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7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6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안에서 연애야 쉬쉬할 뿐이지 할 사람들은 다 한다.
다만 이건 건수가 좀 다르다.
아직 오디션에서 데뷔도 못 한 새끼가 여자 아이돌 번호나 수집하려고 들다니.
‘1위 두 번 한 맛이 기가 막혔나 보군.’
성적 뽕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은데, 일단 한번 정확한 확인을 거칠까.
“사심을 가지고 번호를 물어본 건가요.”
-그게…… 음, 저희 멤버들이 무대 피드백하면서 더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보셔도 괜찮다고 했거든요.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떨떠름했다.
-그랬더니 ‘곡 해석에 관해서 한 번만 더 점검해 주실 수 있겠냐’고 하면서 인하트 계정 팔로우 요청하시더라고요.
나는 피식 웃었다. 대충 알겠다.
“그런데 저희는 회사 방침상 개인 계정이 없죠.”
-네. 저희가 개인 계정이 없다 보니까…… 그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니 번호 교환까지 화제가 갔나 봐요.
솜씨 괜찮은데.
“그래서 번호 교환을?”
-아뇨! 제가 끼어들어서 매니저 언니 번호 드렸어요!
박민하의 목소리에서는 약간 뿌듯한 기색이 있었다. 나는 칭찬이라도 할까 좀 고민하다가, 이상할 것 같아서 관두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인하트 계정을 못 만드는 걸 알고 일부러 이쪽으로 대화 유도한 것 같아서요.
“음. 그렇군요.”
여기까지도 날카로운 판단이다.
‘그래서 찝찝하니까 나한테 바로 보고해 준 거군.’
한참 상승세인데 데뷔도 못 한 상태로 껄떡대는 새끼와 엮이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니까.
다만 이건…… 내 생각엔 채서담이 특별히 미리내의 어떤 멤버에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누굴 찍어놓고 한 게 아니라 무작위로 아무 연락처나 하나 낚이라는 식이야.’
이건 진짜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 과시용이다.
‘나는 이 정도 급의 여돌과 엮일 수 있을 만큼 떴다’는 증명.
이 문장에서는 묘한 경시의 냄새가 났다.
아이돌이라는 직업군에 대한.
‘이 직업에 별 뜻 없는 놈이었나.’
이런 연애용 관계를 과시 옵션에 넣어두다니. 연습생으로 몇 년 구른 놈들이면 떠올리다가도 접을 발상이었다.
근데 이놈은 ‘내가 이래도 된다’는 류의 생각을 한 것 같다.
‘분명 현실적으로 계산할 줄 아는 놈인데 말이야.’
채서담은 반년도 더 전에 SNS를 밀었다. 그리고 하는 행동과 편집 고려해서 각을 잡는 걸 보면 분명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본인의 팬과 경쟁자가 될 아이돌들을 얕잡아 본다는 것과 다름없다.
‘내가 이래도 먹힐 거라는 거야.’
그리고 그 경향이 최근 사건으로 심화된 것 같다.
‘1위 하니까 다 자기 손에 있는 것 같았는데, 거기서 선아현이 초를 쳤지. 근데 거기서 또 1위를 하면…….’
초조함과 자만심이 멋진 콜라보를 이룬 모양이다.
‘음.’
나는 몇 가지 그림을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입을 열었다.
“그냥 두세요.”
-예?
나는 웃었다.
“그냥 두시면 됩니다. 걱정 안 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인터넷 보니 다른 놈들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데, 1위 두 번에 정신 팔린 놈이 과연 어떤 견제를 받을지 상당히 기대된다.
나는 선아현을 본받아, 이 새끼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혼자 어떻게 자빠지는지 볼까.’
그리고 며칠 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채서담 럽하트 비공개 계정 (713)]
그 글은 지난 늦가을에 사라진 채서담의 계정명과 유사한 어떤 비공개 계정을 캡처해 정성스럽게 정리해 둔 글이었다.
=======================
(캡처)
채서담의 이전 인하트 계정. 주로 근황 정리 용도였던 듯
계정 이름이 ‘ChatiD1130’
그리고 이거 봐
(캡처)
‘ChatiU0417’
이 계정이 얼마 전에 생김
뒤에 붙은 숫자가 개설 날짜인 것도 비슷한 패턴
그리고 이 계정 팔로우 팔로워 전부 단 하나ㅋㅋㅋㅋ
이 모델 계정임
(캡처)
누가 봐도 연애용 럽하트ㅋ
=======================
바로 한 잘 나가는 모델의 계정과만 연결된 수상한 비공개 계정이 채서담의 것이란 글이었다.
