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7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1화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헐.’
하도 지랄이 났던 탓에 이제 다큐멘터리란 글자만 봐도 속이 뒤틀릴 것 같던 김래빈의 팬은 순간 싸한 기분을 느꼈다.
‘야, 좀….’
괜히 긁어 부스럼 아니냐?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않아 수면 밑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화면 속 테스타가 워낙 친근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침인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멤버들을 흔들리는 손으로 찍던 촬영자가 툭툭 그들을 건드린다.
[밥 먹자.]
[와…. 졸려요.]
[…고기 먹고 싶다.]
“…??”
그러니까, 서로 친밀해 보였다는 것보다도… 그냥 그들의 행동이 담백하며 목적이나 과장 없이 실제 같았다.
제작자들의 기획과 편집을 거쳐서 잘 가공된 테스타의 영상들은 많았다.
거기서도 테스타는 개성적이며 자신의 성격을 드러냈지만, 이렇게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느낌을 대놓고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디리리링-.
느리게 반주로 깔리는 것은… 직전에 나왔던, 김래빈의 ‘마법은 너’ 어쿠스틱 기타다.
믹싱 작업을 거의 거치지 않은 날 것의 라이브 소리가 현장에 울렸다.
[음.]
[잘 모르겠지?]
[좀.]
콘서트 안무를 연습하는 컷 사이, 뭉쳐서 모니터링을 하는 모습.
호텔 방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멍하니 외국 방송을 보는 모습.
또 다른 나라의 호텔에선 보드게임을 하다가 서로 카드를 던지기도 한다.
[하하!]
기타 위로 촬영자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화면이 흔들린다.
그렇게 짧은 영상들이 이어졌다.
“…….”
김래빈의 팬은 어느새 다른 생각 없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그렇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춤을 추고, 물건을 던졌다 받고, 염색을 확인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더니 웃으며 뛰는 멤버들을 따라 화면이 뛴다.
그리고 반주가 브릿지를 지나 클라이맥스로 들어갈 때.
화아아….
직접 찍은 콘서트 준비와 뒤풀이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영상 속에서 지나갔다.
바닷가에서 다 같이 폭죽을 든 사진, 뒤풀이에서 고기를 굽는 박문대와 음료를 흔드는 이세진.
리허설 무대 장치에 올라타며 웃는 차유진….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도 모를, 테스타의 수많은 시간이었다.
활동 외에도 이들이 많은 시간을 자체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이, 하나의 화면으로, 하나의 연결로 마치 거대한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
객석은 간간이 들리던 비명도 사라진 채로 먹먹히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때야 김래빈의 팬은 내적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이… 이 치사한 놈들아!!’
이미 회장은 멜랑꼴리함으로 푹 절어 있었다.
차유진을 살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정도는 아낌없이 손절해 버렸던 그룹 팬들은 아마 중계를 보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어쩐지 코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회장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아올랐는데 안 그러는 것도 이상했다.
“하…….”
그녀는 감성 충만해진 자신을 낯설어하며 인정했다.
‘그래, 일단 통하긴 하겠다….’
오래가진 않겠지만, 콘서트의 마법에 이런 양념까지 치니 당연히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콘 끝나면 잠깐 분위기 좋아지겠네….’
그러나 멤버들이 준비한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앵콜 준비]
영상에 뜬 자막 아래, 멤버들이 작업실에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이야기하는 소리 없는 장면이 지나갔다.
그리고 편한 차림으로 녹음 부스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다른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유명한 곡을 불렀다. 그러니까… 한국에서도 그러면 좋을 것 같아서.]
손글씨로 적은 짧은 메모를 찍은 화면은, 다시 까맣게 변했다.
부드럽게 울리던 기타 소리는 클라이맥스를 찍고 은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자막.
[테스타 탄생 기념]
[200X]
[테스타가 모두 한국에 있던 해, 가장 많은 사람이 듣던 곡]
무대가 열리고 드라이아이스가 부드럽게 밀려 나오며 무대의 냄새를 깨운다.
그리고 의 메들리 대신, 멜로디가 풍부한 서정적인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
친숙하고 좋은 멜로디.
차유진과 김래빈, 그러니까 테스타의 가장 어린 멤버들이 태어났던 해 연말에 발표된 캐럴 샘플링 곡.
[나아지는 중]
한국풍 발라드로 편곡된 캐럴은 아름답게 공연장을 울렸다.
