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7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7화
나는 지금 새벽 4시, 아파트 산책로를 개를 옆에 끼고 달리는 중이다.
“헥헥!”
어쩌다 남의 개와 함께 조깅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그것도 거의 반년 만에 만났는데도 하나도 안 반가운 놈의 개를 말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콩이 잘 뛰네. 착하다.”
당연한 소리를 칭찬하고 있는 놈은…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청려다.
‘망할.’
나는 일이 이 꼴이 된 경위를 회상했다.
나타난 놈은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개를 제어했다.
-매번 산책을 사람 없는 곳만 다녔더니, 인기척이 들리니까 좀 흥분했나 보네요. 놀랐다면 미안해요.
그리고 지나치게 태연했다. 그래서 물었다.
-나인 줄 안 것 같은데.
이 의구심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이 새벽에 근처에서 산책하는 분홍 머리 남자면… 후보군이 상당히 좁혀지지 않나?
-…….
-안개 속에서도 색이 보이던데요.
딱히 반박할 구석이 없는 설명이지. 나는 적당히 모자만 걸친 내 머리 꼴을 보고 신음했다.
당연하지만, 새벽 4시니 아무도 없을 줄 알았지.
왜 뜬금없이 여기서 산책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은 술술 나왔다.
-투어 쉬는 중에 할 게 있어서 잠깐… 숙소 생활 중이거든요. 그리고 이쪽 동이 새벽에 사람이 더 없어서.
사실이었다.
-후배님도 같은 이유로 지금 여기 있는 것 같은데.
-…….
그래.
정리하자면, 나나 저놈이나 직업군과 상황이 유사한 탓에 나온 우연이라는 거지.
‘후.’
나는 상황을 인정하고 빠르게 자리를 뜨려 했었다.
-그래. 그럼….
-어차피 가는 길도 같은데 좀 걷는 게 어때요? 후배님이 뛰어가면 콩이가 짖을 것 같아서.
-…….
-이 새벽에 민폐잖아요. 안 그런가?
나는 놈의 팔 안에서 앞발을 허우적대며 나를 보는 노란 덩어리를 확인하고, 마지못해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이다….
“와왕!”
어쩌다… 저런 새끼 밑에서 저런 개가 나온 건진 모르겠다.
‘CCTV 깔렸는데 헛짓하진 않겠지.’
나는 한숨을 참으며 기존 템포 그대로 산책로를 뛰기 시작했다.
옆에서 비슷한 속도로 뛰는 개와 개 주인도, 조깅하는 동안에는 별말 없었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음료수라도?”
“됐다.”
산책로가 끝나는 부근, 나는 준비한 수통에서 물을 마셨다. 청려는 자신의 개에게 간식을 먹였다.
“다음부터는 차라리 비니를 써요. 그편이 머리 색을 더 많이 가려주니까.”
그냥 이 시간대에 여긴 다시 안 나올 생각이다.
“…….”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그냥 고개를 까딱했다. 청려는 간식을 먹는 개를 쓰다듬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놈의 후드 아래로 보인 건… 검은색이 아닌 머리다.
‘잠깐.’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염색?”
“아, 그렇죠.”
청려가 후드 아래 머리를 손으로 건드렸다 뗐다.
어두운 녹색 머리가 천 아래로 사라졌다.
아니, 회색인가?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진 않다만… 중요한 건 색이 아니다.
“너 데뷔 이후로 한 번도 염색은 안 하지 않았나.”
적어도 내가 데이터팔이 할 동안 VTIC 청려가 염색한 꼴은 본 적이 없다.
뭔진 몰라도 컨셉 상 대격변이 있나 본데, VTIC이 다음 리패키지 컴백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힌트라도 얻어가야겠군.
나는 올해 대상의 가장 큰 걸림돌을 쳐다보았다.
‘인정하자.’
이놈들은 여전히 유지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VTIC의 지난 2월 컴백 커리어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슬슬 정체 구간을 지나서 떨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더는 상승세를 보일 수 없는 구간에서, VTIC은 전성기를 더없이 길게 끌고 있었다.
