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0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3화
에서 벌칙으로 주는 무대 혹은 콩트는, 당연하지만 개그 목적이다.
최신 유행 아니면 스테디셀러로 잘 먹히는 유명한 밈을 가져와서 재해석하거나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절반은 티홀릭이 했지.’
사실 게스트를 이기게 해주는 경우가 잦아서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새끼들이 워낙 웃기게 잘 뽑아왔기 때문에, 게스트들에게 연출이나 코칭이 잘 들어가도 ‘원조’는 티홀릭이란 인식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 무대를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주의할 점은?
“다음은 드럼 사운드를 주고 비트를 재구성해 본 시안입니다.”
우르릉!
잘 빠진 배기음 같은 반주가 울리자, 차유진이 눈을 번뜩였다.
“이거 멋있어요! 이거 해요!”
“잠깐.”
나는 차유진을 멈췄다.
“다른 것도 들어보고.”
“넵, 그럼 3번을 재생하겠습니다.”
주의할 점은, 무작정 훈훈하게 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냥 잘하면 재미가 없다고 할 거야.’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건 웃긴 무댄데, 웃음기 없이 잘해 버리면 ‘이런 것까지 뺀다’고 생각해 버릴 확률이 높았다.
단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혼신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것은 그 사람들이 알 바 아니니까.
‘그런 스토리가 먹히려면 서바이벌이어야 하지.’
일반 예능 프로그램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렇다고 무작정 웃음만 목표로 하는 것도 최상책은 아니다.
‘이 벌칙에서 웃긴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못 웃기고 숙연해진 놈들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연출진이 수완이 좋아서 잘 짜더라.
테스타도 마찬가지로 이 추세를 따른다면, 프로그램의 좋은 평판에 흡수되어버릴 뿐이다.
-역시 티쇼비 가차없군 테스타까짘ㅋㅋㅋㅋㅋ
-아 너무 유쾌해 테스타가 이런 거 하는 거 볼 줄은 몰랐어
-티쇼비 우리 애들 또 불러주세요 약속…*^^*
대충 프로그램에서 기대하는 반응각이 나오지 않나?
‘우리한테도 추천 명단까지 줬고.’
나는 제작진이 준 ‘추억의 애니메이션 주제가’ 후보들을 쭉 눈으로 넘겼다.
모터사이클 경주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 추리 만화….
‘방금 들었던 건 추리 만화 오프닝….’
김래빈은 이걸 잘 빠진 하드보일드한 맛의 근사한 리듬으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전혀 웃기지 않는단 뜻이다. 멋지기만 하지.
그다음 곡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음악 좋아요!”
“그러게.”
그다음은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 주제가였는데, 듣기 좋게 편곡해 놓으니 이지리스닝 인디 밴드 곡이 따로 없다.
그리고 그때야 내 실수를 알았다.
일단 편곡으로 보고 방향을 잡자는 건 순서가 잘못된 생각이었다.
‘애초에 방향성 코치까지 해줬어야 했어.’
‘테스타 무대에 맞도록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편곡’이라는 오더에 김래빈은 정말 그런 편곡만을 뽑아온 것이다.
하나도 우스꽝스럽지 않게, 세련되게.
‘아니, 애초에 이놈이 저퀄리티의 웃긴 편곡을 만들기도 힘들 것 같은데….’
물론 감각이 있는 놈이니 레퍼런스 몇 개만 접하면 쭉 뽑을 수야 있겠다만, 본인이 특화된 항목은 절대 아니다.
특히나 ‘재밌을 것 같다’며, 굳이 후보곡 전부의 편곡 시안을 뽑아온 이 상태라면… 높은 확률로 낙심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아직 세부 조정과 믹싱은 들어가지 않아 다소 투박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만, 중요한 전달감은 다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확실히 듣기 편해.”
“감사합니다!”
그래. 이놈 이거 완전히 신났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괜히 쓸데없는 소리 했다가 김래빈이 ‘웃긴… 음악?’ 같은 소리를 하며 혼란 상태에라도 빠지면 골치 아파진다.
나는 일단 김래빈이 뽑아온 세 곡을 다 듣고 고민에 잠겼다.
