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0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9화
‘127 섹션’의 제작팀을 인수한 회사, T1 플레이즈의 댓글이 달린 것은 김래빈이 단독 편곡했던 테마곡이었다.
그리고 달린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그 댓글은 성지순례와 기대로 가득한 사람들의 대댓글로 인산인해였다.
-가즈아아아ㅏ
-아ㅋㅋ 일 잘하네ㅋㅋ
-기다렸습니다
-올려드려!
당장에라도 이 편곡이 시네마틱 트레일러 따위에 정식 채택될 것 같은 분위기.
심지어 이모티콘으로 도배된 해외 밈을 달아대는 외국인들도 넘친다.
“어어어….”
김래빈은 넋이 나갔다. 아무래도 예상도 못 한 상황에 뇌에 과부하가 온 것 같다.
웃기지만 나도 동감이었다.
‘언제 이 지경이 된 거지.’
반응이 괜찮을 줄은 알았다만, 화제성하곤 별개의 문제 아닌가.
무슨 신생 계정이 올린 게임 패러디 동영상이 일주 만에 이렇게까지 떡상하냐.
어차피 익명 계정이라 그냥 놔뒀는데, 안 되겠다.
나는 이 난리의 원인을 찾아 스마트폰을 켰다.
‘또 알고리즘 픽이냐?’
아니었다. 그보다 인위적인 일이었다.
‘127 섹션’은 국내에선 다시 전성기가 지나가며 마니아층만 남고 대중성과 매출이 떨어진 건 맞았다.
하지만 감성이 맞아서인지, 해외에서는 강력한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한 스테디셀러로 정착한 것이다.
덕분에 해외의 게임 위튜버들 중에도 이 게임 시리즈에 목매는 놈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 놈이 라이브 중 이 동영상을 본 모양이다.
그놈 구독자가….
[구독자 2592만명]
그래, 이러니 떡상했지.
덕분에 일 열심히 하는 담당자의 눈에도 들어왔고,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이냐?
“어쩌지?”
“그러게요.”
아까부터 ‘그러게요’가 대답으로 나오는 빈도가 현저히 늘었다.
그만큼 웃기는 상황이었다.
무슨 부캐도 아니고 전문 작곡가로 제2의 커리어를 쌓게 생겼으니까.
그것도 현 동업자가 자기 혼자 미끼에 낚여서 말이다.
그 순간, 차유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해요! 재밌어요!”
그럴 줄 알았다.
“잠깐, 잠깐!”
“좀 생각해 보자, 유진아!”
다짜고짜 다수결에 붙여 버리려는 차유진을 류청우와 이세진이 말리는 것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일단… 진짜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계약서 적을 때 본명이랑 계좌를 넣어야 할 텐데.”
“아, 그럼 바로 우린 게 들키겠네?”
“그렇지.”
그 순간 테스타가 이 게임 홍보용 이야기로 사용되는 꼴이 훤히 보인다. 같은 계열사니 본사에서도 옳다구나 생각 없이 밀어줄 테지.
재밌는 미담이니 테스타도 이득, 게임도 이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온갖 곳에서 조작 의심이 판치겠군….’
당연하지만,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우연은 뻔한 마케팅용 기만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테스타 띄우기 역겹네
-망겜 한 번 더 물 받아보겠다고 또 빠순이 끌어들이는 거 보소
-돌아버리겠네 티원 마케팅팀 왜 이래 아 ㅅㅂㅠㅠ
대상 앞두고 굳이 이런 잡음을 만드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신인상 때 ‘테스타는 자격이 없다’ 같은 여론 형성을 생각해 봐라.
실제로 대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받을 만했는지’ 인정하는 것이 미션 성공 여부에 분명 영향을 준다.
‘우리가 막으려고 해도 본사에서 윗대가리 하나가 다른 마음 먹는 순간 X 될 수 있다.’
그 꼴은 못 보지.
그때, 의외의 인물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 가족 명의로 하면 어떨까…?”
선아현이었다. 아마 김래빈의 성취를 포기하는 게 안타까워서 제안한 것 같았다.
“오, 괜찮은데?”
“저 좋아요!”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안 돼. 들키는 순간 탈세 혐의부터 나온다.”
