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99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9화
보통 새벽에 룸메이트 목소리가 들린다고 놀랄 일은 아니긴 한데, 지금은 상황이 좀 예외적이다.
‘환장하겠네.’
오늘 류청우는 1박 2일 동안 진행되는 캠핑 예능에 게스트로 갔거든.
그래서 사실상 독방이라 편하게 화상통화를 진행했던 건데 말이다.
[오….]
“잠깐.”
탁.
나는 일단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문으로 향했다.
“형, 잠시만요.”
그리고 문을 열었다.
가벼운 차림의 류청우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도 의아하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음, 촬영 가신 줄 알았는데요.”
“아, 출연진 문제로 내일 저녁에 다시 합류하기로 했어.”
류청우가 목 뒤를 몇 번 만지더니, 약간 쑥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어서… 혹시 네가 자는 중이면 그냥 거실에서 자려고 했는데, 소리가 들리더라고.”
“…….”
무슨 말인지 들렸다면 저렇게 태연할 리가 없지.
‘애초에 방음이 좋은 곳이기도 하고.’
나는 한숨을 참으며 몸을 비켰다.
“시끄러운 놈들이 많아서 아까 잠가놓고 잊어버렸나 봅니다.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지.”
저 말은 진심 같은데, 이 변명을 납득한 것 같다는 게 더 웃기긴 하군. 나는 차유진에게 짧게 감사한 뒤 내 침대에 앉았다.
잠깐 기다렸다가, 류청우가 씻으러 가면 노트북 들고 나가서….
“문대야, 노트북 불 들어오는데.”
“방금까지 게임을 해서요.”
류청우는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 새벽까지?”
“……예, 뭐.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
하필 직전까지 차유진을 생각하고 있던 바람에 이딴 변명이 떠올랐다. 존엄성이 박살 나는 기분이군.
떨떠름한 답변이 돌아왔다.
“음…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으니까 절제해 보자.”
“……예.”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지금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내일 스케줄이 오후라도 벌써 새벽 3시잖아.”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의 잠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를 주먹으로 갈기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30초면 씻으러 들어가겠어.’
그러니 노트북을 정리하는 척 챙길 준비를….
“음, 문대야. 마침 상황이 되니까…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어?”
“그럼요.”
옷을 든 류청우는 약간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거기서 짐작했어야 했다.
“그 VTIC 선배님 말인데.”
아, 망할.
나는 내 노트북 속에 들어있는 놈의 화제에 침음을 삼켰다.
‘덮어놨으니 들리진 않겠지.’
“세진이 말을 들어보니까 사건이 있던 것 같아서. 혹시 그 선배가 무슨 짓 했어?”
“음…….”
나는 짧게 계산했다. 얼마만큼 진실에 가깝게 구체적으로 말할지.
그리고 적당한 농도를 만들었다.
일단 쓸데없이 반응이 커지지 않도록, 과거의 일임을 암시한다.
“전에 일이 좀 있긴 했죠.”
그리고 사건 자체보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해명에 초점을 맞춰서 분위기를 바꾼다.
“그쪽이 시비를 걸어서 싸웠거든요. 제가 먼저 때린 건 아니고, 반격한 겁니다.”
“시비를?”
“예. 그래서 서로 좀… 주먹다짐하면서 싸웠는데요.”
“…….”
좀 당황했군.
좋아. 지난 동명이인 두 놈이랑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갈 것 같다.
“그건… 그쪽이 후배를 때리려다 반격당한 걸로 들리는데.”
정확하다.
“그렇죠. 아무래도 연차 차이도 있고… 위계적으로 봤을 때 그쪽 잘못이긴 했죠. 제가 반격을 잘한 거고.”
“그래.”
끝인가?
슬슬 위로나 조언을 듣고 끝날 타이밍…….
“근데 그 선배랑 게임을 같이할 정도로 친해진 거야?”
“…!”
젠장.
이게 대체 몇 번째로 놀라는 건지 모르겠군.
다만 류청우는 추궁하려던 건 아니고, 단지 의아했을 뿐인 것 같다.