그리고 열리는 무대 바닥에서, 드라이아이스 아래로부터 리프트가 천천히 올라왔다.
단정한 겨울 평상복을 입은 멤버들은 그 위에 서 있었다.
코트를 입은 배세진이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별것 아닌 실수가 상처가 될 때
작은 상처에 무너질 것 같을 때
기교가 과하지 않은 목소리가 어쩐지 진실히 들렸다.
-나는 그냥 창가에 가만히 앉아
다음 해의 내 모습을 생각해
선아현이 맑은 저음을 올렸다.
그리고 이세진이 화음을 더해서 다음 소절을 부른다.
-같은 계절 같은 날에
문득 생각이나 돌이켜보면
오케스트라가 울렸다. 콘서트 내내 강렬한 소리를 내던 라이브 밴드는 전자악기를 멈추고 부드러운 현악기와 건반악기로 음을 쌓았다.
그 위로 맑고 강한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우울한 오늘이
내 마음에 거름이 되어
뾰족한 아픔들이
내 견고한 나사가 되어
박문대의 목소리였다. 회색 무스탕을 입은 분홍색 머리 안에서 단단한 소리가 나온다.
그 위아래로 듣기 좋은 화음이 연결되었다. 류청우의 중저음이 중심을 잡았다.
-저 밑으로 내려가 결국
내가 되어 있을 그 날에
차유진이 미소 지은 얼굴로 마지막 구절을 불렀다.
-난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어딘지 후련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아.”
가사와 노래의 분위기, 사전의 영상.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미친 것 같은 시너지를 냈다.
‘이 자식들… 진짜 애썼네.’
관객석 여기저기서 울컥하는 것을 참는 묘한 소리가 음향 아래로 간헐적으로 들린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냐며, 김래빈의 팬은 애써 차가운 이성을 유지한 것처럼 생각하려 했다.
감동 받지 않은 척 울음을 참는 인터넷 밈과 똑같은 꼴일 것이라며 스스로 자학하면서.
-넌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곡은 지나친 꾸밈없이 진실하게, 다정하게 전개되었다.
사방에서 응원봉을 느리게 흔드는 팬들의 움직임과 결을 따라 반짝이는 불빛들.
샘플링한 캐롤의 멜로디가 허밍을 타고 퍼졌다.
-Du- durururudu-
따스한 바다 깊은 곳에 잠긴 것처럼, 음과 불빛의 하모니 사이에서 관객들은 공연에 잠겼다.
-Happy new year to you
I know you’ll be okay.
온건한 저음으로, 노래는 마무리되었다.
“…….”
‘사기다.’
김래빈의 팬은 마이크를 내린 멤버들의 웃는 모습 클로즈업이 전광판에 뜨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아주 콘서트를 골수까지 빨아먹네….’
자신도 개인 팬이라 그런지, 어쩐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서 감성을 쭉 빨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테스타가 좋냐 이놈들아…. 래빈아….’
귀여운 흰 패딩을 입은 김래빈이 멤버들과 손을 잡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그녀는 복잡한 패배감을 느꼈다….
이전과 달리 자기 아이돌 이기는 팬이 수두룩하다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래빈의 팬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한순간이지! 이러고 또 다음 주만 되면 뽕 다 빠지고….’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희가 준비한 곡은 어떠셨나요?]
“완전 좋았어!!”
“와아아아!!”
어쩔 수 없다. 관객의 반사작용이었다.
멤버들은 어쩐지 기대가 만만한 얼굴로 웃더니, 리프트에서 내려와서 대형을 갖추고 뒤돌아섰다.
[바로 다음 앵콜곡 갑니다.]
‘그 옷으로??’
생각이 멈추고 의문이 튀어나온 김래빈 팬의 눈앞으로, 겨울 외투를 집어 던지는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안은 가죽바지에 흰 리넨 셔츠를 입은 전형적인 무대 의상이었다.
“어어억!!”
역시 전형적이지만 잘 먹히는 연출이었다.
장갑과 모자까지 벗어서 멀리 던진 녀석들에게 비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조명 불이 뚝 꺼졌다.
그리고 울리는 달콤한 인트로.
‘Wheel (낮)’이다.
-휠을 돌려줘
저 멀리 날아가도록
선율이 울려 아름다워
마음에 닿아 Let it pop
‘엥.’
