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30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1화
‘티홀릭의 쇼 비즈니스’는 지금은 관찰 버라이어티 계열에 밀려 많이 사라진 스튜디오 예능이었다.
편집으로 흥미로운 상황을 만드는 관찰 예능과 달리, 진짜 웃긴 놈들만 살아남는 판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하하학!! 미치겠네.”
“왜요, 왜요?”
“아니… 방금 원석 형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요새 아이돌은 다 저렇게 생겼어?’”
그럴싸한 성대모사에 스탭 사이에서까지 폭소가 터진다. 호명된 멤버가 머쓱하게 말한다.
“아니, 나만 놀란 거 아니잖아.”
“네? 맞는데요.”
“형 몰랐어요? 우리 지금 데뷔했으면 망했어요. 얘들아. 그걸 잊지 말고 겸손하자.”
“아니야, 시대를 잘 타고난 것도 우리 재능이라니까?”
“그만 해요! 슬퍼지니까!”
저거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마자 멘트 쏟는 것 좀 봐라.
전문 예능인이 따로 없을 수준인데, 아이돌 이미지 덕분인지 그것 자체가 캐릭터성이 된다.
그게 편견이든, 너그러움이든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단독 게스트가 활약하는 건 버거울 수밖에 없지.’
본인들이 만든 본인들의 쇼에, 본인들이 스포트라이트까지 가져가는 구도에서 게스트는 전반적으로 상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놈들은 어지간히 대선배다. 웬만한 출연자들은 일단 연공서열에서 지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와, 밀레니얼 이후로도 사람이 태어났어?”
“너무 귀엽다 얘들아.”
당연히 분위기를 고려한 티홀릭이 후배에게 판을 깔아주고 떠 먹여주는 제스처를 취할 것이고.
그럼 이런 그림이 되는 것이다.
-와 티홀릭 진짜 잘 띄워준다ㅋㅋ
-애들 방송에서 이렇게 편하게 말하는 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ㅠㅠ 감사합니다!♡
-역시 티쇼비에 나오면 그 어떤 예능 낯가림도 치료 가능
기세가 밀리는 순간 주목을 뺏기고, 게스트는 쇼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존재감이 줄어들어 버린다.
하지만 연공서열이고 나발이고 의식 안 하는 놈이 있다면, 말이 좀 달라지지.
“저 귀여움 작아요! 저 멋있어요!”
“어어?”
차유진은 다짜고짜 손을 들고 외쳤다.
이렇게 초반부터 격렬한(?) 거부는 처음인지, 티홀릭이 입을 벌린다.
‘저럴 줄 알았지.’
차유진은 티홀릭을 잘 모른다.
대선배고 나발이고 그냥 평소 자기 하던 대로 열심히 떠드는 것이다.
그리고 딱히 버릇없다는 느낌도 덜하다. 외국인이니까.
“그, 그래?”
“네! 저 호랑이예요.”
“그렇구나. 우리 차유진 친구는 호랑이구나.”
“맞아요! Tiger~ Like a T!”
“T!”
“형 멋있어 보이려고 리듬 타지 마세요.”
그러니 어지간히 해도 사람들은 넘어가 줄 것이다. 차유진의 미국인 감성은 이미 유명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이놈들이 알아서 커버할 거야.’
프로그램을 재밌게 끌고 가며 버릇처럼 분위기 띄우는데 익숙해진 티홀릭 놈들은 차유진에게 정색하거나 어설프게 굴지 못한다.
‘게다가 중화해 줄 놈이 옆에 붙는다.’
“차유진! 귀엽다고 덕담해 주시면 감사하게 받아야 하는 거야!”
김래빈이다.
나름대로 속삭인다고 한 것 같은데 마이크를 차고 있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나 받았어! 거절 안 했어!”
“작다고 축소했잖아. 자칫하면 예의 없게 들릴 수도 있어!”
“멋진 거 더 크다는 이야기야! 귀여움 감사합니다.”
“어어어.”
“아니야, 우리 이해했어! 이해했어!”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차유진과 김래빈에게 황급히 같이 고개를 숙이는 티홀릭의 모습은… 웃겼다.
‘임팩트 좋고.’
