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0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7화
작곡 캠프는 그렇게 곧바로 시작되었다.
종목은 후속작의 보스 테마 BGM의 편곡 60초 내 분량.
“와, 게임 노래들은 왜 이렇게 중독성 있을까요?”
“구간이 반복되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목숨 걸고 할 일도 아니니, 멤버들은 분위기 조성 겸 느긋하게 대화를 하며 작곡 프로그램을 켰다.
데뷔 때 자체 프로듀싱으로 마케팅 칠 때부터 소속사가 형식상 작곡 프로그램 사용법 기초 교육은 해줘서 다들 기본은 안다.
문제는 그것도 한 3년 묵으니 별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지만.
“으음.”
“여기 순서 왜 있어요? 저 알려줘요!”
“이, 일단… 탑 노트를,”
‘개판이군.’
나는 내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원음을 따서 넣고 정리해야 하는 건 안다만… 뭐 제대로 숙지한 정석은 없다.
-문대야, 혹시 이거 어떻게 불러오는지 아니?
-…기초 강의라도 보고 가죠.
그렇다. 막말로 우린 그냥 X밥이었다.
다들 알고 있었다만 일부러 정도 이상으로 빡세게 공부하고 오진 않았다.
‘그건 목적에 안 맞지.’
이건 취미생활이니까.
“큼, 미안한데 이건…….”
“드럼머신 그룹입니다!”
“…고마워.”
나는 김래빈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빠르게 노트북을 조작하다가도 주변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도 다시 노트북에 빨려든다.
“…….”
정신없는 주변 환경이, 도리어 작곡 중 번뇌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괜찮네.’
나도 마우스를 옮겨서 적당히 베이스를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세 시간 끝! 자, 이제 서로 들려줍시다~”
“와!!”
어차피 김래빈을 제외하면 거기서 다 거기인 놈들에, 세 시간짜리 작업물이니 별 부담 없이 돌아가며 곡을 재생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완성도는 개판이었으나… 의외성 넘치는 개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이거 멋져요!”
“그래, 멋지다!”
조정이 하나도 안 된 날소리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타고 터진다.
산장이라 다행이었다. 리조트였으면 쫓겨났지.
나는 차유진의 돌아버리게 과격한 편곡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형 어때요?”
“어 천둥 같다.”
“히히.”
칭찬이 아니지만 좋다니 됐다.
고개를 돌리니, 김래빈은 동공을 떨고 있었다. 당황한 모양이다.
그래도 피드백을 주긴 쉽다.
상대가 더 잘하는 사람인데 주제넘게 구는 게 아닐까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 대신, 마음껏 조언하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마침 다음 타자로 재생된 선아현의 곡을 들으며, 옆자리 김래빈도 결국 입을 열게 되었다.
“어, 어떻게 생각해…?”
“그….”
게다가 무조건 좋은 말만 해줘야 하지.
솔직히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한 번 더 상쇄해 주는 것이다.
김래빈은 열심히 진지하게 사운드를 몇 번 재생해보더니 칭찬을 짜내려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같았다.
“원곡보다 화성이 두터워서 부드럽고 아름답게 들립니다…!”
그렇겠지. 원곡은 8비트였으니까.
“그렇구나…. 고, 고마워.”
그래도 전문가의 칭찬인지라 선아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맞아, 보스보단 주인공 느낌인데? 역시 아현이야~”
“…듣기 편하네.”
정말 동아리가 따로 없다. 김래빈이 슬그머니 말을 붙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기타가 듣기 좋으니 볼륨을 약간 더 키워도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얼씨구. 이젠 좀 다듬어 주고 싶기까지 하나 보군.
일단 평가 압박에서 벗어난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이 초보자들의 편곡에도 칭찬하다 보면 자신감이 붙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래빈의 곡을 재생할 타이밍이 왔다.
일부러 맨 끝이나 앞에 안 넣고 중간에 넣었다.