“찾아낸 건지, 만든 건지.”
설명에 따르면 최근 이 모델의 계정에서 슬쩍 참가자와 연애를 한다는 티를 내서 역으로 추적했다고 한다.
-또또 망상병 오졌지
-걍 자작 아님?
-ㅋㅋㅋㅋ채서담 빠들 현실 부정 봐 느그 오빠 연애한대~
-이런 게 무슨 증거가 된다고 난리… 하여간 아주사 과몰입 알아줘야 함
인터넷이 시끄러워지긴 했다만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팬 대부분이 단속에 들어가 이 증거 없는 추측 글은 금방 공신력을 잃고 사라졌다.
그렇게 거칠게 논란이 잦아들려는 찰나, 짠 듯이 웬 추가 글을 올라다.
[아까 계정 채서담 맞네ㅋ (1415)]
비공개 계정을 해킹한 놈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계정 안에는 직접적인 얼굴 사진은 없었으나. 채서담으로 특정할 만한 손이나 그림자 사진이 제법 많았다.
모두 어떤 상대와 같이 나란히 서거나 손을 잡은 채였다.
“오.”
오디션 프로그램 중간에 이런 비공개 계정을 개설하다니.
예상대로의 행동 방향이다.
“방심했군.”
그리고 상대가 모델이라는 점에서 ‘과시용’이라는 내 추측이 맞았다는 걸 확인한 건 재밌었다.
다만 타이밍이 더 흥미롭다.
‘작업 들어갔나.’
터지는 속도를 보니 어디서 작당하고 미리 여기까지 다 파둔 다음에 하나씩 프레임 짜서 터뜨리는 것 같다.
‘음…… 골드 2쪽일까.’
그놈은 직전 팀전에서 리더쉽으로 부각되어서 이미 최상위권인데도 더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1위가 목전.
골드 2의 팬들이 기존 1위를 박살 낼 수 있는 기미가 보인다면 무슨 짓을 할지는 뻔했다는 뜻이다.
‘뭐 누가 했든, 우연이든 간에…… 타이밍 죽이네.’
-헐
-ㅋㅋㅋㅋㅋ연애 못 잃어서 비공개 계정까지 파시다니 진짜 진실은 추잡하구나
-그냥 갓반인으로 연애하면서 살아 힘들게 아이돌 하지 마시고ㅋ
-연애한 게 죄도 아니고 이렇게 욕하는 거 진짜 무섭다. 채서담이 기만을 한 것도 아니잖아
└응 아이돌 오디션 나와서 숨기고 연애한 게 기만이야~
댓글에선 해킹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와 사진들 때문에 연애설이 확정인 것처럼 다들 날뛰고 있었다.
‘기다려 보자’는 말은 언제나 그랬듯이 잘 먹히지 않았다. ‘연애가 무슨 기만이냐’ 같은 소리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팬들은 말려들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안 봐도 내부적으로 개판이 됐을 것이다.
‘기운 빠지지.’
돈 쓰고 시간 써서 주식을 끌어모아 줬더니 실시간 연애설이 터지니 말이다.
차라리 ‘경솔한 말과 행동’ 류의 사건이면 결집이라도 되는데, 이건 분위기가 식는 거라서.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이것만 남기고 사라지는 팬들이 벌써 눈에 보인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번 1위는 물 건너갔어.’
‘연애나 하니 그렇게 간절해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식은 사람들이 무조건 나온다.
기세가 꺾였다는 뜻이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휙 내렸다.
채서담의 현 심정이 쉽게 짐작 간다.
‘날벼락 맞은 기분이겠군.’
베스트는 지금이라도 계정을 없애고 해킹이 조작이라고 발표하는 건데…….
과연 대가리에 바람 든 놈이 전처럼 그 차가운 결론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까?
‘힘들걸.’
예상대로, 채서담 측은 하루쯤 지나고 나서야 ‘사실무근’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진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못했다.
‘상대를 제대로 설득 못 했나 보지.’
서로 오해와 조작이라고 해명하면 되돌릴 샷은 충분했는데, 초조한 나머지 타이밍을 놓친 모양이다.