영상의 목적.
‘위튜브에서 바이럴을 탔던 애니메이션들만 후보곡으로 올린 이유는?’
이놈의 세대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만… 어쨌든 그 유행 동영상을 봤던 Z세대, 혹은 어릴 때 만화 자체를 봤던 M세대를 다 노린 선택이다.
결국 키워드는… 컨텐츠적 의미에서의 공감대와 화제성.
‘음.’
내가 턱을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차유진이 거침없이 물었다.
“문대 형! 이거 마음 별로예요?”
“…!”
이런.
“…!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시면 시정해 오겠습니다!”
김래빈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무슨 이등병처럼 각이 잡혔다.
‘너무 말이 없었나.’
하긴, 눈치가 좀 있는 놈이면 내가 썩 만족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릴 만했다. 김래빈이라 방심했군.
이럴 때일수록 반응이 편해야 분위기가 안 심각해진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침 방법도 떠올렸고.
“편곡은 좋은데… 너희가 알 만한 만화 곡은 아닌 것 같아서. 혹시 아는지 궁금한데.”
“몰라요!”
“명탐정 아서는 시청한 적 있습니다만, 다른 것들은 명성만 들어봤습니다.”
차유진이 해맑게 물었다.
“형 이거 알아요? 봤어요?”
…그렇군. 박문대도 이놈들보다 겨우 두 살이 많을 뿐이다.
나는 상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위튜브에서 봤다.”
“오우.”
“그렇군요. 무대를 위해… 과연 준비성이 철저하십니다!”
오해하게 내버려 두자.
“어쨌든, 제작진분들이 준 곡들도 괜찮은데, 우리랑 딱히 관계 있는 곡들은 아니라서….”
나는 미끼를 던졌다.
“우리랑 관련된 곡을 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그런 곡이 있습니까?”
“저 ‘Billy’s exciting animal tale’ 좋아요!”
처음 듣는 미국 만화가 튀어나오는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2000년대 전후 만화면서 한국에서 유명했던 걸 골라야 해. 그게 벌칙 조건이니까.”
“우우….”
‘추억의 애니메이션 주제가’니까. 그런 의미에서 차유진의 감성은 기각이다.
‘이쯤이면 되려나.’
대신, 나는 내가 방금 떠올린 후보군의 위튜브 동영상을 놈들에게 보여주었다.
분명 이것도 틱택톡에서 창작 제스처 때문에 밈이 됐었지.
“그러니까… 이건 어때.”
“…?”
이거면 김래빈의 의욕을 떨어뜨려서 기어코 우스꽝스러운 편곡으로 갈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스꽝스럽게 분장할 필요도 없어.’
다른 방향으로 웃길 수 있다.
‘무대는 안 웃긴데, 상황 때문에 웃기게 만드는 거지.’
맥락으로 만드는 유머.
편곡하는 본인도 이게 웃기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 편하게 몰입해 만들 수 있도록.
“이건… 아.”
역시, 김래빈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군요. 확실히… 뜻깊은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김래빈은 헤드셋을 쓰고 작업에 들어가 버렸다.
‘…원곡도 없이 맨땅에?’
어쨌든, 확실히 불은 들어온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나.’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마지막 유닛 멤버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
아, 이놈이 난관이 될 수도 있겠군.
장담하는데, 이건 차유진 취향은 아니다.
“왜.”
“형이랑 김래빈 정말 이거 좋아요? Really?”
“어.”
그러자 차유진은 동영상을 한 번 보고, 김래빈을 한 번 보고,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나서 한숨을 푹 쉬었다.
[맙소사!]
어쭈?
“이건 웃기는 게 목적인 코미디 무대야.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알아요! 우….”
차유진은 아쉬운 얼굴로 몇 번 입맛을 다셨으나, 곧 어깨를 으쓱거렸다.
항복 선언이었다.
[형. 이건 정말로 팀을 위해서 하는 거예요. 내 인생에서 이런 걸 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나는 피식 웃었다. 알았다, 새끼야.
“여기서 피치를….”
