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9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8화
활동기 전후의 아이돌은 더럽게 바쁘다.
이름값이 없을 때는 알리느라 바쁘고, 이름값이 생겼을 때는 본전 뽑느라 바쁘지.
그런 의미에서 데뷔 직전 신인, 히트곡 낸 4년 차, 스타디움 투어 중인 10년 차가 급하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다.
[그래서 화상통화예요? 대박.]
“그래.”
나는 노트북에 떠 있는 분할 화면을 보며 미간을 눌렀다.
왼쪽 칸은 비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골드 2가 흥분한 얼굴로 헤드셋을 쓰고 앉아 있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세 명이 다 되는 때를 고르니 이 시간대만 남더라고.
“방음 되는 곳에 있는 건 맞겠지.”
[네. 저 지금 숙소 드레스룸이고 문도 잠갔습니다! 근데 들켜도 다들 드라마 이야기하는 줄 알지 않을까요?]
“…….”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래도 조심해라.”
[넵!]
11개월만 돌아온 데다가 주식까지 성공한 덕인지 이놈은 지나치게 가볍다.
머리는 좀 쓸 줄 아는 것 같은데, 태도가… 뭐, 본인 인생이니 알아서 하겠지.
[저희 팀 이름 나왔는데 혹시 아세요? 스페이서!]
“그래, 축하한다.”
골드 2, 권희승은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좀 한 후에야 심호흡하며 본론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저 좀 두근거려요. 미래인 모임……. 완전 넷플러스에 나올 상황인데요.]
그러냐.
[그리고 진짜… 와, 그 선배님께서도 오실 줄은 상상도 못 했어요.]
그래, 이 지점에 대해서도 좀 설명할 부분이 있겠군.
나는 화면의 친구 창에서 ‘online’으로 불이 들어온 이니셜을 확인했다.
-CHR
누가 봐도 알겠지만, 이놈은 청려다.
그렇다. 나는 이 새끼들을 따로따로 격리하고 익명을 지킨 채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오픈하고 삼자대면을 준비했다.
이유는 하나다.
[그러고 보니까 저도 나름대로 이게 무슨 상황인지 정보를 수집해 본 적은 있거든요.]
골드 2 이 새끼는… 늦어도 몇 개월 내로 들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 꼴을 봐라.
[인터넷에 ‘미래에서 돌아온 사람들’ 같은 카페가 있더라구요? 근데 알고 보니 그냥 그런 척하는… 무슨 세계관이래요. 와, 진짜 허탈하던데요.]
“…….”
‘연말쯤에는 청려에게 탈탈 털리고 있었겠군.’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이미 이놈의 정체를 알고 본인을 이용해 먹었단 걸 청려가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뒷감당할 자신이 있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못 할 건 없다.
그러나 워낙 뻔한 데다 귀찮은 미래다. 자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판에 터뜨리는 편이 낫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서 ‘CHR’, 청려를 화상통화에 참여시켰다.
곧 화면에 호텔 방을 배경으로 놈의 얼굴이 떴다.
‘아르헨티나’라더니 낮이군. 곧 자신의 화면을 체크 했는지, 청려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헉,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이렇게 만나 봬서 정말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놈이 웃는 얼굴로 힐끗 골드 2가 있을 법한 화면 구석을 쳐다보았다. 무슨 감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눈깔이군.
‘허튼 생각 하진 않겠지.’
나는 놈에게 정보를 알려줬을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번 1위가 또 과거로 돌아온 사람이다?
놈은 흥분하거나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심드렁하게 헛소리나 했을 뿐이다.
-재밌네요. 후배님 때부터 무슨 전통이라도 생긴 건가?
-농담이라도 그만해라.
-그리고 11개월… 음, 안됐다고 해야 하나.
-안됐다고?
-하하. 최소한 2년 이상은 차이가 나야 뭐라도 이득을 보지 않겠어요? 음, 그 팀이 잘되긴 어렵겠는데. 딱히 뽑을 정보도 없을 것 같고…. 어디다 쓰게요?
무게 달아보니 경쟁상대나 거래상대로도 값어치가 안 나왔다는 설명이 딱 맞을 것 같군.
어쨌든, 나는 솔직하게 목적을 밝혔다.
-미래 정보가 필요한 게 아니야.
-그럼?
-우리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가설을 세워보려는 거지.
-…….