“오~ 래빈이~”
“예. 재생하겠습니다.”
김래빈은 약간 들뜬 얼굴로 마우스를 조작했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촘촘히 짜인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가요 형식은 아니었다.
뉴에이지에 가까운 매끈한 구조.
BGM이었을 당시의 짧은 구간들을 잘 배치해, 배경과 테마라는 본연의 맛이 충실히 지켜졌다.
하지만 곡의 해상도가 달랐다.
‘…이렇게도 들릴 수 있다니.’
사람 귀에 들어와 머릿속에 남는 해당 곡의 정수를 쭉 뽑아서 이상적으로 구현한 느낌이다.
그리고 초반 30초가 지나자, 색다른 요소가 섞이며 곡이 상승한다.
“…!”
“이거 우리 곡이에요! Right?”
바로 우리가 만든 콜라보 OST, ‘Bonus Book’의 본인 랩 파트 시그니처를 따와서 섞은 것이다.
어딘가 서글프게 들리는 단조가 거미줄 같은 구조에 물방울처럼 떨어진다.
캐릭터 서사적으로도 딱 매치되는 데다가, 곡이 전개되는 쾌감이 훌륭했다.
“이야~”
“래빈아, 이거 너무 좋은데??”
그래. 좋다.
대중에게 팔아먹을 법한 가요는 아니다만, 내가 거미줄 따위의 표현까지 해가며 표현할 정도로 곡은 좋았다.
그리고 아무리 긍정적인 피드백만 주기로 했다지만, 제스처와 목소리에는 진심이 있었다.
“이거 듣기 좋아!”
김래빈은 쏟아지는 감탄에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약간 울컥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짧게 평가했다.
다른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원곡보다 더 원곡 같다.”
“…!!”
김래빈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들렸으나,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김래빈은 1분짜리 편곡의 재생이 끝난 후에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터치패드 위를 매만졌다.
우리는 잠시 놈을 가만히 두었다.
그리고 김래빈이 정신을 차릴 때쯤, 공개처형이나 다름없는 다음 놈 순서가 왔다.
“음~ 다음은 문대!”
바로 나다.
나는 내심 한숨을 쉬었으나, 이 지옥을 자처한 건 나였다.
‘짧고 굵게 끝낸다.’
그리고 재생을 눌렀다.
우웅.
뭐, 이 캐릭터는 드론이 상징이었으니 전자음을 더 살려서 불길한 소리처럼 들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지직거리는 그… 이름 복잡한 악기 효과도 줬고.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은데?”
그러냐? 동정은 필요 없다.
완벽한 프로의 곡 다음으로 이걸 듣고 있자니 개 뒷걸음질이 따로 없다.
‘잡아채는 귀’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감흥 없이 팔짱을 꼈으나, 맞은편의 김래빈이 손을 들었다.
“요소가 재밌고, 멜로디 수정에 센스가 기발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문대가 감각이 있나 봐.”
김래빈까지 빈말을… 잠깐.
나는 놈의 얼굴을 보았다.
김래빈은 직전, TV로 주제를 확인했을 때처럼 곡에 집중한 얼굴이었다.
“…?”
진심인가?
놈은 아예 내 노트북 앞으로 오더니, 찍은 노트까지 확인한다.
그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우스를 잡고 싶은 것처럼.
“형!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 곡을 제가 약간만….”
“그래.”
김래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듬어 주면 나야 좋지.”
놈의 얼굴에서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미소가 커졌다.
인상 안 좋은 놈답지 않게 해맑은 얼굴이었다.
* * *
첫날 작곡 캠프는 그렇게 김래빈의 편곡 강의로 컨텐츠가 변경되었다.
-네가 쓴 VST 중엔 거칠고 강한 소리가 많으니 여기서 레벨 조정을 하면….
-WOW!