김래빈은 열심히 키를 조정하고 반주를 맞춰서, 1분 24초짜리 편곡을 반나절 만에 내놓았다.
그렇게 급한 새벽 연습이 픽스되었다.
* * *
장면을 돌려, 막 테스타와 함께하는 궤변 토론의 본방 분량이 끝난 시점.
실제로는 일주일 텀을 둔 후 벌칙을 촬영했으나, 방송에선 자연스럽게 테스타의 정신 나간 패배 이후 벌칙 컷이 이어졌다.
물론, 중간광고 이후에.
[테스타가 준비한 벌칙 무대는?]
[60초 후 공개]
이미 해당 상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틈에 여러 가지 예측이나 떠들었다.
-클래식하게 디오니소스님의 흥 책임지는 무대에 한 표
└티홀릭이.. 이미 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존경스러움
추억의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떠올릴 법한 여러 웃긴 노래와 컨셉이 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행적상, 안 웃긴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이미 기대하는 연출과 느낌이 있었다.
-무조건 90년대 후광 연출 들어갈 듯
-제발 얼굴은 살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부러 B급 촌스러움을 살린 저세상 감성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어설프게 망가지지 않는 대신, 이런 웃긴 감성의 재현을 충실히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중간광고가 끝나고 화면이 돌아왔을 때.
-?
테스타 3인은 그냥 말쑥한 교복 차림을 한 채 스튜디오에 서 있었다.
뒤로 돌아선 테스타에게 꽂히는 조명도 최신식 감성. 다른 필터는 들어가지 않았다.
-엥
-테스타 벌칙 맞지?
그 순간, 밝고 쾌활한 반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했다.
센터의 박문대가 돌아서면서 상징적인 제스처를 한다.
[노래로 전하는 사랑의 꿈
지금부터 시작해]
-?????
2001년도의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의 변신 테마곡의 제스처 그대로였다.
멜로디로 마법소녀가 되어 마법의 노래로 적을 정화하는 류의 고전적인 마법소녀 만화.
그 교복을 과장된 분장 없이 현실성 있게 재현한 테스타는 진짜 마이크를 쥐고 라이브를 시작했다.
-이거 머임
-라이브?
[Magical lights up!]
이 만화는 야심 찬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국의 투자로 번안이 아닌 창작곡도 붙었었는데, 지금 나오는 것이 바로 그 곡이었다.
주인공 그룹의 테마곡.
그것이 지금 듣기 딱 좋게 깔끔히 편곡된, 추억의 주제가.
20, 30대 거의 모두가 아는 멜로디가 원본 그대로의 감성으로 재생되었다.
[순수한 노래에 사랑을 담아
날아가는 마법의 Heart bullet!]
저 가사와 동작 때문에 한동안 진짜 총알을 맞은 듯 쓰러지는 동심 파괴용 반전 개그 동영상이 유행했었다. 덕분에 10대도 원본 동영상을 알았다.
하지만 테스타는 그 밈을 사용하거나 연출하지 않았다. 그냥 원작 애니메이션을 충실히 재현했을 뿐이다.
심지어 후렴에서는 무대 소품으로서 보기 좋은 망토와 장갑까지 걸치고 나와서 무대를 이어 간다.
정확히 의 풀 변신 장면에서 망토가 나올 시점이다.
[마음을 열어줘 LOVE
오늘은 소원을 빌 거야]
테스타는 정말 열심히 잘했다.
실제 만화의 재현율과 근사함으로 따지자면, 인터넷에 올라온 그 어떤 동영상보다도 좋았다. 노래와 표정, 군무까지 과연 직업인다웠다.
그래서 더없이 웃겼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테스타 진심임ㅋㅋㅋㅋㅋㅋㅋㅋ
-토론도 과몰입하더니 벌칙도 과몰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법소년 짬밥 어디 안갔음
원곡자에 대한 넘치는 리스펙!
데뷔곡이 ‘마법소년’인 이들이 ‘노래 부르는 마법소녀’를 전심으로 커버하는 진정성!
진정한 과몰입이라 웃길 수밖에 없었다.
티홀릭 멤버 하나가 ‘그렇게까지…?’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백그라운드에서 팔짱을 낀 게 잡히는 것까지 한 폭의 그림이었다.