“아까 들어오는데 네 이어폰에서 소리가 들리더라.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야.”
노트북이 닫히자마자 휴면상태로 돌아간 게 아니라 잠시 살아 있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귀 한번 더럽게 좋은 놈이다.
“혹시 고민이나 불편한 점 있어? 저기에 관해서.”
…약간 걱정도 하는 것 같고.
아마 내 반말 녹음 사태부터 여러 정황을 합산하다 보니, 무슨 지속적으로 군기 잡히고 갈굼당하는 류의 사태를 의심하는 것 같다.
후배를 괴롭히기 위해 새벽까지 게임에서 생산봇으로 써먹는다든가 하는 추측인가.
‘운동하던 놈이라 사례를 많이 접했나 보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요. 싸우다 보니 편해져서 연락하는 겁니다. 사과도 충분히 받았고요.”
“음.”
“잘 써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써먹어?”
“뭐… 한번 정리해 두니 만만하죠. 가끔 편하게 동원하는 거니까 걱정 마세요.”
“만만…….”
류청우는 어떻게 납득하는 것 같더니, 곧 그 얼굴에 퍼뜩 염려가 스쳤다.
그리고 황급히 물었다.
“문대야, 그렇다고 반대로 괴롭히는 건 아니지?”
매번 빡치는 건 나다, 새끼야.
“…그럼요.”
나는 역으로 상황을 우려하기 시작한 류청우를 안심시키기 위해 약간 시간을 썼다.
“형, 설마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요.”
“아니지. 당연히 아니야. 그런데 음, 너는 워낙 똑똑하니까…… 혹시 복수하고 싶어지면 똑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걸….”
“당연한 소리 말고 씻으러 가시죠.”
류청우는 머쓱한 웃음과 함께 그제야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게임 끝내고 나간다고 설명하겠다’는 말과 함께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베란다를 등지고 노트북을 열었다. 앱을 중지하고 전원을 끌 생각이었으나… 놀랍게도 청려의 얼굴이 떴다.
[아.]
놈은 뭔가를 적으며 작업 중이던 것 같다.
그런데 굳이 이 화상 전화를 굳이 안 끊고 있었다고?
[이야기 다 끝났어요?]
“아직도 접속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질문에 답은 듣고 싶어서.]
아, 결국 그걸로 돌아오나.
‘이거고 저거고 왜 이렇게 해명을 요구하는 놈들이 많아.’
나는 지근거리는 이마를 누르며 낮게 대답했다.
“소리 내서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니까, 채팅으로.”
[좋아요.]
-CHR : 이렇게?
-Apple : 그래
-CHR : ^^
-CHR : 그래서 이용하지도 못할 분석을 하는 이유는?
맡겨놨냐?
나는 잠시 회의감을 느꼈으나, 곧 이놈의 공로를 감안해 빠르게 타자기를 쳤다.
-Apple : 패턴을 완전히 분석하면 추리해 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CHR : 어떤 일을?
-Apple :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몰라
-Apple : 그때 기억이 희미해서
이어폰에서 놈이 낮은 소리를 내는 것이 들린다.
생각에 잠겼나 싶었으나, 곧 어처구니없는 글이 떠올랐다.
-CHR : 새 신분으로 아이돌하는 게 소망 아니었어요?
-Apple : 공시생이었다니까
-Apple : 내 관련성은 데이터를 찍어서 판 것뿐이야
-CHR : 은밀히 아이돌에 대한 동경을 키웠던 게 아닐까요?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일부러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담담히 키보드를 작동시켰다.
-Apple : 너나 권희승의 사례를 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소망을 가졌던 것 같은데
-Apple : 내가 그럴 것 같냐?
웃음소리가 이어폰에서부터 들렸다. 나는 무음으로 설정을 바꾸려다가 직전에야 멈췄다.
-CHR : 알았어요
그래.
-CHR : 그런데 그것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뭐?
-CHR : 속 시원해지고 싶다고 손패를 다 보여주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CHR : 다른 이유는?
“…….”
