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67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7화
겨울이 지날 때 즈음, 테스타는 미국에 이어 예정된 일본의 돔 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공연이 늘 그렇듯 직캠 공급이 뚝 떨어졌다. 덕분에 컨텐츠가 메마른 팬들은 적당한 때에 등장한 다큐멘터리를 환영했다.
공백기를 메우는 동시에 이름값을 높이기.
여기까진 계산대로였다.
팬들은 제법 설레했다.
-테스타도 찍을 때 됐지
-꿀노잼일 것 같지만 희대의 웃음벨 아이돌 테스타를 믿으십쇼
-예고 봤다 감동+영상미 위주인듯 이런 컨텐츠 별로 없었는데 궁금(턱 괴는 이모티콘)
그러니까… 첫 공개가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테스타의 다큐멘터리 초반 화가 공개된 직후, 반응은 이렇게 바뀌었다.
-아 X발
-ㅠㅠㅠㅠㅠㅠㅠㅠ
-얘들아…
플랫폼의 특성상 한꺼번에 여러 화가 공개되었기에, 팬들은 세 화를 한 번에 보며 기승전결을 파악했다.
나도 이때 처음 편집 완성본을 보았는데… 음,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스탭 : 좀 앉으시는 게….]
[박문대 : …(기침), 아뇨. 괜찮습니다.]
[류청우 : 할 수 있을 때 최선을 다하고 싶은 건… (편집), 네 모두가 그렇죠. 누구도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다큐멘터리는 계속 테스타가 콘서트와 활동 내내 얼마나 진지한지, 고통 앞에서도 무대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원래도 알았지만 애들이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피부로 느껴진다 마음이 먹먹함
-애들 진짜 고생했다…
-볼수록 쌓이는 테스타에 대한 사랑 그리고 티원에 대한 증오..
다만 과했다. 팬들이 동요해서 우울해할 정도로.
‘…질문할 때부터 알아는 봤다만.’
그래도 차유진 사태로 계약 위반 딜하면서 자제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차유진의 ‘그런 쪽’ 분량이 사라지며 다른 멤버들 분량에서 이 바이브를 더 뽑아놨다.
특히 나 말이다.
[댄스 트레이너 : 문대 씨 체력이 전 같지 않기는 해요. 어쩔 수 없죠.]
[매니저 : (사고 이후) 아티스트가 이동 중간중간 충분히 휴식하실 수 있도록 더 신경 쓰는 상황입니다.]
저건 또 언제 인터뷰를 딴 거지.
전담팀 스탭들도 나오는데,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해놔서 진짜 내가 부상 투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만들어 뒀다.
‘인터뷰를 너무 순순히 해줬나.’
내 대답은 적당했는데, 주변인 인터뷰와 시너지로 ‘담담한 척’하는 것처럼 보이게 생겼다.
덕분에 물밑으로 들어가면 팬들이 더 직설적으로 불편해하는 것도 보였다.
-편집 의도가 뭐임 이걸로 영업하라고? 이런 걸 왜 공식에서 나서서 해 아 진짜ㅋㅋㅋ 감 없네
-겨우 벗어난 PTSD 다시 쑤셔넣어주기
-보는데 솔직히 마음 불편했어 문대가 그걸 정말 보여주고 싶어 했을까? 그렇게 이 악물고 하는 애가 자기가 아프고 힘든 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기분 착잡함
하지만 큰 반향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내가 ‘불우한 가정사’로 1위 할 당시의 분위기가 더 심화되어 돌아온 정도니까.
‘호불호가 갈린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나.’
그 말뜻은 일반 대중 반응은 좋았다는 것이다.
이 신파 같은 감성 코드는 다큐멘터리가 지루하지 않도록, 내용을 관통하는 큰 스토리와 감정선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
[테스타 다큐멘터리에서 박문대 후유증 이야기.jpg]
(사진) 멤버들 인터뷰 보면 생각보다 체력 손실이 심각한 듯
(사진)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선아현 부축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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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선 날아다니던데 쓰러지는 거 보고 놀랐어ㅠㅠ (?9028 ???62)
-검정고시도 팬들한테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본 거라던데 진짜 아이돌로서 진국이긴 함 (?7241 ??417)
-다큐 볼만했음 여러 생각이 들더라 추천 ? ? ? ? ? ?(?3173 ? ?42)
…덕분에 ‘아이돌에 지나치게 진심인 박문대’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한국에서 많이 보는 컨텐츠’ 순위에 오르며 제작진의 제작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만, 상당히 민망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오~ 진국 문대 씨~”
“그만해라.”
킬킬 웃은 큰세진이 어깨를 툭 치고 소파에 앉았다.