“아이고, 그 친구 안 됐네~”
큰세진이 실실 웃으며 내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지나갔다. 말아먹었다는 뜻이다.
반등은 힘들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믿을 건 이제 후반 방송 분량에서 사람들 마음을 뒤흔들 컷을 받고 만회하는 정도인데…….
‘머리 돌아가는 걸 봐선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해보려고 할 수도 있지.’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엔 기사가 터졌다.
[(단독) “저희는 희생양이었어요” 잔인한 오디션 프로그램 속 탈락자들의 절규]
바로 이번 시즌 탈락자들이 익명으로 진행한 인터뷰가 고발문 형식으로 터진 것이다.
주로 제작진의 잔인한 처우와 참가자들 간의 알력 갈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 중에는 ‘그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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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순위가 높은 참가자가 일부러 다른 참가자를 모함해서 떨어뜨리는 일 같은 게…… (일어나기도 했어요.)
B: 포지션이 겹치니까, 자기가 발언권이 큰 걸 이용해서 거짓말로 사람 못된 사람 만들고. (울먹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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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팬들의 공세에 밀려 ‘유언비어’로 진압당했을 이 글이, 연애설로 이미 한 번 초토화된 판에 불길처럼 번졌다.
-이거 완전 퇴서담 아니냐 (캡처)
-ㅋㅋㅋㅋ여자 밝힐 때부터 알아봄 혐성까지 대단하다 망주사 1위!
이 추측이 익명 사이트를 돌다 양지로 나간 순간, 채서담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전까지는 계정을 털린 채서담이 피해자라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이건 분명한 가해자 저격이었고, 채서담을 견제하던 다른 팬덤들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의구심 드는 건 사실이야 너무 정황이 딱 맞으니까
-좀 침착하게 생각해 볼 필요 있는 것 같음. 탈락자들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무작정 쉴드 ㄴㄴ해
-아 어쩐지 싸하더니… ㅅㅂㅠㅠㅠ
“흠.”
역시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팠군.
곧 채서담 측에서 ‘금시초문’과 ‘고소’로 입장문을 내며 일단락되긴 했으나, 이제 데뷔는…… 흠 노력해도 간당간당하지 않을까.
이렇게 열정과 인성 두 분야에서 논란이 터진 이상, 타격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끝이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끄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근데 잠깐, 이거…….’
“아이고, 이번에도 안됐네, 안됐어~”
나는 다시 내 스마트폰을 보고 지나가려는 큰세진을 잡았다.
“야.”
“응?”
“이거 너무 우리 예상대로 아닌가.”
“…….”
큰세진은 마주 보다가, 무슨 말인지 깨달았는지 표정을 바꿨다.
“설마.”
큰세진은 골드 2에게 개인 메시지를 넣었다.
[희승아, 혹시?]
깔아놓은 밑밥을 확인한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답장이 왔다.
[ㅋㅋㅋㅋㅋㅋㅋ넹? 전 용기를 드린 것뿐]
“…….”
이런 미친놈이랑 데뷔할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지는군. 아마 경고했던 대로 이번 촬영을 하며 제대로 된 인성질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대박이네.”
나와 큰세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골드 2는 탈락자가 상담해 오는 등의 기회가 생기자마자 슬쩍 부추긴 것 같았다.
“와…… 쟤는 어쩌다 깔아놓은 대로 밑밥이 다 터졌냐.”
“들뜨고 초조하고, 자만해서 그렇겠지.”
“음, 정확한 판정이십니다~”
나는 큰세진과 기꺼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오, 아현이도 여기!”
“얘, 얘들아?”
그리고 큰세진은 방문을 열고 걸어 나오다가 어리둥절해 하는 선아현과도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현아, 빅뉴스~ 그 나쁜 놈 1위 끝났다?”
“으응?”
선아현은 내가 내미는 화면의 글을 확인한 뒤,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그래도, 신중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자리가 사람을 만드니까.”
“맞아. 그리고 보니까 진짜 아이돌에 뜻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 그래……?”
선아현은 큰세진의 태평한 덧붙임에 약간 긴장하는 것 같더니, 곧 결심한 듯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 있지…….”
“엉?”
“사, 사실, 나도…… 그랬어. 아이돌을 꼭, 하려던 거라기보단…… 춤을 계속 추고 싶어서, 나왔어.”
“……?”
갑자기 긴밀한 사정으로 대화가 튀었는데.