그래. 내게는 상태창과 미션이란 예외적인 수단이 있으니 좀 더 많은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설명이 있다.
나는 잠깐 멈췄다가, 곧 천천히 답변을 썼다.
-Apple : 이 미친 짓이 앞으로 안 일어났으면 해서
결국, 여기로 다시 귀결되는 것이다.
소원이 말이 좋아 소원이지, 사실상 상태창이 없는 상태에서 ‘상태이상’을 헤쳐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당장 있는 나도 몇 번이나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맞은편의 놈은, 몇 번을 죽었는지도 모르겠고.
‘선택도 지식도 없다는 점에서 이미 미친 짓이야.’
내가 ‘박문대’와의 대화를 기다리며 넋 놓고 있는 대신 단서 잡자마자 행동에 나선 이유에는 분명 이것도 있을 것이다.
다만 채팅 중인 놈은 썩 동의하는 기색은 아니다. 청려는 힐끗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CHR : 그러면 그냥 죽는 편이 나았다는 뜻인가요?
-Apple : 그럴 리가 있나
또 극단적이군.
-Apple : 사람이 안 죽게 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지
-Apple : 기부를 하든 캠페인을 벌이든
-Apple : 다짜고짜 과거에 보내서 클리어 못 하면 또 뒈지게 만드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데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CHR : 지금 불행한가요?
이득 본 놈이 하는 말이라 웃기다 이건가.
나는 다시 타자기를 쳤다.
-Apple : 우린 성공한 케이스고
-Apple : 실패한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지
권희승의 상태이상.
분명 ‘실패’라고 적혀만 있고, 그 효과는 적혀 있지 않았다.
‘청려는 분명 재시작까지 명시되어있었어.’
그렇다면, 보통은 ‘실패’ 시 그냥 내 상태이상처럼 뒈지고 끝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후가 어떻게 될지는… 썩 긍정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단 말이지.
-Apple : 다음 대상자를 잡아내는 건 힘들겠지
-Apple : 그래도 패턴을 분석하다 보면 막을 방법이 나올 수도 있겠던데
-Apple : 시도해 볼 만하지 않나
시공간은 통제가 가능한 요인이니까.
[…….]
청려는 몇 초쯤 답변이 없었다. 놈은 마우스 위에 올린 손을 몇 번 움직일 뿐이었다.
그게 개를 쓰다듬는 것 같다는 걸 깨달을 때쯤, 답변이 돌아왔다.
[그럴지도요.]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화면 속 놈은, 갑자기 실실 웃었다.
‘뭐야?’
-CHR : 그리고
-CHR : 미래 지식을 가진 사람 때문에 활동에 변수가 생기는 것도 방지할 겸?
“…….”
-Apple : 알면서 뭘 확인하냐
[하하하!!]
이어폰 너머까지 들리겠군. 나는 넌더리를 내며 이번에야말로 설정을 무음으로 돌렸다.
-CHR : 사다리 걷어차기 좋죠
-CHR : 그래요. 앞으로도 잘 협조할게요 후배님 ^^
“이 새…….”
“아직도 게임 중이야?”
그 순간, 나는 내가 숙소 거실에 앉아 있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아뇨. 잠시만요.”
무음으로 돌려놓길 잘했군.
-Apple : 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앱을 종료하고 노트북을 완전히 껐다.
류청우는 오묘한 미소와 함께 방에서 상체를 내밀고 있었다.
“게임이 많이 재밌었나 보네.”
“삭제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까진….”
“아뇨. 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이어지는 류청우의 격려를 묵묵히 참은 뒤 침대에 누웠다.
“문 닫을게.”
“네.”
‘잠이나 제대로 자자.’
나는 류청우에게 양해를 구한 뒤 10시로 알람을 맞춘 채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입으로든 타자로든 평소 안 할 소리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도 피곤했다.
‘…지금 생각해 낼 만한 정황은 다 맞춰봤지.’
시간, 공간적으로 가까운 후보에게 갈아타는 시스템.
