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8화
솔직히 말해보겠다.
누군가 이 좋은 곡이냐고 묻는다면, 좋은 곡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 무대로 좋은 곡이냐고 물어본다면 얼른 손절하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이 곡이 전형적인 2000년대 록 밴드 스타일의 가사와 사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날 믿어도 좋다. 내가 시구하는 아이돌들 찍으러 갈 때마다 이 곡을 들어봤었다.
이건 치어리더의 군무도 안 어울리는, 그냥 흥겨운 밴드 곡이다. 그것도 극고음의 시원함이 장점인.
결론적으로… 편곡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
작곡 관련 특성은 못 뽑나? 지금 당장 필요한데.
답 없는 내 심정과는 상관없이 원곡자와 참가자들의 대화는 희망찼다.
다른 팀원 놈들은 이 곡의 중독성 있는 후렴 한두 구절만 아는 눈치였다.
“저희가 활동을 오래 못 했어서 이 곡을 그다지 많이 부르진 못했어요. 이번에 여러분이 멋지게 해주시면 좋겠네요.”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멋진 무대 만들어보겠습니다!”
무슨 수로?
…아니다. 쓸데없이 스트레스받는 걸 그만두고, 이번 팀전은 편집에서 처맞지만 않으면 평타라 생각하고 몸이나 사리자.
이대로 가도 어디 중소 기획사는 잡아서 빠른 데뷔는 가능할 것 같으니까.
‘그래도 무대는… 어느 정도 뽑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아쉬웠다. 애초에 자의로 시작한 일도 아닌데 왜 무대에 마음 쓰게 된 건지를 모르겠지만.
‘과몰입이라고 누가 놀려도 할 말이 없겠군.’
“…….”
…그래도, 재미는 있었지.
좋아. 토의할 때 조금 신경 써서 이야기해 보자. 어쩌면 다른 참가자가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으니까.
원곡자는 곧 촬영장을 떠났다. 며칠 뒤 중간평가 때 트레이너와 함께 연습을 본다고 했다.
그리고 팀원들이 둘러앉아서, 드디어 무대 구성 이야기가 나왔다.
* * *
일단 류청우가 예시 답안 같은 컨셉을 내놨다.
“응원단 컨셉이 제일 낫지 않겠어? 곡에도 어울릴 것 같고, 난이도 있는 안무 넣기도 좋잖아.”
“치어리딩? 으으음……. 경험은 좋은 일이에요.”
“괜찮은 것 같아요.”
“신나겠네.”
차유진을 비롯한 몇몇에게 호응이 돌아왔다. 그럭저럭 오케이라는 뉘앙스였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래빈이, 문대, 세진이.”
류청우는 빠르게 팀원들의 반응을 훑어보고, 말 없는 세 참가자를 찍어냈다. 나를 포함해서.
이런 건 처음 입 여는 것보다 나중에 상황보고 단어 골라서 말하는 게 잘 먹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른 둘이 앉은 방향을 쳐다보는 걸로 하자.
“우선 세진이부터 의견 들어볼까?”
“……응원단은, 촌스러워 보일 것 같은데요.”
여기서까지 팩트로 때리네.
지금까지 별 악의적인 편집을 받은 게 없어서 이세진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방송에서 부각된 적은 거의 없었다.
대충 박문대 검색하다 걸리는 것만 봐도, 이세진의 팬들은 이놈을 ‘낯가리는 예민한 노력가’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류청우가 워낙 편집을 잘 받는 편집자라, 이세진은 이번에야말로 편집으로 쥐어 터질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류청우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냥 침착하게 되물었을 뿐이다.
“그럼 다른 의견 있을까?”
“그게 없으니까 굳이… 말 안 하려고 했던 거예요.”
“흠, 좋아. 일단 알았어.”
류청우는 곧바로 김래빈에게 다시 같은 말을 물었다.
“래빈이는 어떻게 생각해?”
“제가 이 곡을 잘 모르는 상태라, 일단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한번 틀어보자.”
