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9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2화
채서담이 ‘녹음’ 이야기를 꺼내자, 분위기는 급격히 전형적으로 변했다.
웃겼단 뜻이다.
‘이 새끼 뭐라는 거야.’
뭘 녹음했든 써먹으려면 입 닥치고 있다가 타이밍을 잡는 게 정석 아닌가.
왜 자기 입으로 말해서 대처할 시간을 주고 있는 거지.
‘음, 협박으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건가.’
설마 내가 녹음 내놓으라고 지랄하면서 당황하는 걸 노리나.
뭐, 녹음되면 곤란한 말 나눴다고 하면 어쩔 거고, 안 나눴다고 하면 어쩔 건지 궁금은 한데 말이다.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제삼자 녹음 불법인 거 아시죠, 채서담 씨.”
“예? 아… 저는 제 일상을 녹음하려고 한 거고, 혹시 배경음에 선배님들께서 곤란할 만한 이야기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 여쭤본 거였어요.”
채서담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민감하신 대화였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오.
민감했다고 하면 약점이고 안 민감했다고 하면 추궁 근거가 사라지게 하겠다는 건가.
나는 팔짱을 끼고 웃었다.
내가 화내게 만들려는 게 맞네.
“음… 이런 일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요. 불법 사생활 침해잖아요.”
됐고 너 불법이라니까?
다만 이 새끼의 그다음 행동 양상이 남다르긴 했다.
“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저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일단 선배님들 말씀이 녹음됐을 만한 건 여기서 지울게요.”
채서담은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단추 모양 녹음기를 꺼냈다.
‘블루투스형인가.’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 눈앞에서 녹음 파일을 재생시켰다.
-음, 여긴 어딘지 모르겠다.
-다리 아픈데….
일부러 소리 내서 말하며 문 앞에 앉는 것 같은 채서담의 목소리 뒤로, 희미한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문 틈새에 바짝 녹음기가 붙어서 대기실 안 소리가 좀 들어간 것 같군.
-대상 노리는….
아, 저기서부터 들어갔나.
바이럴 마케팅 이야기부터다.
나는 희미한 청려의 목소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채서담은 곧바로 녹음 파일을 눌러 완전히 삭제했다.
“삭제했습니다.”
“아, 예.”
뭐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놈을 쳐다보았다.
“…….”
당황한 기색이군.
왜, 생각보다 너무 태연하냐?
직접 녹음본을 재생하면 내가 지난 대화를 되새기며 초조해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포부는 좋군.
“다른 할 말이라도?”
“…아니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선배님들께 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았다.
나는 채서담이 말한 ‘선배님들’ 중 나머지 하나를 체크했다.
청려.
“…….”
놈은 돌아서는 새끼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저거….’
그때, 채서담이 갑자기 다시 이쪽을 돌아보며 말을 한다.
“그런데… 선배님, 절 믿으세요?”
“…!”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정말 죄송한데 제가 기계에 대해서 잘 몰라서요. 혹시 어디 남아 있든가 해서 해킹당하거나 했을 때 문제없을까… 해서요.”
“…….”
“녹음이요.”
삭제하는 퍼포먼스는 했지만 사실 내가 가지고 있다, 뭐 그런 불안감을 조성해 보는 건가.
‘어떻게 사는 놈인지 윤곽이 보인다.’
계속 쥐락펴락 상대의 리액션을 확인하려고 한다. 꼬투리 잡아서 비약하는 데 재능이 있나 보군.
근데 체급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이런 멍청한 짓을… 아, 잃을 게 더 많으니 사릴 거란 계산인가.
“음, 그럼 서담 씨가 곤란해질 것 같은데요.”
“…저요?”
“예. 몰래 다른 사람 대화 녹음하는 아이돌은… 그렇잖아요.”
나는 문가에 기댔다.
“나라면 조심할 텐데.”
녹음이 터지는 순간, 널 끌고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채서담은 순간 도전적으로 머리를 들었으나, 곧 다시 인사를 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웃긴 새끼.’
데뷔 간신히 해놓고 왜 자기 발로 끝내려는 건지 모르겠다만… 자기가 망하고 싶다는데 뭐 어쩌겠나.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머리를 뗐다.
저 새끼 녹음이 어느 정도로 잘되었느냐에 따라 다르다만… 내가 손 놓고 있다면 얻을 불이익이나 한번 최대치로 가산해 볼까.