수화기 너머의 놈은 꽤 오래 답이 없다가, 짧게 대답했을 뿐이다.
-그래요.
그리고 지금 이 화상통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다들 인사했으면 대화 시작하겠습니다.”
[네네!]
[하하, 편하게 말해요.]
벌써 피곤하다.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시간대부터 정리할까 하는데요.”
[…? 시간대요?]
[아, 순서.]
청려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시간이 꼬이진 않을 텐데. 보자… 일단, 후배님은 4년 전 12월부터 시작했다고 했죠.]
맞다. 그 낡은 모텔에서 박문대의 지갑과 함께 깨어난 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쪽은?]
[네넵, 저는 눈 떠보니 작년 10월 말이었습니다!]
[그렇다네요. 여전히 한 시점에 미래 지식을 아는 건 하나뿐으로 딱 떨어지긴 하는데?]
“…….”
나는 엑셀 위에 선을 긋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물었다.
“선배님께서 돌아오시게 된 미래 시점은?”
네가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전광판을 보던 그 겨울밤 말이다.
청려는 희미하게 웃었다.
[후배님이 깨어난 날로부터 며칠 전.]
“…알겠습니다.”
패턴이 이상한데.
기억을 기준으로 한다면, 내 미래 지식은 작년 여름 7월까지였다.
‘공시 탈락을 확인하고 술을 처마신 뒤 잠든 날.’
하지만 골드 2가 미래에서 돌아와서 깨어난 건 작년 겨울 10월이다.
7월과 10월.
‘3달이나 떠.’
거의 즉각적으로 연결된 청려와 ‘박문대’의 시간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마지막 ‘진실 확인’에서 봤던 그 낯선 기억이… 진실이라고 친다면, 도리어 기간이 겹친다.
내가 공시생을 그만두고 회사에 취직하는 건 적어도 1년 이상 치의 기억이었으니까.
‘그럼 벌써 골드 2가 미래를 안답시고 등장해선 안 되는 거지.’
둘 다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게 깔끔히 맞물리려면….
“…!”
잠깐. 가정 자체를 바꿔보자.
그래. ‘내가 아는 미래 시점’이 이 이상한 바톤 터치의 기준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다음으로 그럴싸한 기준이 있지 않은가.
“…선배님.”
[네?]
나는 조용히 물었다.
“…마지막 미션을 클리어했다는 걸 깨달은 건 언제입니까.”
[…….]
상태이상 클리어 날짜.
[미션? 저희 무슨 미션 있어요?]
골드 2의 발언은 없던 일처럼 무시한 채, 청려는 짧게 대답했다.
[11월 30일.]
그렇군.
그리고 나는….
작년 추석 연휴였지. 10월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떴던 꽃가루 터지는 홀로그램을.
[대성공!]
이용자 : 박문대(류건우)는 모든 상태이상 제거에 성공했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좀 알겠다.
“이거였나.”
[새로운 생각이라도?]
“기존 사람이 미션을 전부 클리어하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는 것 같은데요.”
나는 선을 지우고 다시 그려서 통화화면에 띄웠다.
[4년 전 /
청려 11월 말 (미션 클리어)
?박문대 12월 중순 (시작)]
[1년 전 /
박문대 10월 중순 (미션 클리어)
?권희승 10월 말 (시작)]
깔끔하게 맞는다.
[…….]
청려는 표정을 지우고 시선을 올렸다. 가늠해 보는 것처럼.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 생각해도 되긴 하겠네요. 그런데, 그게 마음에 걸리는 이유는?]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가정해 보죠.”
이 중에 나만이 직관적으로 실감한 정황이 있다.
나는 상태창을 통해 이놈이 미션이라고 부르는 ‘상태이상’의 발생과 소멸, 그리고 각종 특수 능력들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사람을 소망에 맞춰서 과거에서 깨어나게 해준 뒤, 미션까지 맞춤형으로 만들어주는 뭔가가요.”
내게 상태창만 남기고 사라진 그 운영체계.
‘시스템.’
“그게 딱 하나뿐이고. 미션이 완료되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갈아탄다고 보면 이야기가 맞는 것 같은데요.”
[흐음.]
그러니까 어쩌면, 이 과거 귀환의 연쇄란 ‘시스템의 유무’가 기준이다.
작년 10월 연휴 때, 상태이상을 다 끝낸 내게서 떠난 시스템이 저 골드 2의 몸에 들어갔다고 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젠 새롭게 붙은 저 몸의 소원을 들어주고, ‘상태이상’을 준 거지.