놈의 손에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인하트와 위튜브 위주로 모니터링 중인 것 같았다.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칭찬만 해. 그리고 8부작짜리 우리 다큐 이야기가 얼마나 가겠어? 이미지 걱정 마~”
“…그렇지.”
맞는 말이다. 때의 ‘불행한 가정사를 견딘 박문대’ 이미지도 데뷔 이후 활동하며 흐려졌듯이,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 지워지기 마련이었다.
무슨 대국민 예능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OTT 서비스 전용 다큐멘터리 아닌가.
‘늦어도 다음 컴백 쯤에는 사라지겠지.’
일단 이놈이 이렇게 실없이 반응하는 것 자체가 별일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문대문대, 우리 웃긴 사진이나 좀 골라 봐. 하나 올릴까?”
“그러던가.”
나는 분위기 중화를 위해 개그를 타며, 다큐멘터리는 완성도 괜찮게 나온 것에 의의를 두기로 결심했다.
‘망하지 않았으면 됐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어떤 화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재평가되지 않는다. 시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주의해 왔던 건데.
* * *
일이 터진 것은 2주 뒤, 다큐멘터리가 한창 방영 중인 때였다.
팬 외의 대중들은 대부분 떨어졌지만, 최소한 ‘테스타의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은 상태.
남은 다큐멘터리 촬영진들도 추가 촬영을 정리한 뒤 다 떠난 그 타이밍.
대여한 작업실에서 목 뒤를 잡혔다.
“박문대!! 이거 봤어??”
“왜 그러시는….”
나는 시허옇게 질린 배세진의 상태를 보고, 시선을 돌렸다.
스마트폰.
게시판에 뜬 인기글.
1위 [차유진 카메라맨 폭행 (692)]
이게 왜… 여기 있어.
“…….”
나는 당장 글을 클릭했다.
글에는 소리 없는 짧은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성ㅠ’라는 짧은 단어가 내용의 전부였다.
그러나 반응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럴 만했다.
인상 쓴 차유진이 손으로 해당 화면을 거칠게 때리듯 누르는 것이 클로즈업 정면으로 찍혀 있었으니까.
-????
-이거 뭐임 어디서 나온 거야??
-다른 사람 아닐까
└의상이 똑같은데 무슨ㅋㅋ (캡처)
-헉
댓글에선 이미 초기에 테스타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차유진의 외양과 매칭해서, 이것이 콘서트 백스테이지이지라는 것까지 알아놨다.
그리고 상황 파악이 끝났다고 생각한 후부터는 일방적이었다.
-입모양 ‘그만해’네 와 진짜 인성ㅋㅋㅋㅋㅋㅋ
-누가 보면 카메라가 들이댄 줄 자기가 걸어와서 카메라 때리면서 그만하래
-역시 연차 차면 변하는 건 순식간이구나 와…..
└연차 찬 돌들 머리채 그만 잡자 차갑질이 인성 터진 건데 물타기 오져
└차갑질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충격이라 말이 안 나옴 진짜 차유진이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함
-인싸인 줄 알았는데 분조장 찌질이었던 것
순식간에 멸칭에 조롱에 낙인까지 끝났다.
카메라에 손 쓰는 게 너무 깨끗하게 찍혀서, 사람들이 이 건은 더 시비를 가릴 것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차유진의 기존 이미지가 워낙 밝고 친화력 좋았기 때문에 파장은 더 컸다.
“회사는요.”
“…알 거야. 스탭들 이야기하는 걸 들은 거니까.”
“잠깐.”
나는 당장 나가서 최신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고 해명문을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판도는….
[같은 멤버가 무대에 진심인 동안 폭력적으로 진상 부리는 아이돌.jpg]
[어쩐지 다큐에 차유진만 진지한 모습이 없더만 이렇게 이유를 알 줄이야ㅋㅋㅋㅋ]
[박문대 보기 부끄럽지도 않나]
X발, 나랑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류청우도 그러더니 X나 손부터 나오는 놈들만 모아둔 듯]
[리더한테 물든 거 아니야?ㅋㅋㅋ]
류청우와는 엮기 시작했다. 비슷한 논란이 있었으니까.
다만 류청우는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이 확실했고, 다른 각도 영상에서 해명이 됐다.
그러니 류청우 개인 팬들은 진절머리를 내며 액션을 취했다.
[류청우 좀 그만 놔줘 매번 이러네]
[차유진 = 때림, 류청우 = 막음]
[대체 언제까지 저 쪽한테 피해 봐야 해?]
차유진 쪽을 손절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차유진 팬덤이 쌓아온 사건 사고와 이미지 때문이다.
유독 ‘차유진만’ 좋아하는 개인 팬의 목소리가 강한 초기 시절의 임팩트가 컸기 때문이다.
이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전혀 다른 개인들이 팬덤의 대다수라고 해도 이미지는 계승된다.