나는 일단 대답했다.
“아주사에?”
“으응.”
“무용은 그전에도 하고 있었잖아.”
선아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더는, 거기 못 있겠어서…….”
“…….”
“무, 무용을 계속하면, 무서웠던 사람들을 계속 만날까 봐…… 견딜 수가 없어서…… 그, 그만뒀었어.”
그쪽이 생각보다 판이 좁은지, 비슷한 또래는 아마 커리어를 쌓다 보면 계속 부딪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춤은 너무 추고 싶어서……. 이, 이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전해 보자고 생각하고, 나왔던 거야.”
나는 문득, 데뷔 초, 참가 이유를 이야기할 당시 선아현의 답이 유독 애매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의 동기가 불순하다고 판단해서 말을 제대로 못 했던 거였나.
“다들, 진지하게 나온 건데, 나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그, 그래도 지금은…… 정말 소중하고 즐겁다는 걸, 꼭 말하고 싶었어.”
“…….”
나는 잠시 선아현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
“나도 그냥 캐스팅 당해서 나왔다가 재미 붙인 거라.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애초에 뒤진다는 상태이상만 아니었어도 연이 없었을 분야다. 나는 목 뒤를 주물렀다.
“너 정도면 충분히 진지했던 거지. 열심히 했잖아.”
“…….”
선아현이 머리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큰세진이 씩 웃었다.
“맞아, 아현이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그러면 다른 직종에 있다 아이돌 하러 온 사람들은 다 그만둬야 하게?”
“……뭐?”
“아현이 이야기 중이에요~”
기가 막히게 본인이 해당 사항인 걸 들은 배세진이 거실 저편에서 불렀다. 큰세진은 천연덕스럽게 상황을 넘겼다.
그리고 선아현의 등을 쳤다.
“우리야 아현이가 용기 내서 참가해 준 덕에 더 멋진 그룹이 돼서 그냥 좋아. 문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
“……으응.”
선아현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코를 몇 번 들이키긴 했으나, 기어코 울진 않았다.
“고생했다.”
그렇게 놈은 가질 필요도 없었던 마음의 짐을 완전히 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다음 날 스케줄이 있음에도 밤까지 당시 이야기나 하며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 후로 채서담이 어떻게 되든 관심을 끊기로 했다.
어차피 밑밥도 다 회수했고, 볼 장은 다 봤으니까.
‘더는 상관없겠지.’
선아현은 이제 놈에게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다.
* * *
한바탕 사건이 지나간 뒤, 제법 날씨가 더워지는 5월 초.
“휴우.”
나는 사람과 햇빛을 피해 새벽에 아파트 단지 내 조성된 산책로로 조깅을 하는 중이다.
안개가 좀 끼긴 했지만 움직이는 덴 문제없다.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막아줘서 좋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산책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고.’
본래는 기구를 이용한 실내 운동만 주로 했는데, 한 번쯤은 패턴을 바꿔볼까 해서 말이다.
‘여유 있을 때 벌크업을 좀 해둬야지.’
왜냐하면 다음 앨범을 낼 때는…….
-와왕!
“……?”
갑자기 멀리서 들리던 개 짖는 소리가 확 가까워지더니, 내 발밑에 하네스를 찬 개가 안개를 뚫고 튀어나왔다.
“……!”
잠깐.
나는 이 개의 얼굴을 안다.
“콩아, 잠깐만.”
청려가 키우는 놈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6화
솔직히 말하자면, 이 안에서 연애야 쉬쉬할 뿐이지 할 사람들은 다 한다.
다만 이건 건수가 좀 다르다.
아직 오디션에서 데뷔도 못 한 새끼가 여자 아이돌 번호나 수집하려고 들다니.
‘1위 두 번 한 맛이 기가 막혔나 보군.’
성적 뽕에 정신을 못 차리는 것 같은데, 일단 한번 정확한 확인을 거칠까.
“사심을 가지고 번호를 물어본 건가요.”
-그게…… 음, 저희 멤버들이 무대 피드백하면서 더 궁금한 점 있으면 물어보셔도 괜찮다고 했거든요.
전화기 너머 목소리는 떨떠름했다.
-그랬더니 ‘곡 해석에 관해서 한 번만 더 점검해 주실 수 있겠냐’고 하면서 인하트 계정 팔로우 요청하시더라고요.
나는 피식 웃었다. 대충 알겠다.