지급받은 스마트패드를 작동시키자, 고전적인 드럼 도입부를 시작으로 일렉 기타로 연주하는 후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
다들 입을 다문 채로 곡을 끝까지 들은 후에, 김래빈이 먼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건…….”
드디어 이 선곡 참사를 알아챈 사람이 나왔군.
우선 가사는 소싯적 유행했던 청춘 애찬가였다. 좋게 말하면 복고풍, 나쁘게 말하면 올드하단 뜻이다.
당연히 꽃의 요정이나 뱀파이어 같이 특징적인 컨셉은 없고, 붙이기도 애매했다.
그리고 노래 잘하는 사람 혼자 서서 부르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후렴 옥타브가 목이 찢어지도록 높았다.
만약에 옥타브를 조절하면? 곡의 매력이 사라질 것이다.
성대를 찌르는 고음의 호쾌함을 매력으로 부르는 곡이기 때문이다.
“흠, 음이 굉장히 높네. 다른 힘든 점 또 발견한 거 있어?”
“…….”
김래빈은 말을 쏟아낼 것처럼 숨을 들이켜다가, 흘끔 카메라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 팀전이 방영되고 인성 논란으로 두들겨 맞은 덕분에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네. 곡은 좋은데, 편곡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 어려울 것 같다.”
류청우는 선선히 수긍했다. 김래빈이 지난 1차 팀전에서 방송은 망했지만, 어쨌든 편곡을 주도해서 제대로 된 곡을 뽑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2000년대 후반 양산형 EDM 곡을 샘플 비트만 남기고 잘 빠진 EDM 트랩으로 바꿨었지.’
“그럼 문대는 어땠어?”
결국, 내 턴까지 왔군.
“저는 편곡보다 먼저 정할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거?”
“파트 분배요.”
선곡에서 답이 안 보인다? 그럼 이건 중점이 잘하는 데 있어선 안 된다.
망하지 않는 데 있어야 한다.
단언하는데, 당장 팀에서 이 곡 후렴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이걸 바로 소화하려면 가창이 A- 이상은 되야 비벼볼 것 같은데, 그게 이 팀에서 나뿐이었다.
‘그렇다고 후렴을 나 혼자 다 부를 순 없지.’
그러니까 당장 삑사리 안 나게 파트 자르고 연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편곡은 뭘 가져다 붙여도 상타가 안 나올 것 같으니 좀 미루자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때가 아니다. 비상사태지.
이 설명을 최대한 온건하게 전달하면 이렇게 된다.
“부르기 어려운 곡이니까 일단 빨리 연습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파트 분배… 물론 중요하긴 하지.”
류청우는 놀란 기색이었다.
“그런데 의외네. 문대 지난번 팀전에서는 편곡부터 정하자고 했다던데?”
“예?”
방송에도 안 나온 내용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아, 큰세진이에게 들었어.”
“…….”
‘언제 류청우하고도 말 텄냐.’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다.
“래빈아, 네가 아무래도 편곡을 제일 잘 잡으니까 물어본다. 문대 의견 어때?”
“…예. 괜찮습니다. 연습하면서 저도 여러 선택지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김래빈은 쉽게 동의했다. 내일 지구에 떨어질 운석을 관측한 사람 같은 몰골이긴 했지만.
“음, 그럼 일단 의견들을 다 들어봤으니, 더 좋은 아이디어 나오기 전까지는 거수로 진행할게.”
류청우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응원단 컨셉으로 연습을 진행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 손.”
과반수가 손을 들었다. 나도 일단은 들었고.
류청우는 손을 들지 않는 이세진에게 특별히 눈치를 주진 않고, 곧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럼 파트 분배부터 해도 괜찮은 사람 손.”
다행히 이것도 과반수로 통과되었다. 이세진까지 손을 든 걸 보니, 내 설명이 그래도 말은 됐나 보군.
이세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기 직전에 휙 손을 내리더니 눈을 피했다.
“…….”
의견에 동의하는 거지 너에게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은 건가. 굳이?
“좋아. 그럼 파트 분배부터 하자.”