그 패턴을 알아낸 것은 성과라고 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섬뜩한 구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시스템이란 건 미래에 자진해서 죽을 놈들을 대체 어떻게 알고 갈아타는 거지.’
아니, 애초에 죽을 시점에 과거로 돌아오게 해주는 것부터가 초월적 능력이었다.
나는 무심코 상태창을 한번 불러보았다.
[이름 : 박문대 (류건우)]
그렇게 시작하는 줄글의 나열.
왜 사람 갈아타는 시스템이 떠났는데도 이건 나한테 남아있는 걸까.
패턴을 분석할수록 내 특수성이 드러난다는 게 희한한 느낌이긴 했다.
그리고 결국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긴 한다.
‘결국 ‘박문대’와 대화를 하는 건 필요해.’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공백은 거기서 찾을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이대로만 간다면 대상 하나 정도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잠들었다.
간만의 꿈도 없는 깊은 잠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이이잉-!
“…….”
푹 잤군.
나는 10시 알람을 끄며 화면에 뜬 메시지 알림과 팝업들을 지웠다.
그리고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으나, 그중에는 내가 최근 구독을 시작한 연예 뉴스레터 앱도 있었다.
[“군백기 못 느껴요” 티홀릭 6인 컴백]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재난 경보나 다름없는 놈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9화
보통 새벽에 룸메이트 목소리가 들린다고 놀랄 일은 아니긴 한데, 지금은 상황이 좀 예외적이다.
‘환장하겠네.’
오늘 류청우는 1박 2일 동안 진행되는 캠핑 예능에 게스트로 갔거든.
그래서 사실상 독방이라 편하게 화상통화를 진행했던 건데 말이다.
“잠깐.”
탁.
나는 일단 노트북을 덮었다. 그리고 일어나서 문으로 향했다.
“형, 잠시만요.”
그리고 문을 열었다.
가벼운 차림의 류청우가 다소 의아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나도 의아하다. 네가 왜 여기 있냐.
“음, 촬영 가신 줄 알았는데요.”
“아, 출연진 문제로 내일 저녁에 다시 합류하기로 했어.”
류청우가 목 뒤를 몇 번 만지더니, 약간 쑥스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런데 문이 잠겨 있어서… 혹시 네가 자는 중이면 그냥 거실에서 자려고 했는데, 소리가 들리더라고.”
“…….”
무슨 말인지 들렸다면 저렇게 태연할 리가 없지.
‘애초에 방음이 좋은 곳이기도 하고.’
나는 한숨을 참으며 몸을 비켰다.
“시끄러운 놈들이 많아서 아까 잠가놓고 잊어버렸나 봅니다. 죄송해요.”
“죄송할 건 없지.”
저 말은 진심 같은데, 이 변명을 납득한 것 같다는 게 더 웃기긴 하군. 나는 차유진에게 짧게 감사한 뒤 내 침대에 앉았다.
잠깐 기다렸다가, 류청우가 씻으러 가면 노트북 들고 나가서….
“문대야, 노트북 불 들어오는데.”
“방금까지 게임을 해서요.”
류청우는 약간 충격을 받은 것 같았다.
“이 새벽까지?”
“……예, 뭐. 하루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
하필 직전까지 차유진을 생각하고 있던 바람에 이딴 변명이 떠올랐다. 존엄성이 박살 나는 기분이군.
떨떠름한 답변이 돌아왔다.
“음… 건강에 안 좋을 수 있으니까 절제해 보자.”
“……예.”
나는 힘겹게 대답했다.
“지금 정리하겠습니다.”
“그래. 내일 스케줄이 오후라도 벌써 새벽 3시잖아.”
류청우는 희미하게 웃으며 자신의 잠옷을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를 주먹으로 갈기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이성적으로 판단했다.
‘30초면 씻으러 들어가겠어.’
그러니 노트북을 정리하는 척 챙길 준비를….
“음, 문대야. 마침 상황이 되니까… 뭐 하나 물어봐도 괜찮겠어?”
“그럼요.”
옷을 든 류청우는 약간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거기서 짐작했어야 했다.
“그 VTIC 선배님 말인데.”