그리고 나는 티홀릭 중 뒤로 빠진 몇몇 놈들끼리 웃으며 눈을 마주치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초반엔 본인들이 애먹는 구도도 재밌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래요, 아주 깜찍하고 귀엽고 멋진 테스타!”
“히히.”
“저기 이게 Z세대인가? 우리 좀 늙은 것 같지?”
“형, 우리 전원 30대 아이돌이에요. 이미 저 업계에선 관짝에 들어갔어.”
구도는 신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티홀릭이 어떻게든 새로운 감성에 적응해 보려 노력하는 식으로 잡혔다.
차유진의 거침없는 기세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아직도 초점이 티홀릭이지.’
테스타는 지금 잘 나가는 아이돌로, 티홀릭의 반대편에 슬쩍 서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조용한 상식인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 중이었다.
“그럼 문대 씨는 메인보컬인 거죠?”
“예. 그렇습니다.”
“아, 제 곡! ‘Party in me’ 부른 거 너무 잘 들었어요.”
“거짓말하지 마, 너 군대에 있었잖아!”
“아니! 휴가 나와서 들었다고!”
“아, 정말 영광이네요. 감사합니다.”
“Yeah~ 문대 형 노래 정말 잘해요!”
요청을 받아서 곡도 한 소절 부르고, 박수도 받고.
홍보 차 출연한 아이돌이 최소한의 분량이라도 챙길 수 있는 뻔한 행동을 싹 다 했다는 것이다.
대충 각이 잡히겠지.
‘아, 얘는 좀 감성이 평범하니까 이대로 가고, 저 둘한테서 구도 뽑으면 되는 거구나.’
저놈들이 이런 방송에 익숙한 만큼 금방 값이 나왔을 것이다.
‘뭐, 이놈들이 내 예능을 사전 점검까지 해가며 보진 않았을 것 같고.’
기껏해야 최근 활동과 성적이나 체크했을 텐데, 침착한 성격이라고 생각해 줄수록 좋다.
“자자, 이렇게 자기소개 인트로가 끝났구요!”
그리고 놈들은 차유진과 김래빈의 잡담에서 재밌는 장면을 충분히 뽑았다 싶었는지, 다음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메인 코너.
주로 게임을 곁들인, 본격적인 유머 분량이었다.
뭐, 공 없이 농구를 한다든가, 의자가 볼풀로 날아간다든가, 발로 초상화를 그려서 누군지 맞추는 등등이 나왔었지.
“쇼 비지니스의 2번 트랙,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는 게임을 할 시간이 왔습니다!”
메인 코너니만큼, 나도 이 게임 종류에 대해서 몇 가지 예측을 하고는 왔는데,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이는 건….
“이번에 테스타와 진행할 게임은 바로~ !”
“프흡.”
그래. 그거다.
나는 사레들릴 뻔한 목을 가다듬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장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미리 알아보길 잘했어.’
처음 위튜브에게 저걸 봤을 때는 마시던 물을 뱉을 뻔했거든.
“형, 수분 섭취는 중요합니다.”
그래, 고맙다. 나는 김래빈이 건네는 물을 마시며 티홀릭의 현란한 진행을 경청했다.
‘어쨌든 예상한 코너가 나와주긴 했어.’
최근에 3회에 한 번꼴로 등장한 코너인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1군 나왔을 때 쓸 줄 알았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군!]
이 타이틀만 들어서는 내게 있던 특성처럼 상대를 설득하는 것 같을 텐데,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티홀릭의 막내는 음성변조 마이크를 들고 짐짓 진지하게 진행했다.
“각 팀은 두 주장 중 하나를 골라 상대를 설득합니다. 한 팀이 논리적으로 설득되면 게임이 종료됩니다. 진 팀에겐 무시무시한 벌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니 게임에서 이긴 쪽이 먼저 주장을 고르게 됩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내용은 정상적으로 들리나? 하지만 이놈들은 매번 게임마다 함정을 넣어뒀다.
그건 보통 미니 게임이 지나간 후, 주장을 공개할 때 드러난다.
“짜잔!”
[우리 팀이 내년에 이룰 목표]
[10억 받기 VS 조난 당하기]
“…???”
“으하하하하!! 미쳤나 봐 진짜!!”
“얘들아 쇼비지니스에 온 걸 환영한다~”
밸런스가 완전히 망한 것이다.