김래빈은 신나게 멤버들의 편곡의 장점을 살릴 조언을 뿌렸고, 멤버들은 꽤 즐겁게 자기 곡을 고쳤다.
그리고 내 곡은… 뭐, 거의 김래빈이 무슨 개조를 하던데.
신기한 건 또 원본 느낌은 남겨뒀더라고.
-편곡에 사용하신 발상이 훌륭하여 방향성이 또렷한 덕에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그건 다시 말하면 네 손에선 뻔하게 고칠 불균형을 나는 못 알아차렸다는 뜻 아니냐.
…뭐 어쨌든, 본인이 만족한다면 됐다.
김래빈은 그렇게 7가지 테마곡을 전부 본인의 버전으로 고친 다음, 만족스럽게 저녁을 먹고 그날 캠프를 종료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벽.
“…음.”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나 혼자 일어났으니, 마침 오늘의 일정을 미리 점검해 둘까 한다.
나는 발에 차일 것 같은 놈들을 피해 이불을 밟고 주방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휘저었다.
‘오늘은….’
동요와 아이돌 타이틀을 하나씩 골라다가 합칠 생각이다.
물론 아이돌은 쟁쟁한 후배 중에 골라서 우리가 도무지 공식적으로 못 써먹도록 할 거고.
‘그리고 시간이 나면, 류청우가 등산화까지 챙겨왔으니….’
“형?”
“…….”
그때, 하필 부엌 쪽에 이불을 펴놓고 자던 놈이 눈을 떴다.
김래빈이다.
“자라.”
“아뇨. 괜찮습니다….”
그리고 굳이 비척거리며 일어나서 내 맞은편에 앉는다.
“저, 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제 자의식이 비대한 것일 수도 있으나, 느끼기엔 제가 작곡에 대한 역량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려는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젖혔다.
그리고 며칠 전에 노트북 압수할 때 해야 했던 말이 나왔다.
“우리가 슬슬 작곡에 취미 붙이긴 해야 했어. 멤버가 일곱인데 한 명한테 음원 부담을 다 몰아주는 게 비정상이지.”
“…….”
“그러니까 네가 작곡하기 싫다고 때려치워도 괜찮아. 다들 안 하고 있었는데 무슨.”
그러나 김래빈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많은 분께서 기대하고 계십니다. 회사의 직원분들과 AR팀 분들도 제 곡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못 쓰면 그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김래빈은 머뭇거렸다. 긍정이라는 뜻이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래빈아. 너 무대도 잘하고 랩도 잘하는데 왜 이렇게 하나만 잘하는 것처럼 구냐.”
“…!”
“너 곡 쓰는 게 재밌어서 하면 좋고, 안 하면 방법을 바꿔도 이 그룹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곡이야 사면 돼.”
김래빈은 고개를 들었다.
“물론 네가 말도 안 되게 좋은 곡을 만드는 건 사실이고, 네 덕에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지. 우리는 그걸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거고.”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안 해도 잘못은 아니고, 망하는 것도 아니야. 다른 옵션이 있다는 걸 늘 잊지 말자.”
“…네.”
김래빈은 양손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대답에는 물기가 있었다만, 확실히 후련함도 있었다.
‘부담감이 심했던 게 맞았군.’
계속 잘 만들 때는 피부로 와닿지 않았지만, 한번 미끄러지자 겁을 먹은 것이다.
본인의 평판이 박살 나고 팀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에서 악편 당했을 때도 그랬군.’
2차 팀전 당시에 이놈이 확 주눅 들어서 무작정 피드백을 수용했던 게 생각났다.
‘…설마 그게 원인이었나?’
뭐, 지금 추측으로만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니 넘어가고.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다시 좋은 곡 만들고 무력감에서 좀 벗어난 다음에 말했으니 약간은 숨통이 트이겠지.
나는 김래빈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녀석은 셔츠로 짧게 얼굴을 닦아낸 뒤, 결심한 듯 잠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그렇지만, 하나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어디 보자.