-VTIC 초동 마감 192만~~~~
└미친 거 아니냐
└ㅅㅂ 설마 군백기 때까지 폼 유지하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 이 연차에 국뽕 성적뽕 존맛
-브이틱 월드투어 리셀도 다 매진이랍신다 응 락세 안 와
-진짜 은퇴할 때까지 1군 해먹나 궁금하네
재계약을 거친 그룹의 폼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번 2월 컴백에선 50년대 브로드웨이 느낌을 아주 세련되고 어둡게 해석해와서 팬 만족도가 대단히 좋았다고 한다.
나도 확인했다. 그리고 술 깔 뻔했다.
‘퀄리티가 계속 기대 이상이야.’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올해 컴백은 이걸로 끝내줬으면 하는데, 누구 입대하기 전에 일이 년 바짝 해 먹을 것 같아서 기대는 없다.
‘머리까지 염색했으니 확정이군.’
뭘 준비하고 있긴 한 거다. 그것도 파격적인 변화와 공을 들여서.
“무슨 의외의 결과물을 보여줄 생각이길래 염색까지 했나 싶어서.”
나는 놈의 대답을 기다리며, 수통을 닫고 팔짱을 꼈다.
놈은… 실실 웃었다.
“음, 분홍색보다야 덜 의외일 것 같은데요.”
X발.
“팬분들이 좋아해.”
“그래요? 축하해요.”
한마디도 안 흘리고 슬쩍 화제를 전환한다.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안 하려고 의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테스타를 견제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VTIC 놈들이 보내던 문자와 연락을 떠올렸다.
무슨 모니터링 받는 줄 알았지.
[여러분 나온 예능 봤어요. 저희도 이번에 거기 나갑니다. ㅎㅎ]
이건 테스타 1월 활동기 끝자락 때 받은 문자였던가.
[와 두 곡 합치는 거 너무 대단한데요?? 래빈 씨… 다른 그룹에 곡 줄 생각은 없으실까요?? (빵 터지는 이모티콘)]
[^^b]
이건 콘서트 때 왔던 메시지고.
[다큐멘터리 너무 감동적이에요ㅠㅠㅠ]
음, 이건… 차유진 일 터지고 탈룰라 했다.
어쨌든, 저쪽도 꾸준히 올해의 테스타 컨텐츠를 확인할 만큼 의식하고 있다는 지점이기도 했다.
본인들은 응원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무의식중엔 분명 후발주자의 성장 확인과 상황 파악의 욕구가 있다.
‘…이번 해가 정말 치열하겠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청려가 다음으로 꺼낼 화제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한 번도 염색을 안 했었지.”
놈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그걸 후배님이 알 줄은 몰랐는데요.”
“…….”
“연구를 많이 했나? 혹시 원래 몸이었을 때 말랑달콤이 아니라 우리 팬이었어요? 아, 한 소속사를 묶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남자는… 드물었던 것 같지만.”
추측 한 번 소름 돋는군.
‘망할.’
나는 한숨을 참으며, 수통을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짧게 계산을 끝냈다.
‘좋아.’
상황이 되니 말해본다.
“누구의 팬도 아니었는데.”
“그럼?”
나는 의도적으로 흘리듯 말했다.
달려오는 개한테 정신 팔려서, 긴장을 놓고 대충 대답하듯이….
이렇게.
“사실 아이돌을 팠던 게 아니라, 대학 다닐 때 홈마들한테 아이돌 데이터를 팔았어. 그래서 돈 되는 애들을 자주 보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거지.”
“아.”
‘류건우’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에 데이터 팔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한 목적이 있는 행위다.
‘추적해라.’
이곳 ‘류건우’의 정보를 말이다.
“그게 다야.”
이놈은 분명 자기 입으로 말했었지.
나는 지난 연말, 영린의 깜짝 음원 발표 계획을 전해주던 놈을 떠올렸다.
-모르는구나. 정보원이 없어. 그렇죠? 후배님은 그게… 앞으로 가장 큰 문제겠네요.
이 말뜻은 본인은 정보원이 충분하단 뜻이다.
실제로 최측근만 알던 영린의 음원 소식을 알아낼 정도니, 스스로 증명한 것과 다름없다.