[저기… 죄송한데 저한테 미션이 대체 뭔지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저 좀 무서운데요!]
지금 우는소리 하는 저놈에게 말이다.
“과거로 오는 대가로 해야 하는 일 같은 건데.”
[예??]
청려는 무슨 전단지 쪼가리 따위를 보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해야 할 것 같은 일을 떠올려 보죠.]
[어, 음…. 무사히 데뷔하는 거요?]
[계획 말고, 비전의 의미에서.]
[비, 비전? 어… 우리 멤버들이 다 같이 으쌰으쌰 잘해서 오래 가는 거죠!]
[음, 그래요? 이 상황에서 1위보단 나은 것 같네요. 힘내요.]
[예?]
[흠? 이 정도면 덕담 아닌가.]
이 미친놈이.
나는 기겁하는 골드 2에게 적당한 설명을 해준 뒤, 다시 대화를 돌려놓았다.
다행히 골드 2의 대가리가 쓸 만한 건 맞는지 빠르게 이해는 하더라.
[어어어, 그러면… 뭔진 모르겠지만 그, 사람을 과거로 보내주는 뭔가가 저희한테 왔다 갔다 하는 거네요?]
“그렇지.”
굳이 부르자면… 숙주를 잡는 형태처럼 느껴진다.
내가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이 정신적인 기생체가, 소원을 들어주면서 몸을 갈아타는 거지.
그러나 무슨 방식으로 갈아타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굳이 이 인원을 선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골드 2가 약간 기대에 찬 얼굴로 개를 들었다.
[아, 혹시 누군가를 구해주고 명예롭게 그 목숨을 잃을 뻔한… 그런 건 아닐까요? 자격이 필요한 거?]
청려가 빙긋 웃었다.
[색다른 발상이네요.]
“…….”
절대 아니겠군.
내 생각에는… 자기가 자진해서 죽을 의사가 있고, 과거로 돌아가서 이루고 싶을 만한 소원이 있는 놈 같은데.
‘그런 놈이 한둘도 아닐 텐데.’
솔직히, 마음만 먹는다면 더 빨리 갈아탈 사람을 하루에 수백, 수천 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넘친다.
직업이나 연령대…도 치우치는 면이 있긴 하지만, 딱 갈라 떨어진다기엔 애매하다.
그걸로 충분한가?
“…….”
몇 가지 의미 없는 제시와 고려가 머릿속에서 지나간 후.
청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보자…. 지금까지 시간을 고려했으니까. 이번에는 축을 반대로 해보는 게 어때요.]
“반대로?”
[공간.]
“…!”
[마음에 드나 보네요.]
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쉽게 떠올릴 만한 발상은 아니었다만, 좀 더 가공하면 확실히 쓸 만한 생각이었다.
시스템이 ‘이동’한다는 개념을 더하면….
“거리로 하죠.”
나는 조용히 물었다.
초점은 시스템이 넘어간 날짜.
“11일 날, 미션 클리어를 깨달았을 때 선배님의 위치는?”
[차 안. 아마도… 서부간선도로.]
나는 바로 지도 앱을 켰다.
“…!”
[후배님이 미래 지식을 가지고 깨어난 장소는?]
“…구로동.”
지도 앱에서, 구로동 바로 옆으로 서부간선도로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근처입니다.”
희열이 짧게 지나간다.
화면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아, 이거 흥미롭네. 그쪽이 미래 지식을 가지고 깨어난 위치는?]
[저, 저 한강공원이요! 광나루!]
골드 2가 시스템을 가지게 된 장소는 광나루 한강공원.
그리고 내가 상태이상을 공식적으로 클리어하고 시스템이 사라진 장소가 바로 배세진의 집.
“…천호동. 근처입니다.”
[헐!!]
배세진의 집은 천호동에 있다.
한강이 뷰로 보이는.
‘X발.’
딱 맞아떨어진다.
‘시간과 거리.’
결국 시스템은, 후보 중 가장 빨리 들어갈 수 있는 놈을 고르던 것이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물었다.
[어때요? 쓸 만한 추론인가.]
나는 담담히 선언했다.
“예.”
* * *
그렇게 삼자대면은 소기의 성과와 함께 끝났다.