그리고 미니 게임을 이긴 티홀릭은 희희낙락하며 전자를 고른다.
“10억이요! 10억!”
“조난을 고른 Z세대에게 쓴맛을 보여주겠어~”
여기까지만 보면 이후의 그림이 노잼일 것 같겠지. 일방적인 게스트 구타가 될 테니까.
그러나 이다음 타이밍에 2차 함정이 또 드러났다.
“여러분, 제가 ‘논리적으로 설득되면’ 게임이 끝난다고 말씀드렸죠?”
“…….”
“야, 설마?”
“그렇습니다! 제일 그럴싸하게! 논리적으로 설득당하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말하자면 궤변 토론이다.
목표는 상대의 주장에 합리적으로 승복하는 것.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변호하는 쪽을 최대한 말도 안 되게 설명하면서 상대의 말에는 납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이제 티홀릭은 ‘10억 대신 조난을 당하겠다’는 쪽에 설득당해야 이길 수 있는 것.
반면에 테스타는 ‘조난당하는 대신 10억을 받겠다’는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면 된다.
“사기 아니야??”
“아닙니다!”
‘잘 짰네.’
본인들이 미끄러지면서 웃기고, 게스트 위치는 띄워줘서 승리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이다.
‘역시 위튜브 베스트 댓글을 반영하는군.’
-설득당하는 팀이 이기는 걸로 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ㅋㅋㅋ
-아 진짜 듣보맞말은 레전드다… 사골처럼 우려 먹어주세요 제발!
막 출범한 신진 업체들이 그렇듯이 여기 제작진들도 소통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것 같았거든.
영상의 베스트 댓글이 다다음 화쯤 반영되는 걸 보는 것은 흔했다.
그래서 전 동영상들을 보며 몇 가지 변형안을 예상해 봤는데, 딱 걸린 것이다.
이후의 흐름이야 뭐 뻔하지.
“어? 그… 갑자기 큰돈 받으면 사람이 좀 망가지잖아요. 이제 은퇴하고 싶다~ 하면 10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저는 은퇴 싫어요! 오래 할래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요? 어? 남는 답이 있죠?”
“10억 받고 은퇴 안 해요! 저 안 망가져요. 우리 멤버들 강합니다!”
“와, 진짜 당차다….”
“그래도 돈이라는 참 무서운 건데~ 아니, 10억 받지 말라는 게 아니고!”
저놈들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뻔뻔히 하면서 상식적인 말을 하는 게스트를 좀 골려 먹으면서도, 괜히 안절부절못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게스트의 리액션를 신나게 뽑아먹은 뒤에는 훈훈하게 져주는 그림인데….
‘그럼 저놈들이 흐름을 다 가져가는 거지.’
너희 맘대로 판 짜서 우리 써먹도록 여기 나온 건 아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 게임을 제일 잘 플레이하는 방법?’
간단하다. 상대의 논리를 보강해 주면 된다. 제작진 모두가 예상했을 플레이 방법이다.
그 상식적인 흐름을 타면, 저놈들에게 휩쓸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린 반대로 간다.
나는 테이블 위로 양손을 올려 깍지꼈다.
“선배님.”
“넵, 문대 씨 발언하세요~”
“이기기 위해 저쪽 편의 주장을 최대한 이해하고, 납득해 보려 했습니다만….”
나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가 받은 주장이 맞습니다.”
“…??”
“저희 팀원들은 10억보다 조난을 고를 것 같습니다.”
“예??”
“무, 뭔 소리야?”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조난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뭐 배워요?”
나는 툭툭 치며 작게 묻는 차유진에게 또렷하게 대답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 행동반경에서 조난 당할 만한 곳은 며칠 내로 구조가 가능한 곳이야. 그동안 새로운 경험을 배우는 거지.”
“아하! 맞아요.”
차유진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난 괜찮아요! 저 좋아요!”
“……??”
MC를 맡은 티홀릭 막내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이대로 가면 지시는 건데요??”
“지금 이 한 코너만의 문제로 신념을 내려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조난에 신념이 있어??”
“얘들아 왜 그래…. 형 무서워.”
환장스럽게 돌아가는 판에 티홀릭 막내가 기겁할 때, 김래빈까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
“그렇지.”