저 곡은… 아까 했었다.
뭐, (누가 만든 곡이라 그런지) 여러 번 봐도 좋은 무대긴 했다만, 다소 의아한 건 사실이었다.
-휠을 돌려줘
네 꿈에 찾아가도록
오늘도 머물러 이대로
끝나지 않아 Let me in
그리고 의상이 ‘Wheel’ 용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좀 톡 쏘는 맛이 있었다.
언밸런스했다.
‘으음.’
급하게 준비하느라 재탕했냐.
김래빈의 팬이 약간 식으려던 순간이었다.
-날아가는 지금
휘-휘휘 휘-익!
“…!!”
갑자기, 낯익은 휘파람이 툭 곡에 끼어 들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곡에 강한 베이스와 비트가 치고 들어오더니….
거짓말처럼 드랍되었다.
-Jump off
낙하산은 필요 없어
그냥 뛰어
‘드릴이잖아!!’
그렇다. 그들의 더블 타이들인 ‘Drill (밤)’의 후렴이 순식간에 곡을 잡아먹었다.
그사이, 멤버들이 서 있던 무대는 휠의 아련하고 청량한 느낌 대신 강렬한 핀포인트 조명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입은 가죽바지에서 검은색에 묻혀 보이지 않던 야광도료가 조명에 번뜩였다.
그리고 사정없이 들어가는 ‘Drill’의 포인트 안무.
“뭐야!!”
그리고 그제야 다들 상황을 파악했다.
-들어간다 Come in
(Let me in)
이놈들, 두 타이틀을 한 곡으로 합쳐서 리믹스해 버렸다!!
그리고 중계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자막이 떴다.
테스타 – ‘Daybreak’ (Wheel + Drill)
신곡의 제목이었다.
-ㅅㅂ챌린지가 신곡 예고였을 줄은
-천재 아이돌 돌아버려
-미친거 아니야 미친 거아니야 미친 거아 니야?
-곡 개좋아; 무슨일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떠드는 동안에도 곡은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리고 후렴은 두 곡을 아예 믹스해 새 라인을 만들어 버렸다.
-Like a drill
파고들어 널 잡아
그래 아름다워
마음에 닿아 Let it pop
무슨 짓을 해놓은 것인진 모르겠지만, 둘의 분위기가 모두 죽지 않는 상태에서 기가 막히게 믹싱되었다.
듣기 좋았으나 다소 심심했던 ‘Wheel’과, 강렬했으나 다소 과했던 ‘Drill’의 구조는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그 미묘한 균형을 멤버들은 말도 안 되게 유지했다.
무대는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청량한 탄산감이 있었으나, 동시에 익살스러운 맛을 터뜨렸다.
-Turn my ferris wheel around
별처럼 터지는 불빛
두 안무에서 반응이 좋았던 장면들만 쏙쏙 뽑아 엮어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걸러서 보는 쾌감이 있었다.
“으아아악!!”
김래빈의 팬은 비명을 질렀으나 썩 들리진 않았다.
이미 주변도 비명으로 차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의외감과 충족감에서 터지는 아드레날린, 직전 무대와 대비되며 극대화된 텐션이 관객을 조였다.
-순간을 즐겨
That’s my thrill, ha!
칼처럼 맞는 단체 안무 대형 속, 차유진의 만족스러운 추임새와 덤블링이 시원하게 공연장에 꽂혔다.
아아아악!
“어으으으으….”
김래빈의 팬은 죽을 것 같은 침음을 뱉다가, 결국 인정했다.
콘서트 뽕이 빠지는 것은 아주 먼 미래일 것 같다.
* * *
테스타 서울 앵콜 콘서트 첫째 날 종료.
그 후 한 시간 반 뒤 인터넷 상황은 이렇다.
-역시 뭐든 본업이 중요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스타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냐면 보통 두 곡을 합치면 위화감 조진단 말임 이렇게 다른 곡 잘 맞기 쉽지 않음
└맞아 그리고 ‘좋은 거+ 좋은 거 = 더 좋은 거’ <- 이 공식 곡에서는 흐름 문제로 안 맞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대체 어케 해낸 거임;;
-무대 X나 잘하네 ㅅㅂ 챌린지 한 사람들 수치사할 듯
‘좋네.’
원하던 효과는 다 뽑은 것 같다.