-ㅅㅂ 진태 동공지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능낭비도 이쯤 되면 인정해주자 장인임
-테스타 이것도 진심이잖아 대체 왜 진심인건데
이건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직전에 본 토론에서부터 연결되는 ‘진심’ 감성의 절정이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폭소했다.
[멋. 진. 꿈을 그려 봐
세상이 아름다워~]
CG 반짝이 효과는 딱 한 번 들어갔는데, 그것마저도 만화와 동일한 연출이라 더 골때렸다.
그리고 무대 후반부 짧은 간주.
프로그램 전통적으로 소감 자막이 들어가는 그곳에 나타난 멘트가 최고봉이었다.
[멜로디앤젤 페페르토 선배님 멋진 곡 감사합니다. 존경합니다. by 박문대]
[노래로 사람을 구하는 컨셉에서 일맥상통하는 목표를 느껴 열심히 커버했습니다. 응원합니다! by 김래빈]
[처음 봤는데 다들 좋아해요. by 차유진]
-대체 뭘 응원한다는 거임
-미쳤냐곸ㅋㅋㅋㅋㅋㅋ
-박문대 말랑달콤도 팬이더니 멜로디엔젤은 심지어 선배님이냐고ㅋㅋㅋㅋㅋㅋ
-Z세대인줄 알았는데 동년배 갬성
-차유진 자막은 왜 또 만화 감상문인데 아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대는 멋지게, 해석은 웃기게.
테스타 3인은 그렇게 끝까지 진지한 자세로 무대를 마쳤다.
-테스타 진짜 무슨 일이냐
-캐릭터 독보적이넼ㅋㅋㅋㅋ
그리고 박문대가 원했던 방향으로 버즈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3화
에서 벌칙으로 주는 무대 혹은 콩트는, 당연하지만 개그 목적이다.
최신 유행 아니면 스테디셀러로 잘 먹히는 유명한 밈을 가져와서 재해석하거나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다.
‘지금까지 절반은 티홀릭이 했지.’
사실 게스트를 이기게 해주는 경우가 잦아서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이 새끼들이 워낙 웃기게 잘 뽑아왔기 때문에, 게스트들에게 연출이나 코칭이 잘 들어가도 ‘원조’는 티홀릭이란 인식이 강하다.
그렇다면 이 무대를 구성하는 것에 있어서 가장 주의할 점은?
“다음은 드럼 사운드를 주고 비트를 재구성해 본 시안입니다.”
우르릉!
잘 빠진 배기음 같은 반주가 울리자, 차유진이 눈을 번뜩였다.
“이거 멋있어요! 이거 해요!”
“잠깐.”
나는 차유진을 멈췄다.
“다른 것도 들어보고.”
“넵, 그럼 3번을 재생하겠습니다.”
주의할 점은, 무작정 훈훈하게 잘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그냥 잘하면 재미가 없다고 할 거야.’
시청자들이 기대하는 건 웃긴 무댄데, 웃음기 없이 잘해 버리면 ‘이런 것까지 뺀다’고 생각해 버릴 확률이 높았다.
단 일주일밖에 시간이 없는 상태에서 혼신을 갈아 넣어서 만든 것은 그 사람들이 알 바 아니니까.
‘그런 스토리가 먹히려면 서바이벌이어야 하지.’
일반 예능 프로그램에선 어림도 없는 소리다.
그렇다고 무작정 웃음만 목표로 하는 것도 최상책은 아니다.
‘이 벌칙에서 웃긴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못 웃기고 숙연해진 놈들 찾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연출진이 수완이 좋아서 잘 짜더라.
테스타도 마찬가지로 이 추세를 따른다면, 프로그램의 좋은 평판에 흡수되어버릴 뿐이다.
-역시 티쇼비 가차없군 테스타까짘ㅋㅋㅋㅋㅋ
-아 너무 유쾌해 테스타가 이런 거 하는 거 볼 줄은 몰랐어
-티쇼비 우리 애들 또 불러주세요 약속…*^^*
대충 프로그램에서 기대하는 반응각이 나오지 않나?