“…….”
무조건이다. 안 그래도 요새 민감한 부분인데 조심해야지.
데뷔 첫해의 종합소득세 신고로 한번 난리를 겪었던 배세진은 침을 삼켰다.
“그럼… 무시할까?”
“그것도 좀.”
이미 한번 주목 받은 이상, 이 계정에 계속 편곡을 올리면 컨택 이야기도 계속 나올 것 같았다.
‘김래빈 재능이면 그럴 만하지.’
게다가 당장 재밌어하면서 댓글 달리는 꼴 좀 봐라. 도리어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 부분이 독특해서 어그로가 끌릴지도 모른다.
그럼 그걸 바이럴로 써먹으려는 놈들도 튀어나올 수 있고.
‘…그냥 계정을 갈아버릴까.’
음, 이 계정에 김래빈에게 슬럼프를 극복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되도록 놔두려고 했는데 말이다.
그걸 피하려면… 결국 정설이군.
“거절할 생각이면 일단 적당한 말로 표명은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네.”
사람들이 다 납득하고 넘어갈 만한 적절한 변명이 있으면 딱 좋다.
무난히 편곡 활동만 하다 보면 또 관심이 잦아드는 때도 오니까.
“그, 뭐 그럴싸한 말 좀 지어내 봐, 너 이런 거 잘하잖아!”
“예? 제가요?”
큰세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자 배세진이 움찔했다. 한 일이 년쯤 둘이 정중하게 굴더니 슬슬 약발이 떨어지나 보군.
‘그래도 대놓고 말하니 됐나.’
어쨌든, 큰세진은 배세진과 쓸데없는 싸움을 하는 대신 의견을 내놨으니까.
“이런 건 역시 제1 공로자 의견이 중요하죠~ 래빈이는 어떻게 생각해?”
“예?”
입을 벌리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던 김래빈은 큰세진의 호명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아깝지 않겠어?”
“예! 애초에 상업적 목적이 아닌 취미생활로서 작곡 캠프에서 만든 것이니, 지금 반응으로도 과분하고 즐겁습니다!”
“음, 래빈이가 그렇다면야.”
“오케이~”
그렇게 적절한 거절 문구나 생각해내는 것으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학업 정도면 무난하겠지?”
“그래. 말투 좀 다듬고.”
그래서 해당 영상에 달아놓은 댓글이 이것이다.
-정식 계약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공부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ㅠㅠ 이렇게 위튜브에 올려서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꼬투리 잡힐 게 없을 만큼 온건하고, 의심받지 않을 만큼 흔한 사유다.
‘이걸로 마무리군.’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진 않았다.
* * *
“이야, 이 사람 끈질기네.”
다시 며칠 후.
우리는 고정해 놓은 댓글 밑에 달린 담당자의 댓글을 발견했다.
-그 만족… 돈이 포함되면 더 커지지 않을까요? (찡긋 이모티콘)
이미 해놓으신 편곡으로 계약 가능하니 편하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공부 화이팅!(웃는 이모티콘)
그리고 이 썰렁한 개그에 무슨 감명이라도 받은 건지 사람들은 더 신나서 댓글에 달라붙었다.
‘…커뮤니티에도 슬슬 올라오잖아.’
[삼고초려 중인 폐허공장]
[그 편곡이 그렇게 띵작임? 난해하던데]
[열일하는 머기업 근황]
이게 재밌어 보였는지 누가 캡처해서 나르고 있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럴 시간에 업뎃이나 잘해라
-받아줘! 받아줘!
마치 여기서 거절하면 흥 깨고 무례한 애새끼가 될 것 같은 분위기.
물론 ‘왜 안 하겠다는데 귀찮게 하냐’면서 담당자를 욕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정말 개판이 되는 거지….’
논쟁이 붙는 건만큼 번지기 쉬운 화제도 없다.
그 난장판에 사실 편곡자가 테스타인 것까지 드러나면 진짜 반갑잖은 상황이 터질 것이다.
‘자칫하면 논란감이야.’
게다가 편곡 외의 요소가 화제가 되니, 슬슬 의도를 가지고 댓글에 악평이나 칭찬을 쓰는 놈들이 늘어나고 있다.