‘이제 시스템의 후보 선출 방법만 알아내면 대충 윤곽이 보이는 건가.’
좀 더 정리해 보면 더 분명해지겠지만, 솔직히 기대 이상이다.
[헐 벌써! 죄송합니다!]
그리고 한창 몰입하던 골드 2는 시간을 확인한 뒤 새벽 스케줄에 기겁하며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나도 몇 시간은 자두기 위해 통화를 끊을 참이었다.
“이쯤 할까.”
그러나 화면의 청려는 끌 준비를 하는 대신, 화면을 두드리며 또 입을 열었다. 본인은 낮이라 쌩쌩하다 이건가.
[이해가 안 되는데.]
“뭐가.”
놈은 단조롭게 말하며 책상을 두드렸다.
툭툭.
[이 대화를 급하게 한 이유를 모르겠거든요. 이건 추측하고 이론을 정립해도 이용할 수 있는 종류가 아니지 않나?]
“…….”
[후배님도 당연히 알았을 텐데. 이 패턴을 분석해도 다음 사람을 알아낼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미래에 그 사람이 어디서 죽는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청려는 빙긋 웃었다.
[아니면… 따로 시도할 방법이라도 있나?]
망할.
나는 한숨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
“문대야?”
룸메이트의 목소리였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8화
활동기 전후의 아이돌은 더럽게 바쁘다.
이름값이 없을 때는 알리느라 바쁘고, 이름값이 생겼을 때는 본전 뽑느라 바쁘지.
그런 의미에서 데뷔 직전 신인, 히트곡 낸 4년 차, 스타디움 투어 중인 10년 차가 급하게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상당히 무모한 도전이다.
“그래.”
나는 노트북에 떠 있는 분할 화면을 보며 미간을 눌렀다.
왼쪽 칸은 비어 있다. 그리고 오른쪽에는 골드 2가 흥분한 얼굴로 헤드셋을 쓰고 앉아 있다.
지금 시간은 새벽 2시.
세 명이 다 되는 때를 고르니 이 시간대만 남더라고.
“방음 되는 곳에 있는 건 맞겠지.”
“…….”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래도 조심해라.”
11개월만 돌아온 데다가 주식까지 성공한 덕인지 이놈은 지나치게 가볍다.
머리는 좀 쓸 줄 아는 것 같은데, 태도가… 뭐, 본인 인생이니 알아서 하겠지.
“그래, 축하한다.”
골드 2, 권희승은 신변잡기식 이야기를 좀 한 후에야 심호흡하며 본론과 관련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그러냐.
그래, 이 지점에 대해서도 좀 설명할 부분이 있겠군.
나는 화면의 친구 창에서 ‘online’으로 불이 들어온 이니셜을 확인했다.
-CHR
누가 봐도 알겠지만, 이놈은 청려다.
그렇다. 나는 이 새끼들을 따로따로 격리하고 익명을 지킨 채로 정보를 수집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오픈하고 삼자대면을 준비했다.
이유는 하나다.
골드 2 이 새끼는… 늦어도 몇 개월 내로 들켰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 꼴을 봐라.
“…….”
‘연말쯤에는 청려에게 탈탈 털리고 있었겠군.’
장담할 수 있다.
그리고 내가 이미 이놈의 정체를 알고 본인을 이용해 먹었단 걸 청려가 뒤늦게 알아차렸을 때, 뒷감당할 자신이 있나?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있지.’
못 할 건 없다.
그러나 워낙 뻔한 데다 귀찮은 미래다. 자처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차라리 내가 제어할 수 있는 판에 터뜨리는 편이 낫다.
나는 마우스를 움직여서 ‘CHR’, 청려를 화상통화에 참여시켰다.
곧 화면에 호텔 방을 배경으로 놈의 얼굴이 떴다.
‘아르헨티나’라더니 낮이군. 곧 자신의 화면을 체크 했는지, 청려가 입을 열었다.
놈이 웃는 얼굴로 힐끗 골드 2가 있을 법한 화면 구석을 쳐다보았다. 무슨 감정이라도 하는 것 같은 눈깔이군.
‘허튼 생각 하진 않겠지.’
나는 놈에게 정보를 알려줬을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그러니까… 이번 1위가 또 과거로 돌아온 사람이다?
놈은 흥분하거나 과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냥 심드렁하게 헛소리나 했을 뿐이다.
-재밌네요. 후배님 때부터 무슨 전통이라도 생긴 건가?