이제 무대 퀄리티를 보고 만족한 사람들이 우리가 찍은 어설픈 다큐멘터리를 이유로 들며 휴전 무드를 유지만 해주면 된다.
그리고 그건 이미 착실히 실현 중인 것 같았다.
-테스타는… 가족이다..
-가족 영업하는 놈들 총살할 거라던 새끼 어디갔냐구요? 총살당했습니다 제 안에 없음
-어떡게 이 일곱명이 모일 수 잇어 나 진짜 감격해서 눈물이 나 테스타 포에버..☆
그룹 팬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원래 사람은 만족하면 여유로워지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휴대폰을 내렸다.
“원하던 대로 되셨습니까~”
“어.”
“얼른 앉아서 고기 먹어 박문대!”
나는 취해서 용감해진 배세진의 말대로 자리에 앉아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 콘서트 뽕이 끝나기 전에 와줄 구원 타자를 생각했다.
‘우리가 할 건 다 했지.’
피로감을 줄이고 명분과 만족감을 줬다.
그럼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적과의 전투다.
그리고 마침 아주 적당한 놈들이 온다.
팬들에게 ‘우리가 그래도 쟤네보단 낫다’, ‘다시 보니 선녀’ 같은 발언을 하게 해줄 비교 대상.
그리고 동시에… 외부의 적.
나는 직전에 확인한 기사를 떠올렸다.
[ 시즌 3 첫 무대 공개]
바로 의 새 시즌이다.
여자 아이돌이 아니라, 남자 아이돌의 시즌. 테스타의 직속 후배.
‘팬덤 유출만 방지할 수 있다면 이만한 외부의 적도 드물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71화
직접 다큐멘터리를 만들어?
‘헐.’
하도 지랄이 났던 탓에 이제 다큐멘터리란 글자만 봐도 속이 뒤틀릴 것 같던 김래빈의 팬은 순간 싸한 기분을 느꼈다.
‘야, 좀….’
괜히 긁어 부스럼 아니냐?
하지만 이 생각은 오래가지 않아 수면 밑으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화면 속 테스타가 워낙 친근해 보였기 때문이다.
아침인지,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멤버들을 흔들리는 손으로 찍던 촬영자가 툭툭 그들을 건드린다.
“…??”
그러니까, 서로 친밀해 보였다는 것보다도… 그냥 그들의 행동이 담백하며 목적이나 과장 없이 실제 같았다.
제작자들의 기획과 편집을 거쳐서 잘 가공된 테스타의 영상들은 많았다.
거기서도 테스타는 개성적이며 자신의 성격을 드러냈지만, 이렇게 대중을 의식하지 않는 느낌을 대놓고 마주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디리리링-.
느리게 반주로 깔리는 것은… 직전에 나왔던, 김래빈의 ‘마법은 너’ 어쿠스틱 기타다.
믹싱 작업을 거의 거치지 않은 날 것의 라이브 소리가 현장에 울렸다.
콘서트 안무를 연습하는 컷 사이, 뭉쳐서 모니터링을 하는 모습.
호텔 방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멍하니 외국 방송을 보는 모습.
또 다른 나라의 호텔에선 보드게임을 하다가 서로 카드를 던지기도 한다.
기타 위로 촬영자의 웃음소리가 울린다. 화면이 흔들린다.
그렇게 짧은 영상들이 이어졌다.
“…….”
김래빈의 팬은 어느새 다른 생각 없이 영상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본인이 그렇다는 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춤을 추고, 물건을 던졌다 받고, 염색을 확인하고, 무대에서 내려오더니 웃으며 뛰는 멤버들을 따라 화면이 뛴다.
그리고 반주가 브릿지를 지나 클라이맥스로 들어갈 때.
화아아….
직접 찍은 콘서트 준비와 뒤풀이 사진들이 파노라마처럼 영상 속에서 지나갔다.
바닷가에서 다 같이 폭죽을 든 사진, 뒤풀이에서 고기를 굽는 박문대와 음료를 흔드는 이세진.
리허설 무대 장치에 올라타며 웃는 차유진….
언제 어떻게 찍었는지도 모를, 테스타의 수많은 시간이었다.
활동 외에도 이들이 많은 시간을 자체적으로 공유한다는 것이, 하나의 화면으로, 하나의 연결로 마치 거대한 유성우처럼 쏟아졌다….
“…….”