‘분명 그걸 연예계 안으로 한정하진 않았을 거야.’
외부 요인까지 다 통제하려면 연예계 인사와 연결된 다른 사정까지 알아야 하니까.
그럼 내가 쓸 수 있는 패 중에서… 쓸데없이 ‘박문대가 민간인 불법 사찰한다’는 꼬리가 안 잡히면서 류건우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건 이놈이 최적이란 뜻이다.
‘네 말대로 내가 정보원이 없으니, 있는 너라도 써먹어야겠다.’
류건우가 확실히 여기 존재했었다는 것은 류청우의 집에서 비디오로 확인했으니, 역으로 이놈을 이용해서 현재 생존 여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예 찾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이 새끼가 아는 건 몸이 바뀌었다는 걸 전제로 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류건우’가 내 약점이 될 수가 없었다.
‘뭐 가진 게 있어야 약점도 생기는 거지.’
대학 졸업할 때 즈음부터 내가 가진 건 3년 버틸 돈 외엔 없었다.
그러나 이놈은 그걸 모른다.
그럼 현재 폼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까다로운 적인 테스타를 견제하기 위해, 만일의 경우를 제어하기 위해 분명 ‘박문대 본래 몸’ 뒤를 캔다.
그동안은 저놈이 가진 게 이름 석 자뿐이라 불가능했던 거겠지.
‘단서가 이름과 연령대뿐이니까.’
그러니까, 어디 보자… ‘류건우’ 특징에 ‘데이터팔이’를 추가했을 때 이놈에게서 반응이 오면 좋겠는데.
‘여러 추론이 가능한 특징이니까.’
내 예상대로라면 이놈도 계산을 할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말랑달콤은… 팬까진 아니었지만, 호감 정도로 해둘까.”
“…….”
나는 개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개와 연결된 줄을 잡고 있던 청려가 오묘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전문적으로 업계 생활을 했던 게 맞았네.”
아이돌 데이터 파는 놈한테 전문성 같은 이야기 하고 있네.
“그냥 용돈벌이나 했지.”
“하하, 후배님 하는 걸 보면 그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음, 그 경험으로 비싸질 재목을 잘 알아보게 됐나 봐요. 재밌네.”
놈은 혼자 중얼거리며 개 줄을 들지 않은 손으로 턱을 짚었다.
안개가 껴서 표정이 또렷이 보이진 않았으나… 생각에 잠긴 게 맞는 것 같다.
‘그래.’
걸려라.
곧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카메라 든 20대 남자면… 제법 독특하잖아요. 한 번 인상착의라도 설명해 보세요. VTIC도 찍었다고 했죠? 그럼 내가 기억할 것 같아서.”
됐다.
‘역으로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군.’
나는 몸을 뒤집은 개의 귀 뒤를 만지며 생각했다.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된다.’
이 새끼 성격에 한계까지 딜을 요구하거나 뒤통수를 갈기려 들 테니까. 혹은 둘 다 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것이 도리어 수상해 보일 테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안경 쓰고 모자 쓰고 다녔어. 흔할 텐데 무슨.”
“음.”
이 정도면 적당히 사리는 느낌이 들겠지.
그러나 실질 정보는 충분하다.
-20대 초반 남성, 안경, 모자, 카메라.
분명 소속사 보관 중인 행사 영상들을 연도 맞춰서 돌려보면 ‘류건우’ 후보군들의 얼굴은 저화질이나마 딸 수 있을 것이다.
보통 관객석 앞쪽에 눈에 띄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까.
‘데이터 팔이를 돈 벌 수준으로 당기려면 당연히 위치상 대학은 서울 안이라고 생각할 테고.’
메인 방송국과 공연 시설이 주로 서울에 몰려 있으니까.
‘그럼 연도와 서울 내 대학, 나이대, 이름, 얼굴을 맞춰서 탐색하면….’
“음.”
아주 솜씨 좋은 놈이라면 금방 ‘류건우’의 근황을 털 수 있을 것도 같군.
‘됐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났다.
여기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 같다’ 따위의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게 더 어색하다.
적당히 자리를 뜨는 게 가장 자연스럽겠지.