“그런데 저희는 회사 방침상 개인 계정이 없죠.”
-네. 저희가 개인 계정이 없다 보니까…… 그렇게 이야기가 전개되니 번호 교환까지 화제가 갔나 봐요.
솜씨 괜찮은데.
“그래서 번호 교환을?”
-아뇨! 제가 끼어들어서 매니저 언니 번호 드렸어요!
박민하의 목소리에서는 약간 뿌듯한 기색이 있었다. 나는 칭찬이라도 할까 좀 고민하다가, 이상할 것 같아서 관두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아무래도 인하트 계정을 못 만드는 걸 알고 일부러 이쪽으로 대화 유도한 것 같아서요.
“음. 그렇군요.”
여기까지도 날카로운 판단이다.
‘그래서 찝찝하니까 나한테 바로 보고해 준 거군.’
한참 상승세인데 데뷔도 못 한 상태로 껄떡대는 새끼와 엮이는 건 짜증 나는 일이니까.
다만 이건…… 내 생각엔 채서담이 특별히 미리내의 어떤 멤버에게 관심이 있었던 건 아닌 것 같다.
‘누굴 찍어놓고 한 게 아니라 무작위로 아무 연락처나 하나 낚이라는 식이야.’
이건 진짜 연애를 하려는 게 아니라, 과시용이다.
‘나는 이 정도 급의 여돌과 엮일 수 있을 만큼 떴다’는 증명.
이 문장에서는 묘한 경시의 냄새가 났다.
아이돌이라는 직업군에 대한.
‘이 직업에 별 뜻 없는 놈이었나.’
이런 연애용 관계를 과시 옵션에 넣어두다니. 연습생으로 몇 년 구른 놈들이면 떠올리다가도 접을 발상이었다.
근데 이놈은 ‘내가 이래도 된다’는 류의 생각을 한 것 같다.
‘분명 현실적으로 계산할 줄 아는 놈인데 말이야.’
채서담은 반년도 더 전에 SNS를 밀었다. 그리고 하는 행동과 편집 고려해서 각을 잡는 걸 보면 분명 머리가 돌아가는 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짓을 하는 것은…… 본인의 팬과 경쟁자가 될 아이돌들을 얕잡아 본다는 것과 다름없다.
‘내가 이래도 먹힐 거라는 거야.’
그리고 그 경향이 최근 사건으로 심화된 것 같다.
‘1위 하니까 다 자기 손에 있는 것 같았는데, 거기서 선아현이 초를 쳤지. 근데 거기서 또 1위를 하면…….’
초조함과 자만심이 멋진 콜라보를 이룬 모양이다.
‘음.’
나는 몇 가지 그림을 생각하다가, 어깨를 으쓱하고 입을 열었다.
“그냥 두세요.”
-예?
나는 웃었다.
“그냥 두시면 됩니다. 걱정 안 하셔도 괜찮을 것 같아서요.”
인터넷 보니 다른 놈들도 무섭게 치고 올라오던데, 1위 두 번에 정신 팔린 놈이 과연 어떤 견제를 받을지 상당히 기대된다.
나는 선아현을 본받아, 이 새끼를 직접 건드리지 않고 넘어가기로 했다.
‘혼자 어떻게 자빠지는지 볼까.’
그리고 며칠 뒤. 인터넷 게시판에 글이 하나 올라왔다.
그 글은 지난 늦가을에 사라진 채서담의 계정명과 유사한 어떤 비공개 계정을 캡처해 정성스럽게 정리해 둔 글이었다.
=======================
(캡처)
채서담의 이전 인하트 계정. 주로 근황 정리 용도였던 듯
계정 이름이 ‘ChatiD1130’
그리고 이거 봐
(캡처)
‘ChatiU0417’
이 계정이 얼마 전에 생김
뒤에 붙은 숫자가 개설 날짜인 것도 비슷한 패턴
그리고 이 계정 팔로우 팔로워 전부 단 하나ㅋㅋㅋㅋ
이 모델 계정임
(캡처)
누가 봐도 연애용 럽하트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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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한 잘 나가는 모델의 계정과만 연결된 수상한 비공개 계정이 채서담의 것이란 글이었다.
“찾아낸 건지, 만든 건지.”
설명에 따르면 최근 이 모델의 계정에서 슬쩍 참가자와 연애를 한다는 티를 내서 역으로 추적했다고 한다.
