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9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5화
소속사 단체 콘서트.
보통 이름 있는 남녀 아이돌 그룹을 적어도 각각 한 팀 이상, 그리고 유망주 신인까지 보유한 회사가 진행할 만한 행사다.
그런 의미에서 출신 그룹 세 팀을 보유한 이 소속사가 최소 조건은 맞추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착각이다.
나는 귀갓길, 챙겨온 기획서를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이 급조한 소속사엔 고유한 컬러가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지 않나.
흔히 말하는 ‘그 소속사 특유의 느낌’ 말이다.
‘팀 간에 뭐라도 공통 수요가 있어야 관객 만족도가 있지.’
그냥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그룹이나 넙죽넙죽 받아온 소속사가 무슨 배짱으로 자체 콘서트까지 기획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목적은 대충 짐작이 간다만.
“음~ 새로 데뷔하는 애들 띄워주려는 것 같은데?”
큰세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봐봐, 그 친구들한테 우리 노래 몇 곡 커버하라고 구성까지 줬네~ 우리 시즌 곡도 시안에 있고.”
“으음.”
그리고 주방에서 물 마시던 배세진이 약간 긴장한 얼굴로 말을 얹는다.
“…이게 세대 교체 시도 아니야?”
“세대 교체요?”
“왜, 그, 우리는 계약 기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팬들이 신인 그룹을 좋아하게 유도하는 거 있잖아!”
“그런…! 벌써 이 그룹의 잠재력을 다 소모했다고 오판하시는 겁니까?”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김래빈이 기겁한다. 배세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나 참.
‘어디 위튜브에서라도 본 건가.’
KPOP 관련 채널을 그렇게 많이 보더니, 어설픈 지식이 좀 생긴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고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요. 그냥 그 그룹에 화제성 좀 붙이려는 것 같은데.”
“그, 그래?”
“예. 아무래도 전 시즌이 우리 시즌만큼 잘되진 못했으니까, 득 좀 보려는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겨우 우호 관계를 빌드업해 왔는데 여기서 테스타를 포기하긴 회사 입장에서 너무 아깝지.
‘분명 우리가 재계약할 거라고 생각 중일 텐데.’
테스타 체급에 붙는 이득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정도로 그칠 것이다.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기엔 큰 메리트가 없어.’
큰세진도 흔쾌히 동의했다.
“나도 동의! 그래도 경각심을 가지는 건 좋죠~ 음, 형님 말씀도 좋은 방향이신 것 같아요.”
“…그래.”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배세진과 김래빈은 순식간에 음모론을 폐기했다. 그리고 차유진이 다짜고짜 끼어든다.
“그래서 우리 그거 언제 해요? 빨리해요?”
“보자… 25일 뒤인데?”
류청우가 기획서의 ‘8월 대관 완료’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다른 부분을 더 주목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군.’
잠실 실내체육관. 만천 명 규모다.
최소한 ‘테스타+미리내+신인? 스타디움 가자!’ 같은 멍청한 팬 머릿수 계산으로 수요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이 소속사 대가리에게 기대할 수 없는 업계에 대한 통찰력이다.
‘본사가 개입했네.’
T1 입김이 들어간 것 같다.
애초에 이 콘서트 자체가 Tnet에서 방영되는 걸 보니, T1에서 밀어붙여서 소속사가 급하게 진행시키는 것 같다.
‘TaKon 반응이 좋아서 비슷하게 한탕 더 하고 싶은가 보군.’
팬들에게 욕 좀 먹을 것 같다만… 뭐, 테스타가 손해 보는 건 거의 없다.
‘콘서트 무대 일부가 전파를 타면 홍보 효과도 있을 거고.’
계약 후반부라 차후 문제없으려면 지금은 T1이랑 마찰 없이 갈 타이밍이니, 이 정도는 보이콧 없이 쭉 받아줘도 될 것 같다.
“총 다섯 곡만 준비하면 되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기획서를 툭 쳤다.
‘화제성 좀 가져가라지 뭐.’
단, 그게 어떤 의미의 화제성일지는 알아서 책임져야지.
같은 오디션 시리즈 출신,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아이돌 그룹 둘이… 심지어 같은 곡을?