증거가 너무 또렷한 나머지 우호적인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고, 남은 건 쌓인 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래 차유진 탈퇴하고 솔로를 해… 지친다
-병크 멤버 취급 안 합니다
로 시작되어 데뷔와 각종 갈등을 거치며 묵은 폐단이 가장 안 좋은 타이밍을 맞아 마침내 터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거치며 내 이미지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더… 쉬웠다.
개인 팬들의 분위기는 이미 박살 났다.
물론 그룹 팬들 분위기도 초상집이 따로 없고.
“…….”
“…너 괜찮아?”
“괜찮….”
나는 말을 하다 말았다. 괜찮지 않았으니까.
기분이 X 같았다.
“미팅부터 하죠.”
회사는 당연히 뒤집혔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연락하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기를 쓴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제작진 누군가가 컴퓨터가 고장 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거기서 유출됐다는 거네요.”
“예. 주인이 방송국 관계자 같으니까 이미 삭제한 용량도 복구한 모양이에요.”
직원이 ‘이걸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멤버들의 설득에 못 이겨 꺼낸 설명이었다.
“이런 식으로 개인정보 유출되기도 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솔직히 범죄에 당한 거라 관리 소홀 책임을 묻기도 어렵고….”
그래, 그 이후로는 알겠다.
연예인에 관련된 뭐라도 건져보려던 범죄자가 월척을 낚았지만, 차유진의 동영상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관심을 끌고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질 나쁜 딥 웹(Deep Web) 중 하나에 글과 동영상을 올린다.
그리고 그 사이트 이용자 중 누군가가 이 동영상을 흥미 위주로 일반 웹사이트에 다시 유출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SNS와 커뮤니티로 퍼진 것이다.
“…….”
근데 X발 원리를 알면 뭐하나, 답이 안 보이는데.
이건 정상 해명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그랬다?’
안 통한다. ‘불만 있으면 손부터 나가는구나’로 받아친다.
‘때리는 게 아니라 누른 것이며,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무례한 요청을 받는 멤버를 보호하기 위해….’
누가 믿겠는가? 증거가 없지 않은가.
이미 데이터를 다 폐기했는데.
그냥 변명일 뿐이다.
그 와중에 ‘대기업 아이돌이 영세 스튜디오 제작진한테 갑질한다’ 프레임까지 쓰면… 정말 답이 없다.
공식 입장을 어떻게 내든 꼬투리가 잡힌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차유진이 옆에서 손을 들었다.
“저 사과해요?”
“잠깐, 잠깐만. 유진아!”
“기다려 보자.”
멤버들이 다짜고짜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사과하면 인정하는 거지. 일단 하지 마.”
이게 X발 맞는 소린지 모르겠다. 차라리 사과하는 게 낫나? 근데 저놈이 뭘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지?
다른 답도 안 보였다.
차유진의 동영상은 너무 강하다. 그렇다면 이걸 반전시키기 위해선 이보다 강한 진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원래 진실이란 건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가공해야 하는데.
‘언플….’
안 돼. 안 먹힐 것이다.
회사에서 별것 아닌 것으로 축소하든, 사과하든, 상황을 아무리 상세히 설명하든 안 먹힌다. 지루하고 변명처럼 들린다.
충격적이고 직관적인, 한 번에 딱 이해가 가능한 증거가 필요하지만….
없잖아.
“일단 상황이 좀 가라앉는지 지켜보면서 기다릴게요.”
“예.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 주 공연도 있는데 컨디션 관리를….”
회의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회사는 아마 밤샘 모니터링을 하며 끝없는 회의를 하겠지.
나도 스마트폰을 끼고 간만의 모니터링에 거의 밤을 새웠다.
-계정 닫습니다 더는 못 하겠음
-바람 잘 날이 없네.. 나 좋다고 하는 덕질 피곤하게 하지 말아야지 날 더 아껴줘야지. 전 이제 안 들어옵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ㅌㅅㅌ가 이렇게 락세 맞게 될 줄은 몰랐다…
잠이 안 왔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나와 비슷한 짓을 했는지 다른 놈들도 얼굴이 볼 만했다.
한 놈을 제외하고.
“너 괜히 인터넷 보지 마라.”
차유진 말이다. 놀랍게도 이놈이 그나마 안색이 나았다.
“네!”
차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형, 너무 절 걱정하지 마요. 언제나 진실은 결국 일하니까요.]
머리에 피가 솟는다.
이 새낀 뭘 믿고 이렇게 태평해. 네가 무슨 욕을 먹는 줄 알고.
“그러니까! 안 통할…….”
나는 입을 악물었다.
…미쳤나?
방금 아무 쓸모도 없이 사기만 낮추는 말이 튀어나올 뻔하지 않았나.
내 일도 아니고, 남의 일에.