계정을 개설한 본질이 벌써부터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X발.’
귀찮게 구네 진짜.
콘서트 집중하기도 바쁜데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김래빈은 덕분에 좀 풀이 죽기까지 했다.
“중요한 시기에 괜한 일에 신경 쓰시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픽 웃었다.
“뭐, 네가 재능이 있는 걸 사과하는 거냐.”
“그,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김래빈은 경악했지만 특별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고, 나는 대화를 틀어줄 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가 이걸 거절하는 데에 동의한 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상황상 그게 깔끔해서가 맞겠지.”
“예? 예.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됐다. 이런 건 다 무시해도 괜찮아. 콘서트가 우선이니까.”
“…넵. 알겠습니다!”
김래빈은 그렇게 확답을 듣자 안심한 것 같았다. 그 자리에 큰세진이 실실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왔다.
“그래~ 우리 이번 콘서트에서 멋진 모습 보여줘야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사실 이 게임사의 지랄에 큰 관심을 쏟을 만큼 여력이 남아나는 놈은 별로 없었다.
저놈이 뒤바꾼 세트리스트에 몰두할수록 챙길 디테일이 늘어나서 말이다.
‘쓸 만한 놈이야.’
나는 새삼스럽게 큰세진을 보았다.
이득을 챙길 구석이 있으면 거기까지 현실적인 경로를 설계하는 걸 제법 한단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세웠던 계획에서 제일 큰 역할을 한 놈이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산장 행을 기획할 때 세웠던 커리큘럼은 아직 미완이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았거든.
-작곡 캠프 3단계.
2단계까지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으니, 이번에는 슬럼프 상황에서도 멘탈 붕괴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바로….’
프로듀싱을 건드릴 수 있는 권한과 단절된 상황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이번 콘서트다.
* * *
“심장 터질 것 같아.”
“나도 완전.”
대학원생은 자신의 대각선 바로 앞에 앉은 친구, 박문대의 홈마와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신난 그들과 달리 떨떠름한 얼굴의 제삼자도 근방에 앉아 있었다.
‘나는 왜 여기….’
바로 그녀들의 친구였다.
티케팅에 용병으로 참전했으나, 놀랍게도 친구들이 모두 티케팅에 성공하며 표가 남은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의 꼬드김과 호기심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게 되었으나… 벌써 후회 중이었다.
‘암표로 팔아버릴걸.’
혹시라도 걸려서 취업에 문제가 생길까 봐 안 했지만, 지금 여기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절로 아까웠다.
‘그 돈으로 100연차나 돌리는 건데!’
그렇다. 그녀는 확률형 망겜에 돈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현대의 모바일 게이머였다.
‘워낙 유명한 아이돌이라 혹했는데… 휴.’
그녀는 벌써부터 신나서 떠드는 친구들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좀 민망하고.’
응원봉이 너무 휘황찬란해서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들뜨고 신난, 같은 감성을 공유 중인 공연장에서 그녀는 속절없이 응원봉을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윽 진짜.’
그렇게 그녀가 슬슬 친구들을 원망하고 있을 무렵.
-지이이잉
부드러운 목소리의 안내 방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아아악!!
“어우씨.”
시작하는 게 그렇게 신날까? 그녀는 주변에서 터지는 환성에 기겁했다.
-금일 테스타의 ‘Wave for me’를 관람하러 와주신 관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람 매너를 차근히 말하는 남성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지만, 어딘지 약간 위화감이 들었다.
콘서트보다는 좀 더 연극적 격식이 있는 공연장에서 할 법한 단어 선택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녀는 구체적으로 눈치채진 못했다.
-……그럼 즐거운 관람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대학원생이 함박웃음과 함께 그녀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저게 문대야!’
어?
그 순간, 조명이 검게 꺼졌다.
-지금, 우리는 파도 속으로 들어갑니다….
공연자의 마지막 안내 멘트가 때를 맞춰 울렸다.
그리고 삽시간에 조용해진 공연장에서, 천천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닷소리였다.
그리고 그 속에 천천히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이 녹아들더니,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살랑대는 맑은 소리.
그녀도 들어본 곡이었다.