‘우리한테도 추천 명단까지 줬고.’
나는 제작진이 준 ‘추억의 애니메이션 주제가’ 후보들을 쭉 눈으로 넘겼다.
모터사이클 경주 만화,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 추리 만화….
‘방금 들었던 건 추리 만화 오프닝….’
김래빈은 이걸 잘 빠진 하드보일드한 맛의 근사한 리듬으로 바꾸었다. 한마디로, 전혀 웃기지 않는단 뜻이다. 멋지기만 하지.
그다음 곡도 마찬가지였다.
“이거 음악 좋아요!”
“그러게.”
그다음은 그리스 로마 신화 만화 주제가였는데, 듣기 좋게 편곡해 놓으니 이지리스닝 인디 밴드 곡이 따로 없다.
그리고 그때야 내 실수를 알았다.
일단 편곡으로 보고 방향을 잡자는 건 순서가 잘못된 생각이었다.
‘애초에 방향성 코치까지 해줬어야 했어.’
‘테스타 무대에 맞도록 애니메이션 주제가를 편곡’이라는 오더에 김래빈은 정말 그런 편곡만을 뽑아온 것이다.
하나도 우스꽝스럽지 않게, 세련되게.
‘아니, 애초에 이놈이 저퀄리티의 웃긴 편곡을 만들기도 힘들 것 같은데….’
물론 감각이 있는 놈이니 레퍼런스 몇 개만 접하면 쭉 뽑을 수야 있겠다만, 본인이 특화된 항목은 절대 아니다.
특히나 ‘재밌을 것 같다’며, 굳이 후보곡 전부의 편곡 시안을 뽑아온 이 상태라면… 높은 확률로 낙심할 것 같은데.
“어떠십니까? 아직 세부 조정과 믹싱은 들어가지 않아 다소 투박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만, 중요한 전달감은 다 들어갔다고 생각합니다!”
“그래. 확실히 듣기 편해.”
“감사합니다!”
그래. 이놈 이거 완전히 신났다.
‘시간도 얼마 없는데.’
괜히 쓸데없는 소리 했다가 김래빈이 ‘웃긴… 음악?’ 같은 소리를 하며 혼란 상태에라도 빠지면 골치 아파진다.
나는 일단 김래빈이 뽑아온 세 곡을 다 듣고 고민에 잠겼다.
영상의 목적.
‘위튜브에서 바이럴을 탔던 애니메이션들만 후보곡으로 올린 이유는?’
이놈의 세대 이야기는 그만하고 싶다만… 어쨌든 그 유행 동영상을 봤던 Z세대, 혹은 어릴 때 만화 자체를 봤던 M세대를 다 노린 선택이다.
결국 키워드는… 컨텐츠적 의미에서의 공감대와 화제성.
‘음.’
내가 턱을 문지르고 있을 때였다.
차유진이 거침없이 물었다.
“문대 형! 이거 마음 별로예요?”
“…!”
이런.
“…!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시면 시정해 오겠습니다!”
김래빈은 소스라치게 놀라더니, 무슨 이등병처럼 각이 잡혔다.
‘너무 말이 없었나.’
하긴, 눈치가 좀 있는 놈이면 내가 썩 만족하지 않았다는 걸 알아차릴 만했다. 김래빈이라 방심했군.
이럴 때일수록 반응이 편해야 분위기가 안 심각해진다.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마침 방법도 떠올렸고.
“편곡은 좋은데… 너희가 알 만한 만화 곡은 아닌 것 같아서. 혹시 아는지 궁금한데.”
“몰라요!”
“명탐정 아서는 시청한 적 있습니다만, 다른 것들은 명성만 들어봤습니다.”
차유진이 해맑게 물었다.
“형 이거 알아요? 봤어요?”
…그렇군. 박문대도 이놈들보다 겨우 두 살이 많을 뿐이다.
나는 상식적인 대답을 내놓았다.
“…위튜브에서 봤다.”
“오우.”
“그렇군요. 무대를 위해… 과연 준비성이 철저하십니다!”
오해하게 내버려 두자.