‘반말과 바이럴 마케팅인가.’
둘 다 마이너스 요소긴 했다. 굳이 따지자면 ‘태도 논란’과 ‘대중 기만’으로 키워드를 정리할 수 있겠군.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말버릇 왜 이래; 너너 거리는 거 실화야?
-댕댕이라고 하더니 진짜 개X끼 수준의 예읰ㅋㅋㅋㅋㅋㅋ
-솔직히 깬다
-브이틱 동발부터 폭우 공연까지 우연인 척 다 계획됐던 거구나 진짜 음습 그 자체
예상 답안은 이 정도인가.
다만 무조건 치명적이냐고 물어보면 물음표다.
‘욕 많이 먹고 안 좋긴 하지.’
하지만 둘 다 예비 시간만 충분하다면 방어는 가능했다. 결국 프레임의 문제니까.
특히 대화 당사자와 말 좀 맞춰 두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수 있는데….
“재밌네요.”
…이 새끼가 녹음 까져도 나만 손해라 그런지 태연하기 그지없군.
아니, 저 새끼 입장에선 터지면 사실상 이득 아닌가?
이 대치 상황에서 테스타의 마이너스가 클수록 VTIC은 이득일 수밖에 없다.
‘어쩐지 입을 안 열더라니.’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대기실 안으로 도로 들어왔다. 다른 놈들 올 때까지 처리할 일이나 좀 해둘 생각이다.
그러나 뒤에서 질문이 들린다.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한데.”
“그건 왜 궁금하십니까, 선배님.”
“말 놓으라고 한 건 나니까 협조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음, 무슨 원한 관계인가?”
“원한?”
그럴 것까지 있나.
솔직히 이해가 안 되긴 한다. 애초에 나랑 접점은 욕 한 번뿐인데, 그게 녹음 어그로를 끌 정도로 빡칠 일이라고?
‘그냥 내가 X 됐으니 다 X 되라 이건가.’
묻지 마 테러범 심리 말이다.
그러나 청려가 다시 짚은 부분은 명확했다.
“저건 나한테는 거래 의사도 없어 보이던데…. 이것도 또 독특한 경우라.”
“…….”
음.
그래, 정확히 나를 찍었다…라.
“그러니까 뭘 할 건지 말해주면 좋겠는데요.”
“뭐… 보고.”
나는 적던 문자를 완성해 보냈다.
채서담은 바로 협박부터 갈겼으니, 어지간한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 녹음본을 터뜨려 봤자 내가 대비할 것이란 생각 정도는 했겠지.
그렇다면 분명 바로 터뜨리는 대신 추가 작업을 할 것이다.
‘리스크를 다 뽑아낸다.’
어떻게든 구설수가 터지면 손해인 건 맞으니, 일단은 관찰이다.
방심한 놈의 목적이 드러나고, 약점이 나올 때까지.
* * *
며칠 뒤,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거실 소파에 누워 있을 때였다.
“문대문대, 이거 뭐야?”
“뭐.”
큰세진이 내 대가리 위로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인터뷰 지문이다.
질문은 ‘친한 연예계 인맥’.
대상은… 이번 데뷔조.
========================
채서담 : 최근에는 테스타 박문대 선배님께 조언을 받았어요. 굉장히 친절하게 지도해 주셔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
잘나가는 선배와의 친목 미담을 이야기해 어그로를 끄는 흔한 신인의 인터뷰다.
다만 그 선배와 신인이 나와 채서담이라는 게 문제겠지.
“희승이한테 바로 물어봤는데, 지금도 이런 답변을 계속한다더라고.”
“…….”
“봐.”
큰세진이 화면을 바꿨다.
[희승이 : 문대 형 진짜 그 형이랑 친해요? 상상도 못 한 전개 ㄴㅇㄱ]
…골드 2 이놈도 두 번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더니 완전히 인터넷 유행어에 절은 모양이다.
어쨌든 상황은 알았다.
“내 이름값을 써먹으려는 건가.”
채서담은 이런 머리는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여론이 나쁜 본인의 상황에 이걸 최대한 플러스 요소로 써먹고 있다. 당장 내 팬들부터가 떨떠름해하면서도 미담으로 받아주고 있으니까.
‘딱 한계까지 긁는군.’