‘…아니, 한배를 탄 거니까.’
그룹 팬들 나가떨어지는 것도 간밤에 충분히 봤다.
그러나… 나도 안다. 이건 결국 차유진이 거의 혼자 감당할 문제가 될 것이다.
이 화제가 지나가면 그룹은 회복하지만, 차유진에겐 다시 누군가 사건을 말할 때마다 뒤집히지 않을 꼬리표로 남을 테니까.
그런데도 차유진은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형, 저는 정말 괜찮아요. 저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무대 못 하는 거 아니니까요.”
“…….”
[또 저는 괜찮아도, 팀원들은 괜찮지 않다고 할 예정이에요?]
“…그건.”
[절 위해 그만 신경 써줘요!]
차유진은 웃었으나, 결국 마지막엔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죄송해요. 팀에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니까.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놈들이 잘못한 게 맞다고 동의했지. 그걸로 끝난 일이다.”
“우… That’s sweet. 고맙습니다!”
마음고생을 안 한 건 아닌지, 차유진은 제법 감동 받은 기색이었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앞으로도 마음고생을 하게 될 텐데 말이지.’
그런데도 여전히 정답은 없었다.
때로는 풀 수 없는 오해도 생기는 것을… 인정해야 하나.
나는 본인 방으로 들어가는 차유진을 등지고 소파에 앉았다.
“…….”
저놈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으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래.
‘그냥… 상황이 X 같이 나쁜 쪽으로 맞아떨어진 거지.’
…정말인가?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위화감이 들었다.
어딘가 인위적이었다.
‘정말 그게 답인가?’
하필 차유진 동영상이, 하필 운 나쁘게 컴퓨터에서 유출된 게 전부라고?
…기본 전제로 돌아가 보자.
‘애초에 저 동영상이 대체 왜 그 컴퓨터에 남아 있었지?’
우리가 조치에 들어가며, 차유진 저 촬영분은 다 파기하지 않았나.
수리 샵에서 복구를 했다고 해도 저렇게 깔끔하게 결정적인 부분만 살았다고?
그 긴 촬영분 중에?
“……아.”
나는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잘라 놨네.”
이 새끼들, 나중에 협상이든 뭐든 써먹을 데가 있을까 봐 차유진 필름을 일부만 잘라서 개인 컴퓨터에 보관해 놓은 것이다.
앞뒤 정황이 나오면 본인들만 불리해지니, 차유진이 행동을 취하는 부분만 딱 잘라서.
‘개X끼들이.’
유출은 의도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이 새끼들이 원인이었다.
‘다큐 찍는다는 새끼들이 사명감 대신 해먹을 생각만 가득해서.’
“하하.”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나는 빠르게 놈들의 스튜디오 정보와 명단을 확인했다.
차유진 이미지가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이 새끼들도 뭔가는 회복이 안 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약점.’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우선 내가 받아서 찍어둔 다큐멘터리 계약서의 이미지 파일들을 다 확인했다.
대표, 담당 프로듀서, 작가….
그리고 담당자 메일 주소.
-문석춘
/ slowchoon2@myfilmj.com
회사 메일이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건 메일 주소 앞 아이디니까.
‘아이디는 잘 안 바꾸지.’
이 스튜디오 홈페이지에서 연혁을 확인한 뒤, 설립 이전으로 검색 조건을 줄인다.
그런 뒤 아이디를 흔한 검색엔진 주소와 엮어, 이름들과 함께 몇 번 조합을 바꾸어 검색하면….
몇 년이나 된 예전 기사들이 몇 가지 뜬다. 어떤 프로그램 런칭 이야기다.
그리고 내용 하단에, 뜨는 ‘새롭게 합류하는’ 스튜디오 제작진의 주소와 이름이 있다.
일치한다.
‘그렇지.’
한두 개 정도는 이런 것까지 기재하는 기사가 있을 법하지.
“찾았다.”
-스튜디오 이오제의 문석춘 프로듀서(slowchoon2@ioujay.com)….
그리고 이 기사의 제목은?
[ 시즌2 제작 확정]
그렇다.
이 새끼들, 혼성 기획했다가 패망한 제작진들이었다.
프로그램을 말아먹고 예능국에서 나오며, 교양국 쪽 스튜디오로 넘어온 것이다.
“재밌네.”
나는 이빨이 보이게 웃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7화
겨울이 지날 때 즈음, 테스타는 미국에 이어 예정된 일본의 돔 투어를 시작했다.
그리고 일본에서의 공연이 늘 그렇듯 직캠 공급이 뚝 떨어졌다. 덕분에 컨텐츠가 메마른 팬들은 적당한 때에 등장한 다큐멘터리를 환영했다.
공백기를 메우는 동시에 이름값을 높이기.
여기까진 계산대로였다.