“왕!”
내 발치의 개가 아쉬운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앞뒤로 발을 굴렀다.
“그만 들어간다.”
“음, 그래요. 잘 가요.”
청려는 자신의 개를 안아 들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보름 정도는 이 근방으로 산책 나올 예정이니까, 가끔 만나면 콩이랑 인사라도 해요.”
“……보고.”
“하하.”
나는 한숨을 참으며 놈을 뒤로하고 산책로의 안개를 빠져나왔다.
“……후.”
잘 처리한 것 같은데, 어쩐지 저 새끼만 만나면 피곤했다.
* * *
몇 분 후. 나는 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야 찝찝함을 버렸다.
‘안개에 무슨 디버프라도 걸려 있나.’
뭐, 각설하고. 결과만 보자.
청려가 내게 딜을 걸기 위해선 ‘류건우’를 찾는 순간 나에게 최소한 ‘류건우의 현재 상태’에 관해서는 정보를 흘릴 수밖에 없다.
‘좋아.’
깔끔하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머리가 다시 속도를 내서 굴러간다.
‘어제 일찍 자둬서 그런가.’
오늘 오후에는 오랜만에 활동적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잠을 좀 길게 잤으니까.
그 스케줄이 뭐냐면….
“자, 방 배정을 시작합니다~”
“와아아!”
바로 애매한 공백기를 때우기 위한, 룸메이트 배정 컨텐츠가 다시 돌아왔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7화
나는 지금 새벽 4시, 아파트 산책로를 개를 옆에 끼고 달리는 중이다.
“헥헥!”
어쩌다 남의 개와 함께 조깅을 하게 되었는지 모르겠군. 그것도 거의 반년 만에 만났는데도 하나도 안 반가운 놈의 개를 말이다.
나는 한숨을 참으며 옆을 돌아보았다.
“콩이 잘 뛰네. 착하다.”
당연한 소리를 칭찬하고 있는 놈은… 안개 속에서 튀어나온 청려다.
‘망할.’
나는 일이 이 꼴이 된 경위를 회상했다.
나타난 놈은 가벼운 운동복 차림으로 개를 제어했다.
-매번 산책을 사람 없는 곳만 다녔더니, 인기척이 들리니까 좀 흥분했나 보네요. 놀랐다면 미안해요.
그리고 지나치게 태연했다. 그래서 물었다.
-나인 줄 안 것 같은데.
이 의구심에 대한 대답은 이렇다.
-이 새벽에 근처에서 산책하는 분홍 머리 남자면… 후보군이 상당히 좁혀지지 않나?
-…….
-안개 속에서도 색이 보이던데요.
딱히 반박할 구석이 없는 설명이지. 나는 적당히 모자만 걸친 내 머리 꼴을 보고 신음했다.
당연하지만, 새벽 4시니 아무도 없을 줄 알았지.
왜 뜬금없이 여기서 산책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말은 술술 나왔다.
-투어 쉬는 중에 할 게 있어서 잠깐… 숙소 생활 중이거든요. 그리고 이쪽 동이 새벽에 사람이 더 없어서.
사실이었다.
-후배님도 같은 이유로 지금 여기 있는 것 같은데.
-…….
그래.
정리하자면, 나나 저놈이나 직업군과 상황이 유사한 탓에 나온 우연이라는 거지.
‘후.’
나는 상황을 인정하고 빠르게 자리를 뜨려 했었다.
-그래. 그럼….
-어차피 가는 길도 같은데 좀 걷는 게 어때요? 후배님이 뛰어가면 콩이가 짖을 것 같아서.
-…….
-이 새벽에 민폐잖아요. 안 그런가?
나는 놈의 팔 안에서 앞발을 허우적대며 나를 보는 노란 덩어리를 확인하고, 마지못해 방향을 돌리게 된 것이다….
“와왕!”
어쩌다… 저런 새끼 밑에서 저런 개가 나온 건진 모르겠다.
‘CCTV 깔렸는데 헛짓하진 않겠지.’
나는 한숨을 참으며 기존 템포 그대로 산책로를 뛰기 시작했다.