“예. 저희는 실제로 예능 촬영 중 조난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래빈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잠깐.”
“저는 지난 앨범 타이틀을 그 조난 중에 만들었습니다. 10억과 조난 중에 전자를 고르는 것은 돈을 좇아 음악적 성취를 버리는 행위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런 걸 왜 우려해?!”
김래빈은 순간 예능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고,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역시 논제 자체에 몰입하게 되면 그럴 줄 알았다.
“아니… 얘들아 생각해 봐. 이게 말이 되니? 무슨 놈의 조난이야??”
“대체 정산을 얼마나 받아서 10억 보기를 돌같이 해!”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조난 당시 래빈이가 만든 타이틀곡으로 정산 액수가 늘어났으니, 사실 어느 정도 금전적 이득도 그 선택에 포함되어 있는….”
“Oh~”
“그렇군요!”
“일리 있는 것처럼 반응하지 말아 주세요, 으허헉헝.”
그리고 촬영장은 혼돈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예정대로였다.
* * *
며칠 후 평일 밤.
“와! 여기도 나왔네~”
대학원생은 썸네일에 있는 문대의 사진에 싱글벙글 웃으며, 인기 동영상으로 올라온 ‘티홀릭의 쇼비지니스’ 선공개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1분 뒤.
“푸흐흡!”
대학원생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01화
‘티홀릭의 쇼 비즈니스’는 지금은 관찰 버라이어티 계열에 밀려 많이 사라진 스튜디오 예능이었다.
편집으로 흥미로운 상황을 만드는 관찰 예능과 달리, 진짜 웃긴 놈들만 살아남는 판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아하하학!! 미치겠네.”
“왜요, 왜요?”
“아니… 방금 원석 형 뭐라고 한 줄 알아요? ‘요새 아이돌은 다 저렇게 생겼어?’”
그럴싸한 성대모사에 스탭 사이에서까지 폭소가 터진다. 호명된 멤버가 머쓱하게 말한다.
“아니, 나만 놀란 거 아니잖아.”
“네? 맞는데요.”
“형 몰랐어요? 우리 지금 데뷔했으면 망했어요. 얘들아. 그걸 잊지 말고 겸손하자.”
“아니야, 시대를 잘 타고난 것도 우리 재능이라니까?”
“그만 해요! 슬퍼지니까!”
저거 카메라가 돌기 시작하자마자 멘트 쏟는 것 좀 봐라.
전문 예능인이 따로 없을 수준인데, 아이돌 이미지 덕분인지 그것 자체가 캐릭터성이 된다.
그게 편견이든, 너그러움이든 말이다.
‘그러니 여기서 단독 게스트가 활약하는 건 버거울 수밖에 없지.’
본인들이 만든 본인들의 쇼에, 본인들이 스포트라이트까지 가져가는 구도에서 게스트는 전반적으로 상대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심지어 이놈들은 어지간히 대선배다. 웬만한 출연자들은 일단 연공서열에서 지고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와, 밀레니얼 이후로도 사람이 태어났어?”
“너무 귀엽다 얘들아.”
당연히 분위기를 고려한 티홀릭이 후배에게 판을 깔아주고 떠 먹여주는 제스처를 취할 것이고.
그럼 이런 그림이 되는 것이다.
-와 티홀릭 진짜 잘 띄워준다ㅋㅋ
-애들 방송에서 이렇게 편하게 말하는 거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아요ㅠㅠ 감사합니다!♡
-역시 티쇼비에 나오면 그 어떤 예능 낯가림도 치료 가능
기세가 밀리는 순간 주목을 뺏기고, 게스트는 쇼의 구성요소 중 하나로 존재감이 줄어들어 버린다.
하지만 연공서열이고 나발이고 의식 안 하는 놈이 있다면, 말이 좀 달라지지.
“저 귀여움 작아요! 저 멋있어요!”
“어어?”
차유진은 다짜고짜 손을 들고 외쳤다.
이렇게 초반부터 격렬한(?) 거부는 처음인지, 티홀릭이 입을 벌린다.
‘저럴 줄 알았지.’
차유진은 티홀릭을 잘 모른다.