팬들은 제법 설레했다.
-테스타도 찍을 때 됐지
-꿀노잼일 것 같지만 희대의 웃음벨 아이돌 테스타를 믿으십쇼
-예고 봤다 감동+영상미 위주인듯 이런 컨텐츠 별로 없었는데 궁금(턱 괴는 이모티콘)
그러니까… 첫 공개가 끝나기 전까지는 말이다.
테스타의 다큐멘터리 초반 화가 공개된 직후, 반응은 이렇게 바뀌었다.
-아 X발
-ㅠㅠㅠㅠㅠㅠㅠㅠ
-얘들아…
플랫폼의 특성상 한꺼번에 여러 화가 공개되었기에, 팬들은 세 화를 한 번에 보며 기승전결을 파악했다.
나도 이때 처음 편집 완성본을 보았는데… 음, 이렇게 설명할 수 있겠다.
다큐멘터리는 계속 테스타가 콘서트와 활동 내내 얼마나 진지한지, 고통 앞에서도 무대를 완성하고 싶어 하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원래도 알았지만 애들이 이 일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피부로 느껴진다 마음이 먹먹함
-애들 진짜 고생했다…
-볼수록 쌓이는 테스타에 대한 사랑 그리고 티원에 대한 증오..
다만 과했다. 팬들이 동요해서 우울해할 정도로.
‘…질문할 때부터 알아는 봤다만.’
그래도 차유진 사태로 계약 위반 딜하면서 자제할 줄 알았는데, 도리어 차유진의 ‘그런 쪽’ 분량이 사라지며 다른 멤버들 분량에서 이 바이브를 더 뽑아놨다.
특히 나 말이다.
저건 또 언제 인터뷰를 딴 거지.
전담팀 스탭들도 나오는데, 편집을 기가 막히게 해놔서 진짜 내가 부상 투혼이라도 하는 것처럼 만들어 뒀다.
‘인터뷰를 너무 순순히 해줬나.’
내 대답은 적당했는데, 주변인 인터뷰와 시너지로 ‘담담한 척’하는 것처럼 보이게 생겼다.
덕분에 물밑으로 들어가면 팬들이 더 직설적으로 불편해하는 것도 보였다.
-편집 의도가 뭐임 이걸로 영업하라고? 이런 걸 왜 공식에서 나서서 해 아 진짜ㅋㅋㅋ 감 없네
-겨우 벗어난 PTSD 다시 쑤셔넣어주기
-보는데 솔직히 마음 불편했어 문대가 그걸 정말 보여주고 싶어 했을까? 그렇게 이 악물고 하는 애가 자기가 아프고 힘든 건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것 같은데 그냥 기분 착잡함
하지만 큰 반향은 아니었다. 기껏해야 내가 ‘불우한 가정사’로 1위 할 당시의 분위기가 더 심화되어 돌아온 정도니까.
‘호불호가 갈린다… 정도로 정리할 수 있나.’
그 말뜻은 일반 대중 반응은 좋았다는 것이다.
이 신파 같은 감성 코드는 다큐멘터리가 지루하지 않도록, 내용을 관통하는 큰 스토리와 감정선을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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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멤버들 인터뷰 보면 생각보다 체력 손실이 심각한 듯
(사진) 무대에서 내려오면서 선아현 부축받는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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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선 날아다니던데 쓰러지는 거 보고 놀랐어ㅠㅠ (?9028 ???62)
-검정고시도 팬들한테 부끄럽고 싶지 않아서 본 거라던데 진짜 아이돌로서 진국이긴 함 (?7241 ??417)
-다큐 볼만했음 여러 생각이 들더라 추천 ? ? ? ? ? ?(?3173 ? ?42)
…덕분에 ‘아이돌에 지나치게 진심인 박문대’ 이미지가 강화되었다.
‘한국에서 많이 보는 컨텐츠’ 순위에 오르며 제작진의 제작 의도는 성공했다고 볼 수 있겠다만, 상당히 민망했다는 것만 말해두겠다.
“오~ 진국 문대 씨~”
“그만해라.”
킬킬 웃은 큰세진이 어깨를 툭 치고 소파에 앉았다.
놈의 손에도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다. 인하트와 위튜브 위주로 모니터링 중인 것 같았다.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다들 칭찬만 해. 그리고 8부작짜리 우리 다큐 이야기가 얼마나 가겠어? 이미지 걱정 마~”
“…그렇지.”
맞는 말이다. 때의 ‘불행한 가정사를 견딘 박문대’ 이미지도 데뷔 이후 활동하며 흐려졌듯이, 이것도 시간이 흐르면 지워지기 마련이었다.
무슨 대국민 예능에 출연한 것도 아니고 고작해야 OTT 서비스 전용 다큐멘터리 아닌가.