나는 ‘현재 멤버들의 작곡 실력으로는 제 공백이 무척 치명적일 것입니다.’ 따위의 말까지 예상했다.
하지만 김래빈이 진지하게 말했다.
“앨범과 활동 프로듀싱에는 전 멤버가 함께 참여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드린다는 표현은 과한 것 같습니다…!”
“…….”
진짜 한결같은 놈이다.
“그래.”
나는 픽 웃으며 팔짱을 풀었다.
“고맙다.”
“아닙니다.”
김래빈은 꿋꿋하게 대답했다.
그 너머, 해가 뜨며 빛이 들어오는 베란다가 보인다. 어둠을 밀어내는 것 같다.
‘잘됐나.’
그리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원통형….
음.
[大 15만 小 7만]
[현금가]
나는 무심코 말했다.
“한잔할까.”
김래빈이 내 시선을 따라 인삼주를 확인했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네! 따라 드리겠습니다.”
“…?”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김래빈은 의아한 얼굴이다.
“예? 인삼주는 심신에 좋다고 하셨는데….”
“…할머님이?”
“예!”
그래. 그것참 맞는 말씀이시군.
나는 다른 놈들이 다 잠든 새벽 6시 반, 김래빈과 인삼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알코올은 기억보다 짜릿하진 않았으나, 맛은 좋았다.
* * *
“시, 신경 쓰이는 게 있으세요?”
“아니. 뭔가… 배치가 변한 것 같은데.”
나는 아침에 일어난 배세진의 말을 무시했다. 증거는 없다.
대신 적당히 주먹밥으로 아침을 때운 뒤, 다음 일정을 진행하려던 순간.
어제 만든 곡들을 한 번 더 재생하며 희희낙락하던 놈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음… 래빈아. 이거 공개 아예 안 하는 거 말고, 한번 인터넷에 올려볼까? 우리만 듣기 아까워서.”
“…! 테스타의 SNS 계정에 말입니까?”
그걸 못 하게 하려고 이렇게까지 한 건데 말이지.
‘…원래는 마지막 날에 캠프 끝나고 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왔으니 진행해 볼까.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동했다.
“그냥 위튜브 계정 하나 만들어서 올리죠. 우리 이름으로 안 하면 되잖습니까.”
“아, 그러네.”
“그래, 그러면 되겠어!”
배세진은 본인이 더 신나서 외치더니, 빠르게 계정 하나를 만들었다. 잘하고 있다.
나는 순서를 되새겼다.
캠프 1단계.
1. 중간 피드백 없이 쭉 취미용 곡을 만든다.
그리고 다음 단계.
바로 무라벨 검증이다.
“어허, 잠깐만~ 우리 화면 이미지부터 고르는 게 어때요?”
…다만, 이건 내 예상보다 훨씬 스케일 큰 검증으로 번지게 된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7화
작곡 캠프는 그렇게 곧바로 시작되었다.
종목은 후속작의 보스 테마 BGM의 편곡 60초 내 분량.
“와, 게임 노래들은 왜 이렇게 중독성 있을까요?”
“구간이 반복되니까 더 그런 것 같기도 해.”
목숨 걸고 할 일도 아니니, 멤버들은 분위기 조성 겸 느긋하게 대화를 하며 작곡 프로그램을 켰다.
데뷔 때 자체 프로듀싱으로 마케팅 칠 때부터 소속사가 형식상 작곡 프로그램 사용법 기초 교육은 해줘서 다들 기본은 안다.
문제는 그것도 한 3년 묵으니 별 소용이 없었다는 점이지만.
“으음.”
“여기 순서 왜 있어요? 저 알려줘요!”
“이, 일단… 탑 노트를,”
‘개판이군.’
나는 내 노트북 화면을 내려다보았다.
일단 원음을 따서 넣고 정리해야 하는 건 안다만… 뭐 제대로 숙지한 정석은 없다.
