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65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5화
예상대로 앵콜 자체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See ya!!]
차유진은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무대 위를 질주하며 카메라와 관객을 찾았다.
그리고 무대 뒤로 내려가는 순간까지 그 텐션을 유지했다.
‘좋아.’
나는 콘서트의 여운이 빠지지 않은 머리를 가라앉혔다.
이대로 내려가서 차유진과 이야기를 한 뒤, 그걸 베이스로 회사 끼고 제작진과 다시 말 좀 해봐야겠다.
그림 뽑으려는 건 알겠지만 작작 하자고.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백스테이지에서부터 카메라 들고 있던 놈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우리에게 따라붙었다.
‘이 새끼들 정말 포기를 모르네.’
화를 내면 도리어 실제 삶과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내심 좋아할 것이란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
차유진은 힐끗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보았으나, 다른 말 없이 물을 건네받아 마셨다.
‘진정한 것 같군.’
무대 하면서 속 좀 풀었나 보다. 나는 수건으로 목을 닦아내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때였다.
제작진이 재빨리 나에게 다가왔다. 카메라가 바짝 따라붙었다.
“유진 씨가 굉장히 평정심을 빨리 찾으시는데… 혹시 예전 사고에서-”
“그만해요.”
“…!”
차유진이 불쑥 끼어들더니, 카메라를 손으로 눌렀다.
돌발 행동이었다.
“어어!”
“저 말했어요. 왜 이렇게 말 안 들어요?”
“잠깐.”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이러면 우리 쪽이 먼저 선 넘은 게 된다고.’
갑자기 튀어나온 액션에 숨 고르던 멤버들이 기겁하고 달라붙었다.
그러나 차유진은 꽤 오랫동안 카메라를 누르는 손을 떼지 않고 제작진을 쳐다보았다.
“유진아, 카메라 놔.”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잠깐만, 잠깐만요. 감독님 죄송한데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할게요. 잠시만요.”
큰세진이 겨우 상황을 끊고 제작진을 좋게 좋게 따돌린 뒤, 대기실로 직행했다.
탁.
“앉자.”
“…….”
차유진은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류청우가 운을 뗐다.
“유진아, 제작진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일하는데 손부터 나가면 안 돼. 대화를 해야지.”
“제 말 안 들었어요.”
“잠시만요, 형. 차유진, 들어봐.”
큰세진이 끼어들었다.
“너 때는 울면서도 그냥 버텼어. 우리 데뷔 초에 리얼리티 찍을 때 숙소에 카메라 쫙 깔렸을 때도 아무 말 안 했어, 맞지?”
상황의 급박함과 심각성 때문인지 평소처럼 살살 달래는 투는 아니었다.
“근데 지금 와서 이러면 사람들이 네 말이 맞고 안 맞고를 생각해 줄 것 같아? 그냥 떠서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거 달라요.”
“다를 수 있지. 근데 시청자한테 안 보이면 아무 소용 없다?”
“…….”
“유진아, 원래 일하면서 모든 게 다 네 눈에 합리적이고 옳을 순 없어. 그게 가능하면 신이지 사람이야? 일단 카메라 손댄 건 사과 먼저 하고….”
그러나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발이 들어왔다.
“…아니, 이건 저 사람들이 먼저 잘못한 게 맞아. 무례했잖아.”
“…!”
배세진이다.
“그건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 데뷔할 때 참았으니까 지금도 참으라는 건 이상해.”
“세, 세진 형.”
선아현이 안절부절하며 불렀지만, 배세진은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대신 큰세진의 얼굴에 짧은 짜증이 스치고 지나갔다.
“형. 지금 그 이야기 할 때…. 아니, 제가 저 사람들 잘했다고 사과하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 잘 넘어가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꼭 그래야 해?”
“…와, 그러니까… 후우.”
“그만.”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런 걸로 저희끼리 말 길어질 필요 없어요. 그냥 제작진과 이야기해서 필름 빼면 되니까.”
의견 갈릴 상황은 맞지만, 끝장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냥 이 순간만 조심하면 된다.
나는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일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잖아요.”
“…….”
둘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안 부딪히려고 기를 쓰더니 역시 안 맞는군.
‘개판 될 뻔했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차유진에게 말을 던졌다.
“…넌 머리 좀 식혀라.”
“…….”
대답은 없었다.