아, 망할.
나는 내 노트북 속에 들어있는 놈의 화제에 침음을 삼켰다.
‘덮어놨으니 들리진 않겠지.’
“세진이 말을 들어보니까 사건이 있던 것 같아서. 혹시 그 선배가 무슨 짓 했어?”
“음…….”
나는 짧게 계산했다. 얼마만큼 진실에 가깝게 구체적으로 말할지.
그리고 적당한 농도를 만들었다.
일단 쓸데없이 반응이 커지지 않도록, 과거의 일임을 암시한다.
“전에 일이 좀 있긴 했죠.”
그리고 사건 자체보다 내 잘못이 아니라는 해명에 초점을 맞춰서 분위기를 바꾼다.
“그쪽이 시비를 걸어서 싸웠거든요. 제가 먼저 때린 건 아니고, 반격한 겁니다.”
“시비를?”
“예. 그래서 서로 좀… 주먹다짐하면서 싸웠는데요.”
“…….”
좀 당황했군.
좋아. 지난 동명이인 두 놈이랑 비슷한 상황으로 흘러갈 것 같다.
“그건… 그쪽이 후배를 때리려다 반격당한 걸로 들리는데.”
정확하다.
“그렇죠. 아무래도 연차 차이도 있고… 위계적으로 봤을 때 그쪽 잘못이긴 했죠. 제가 반격을 잘한 거고.”
“그래.”
끝인가?
슬슬 위로나 조언을 듣고 끝날 타이밍…….
“근데 그 선배랑 게임을 같이할 정도로 친해진 거야?”
“…!”
젠장.
이게 대체 몇 번째로 놀라는 건지 모르겠군.
다만 류청우는 추궁하려던 건 아니고, 단지 의아했을 뿐인 것 같다.
“아까 들어오는데 네 이어폰에서 소리가 들리더라. 일부러 들으려던 건 아니야.”
노트북이 닫히자마자 휴면상태로 돌아간 게 아니라 잠시 살아 있었나 보다. 아무리 그래도 귀 한번 더럽게 좋은 놈이다.
“혹시 고민이나 불편한 점 있어? 저기에 관해서.”
…약간 걱정도 하는 것 같고.
아마 내 반말 녹음 사태부터 여러 정황을 합산하다 보니, 무슨 지속적으로 군기 잡히고 갈굼당하는 류의 사태를 의심하는 것 같다.
후배를 괴롭히기 위해 새벽까지 게임에서 생산봇으로 써먹는다든가 하는 추측인가.
‘운동하던 놈이라 사례를 많이 접했나 보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딱히요. 싸우다 보니 편해져서 연락하는 겁니다. 사과도 충분히 받았고요.”
“음.”
“잘 써먹고 있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써먹어?”
“뭐… 한번 정리해 두니 만만하죠. 가끔 편하게 동원하는 거니까 걱정 마세요.”
“만만…….”
류청우는 어떻게 납득하는 것 같더니, 곧 그 얼굴에 퍼뜩 염려가 스쳤다.
그리고 황급히 물었다.
“문대야, 그렇다고 반대로 괴롭히는 건 아니지?”
매번 빡치는 건 나다, 새끼야.
“…그럼요.”
나는 역으로 상황을 우려하기 시작한 류청우를 안심시키기 위해 약간 시간을 썼다.
“형, 설마 제가 그럴 사람으로 보이나요.”
“아니지. 당연히 아니야. 그런데 음, 너는 워낙 똑똑하니까…… 혹시 복수하고 싶어지면 똑같은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는 걸….”
“당연한 소리 말고 씻으러 가시죠.”
류청우는 머쓱한 웃음과 함께 그제야 욕실로 들어갔고, 나는 ‘게임 끝내고 나간다고 설명하겠다’는 말과 함께 노트북을 들고 거실로 나왔다.
그리고 베란다를 등지고 노트북을 열었다. 앱을 중지하고 전원을 끌 생각이었으나… 놀랍게도 청려의 얼굴이 떴다.
놈은 뭔가를 적으며 작업 중이던 것 같다.