‘테스타 데뷔곡이지?’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다른 강렬한 멜로디가 섞여 들어온다.
이번에도 아는 곡이다. 하지만 다시금 몇 초 만에 다음 반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뭐야?’
그것은 서곡, 오버추어(overture)이었다.
오페라나 뮤지컬의 오프닝에 연주되는 예고.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곡을 소개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현장의 모든 사람이 그 곡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몰입용이었다.
‘…분위기 있네.’
그리고 공연장에 조명이 돌아온다.
온 객석을 다 덮는 강렬한 푸른 조명이었다. 하지만 정적이진 않았다.
“…!”
수많은 연한 푸른색과 진한 푸른색이 물결치며 실내 공연장을 물들였다.
공기가 움직인다.
치이익.
그리고 드라이아이스가 발밑으로 깔린다. 연기가 부드럽게 출렁였다.
“와.”
그 조명과 출렁임, 시원한 냄새, 그리고 약간 멍멍하게 울리는 반주….
오감이 비유법을 거들었다.
공연장 안은 물속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9화
‘127 섹션’의 제작팀을 인수한 회사, T1 플레이즈의 댓글이 달린 것은 김래빈이 단독 편곡했던 테마곡이었다.
그리고 달린 지 만 하루도 지나지 않은 그 댓글은 성지순례와 기대로 가득한 사람들의 대댓글로 인산인해였다.
-가즈아아아ㅏ
-아ㅋㅋ 일 잘하네ㅋㅋ
-기다렸습니다
-올려드려!
당장에라도 이 편곡이 시네마틱 트레일러 따위에 정식 채택될 것 같은 분위기.
심지어 이모티콘으로 도배된 해외 밈을 달아대는 외국인들도 넘친다.
“어어어….”
김래빈은 넋이 나갔다. 아무래도 예상도 못 한 상황에 뇌에 과부하가 온 것 같다.
웃기지만 나도 동감이었다.
‘언제 이 지경이 된 거지.’
반응이 괜찮을 줄은 알았다만, 화제성하곤 별개의 문제 아닌가.
무슨 신생 계정이 올린 게임 패러디 동영상이 일주 만에 이렇게까지 떡상하냐.
어차피 익명 계정이라 그냥 놔뒀는데, 안 되겠다.
나는 이 난리의 원인을 찾아 스마트폰을 켰다.
‘또 알고리즘 픽이냐?’
아니었다. 그보다 인위적인 일이었다.
‘127 섹션’은 국내에선 다시 전성기가 지나가며 마니아층만 남고 대중성과 매출이 떨어진 건 맞았다.
하지만 감성이 맞아서인지, 해외에서는 강력한 마니아층을 기반으로 한 스테디셀러로 정착한 것이다.
덕분에 해외의 게임 위튜버들 중에도 이 게임 시리즈에 목매는 놈들이 많았는데, 그중 한 놈이 라이브 중 이 동영상을 본 모양이다.
그놈 구독자가….
그래, 이러니 떡상했지.
덕분에 일 열심히 하는 담당자의 눈에도 들어왔고, 이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그래서 결론은 무엇이냐?
“어쩌지?”
“그러게요.”
아까부터 ‘그러게요’가 대답으로 나오는 빈도가 현저히 늘었다.
그만큼 웃기는 상황이었다.
무슨 부캐도 아니고 전문 작곡가로 제2의 커리어를 쌓게 생겼으니까.
그것도 현 동업자가 자기 혼자 미끼에 낚여서 말이다.
그 순간, 차유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우리 해요! 재밌어요!”
그럴 줄 알았다.
“잠깐, 잠깐!”
“좀 생각해 보자, 유진아!”
다짜고짜 다수결에 붙여 버리려는 차유진을 류청우와 이세진이 말리는 것을 보며, 나는 입을 열었다.
“일단… 진짜 이 제안을 받아들이면, 계약서 적을 때 본명이랑 계좌를 넣어야 할 텐데.”
“아, 그럼 바로 우린 게 들키겠네?”
“그렇지.”
그 순간 테스타가 이 게임 홍보용 이야기로 사용되는 꼴이 훤히 보인다. 같은 계열사니 본사에서도 옳다구나 생각 없이 밀어줄 테지.