-농담이라도 그만해라.
-그리고 11개월… 음, 안됐다고 해야 하나.
-안됐다고?
-하하. 최소한 2년 이상은 차이가 나야 뭐라도 이득을 보지 않겠어요? 음, 그 팀이 잘되긴 어렵겠는데. 딱히 뽑을 정보도 없을 것 같고…. 어디다 쓰게요?
무게 달아보니 경쟁상대나 거래상대로도 값어치가 안 나왔다는 설명이 딱 맞을 것 같군.
어쨌든, 나는 솔직하게 목적을 밝혔다.
-미래 정보가 필요한 게 아니야.
-그럼?
-우리가 왜 이 짓을 하고 있는지 가설을 세워보려는 거지.
-…….
수화기 너머의 놈은 꽤 오래 답이 없다가, 짧게 대답했을 뿐이다.
-그래요.
그리고 지금 이 화상통화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다들 인사했으면 대화 시작하겠습니다.”
벌써 피곤하다. 나는 최대한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입을 열었다.
“일단… 시간대부터 정리할까 하는데요.”
청려가 턱을 괴고 중얼거렸다.
맞다. 그 낡은 모텔에서 박문대의 지갑과 함께 깨어난 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
나는 엑셀 위에 선을 긋다가, 잠시 멈칫했다. 그리고 물었다.
“선배님께서 돌아오시게 된 미래 시점은?”
네가 건물 옥상에서 담배를 피우며 전광판을 보던 그 겨울밤 말이다.
청려는 희미하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패턴이 이상한데.
기억을 기준으로 한다면, 내 미래 지식은 작년 여름 7월까지였다.
‘공시 탈락을 확인하고 술을 처마신 뒤 잠든 날.’
하지만 골드 2가 미래에서 돌아와서 깨어난 건 작년 겨울 10월이다.
7월과 10월.
‘3달이나 떠.’
거의 즉각적으로 연결된 청려와 ‘박문대’의 시간과는 차이가 있다.
그렇다고 내가 마지막 ‘진실 확인’에서 봤던 그 낯선 기억이… 진실이라고 친다면, 도리어 기간이 겹친다.
내가 공시생을 그만두고 회사에 취직하는 건 적어도 1년 이상 치의 기억이었으니까.
‘그럼 벌써 골드 2가 미래를 안답시고 등장해선 안 되는 거지.’
둘 다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이게 깔끔히 맞물리려면….
“…!”
잠깐. 가정 자체를 바꿔보자.
그래. ‘내가 아는 미래 시점’이 이 이상한 바톤 터치의 기준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다음으로 그럴싸한 기준이 있지 않은가.
“…선배님.”
나는 조용히 물었다.
“…마지막 미션을 클리어했다는 걸 깨달은 건 언제입니까.”
상태이상 클리어 날짜.
골드 2의 발언은 없던 일처럼 무시한 채, 청려는 짧게 대답했다.
그렇군.
그리고 나는….
작년 추석 연휴였지. 10월이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 떴던 꽃가루 터지는 홀로그램을.
이용자 : 박문대(류건우)는 모든 상태이상 제거에 성공했습니다!
나는 피식 웃었다. 이제 좀 알겠다.
“이거였나.”
“기존 사람이 미션을 전부 클리어하면, 새로운 사람이 나타나는 것 같은데요.”
나는 선을 지우고 다시 그려서 통화화면에 띄웠다.
청려 11월 말 (미션 클리어)
?박문대 12월 중순 (시작)]
[1년 전 /
박문대 10월 중순 (미션 클리어)
?권희승 10월 말 (시작)]
깔끔하게 맞는다.
청려는 표정을 지우고 시선을 올렸다. 가늠해 보는 것처럼.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에… 뭔가가 있다고 가정해 보죠.”
이 중에 나만이 직관적으로 실감한 정황이 있다.
나는 상태창을 통해 이놈이 미션이라고 부르는 ‘상태이상’의 발생과 소멸, 그리고 각종 특수 능력들을 눈으로 봤기 때문이다.
“사람을 소망에 맞춰서 과거에서 깨어나게 해준 뒤, 미션까지 맞춤형으로 만들어주는 뭔가가요.”
내게 상태창만 남기고 사라진 그 운영체계.
‘시스템.’