그렇게 파트 분배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 같더니, 곧 예정된 난관에 부딪혔다.
“저 여기 안 될 것 같아요.”
“어, 저도…….”
“이거 너무 키가 높다.”
후렴부 고음 멜로디는 네 번이나 나오며 곡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그러나 박문대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부르는 족족 실패하거나 목을 부여잡고 멋쩍은 얼굴이 됐다.
가창 B+로 썩 괜찮은 노래 실력을 가진 한 팀원은 음 이탈을 불안해하더니, 결국 ‘그’ 의견을 냈다.
“아무래도 편곡을 해서 키를 낮춘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랩하는 멤버도 둘이나 있으니까, 랩도 좀 넣으면 어때요?”
편곡부터하자는 얘기다. 망할.
“키를 낮추는 건…….”
김래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나쁜 인상이 더 나빠졌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낮추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동의.”
“흠, 일단 팀원들이 소화는 할 수 있어야 하긴 해. 키를 낮추고 거기에 어울리게 편곡을 해보는 건 어떨까?”
김래빈은 주변을 힐끔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안 하겠다고 하면 또 편집으로 작살날까 봐 아예 지고 들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키 낮추기’, ‘랩 파트 추가’, ‘응원단 컨셉에 어울리는 반주’라는 통일성 없는 의견이 모두 반영된 채 편곡이 진행되었다.
감 없는 놈들이 목소리가 크면 이렇게 순조롭게 망하는구나 싶다.
무대는 이미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말 해봤자 쪽수에서 밀렸다.
혹시 운 좋게 이 발동한다고 해도, 마땅한 대안도 없이 말해봤자 불만종자만 될 뿐이었다.
게다가 ‘너는 부를 수 있으니까 그대로 가자는 거지?’ 같은 소리 나오기 시작하면 답이 없었다.
안 그래도 사회성 없는 놈처럼 방송에 나오는데 이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면 곤란했다.
그러니까, 이게 끔찍하게 구리다고 솔직히 말해줄 외부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존버가 답인가.’
1절만 보는 중간평가가 사흘 뒤였는데, 심사위원들이 귀가 있다면 누군가가 구리다고 말해주겠지.
그때까지 뭐라도 대안이나 떠올려봐야겠다.
“이제 안무 만들어요!”
하지만 차유진이 저 외침과 함께 그날 만들어낸 안무는 급 괴랄한 난이도의 움직임이었다.
덕분에 나는 대안이고 나발이고 남은 스탯 포인트를 춤에 꽂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체력이 살살 녹는 사흘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중간평가에 들어갔다.
* * *
“이 팀 등수가 화려하네~”
“래빈이가 칼을 갈았다!”
“다들 순위 발표식 성적이 좋네요.”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일단 등수부터 나왔다.
제작진이 미리 언급해달라고 말해둔 거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니 기대치로 작용할 것이다.
“아, 벌써 데모곡도 나왔어?”
“예!”
김래빈이 직접 편곡자와 이야기하며 진행한 덕분이었다.
“훌륭하네~”
“그러게. 이 팀이 유일하게! 벌써 원곡 아니라 자기들이 편곡한 걸로 하는 거예요.”
“역시 능력자들의 팀이야!”
심사위원들은 벌써부터 흡족해했다.
그러나.
“음….”
막상 무대가 끝난 후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교환하던 심사위원들은, 결국 하나둘씩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 너희 무대 자체가 막 그렇게 나쁘단 느낌은 아니거든? 근데 매력이 없어.”
“맞아. 안무도 잘 짰어요. 위트도 좀 보이고. 음, 응원단 컨셉… 뭐 원래는 곡하고 어울려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우중충하지?”
“랩도 너무 뜬금없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라 아쉽네요. 원곡을 이것저것 많이 건들긴 했는데, 원곡보다 못한 느낌이에요.”
심사평이 쌓일수록 문제점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영린이 마이크를 잡자마자 물었다.
“편곡 누가 했나요.”