미친 듯이 비교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별 부담이 없다.
“음, 3주 반 정도구나. 촉박하네.”
“지난번 콘서트 테마랑 비슷하게 가니까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
“따로 편곡 작업이 필요할지 세부 사항에 대하여 문의드려야겠습니다.”
나는 지금 열심히 떠들고 있는 놈 중 하나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이름 : 김래빈]
랩 : A+ (S+)
(가창 : C+)
춤 : B+ (A+)
외모 : A- (A+)
끼 : A (S)
특성 : 마에스트로(S)
이 그룹에서 아무나 잡아도 대충 저 정도 나오는데 말이다.
심지어 때와 비교해서 적어도 3포인트 이상 스텟이 오른 놈들이 수두룩하다.
‘그 와중에 김래빈은 특성 등급까지 올랐고.’
앨범마다 단기 작업에 자진해서 갈려 나가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약한 건 배세진 정도였는데, 이것도 요새는 이상한 요령을 익힌 것 같더라.
-이거, 가사 따라 통째로 움직임을 외우면 되는 거였어…!
-…??
댄스 기본 루틴이 익숙해진 놈은 이런 꼼수를 통해, 리듬 탄 춤이 아니라 움직임 재현에 집중해 군무를 따며 훨씬 그럴싸해졌다.
‘그게 더 어렵지 않나?’
뭐, 본인은 더 편하다니 됐고.
어쨌든 중요한 건 테스타를 무대로 흠잡는 의견은 이제 인터넷상에서도 거의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커버 난이도 극상.’
이미 신인상 당시 곡을 바꿔 퍼포먼스했던 오닉스의 사례부터 인상이 박혔는지, 아예 인터넷에서 이미지로 결론을 내려놨다.
게다가 이번엔 저쪽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커버한다.
기본 스텟에 연습량까지 차이가 나는 순간 이미 결과는 고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이런 걸로 팬덤 유출을 걱정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후배들 대하는 태도만 신경 쓰면 그만이야.’
도리어 걱정되는 건 구색 맞추기용으로 넣은 이 무대다.
마침 류청우가 손으로 그것을 짚었다.
– 합동 무대 (미정) / 팀당 2인
“그리고 다섯 중에 합동 무대가 하나 있네.”
“예.”
우리 중 일부 멤버가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합동 무대다.
엔딩에 다 같이 국민가요를 부르는 촌스러운 구성을 제외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테스타와 후배가 함께 오르는 무대.
‘누가 전면에 나오든 잡음이 나올 것 같군.’
그때 차유진이 또 손을 번쩍 든다.
“저 할래요! 합동 무대 저 해요!”
“하하.”
그럴 줄 알았다.
멤버들은 차유진의 적극적 지원에도 아무도 확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분위기 타서 오케이했다간 진짜 차유진이 하게 될 테니까.
‘차유진을 내보내는 건 좀 가혹할 것 같기도 하지.’
우리야 상관없는데, 여론적 문제로 말이다.
친선 경기에 전략 병기 내보내는 꼴이다.
이건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구석이 있으니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첫 번째 단체 회의 및 연습 일정에서 이 걱정은 할 만한 것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새 세트리스트입니다.”
정각보다 일찍 도착해 받은 종이에선 합동 무대 파트가 변해 있었다.
– 합동 무대 (미정) / 테스타 2인, 미리내 2인
‘이 새끼들 빠졌네.’
이번 데뷔조가 합동 무대 명단에서 빠졌다.
사유는 ‘데뷔 준비도 해야 하는데 새롭게 준비할 무대가 너무 과중하다’는 애걸복걸.
“여러분만 괜찮으면, 이 무대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다음 무대로 연결돼서 들어오는 스토리 전개 형식으로 이 친구들 자리를 마련해 주려고요.”
디렉터의 설명은 그럴싸했으나, 별개로 신인 그룹의 선택이라고 보긴 상당히 전략적인 판단이다.
변명은 그럴싸했다만… 타이밍이 절묘한데.
“흠.”
…상당히, 흥미로운 정황이다.