“그게 딱 하나뿐이고. 미션이 완료되는 순간 다른 사람으로 갈아탄다고 보면 이야기가 맞는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어쩌면, 이 과거 귀환의 연쇄란 ‘시스템의 유무’가 기준이다.
작년 10월 연휴 때, 상태이상을 다 끝낸 내게서 떠난 시스템이 저 골드 2의 몸에 들어갔다고 보면 어떨까.
그리고 이젠 새롭게 붙은 저 몸의 소원을 들어주고, ‘상태이상’을 준 거지.
지금 우는소리 하는 저놈에게 말이다.
“과거로 오는 대가로 해야 하는 일 같은 건데.”
청려는 무슨 전단지 쪼가리 따위를 보는 눈으로 입을 열었다.
이 미친놈이.
나는 기겁하는 골드 2에게 적당한 설명을 해준 뒤, 다시 대화를 돌려놓았다.
다행히 골드 2의 대가리가 쓸 만한 건 맞는지 빠르게 이해는 하더라.
“그렇지.”
굳이 부르자면… 숙주를 잡는 형태처럼 느껴진다.
내가 ‘시스템’이라고 부르는 이 정신적인 기생체가, 소원을 들어주면서 몸을 갈아타는 거지.
그러나 무슨 방식으로 갈아타는 건지는 여전히 모르겠다.
“굳이 이 인원을 선정한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
골드 2가 약간 기대에 찬 얼굴로 개를 들었다.
청려가 빙긋 웃었다.
“…….”
절대 아니겠군.
내 생각에는… 자기가 자진해서 죽을 의사가 있고, 과거로 돌아가서 이루고 싶을 만한 소원이 있는 놈 같은데.
‘그런 놈이 한둘도 아닐 텐데.’
솔직히, 마음만 먹는다면 더 빨리 갈아탈 사람을 하루에 수백, 수천 명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넘친다.
직업이나 연령대…도 치우치는 면이 있긴 하지만, 딱 갈라 떨어진다기엔 애매하다.
그걸로 충분한가?
“…….”
몇 가지 의미 없는 제시와 고려가 머릿속에서 지나간 후.
청려가 다시 입을 열었다.
“반대로?”
“…!”
이 초자연적인 현상에… 쉽게 떠올릴 만한 발상은 아니었다만, 좀 더 가공하면 확실히 쓸 만한 생각이었다.
시스템이 ‘이동’한다는 개념을 더하면….
“거리로 하죠.”
나는 조용히 물었다.
초점은 시스템이 넘어간 날짜.
“11일 날, 미션 클리어를 깨달았을 때 선배님의 위치는?”
나는 바로 지도 앱을 켰다.
“…!”
“…구로동.”
지도 앱에서, 구로동 바로 옆으로 서부간선도로가 지나가는 것이 보인다.
“근처입니다.”
희열이 짧게 지나간다.
화면 너머에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골드 2가 시스템을 가지게 된 장소는 광나루 한강공원.
그리고 내가 상태이상을 공식적으로 클리어하고 시스템이 사라진 장소가 바로 배세진의 집.
“…천호동. 근처입니다.”
배세진의 집은 천호동에 있다.
한강이 뷰로 보이는.
‘X발.’
딱 맞아떨어진다.
‘시간과 거리.’
결국 시스템은, 후보 중 가장 빨리 들어갈 수 있는 놈을 고르던 것이다.
웃음기 섞인 목소리가 물었다.
나는 담담히 선언했다.
“예.”
* * *
그렇게 삼자대면은 소기의 성과와 함께 끝났다.
‘이제 시스템의 후보 선출 방법만 알아내면 대충 윤곽이 보이는 건가.’
좀 더 정리해 보면 더 분명해지겠지만, 솔직히 기대 이상이다.
그리고 한창 몰입하던 골드 2는 시간을 확인한 뒤 새벽 스케줄에 기겁하며 먼저 통화를 종료했다.
나도 몇 시간은 자두기 위해 통화를 끊을 참이었다.
“이쯤 할까.”
그러나 화면의 청려는 끌 준비를 하는 대신, 화면을 두드리며 또 입을 열었다. 본인은 낮이라 쌩쌩하다 이건가.
“뭐가.”
놈은 단조롭게 말하며 책상을 두드렸다.
툭툭.
“…….”
청려는 빙긋 웃었다.
망할.
나는 한숨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그때,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
“…!”
“문대야?”
룸메이트의 목소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