“어쨌든, 제작진분들이 준 곡들도 괜찮은데, 우리랑 딱히 관계 있는 곡들은 아니라서….”
나는 미끼를 던졌다.
“우리랑 관련된 곡을 하면 더 재밌지 않을까.”
“그런 곡이 있습니까?”
“저 ‘Billy’s exciting animal tale’ 좋아요!”
처음 듣는 미국 만화가 튀어나오는군.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2000년대 전후 만화면서 한국에서 유명했던 걸 골라야 해. 그게 벌칙 조건이니까.”
“우우….”
‘추억의 애니메이션 주제가’니까. 그런 의미에서 차유진의 감성은 기각이다.
‘이쯤이면 되려나.’
대신, 나는 내가 방금 떠올린 후보군의 위튜브 동영상을 놈들에게 보여주었다.
분명 이것도 틱택톡에서 창작 제스처 때문에 밈이 됐었지.
“그러니까… 이건 어때.”
“…?”
이거면 김래빈의 의욕을 떨어뜨려서 기어코 우스꽝스러운 편곡으로 갈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우리가 우스꽝스럽게 분장할 필요도 없어.’
다른 방향으로 웃길 수 있다.
‘무대는 안 웃긴데, 상황 때문에 웃기게 만드는 거지.’
맥락으로 만드는 유머.
편곡하는 본인도 이게 웃기다는 의식을 하지 않고 편하게 몰입해 만들 수 있도록.
“이건… 아.”
역시, 김래빈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렇군요. 확실히… 뜻깊은 도전이 될 수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그리고 김래빈은 헤드셋을 쓰고 작업에 들어가 버렸다.
‘…원곡도 없이 맨땅에?’
어쨌든, 확실히 불은 들어온 모양이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됐나.’
그때, 바로 옆에 있던 마지막 유닛 멤버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형.”
아, 이놈이 난관이 될 수도 있겠군.
장담하는데, 이건 차유진 취향은 아니다.
“왜.”
“형이랑 김래빈 정말 이거 좋아요? Really?”
“어.”
그러자 차유진은 동영상을 한 번 보고, 김래빈을 한 번 보고,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나서 한숨을 푹 쉬었다.
어쭈?
“이건 웃기는 게 목적인 코미디 무대야. 이 정도면 양호하지.”
“알아요! 우….”
차유진은 아쉬운 얼굴로 몇 번 입맛을 다셨으나, 곧 어깨를 으쓱거렸다.
항복 선언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알았다, 새끼야.
“여기서 피치를….”
김래빈은 열심히 키를 조정하고 반주를 맞춰서, 1분 24초짜리 편곡을 반나절 만에 내놓았다.
그렇게 급한 새벽 연습이 픽스되었다.
* * *
장면을 돌려, 막 테스타와 함께하는 궤변 토론의 본방 분량이 끝난 시점.
실제로는 일주일 텀을 둔 후 벌칙을 촬영했으나, 방송에선 자연스럽게 테스타의 정신 나간 패배 이후 벌칙 컷이 이어졌다.
물론, 중간광고 이후에.
이미 해당 상술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그 틈에 여러 가지 예측이나 떠들었다.
-클래식하게 디오니소스님의 흥 책임지는 무대에 한 표
└티홀릭이.. 이미 했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쯤되면 존경스러움
추억의 애니메이션이라 하면 떠올릴 법한 여러 웃긴 노래와 컨셉이 있었다.
그리고 이 프로그램의 행적상, 안 웃긴 적이 없었기에 그들은 이미 기대하는 연출과 느낌이 있었다.
-무조건 90년대 후광 연출 들어갈 듯
-제발 얼굴은 살려주세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일부러 B급 촌스러움을 살린 저세상 감성 말이다.
이 프로그램은 어설프게 망가지지 않는 대신, 이런 웃긴 감성의 재현을 충실히 잘할 줄 알았다!
하지만 중간광고가 끝나고 화면이 돌아왔을 때.
-?
테스타 3인은 그냥 말쑥한 교복 차림을 한 채 스튜디오에 서 있었다.
뒤로 돌아선 테스타에게 꽂히는 조명도 최신식 감성. 다른 필터는 들어가지 않았다.