재밌는 미담이니 테스타도 이득, 게임도 이득이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그리고 온갖 곳에서 조작 의심이 판치겠군….’
당연하지만, 이렇게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우연은 뻔한 마케팅용 기만처럼 보이기 십상이다.
-테스타 띄우기 역겹네
-망겜 한 번 더 물 받아보겠다고 또 빠순이 끌어들이는 거 보소
-돌아버리겠네 티원 마케팅팀 왜 이래 아 ㅅㅂㅠㅠ
대상 앞두고 굳이 이런 잡음을 만드는 건 멍청한 짓이었다. 신인상 때 ‘테스타는 자격이 없다’ 같은 여론 형성을 생각해 봐라.
실제로 대상을 받는 것도 중요하지만, 대중이 ‘받을 만했는지’ 인정하는 것이 미션 성공 여부에 분명 영향을 준다.
‘우리가 막으려고 해도 본사에서 윗대가리 하나가 다른 마음 먹는 순간 X 될 수 있다.’
그 꼴은 못 보지.
그때, 의외의 인물이 진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 가족 명의로 하면 어떨까…?”
선아현이었다. 아마 김래빈의 성취를 포기하는 게 안타까워서 제안한 것 같았다.
“오, 괜찮은데?”
“저 좋아요!”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안 돼. 들키는 순간 탈세 혐의부터 나온다.”
“…….”
무조건이다. 안 그래도 요새 민감한 부분인데 조심해야지.
데뷔 첫해의 종합소득세 신고로 한번 난리를 겪었던 배세진은 침을 삼켰다.
“그럼… 무시할까?”
“그것도 좀.”
이미 한번 주목 받은 이상, 이 계정에 계속 편곡을 올리면 컨택 이야기도 계속 나올 것 같았다.
‘김래빈 재능이면 그럴 만하지.’
게다가 당장 재밌어하면서 댓글 달리는 꼴 좀 봐라. 도리어 아무 반응이 없으면 그 부분이 독특해서 어그로가 끌릴지도 모른다.
그럼 그걸 바이럴로 써먹으려는 놈들도 튀어나올 수 있고.
‘…그냥 계정을 갈아버릴까.’
음, 이 계정에 김래빈에게 슬럼프를 극복한 상징적 의미가 있는 것 같아서 되도록 놔두려고 했는데 말이다.
그걸 피하려면… 결국 정설이군.
“거절할 생각이면 일단 적당한 말로 표명은 해두는 게 좋을 것 같은데요.”
“그렇네.”
사람들이 다 납득하고 넘어갈 만한 적절한 변명이 있으면 딱 좋다.
무난히 편곡 활동만 하다 보면 또 관심이 잦아드는 때도 오니까.
“그, 뭐 그럴싸한 말 좀 지어내 봐, 너 이런 거 잘하잖아!”
“예? 제가요?”
큰세진이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웃자 배세진이 움찔했다. 한 일이 년쯤 둘이 정중하게 굴더니 슬슬 약발이 떨어지나 보군.
‘그래도 대놓고 말하니 됐나.’
어쨌든, 큰세진은 배세진과 쓸데없는 싸움을 하는 대신 의견을 내놨으니까.
“이런 건 역시 제1 공로자 의견이 중요하죠~ 래빈이는 어떻게 생각해?”
“예?”
입을 벌리고 여러 가지 생각에 잠겨 있는 것 같던 김래빈은 큰세진의 호명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저는… 거절해도 괜찮습니다!”
“아깝지 않겠어?”
“예! 애초에 상업적 목적이 아닌 취미생활로서 작곡 캠프에서 만든 것이니, 지금 반응으로도 과분하고 즐겁습니다!”
“음, 래빈이가 그렇다면야.”
“오케이~”
그렇게 적절한 거절 문구나 생각해내는 것으로 대화는 마무리되었다.
“학업 정도면 무난하겠지?”
“그래. 말투 좀 다듬고.”
그래서 해당 영상에 달아놓은 댓글이 이것이다.