일부러 김래빈은 안 쳐다봤다. 한 놈보다는 말 꺼낸 놈이 문제였으니까.
근데 주변을 보니 다른 놈들은 다 김래빈을 쳐다봐서 별 의미는 없더라.
“저희 다 같이 상의해서 한 일입니다.”
류청우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연대책임으로 돌렸다. 그리고 리더로서 팀을 잘못 이끌었다고 말해서 중화시켜 버릴 모양이었다.
괜찮은 판단이다.
하지만 어디든 트롤러가 있다.
“네. 그리고… 편곡 작업은 래빈이가 진행했어요.”
여기서 이런 식으로 꼬리를 자르겠다고?
‘미친 건가.’
카메라 돌아가는데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한다고?
보니까 자기도 당황한 얼굴인 게, 혹평을 받으니까 무서워서 반사적으로 딴 놈 이름을 댄 모양이었다.
‘X이이발….’
잘못하면 집단 따돌림으로 편집 들어가게 생겼다.
혹시 도매급으로 넘어갈까 봐, 나도 일단 입을 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8화
솔직히 말해보겠다.
누군가 이 좋은 곡이냐고 묻는다면, 좋은 곡이라고 대답할 수 있었다.
하지만 아이돌 무대로 좋은 곡이냐고 물어본다면 얼른 손절하라고 대답해 주고 싶다.
이 곡이 전형적인 2000년대 록 밴드 스타일의 가사와 사운드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날 믿어도 좋다. 내가 시구하는 아이돌들 찍으러 갈 때마다 이 곡을 들어봤었다.
이건 치어리더의 군무도 안 어울리는, 그냥 흥겨운 밴드 곡이다. 그것도 극고음의 시원함이 장점인.
결론적으로… 편곡 난이도가 말도 안 되게 높았다.
“…….”
작곡 관련 특성은 못 뽑나? 지금 당장 필요한데.
답 없는 내 심정과는 상관없이 원곡자와 참가자들의 대화는 희망찼다.
다른 팀원 놈들은 이 곡의 중독성 있는 후렴 한두 구절만 아는 눈치였다.
“저희가 활동을 오래 못 했어서 이 곡을 그다지 많이 부르진 못했어요. 이번에 여러분이 멋지게 해주시면 좋겠네요.”
“저희가 최선을 다해서 멋진 무대 만들어보겠습니다!”
무슨 수로?
…아니다. 쓸데없이 스트레스받는 걸 그만두고, 이번 팀전은 편집에서 처맞지만 않으면 평타라 생각하고 몸이나 사리자.
이대로 가도 어디 중소 기획사는 잡아서 빠른 데뷔는 가능할 것 같으니까.
‘그래도 무대는… 어느 정도 뽑을 줄 알았는데.’
이상하게 아쉬웠다. 애초에 자의로 시작한 일도 아닌데 왜 무대에 마음 쓰게 된 건지를 모르겠지만.
‘과몰입이라고 누가 놀려도 할 말이 없겠군.’
“…….”
…그래도, 재미는 있었지.
좋아. 토의할 때 조금 신경 써서 이야기해 보자. 어쩌면 다른 참가자가 좋은 아이디어를 낼 수도 있으니까.
원곡자는 곧 촬영장을 떠났다. 며칠 뒤 중간평가 때 트레이너와 함께 연습을 본다고 했다.
그리고 팀원들이 둘러앉아서, 드디어 무대 구성 이야기가 나왔다.
* * *
일단 류청우가 예시 답안 같은 컨셉을 내놨다.
“응원단 컨셉이 제일 낫지 않겠어? 곡에도 어울릴 것 같고, 난이도 있는 안무 넣기도 좋잖아.”
“치어리딩? 으으음……. 경험은 좋은 일이에요.”
“괜찮은 것 같아요.”
“신나겠네.”
차유진을 비롯한 몇몇에게 호응이 돌아왔다. 그럭저럭 오케이라는 뉘앙스였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해? 래빈이, 문대, 세진이.”