-문대야, 혹시 이거 어떻게 불러오는지 아니?
-…기초 강의라도 보고 가죠.
그렇다. 막말로 우린 그냥 X밥이었다.
다들 알고 있었다만 일부러 정도 이상으로 빡세게 공부하고 오진 않았다.
‘그건 목적에 안 맞지.’
이건 취미생활이니까.
“큼, 미안한데 이건…….”
“드럼머신 그룹입니다!”
“…고마워.”
나는 김래빈이 눈도 깜박이지 않고 빠르게 노트북을 조작하다가도 주변의 질문에 성심성의껏 답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다가도 다시 노트북에 빨려든다.
“…….”
정신없는 주변 환경이, 도리어 작곡 중 번뇌할 여유를 주지 않는 것이다.
‘괜찮네.’
나도 마우스를 옮겨서 적당히 베이스를 쌓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후.
“세 시간 끝! 자, 이제 서로 들려줍시다~”
“와!!”
어차피 김래빈을 제외하면 거기서 다 거기인 놈들에, 세 시간짜리 작업물이니 별 부담 없이 돌아가며 곡을 재생했다.
그리고 예상대로 완성도는 개판이었으나… 의외성 넘치는 개판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으하하하!”
“이거 멋져요!”
“그래, 멋지다!”
조정이 하나도 안 된 날소리가 블루투스 스피커를 타고 터진다.
산장이라 다행이었다. 리조트였으면 쫓겨났지.
나는 차유진의 돌아버리게 과격한 편곡을 들으며 고개를 저었다.
“형 어때요?”
“어 천둥 같다.”
“히히.”
칭찬이 아니지만 좋다니 됐다.
고개를 돌리니, 김래빈은 동공을 떨고 있었다. 당황한 모양이다.
그래도 피드백을 주긴 쉽다.
상대가 더 잘하는 사람인데 주제넘게 구는 게 아닐까 따위의 쓸데없는 생각 대신, 마음껏 조언하고 이야기할 수 있으니까.
마침 다음 타자로 재생된 선아현의 곡을 들으며, 옆자리 김래빈도 결국 입을 열게 되었다.
“어, 어떻게 생각해…?”
“그….”
게다가 무조건 좋은 말만 해줘야 하지.
솔직히 대답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한 번 더 상쇄해 주는 것이다.
김래빈은 열심히 진지하게 사운드를 몇 번 재생해보더니 칭찬을 짜내려 혼신의 힘을 다하는 것 같았다.
“원곡보다 화성이 두터워서 부드럽고 아름답게 들립니다…!”
그렇겠지. 원곡은 8비트였으니까.
“그렇구나…. 고, 고마워.”
그래도 전문가의 칭찬인지라 선아현의 얼굴이 밝아졌다.
“맞아, 보스보단 주인공 느낌인데? 역시 아현이야~”
“…듣기 편하네.”
정말 동아리가 따로 없다. 김래빈이 슬그머니 말을 붙였다.
“맞는 말씀입니다. 기타가 듣기 좋으니 볼륨을 약간 더 키워도 아름다울 것 같습니다.”
얼씨구. 이젠 좀 다듬어 주고 싶기까지 하나 보군.
일단 평가 압박에서 벗어난 건 확실한 것 같았다. 이 초보자들의 편곡에도 칭찬하다 보면 자신감이 붙겠지.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래빈의 곡을 재생할 타이밍이 왔다.
일부러 맨 끝이나 앞에 안 넣고 중간에 넣었다.
“오~ 래빈이~”
“예. 재생하겠습니다.”
김래빈은 약간 들뜬 얼굴로 마우스를 조작했다.
그리고 거미줄처럼 촘촘히 짜인 음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
가요 형식은 아니었다.
뉴에이지에 가까운 매끈한 구조.