내가 리스크를 생각해서 가만있어주는 한계선까지 본인이 이득을 먹어보겠다는 것 같다.
더해서, 여기서 내가 개인적으로 접촉해 화내거나 부정적 리액션을 보이면 그것도 녹음 딸 생각이겠지.
그렇게 엮이는 것이다.
‘영악한 새끼.’
비슷한 짓 오래 해봤다 이건가.
…물론 내가 무슨 분석을 하든, 당장 직면한 상황은 또 다른 것이다.
큰세진이 스마트폰을 내리고 물었다.
“그래서요, 문대 씨. 갑자기 이 자식이 왜 박문대 이름 석 자를 써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
“혹시 무슨 일 생겼어?”
이 질문 말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아무리 잘 대비하고 저지한다 해도, 팀에게 리스크가 생길 수 있는 일이지.
나는 깔끔히 다 밝히기로 했다.
“잠깐, 거실에 다들 좀 모여줬으면 좋겠는데.”
고해성사의 시간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러니까… 청려 선배님한테 반말했다는 거야?”
“…그래.”
“…….”
눈으로 쌍욕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동명이인 둘의 눈에선 납득하는 기색이나 지나갔다. 뭐냐.
“그래… 하필 순서가 그렇게 돼서 둘이 같이 있었지.”
“잘했어!”
아, 그 새끼가 내 휴가철 개싸움 원인이란 걸 아는 두 녀석이다. 내가 존댓말 할 가치를 못 느껴서 말 놓았다고 생각하나 보군.
다만 다른 놈들은 의아한 것 같다. 류청우가 중얼거린다.
“잘했다고…?”
“아, 그, 큼, 그놈이 박문대를 괴롭힌 적이 있어!”
“…!!”
“…그래? 언제?”
지금 그 이야기 할 때가 아니지.
나는 류청우와 배세진의 대화를 끊었다. 듣던 김래빈 눈 튀어나오겠군.
“좀 예전 일인데, 어쨌든 방송국에선 조심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우리 이번 곡 뜬 방식을 그놈이 기획된 거 아니냐고 말했는데, 부정을 안 했어요.”
“음….”
“이것도 죄송합니다.”
“No!! 녹음한 사람 나빠요! 문대 형 잘못 없어요!”
“맞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무례하고 악의적인 짓을….”
겨우 곡 띄워놓고 욕먹게 생겼는데 속도 좋은 놈들이다. 나는 쓴웃음을 참았다.
“고마운데, 어쨌든 실수는 실수지. 제 잘못입니다. 방심했나 봐요.”
“…문대문대, 사람이 어떻게 매번 긴장하고 살아?”
큰세진이 어깨동무를 하더니 빠르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직 데뷔도 못 한 놈이 녹음? 바로 이야기해서….”
“그, 그러면! 내가… 말해볼게!”
뭐?
갑자기, 조용히 듣고 있던 선아현이 주먹을 쥐었다.
“그 애가… 나한테 못되게 굴었는데, 너도 괴롭히는 거라고, 사람들한테 말하면….”
“아현아??”
“아현아, 그거 아니야!”
순간적으로 거실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이 반응에 동의한다.
‘증거도 제대로 없는데 학교폭력 같은 민감한 문제를 들고나오면….’
까딱하면 선아현 본인 이득도 없이 그냥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나. 괜히 할 때 안 터뜨린 게 아니다.
“선아현, 그냥 내가 반말한 게 풀리고 녹음자로 채서담 저격하는 게 나아.”
배세진이 거든다.
“그래! 그냥 박문대 반말이 낫지!”
야.
“그건 그 미친놈한테 변명하라고 시키면 되잖아! 안 그러면 확….”
“확?”
“……그, 아무튼, 반말 들어도 괜찮았다고 확실히 발표하게 만들면 되잖아.”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류청우의 되물음에 배세진이 쭈그러들었다. 그 이상은 당사자가 아닌데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
‘뭐, 증거라도 풀어버린다고 협박하거나… 그냥 신고해버리자는 이야기였겠지.’
뭐, 그것도 방법 중 하나긴 했다.
그리고 류청우는 분위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쨌든, 문대가 지금까지 마음고생하면서 말 못 한 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 작업은 해뒀습니다.”
“작업?”
“저도 녹음했거든요.”