대선배고 나발이고 그냥 평소 자기 하던 대로 열심히 떠드는 것이다.
그리고 딱히 버릇없다는 느낌도 덜하다. 외국인이니까.
“그, 그래?”
“네! 저 호랑이예요.”
“그렇구나. 우리 차유진 친구는 호랑이구나.”
“맞아요! Tiger~ Like a T!”
“T!”
“형 멋있어 보이려고 리듬 타지 마세요.”
그러니 어지간히 해도 사람들은 넘어가 줄 것이다. 차유진의 미국인 감성은 이미 유명했으니까.
‘그리고 나머지는 이놈들이 알아서 커버할 거야.’
프로그램을 재밌게 끌고 가며 버릇처럼 분위기 띄우는데 익숙해진 티홀릭 놈들은 차유진에게 정색하거나 어설프게 굴지 못한다.
‘게다가 중화해 줄 놈이 옆에 붙는다.’
“차유진! 귀엽다고 덕담해 주시면 감사하게 받아야 하는 거야!”
김래빈이다.
나름대로 속삭인다고 한 것 같은데 마이크를 차고 있으니 아무 소용이 없다.
“나 받았어! 거절 안 했어!”
“작다고 축소했잖아. 자칫하면 예의 없게 들릴 수도 있어!”
“멋진 거 더 크다는 이야기야! 귀여움 감사합니다.”
“어어어.”
“아니야, 우리 이해했어! 이해했어!”
“이해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오늘 최선을 다하는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렇게까지?”
고개를 숙이는 차유진과 김래빈에게 황급히 같이 고개를 숙이는 티홀릭의 모습은… 웃겼다.
‘임팩트 좋고.’
그리고 나는 티홀릭 중 뒤로 빠진 몇몇 놈들끼리 웃으며 눈을 마주치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 초반엔 본인들이 애먹는 구도도 재밌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 것 같다.
“그래요, 아주 깜찍하고 귀엽고 멋진 테스타!”
“히히.”
“저기 이게 Z세대인가? 우리 좀 늙은 것 같지?”
“형, 우리 전원 30대 아이돌이에요. 이미 저 업계에선 관짝에 들어갔어.”
구도는 신세대를 이해하지 못하는 티홀릭이 어떻게든 새로운 감성에 적응해 보려 노력하는 식으로 잡혔다.
차유진의 거침없는 기세를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아직도 초점이 티홀릭이지.’
테스타는 지금 잘 나가는 아이돌로, 티홀릭의 반대편에 슬쩍 서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그 속에서 조용한 상식인의 역할을 착실히 수행 중이었다.
“그럼 문대 씨는 메인보컬인 거죠?”
“예. 그렇습니다.”
“아, 제 곡! ‘Party in me’ 부른 거 너무 잘 들었어요.”
“거짓말하지 마, 너 군대에 있었잖아!”
“아니! 휴가 나와서 들었다고!”
“아, 정말 영광이네요. 감사합니다.”
“Yeah~ 문대 형 노래 정말 잘해요!”
요청을 받아서 곡도 한 소절 부르고, 박수도 받고.
홍보 차 출연한 아이돌이 최소한의 분량이라도 챙길 수 있는 뻔한 행동을 싹 다 했다는 것이다.
대충 각이 잡히겠지.
‘아, 얘는 좀 감성이 평범하니까 이대로 가고, 저 둘한테서 구도 뽑으면 되는 거구나.’
저놈들이 이런 방송에 익숙한 만큼 금방 값이 나왔을 것이다.
‘뭐, 이놈들이 내 예능을 사전 점검까지 해가며 보진 않았을 것 같고.’
기껏해야 최근 활동과 성적이나 체크했을 텐데, 침착한 성격이라고 생각해 줄수록 좋다.
“자자, 이렇게 자기소개 인트로가 끝났구요!”
그리고 놈들은 차유진과 김래빈의 잡담에서 재밌는 장면을 충분히 뽑았다 싶었는지, 다음으로 넘어갔다.
사실상 메인 코너.
주로 게임을 곁들인, 본격적인 유머 분량이었다.
뭐, 공 없이 농구를 한다든가, 의자가 볼풀로 날아간다든가, 발로 초상화를 그려서 누군지 맞추는 등등이 나왔었지.