-정식 계약 제안은 정말 감사하지만 공부하느라 시간이 나지 않습니다ㅠㅠ 이렇게 위튜브에 올려서 공유할 수 있는 것으로 만족합니다
꼬투리 잡힐 게 없을 만큼 온건하고, 의심받지 않을 만큼 흔한 사유다.
‘이걸로 마무리군.’
아마 다들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상황은 그렇게 흘러가진 않았다.
* * *
“이야, 이 사람 끈질기네.”
다시 며칠 후.
우리는 고정해 놓은 댓글 밑에 달린 담당자의 댓글을 발견했다.
-그 만족… 돈이 포함되면 더 커지지 않을까요? (찡긋 이모티콘)
이미 해놓으신 편곡으로 계약 가능하니 편하게 연락 부탁드립니다! 공부 화이팅!(웃는 이모티콘)
그리고 이 썰렁한 개그에 무슨 감명이라도 받은 건지 사람들은 더 신나서 댓글에 달라붙었다.
‘…커뮤니티에도 슬슬 올라오잖아.’
이게 재밌어 보였는지 누가 캡처해서 나르고 있더라고.
-ㅋㅋㅋㅋㅋㅋㅋㅋ
-이럴 시간에 업뎃이나 잘해라
-받아줘! 받아줘!
마치 여기서 거절하면 흥 깨고 무례한 애새끼가 될 것 같은 분위기.
물론 ‘왜 안 하겠다는데 귀찮게 하냐’면서 담당자를 욕하는 사람도 나올 것이다.
‘그러면 정말 개판이 되는 거지….’
논쟁이 붙는 건만큼 번지기 쉬운 화제도 없다.
그 난장판에 사실 편곡자가 테스타인 것까지 드러나면 진짜 반갑잖은 상황이 터질 것이다.
‘자칫하면 논란감이야.’
게다가 편곡 외의 요소가 화제가 되니, 슬슬 의도를 가지고 댓글에 악평이나 칭찬을 쓰는 놈들이 늘어나고 있다.
계정을 개설한 본질이 벌써부터 흐려지고 있는 것이다.
‘X발.’
귀찮게 구네 진짜.
콘서트 집중하기도 바쁜데 이게 무슨 난리란 말인가.
김래빈은 덕분에 좀 풀이 죽기까지 했다.
“중요한 시기에 괜한 일에 신경 쓰시게 되어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픽 웃었다.
“뭐, 네가 재능이 있는 걸 사과하는 거냐.”
“그, 그런 뜻으로 드린 말은 당연히 아닙니다…!”
김래빈은 경악했지만 특별히 반박할 말을 찾지 못했고, 나는 대화를 틀어줄 겸 다시 한번 확인했다.
“네가 이걸 거절하는 데에 동의한 건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상황상 그게 깔끔해서가 맞겠지.”
“예? 예. 그렇긴 합니다만….”
“그럼 됐다. 이런 건 다 무시해도 괜찮아. 콘서트가 우선이니까.”
“…넵. 알겠습니다!”
김래빈은 그렇게 확답을 듣자 안심한 것 같았다. 그 자리에 큰세진이 실실 웃으며 어깨동무를 하고 들어왔다.
“그래~ 우리 이번 콘서트에서 멋진 모습 보여줘야지~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데!”
그것도 맞는 말이다.
사실 이 게임사의 지랄에 큰 관심을 쏟을 만큼 여력이 남아나는 놈은 별로 없었다.
저놈이 뒤바꾼 세트리스트에 몰두할수록 챙길 디테일이 늘어나서 말이다.
‘쓸 만한 놈이야.’
나는 새삼스럽게 큰세진을 보았다.
이득을 챙길 구석이 있으면 거기까지 현실적인 경로를 설계하는 걸 제법 한단 말이지.
‘그러니까 내가 세웠던 계획에서 제일 큰 역할을 한 놈이기도 하고.’
그렇다. 내가 산장 행을 기획할 때 세웠던 커리큘럼은 아직 미완이었다.
마지막 단계가 남았거든.
-작곡 캠프 3단계.
2단계까지를 통해 자신감을 회복했으니, 이번에는 슬럼프 상황에서도 멘탈 붕괴를 예방하는 방법이다.
‘바로….’