그런데 굳이 이 화상 전화를 굳이 안 끊고 있었다고?
“아직도 접속해 있을 줄은 몰랐는데.”
아, 결국 그걸로 돌아오나.
‘이거고 저거고 왜 이렇게 해명을 요구하는 놈들이 많아.’
나는 지근거리는 이마를 누르며 낮게 대답했다.
“소리 내서 말하긴 어려운 상황이니까, 채팅으로.”
-CHR : 이렇게?
-Apple : 그래
-CHR : ^^
-CHR : 그래서 이용하지도 못할 분석을 하는 이유는?
맡겨놨냐?
나는 잠시 회의감을 느꼈으나, 곧 이놈의 공로를 감안해 빠르게 타자기를 쳤다.
-Apple : 패턴을 완전히 분석하면 추리해 보고 싶은 일이 있어서
-CHR : 어떤 일을?
-Apple : 나는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몰라
-Apple : 그때 기억이 희미해서
이어폰에서 놈이 낮은 소리를 내는 것이 들린다.
생각에 잠겼나 싶었으나, 곧 어처구니없는 글이 떠올랐다.
-CHR : 새 신분으로 아이돌하는 게 소망 아니었어요?
-Apple : 공시생이었다니까
-Apple : 내 관련성은 데이터를 찍어서 판 것뿐이야
-CHR : 은밀히 아이돌에 대한 동경을 키웠던 게 아닐까요?
이 새끼가 진짜.
나는 일부러 감정 표현을 하지 않고 담담히 키보드를 작동시켰다.
-Apple : 너나 권희승의 사례를 보면 상당히 구체적인 소망을 가졌던 것 같은데
-Apple : 내가 그럴 것 같냐?
웃음소리가 이어폰에서부터 들렸다. 나는 무음으로 설정을 바꾸려다가 직전에야 멈췄다.
-CHR : 알았어요
그래.
-CHR : 그런데 그것만은 아닐 것 같은데요
뭐?
-CHR : 속 시원해지고 싶다고 손패를 다 보여주는 사람은 아니었던 것 같아서
-CHR : 다른 이유는?
“…….”
그래. 내게는 상태창과 미션이란 예외적인 수단이 있으니 좀 더 많은 일이 가능했다.
하지만 그걸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할 수 있는 설명이 있다.
나는 잠깐 멈췄다가, 곧 천천히 답변을 썼다.
-Apple : 이 미친 짓이 앞으로 안 일어났으면 해서
결국, 여기로 다시 귀결되는 것이다.
소원이 말이 좋아 소원이지, 사실상 상태창이 없는 상태에서 ‘상태이상’을 헤쳐 나가는 것은 미친 짓이다.
당장 있는 나도 몇 번이나 죽을 뻔하지 않았는가.
…맞은편의 놈은, 몇 번을 죽었는지도 모르겠고.
‘선택도 지식도 없다는 점에서 이미 미친 짓이야.’
내가 ‘박문대’와의 대화를 기다리며 넋 놓고 있는 대신 단서 잡자마자 행동에 나선 이유에는 분명 이것도 있을 것이다.
다만 채팅 중인 놈은 썩 동의하는 기색은 아니다. 청려는 힐끗 모니터를 쳐다보았다.
-CHR : 그러면 그냥 죽는 편이 나았다는 뜻인가요?
-Apple : 그럴 리가 있나
또 극단적이군.
-Apple : 사람이 안 죽게 하고 싶다면 다른 방법을 쓰면 되지
-Apple : 기부를 하든 캠페인을 벌이든
-Apple : 다짜고짜 과거에 보내서 클리어 못 하면 또 뒈지게 만드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데
짧은 답변이 돌아왔다.
-CHR : 지금 불행한가요?
이득 본 놈이 하는 말이라 웃기다 이건가.
나는 다시 타자기를 쳤다.
-Apple : 우린 성공한 케이스고
-Apple : 실패한 사람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지
권희승의 상태이상.
분명 ‘실패’라고 적혀만 있고, 그 효과는 적혀 있지 않았다.