객석은 간간이 들리던 비명도 사라진 채로 먹먹히 고요해졌다.
그리고, 그때야 김래빈의 팬은 내적 비명을 지를 수 있었다.
‘이… 이 치사한 놈들아!!’
이미 회장은 멜랑꼴리함으로 푹 절어 있었다.
차유진을 살리기 위해 다큐멘터리 정도는 아낌없이 손절해 버렸던 그룹 팬들은 아마 중계를 보면서도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녀도 어쩐지 코가 시큰해지는 것을 느꼈다.
회장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아올랐는데 안 그러는 것도 이상했다.
“하…….”
그녀는 감성 충만해진 자신을 낯설어하며 인정했다.
‘그래, 일단 통하긴 하겠다….’
오래가진 않겠지만, 콘서트의 마법에 이런 양념까지 치니 당연히 효과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콘 끝나면 잠깐 분위기 좋아지겠네….’
그러나 멤버들이 준비한 것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영상에 뜬 자막 아래, 멤버들이 작업실에서 치킨을 시켜 먹으며 이야기하는 소리 없는 장면이 지나갔다.
그리고 편한 차림으로 녹음 부스에 들어가는 모습까지.
손글씨로 적은 짧은 메모를 찍은 화면은, 다시 까맣게 변했다.
부드럽게 울리던 기타 소리는 클라이맥스를 찍고 은은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자막.
무대가 열리고 드라이아이스가 부드럽게 밀려 나오며 무대의 냄새를 깨운다.
그리고 의 메들리 대신, 멜로디가 풍부한 서정적인 반주가 흐르기 시작했다.
“…!”
친숙하고 좋은 멜로디.
차유진과 김래빈, 그러니까 테스타의 가장 어린 멤버들이 태어났던 해 연말에 발표된 캐럴 샘플링 곡.
한국풍 발라드로 편곡된 캐럴은 아름답게 공연장을 울렸다.
그리고 열리는 무대 바닥에서, 드라이아이스 아래로부터 리프트가 천천히 올라왔다.
단정한 겨울 평상복을 입은 멤버들은 그 위에 서 있었다.
코트를 입은 배세진이 먼저 마이크를 들었다.
-별것 아닌 실수가 상처가 될 때
작은 상처에 무너질 것 같을 때
기교가 과하지 않은 목소리가 어쩐지 진실히 들렸다.
-나는 그냥 창가에 가만히 앉아
다음 해의 내 모습을 생각해
선아현이 맑은 저음을 올렸다.
그리고 이세진이 화음을 더해서 다음 소절을 부른다.
-같은 계절 같은 날에
문득 생각이나 돌이켜보면
오케스트라가 울렸다. 콘서트 내내 강렬한 소리를 내던 라이브 밴드는 전자악기를 멈추고 부드러운 현악기와 건반악기로 음을 쌓았다.
그 위로 맑고 강한 목소리가 고조되었다.
-우울한 오늘이
내 마음에 거름이 되어
뾰족한 아픔들이
내 견고한 나사가 되어
박문대의 목소리였다. 회색 무스탕을 입은 분홍색 머리 안에서 단단한 소리가 나온다.
그 위아래로 듣기 좋은 화음이 연결되었다. 류청우의 중저음이 중심을 잡았다.
-저 밑으로 내려가 결국
내가 되어 있을 그 날에
차유진이 미소 지은 얼굴로 마지막 구절을 불렀다.
-난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어딘지 후련하게 들리는 소리였다.
“……아.”
가사와 노래의 분위기, 사전의 영상.
모든 것이 어우러지며 미친 것 같은 시너지를 냈다.
‘이 자식들… 진짜 애썼네.’
관객석 여기저기서 울컥하는 것을 참는 묘한 소리가 음향 아래로 간헐적으로 들린다.
너무 노골적이지 않냐며, 김래빈의 팬은 애써 차가운 이성을 유지한 것처럼 생각하려 했다.
감동 받지 않은 척 울음을 참는 인터넷 밈과 똑같은 꼴일 것이라며 스스로 자학하면서.
-넌 아무렇지도 않을 거야
곡은 지나친 꾸밈없이 진실하게, 다정하게 전개되었다.
사방에서 응원봉을 느리게 흔드는 팬들의 움직임과 결을 따라 반짝이는 불빛들.
샘플링한 캐롤의 멜로디가 허밍을 타고 퍼졌다.