프로듀싱을 건드릴 수 있는 권한과 단절된 상황에서 성취감과 보람을 느끼게 하는 것.
그게 바로 이번 콘서트다.
* * *
“심장 터질 것 같아.”
“나도 완전.”
대학원생은 자신의 대각선 바로 앞에 앉은 친구, 박문대의 홈마와 호들갑을 떨었다.
그리고 신난 그들과 달리 떨떠름한 얼굴의 제삼자도 근방에 앉아 있었다.
‘나는 왜 여기….’
바로 그녀들의 친구였다.
티케팅에 용병으로 참전했으나, 놀랍게도 친구들이 모두 티케팅에 성공하며 표가 남은 것이다.
그리고 친구들의 꼬드김과 호기심으로 이 자리에 앉아있게 되었으나… 벌써 후회 중이었다.
‘암표로 팔아버릴걸.’
혹시라도 걸려서 취업에 문제가 생길까 봐 안 했지만, 지금 여기 불편한 의자에 앉아 있으려니 절로 아까웠다.
‘그 돈으로 100연차나 돌리는 건데!’
그렇다. 그녀는 확률형 망겜에 돈 쓰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현대의 모바일 게이머였다.
‘워낙 유명한 아이돌이라 혹했는데… 휴.’
그녀는 벌써부터 신나서 떠드는 친구들을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이것도 좀 민망하고.’
응원봉이 너무 휘황찬란해서 집어넣고 싶었다….
하지만 모두가 들뜨고 신난, 같은 감성을 공유 중인 공연장에서 그녀는 속절없이 응원봉을 들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으윽 진짜.’
그렇게 그녀가 슬슬 친구들을 원망하고 있을 무렵.
-지이이잉
부드러운 목소리의 안내 방송이 울리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아아아악!!
“어우씨.”
시작하는 게 그렇게 신날까? 그녀는 주변에서 터지는 환성에 기겁했다.
-금일 테스타의 ‘Wave for me’를 관람하러 와주신 관객 여러분께 안내 말씀드리겠습니다.
관람 매너를 차근히 말하는 남성의 목소리는 듣기 좋았지만, 어딘지 약간 위화감이 들었다.
콘서트보다는 좀 더 연극적 격식이 있는 공연장에서 할 법한 단어 선택이었기 때문이었지만, 그녀는 구체적으로 눈치채진 못했다.
-……그럼 즐거운 관람 되시길 바랍니다.
그때, 대학원생이 함박웃음과 함께 그녀에게 입모양으로 말했다.
‘저게 문대야!’
어?
그 순간, 조명이 검게 꺼졌다.
-지금, 우리는 파도 속으로 들어갑니다….
공연자의 마지막 안내 멘트가 때를 맞춰 울렸다.
그리고 삽시간에 조용해진 공연장에서, 천천히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바닷소리였다.
그리고 그 속에 천천히 오케스트라와 전자음이 녹아들더니, 전면에 나오기 시작했다.
살랑대는 맑은 소리.
그녀도 들어본 곡이었다.
‘테스타 데뷔곡이지?’
그러나 바로 다음 순간, 다른 강렬한 멜로디가 섞여 들어온다.
이번에도 아는 곡이다. 하지만 다시금 몇 초 만에 다음 반주가 모습을 드러낸다….
‘뭐야?’
그것은 서곡, 오버추어(overture)이었다.
오페라나 뮤지컬의 오프닝에 연주되는 예고.
다른 점이 있다면, 이것은 곡을 소개하는 의미는 아니라는 점이다.
이미 현장의 모든 사람이 그 곡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은 몰입용이었다.
‘…분위기 있네.’
그리고 공연장에 조명이 돌아온다.
온 객석을 다 덮는 강렬한 푸른 조명이었다. 하지만 정적이진 않았다.
“…!”
수많은 연한 푸른색과 진한 푸른색이 물결치며 실내 공연장을 물들였다.
공기가 움직인다.
치이익.
그리고 드라이아이스가 발밑으로 깔린다. 연기가 부드럽게 출렁였다.
“와.”
그 조명과 출렁임, 시원한 냄새, 그리고 약간 멍멍하게 울리는 반주….
오감이 비유법을 거들었다.
공연장 안은 물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