‘청려는 분명 재시작까지 명시되어있었어.’
그렇다면, 보통은 ‘실패’ 시 그냥 내 상태이상처럼 뒈지고 끝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 후가 어떻게 될지는… 썩 긍정적으로 느껴지진 않는단 말이지.
-Apple : 다음 대상자를 잡아내는 건 힘들겠지
-Apple : 그래도 패턴을 분석하다 보면 막을 방법이 나올 수도 있겠던데
-Apple : 시도해 볼 만하지 않나
시공간은 통제가 가능한 요인이니까.
청려는 몇 초쯤 답변이 없었다. 놈은 마우스 위에 올린 손을 몇 번 움직일 뿐이었다.
그게 개를 쓰다듬는 것 같다는 걸 깨달을 때쯤, 답변이 돌아왔다.
나는 느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화면 속 놈은, 갑자기 실실 웃었다.
‘뭐야?’
-CHR : 그리고
-CHR : 미래 지식을 가진 사람 때문에 활동에 변수가 생기는 것도 방지할 겸?
“…….”
-Apple : 알면서 뭘 확인하냐
이어폰 너머까지 들리겠군. 나는 넌더리를 내며 이번에야말로 설정을 무음으로 돌렸다.
-CHR : 사다리 걷어차기 좋죠
-CHR : 그래요. 앞으로도 잘 협조할게요 후배님 ^^
“이 새…….”
“아직도 게임 중이야?”
그 순간, 나는 내가 숙소 거실에 앉아 있다는 걸 다시 실감했다.
“아뇨. 잠시만요.”
무음으로 돌려놓길 잘했군.
-Apple : 끈다
나는 이번에야말로 앱을 종료하고 노트북을 완전히 껐다.
류청우는 오묘한 미소와 함께 방에서 상체를 내밀고 있었다.
“게임이 많이 재밌었나 보네.”
“삭제하겠습니다.”
“아니, 그럴 것까진….”
“아뇨. 저 자신을 위해서 그렇게 하겠습니다.”
나는 이어지는 류청우의 격려를 묵묵히 참은 뒤 침대에 누웠다.
“문 닫을게.”
“네.”
‘잠이나 제대로 자자.’
나는 류청우에게 양해를 구한 뒤 10시로 알람을 맞춘 채로 스마트폰을 내려놓았다.
입으로든 타자로든 평소 안 할 소리를 많이 해서 그런지 생각보다도 피곤했다.
‘…지금 생각해 낼 만한 정황은 다 맞춰봤지.’
시간, 공간적으로 가까운 후보에게 갈아타는 시스템.
그 패턴을 알아낸 것은 성과라고 볼 일이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섬뜩한 구석이 구체적으로 드러나기도 했다.
‘시스템이란 건 미래에 자진해서 죽을 놈들을 대체 어떻게 알고 갈아타는 거지.’
아니, 애초에 죽을 시점에 과거로 돌아오게 해주는 것부터가 초월적 능력이었다.
나는 무심코 상태창을 한번 불러보았다.
그렇게 시작하는 줄글의 나열.
왜 사람 갈아타는 시스템이 떠났는데도 이건 나한테 남아있는 걸까.
패턴을 분석할수록 내 특수성이 드러난다는 게 희한한 느낌이긴 했다.
그리고 결국 내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깨닫게 되긴 한다.
‘결국 ‘박문대’와 대화를 하는 건 필요해.’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가진 공백은 거기서 찾을 수 있을 확률이 높았다.
‘그리고 이대로만 간다면 대상 하나 정도는….’
거기까지 생각했을 때, 나는 잠들었다.
간만의 꿈도 없는 깊은 잠이었다.
그리고 다음 날.
지이이잉-!
“…….”
푹 잤군.
나는 10시 알람을 끄며 화면에 뜬 메시지 알림과 팝업들을 지웠다.
그리고 그다지 신경 쓰진 않았으나, 그중에는 내가 최근 구독을 시작한 연예 뉴스레터 앱도 있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건 재난 경보나 다름없는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