“……??”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보여줬다.
녹음 파일이다.
“반말하게 만들 때부터 어쩐지 좀 그래서 해뒀는데요.”
별일 없으면 바로 삭제하면 문제없지 않은가. 뭘 하든 세이브는 손해 볼 게 없다.
그리고 사방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아니, 그럴 줄 알았다고?
“역시 문대문대야.”
“와…….”
그래, 뭐, 좋다.
“관련해서 회사에도 다 이야기해 둔 상태입니다.”
그러니 왜곡이나 잘못된 대응을 염려할 건 없다고 말하려던 순간.
선아현이 다시 손을 들었다.
“나도… 있어.”
“…!!”
“녹음이?”
“아, 아니.”
선아현은 고개를 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상담 기록이 있어, 문대야…!”
“…!”
“물론 금방 그만뒀지만… 찾으면 분명 자, 자료가 남아 있을 거야.”
선아현은 또렷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너에게, 도움이 된다면 쓰고 싶어.”
“…….”
…방금 그 말로, 이 일을 처리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향이 생겼다.
채서담이 조용히 업계에서 사장되도록 만드는 방법.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음고생 뒈지게 시켜주는 방법이다.
‘후자 하자.’
그래.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다.
나는 그날, 회의를 끝낸 새벽에 마지막 작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 정했어요?
“그래.”
해외에 있는 놈이라 바로 받았다.
“협조 좀 해라.”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92화
채서담이 ‘녹음’ 이야기를 꺼내자, 분위기는 급격히 전형적으로 변했다.
웃겼단 뜻이다.
‘이 새끼 뭐라는 거야.’
뭘 녹음했든 써먹으려면 입 닥치고 있다가 타이밍을 잡는 게 정석 아닌가.
왜 자기 입으로 말해서 대처할 시간을 주고 있는 거지.
‘음, 협박으로 주도권을 잡겠다는 건가.’
설마 내가 녹음 내놓으라고 지랄하면서 당황하는 걸 노리나.
뭐, 녹음되면 곤란한 말 나눴다고 하면 어쩔 거고, 안 나눴다고 하면 어쩔 건지 궁금은 한데 말이다.
나는 바로 입을 열었다.
“제삼자 녹음 불법인 거 아시죠, 채서담 씨.”
“예? 아… 저는 제 일상을 녹음하려고 한 거고, 혹시 배경음에 선배님들께서 곤란할 만한 이야기가 들어가면 안 되니까 여쭤본 거였어요.”
채서담이 고개를 꾸벅 숙였다.
“민감하신 대화였다면 정말 죄송합니다!”
오.
민감했다고 하면 약점이고 안 민감했다고 하면 추궁 근거가 사라지게 하겠다는 건가.
나는 팔짱을 끼고 웃었다.
내가 화내게 만들려는 게 맞네.
“음… 이런 일이 굉장히 많을 것 같은데요. 불법 사생활 침해잖아요.”
됐고 너 불법이라니까?
다만 이 새끼의 그다음 행동 양상이 남다르긴 했다.
“네! 그렇게 되지 않도록 저도 조심하고 있습니다. 일단 선배님들 말씀이 녹음됐을 만한 건 여기서 지울게요.”
채서담은 자신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단추 모양 녹음기를 꺼냈다.
‘블루투스형인가.’
그리고 자신의 스마트폰을 꺼내서, 내 눈앞에서 녹음 파일을 재생시켰다.
-음, 여긴 어딘지 모르겠다.
-다리 아픈데….
일부러 소리 내서 말하며 문 앞에 앉는 것 같은 채서담의 목소리 뒤로, 희미한 소리가 들리긴 하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문 틈새에 바짝 녹음기가 붙어서 대기실 안 소리가 좀 들어간 것 같군.
-대상 노리는….
아, 저기서부터 들어갔나.
바이럴 마케팅 이야기부터다.
나는 희미한 청려의 목소리를 확인했다.
그리고 채서담은 곧바로 녹음 파일을 눌러 완전히 삭제했다.
“삭제했습니다.”
“아, 예.”
뭐 박수라도 쳐줘야 하나.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놈을 쳐다보았다.
“…….”
당황한 기색이군.
왜, 생각보다 너무 태연하냐?
직접 녹음본을 재생하면 내가 지난 대화를 되새기며 초조해하기라도 할 줄 알았나. 포부는 좋군.