옆에서 비슷한 속도로 뛰는 개와 개 주인도, 조깅하는 동안에는 별말 없었다.
그 이후가 문제였다.
“음료수라도?”
“됐다.”
산책로가 끝나는 부근, 나는 준비한 수통에서 물을 마셨다. 청려는 자신의 개에게 간식을 먹였다.
“다음부터는 차라리 비니를 써요. 그편이 머리 색을 더 많이 가려주니까.”
그냥 이 시간대에 여긴 다시 안 나올 생각이다.
“…….”
나는 그렇게 대답하는 대신 그냥 고개를 까딱했다. 청려는 간식을 먹는 개를 쓰다듬으며 어깨를 으쓱했다.
그리고 고개를 숙이는 놈의 후드 아래로 보인 건… 검은색이 아닌 머리다.
‘잠깐.’
나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염색?”
“아, 그렇죠.”
청려가 후드 아래 머리를 손으로 건드렸다 뗐다.
어두운 녹색 머리가 천 아래로 사라졌다.
아니, 회색인가? 안개 때문에 잘 보이진 않다만… 중요한 건 색이 아니다.
“너 데뷔 이후로 한 번도 염색은 안 하지 않았나.”
적어도 내가 데이터팔이 할 동안 VTIC 청려가 염색한 꼴은 본 적이 없다.
뭔진 몰라도 컨셉 상 대격변이 있나 본데, VTIC이 다음 리패키지 컴백에서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힌트라도 얻어가야겠군.
나는 올해 대상의 가장 큰 걸림돌을 쳐다보았다.
‘인정하자.’
이놈들은 여전히 유지력이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다.
VTIC의 지난 2월 컴백 커리어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슬슬 정체 구간을 지나서 떨어질 때가 됐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더는 상승세를 보일 수 없는 구간에서, VTIC은 전성기를 더없이 길게 끌고 있었다.
-VTIC 초동 마감 192만~~~~
└미친 거 아니냐
└ㅅㅂ 설마 군백기 때까지 폼 유지하는 거야?ㅋㅋㅋㅋㅋㅋㅋ 이 연차에 국뽕 성적뽕 존맛
-브이틱 월드투어 리셀도 다 매진이랍신다 응 락세 안 와
-진짜 은퇴할 때까지 1군 해먹나 궁금하네
재계약을 거친 그룹의 폼이라곤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이번 2월 컴백에선 50년대 브로드웨이 느낌을 아주 세련되고 어둡게 해석해와서 팬 만족도가 대단히 좋았다고 한다.
나도 확인했다. 그리고 술 깔 뻔했다.
‘퀄리티가 계속 기대 이상이야.’
이건 어쩔 수 없었다.
올해 컴백은 이걸로 끝내줬으면 하는데, 누구 입대하기 전에 일이 년 바짝 해 먹을 것 같아서 기대는 없다.
‘머리까지 염색했으니 확정이군.’
뭘 준비하고 있긴 한 거다. 그것도 파격적인 변화와 공을 들여서.
“무슨 의외의 결과물을 보여줄 생각이길래 염색까지 했나 싶어서.”
나는 놈의 대답을 기다리며, 수통을 닫고 팔짱을 꼈다.
놈은… 실실 웃었다.
“음, 분홍색보다야 덜 의외일 것 같은데요.”
X발.
“팬분들이 좋아해.”
“그래요? 축하해요.”
한마디도 안 흘리고 슬쩍 화제를 전환한다.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말을 안 하려고 의식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테스타를 견제하는 것이다.
나는 가끔 VTIC 놈들이 보내던 문자와 연락을 떠올렸다.
무슨 모니터링 받는 줄 알았지.
이건 테스타 1월 활동기 끝자락 때 받은 문자였던가.
이건 콘서트 때 왔던 메시지고.
음, 이건… 차유진 일 터지고 탈룰라 했다.
어쨌든, 저쪽도 꾸준히 올해의 테스타 컨텐츠를 확인할 만큼 의식하고 있다는 지점이기도 했다.
본인들은 응원을 위해서라고 생각하겠지만, 무의식중엔 분명 후발주자의 성장 확인과 상황 파악의 욕구가 있다.