나는 김래빈이 머뭇거리다가 방 안에 남는 것을 확인한 뒤, 녀석들 앞에 물을 두고 방 밖으로 나왔다.
류청우 끼고 제작진과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또 카메라가 따라붙… X발 이건 좀 작작 해야지.
나는 차유진이 누른 카메라와 카메라 감독의 상태를 걱정해 주는 류청우의 빈말을 적당히 거들다가, 본론을 꺼냈다.
“멤버들이 오늘은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내일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시는 건 어떠세요.”
“네네. 근데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지금 짧게 인터뷰만 가능할까요? 내일 쉬시는 걸로 아는데, 정말 짧게 잠시만요.”
“…잠시.”
오, 말이 안 통한다.
‘차유진이 이것 때문에 빡친 건가?’
무인 카메라가 아니라 이렇게 들러붙는 게 눈에 보이니, 파파라치 소굴에서 살던 미국 놈 입장에선 겹쳐 보여서 더 열 받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제작진 입장에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거고.’
피로하고 감정이 흔들린 상태에서 대화하면 진솔한 답변으로 연결되기 쉬우니까.
우리가 차유진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니 ‘야 X발 다큐고 나발이고 때려치워!’라 말하지 않을 타입이라는 각이 나오나 보지.
다행히 곧바로 총알같이 뛰어온 회사 스탭들이 끼어들어서 제작진들을 달래고 돌려보냈다.
“이러시면 저희가 정말 안 돼요, 곤란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초조한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유진 씨가 혹시 다큐 제작진과… 그, 마찰 있으셨나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한데요.”
류청우는 방을 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그냥 두죠. 머리 식히게.”
“그래. 그게 맞겠다.”
어차피 내일은 정말 일정이 없었다. 콘서트 끝나고 녹초가 된 놈들이 호텔 칩거하다가 다큐멘터리 코멘트나 좀 따는 게 전부였으니까.
스태프들은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납득하고 차유진이 방 밖에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너무 터치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네. 저희가 꼭 주의할게요.”
어지간해선 그룹 안에서 자체 해결하거나 무던히 넘기는 놈들과 일하다 보니, 스태프들도 이런 사태가 상당히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그래도 할 일은 제법 했다.
“여러분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두 분 나오실 때까지 저희가 기다릴게요.”
“…….”
그래. 어차피 내일 아침에도 바로 볼 테니, 지금은 그냥 가자. 괜히 견해 다른 놈들이 붙어 있다가 아까처럼 쓸데없는 싸움으로 번지면 손해다.
‘김래빈이 붙어 있으니 괜찮겠지.’
이럴 땐 연상보단 동갑이 편할 것이다.
“들어가시죠.”
“…그래.”
멤버들은 좀 찝찝하다는 얼굴이었으나, 결국 수긍한 뒤에 차로 이동했다.
“무, 문자라도 보내볼까요…? 영어로요.”
“음, 내일 아침에 식사하면서 천천히 얼굴 보고 대화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으응….”
위로도 좋다만, 본인도 자기 행동을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극히 피곤한 상태로 내 호텔방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씻고 바로 취침했다.
“…후.”
내일 아침은 차유진 입맛에 맞춰줘야겠군.
그리고 제작진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들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다른 놈들이 평상시 아침 식사 집합 시간까지 다 나타나는 동안, 차유진은 나오지 않았다.
“…….”
“지금 9시 반 넘었죠?”
“응.”
나는 입을 열었다.
“래빈아.”
“예!”
“어제 차유진 어땠어.”
“말이 없으며 다소 기운이 빠져 보였으나, 특별히 분노를 더 표출하진 않았습니다!”
“…그래?”
“예. 아마 현 상황은 늦잠을 자거나, 일종의 시위로 판단됩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모자를 고쳐 썼다.
“데리고 올게요. 너도 가자.”
“제가…? 아니, 넵. 알겠습니다!”
나는 오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놈들을 뒤로 한 채, 김래빈을 대동하고 차유진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장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
응답이 없었다.
“차유진. 문 열어라.”
여전히 없다. 아무리 이 복도 라인을 우리가 다 잡았다고 하지만 더 소리 지르긴 그랬다.
이 정도라도 분명 들었을 텐데.
‘진짜 시위하나.’
멀리 간다. 나는 한숨을 쉬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차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
[고객님의 전화기가 꺼져 있어….]
“…….”
이거… 싸한데.
“형?”