일단 넘기고, 당장은 당장 닥친 일이나 처리해야겠지만.
나는 디렉터가 다른 호출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번 합동 무대에 대한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미리내가 전력 질주한 꼴로 도착한 건 얼마 후였다.
쾅!
“안녕하십니까!”
늦진 않았다만, 이쪽도 컴백 준비로 바쁜 것 같군.
얼마간의 인사와 준비, 스탭들이 움직인 뒤, 류청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사전 기획서에서 좀 변동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희끼리 합동무대를 하게 됐다네요.”
“아아 넵.”
2위, 그러니까… 박민하는 허허로운 얼굴로 말했다.
“기획서… 저희는 그런 건 받지 못했습니다, 선배님….”
“…….”
짬이 덜 찬 그룹의 숙명으로, 미리내는 그냥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참여하게 된 것 같다.
‘아니, 짬 문제가 아니라 테스타가 특수한 경우인가.’
사건이 겹치며 주도권을 잡았다만, 보통은 4년 차라도 한참 회사 말 잘 들을 타이밍이지.
‘음.’
큰세진이 얼른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띄웠다.
“에이, 그 초기 기획서가 중요한가요~ 지금 저희가 멋진 무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잘 부탁드려요~”
“…! 옙.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차유진이 해맑게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민다.
“Yeees! 저도 같이 무대 잘 부탁해….”
“잠깐.”
나는 얼굴색을 바꾸지 않고 태연히 차유진의 어깨를 당겼다.
“유진아, ‘같이’는 아니지.”
“…??”
“오우, 맞아요…. 저 무대 같이 안 해요.”
차유진은 다소 시무룩해져서 손을 도로 거뒀다.
그렇다. 방금 긴급회의로 차유진은 합동 무대에서 빼냈다.
-What? 저 잘해요!
-그래, 잘하는 건 알지. 그러니까 우리 콘서트에서 더 큰 무대 하자.
-더 큰 거 뭐예요?
-그러니까…….
…수많은 당근을 썼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까지 한 건 처음에 고려했던 것과 다른 이유다.
‘이놈은 너무 붙임성이 좋아서 안 돼.’
동시에 거리낌이 없다. 무대에 어울리는 그림을 거침없이 퍼포먼스할 테니, 까닥하면 팬들이 편하게 용납 가능한 선 넘는다.
‘1대1 남녀 아이돌 그룹 퍼포먼스는 고려할 게 많아서 그러면 곤란해.’
이런 상황에선 무조건 이런 부분까지 머리 쓸 줄 아는 놈들만 하는 게 제일 안전하다.
그러니 정답은 하나다.
“그… 러시군요!”
“네네~”
큰세진이 웃으며 내게 어깨동무했다.
“합동 무대는 저랑 문대, 이렇게 같이할 것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됐다.
이렇게 하면 최악의 경우라도 안 어울려서 웃긴단 소리만 듣겠지.
“오 그렇구나! 저 의견 막 적극적으로 내도 괜찮을까요?? 저희 멋진 거 했으면 좋겠는데요!”
“율기야아악.”
“어, 왜? 나 좀 이상해??”
미리내 1위의 발언에 주변 멤버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숙이며 매달린다.
2위는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는 저랑 율기 언니입니다.”
1, 2위가 나란히 출전했군.
기세에서 안 밀리겠다는 뜻이고… 아마 저 2위가 만든 인선이겠지.
‘테스타가 혼성이든 나발이든 일단 이기려 들 줄 짐작했나.’
우리가 다 오디션 출신이라 그런가. 이것도 또 독특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오디션 프로그램 팀전처럼 서로 견제할 수도 있겠는데, 그럼 무조건 진행 과정에서 잡음이 나오겠지.
“와, 든든하네요~ 저희 열심히 해봅시다!”
게다가 평소라면 ‘구호를 만들자, 단체방을 파자’ 같은 소리를 했을 놈도 그냥 일만 하자는 태도니 대충 어떻게 돌아갈지 보였다.
‘여기서 퀄리티 괜찮은 놈을 뽑자면…….’
그럼 이것뿐인가.