“다른 할 말이라도?”
“…아니요. 그럼 가보겠습니다. 선배님들께 폐 끼쳐서 죄송합니다.”
놈은 고개를 꾸벅 숙이고 돌았다.
나는 채서담이 말한 ‘선배님들’ 중 나머지 하나를 체크했다.
청려.
“…….”
놈은 돌아서는 새끼를 가만히 응시하고 있다.
‘저거….’
그때, 채서담이 갑자기 다시 이쪽을 돌아보며 말을 한다.
“그런데… 선배님, 절 믿으세요?”
“…!”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정말 죄송한데 제가 기계에 대해서 잘 몰라서요. 혹시 어디 남아 있든가 해서 해킹당하거나 했을 때 문제없을까… 해서요.”
“…….”
“녹음이요.”
삭제하는 퍼포먼스는 했지만 사실 내가 가지고 있다, 뭐 그런 불안감을 조성해 보는 건가.
‘어떻게 사는 놈인지 윤곽이 보인다.’
계속 쥐락펴락 상대의 리액션을 확인하려고 한다. 꼬투리 잡아서 비약하는 데 재능이 있나 보군.
근데 체급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이런 멍청한 짓을… 아, 잃을 게 더 많으니 사릴 거란 계산인가.
“음, 그럼 서담 씨가 곤란해질 것 같은데요.”
“…저요?”
“예. 몰래 다른 사람 대화 녹음하는 아이돌은… 그렇잖아요.”
나는 문가에 기댔다.
“나라면 조심할 텐데.”
녹음이 터지는 순간, 널 끌고 들어가겠다는 뜻이다.
채서담은 순간 도전적으로 머리를 들었으나, 곧 다시 인사를 했다.
“…조언 감사합니다.”
그리고 빠른 걸음으로 걸어 복도 너머로 사라졌다.
‘웃긴 새끼.’
데뷔 간신히 해놓고 왜 자기 발로 끝내려는 건지 모르겠다만… 자기가 망하고 싶다는데 뭐 어쩌겠나.
나는 어깨를 으쓱하고 머리를 뗐다.
저 새끼 녹음이 어느 정도로 잘되었느냐에 따라 다르다만… 내가 손 놓고 있다면 얻을 불이익이나 한번 최대치로 가산해 볼까.
‘반말과 바이럴 마케팅인가.’
둘 다 마이너스 요소긴 했다. 굳이 따지자면 ‘태도 논란’과 ‘대중 기만’으로 키워드를 정리할 수 있겠군.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말버릇 왜 이래; 너너 거리는 거 실화야?
-댕댕이라고 하더니 진짜 개X끼 수준의 예읰ㅋㅋㅋㅋㅋㅋ
-솔직히 깬다
-브이틱 동발부터 폭우 공연까지 우연인 척 다 계획됐던 거구나 진짜 음습 그 자체
예상 답안은 이 정도인가.
다만 무조건 치명적이냐고 물어보면 물음표다.
‘욕 많이 먹고 안 좋긴 하지.’
하지만 둘 다 예비 시간만 충분하다면 방어는 가능했다. 결국 프레임의 문제니까.
특히 대화 당사자와 말 좀 맞춰 두면 찻잔 속 태풍으로 끝날 수 있는데….
“재밌네요.”
…이 새끼가 녹음 까져도 나만 손해라 그런지 태연하기 그지없군.
아니, 저 새끼 입장에선 터지면 사실상 이득 아닌가?
이 대치 상황에서 테스타의 마이너스가 클수록 VTIC은 이득일 수밖에 없다.
‘어쩐지 입을 안 열더라니.’
나는 목 뒤를 주무르며 대기실 안으로 도로 들어왔다. 다른 놈들 올 때까지 처리할 일이나 좀 해둘 생각이다.
그러나 뒤에서 질문이 들린다.
“어떻게 할 건지 궁금한데.”
“그건 왜 궁금하십니까, 선배님.”
“말 놓으라고 한 건 나니까 협조해야 할 것 같아서요. 음, 무슨 원한 관계인가?”
“원한?”
그럴 것까지 있나.
솔직히 이해가 안 되긴 한다. 애초에 나랑 접점은 욕 한 번뿐인데, 그게 녹음 어그로를 끌 정도로 빡칠 일이라고?
