 책정해 놓은 건 나다. 그러니 본인이 좋다면야 상관없겠다만….
나는 다소 떨떠름한 심정으로 인형을 미루고 소파에 앉았다.
그리고 공명은 벼르고 있던 것 같은 본론을 조심스럽게 꺼냈다.
아무래도 어제부터 준비한 문구 같은데.
나는 피식 웃었다.
“뭘 허락을 받아. 가도 괜찮을 것 같으면 가도 되는 거지.”
고마울 건 없다. 물론 내 몸으로 남자 아이돌 콘서트에 가는 건 좀 눈에 띄는 행동이긴… 잠깐.
“저거 팬 사인회.”
“…어제 갔다고 했지.”
나는 VTIC의 사인이 올라간 브로마이드를 다시 살폈다.
앨범에 붙은 팬 사인회가 아니라 광고 모델 사인회는 팬 아닌 사람도 제법 오긴 한다만… 그래도 눈에 띄었을 것 같은데.
더 불길하다.
나는 혹시 몰라서 위튜브에 접속해 검색어를 넣었다.
오늘의 날짜와 활동명, 그리고 의류 브랜드명을 조합하면… 역시 팬 사인회 직캠 영상이 나온다.
댓글을 쭉 내려보니, 우려했던 내용이 나온다.
-22:34 남팬 응대하는 청려 존웃ㅋㅋㅋㅋㅋㅋ
“…….”
해당 시간을 클릭하자, 사인을 받는 ‘류건우’의 그늘진 뒷모습이 반쯤 잡혔다.
공명이 비명처럼 울린다.
나는 그것을 캡처해서 색을 보정했다.
모자를 쓴 착장, 아마 안경도 썼을 것 같은데….
이거, 내가 놈한테 말했던 류건우의 인상착의랑 똑같지 않나.
‘망할.’
나는 혹시 몰라서 이놈이 사인을 받은 브로마이드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받은 사람 이름.
‘설마 류건우로….’
-To. 큰달님
“…….”
큰달?
훌륭한 판단력이다.
‘후.’
나는 화면에서 웃으며 사인을 하는 청려를 얼른 치웠다.
“이놈은 앞으로 피해.”
“그래. 미친놈이니까.”
내가 ‘류건우’의 행방을 찾기 위해 놈에게 힌트를 주긴 했다만, 이젠 행방을 알다 못해 번호와 주소까지 아니 상관없다.
굳이 이런 예측할 수 없는 위험한 새끼를 만나게 해서 변수를 늘릴 필요는 없지.
‘그러고 보니, 행방이 묘연했던 것도 내가 이놈을 기숙학원에 박아놔서 그런 거였나.’
이제야 말이 된다. 나는 턱을 문질렀다.
‘그럼 이걸 끝내고 돌아가면, 이놈에게 연락해서….’
아니. 지금 내가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그렇게 될지 어떻게 알아.’
나는 이놈의 상태이상이 다 끝났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
정말 최악의 경우에는 보상 수령이 끝났다며 이놈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그리고 이 몸에 그대로 남게 되더라도… 본인 몸으로 돌아오고 싶어 하지 않겠는가.
지금 사인도 본인 전 닉네임으로 받은 걸 봐라.
“…….”
“안 친해. 방송용이야.”
이건 좀… 생각을 해봐야겠군.
오늘은 시간이 나서 다행이었다. 실컷 뇌를 돌릴 수 있겠다.
나는 몇 가지 가설과 대비책을 세우며, 식사 준비를 시작했다.
그 후로는 특별히 급박하거나 처리해야 할 일은 없었다.
“어, 고맙다.”
감각을 공유하다 보니 1인분만 해도 되는 것도 편했고.
저녁 황금시간대 TV에선 마침 내가 선아현과 출연했던 예능이 나오고 있었다. 조선 시대에 떨어져서 문제 푸는 것 말이다.
‘이때가 회사 내부 산업스파이 색출했던 때였던가.’
참 열심히 살긴 했다. 나는 잘난 척하는 내 모습을 별 감흥 없이 쳐다보았다.
내가 스탯을 대놓고 올리긴 했다만, 본인 얼굴을 보고 그렇게까지 말하나…?
그러나 칭찬은 칭찬이고 기분이 나쁘진 않다. 나는 가볍게 대답했다.
“컴백 바로 다음 달 14일인데.”
“이야기하고 다니진 말고.”
당연한 말을 한다.
공명은 신나게 알 수 없는 파동으로 요동쳤으나, 곧 진정했는지 부드럽게 웅웅대기 시작했다.
조금 조심스러운 투였다.
내가 해놓을 일?
음, 그러고 보니 다다음 달에 청려가 날 죽이려 들긴 하지.
나는 잠시 고민했으나, 곧 고개를 저었다.
그런 건 충분히 알아서 잘 처리해왔다. 본인 상태이상이나 신경 써야 할 놈한테 뭘 더 시킬 순 없지.
“딱히 더 없어. 그냥 공부 열심히 하고 있어라.”
풀이 죽은 것 같다. 나 참.
그리고 자정이 다가올수록 그 기색은 더 심해졌다. 공명은 거의 불안하게까지 들린다.
‘말은 안 해도 혼자 1년 보내면서 힘들었나 본데.’
사정을 다 까놓고 말할 사람이 없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라도 공부 말고 할 일이나 생각할 일이 필요한 걸 수도 있겠고.
그래서 나는 자러 갈 때쯤 화제를 새로 꺼냈다.
“넌 따로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없냐.”
그래.
공명은 머뭇거리는 것 같았지만 곧 작게 다시 울렸다.
“닉네임?”
큰달. 본명인 ‘문대’에서 나온 닉네임인 건 알겠다만, 썩 독특한 단어는 아니다. 오히려 익숙한 것 같은데….
아.
“그게 너였냐.”
“그래. 매번 꼬박꼬박 남겼잖아.”
그러고 보니 첫 번째 ‘진실 확인’에서 봤던 이놈 닉네임이 그거였군.
실제로 나도 댓글을 별로 안 보긴 했다만, 거의 올리자마자 달리니 봤던 게 이제 기억이 난다.
그렇게 매치가 되었다.
‘그때부터 아이돌 무대에 관심이 있었던 건가.’
이렇게 활자로 생긴 안면을 깨달으니 독특한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 분야에 관심 있으면 너도 카메라 하나 사서 찍고 다녀 봐도 될 것 같은데.”
“물론 이 시험이 다 끝나면.”
기분이 좀 나아졌는지, 공명이 좀 더 편안히 울린다.
그리고 마침 시간도 다 됐다.
“그래. 그럼 한번 생각해 봐라. 내년에 보자.”
천천히 잠이 밀려왔다. 제법 평온했다.
* * *
나는 눈을 떴다.
저번과 똑같은 아침이다. 온도도 비슷한 것 같으니 아마도 다음 해 9월….
“그래.”
이놈 패닉 상태인 것 같은데. 혹시 문제 생겨서 부른 건가?
나는 당장 몸을 일으켰다. 하지만 먼저 공명이 쉴 새 없이 울렸다.
…흐느끼는 것 같다.
아.
‘X발.’
나는 당장 스마트폰을 열었다.
-6월 22일
데뷔 기념일로부터 나흘 뒤.
내가 정신 나간 전 매니저 새끼 때문에 혼수상태에 빠졌던 그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