-Du- durururudu-
따스한 바다 깊은 곳에 잠긴 것처럼, 음과 불빛의 하모니 사이에서 관객들은 공연에 잠겼다.
-Happy new year to you
I know you’ll be okay.
온건한 저음으로, 노래는 마무리되었다.
“…….”
‘사기다.’
김래빈의 팬은 마이크를 내린 멤버들의 웃는 모습 클로즈업이 전광판에 뜨는 것을 보며 중얼거렸다.
‘그냥… 아주 콘서트를 골수까지 빨아먹네….’
자신도 개인 팬이라 그런지, 어쩐지 당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몸에서 감성을 쭉 빨린 기분이었다.
‘그렇게 테스타가 좋냐 이놈들아…. 래빈아….’
귀여운 흰 패딩을 입은 김래빈이 멤버들과 손을 잡고 인사하는 것을 보며, 그녀는 복잡한 패배감을 느꼈다….
이전과 달리 자기 아이돌 이기는 팬이 수두룩하다지만, 적어도 지금 이 순간은 아니었다.
그러나 김래빈의 팬은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았다.
‘그래도 한순간이지! 이러고 또 다음 주만 되면 뽕 다 빠지고….’
“완전 좋았어!!”
“와아아아!!”
어쩔 수 없다. 관객의 반사작용이었다.
멤버들은 어쩐지 기대가 만만한 얼굴로 웃더니, 리프트에서 내려와서 대형을 갖추고 뒤돌아섰다.
‘그 옷으로??’
생각이 멈추고 의문이 튀어나온 김래빈 팬의 눈앞으로, 겨울 외투를 집어 던지는 멤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안은 가죽바지에 흰 리넨 셔츠를 입은 전형적인 무대 의상이었다.
“어어억!!”
역시 전형적이지만 잘 먹히는 연출이었다.
장갑과 모자까지 벗어서 멀리 던진 녀석들에게 비명이 쏟아지는 가운데, 조명 불이 뚝 꺼졌다.
그리고 울리는 달콤한 인트로.
‘Wheel (낮)’이다.
-휠을 돌려줘
저 멀리 날아가도록
선율이 울려 아름다워
마음에 닿아 Let it pop
‘엥.’
저 곡은… 아까 했었다.
뭐, (누가 만든 곡이라 그런지) 여러 번 봐도 좋은 무대긴 했다만, 다소 의아한 건 사실이었다.
-휠을 돌려줘
네 꿈에 찾아가도록
오늘도 머물러 이대로
끝나지 않아 Let me in
그리고 의상이 ‘Wheel’ 용이라고 하기엔 어딘가 좀 톡 쏘는 맛이 있었다.
언밸런스했다.
‘으음.’
급하게 준비하느라 재탕했냐.
김래빈의 팬이 약간 식으려던 순간이었다.
-날아가는 지금
휘-휘휘 휘-익!
“…!!”
갑자기, 낯익은 휘파람이 툭 곡에 끼어 들어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곡에 강한 베이스와 비트가 치고 들어오더니….
거짓말처럼 드랍되었다.
-Jump off
낙하산은 필요 없어
그냥 뛰어
‘드릴이잖아!!’
그렇다. 그들의 더블 타이들인 ‘Drill (밤)’의 후렴이 순식간에 곡을 잡아먹었다.
그사이, 멤버들이 서 있던 무대는 휠의 아련하고 청량한 느낌 대신 강렬한 핀포인트 조명으로 바뀌었다.
그들이 입은 가죽바지에서 검은색에 묻혀 보이지 않던 야광도료가 조명에 번뜩였다.
그리고 사정없이 들어가는 ‘Drill’의 포인트 안무.
“뭐야!!”
그리고 그제야 다들 상황을 파악했다.
-들어간다 Come in
(Let me in)
이놈들, 두 타이틀을 한 곡으로 합쳐서 리믹스해 버렸다!!
그리고 중계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사람들에게는 자막이 떴다.
테스타 – ‘Daybreak’ (Wheel + Drill)
신곡의 제목이었다.
-ㅅㅂ챌린지가 신곡 예고였을 줄은
-천재 아이돌 돌아버려
-미친거 아니야 미친 거아니야 미친 거아 니야?
-곡 개좋아; 무슨일
중계를 보는 사람들이 떠드는 동안에도 곡은 미친 듯이 질주했다.