BGM이었을 당시의 짧은 구간들을 잘 배치해, 배경과 테마라는 본연의 맛이 충실히 지켜졌다.
하지만 곡의 해상도가 달랐다.
‘…이렇게도 들릴 수 있다니.’
사람 귀에 들어와 머릿속에 남는 해당 곡의 정수를 쭉 뽑아서 이상적으로 구현한 느낌이다.
그리고 초반 30초가 지나자, 색다른 요소가 섞이며 곡이 상승한다.
“…!”
“이거 우리 곡이에요! Right?”
바로 우리가 만든 콜라보 OST, ‘Bonus Book’의 본인 랩 파트 시그니처를 따와서 섞은 것이다.
어딘가 서글프게 들리는 단조가 거미줄 같은 구조에 물방울처럼 떨어진다.
캐릭터 서사적으로도 딱 매치되는 데다가, 곡이 전개되는 쾌감이 훌륭했다.
“이야~”
“래빈아, 이거 너무 좋은데??”
그래. 좋다.
대중에게 팔아먹을 법한 가요는 아니다만, 내가 거미줄 따위의 표현까지 해가며 표현할 정도로 곡은 좋았다.
그리고 아무리 긍정적인 피드백만 주기로 했다지만, 제스처와 목소리에는 진심이 있었다.
“이거 듣기 좋아!”
김래빈은 쏟아지는 감탄에 약간 당황하는 것 같았으나, 약간 울컥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짧게 평가했다.
다른 말도 필요하지 않았다.
“원곡보다 더 원곡 같다.”
“…!!”
김래빈은 번쩍 고개를 들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목소리가 떨리는 게 들렸으나, 굳이 지적하진 않았다.
김래빈은 1분짜리 편곡의 재생이 끝난 후에도, 노트북 화면을 들여다보며 터치패드 위를 매만졌다.
우리는 잠시 놈을 가만히 두었다.
그리고 김래빈이 정신을 차릴 때쯤, 공개처형이나 다름없는 다음 놈 순서가 왔다.
“음~ 다음은 문대!”
바로 나다.
나는 내심 한숨을 쉬었으나, 이 지옥을 자처한 건 나였다.
‘짧고 굵게 끝낸다.’
그리고 재생을 눌렀다.
우웅.
뭐, 이 캐릭터는 드론이 상징이었으니 전자음을 더 살려서 불길한 소리처럼 들리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지직거리는 그… 이름 복잡한 악기 효과도 줬고.
주변에서 고개를 끄덕인다.
“괜찮은데?”
그러냐? 동정은 필요 없다.
완벽한 프로의 곡 다음으로 이걸 듣고 있자니 개 뒷걸음질이 따로 없다.
‘잡아채는 귀’가 비명을 지르는 것 같단 말이지.
나는 감흥 없이 팔짱을 꼈으나, 맞은편의 김래빈이 손을 들었다.
“요소가 재밌고, 멜로디 수정에 센스가 기발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게. 문대가 감각이 있나 봐.”
김래빈까지 빈말을… 잠깐.
나는 놈의 얼굴을 보았다.
김래빈은 직전, TV로 주제를 확인했을 때처럼 곡에 집중한 얼굴이었다.
“…?”
진심인가?
놈은 아예 내 노트북 앞으로 오더니, 찍은 노트까지 확인한다.
그리고 주먹을 움켜쥐었다.
마우스를 잡고 싶은 것처럼.
“형!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이 곡을 제가 약간만….”
“그래.”
김래빈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다듬어 주면 나야 좋지.”
놈의 얼굴에서 주체할 수 없다는 듯이 미소가 커졌다.
인상 안 좋은 놈답지 않게 해맑은 얼굴이었다.
* * *
첫날 작곡 캠프는 그렇게 김래빈의 편곡 강의로 컨텐츠가 변경되었다.
-네가 쓴 VST 중엔 거칠고 강한 소리가 많으니 여기서 레벨 조정을 하면….