-또또 망상병 오졌지
-걍 자작 아님?
-ㅋㅋㅋㅋ채서담 빠들 현실 부정 봐 느그 오빠 연애한대~
-이런 게 무슨 증거가 된다고 난리… 하여간 아주사 과몰입 알아줘야 함
인터넷이 시끄러워지긴 했다만 믿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팬 대부분이 단속에 들어가 이 증거 없는 추측 글은 금방 공신력을 잃고 사라졌다.
그렇게 거칠게 논란이 잦아들려는 찰나, 짠 듯이 웬 추가 글을 올라다.
비공개 계정을 해킹한 놈이 나온 것이다.
그리고 그 계정 안에는 직접적인 얼굴 사진은 없었으나. 채서담으로 특정할 만한 손이나 그림자 사진이 제법 많았다.
모두 어떤 상대와 같이 나란히 서거나 손을 잡은 채였다.
“오.”
오디션 프로그램 중간에 이런 비공개 계정을 개설하다니.
예상대로의 행동 방향이다.
“방심했군.”
그리고 상대가 모델이라는 점에서 ‘과시용’이라는 내 추측이 맞았다는 걸 확인한 건 재밌었다.
다만 타이밍이 더 흥미롭다.
‘작업 들어갔나.’
터지는 속도를 보니 어디서 작당하고 미리 여기까지 다 파둔 다음에 하나씩 프레임 짜서 터뜨리는 것 같다.
‘음…… 골드 2쪽일까.’
그놈은 직전 팀전에서 리더쉽으로 부각되어서 이미 최상위권인데도 더 치고 올라가는 중이다.
1위가 목전.
골드 2의 팬들이 기존 1위를 박살 낼 수 있는 기미가 보인다면 무슨 짓을 할지는 뻔했다는 뜻이다.
‘뭐 누가 했든, 우연이든 간에…… 타이밍 죽이네.’
-헐
-ㅋㅋㅋㅋㅋ연애 못 잃어서 비공개 계정까지 파시다니 진짜 진실은 추잡하구나
-그냥 갓반인으로 연애하면서 살아 힘들게 아이돌 하지 마시고ㅋ
-연애한 게 죄도 아니고 이렇게 욕하는 거 진짜 무섭다. 채서담이 기만을 한 것도 아니잖아
└응 아이돌 오디션 나와서 숨기고 연애한 게 기만이야~
댓글에선 해킹이라는 자극적인 요소와 사진들 때문에 연애설이 확정인 것처럼 다들 날뛰고 있었다.
‘기다려 보자’는 말은 언제나 그랬듯이 잘 먹히지 않았다. ‘연애가 무슨 기만이냐’ 같은 소리도 마찬가지고.
그리고 팬들은 말려들며 당혹스러워하는 분위기다. 안 봐도 내부적으로 개판이 됐을 것이다.
‘기운 빠지지.’
돈 쓰고 시간 써서 주식을 끌어모아 줬더니 실시간 연애설이 터지니 말이다.
차라리 ‘경솔한 말과 행동’ 류의 사건이면 결집이라도 되는데, 이건 분위기가 식는 거라서.
-와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마지막으로 이것만 남기고 사라지는 팬들이 벌써 눈에 보인다.
‘이 정도만으로도 이번 1위는 물 건너갔어.’
‘연애나 하니 그렇게 간절해 보이지 않아서’ 마음이 식은 사람들이 무조건 나온다.
기세가 꺾였다는 뜻이다.
나는 스마트폰 화면을 휙 내렸다.
채서담의 현 심정이 쉽게 짐작 간다.
‘날벼락 맞은 기분이겠군.’
베스트는 지금이라도 계정을 없애고 해킹이 조작이라고 발표하는 건데…….
과연 대가리에 바람 든 놈이 전처럼 그 차가운 결론에 빠르게 도달할 수 있을까?
‘힘들걸.’
예상대로, 채서담 측은 하루쯤 지나고 나서야 ‘사실무근’ 입장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사진에 대해선 구체적인 언급을 하지 못했다.
‘상대를 제대로 설득 못 했나 보지.’
서로 오해와 조작이라고 해명하면 되돌릴 샷은 충분했는데, 초조한 나머지 타이밍을 놓친 모양이다.
“아이고, 그 친구 안 됐네~”
큰세진이 실실 웃으며 내 스마트폰 화면을 보고 지나갔다. 말아먹었다는 뜻이다.