‘…이번 해가 정말 치열하겠군.’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청려가 다음으로 꺼낼 화제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그래, 이번엔 내가 한 번도 염색을 안 했었지.”
놈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그런데… 그걸 후배님이 알 줄은 몰랐는데요.”
“…….”
“연구를 많이 했나? 혹시 원래 몸이었을 때 말랑달콤이 아니라 우리 팬이었어요? 아, 한 소속사를 묶어서 좋아하는 사람도 있죠. 남자는… 드물었던 것 같지만.”
추측 한 번 소름 돋는군.
‘망할.’
나는 한숨을 참으며, 수통을 배낭에 넣었다. 그리고 짧게 계산을 끝냈다.
‘좋아.’
상황이 되니 말해본다.
“누구의 팬도 아니었는데.”
“그럼?”
나는 의도적으로 흘리듯 말했다.
달려오는 개한테 정신 팔려서, 긴장을 놓고 대충 대답하듯이….
이렇게.
“사실 아이돌을 팠던 게 아니라, 대학 다닐 때 홈마들한테 아이돌 데이터를 팔았어. 그래서 돈 되는 애들을 자주 보다 보니 저절로 알게 된 거지.”
“아.”
‘류건우’에 대한 정보를 흘린다.
내가 대학을 다녔던 시절에 데이터 팔이었다는 사실을.
분명한 목적이 있는 행위다.
‘추적해라.’
이곳 ‘류건우’의 정보를 말이다.
“그게 다야.”
이놈은 분명 자기 입으로 말했었지.
나는 지난 연말, 영린의 깜짝 음원 발표 계획을 전해주던 놈을 떠올렸다.
-모르는구나. 정보원이 없어. 그렇죠? 후배님은 그게… 앞으로 가장 큰 문제겠네요.
이 말뜻은 본인은 정보원이 충분하단 뜻이다.
실제로 최측근만 알던 영린의 음원 소식을 알아낼 정도니, 스스로 증명한 것과 다름없다.
‘분명 그걸 연예계 안으로 한정하진 않았을 거야.’
외부 요인까지 다 통제하려면 연예계 인사와 연결된 다른 사정까지 알아야 하니까.
그럼 내가 쓸 수 있는 패 중에서… 쓸데없이 ‘박문대가 민간인 불법 사찰한다’는 꼬리가 안 잡히면서 류건우의 행방을 추적할 수 있는 건 이놈이 최적이란 뜻이다.
‘네 말대로 내가 정보원이 없으니, 있는 너라도 써먹어야겠다.’
류건우가 확실히 여기 존재했었다는 것은 류청우의 집에서 비디오로 확인했으니, 역으로 이놈을 이용해서 현재 생존 여부 정도는 확인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아예 찾아도 상관없어.’
어차피 이 새끼가 아는 건 몸이 바뀌었다는 걸 전제로 하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니까 말이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류건우’가 내 약점이 될 수가 없었다.
‘뭐 가진 게 있어야 약점도 생기는 거지.’
대학 졸업할 때 즈음부터 내가 가진 건 3년 버틸 돈 외엔 없었다.
그러나 이놈은 그걸 모른다.
그럼 현재 폼을 유지하는 데에 가장 까다로운 적인 테스타를 견제하기 위해, 만일의 경우를 제어하기 위해 분명 ‘박문대 본래 몸’ 뒤를 캔다.
그동안은 저놈이 가진 게 이름 석 자뿐이라 불가능했던 거겠지.
‘단서가 이름과 연령대뿐이니까.’
그러니까, 어디 보자… ‘류건우’ 특징에 ‘데이터팔이’를 추가했을 때 이놈에게서 반응이 오면 좋겠는데.
‘여러 추론이 가능한 특징이니까.’
내 예상대로라면 이놈도 계산을 할 것이다.
나는 아무렇지 않게 말을 마무리했다.
“그래도 말랑달콤은… 팬까진 아니었지만, 호감 정도로 해둘까.”
“…….”
나는 개를 쓰다듬으며 피식 웃었다. 개와 연결된 줄을 잡고 있던 청려가 오묘한 얼굴로 이쪽을 쳐다보았다.