-WOW!
김래빈은 신나게 멤버들의 편곡의 장점을 살릴 조언을 뿌렸고, 멤버들은 꽤 즐겁게 자기 곡을 고쳤다.
그리고 내 곡은… 뭐, 거의 김래빈이 무슨 개조를 하던데.
신기한 건 또 원본 느낌은 남겨뒀더라고.
-편곡에 사용하신 발상이 훌륭하여 방향성이 또렷한 덕에 빠르게 진행되었습니다!
그건 다시 말하면 네 손에선 뻔하게 고칠 불균형을 나는 못 알아차렸다는 뜻 아니냐.
…뭐 어쨌든, 본인이 만족한다면 됐다.
김래빈은 그렇게 7가지 테마곡을 전부 본인의 버전으로 고친 다음, 만족스럽게 저녁을 먹고 그날 캠프를 종료했다.
그리고 지금은 새벽.
“…음.”
아직 알람이 울리기 전에 나 혼자 일어났으니, 마침 오늘의 일정을 미리 점검해 둘까 한다.
나는 발에 차일 것 같은 놈들을 피해 이불을 밟고 주방 식탁에 앉았다.
그리고 머리를 휘저었다.
‘오늘은….’
동요와 아이돌 타이틀을 하나씩 골라다가 합칠 생각이다.
물론 아이돌은 쟁쟁한 후배 중에 골라서 우리가 도무지 공식적으로 못 써먹도록 할 거고.
‘그리고 시간이 나면, 류청우가 등산화까지 챙겨왔으니….’
“형?”
“…….”
그때, 하필 부엌 쪽에 이불을 펴놓고 자던 놈이 눈을 떴다.
김래빈이다.
“자라.”
“아뇨. 괜찮습니다….”
그리고 굳이 비척거리며 일어나서 내 맞은편에 앉는다.
“저, 꼭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지금?
“제 자의식이 비대한 것일 수도 있으나, 느끼기엔 제가 작곡에 대한 역량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많이 배려해 주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려는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젖혔다.
그리고 며칠 전에 노트북 압수할 때 해야 했던 말이 나왔다.
“우리가 슬슬 작곡에 취미 붙이긴 해야 했어. 멤버가 일곱인데 한 명한테 음원 부담을 다 몰아주는 게 비정상이지.”
“…….”
“그러니까 네가 작곡하기 싫다고 때려치워도 괜찮아. 다들 안 하고 있었는데 무슨.”
그러나 김래빈은 힘겹게 입을 열었다.
“하지만, 많은 분께서 기대하고 계십니다. 회사의 직원분들과 AR팀 분들도 제 곡을 기다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네가 못 쓰면 그 사람들이 실망할까 봐?”
김래빈은 머뭇거렸다. 긍정이라는 뜻이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래빈아. 너 무대도 잘하고 랩도 잘하는데 왜 이렇게 하나만 잘하는 것처럼 구냐.”
“…!”
“너 곡 쓰는 게 재밌어서 하면 좋고, 안 하면 방법을 바꿔도 이 그룹은 어떻게든 굴러간다. 곡이야 사면 돼.”
김래빈은 고개를 들었다.
“물론 네가 말도 안 되게 좋은 곡을 만드는 건 사실이고, 네 덕에 엄청난 도움을 받고 있지. 우리는 그걸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거고.”
나는 담담히 말을 이었다.
“하지만 네가 안 해도 잘못은 아니고, 망하는 것도 아니야. 다른 옵션이 있다는 걸 늘 잊지 말자.”
“…네.”
김래빈은 양손을 꽉 쥔 채,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잊지 않겠습니다.”
그 대답에는 물기가 있었다만, 확실히 후련함도 있었다.
‘부담감이 심했던 게 맞았군.’
계속 잘 만들 때는 피부로 와닿지 않았지만, 한번 미끄러지자 겁을 먹은 것이다.