반등은 힘들겠군.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믿을 건 이제 후반 방송 분량에서 사람들 마음을 뒤흔들 컷을 받고 만회하는 정도인데…….
‘머리 돌아가는 걸 봐선 지금이라도 정신 차리고 해보려고 할 수도 있지.’
그러나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며칠 뒤엔 기사가 터졌다.
바로 이번 시즌 탈락자들이 익명으로 진행한 인터뷰가 고발문 형식으로 터진 것이다.
주로 제작진의 잔인한 처우와 참가자들 간의 알력 갈등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이 중에는 ‘그 사건’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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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 순위가 높은 참가자가 일부러 다른 참가자를 모함해서 떨어뜨리는 일 같은 게…… (일어나기도 했어요.)
B: 포지션이 겹치니까, 자기가 발언권이 큰 걸 이용해서 거짓말로 사람 못된 사람 만들고. (울먹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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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라면 팬들의 공세에 밀려 ‘유언비어’로 진압당했을 이 글이, 연애설로 이미 한 번 초토화된 판에 불길처럼 번졌다.
-이거 완전 퇴서담 아니냐 (캡처)
-ㅋㅋㅋㅋ여자 밝힐 때부터 알아봄 혐성까지 대단하다 망주사 1위!
이 추측이 익명 사이트를 돌다 양지로 나간 순간, 채서담은 엄청난 타격을 입었다.
그래도 전까지는 계정을 털린 채서담이 피해자라는 이성적인 사고를 하는 사람도 제법 있었다.
그러나 이건 분명한 가해자 저격이었고, 채서담을 견제하던 다른 팬덤들은 절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솔직히 의구심 드는 건 사실이야 너무 정황이 딱 맞으니까
-좀 침착하게 생각해 볼 필요 있는 것 같음. 탈락자들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무작정 쉴드 ㄴㄴ해
-아 어쩐지 싸하더니… ㅅㅂㅠㅠㅠ
“흠.”
역시 자기가 자기 무덤을 팠군.
곧 채서담 측에서 ‘금시초문’과 ‘고소’로 입장문을 내며 일단락되긴 했으나, 이제 데뷔는…… 흠 노력해도 간당간당하지 않을까.
이렇게 열정과 인성 두 분야에서 논란이 터진 이상, 타격은 돌이킬 수 없을 것이다.
‘끝이군.’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스마트폰 화면을 끄려다가, 잠깐 멈칫했다.
‘근데 잠깐, 이거…….’
“아이고, 이번에도 안됐네, 안됐어~”
나는 다시 내 스마트폰을 보고 지나가려는 큰세진을 잡았다.
“야.”
“응?”
“이거 너무 우리 예상대로 아닌가.”
“…….”
큰세진은 마주 보다가, 무슨 말인지 깨달았는지 표정을 바꿨다.
“설마.”
큰세진은 골드 2에게 개인 메시지를 넣었다.
깔아놓은 밑밥을 확인한 것이다.
얼마 가지 않아 답장이 왔다.
“…….”
이런 미친놈이랑 데뷔할 수 없다는 의지가 느껴지는군. 아마 경고했던 대로 이번 촬영을 하며 제대로 된 인성질이라도 느낀 모양이다.
“대박이네.”
나와 큰세진은 헛웃음을 지었다. 아무래도 골드 2는 탈락자가 상담해 오는 등의 기회가 생기자마자 슬쩍 부추긴 것 같았다.
“와…… 쟤는 어쩌다 깔아놓은 대로 밑밥이 다 터졌냐.”
“들뜨고 초조하고, 자만해서 그렇겠지.”
“음, 정확한 판정이십니다~”
나는 큰세진과 기꺼이 하이파이브를 했다.
“오, 아현이도 여기!”
“얘, 얘들아?”
그리고 큰세진은 방문을 열고 걸어 나오다가 어리둥절해 하는 선아현과도 손바닥을 마주쳤다.
“아현아, 빅뉴스~ 그 나쁜 놈 1위 끝났다?”
“으응?”
선아현은 내가 내미는 화면의 글을 확인한 뒤, 얼떨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 그렇구나. 그래도, 신중한 성격이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자리가 사람을 만드니까.”
“맞아. 그리고 보니까 진짜 아이돌에 뜻이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그, 그래……?”