나는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본 뒤, 상황을 인정했다.
“래빈아.”
“예?”
“매니저 형 불러라.”
나는 차유진의 방문을 쳐다보았다.
“차유진 방에 없는 것 같다.”
“…!!”
잠시 후.
“진짜네.”
호텔 직원을 대동해 열어본 차유진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망할.’
상상도 못 한 사태였다.
‘실수였나?’
이놈을 아침까지 머리 식히게 둘 게 아니라, 당장 술 까고 앉아서 어르고 달랬어야 했나?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무슨 닌자도 아니고 탈주를….’
나는 혀를 씹을 뻔하다가, 간신히 매니저에게 물었다.
“혹시 간밤에 연락받으신 적 있나요.”
“아뇨! 유진 씨께 연락받은 적은 없는데…!?”
회사 사람들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그럴 만했다. 활동 이후 처음 만나는 탈주 사례였으니까.
다만 아예 흔적 없이 증발한 건 아니었다.
-저 나가요
그나마 이 쪽지는 하나 남겨뒀기 때문이다. 한글로 큼직하게도 써놨다.
“유, 유진이가 마음이 많이 상했나 봐요….”
“그렇다고 이렇게 잠적하는 건 이상……. 잠깐, 혹시 납치 같은 거 아니야?”
“그랬다면 이 방이 이것보다 더 끔찍한 꼴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 바보가 제 발로 자발적으로 나간 겁니다!”
“그렇네.”
그 말이 맞았다.
납치라고 하기엔 방 컨디션이 너무 좋았고, 애초에 누구 침입이 쉽게 가능할 호텔도 아니었다.
다만 침착하게 보니,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음.”
나는 방 안을 한번 돌아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간 건 아니야.”
“그, 그럴까…?”
“그래. 짐을 다 두고 갔어. 지갑과 휴대폰만 챙겨서 나갔는데… 충동적으로 한 건가.”
자고 일어나서도 열 받으니 일단 나가버렸을 가능성이 크지 않나, 짐작을….
그 순간, 김래빈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 그래.”
녀석은 침을 삼키더니,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그냥… 스케줄 없으니까 놀러 나간 것 같습니다만.”
“…….”
“…….”
잠깐.
“그럴 수… 있겠네.”
“예!”
배세진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꺼졌잖아…!”
“그냥 노는데 방해 안 받으려고 꺼둔 것 같습니다.”
“…….”
그렇지. 어차피 쉬는 날이니까 굳이 회사 허락을 안 받아도 됐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충분하다.
멤버들은 당황했다.
“마, 맞아. 그랬을 수도.”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다니…….”
류청우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음, 하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상황을 좀 더 살펴보고 준비하자.”
“오케이. 알겠습니다~ 그럼 CCTV 돌려볼까요?”
“제가 바로 확인할 테니까 여러분 일단 대기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 오실 거예요!”
매니저가 호텔 직원을 데리고 당장 달렸다. 열심히 일하는 건 좋다만, 폭탄 떨어진 심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수색 자체라면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걸로 찾을 수 있겠는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 *
차유진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을 발끝으로 툭 쳤다.
모처럼의 휴일, 날 밝은 아침에 외출하는 것은 꽤 한가로운 일이었다.
‘날씨 좋네.’
그러나 썩 기분이 상쾌하진 않았다. 그는 울적함을 떨치기 위해 두 팔로 목 뒤를 괴었다.
‘머리를 식히라’고 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 나왔으나, 이렇든 저렇든 그가 썩 잘못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는 게 결론이었다.
‘음, 사과는 안 해.’
대신 왜 그가 카메라 든 멍청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인지 팀원들에게 잘 이야기해 봐야겠다고, 그는 결론 내렸다.
다만 좀 떨떠름하긴 했다.
‘아무도 내 상태는 신경도 안 쓰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 상황에 밤새 문자 한 통 안 넣는 게 말이 되냐며 그는 투덜거렸다.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할 사람은 정말로 없는 것일….
“차유진.”
“…!”
익숙하지만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차유진은 의자에서 거의 뛰어오를 뻔했다.
“형??”
“그래. 나다.”
박문대였다.
‘맙소사.’
그의 팀원은 바닷가 모래사장을 한바탕 달려서 그에게 뛰어왔다.
썩 반가운 모습이었으나, 놀라운 일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지?