‘늦어도 다음 컴백 쯤에는 사라지겠지.’
일단 이놈이 이렇게 실없이 반응하는 것 자체가 별일 아니라는 뜻이기도 했다.
“문대문대, 우리 웃긴 사진이나 좀 골라 봐. 하나 올릴까?”
“그러던가.”
나는 분위기 중화를 위해 개그를 타며, 다큐멘터리는 완성도 괜찮게 나온 것에 의의를 두기로 결심했다.
‘망하지 않았으면 됐다.’
그러나 섣부른 판단이었다.
어떤 화제는, 시간이 지난다고 자연스럽게 재평가되지 않는다. 시들지 않는다.
…그래서 더 주의해 왔던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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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터진 것은 2주 뒤, 다큐멘터리가 한창 방영 중인 때였다.
팬 외의 대중들은 대부분 떨어졌지만, 최소한 ‘테스타의 다큐멘터리가 나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은 상태.
남은 다큐멘터리 촬영진들도 추가 촬영을 정리한 뒤 다 떠난 그 타이밍.
대여한 작업실에서 목 뒤를 잡혔다.
“박문대!! 이거 봤어??”
“왜 그러시는….”
나는 시허옇게 질린 배세진의 상태를 보고, 시선을 돌렸다.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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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차유진 카메라맨 폭행 (692)]
이게 왜… 여기 있어.
“…….”
나는 당장 글을 클릭했다.
글에는 소리 없는 짧은 동영상이 첨부되어 있었다. 그리고 ‘인성ㅠ’라는 짧은 단어가 내용의 전부였다.
그러나 반응은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럴 만했다.
인상 쓴 차유진이 손으로 해당 화면을 거칠게 때리듯 누르는 것이 클로즈업 정면으로 찍혀 있었으니까.
-????
-이거 뭐임 어디서 나온 거야??
-다른 사람 아닐까
└의상이 똑같은데 무슨ㅋㅋ (캡처)
-헉
댓글에선 이미 초기에 테스타의 다큐멘터리에 등장한 차유진의 외양과 매칭해서, 이것이 콘서트 백스테이지이지라는 것까지 알아놨다.
그리고 상황 파악이 끝났다고 생각한 후부터는 일방적이었다.
-입모양 ‘그만해’네 와 진짜 인성ㅋㅋㅋㅋㅋㅋ
-누가 보면 카메라가 들이댄 줄 자기가 걸어와서 카메라 때리면서 그만하래
-역시 연차 차면 변하는 건 순식간이구나 와…..
└연차 찬 돌들 머리채 그만 잡자 차갑질이 인성 터진 건데 물타기 오져
└차갑질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 충격이라 말이 안 나옴 진짜 차유진이 이럴 줄은 상상도 못 함
-인싸인 줄 알았는데 분조장 찌질이었던 것
순식간에 멸칭에 조롱에 낙인까지 끝났다.
카메라에 손 쓰는 게 너무 깨끗하게 찍혀서, 사람들이 이 건은 더 시비를 가릴 것도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차유진의 기존 이미지가 워낙 밝고 친화력 좋았기 때문에 파장은 더 컸다.
“회사는요.”
“…알 거야. 스탭들 이야기하는 걸 들은 거니까.”
“잠깐.”
나는 당장 나가서 최신글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고 해명문을 조절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판도는….
X발, 나랑 비교하기 시작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류청우와는 엮기 시작했다. 비슷한 논란이 있었으니까.
다만 류청우는 안전을 보호한다는 명목이 확실했고, 다른 각도 영상에서 해명이 됐다.
그러니 류청우 개인 팬들은 진절머리를 내며 액션을 취했다.
차유진 쪽을 손절한 것이다.
그리고 이건… 차유진 팬덤이 쌓아온 사건 사고와 이미지 때문이다.
유독 ‘차유진만’ 좋아하는 개인 팬의 목소리가 강한 초기 시절의 임팩트가 컸기 때문이다.
이젠 그렇지 않다고 해도, 전혀 다른 개인들이 팬덤의 대다수라고 해도 이미지는 계승된다.
증거가 너무 또렷한 나머지 우호적인 사람들도 입을 다물었고, 남은 건 쌓인 게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뿐이었다.
-그래 차유진 탈퇴하고 솔로를 해… 지친다
-병크 멤버 취급 안 합니다
로 시작되어 데뷔와 각종 갈등을 거치며 묵은 폐단이 가장 안 좋은 타이밍을 맞아 마침내 터진 것이다.
다큐멘터리를 거치며 내 이미지가 워낙 좋았기 때문에, 더… 쉬웠다.
개인 팬들의 분위기는 이미 박살 났다.
물론 그룹 팬들 분위기도 초상집이 따로 없고.
“…….”
“…너 괜찮아?”