류청우는 빠르게 팀원들의 반응을 훑어보고, 말 없는 세 참가자를 찍어냈다. 나를 포함해서.
이런 건 처음 입 여는 것보다 나중에 상황보고 단어 골라서 말하는 게 잘 먹힌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다른 둘이 앉은 방향을 쳐다보는 걸로 하자.
“우선 세진이부터 의견 들어볼까?”
“……응원단은, 촌스러워 보일 것 같은데요.”
여기서까지 팩트로 때리네.
지금까지 별 악의적인 편집을 받은 게 없어서 이세진의 비협조적인 태도가 방송에서 부각된 적은 거의 없었다.
대충 박문대 검색하다 걸리는 것만 봐도, 이세진의 팬들은 이놈을 ‘낯가리는 예민한 노력가’로 믿고 있었다.
그런데 류청우가 워낙 편집을 잘 받는 편집자라, 이세진은 이번에야말로 편집으로 쥐어 터질지도 모르겠군.
어쨌든, 류청우는 별로 동요하지 않았다. 그냥 침착하게 되물었을 뿐이다.
“그럼 다른 의견 있을까?”
“그게 없으니까 굳이… 말 안 하려고 했던 거예요.”
“흠, 좋아. 일단 알았어.”
류청우는 곧바로 김래빈에게 다시 같은 말을 물었다.
“래빈이는 어떻게 생각해?”
“제가 이 곡을 잘 모르는 상태라, 일단 들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좋아. 그럼 일단 한번 틀어보자.”
지급받은 스마트패드를 작동시키자, 고전적인 드럼 도입부를 시작으로 일렉 기타로 연주하는 후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
다들 입을 다문 채로 곡을 끝까지 들은 후에, 김래빈이 먼저 창백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이건…….”
드디어 이 선곡 참사를 알아챈 사람이 나왔군.
우선 가사는 소싯적 유행했던 청춘 애찬가였다. 좋게 말하면 복고풍, 나쁘게 말하면 올드하단 뜻이다.
당연히 꽃의 요정이나 뱀파이어 같이 특징적인 컨셉은 없고, 붙이기도 애매했다.
그리고 노래 잘하는 사람 혼자 서서 부르는 것을 기반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후렴 옥타브가 목이 찢어지도록 높았다.
만약에 옥타브를 조절하면? 곡의 매력이 사라질 것이다.
성대를 찌르는 고음의 호쾌함을 매력으로 부르는 곡이기 때문이다.
“흠, 음이 굉장히 높네. 다른 힘든 점 또 발견한 거 있어?”
“…….”
김래빈은 말을 쏟아낼 것처럼 숨을 들이켜다가, 흘끔 카메라를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지난 팀전이 방영되고 인성 논란으로 두들겨 맞은 덕분에 눈치를 보는 모양이었다.
“그러니까… 네. 곡은 좋은데, 편곡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그래? 네가 그렇게 말하는 걸 보면 진짜 어려울 것 같다.”
류청우는 선선히 수긍했다. 김래빈이 지난 1차 팀전에서 방송은 망했지만, 어쨌든 편곡을 주도해서 제대로 된 곡을 뽑았기 때문인 것 같았다.
‘2000년대 후반 양산형 EDM 곡을 샘플 비트만 남기고 잘 빠진 EDM 트랩으로 바꿨었지.’
“그럼 문대는 어땠어?”
결국, 내 턴까지 왔군.
“저는 편곡보다 먼저 정할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어떤 거?”
“파트 분배요.”
선곡에서 답이 안 보인다? 그럼 이건 중점이 잘하는 데 있어선 안 된다.
망하지 않는 데 있어야 한다.
단언하는데, 당장 팀에서 이 곡 후렴을 제대로 부를 수 있는 건 나밖에 없다.
이걸 바로 소화하려면 가창이 A- 이상은 되야 비벼볼 것 같은데, 그게 이 팀에서 나뿐이었다.
‘그렇다고 후렴을 나 혼자 다 부를 순 없지.’
그러니까 당장 삑사리 안 나게 파트 자르고 연습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했다.