“어떻게 나 찾았어요? 나 찾은 거예요?”
“그게 중요하냐?”
박문대는 가벼운 차림이었다. 그리고 제법 열심히 자신을 찾아다닌 듯 분홍 머리가 바닷바람에 뻗쳤다.
그러나 화를 내는 대신 피식 웃으며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주변 가게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너 갈 곳이야 뻔하지. 단 거 팔면서 바닷가 근처인 곳 검색하니까 이 카페 길이 호텔에서 가깝던데.”
“…….”
“넌 분명 이 근처에 있을 줄 알았다.”
정확한 추리였다. 차유진은 떨떠름함이나 소름에 앞서서 좀 감탄해 버렸다.
“형 대단해요.”
“어. 아니까 일단 아이스크림이나 먹어라. 여기 외부 음식 반입되지?”
[팁이 충분하면요. 여기가 디즈니랜드도 아니잖아요?]
썩 괜찮은 농담이었지만, 박문대는 그다지 이해한 것 같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차유진은 그냥 넘어갔다.
애초에 문화로만 따지자면, 그 또래의 남자가 휘황찬란하게 염색하고 앉아 있는 꼴 자체가 썩 미국적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박문대의 본론은 차유진이 아이스크림을 반 이상 먹었을 때 시작되었다.
“그럼 먹으면서 말해봐라. 대체 왜 제작진한테 그랬는지.”
[꼭 심문같이 들리는데요?]
“추궁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테니까 물어보는 거야.”
박문대가 팔짱을 꼈다.
“너 똑똑한 놈이잖아.”
차유진은 답지 않게 약간 감동했다.
그래서 어깨를 으쓱한 뒤, 바로 입을 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5화
예상대로 앵콜 자체는 무사히 진행되었다.
차유진은 언제 소리를 질렀냐는 듯 무대 위를 질주하며 카메라와 관객을 찾았다.
그리고 무대 뒤로 내려가는 순간까지 그 텐션을 유지했다.
‘좋아.’
나는 콘서트의 여운이 빠지지 않은 머리를 가라앉혔다.
이대로 내려가서 차유진과 이야기를 한 뒤, 그걸 베이스로 회사 끼고 제작진과 다시 말 좀 해봐야겠다.
그림 뽑으려는 건 알겠지만 작작 하자고.
그러나 그럴 틈도 없이, 백스테이지에서부터 카메라 들고 있던 놈들이 무대 아래로 내려오는 우리에게 따라붙었다.
‘이 새끼들 정말 포기를 모르네.’
화를 내면 도리어 실제 삶과의 경계가 허물어졌다고 내심 좋아할 것이란 강력한 예감이 들었다.
“…….”
차유진은 힐끗 다큐멘터리 제작진을 보았으나, 다른 말 없이 물을 건네받아 마셨다.
‘진정한 것 같군.’
무대 하면서 속 좀 풀었나 보다. 나는 수건으로 목을 닦아내며 상황을 정리했다.
그때였다.
제작진이 재빨리 나에게 다가왔다. 카메라가 바짝 따라붙었다.
“유진 씨가 굉장히 평정심을 빨리 찾으시는데… 혹시 예전 사고에서-”
“그만해요.”
“…!”
차유진이 불쑥 끼어들더니, 카메라를 손으로 눌렀다.
돌발 행동이었다.
“어어!”
“저 말했어요. 왜 이렇게 말 안 들어요?”
“잠깐.”
이 새끼 갑자기 왜 이래?
‘이러면 우리 쪽이 먼저 선 넘은 게 된다고.’
갑자기 튀어나온 액션에 숨 고르던 멤버들이 기겁하고 달라붙었다.
그러나 차유진은 꽤 오랫동안 카메라를 누르는 손을 떼지 않고 제작진을 쳐다보았다.
“유진아, 카메라 놔.”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잠깐만, 잠깐만요. 감독님 죄송한데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할게요. 잠시만요.”
큰세진이 겨우 상황을 끊고 제작진을 좋게 좋게 따돌린 뒤, 대기실로 직행했다.
탁.
“앉자.”
“…….”
차유진은 말없이 소파에 앉았다. 류청우가 운을 뗐다.
“유진아, 제작진들이 불편할 수 있지만… 그래도 일하는데 손부터 나가면 안 돼. 대화를 해야지.”
“제 말 안 들었어요.”
“잠시만요, 형. 차유진, 들어봐.”