나는 구상한 무대 컨셉 후보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제외했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회의 흐름이 흘러갈 수 있도록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몇 번 돌렸다.
* * *
디렉터가 돌아오고 몇 가지 중요한 공지와 토의가 전부 오간 후.
합동 무대를 준비할 구성원은 따로 추가 회의가 들어갔다.
일단 차후에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부터 논하자면… 무대장치군.
‘역시.’
게다가 각 그룹의 기존 무대들에 이 합동 무대를 추가하는 만큼, 앞뒤 무대에서 쓰는 장치들이 이미 선점되어 있다.
“감독님, 기왕이면 이렇게 중복은 아닌 편이 좋다고 하셨죠~?”
“예예.”
음.
그럼 일단 와이어 탈락. 거기에 꽃가루, 리프트도 뒷무대에서 쓰니 제외.
“물도 힘들겠네요. 아무래도 다다음 무대가 저희 타이틀인데 너무 직접적으로 비교되면 좀 그렇겠죠?”
“네넵.”
큰세진이 자연스럽게 테스타가 본 무대에서 쓰려던 것들을 죽죽 지워 나간다. 잘하네.
다만 미리내 1위는 좀 답답한 것 같았다.
“저희 보통 하는 것처럼 곡부터 고르는 건 어떨까요? 지금 너무 안 되는 것만 말하게 되니까 좀 더 기운 나게!”
“어, 언니!”
“그건 그렇죠.”
마침 잘 말했다.
“뭘 하고 싶으신가요.”
“아! 저는 우선 힙합 쪽도 좋은데요….”
나는 그대로 미리내 쪽에서 원하는 만큼 곡을 줄줄 말하기를 기다렸다.
흥을 타고 온갖 후보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까지 말이다.
‘성격 보면 하고 싶은 게 많을 타입이야.’
그리고 분명 말하다 보면 내가 고려하던 곡들도 튀어나올 것이다.
“그렇게 보면 ‘Attack’도….”
그래, 나왔다.
이러면 곡은 너희가 고른 것같이 느껴지겠지.
나는 좀 더 뜸을 들인 뒤, 큰세진에게 신호를 주고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멋진 거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네네!”
“그럼 방금 말씀하신 그 곡에… 이런 컨셉은 어떠세요?”
나는 쭉쭉 종이 위로 선과 글자를 써 내렸다.
컨셉, 예상 효과, 편곡 방향….
즉석에서 생각해 낸 것처럼 보이도록 적당히 브레인스토밍처럼.
“이런 느낌으로요.”
적다 보니 나도 흥미가 붙어서 좀 더 즉석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종이를 한번 치고 고개를 들었다.
미리내 1위는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먹혔군.
“전 좋아요!”
“저도… 아니, 예. 선배님께서 정말 좋은 의견 주신 것 같습니다!”
좋아. 좀 사회생활이 섞이긴 했겠지만, 진심인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다음 빌드업이 온 타이밍이다.
“아~ 다들 이런 쪽에 마음이 가시는구나. 그럼 무대 요소도 쉬운데요? 이걸 쓰면 딱일 것 같은데!”
큰세진은 둘의 말을 받더니,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남은 무대장치 중 하나를 가리켰다.
-레이저
그렇게 견제로 인한 시간 낭비 없이 착착 그림은 완성되어 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5화
소속사 단체 콘서트.
보통 이름 있는 남녀 아이돌 그룹을 적어도 각각 한 팀 이상, 그리고 유망주 신인까지 보유한 회사가 진행할 만한 행사다.
그런 의미에서 출신 그룹 세 팀을 보유한 이 소속사가 최소 조건은 맞추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착각이다.
나는 귀갓길, 챙겨온 기획서를 확인하며 미간을 찌푸렸다.
‘좋아할 사람이 없을 것 같은데.’
이 급조한 소속사엔 고유한 컬러가 눈에 씻고 찾아봐도 없지 않나.
흔히 말하는 ‘그 소속사 특유의 느낌’ 말이다.
‘팀 간에 뭐라도 공통 수요가 있어야 관객 만족도가 있지.’
그냥 오디션 프로그램 우승자 그룹이나 넙죽넙죽 받아온 소속사가 무슨 배짱으로 자체 콘서트까지 기획하는지 모르겠다.