“쇼 비지니스의 2번 트랙, 우리의 마음을 드러내는 게임을 할 시간이 왔습니다!”
메인 코너니만큼, 나도 이 게임 종류에 대해서 몇 가지 예측을 하고는 왔는데, 가장 가능성이 커 보이는 건….
“이번에 테스타와 진행할 게임은 바로~ !”
“프흡.”
그래. 그거다.
나는 사레들릴 뻔한 목을 가다듬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문장이라서 어쩔 수 없었다.
‘미리 알아보길 잘했어.’
처음 위튜브에게 저걸 봤을 때는 마시던 물을 뱉을 뻔했거든.
“형, 수분 섭취는 중요합니다.”
그래, 고맙다. 나는 김래빈이 건네는 물을 마시며 티홀릭의 현란한 진행을 경청했다.
‘어쨌든 예상한 코너가 나와주긴 했어.’
최근에 3회에 한 번꼴로 등장한 코너인데, 반응이 굉장히 좋아서 1군 나왔을 때 쓸 줄 알았다.
이 타이틀만 들어서는 내게 있던 특성처럼 상대를 설득하는 것 같을 텐데, 비슷하지만 좀 다르다.
티홀릭의 막내는 음성변조 마이크를 들고 짐짓 진지하게 진행했다.
“각 팀은 두 주장 중 하나를 골라 상대를 설득합니다. 한 팀이 논리적으로 설득되면 게임이 종료됩니다. 진 팀에겐 무시무시한 벌칙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미니 게임에서 이긴 쪽이 먼저 주장을 고르게 됩니다. 그럼, 건투를 빕니다.”
내용은 정상적으로 들리나? 하지만 이놈들은 매번 게임마다 함정을 넣어뒀다.
그건 보통 미니 게임이 지나간 후, 주장을 공개할 때 드러난다.
“짜잔!”
“…???”
“으하하하하!! 미쳤나 봐 진짜!!”
“얘들아 쇼비지니스에 온 걸 환영한다~”
밸런스가 완전히 망한 것이다.
그리고 미니 게임을 이긴 티홀릭은 희희낙락하며 전자를 고른다.
“10억이요! 10억!”
“조난을 고른 Z세대에게 쓴맛을 보여주겠어~”
여기까지만 보면 이후의 그림이 노잼일 것 같겠지. 일방적인 게스트 구타가 될 테니까.
그러나 이다음 타이밍에 2차 함정이 또 드러났다.
“여러분, 제가 ‘논리적으로 설득되면’ 게임이 끝난다고 말씀드렸죠?”
“…….”
“야, 설마?”
“그렇습니다! 제일 그럴싸하게! 논리적으로 설득당하는 팀이 이기는 겁니다~”
말하자면 궤변 토론이다.
목표는 상대의 주장에 합리적으로 승복하는 것.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내가 변호하는 쪽을 최대한 말도 안 되게 설명하면서 상대의 말에는 납득해야 한다는 뜻이다.
즉, 이제 티홀릭은 ‘10억 대신 조난을 당하겠다’는 쪽에 설득당해야 이길 수 있는 것.
반면에 테스타는 ‘조난당하는 대신 10억을 받겠다’는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이면 된다.
“사기 아니야??”
“아닙니다!”
‘잘 짰네.’
본인들이 미끄러지면서 웃기고, 게스트 위치는 띄워줘서 승리하게 만들어주는 그림이다.
‘역시 위튜브 베스트 댓글을 반영하는군.’
-설득당하는 팀이 이기는 걸로 해도 재밌을 것 같아요ㅋㅋㅋ
-아 진짜 듣보맞말은 레전드다… 사골처럼 우려 먹어주세요 제발!
막 출범한 신진 업체들이 그렇듯이 여기 제작진들도 소통에 필요 이상으로 신경을 쓰는 것 같았거든.
영상의 베스트 댓글이 다다음 화쯤 반영되는 걸 보는 것은 흔했다.
그래서 전 동영상들을 보며 몇 가지 변형안을 예상해 봤는데, 딱 걸린 것이다.
이후의 흐름이야 뭐 뻔하지.
“어? 그… 갑자기 큰돈 받으면 사람이 좀 망가지잖아요. 이제 은퇴하고 싶다~ 하면 10억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렇지, 그렇지!”