편곡은 뭘 가져다 붙여도 상타가 안 나올 것 같으니 좀 미루자고.
큰 그림을 그릴 수 있는 때가 아니다. 비상사태지.
이 설명을 최대한 온건하게 전달하면 이렇게 된다.
“부르기 어려운 곡이니까 일단 빨리 연습부터 해야 할 것 같습니다.”
“파트 분배… 물론 중요하긴 하지.”
류청우는 놀란 기색이었다.
“그런데 의외네. 문대 지난번 팀전에서는 편곡부터 정하자고 했다던데?”
“예?”
방송에도 안 나온 내용이었는데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다.
“아, 큰세진이에게 들었어.”
“…….”
‘언제 류청우하고도 말 텄냐.’
역시 보통 놈이 아니었다.
“래빈아, 네가 아무래도 편곡을 제일 잘 잡으니까 물어본다. 문대 의견 어때?”
“…예. 괜찮습니다. 연습하면서 저도 여러 선택지를… 고민해 보겠습니다.”
김래빈은 쉽게 동의했다. 내일 지구에 떨어질 운석을 관측한 사람 같은 몰골이긴 했지만.
“음, 그럼 일단 의견들을 다 들어봤으니, 더 좋은 아이디어 나오기 전까지는 거수로 진행할게.”
류청우는 시간을 낭비하지 않고 곧바로 상황을 정리했다.
“일단 응원단 컨셉으로 연습을 진행하는 것에 찬성하는 사람 손.”
과반수가 손을 들었다. 나도 일단은 들었고.
류청우는 손을 들지 않는 이세진에게 특별히 눈치를 주진 않고, 곧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그럼 파트 분배부터 해도 괜찮은 사람 손.”
다행히 이것도 과반수로 통과되었다. 이세진까지 손을 든 걸 보니, 내 설명이 그래도 말은 됐나 보군.
이세진은 나와 눈이 마주치기 직전에 휙 손을 내리더니 눈을 피했다.
“…….”
의견에 동의하는 거지 너에게 동의하는 건 아니라고 보여주고 싶은 건가. 굳이?
“좋아. 그럼 파트 분배부터 하자.”
그렇게 파트 분배가 차근차근 진행되는 것 같더니, 곧 예정된 난관에 부딪혔다.
“저 여기 안 될 것 같아요.”
“어, 저도…….”
“이거 너무 키가 높다.”
후렴부 고음 멜로디는 네 번이나 나오며 곡의 절반가량을 차지했다.
그러나 박문대를 제외한 모든 팀원이 부르는 족족 실패하거나 목을 부여잡고 멋쩍은 얼굴이 됐다.
가창 B+로 썩 괜찮은 노래 실력을 가진 한 팀원은 음 이탈을 불안해하더니, 결국 ‘그’ 의견을 냈다.
“아무래도 편곡을 해서 키를 낮춘 다음에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우리 랩하는 멤버도 둘이나 있으니까, 랩도 좀 넣으면 어때요?”
편곡부터하자는 얘기다. 망할.
“키를 낮추는 건…….”
김래빈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안 그래도 나쁜 인상이 더 나빠졌다.
그러나 대세는 이미 기울어 있었다.
“낮추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저도 동의.”
“흠, 일단 팀원들이 소화는 할 수 있어야 하긴 해. 키를 낮추고 거기에 어울리게 편곡을 해보는 건 어떨까?”
김래빈은 주변을 힐끔거리다가,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럼 그렇게 해보겠습니다.”
여기서 안 하겠다고 하면 또 편집으로 작살날까 봐 아예 지고 들어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결국, ‘키 낮추기’, ‘랩 파트 추가’, ‘응원단 컨셉에 어울리는 반주’라는 통일성 없는 의견이 모두 반영된 채 편곡이 진행되었다.
감 없는 놈들이 목소리가 크면 이렇게 순조롭게 망하는구나 싶다.
무대는 이미 말아먹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나는 이 모든 과정에서 굳이 반대하지 않았다. 어차피 내가 말 해봤자 쪽수에서 밀렸다.