물론 목적은 대충 짐작이 간다만.
“음~ 새로 데뷔하는 애들 띄워주려는 것 같은데?”
큰세진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봐봐, 그 친구들한테 우리 노래 몇 곡 커버하라고 구성까지 줬네~ 우리 시즌 곡도 시안에 있고.”
“으음.”
그리고 주방에서 물 마시던 배세진이 약간 긴장한 얼굴로 말을 얹는다.
“…이게 세대 교체 시도 아니야?”
“세대 교체요?”
“왜, 그, 우리는 계약 기간도 얼마 안 남았으니까… 팬들이 신인 그룹을 좋아하게 유도하는 거 있잖아!”
“그런…! 벌써 이 그룹의 잠재력을 다 소모했다고 오판하시는 겁니까?”
그럴싸하게 들렸는지 김래빈이 기겁한다. 배세진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나 참.
‘어디 위튜브에서라도 본 건가.’
KPOP 관련 채널을 그렇게 많이 보더니, 어설픈 지식이 좀 생긴 모양이다.
나는 피식 웃고 고개를 저었다.
“아닐걸요. 그냥 그 그룹에 화제성 좀 붙이려는 것 같은데.”
“그, 그래?”
“예. 아무래도 전 시즌이 우리 시즌만큼 잘되진 못했으니까, 득 좀 보려는 것 같습니다. 너무 걱정 마세요.”
겨우 우호 관계를 빌드업해 왔는데 여기서 테스타를 포기하긴 회사 입장에서 너무 아깝지.
‘분명 우리가 재계약할 거라고 생각 중일 텐데.’
테스타 체급에 붙는 이득을 야금야금 뜯어먹는 정도로 그칠 것이다.
‘황금알 낳는 거위 배를 가르기엔 큰 메리트가 없어.’
큰세진도 흔쾌히 동의했다.
“나도 동의! 그래도 경각심을 가지는 건 좋죠~ 음, 형님 말씀도 좋은 방향이신 것 같아요.”
“…그래.”
“훌륭한 말씀이십니다.”
배세진과 김래빈은 순식간에 음모론을 폐기했다. 그리고 차유진이 다짜고짜 끼어든다.
“그래서 우리 그거 언제 해요? 빨리해요?”
“보자… 25일 뒤인데?”
류청우가 기획서의 ‘8월 대관 완료’ 부분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나는 다른 부분을 더 주목했다.
‘생각보다 규모가 작군.’
잠실 실내체육관. 만천 명 규모다.
최소한 ‘테스타+미리내+신인? 스타디움 가자!’ 같은 멍청한 팬 머릿수 계산으로 수요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건 이 소속사 대가리에게 기대할 수 없는 업계에 대한 통찰력이다.
‘본사가 개입했네.’
T1 입김이 들어간 것 같다.
애초에 이 콘서트 자체가 Tnet에서 방영되는 걸 보니, T1에서 밀어붙여서 소속사가 급하게 진행시키는 것 같다.
‘TaKon 반응이 좋아서 비슷하게 한탕 더 하고 싶은가 보군.’
팬들에게 욕 좀 먹을 것 같다만… 뭐, 테스타가 손해 보는 건 거의 없다.
‘콘서트 무대 일부가 전파를 타면 홍보 효과도 있을 거고.’
계약 후반부라 차후 문제없으려면 지금은 T1이랑 마찰 없이 갈 타이밍이니, 이 정도는 보이콧 없이 쭉 받아줘도 될 것 같다.
“총 다섯 곡만 준비하면 되네요.”
나는 피식 웃으며 기획서를 툭 쳤다.
‘화제성 좀 가져가라지 뭐.’
단, 그게 어떤 의미의 화제성일지는 알아서 책임져야지.
같은 오디션 시리즈 출신, 비슷한 나이대의 남자 아이돌 그룹 둘이… 심지어 같은 곡을?
미친 듯이 비교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겐 별 부담이 없다.
“음, 3주 반 정도구나. 촉박하네.”