‘그냥 내가 X 됐으니 다 X 되라 이건가.’
묻지 마 테러범 심리 말이다.
그러나 청려가 다시 짚은 부분은 명확했다.
“저건 나한테는 거래 의사도 없어 보이던데…. 이것도 또 독특한 경우라.”
“…….”
음.
그래, 정확히 나를 찍었다…라.
“그러니까 뭘 할 건지 말해주면 좋겠는데요.”
“뭐… 보고.”
나는 적던 문자를 완성해 보냈다.
채서담은 바로 협박부터 갈겼으니, 어지간한 돌대가리가 아닌 이상 녹음본을 터뜨려 봤자 내가 대비할 것이란 생각 정도는 했겠지.
그렇다면 분명 바로 터뜨리는 대신 추가 작업을 할 것이다.
‘리스크를 다 뽑아낸다.’
어떻게든 구설수가 터지면 손해인 건 맞으니, 일단은 관찰이다.
방심한 놈의 목적이 드러나고, 약점이 나올 때까지.
* * *
며칠 뒤, 간만에 일찍 퇴근해서 거실 소파에 누워 있을 때였다.
“문대문대, 이거 뭐야?”
“뭐.”
큰세진이 내 대가리 위로 스마트폰을 들이댄다.
인터뷰 지문이다.
질문은 ‘친한 연예계 인맥’.
대상은… 이번 데뷔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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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서담 : 최근에는 테스타 박문대 선배님께 조언을 받았어요. 굉장히 친절하게 지도해 주셔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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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는 선배와의 친목 미담을 이야기해 어그로를 끄는 흔한 신인의 인터뷰다.
다만 그 선배와 신인이 나와 채서담이라는 게 문제겠지.
“희승이한테 바로 물어봤는데, 지금도 이런 답변을 계속한다더라고.”
“…….”
“봐.”
큰세진이 화면을 바꿨다.
…골드 2 이놈도 두 번이나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나오더니 완전히 인터넷 유행어에 절은 모양이다.
어쨌든 상황은 알았다.
“내 이름값을 써먹으려는 건가.”
채서담은 이런 머리는 돌아가는 것 같았다.
여론이 나쁜 본인의 상황에 이걸 최대한 플러스 요소로 써먹고 있다. 당장 내 팬들부터가 떨떠름해하면서도 미담으로 받아주고 있으니까.
‘딱 한계까지 긁는군.’
내가 리스크를 생각해서 가만있어주는 한계선까지 본인이 이득을 먹어보겠다는 것 같다.
더해서, 여기서 내가 개인적으로 접촉해 화내거나 부정적 리액션을 보이면 그것도 녹음 딸 생각이겠지.
그렇게 엮이는 것이다.
‘영악한 새끼.’
비슷한 짓 오래 해봤다 이건가.
…물론 내가 무슨 분석을 하든, 당장 직면한 상황은 또 다른 것이다.
큰세진이 스마트폰을 내리고 물었다.
“그래서요, 문대 씨. 갑자기 이 자식이 왜 박문대 이름 석 자를 써먹을 생각을 했을까요?”
“…….”
“혹시 무슨 일 생겼어?”
이 질문 말이다.
그리고 이건 내가 아무리 잘 대비하고 저지한다 해도, 팀에게 리스크가 생길 수 있는 일이지.
나는 깔끔히 다 밝히기로 했다.
“잠깐, 거실에 다들 좀 모여줬으면 좋겠는데.”
고해성사의 시간이다.
그리고 잠시 후.
“그러니까… 청려 선배님한테 반말했다는 거야?”
“…그래.”
“…….”
눈으로 쌍욕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동명이인 둘의 눈에선 납득하는 기색이나 지나갔다. 뭐냐.
“그래… 하필 순서가 그렇게 돼서 둘이 같이 있었지.”
“잘했어!”
아, 그 새끼가 내 휴가철 개싸움 원인이란 걸 아는 두 녀석이다. 내가 존댓말 할 가치를 못 느껴서 말 놓았다고 생각하나 보군.
다만 다른 놈들은 의아한 것 같다. 류청우가 중얼거린다.
“잘했다고…?”
“아, 그, 큼, 그놈이 박문대를 괴롭힌 적이 있어!”
“…!!”
“…그래? 언제?”