-엥
-테스타 벌칙 맞지?
그 순간, 밝고 쾌활한 반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했다.
센터의 박문대가 돌아서면서 상징적인 제스처를 한다.
지금부터 시작해]
-?????
2001년도의 마법소녀 애니메이션, 의 변신 테마곡의 제스처 그대로였다.
멜로디로 마법소녀가 되어 마법의 노래로 적을 정화하는 류의 고전적인 마법소녀 만화.
그 교복을 과장된 분장 없이 현실성 있게 재현한 테스타는 진짜 마이크를 쥐고 라이브를 시작했다.
-이거 머임
-라이브?
이 만화는 야심 찬 애니메이션 전문 방송국의 투자로 번안이 아닌 창작곡도 붙었었는데, 지금 나오는 것이 바로 그 곡이었다.
주인공 그룹의 테마곡.
그것이 지금 듣기 딱 좋게 깔끔히 편곡된, 추억의 주제가.
20, 30대 거의 모두가 아는 멜로디가 원본 그대로의 감성으로 재생되었다.
날아가는 마법의 Heart bullet!]
저 가사와 동작 때문에 한동안 진짜 총알을 맞은 듯 쓰러지는 동심 파괴용 반전 개그 동영상이 유행했었다. 덕분에 10대도 원본 동영상을 알았다.
하지만 테스타는 그 밈을 사용하거나 연출하지 않았다. 그냥 원작 애니메이션을 충실히 재현했을 뿐이다.
심지어 후렴에서는 무대 소품으로서 보기 좋은 망토와 장갑까지 걸치고 나와서 무대를 이어 간다.
정확히 의 풀 변신 장면에서 망토가 나올 시점이다.
오늘은 소원을 빌 거야]
테스타는 정말 열심히 잘했다.
실제 만화의 재현율과 근사함으로 따지자면, 인터넷에 올라온 그 어떤 동영상보다도 좋았다. 노래와 표정, 군무까지 과연 직업인다웠다.
그래서 더없이 웃겼다.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 테스타 진심임ㅋㅋㅋㅋㅋㅋㅋㅋ
-토론도 과몰입하더니 벌칙도 과몰입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법소년 짬밥 어디 안갔음
원곡자에 대한 넘치는 리스펙!
데뷔곡이 ‘마법소년’인 이들이 ‘노래 부르는 마법소녀’를 전심으로 커버하는 진정성!
진정한 과몰입이라 웃길 수밖에 없었다.
티홀릭 멤버 하나가 ‘그렇게까지…?’라고 말하는 듯한 눈으로 백그라운드에서 팔짱을 낀 게 잡히는 것까지 한 폭의 그림이었다.
-ㅅㅂ 진태 동공지진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재능낭비도 이쯤 되면 인정해주자 장인임
-테스타 이것도 진심이잖아 대체 왜 진심인건데
이건 시청자의 입장에서는 직전에 본 토론에서부터 연결되는 ‘진심’ 감성의 절정이었다.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폭소했다.
세상이 아름다워~]
CG 반짝이 효과는 딱 한 번 들어갔는데, 그것마저도 만화와 동일한 연출이라 더 골때렸다.
그리고 무대 후반부 짧은 간주.
프로그램 전통적으로 소감 자막이 들어가는 그곳에 나타난 멘트가 최고봉이었다.
-대체 뭘 응원한다는 거임
-미쳤냐곸ㅋㅋㅋㅋㅋㅋ
-박문대 말랑달콤도 팬이더니 멜로디엔젤은 심지어 선배님이냐고ㅋㅋㅋㅋㅋㅋ
-Z세대인줄 알았는데 동년배 갬성
-차유진 자막은 왜 또 만화 감상문인데 아 진짴ㅋㅋㅋㅋㅋㅋㅋㅋㅋ
무대는 멋지게, 해석은 웃기게.
테스타 3인은 그렇게 끝까지 진지한 자세로 무대를 마쳤다.
-테스타 진짜 무슨 일이냐
-캐릭터 독보적이넼ㅋㅋㅋㅋ
그리고 박문대가 원했던 방향으로 버즈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