“저는 은퇴 싫어요! 오래 할래요!”
“그래~ 그럼 어떻게 해야겠어요? 어? 남는 답이 있죠?”
“10억 받고 은퇴 안 해요! 저 안 망가져요. 우리 멤버들 강합니다!”
“와, 진짜 당차다….”
“그래도 돈이라는 참 무서운 건데~ 아니, 10억 받지 말라는 게 아니고!”
저놈들은 얼토당토않은 주장을 뻔뻔히 하면서 상식적인 말을 하는 게스트를 좀 골려 먹으면서도, 괜히 안절부절못할 것이다.
그렇게 자신들의 행동에 대한 게스트의 리액션를 신나게 뽑아먹은 뒤에는 훈훈하게 져주는 그림인데….
‘그럼 저놈들이 흐름을 다 가져가는 거지.’
너희 맘대로 판 짜서 우리 써먹도록 여기 나온 건 아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 게임을 제일 잘 플레이하는 방법?’
간단하다. 상대의 논리를 보강해 주면 된다. 제작진 모두가 예상했을 플레이 방법이다.
그 상식적인 흐름을 타면, 저놈들에게 휩쓸려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린 반대로 간다.
나는 테이블 위로 양손을 올려 깍지꼈다.
“선배님.”
“넵, 문대 씨 발언하세요~”
“이기기 위해 저쪽 편의 주장을 최대한 이해하고, 납득해 보려 했습니다만….”
나는 엄숙하게 선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희가 받은 주장이 맞습니다.”
“…??”
“저희 팀원들은 10억보다 조난을 고를 것 같습니다.”
“예??”
“무, 뭔 소리야?”
나는 진지하게 대답했다.
“돈보다 소중한 가치를 조난에서 배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네?”
“뭐 배워요?”
나는 툭툭 치며 작게 묻는 차유진에게 또렷하게 대답했다.
“현실적으로 지금 우리 행동반경에서 조난 당할 만한 곳은 며칠 내로 구조가 가능한 곳이야. 그동안 새로운 경험을 배우는 거지.”
“아하! 맞아요.”
차유진이 시원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조난 괜찮아요! 저 좋아요!”
“……??”
MC를 맡은 티홀릭 막내가 끼어들었다.
“잠깐만요! 이대로 가면 지시는 건데요??”
“지금 이 한 코너만의 문제로 신념을 내려놓을 수는 없으니까요.”
“조난에 신념이 있어??”
“얘들아 왜 그래…. 형 무서워.”
환장스럽게 돌아가는 판에 티홀릭 막내가 기겁할 때, 김래빈까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네?”
“그렇지.”
“예. 저희는 실제로 예능 촬영 중 조난을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김래빈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리고 그 경험을 통해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잠깐.”
“저는 지난 앨범 타이틀을 그 조난 중에 만들었습니다. 10억과 조난 중에 전자를 고르는 것은 돈을 좇아 음악적 성취를 버리는 행위와 일맥상통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그런 걸 왜 우려해?!”
김래빈은 순간 예능이라는 걸 의식하지 않고, 진지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역시 논제 자체에 몰입하게 되면 그럴 줄 알았다.
“아니… 얘들아 생각해 봐. 이게 말이 되니? 무슨 놈의 조난이야??”
“대체 정산을 얼마나 받아서 10억 보기를 돌같이 해!”
나는 손을 들었다.
“그러고 보니까 조난 당시 래빈이가 만든 타이틀곡으로 정산 액수가 늘어났으니, 사실 어느 정도 금전적 이득도 그 선택에 포함되어 있는….”
“Oh~”
“그렇군요!”
“일리 있는 것처럼 반응하지 말아 주세요, 으허헉헝.”
그리고 촬영장은 혼돈 속으로 빠지기 시작했다.
예정대로였다.
* * *
며칠 후 평일 밤.
“와! 여기도 나왔네~”
대학원생은 썸네일에 있는 문대의 사진에 싱글벙글 웃으며, 인기 동영상으로 올라온 ‘티홀릭의 쇼비지니스’ 선공개 영상을 보게 된다.
그리고 1분 뒤.
“푸흐흡!”
대학원생은 마시던 커피를 뿜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