“지난번 콘서트 테마랑 비슷하게 가니까 무리는 없을 것 같아요~”
“따로 편곡 작업이 필요할지 세부 사항에 대하여 문의드려야겠습니다.”
나는 지금 열심히 떠들고 있는 놈 중 하나의 상태창을 불러왔다.
랩 : A+ (S+)
(가창 : C+)
춤 : B+ (A+)
외모 : A- (A+)
끼 : A (S)
특성 : 마에스트로(S)
이 그룹에서 아무나 잡아도 대충 저 정도 나오는데 말이다.
심지어 때와 비교해서 적어도 3포인트 이상 스텟이 오른 놈들이 수두룩하다.
‘그 와중에 김래빈은 특성 등급까지 올랐고.’
앨범마다 단기 작업에 자진해서 갈려 나가니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약한 건 배세진 정도였는데, 이것도 요새는 이상한 요령을 익힌 것 같더라.
-이거, 가사 따라 통째로 움직임을 외우면 되는 거였어…!
-…??
댄스 기본 루틴이 익숙해진 놈은 이런 꼼수를 통해, 리듬 탄 춤이 아니라 움직임 재현에 집중해 군무를 따며 훨씬 그럴싸해졌다.
‘그게 더 어렵지 않나?’
뭐, 본인은 더 편하다니 됐고.
어쨌든 중요한 건 테스타를 무대로 흠잡는 의견은 이제 인터넷상에서도 거의 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커버 난이도 극상.’
이미 신인상 당시 곡을 바꿔 퍼포먼스했던 오닉스의 사례부터 인상이 박혔는지, 아예 인터넷에서 이미지로 결론을 내려놨다.
게다가 이번엔 저쪽이 일방적으로 우리를 커버한다.
기본 스텟에 연습량까지 차이가 나는 순간 이미 결과는 고정된 것이나 다름없다.
그러니 이런 걸로 팬덤 유출을 걱정하는 게 더 이상한 일이다.
‘후배들 대하는 태도만 신경 쓰면 그만이야.’
도리어 걱정되는 건 구색 맞추기용으로 넣은 이 무대다.
마침 류청우가 손으로 그것을 짚었다.
– 합동 무대 (미정) / 팀당 2인
“그리고 다섯 중에 합동 무대가 하나 있네.”
“예.”
우리 중 일부 멤버가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오르는 합동 무대다.
엔딩에 다 같이 국민가요를 부르는 촌스러운 구성을 제외하면,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테스타와 후배가 함께 오르는 무대.
‘누가 전면에 나오든 잡음이 나올 것 같군.’
그때 차유진이 또 손을 번쩍 든다.
“저 할래요! 합동 무대 저 해요!”
“하하.”
그럴 줄 알았다.
멤버들은 차유진의 적극적 지원에도 아무도 확답하지 않았다. 여기서 분위기 타서 오케이했다간 진짜 차유진이 하게 될 테니까.
‘차유진을 내보내는 건 좀 가혹할 것 같기도 하지.’
우리야 상관없는데, 여론적 문제로 말이다.
친선 경기에 전략 병기 내보내는 꼴이다.
이건 좀 더 생각해 볼 만한 구석이 있으니 일단 보류하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후, 첫 번째 단체 회의 및 연습 일정에서 이 걱정은 할 만한 것이었다는 게 드러난다.
“새 세트리스트입니다.”
정각보다 일찍 도착해 받은 종이에선 합동 무대 파트가 변해 있었다.
– 합동 무대 (미정) / 테스타 2인, 미리내 2인
‘이 새끼들 빠졌네.’
이번 데뷔조가 합동 무대 명단에서 빠졌다.
사유는 ‘데뷔 준비도 해야 하는데 새롭게 준비할 무대가 너무 과중하다’는 애걸복걸.
“여러분만 괜찮으면, 이 무대 마지막에 자연스럽게 다음 무대로 연결돼서 들어오는 스토리 전개 형식으로 이 친구들 자리를 마련해 주려고요.”
디렉터의 설명은 그럴싸했으나, 별개로 신인 그룹의 선택이라고 보긴 상당히 전략적인 판단이다.
변명은 그럴싸했다만… 타이밍이 절묘한데.