큰세진이 끼어들었다.
“너 때는 울면서도 그냥 버텼어. 우리 데뷔 초에 리얼리티 찍을 때 숙소에 카메라 쫙 깔렸을 때도 아무 말 안 했어, 맞지?”
상황의 급박함과 심각성 때문인지 평소처럼 살살 달래는 투는 아니었다.
“근데 지금 와서 이러면 사람들이 네 말이 맞고 안 맞고를 생각해 줄 것 같아? 그냥 떠서 사람이 변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거 달라요.”
“다를 수 있지. 근데 시청자한테 안 보이면 아무 소용 없다?”
“…….”
“유진아, 원래 일하면서 모든 게 다 네 눈에 합리적이고 옳을 순 없어. 그게 가능하면 신이지 사람이야? 일단 카메라 손댄 건 사과 먼저 하고….”
그러나 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반발이 들어왔다.
“…아니, 이건 저 사람들이 먼저 잘못한 게 맞아. 무례했잖아.”
“…!”
배세진이다.
“그건 확실히 해야 한다고 생각해. 데뷔할 때 참았으니까 지금도 참으라는 건 이상해.”
“세, 세진 형.”
선아현이 안절부절하며 불렀지만, 배세진은 말을 철회하지 않았다.
대신 큰세진의 얼굴에 짧은 짜증이 스치고 지나갔다.
“형. 지금 그 이야기 할 때…. 아니, 제가 저 사람들 잘했다고 사과하라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 잘 넘어가려고 하는 거겠지. 그런데 꼭 그래야 해?”
“…와, 그러니까… 후우.”
“그만.”
나는 손을 들었다. 그리고 관자놀이를 눌렀다.
“이런 걸로 저희끼리 말 길어질 필요 없어요. 그냥 제작진과 이야기해서 필름 빼면 되니까.”
의견 갈릴 상황은 맞지만, 끝장 볼 필요도 없는 일이다. 그냥 이 순간만 조심하면 된다.
나는 모든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일하다 보면 이런 일도 있는 거잖아요.”
“…….”
둘은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 안 부딪히려고 기를 쓰더니 역시 안 맞는군.
‘개판 될 뻔했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있는 차유진에게 말을 던졌다.
“…넌 머리 좀 식혀라.”
“…….”
대답은 없었다.
나는 김래빈이 머뭇거리다가 방 안에 남는 것을 확인한 뒤, 녀석들 앞에 물을 두고 방 밖으로 나왔다.
류청우 끼고 제작진과 대화를 해볼 생각이었는데, 또 카메라가 따라붙… X발 이건 좀 작작 해야지.
나는 차유진이 누른 카메라와 카메라 감독의 상태를 걱정해 주는 류청우의 빈말을 적당히 거들다가, 본론을 꺼냈다.
“멤버들이 오늘은 좀 쉬어야 할 것 같은데, 내일 만나서 다시 이야기하시는 건 어떠세요.”
“네네. 근데 정말 죄송하지만, 혹시 지금 짧게 인터뷰만 가능할까요? 내일 쉬시는 걸로 아는데, 정말 짧게 잠시만요.”
“…잠시.”
오, 말이 안 통한다.
‘차유진이 이것 때문에 빡친 건가?’
무인 카메라가 아니라 이렇게 들러붙는 게 눈에 보이니, 파파라치 소굴에서 살던 미국 놈 입장에선 겹쳐 보여서 더 열 받을 수도 있겠다.
‘그리고 제작진 입장에선 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거고.’
피로하고 감정이 흔들린 상태에서 대화하면 진솔한 답변으로 연결되기 쉬우니까.
우리가 차유진을 수습하는 모습을 보니 ‘야 X발 다큐고 나발이고 때려치워!’라 말하지 않을 타입이라는 각이 나오나 보지.
다행히 곧바로 총알같이 뛰어온 회사 스탭들이 끼어들어서 제작진들을 달래고 돌려보냈다.
“이러시면 저희가 정말 안 돼요, 곤란해요!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초조한 얼굴로 우리에게 물었다.
“유진 씨가 혹시 다큐 제작진과… 그, 마찰 있으셨나요??”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한데요.”
류청우는 방을 돌아보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짧게 한숨을 쉬었다.
“오늘은 그냥 두죠. 머리 식히게.”
“그래. 그게 맞겠다.”