“괜찮….”
나는 말을 하다 말았다. 괜찮지 않았으니까.
기분이 X 같았다.
“미팅부터 하죠.”
회사는 당연히 뒤집혔다.
그리고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연락하며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알아내기 위해 기를 쓴 것 같았다.
그래서 결론은….
“…그러니까 다큐멘터리 제작진 누군가가 컴퓨터가 고장 나서 수리를 맡겼는데, 거기서 유출됐다는 거네요.”
“예. 주인이 방송국 관계자 같으니까 이미 삭제한 용량도 복구한 모양이에요.”
직원이 ‘이걸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멤버들의 설득에 못 이겨 꺼낸 설명이었다.
“이런 식으로 개인정보 유출되기도 한다는 소리를 듣긴 했는데, 솔직히 범죄에 당한 거라 관리 소홀 책임을 묻기도 어렵고….”
그래, 그 이후로는 알겠다.
연예인에 관련된 뭐라도 건져보려던 범죄자가 월척을 낚았지만, 차유진의 동영상은 본인이 관심 있는 분야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관심을 끌고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질 나쁜 딥 웹(Deep Web) 중 하나에 글과 동영상을 올린다.
그리고 그 사이트 이용자 중 누군가가 이 동영상을 흥미 위주로 일반 웹사이트에 다시 유출했다.
그렇게 순식간에 SNS와 커뮤니티로 퍼진 것이다.
“…….”
근데 X발 원리를 알면 뭐하나, 답이 안 보이는데.
이건 정상 해명이 통하는 상황이 아니었다.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무리한 요구를 해서 그랬다?’
안 통한다. ‘불만 있으면 손부터 나가는구나’로 받아친다.
‘때리는 게 아니라 누른 것이며, 다큐멘터리 촬영으로 무례한 요청을 받는 멤버를 보호하기 위해….’
누가 믿겠는가? 증거가 없지 않은가.
이미 데이터를 다 폐기했는데.
그냥 변명일 뿐이다.
그 와중에 ‘대기업 아이돌이 영세 스튜디오 제작진한테 갑질한다’ 프레임까지 쓰면… 정말 답이 없다.
공식 입장을 어떻게 내든 꼬투리가 잡힌다.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던 차유진이 옆에서 손을 들었다.
“저 사과해요?”
“잠깐, 잠깐만. 유진아!”
“기다려 보자.”
멤버들이 다짜고짜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나는 나도 모르게 말했다.
“사과하면 인정하는 거지. 일단 하지 마.”
이게 X발 맞는 소린지 모르겠다. 차라리 사과하는 게 낫나? 근데 저놈이 뭘 잘못했다고 사과해야 하지?
다른 답도 안 보였다.
차유진의 동영상은 너무 강하다. 그렇다면 이걸 반전시키기 위해선 이보다 강한 진실이 필요했다.
그리고 당연하지만, 원래 진실이란 건 그렇게 인상적이지 않다. 가공해야 하는데.
‘언플….’
안 돼. 안 먹힐 것이다.
회사에서 별것 아닌 것으로 축소하든, 사과하든, 상황을 아무리 상세히 설명하든 안 먹힌다. 지루하고 변명처럼 들린다.
충격적이고 직관적인, 한 번에 딱 이해가 가능한 증거가 필요하지만….
없잖아.
“일단 상황이 좀 가라앉는지 지켜보면서 기다릴게요.”
“예. 여러분 너무 걱정하지 마시고 다음 주 공연도 있는데 컨디션 관리를….”
회의는 그렇게 흐지부지 끝났다. 하지만 회사는 아마 밤샘 모니터링을 하며 끝없는 회의를 하겠지.
나도 스마트폰을 끼고 간만의 모니터링에 거의 밤을 새웠다.
-계정 닫습니다 더는 못 하겠음
-바람 잘 날이 없네.. 나 좋다고 하는 덕질 피곤하게 하지 말아야지 날 더 아껴줘야지. 전 이제 안 들어옵니다 그동안 감사했어요
-ㅌㅅㅌ가 이렇게 락세 맞게 될 줄은 몰랐다…
잠이 안 왔으니까.
그리고 다음 날. 나와 비슷한 짓을 했는지 다른 놈들도 얼굴이 볼 만했다.
한 놈을 제외하고.
“너 괜히 인터넷 보지 마라.”
차유진 말이다. 놀랍게도 이놈이 그나마 안색이 나았다.
“네!”
차유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말을 덧붙였다.
머리에 피가 솟는다.
이 새낀 뭘 믿고 이렇게 태평해. 네가 무슨 욕을 먹는 줄 알고.
“그러니까! 안 통할…….”
나는 입을 악물었다.
…미쳤나?
방금 아무 쓸모도 없이 사기만 낮추는 말이 튀어나올 뻔하지 않았나.