“흠.”
…상당히, 흥미로운 정황이다.
일단 넘기고, 당장은 당장 닥친 일이나 처리해야겠지만.
나는 디렉터가 다른 호출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번 합동 무대에 대한 계획을 수정하기 시작했다.
미리내가 전력 질주한 꼴로 도착한 건 얼마 후였다.
쾅!
“안녕하십니까!”
늦진 않았다만, 이쪽도 컴백 준비로 바쁜 것 같군.
얼마간의 인사와 준비, 스탭들이 움직인 뒤, 류청우가 친절하게 설명했다.
“사전 기획서에서 좀 변동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희끼리 합동무대를 하게 됐다네요.”
“아아 넵.”
2위, 그러니까… 박민하는 허허로운 얼굴로 말했다.
“기획서… 저희는 그런 건 받지 못했습니다, 선배님….”
“…….”
짬이 덜 찬 그룹의 숙명으로, 미리내는 그냥 일방적인 통보를 받고 참여하게 된 것 같다.
‘아니, 짬 문제가 아니라 테스타가 특수한 경우인가.’
사건이 겹치며 주도권을 잡았다만, 보통은 4년 차라도 한참 회사 말 잘 들을 타이밍이지.
‘음.’
큰세진이 얼른 끼어들어서 분위기를 띄웠다.
“에이, 그 초기 기획서가 중요한가요~ 지금 저희가 멋진 무대를 만드는 게 중요하죠! 잘 부탁드려요~”
“…! 옙. 정말 맞는 말씀입니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차유진이 해맑게 악수를 위해 손을 내민다.
“Yeees! 저도 같이 무대 잘 부탁해….”
“잠깐.”
나는 얼굴색을 바꾸지 않고 태연히 차유진의 어깨를 당겼다.
“유진아, ‘같이’는 아니지.”
“…??”
“오우, 맞아요…. 저 무대 같이 안 해요.”
차유진은 다소 시무룩해져서 손을 도로 거뒀다.
그렇다. 방금 긴급회의로 차유진은 합동 무대에서 빼냈다.
-What? 저 잘해요!
-그래, 잘하는 건 알지. 그러니까 우리 콘서트에서 더 큰 무대 하자.
-더 큰 거 뭐예요?
-그러니까…….
…수많은 당근을 썼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그리고 굳이 이렇게까지 한 건 처음에 고려했던 것과 다른 이유다.
‘이놈은 너무 붙임성이 좋아서 안 돼.’
동시에 거리낌이 없다. 무대에 어울리는 그림을 거침없이 퍼포먼스할 테니, 까닥하면 팬들이 편하게 용납 가능한 선 넘는다.
‘1대1 남녀 아이돌 그룹 퍼포먼스는 고려할 게 많아서 그러면 곤란해.’
이런 상황에선 무조건 이런 부분까지 머리 쓸 줄 아는 놈들만 하는 게 제일 안전하다.
그러니 정답은 하나다.
“그… 러시군요!”
“네네~”
큰세진이 웃으며 내게 어깨동무했다.
“합동 무대는 저랑 문대, 이렇게 같이할 것 같아요~ 잘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됐다.
이렇게 하면 최악의 경우라도 안 어울려서 웃긴단 소리만 듣겠지.
“오 그렇구나! 저 의견 막 적극적으로 내도 괜찮을까요?? 저희 멋진 거 했으면 좋겠는데요!”
“율기야아악.”
“어, 왜? 나 좀 이상해??”
미리내 1위의 발언에 주변 멤버들이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숙이며 매달린다.
2위는 모든 걸 포기한 얼굴로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저희는 저랑 율기 언니입니다.”
1, 2위가 나란히 출전했군.
기세에서 안 밀리겠다는 뜻이고… 아마 저 2위가 만든 인선이겠지.
‘테스타가 혼성이든 나발이든 일단 이기려 들 줄 짐작했나.’
우리가 다 오디션 출신이라 그런가. 이것도 또 독특한 상황이었다.
이대로면 오디션 프로그램 팀전처럼 서로 견제할 수도 있겠는데, 그럼 무조건 진행 과정에서 잡음이 나오겠지.