그리고 후렴은 두 곡을 아예 믹스해 새 라인을 만들어 버렸다.
-Like a drill
파고들어 널 잡아
그래 아름다워
마음에 닿아 Let it pop
무슨 짓을 해놓은 것인진 모르겠지만, 둘의 분위기가 모두 죽지 않는 상태에서 기가 막히게 믹싱되었다.
듣기 좋았으나 다소 심심했던 ‘Wheel’과, 강렬했으나 다소 과했던 ‘Drill’의 구조는 퍼즐처럼 딱 맞아떨어졌다.
게다가 그 미묘한 균형을 멤버들은 말도 안 되게 유지했다.
무대는 강렬하면서도 어딘가 청량한 탄산감이 있었으나, 동시에 익살스러운 맛을 터뜨렸다.
-Turn my ferris wheel around
별처럼 터지는 불빛
두 안무에서 반응이 좋았던 장면들만 쏙쏙 뽑아 엮어둔 것은 ‘가장 좋은 것’을 걸러서 보는 쾌감이 있었다.
“으아아악!!”
김래빈의 팬은 비명을 질렀으나 썩 들리진 않았다.
이미 주변도 비명으로 차 있었기 때문이다.
기분 좋은 의외감과 충족감에서 터지는 아드레날린, 직전 무대와 대비되며 극대화된 텐션이 관객을 조였다.
-순간을 즐겨
That’s my thrill, ha!
칼처럼 맞는 단체 안무 대형 속, 차유진의 만족스러운 추임새와 덤블링이 시원하게 공연장에 꽂혔다.
아아아악!
“어으으으으….”
김래빈의 팬은 죽을 것 같은 침음을 뱉다가, 결국 인정했다.
콘서트 뽕이 빠지는 것은 아주 먼 미래일 것 같다.
* * *
테스타 서울 앵콜 콘서트 첫째 날 종료.
그 후 한 시간 반 뒤 인터넷 상황은 이렇다.
-역시 뭐든 본업이 중요하네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테스타 이게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냐면 보통 두 곡을 합치면 위화감 조진단 말임 이렇게 다른 곡 잘 맞기 쉽지 않음
└맞아 그리고 ‘좋은 거+ 좋은 거 = 더 좋은 거’ <- 이 공식 곡에서는 흐름 문제로 안 맞는 경우가 수두룩한데 대체 어케 해낸 거임;;
-무대 X나 잘하네 ㅅㅂ 챌린지 한 사람들 수치사할 듯
‘좋네.’
원하던 효과는 다 뽑은 것 같다.
이제 무대 퀄리티를 보고 만족한 사람들이 우리가 찍은 어설픈 다큐멘터리를 이유로 들며 휴전 무드를 유지만 해주면 된다.
그리고 그건 이미 착실히 실현 중인 것 같았다.
-테스타는… 가족이다..
-가족 영업하는 놈들 총살할 거라던 새끼 어디갔냐구요? 총살당했습니다 제 안에 없음
-어떡게 이 일곱명이 모일 수 잇어 나 진짜 감격해서 눈물이 나 테스타 포에버..☆
그룹 팬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원래 사람은 만족하면 여유로워지니까.’
나는 어깨를 으쓱하며 휴대폰을 내렸다.
“원하던 대로 되셨습니까~”
“어.”
“얼른 앉아서 고기 먹어 박문대!”
나는 취해서 용감해진 배세진의 말대로 자리에 앉아서 늦은 저녁을 먹었다.
그리고 이 콘서트 뽕이 끝나기 전에 와줄 구원 타자를 생각했다.
‘우리가 할 건 다 했지.’
피로감을 줄이고 명분과 만족감을 줬다.
그럼 다음 단계는 무엇인가? 적과의 전투다.
그리고 마침 아주 적당한 놈들이 온다.
팬들에게 ‘우리가 그래도 쟤네보단 낫다’, ‘다시 보니 선녀’ 같은 발언을 하게 해줄 비교 대상.
그리고 동시에… 외부의 적.
나는 직전에 확인한 기사를 떠올렸다.
바로 의 새 시즌이다.
여자 아이돌이 아니라, 남자 아이돌의 시즌. 테스타의 직속 후배.
‘팬덤 유출만 방지할 수 있다면 이만한 외부의 적도 드물지.’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떻게 될지 두고 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