혹시 운 좋게 이 발동한다고 해도, 마땅한 대안도 없이 말해봤자 불만종자만 될 뿐이었다.
게다가 ‘너는 부를 수 있으니까 그대로 가자는 거지?’ 같은 소리 나오기 시작하면 답이 없었다.
안 그래도 사회성 없는 놈처럼 방송에 나오는데 이기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면 곤란했다.
그러니까, 이게 끔찍하게 구리다고 솔직히 말해줄 외부 사람이 필요했다.
‘결국, 존버가 답인가.’
1절만 보는 중간평가가 사흘 뒤였는데, 심사위원들이 귀가 있다면 누군가가 구리다고 말해주겠지.
그때까지 뭐라도 대안이나 떠올려봐야겠다.
“이제 안무 만들어요!”
하지만 차유진이 저 외침과 함께 그날 만들어낸 안무는 급 괴랄한 난이도의 움직임이었다.
덕분에 나는 대안이고 나발이고 남은 스탯 포인트를 춤에 꽂아버리고 싶은 충동을 참아야 했다.
체력이 살살 녹는 사흘이었다.
그리고, 드디어 중간평가에 들어갔다.
* * *
“이 팀 등수가 화려하네~”
“래빈이가 칼을 갈았다!”
“다들 순위 발표식 성적이 좋네요.”
심사위원들의 입에서 일단 등수부터 나왔다.
제작진이 미리 언급해달라고 말해둔 거겠지만, 어쨌든 사실이니 기대치로 작용할 것이다.
“아, 벌써 데모곡도 나왔어?”
“예!”
김래빈이 직접 편곡자와 이야기하며 진행한 덕분이었다.
“훌륭하네~”
“그러게. 이 팀이 유일하게! 벌써 원곡 아니라 자기들이 편곡한 걸로 하는 거예요.”
“역시 능력자들의 팀이야!”
심사위원들은 벌써부터 흡족해했다.
그러나.
“음….”
막상 무대가 끝난 후 반응은 미적지근했다.
어깨를 으쓱하며 시선을 교환하던 심사위원들은, 결국 하나둘씩 마이크를 잡았다.
“사실, 너희 무대 자체가 막 그렇게 나쁘단 느낌은 아니거든? 근데 매력이 없어.”
“맞아. 안무도 잘 짰어요. 위트도 좀 보이고. 음, 응원단 컨셉… 뭐 원래는 곡하고 어울려야 할 것 같은데, 왜 이렇게 우중충하지?”
“랩도 너무 뜬금없이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라 아쉽네요. 원곡을 이것저것 많이 건들긴 했는데, 원곡보다 못한 느낌이에요.”
심사평이 쌓일수록 문제점이 구체화 되기 시작했다.
결국, 마지막으로 심사위원 영린이 마이크를 잡자마자 물었다.
“편곡 누가 했나요.”
일부러 김래빈은 안 쳐다봤다. 한 놈보다는 말 꺼낸 놈이 문제였으니까.
근데 주변을 보니 다른 놈들은 다 김래빈을 쳐다봐서 별 의미는 없더라.
“저희 다 같이 상의해서 한 일입니다.”
류청우가 상황을 빠르게 파악하고 연대책임으로 돌렸다. 그리고 리더로서 팀을 잘못 이끌었다고 말해서 중화시켜 버릴 모양이었다.
괜찮은 판단이다.
하지만 어디든 트롤러가 있다.
“네. 그리고… 편곡 작업은 래빈이가 진행했어요.”
여기서 이런 식으로 꼬리를 자르겠다고?
‘미친 건가.’
카메라 돌아가는데 이렇게 멍청한 짓을 한다고?
보니까 자기도 당황한 얼굴인 게, 혹평을 받으니까 무서워서 반사적으로 딴 놈 이름을 댄 모양이었다.
‘X이이발….’
잘못하면 집단 따돌림으로 편집 들어가게 생겼다.
혹시 도매급으로 넘어갈까 봐, 나도 일단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