내 일도 아니고, 남의 일에.
‘…아니, 한배를 탄 거니까.’
그룹 팬들 나가떨어지는 것도 간밤에 충분히 봤다.
그러나… 나도 안다. 이건 결국 차유진이 거의 혼자 감당할 문제가 될 것이다.
이 화제가 지나가면 그룹은 회복하지만, 차유진에겐 다시 누군가 사건을 말할 때마다 뒤집히지 않을 꼬리표로 남을 테니까.
그런데도 차유진은 놀라울 만큼 담담했다.
“형, 저는 정말 괜찮아요. 저 그런 거 신경 안 써요. 무대 못 하는 거 아니니까요.”
“…….”
“…그건.”
차유진은 웃었으나, 결국 마지막엔 풀이 죽은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죄송해요. 팀에 피해를 준 건 사실이니까. 꼭 말씀드리고 싶었어요.] 죄송합니다….”
“그럴 필요 없어.”
나는 침착하게 대답했다.
“내가 그놈들이 잘못한 게 맞다고 동의했지. 그걸로 끝난 일이다.”
“우… That’s sweet. 고맙습니다!”
마음고생을 안 한 건 아닌지, 차유진은 제법 감동 받은 기색이었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앞으로도 마음고생을 하게 될 텐데 말이지.’
그런데도 여전히 정답은 없었다.
때로는 풀 수 없는 오해도 생기는 것을… 인정해야 하나.
나는 본인 방으로 들어가는 차유진을 등지고 소파에 앉았다.
“…….”
저놈 잘못은 아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조치를 다 했으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다.
그래.
‘그냥… 상황이 X 같이 나쁜 쪽으로 맞아떨어진 거지.’
…정말인가?
나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위화감이 들었다.
어딘가 인위적이었다.
‘정말 그게 답인가?’
하필 차유진 동영상이, 하필 운 나쁘게 컴퓨터에서 유출된 게 전부라고?
…기본 전제로 돌아가 보자.
‘애초에 저 동영상이 대체 왜 그 컴퓨터에 남아 있었지?’
우리가 조치에 들어가며, 차유진 저 촬영분은 다 파기하지 않았나.
수리 샵에서 복구를 했다고 해도 저렇게 깔끔하게 결정적인 부분만 살았다고?
그 긴 촬영분 중에?
“……아.”
나는 그제야 상황을 제대로 파악했다.
“잘라 놨네.”
이 새끼들, 나중에 협상이든 뭐든 써먹을 데가 있을까 봐 차유진 필름을 일부만 잘라서 개인 컴퓨터에 보관해 놓은 것이다.
앞뒤 정황이 나오면 본인들만 불리해지니, 차유진이 행동을 취하는 부분만 딱 잘라서.
‘개X끼들이.’
유출은 의도적이지 않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어쨌든 이 새끼들이 원인이었다.
‘다큐 찍는다는 새끼들이 사명감 대신 해먹을 생각만 가득해서.’
“하하.”
갑자기 머리가 핑핑 돌아갔다.
나는 빠르게 놈들의 스튜디오 정보와 명단을 확인했다.
차유진 이미지가 완전한 회복이 불가능하다면, 이 새끼들도 뭔가는 회복이 안 되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약점.’
정보가 필요했다.
나는 우선 내가 받아서 찍어둔 다큐멘터리 계약서의 이미지 파일들을 다 확인했다.
대표, 담당 프로듀서, 작가….
그리고 담당자 메일 주소.
-문석춘
/ slowchoon2@myfilmj.com
회사 메일이지만 상관없다. 중요한 건 메일 주소 앞 아이디니까.
‘아이디는 잘 안 바꾸지.’
이 스튜디오 홈페이지에서 연혁을 확인한 뒤, 설립 이전으로 검색 조건을 줄인다.
그런 뒤 아이디를 흔한 검색엔진 주소와 엮어, 이름들과 함께 몇 번 조합을 바꾸어 검색하면….
몇 년이나 된 예전 기사들이 몇 가지 뜬다. 어떤 프로그램 런칭 이야기다.
그리고 내용 하단에, 뜨는 ‘새롭게 합류하는’ 스튜디오 제작진의 주소와 이름이 있다.
일치한다.
‘그렇지.’
한두 개 정도는 이런 것까지 기재하는 기사가 있을 법하지.
“찾았다.”
-스튜디오 이오제의 문석춘 프로듀서(slowchoon2@ioujay.com)….
그리고 이 기사의 제목은?
그렇다.
이 새끼들, 혼성 기획했다가 패망한 제작진들이었다.
프로그램을 말아먹고 예능국에서 나오며, 교양국 쪽 스튜디오로 넘어온 것이다.
“재밌네.”
나는 이빨이 보이게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