“와, 든든하네요~ 저희 열심히 해봅시다!”
게다가 평소라면 ‘구호를 만들자, 단체방을 파자’ 같은 소리를 했을 놈도 그냥 일만 하자는 태도니 대충 어떻게 돌아갈지 보였다.
‘여기서 퀄리티 괜찮은 놈을 뽑자면…….’
그럼 이것뿐인가.
나는 구상한 무대 컨셉 후보에서 자연스럽게 하나만을 남기고, 나머지를 제외했다.
그리고 최대한 자연스럽게 회의 흐름이 흘러갈 수 있도록 머릿속에서 시뮬레이션을 몇 번 돌렸다.
* * *
디렉터가 돌아오고 몇 가지 중요한 공지와 토의가 전부 오간 후.
합동 무대를 준비할 구성원은 따로 추가 회의가 들어갔다.
일단 차후에 쉽게 바꿀 수 없는 것부터 논하자면… 무대장치군.
‘역시.’
게다가 각 그룹의 기존 무대들에 이 합동 무대를 추가하는 만큼, 앞뒤 무대에서 쓰는 장치들이 이미 선점되어 있다.
“감독님, 기왕이면 이렇게 중복은 아닌 편이 좋다고 하셨죠~?”
“예예.”
음.
그럼 일단 와이어 탈락. 거기에 꽃가루, 리프트도 뒷무대에서 쓰니 제외.
“물도 힘들겠네요. 아무래도 다다음 무대가 저희 타이틀인데 너무 직접적으로 비교되면 좀 그렇겠죠?”
“네넵.”
큰세진이 자연스럽게 테스타가 본 무대에서 쓰려던 것들을 죽죽 지워 나간다. 잘하네.
다만 미리내 1위는 좀 답답한 것 같았다.
“저희 보통 하는 것처럼 곡부터 고르는 건 어떨까요? 지금 너무 안 되는 것만 말하게 되니까 좀 더 기운 나게!”
“어, 언니!”
“그건 그렇죠.”
마침 잘 말했다.
“뭘 하고 싶으신가요.”
“아! 저는 우선 힙합 쪽도 좋은데요….”
나는 그대로 미리내 쪽에서 원하는 만큼 곡을 줄줄 말하기를 기다렸다.
흥을 타고 온갖 후보가 머릿속에 떠오를 때까지 말이다.
‘성격 보면 하고 싶은 게 많을 타입이야.’
그리고 분명 말하다 보면 내가 고려하던 곡들도 튀어나올 것이다.
“그렇게 보면 ‘Attack’도….”
그래, 나왔다.
이러면 곡은 너희가 고른 것같이 느껴지겠지.
나는 좀 더 뜸을 들인 뒤, 큰세진에게 신호를 주고 끼어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멋진 거 하고 싶다고 하셨잖아요.”
“네네!”
“그럼 방금 말씀하신 그 곡에… 이런 컨셉은 어떠세요?”
나는 쭉쭉 종이 위로 선과 글자를 써 내렸다.
컨셉, 예상 효과, 편곡 방향….
즉석에서 생각해 낸 것처럼 보이도록 적당히 브레인스토밍처럼.
“이런 느낌으로요.”
적다 보니 나도 흥미가 붙어서 좀 더 즉석처럼 자연스러워졌다.
나는 종이를 한번 치고 고개를 들었다.
미리내 1위는 눈을 번뜩이고 있었다.
먹혔군.
“전 좋아요!”
“저도… 아니, 예. 선배님께서 정말 좋은 의견 주신 것 같습니다!”
좋아. 좀 사회생활이 섞이긴 했겠지만, 진심인 것 같다.
그러면 여기서 다음 빌드업이 온 타이밍이다.
“아~ 다들 이런 쪽에 마음이 가시는구나. 그럼 무대 요소도 쉬운데요? 이걸 쓰면 딱일 것 같은데!”
큰세진은 둘의 말을 받더니, 자연스럽게 손가락으로 남은 무대장치 중 하나를 가리켰다.
-레이저
그렇게 견제로 인한 시간 낭비 없이 착착 그림은 완성되어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