“생각보다… 전문적으로 업계 생활을 했던 게 맞았네.”
아이돌 데이터 파는 놈한테 전문성 같은 이야기 하고 있네.
“그냥 용돈벌이나 했지.”
“하하, 후배님 하는 걸 보면 그 정도가 아니었던 것 같은데요. 음, 그 경험으로 비싸질 재목을 잘 알아보게 됐나 봐요. 재밌네.”
놈은 혼자 중얼거리며 개 줄을 들지 않은 손으로 턱을 짚었다.
안개가 껴서 표정이 또렷이 보이진 않았으나… 생각에 잠긴 게 맞는 것 같다.
‘그래.’
걸려라.
곧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카메라 든 20대 남자면… 제법 독특하잖아요. 한 번 인상착의라도 설명해 보세요. VTIC도 찍었다고 했죠? 그럼 내가 기억할 것 같아서.”
됐다.
‘역으로 정보를 캐내려고 하는군.’
나는 몸을 뒤집은 개의 귀 뒤를 만지며 생각했다.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정보를 흘리는 느낌을 줘서는 안 된다.’
이 새끼 성격에 한계까지 딜을 요구하거나 뒤통수를 갈기려 들 테니까. 혹은 둘 다 할 수도 있고.
적극적으로 대답하는 것이 도리어 수상해 보일 테니, 나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안경 쓰고 모자 쓰고 다녔어. 흔할 텐데 무슨.”
“음.”
이 정도면 적당히 사리는 느낌이 들겠지.
그러나 실질 정보는 충분하다.
-20대 초반 남성, 안경, 모자, 카메라.
분명 소속사 보관 중인 행사 영상들을 연도 맞춰서 돌려보면 ‘류건우’ 후보군들의 얼굴은 저화질이나마 딸 수 있을 것이다.
보통 관객석 앞쪽에 눈에 띄는 카메라를 들고 있으니까.
‘데이터 팔이를 돈 벌 수준으로 당기려면 당연히 위치상 대학은 서울 안이라고 생각할 테고.’
메인 방송국과 공연 시설이 주로 서울에 몰려 있으니까.
‘그럼 연도와 서울 내 대학, 나이대, 이름, 얼굴을 맞춰서 탐색하면….’
“음.”
아주 솜씨 좋은 놈이라면 금방 ‘류건우’의 근황을 털 수 있을 것도 같군.
‘됐다.’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일어났다.
여기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 같다’ 따위의 말을 할 필요는 없다. 그게 더 어색하다.
적당히 자리를 뜨는 게 가장 자연스럽겠지.
“왕!”
내 발치의 개가 아쉬운 것 같은 이상한 소리를 내더니 앞뒤로 발을 굴렀다.
“그만 들어간다.”
“음, 그래요. 잘 가요.”
청려는 자신의 개를 안아 들더니,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보름 정도는 이 근방으로 산책 나올 예정이니까, 가끔 만나면 콩이랑 인사라도 해요.”
“……보고.”
“하하.”
나는 한숨을 참으며 놈을 뒤로하고 산책로의 안개를 빠져나왔다.
“……후.”
잘 처리한 것 같은데, 어쩐지 저 새끼만 만나면 피곤했다.
* * *
몇 분 후. 나는 숙소 건물 안으로 들어오면서야 찝찝함을 버렸다.
‘안개에 무슨 디버프라도 걸려 있나.’
뭐, 각설하고. 결과만 보자.
청려가 내게 딜을 걸기 위해선 ‘류건우’를 찾는 순간 나에게 최소한 ‘류건우의 현재 상태’에 관해서는 정보를 흘릴 수밖에 없다.
‘좋아.’
깔끔하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머리가 다시 속도를 내서 굴러간다.
‘어제 일찍 자둬서 그런가.’
오늘 오후에는 오랜만에 활동적인 스케줄이 있었기 때문에 잠을 좀 길게 잤으니까.
그 스케줄이 뭐냐면….
“자, 방 배정을 시작합니다~”
“와아아!”
바로 애매한 공백기를 때우기 위한, 룸메이트 배정 컨텐츠가 다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