지금 그 이야기 할 때가 아니지.
나는 류청우와 배세진의 대화를 끊었다. 듣던 김래빈 눈 튀어나오겠군.
“좀 예전 일인데, 어쨌든 방송국에선 조심해야 했는데 죄송합니다. …그리고 우리 이번 곡 뜬 방식을 그놈이 기획된 거 아니냐고 말했는데, 부정을 안 했어요.”
“음….”
“이것도 죄송합니다.”
“No!! 녹음한 사람 나빠요! 문대 형 잘못 없어요!”
“맞습니다. 어떻게 사람이 그런 무례하고 악의적인 짓을….”
겨우 곡 띄워놓고 욕먹게 생겼는데 속도 좋은 놈들이다. 나는 쓴웃음을 참았다.
“고마운데, 어쨌든 실수는 실수지. 제 잘못입니다. 방심했나 봐요.”
“…문대문대, 사람이 어떻게 매번 긴장하고 살아?”
큰세진이 어깨동무를 하더니 빠르게 중얼거렸다.
“괜찮아! 아직 데뷔도 못 한 놈이 녹음? 바로 이야기해서….”
“그, 그러면! 내가… 말해볼게!”
뭐?
갑자기, 조용히 듣고 있던 선아현이 주먹을 쥐었다.
“그 애가… 나한테 못되게 굴었는데, 너도 괴롭히는 거라고, 사람들한테 말하면….”
“아현아??”
“아현아, 그거 아니야!”
순간적으로 거실이 시끄러워졌다. 그리고 이 반응에 동의한다.
‘증거도 제대로 없는데 학교폭력 같은 민감한 문제를 들고나오면….’
까딱하면 선아현 본인 이득도 없이 그냥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나. 괜히 할 때 안 터뜨린 게 아니다.
“선아현, 그냥 내가 반말한 게 풀리고 녹음자로 채서담 저격하는 게 나아.”
배세진이 거든다.
“그래! 그냥 박문대 반말이 낫지!”
야.
“그건 그 미친놈한테 변명하라고 시키면 되잖아! 안 그러면 확….”
“확?”
“……그, 아무튼, 반말 들어도 괜찮았다고 확실히 발표하게 만들면 되잖아.”
자세한 사정을 모르는 류청우의 되물음에 배세진이 쭈그러들었다. 그 이상은 당사자가 아닌데 말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나.
‘뭐, 증거라도 풀어버린다고 협박하거나… 그냥 신고해버리자는 이야기였겠지.’
뭐, 그것도 방법 중 하나긴 했다.
그리고 류청우는 분위기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쨌든, 문대가 지금까지 마음고생하면서 말 못 한 거라면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아, 작업은 해뒀습니다.”
“작업?”
“저도 녹음했거든요.”
“……??”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보여줬다.
녹음 파일이다.
“반말하게 만들 때부터 어쩐지 좀 그래서 해뒀는데요.”
별일 없으면 바로 삭제하면 문제없지 않은가. 뭘 하든 세이브는 손해 볼 게 없다.
그리고 사방에서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이… 아니, 그럴 줄 알았다고?
“역시 문대문대야.”
“와…….”
그래, 뭐, 좋다.
“관련해서 회사에도 다 이야기해 둔 상태입니다.”
그러니 왜곡이나 잘못된 대응을 염려할 건 없다고 말하려던 순간.
선아현이 다시 손을 들었다.
“나도… 있어.”
“…!!”
“녹음이?”
“아, 아니.”
선아현은 고개를 들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단호하게 말했다.
“그때 상담 기록이 있어, 문대야…!”
“…!”
“물론 금방 그만뒀지만… 찾으면 분명 자, 자료가 남아 있을 거야.”
선아현은 또렷하게 말을 마무리했다.
“너에게, 도움이 된다면 쓰고 싶어.”
“…….”
…방금 그 말로, 이 일을 처리하는 것에는 두 가지 방향이 생겼다.
채서담이 조용히 업계에서 사장되도록 만드는 방법.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마음고생 뒈지게 시켜주는 방법이다.
‘후자 하자.’
그래.
그래야 수지타산이 맞다.
나는 그날, 회의를 끝낸 새벽에 마지막 작업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마음 정했어요?
“그래.”
해외에 있는 놈이라 바로 받았다.
“협조 좀 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