선아현은 큰세진의 태평한 덧붙임에 약간 긴장하는 것 같더니, 곧 결심한 듯 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 있지…….”
“엉?”
“사, 사실, 나도…… 그랬어. 아이돌을 꼭, 하려던 거라기보단…… 춤을 계속 추고 싶어서, 나왔어.”
“……?”
갑자기 긴밀한 사정으로 대화가 튀었는데.
나는 일단 대답했다.
“아주사에?”
“으응.”
“무용은 그전에도 하고 있었잖아.”
선아현이 고개를 푹 숙였다.
“더는, 거기 못 있겠어서…….”
“…….”
“무, 무용을 계속하면, 무서웠던 사람들을 계속 만날까 봐…… 견딜 수가 없어서…… 그, 그만뒀었어.”
그쪽이 생각보다 판이 좁은지, 비슷한 또래는 아마 커리어를 쌓다 보면 계속 부딪히게 되는 것 같다.
“그런데도, 춤은 너무 추고 싶어서……. 이, 이걸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전해 보자고 생각하고, 나왔던 거야.”
나는 문득, 데뷔 초, 참가 이유를 이야기할 당시 선아현의 답이 유독 애매했던 것을 떠올렸다.
……자신의 동기가 불순하다고 판단해서 말을 제대로 못 했던 거였나.
“다들, 진지하게 나온 건데, 나는 그러지 못한 것 같아서……. 그, 그래도 지금은…… 정말 소중하고 즐겁다는 걸, 꼭 말하고 싶었어.”
“…….”
나는 잠시 선아현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
“……!”
“나도 그냥 캐스팅 당해서 나왔다가 재미 붙인 거라. 별로 그렇게 생각 안 해도 될 것 같은데.”
애초에 뒤진다는 상태이상만 아니었어도 연이 없었을 분야다. 나는 목 뒤를 주물렀다.
“너 정도면 충분히 진지했던 거지. 열심히 했잖아.”
“…….”
선아현이 머리를 숙인 채, 입을 꾹 다물고 고개를 끄덕였다. 큰세진이 씩 웃었다.
“맞아, 아현이처럼 열심히 하는 사람이 그러면 다른 직종에 있다 아이돌 하러 온 사람들은 다 그만둬야 하게?”
“……뭐?”
“아현이 이야기 중이에요~”
기가 막히게 본인이 해당 사항인 걸 들은 배세진이 거실 저편에서 불렀다. 큰세진은 천연덕스럽게 상황을 넘겼다.
그리고 선아현의 등을 쳤다.
“우리야 아현이가 용기 내서 참가해 준 덕에 더 멋진 그룹이 돼서 그냥 좋아. 문대도 그렇게 생각하지?”
“그래.”
“……으응.”
선아현은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
코를 몇 번 들이키긴 했으나, 기어코 울진 않았다.
“고생했다.”
그렇게 놈은 가질 필요도 없었던 마음의 짐을 완전히 덜게 되었다는 이야기다.
우리는 그다음 날 스케줄이 있음에도 밤까지 당시 이야기나 하며 가볍게 맥주를 마셨다.
그리고 그 후로 채서담이 어떻게 되든 관심을 끊기로 했다.
어차피 밑밥도 다 회수했고, 볼 장은 다 봤으니까.
‘더는 상관없겠지.’
선아현은 이제 놈에게 어떤 영향도 받지 않을 것이다.
* * *
한바탕 사건이 지나간 뒤, 제법 날씨가 더워지는 5월 초.
“휴우.”
나는 사람과 햇빛을 피해 새벽에 아파트 단지 내 조성된 산책로로 조깅을 하는 중이다.
안개가 좀 끼긴 했지만 움직이는 덴 문제없다. 아니, 오히려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막아줘서 좋다.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나는 걸 보니 산책하는 다른 사람이 있는 것 같고.’
본래는 기구를 이용한 실내 운동만 주로 했는데, 한 번쯤은 패턴을 바꿔볼까 해서 말이다.
‘여유 있을 때 벌크업을 좀 해둬야지.’
왜냐하면 다음 앨범을 낼 때는…….
-와왕!
“……?”
갑자기 멀리서 들리던 개 짖는 소리가 확 가까워지더니, 내 발밑에 하네스를 찬 개가 안개를 뚫고 튀어나왔다.
“……!”
잠깐.
나는 이 개의 얼굴을 안다.
“콩아, 잠깐만.”
청려가 키우는 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