본인의 평판이 박살 나고 팀에 엄청난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걱정 말이다.
‘그러고 보니 에서 악편 당했을 때도 그랬군.’
2차 팀전 당시에 이놈이 확 주눅 들어서 무작정 피드백을 수용했던 게 생각났다.
‘…설마 그게 원인이었나?’
뭐, 지금 추측으로만 알아낼 수 있는 건 아니니 넘어가고.
그래도 어쨌든, 이렇게 다시 좋은 곡 만들고 무력감에서 좀 벗어난 다음에 말했으니 약간은 숨통이 트이겠지.
나는 김래빈이 진정할 때까지 기다렸다.
녀석은 셔츠로 짧게 얼굴을 닦아낸 뒤, 결심한 듯 잠긴 목소리로 다시 입을 열었다.
“저… 그렇지만, 하나만 말씀드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어디 보자.
나는 ‘현재 멤버들의 작곡 실력으로는 제 공백이 무척 치명적일 것입니다.’ 따위의 말까지 예상했다.
하지만 김래빈이 진지하게 말했다.
“앨범과 활동 프로듀싱에는 전 멤버가 함께 참여하고 계시기 때문에, 제가 일방적으로 도움을 드린다는 표현은 과한 것 같습니다…!”
“…….”
진짜 한결같은 놈이다.
“그래.”
나는 픽 웃으며 팔짱을 풀었다.
“고맙다.”
“아닙니다.”
김래빈은 꿋꿋하게 대답했다.
그 너머, 해가 뜨며 빛이 들어오는 베란다가 보인다. 어둠을 밀어내는 것 같다.
‘잘됐나.’
그리고 황금빛으로 빛나는 원통형….
음.
나는 무심코 말했다.
“한잔할까.”
김래빈이 내 시선을 따라 인삼주를 확인했다. 그리고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네! 따라 드리겠습니다.”
“…?”
안 된다고 할 줄 알았는데.
그러나 김래빈은 의아한 얼굴이다.
“예? 인삼주는 심신에 좋다고 하셨는데….”
“…할머님이?”
“예!”
그래. 그것참 맞는 말씀이시군.
나는 다른 놈들이 다 잠든 새벽 6시 반, 김래빈과 인삼주를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알코올은 기억보다 짜릿하진 않았으나, 맛은 좋았다.
* * *
“시, 신경 쓰이는 게 있으세요?”
“아니. 뭔가… 배치가 변한 것 같은데.”
나는 아침에 일어난 배세진의 말을 무시했다. 증거는 없다.
대신 적당히 주먹밥으로 아침을 때운 뒤, 다음 일정을 진행하려던 순간.
어제 만든 곡들을 한 번 더 재생하며 희희낙락하던 놈 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음… 래빈아. 이거 공개 아예 안 하는 거 말고, 한번 인터넷에 올려볼까? 우리만 듣기 아까워서.”
“…! 테스타의 SNS 계정에 말입니까?”
그걸 못 하게 하려고 이렇게까지 한 건데 말이지.
‘…원래는 마지막 날에 캠프 끝나고 하려고 했는데.’
말이 나왔으니 진행해 볼까.
나는 자연스럽게 다음 단계로 이동했다.
“그냥 위튜브 계정 하나 만들어서 올리죠. 우리 이름으로 안 하면 되잖습니까.”
“아, 그러네.”
“그래, 그러면 되겠어!”
배세진은 본인이 더 신나서 외치더니, 빠르게 계정 하나를 만들었다. 잘하고 있다.
나는 순서를 되새겼다.
캠프 1단계.
1. 중간 피드백 없이 쭉 취미용 곡을 만든다.
그리고 다음 단계.
바로 무라벨 검증이다.
“어허, 잠깐만~ 우리 화면 이미지부터 고르는 게 어때요?”
…다만, 이건 내 예상보다 훨씬 스케일 큰 검증으로 번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