어차피 내일은 정말 일정이 없었다. 콘서트 끝나고 녹초가 된 놈들이 호텔 칩거하다가 다큐멘터리 코멘트나 좀 따는 게 전부였으니까.
스태프들은 긴장한 얼굴이었지만, 결국 납득하고 차유진이 방 밖에 나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했다.
“지금은 너무 터치하지 않으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네, 네. 저희가 꼭 주의할게요.”
어지간해선 그룹 안에서 자체 해결하거나 무던히 넘기는 놈들과 일하다 보니, 스태프들도 이런 사태가 상당히 낯설고 당황스러운 것 같았다.
그래도 할 일은 제법 했다.
“여러분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두 분 나오실 때까지 저희가 기다릴게요.”
“…….”
그래. 어차피 내일 아침에도 바로 볼 테니, 지금은 그냥 가자. 괜히 견해 다른 놈들이 붙어 있다가 아까처럼 쓸데없는 싸움으로 번지면 손해다.
‘김래빈이 붙어 있으니 괜찮겠지.’
이럴 땐 연상보단 동갑이 편할 것이다.
“들어가시죠.”
“…그래.”
멤버들은 좀 찝찝하다는 얼굴이었으나, 결국 수긍한 뒤에 차로 이동했다.
“무, 문자라도 보내볼까요…? 영어로요.”
“음, 내일 아침에 식사하면서 천천히 얼굴 보고 대화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으응….”
위로도 좋다만, 본인도 자기 행동을 생각해 볼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나는 극히 피곤한 상태로 내 호텔방으로 복귀했다. 그리고 씻고 바로 취침했다.
“…후.”
내일 아침은 차유진 입맛에 맞춰줘야겠군.
그리고 제작진들과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상세히 들을 예정이었다.
그러나 다음 날 아침.
다른 놈들이 평상시 아침 식사 집합 시간까지 다 나타나는 동안, 차유진은 나오지 않았다.
“…….”
“지금 9시 반 넘었죠?”
“응.”
나는 입을 열었다.
“래빈아.”
“예!”
“어제 차유진 어땠어.”
“말이 없으며 다소 기운이 빠져 보였으나, 특별히 분노를 더 표출하진 않았습니다!”
“…그래?”
“예. 아마 현 상황은 늦잠을 자거나, 일종의 시위로 판단됩니다!”
그렇단 말이지.
나는 모자를 고쳐 썼다.
“데리고 올게요. 너도 가자.”
“제가…? 아니, 넵. 알겠습니다!”
나는 오묘한 표정으로 손을 흔드는 놈들을 뒤로 한 채, 김래빈을 대동하고 차유진의 방으로 향했다.
그리고 당장 초인종을 눌렀다.
딩-동.
“…….”
응답이 없었다.
“차유진. 문 열어라.”
여전히 없다. 아무리 이 복도 라인을 우리가 다 잡았다고 하지만 더 소리 지르긴 그랬다.
이 정도라도 분명 들었을 텐데.
‘진짜 시위하나.’
멀리 간다. 나는 한숨을 쉬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차유진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러나 전화는… 걸리지 않았다.
“…….”
이거… 싸한데.
“형?”
나는 한 번 더 전화를 걸어본 뒤, 상황을 인정했다.
“래빈아.”
“예?”
“매니저 형 불러라.”
나는 차유진의 방문을 쳐다보았다.
“차유진 방에 없는 것 같다.”
“…!!”
잠시 후.
“진짜네.”
호텔 직원을 대동해 열어본 차유진의 방은… 텅 비어 있었다.
‘망할.’
상상도 못 한 사태였다.
‘실수였나?’
이놈을 아침까지 머리 식히게 둘 게 아니라, 당장 술 까고 앉아서 어르고 달랬어야 했나?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무슨 닌자도 아니고 탈주를….’
나는 혀를 씹을 뻔하다가, 간신히 매니저에게 물었다.
“혹시 간밤에 연락받으신 적 있나요.”
“아뇨! 유진 씨께 연락받은 적은 없는데…!?”
회사 사람들은 거의 패닉 상태였다. 그럴 만했다. 활동 이후 처음 만나는 탈주 사례였으니까.
다만 아예 흔적 없이 증발한 건 아니었다.
-저 나가요
그나마 이 쪽지는 하나 남겨뒀기 때문이다. 한글로 큼직하게도 써놨다.
“유, 유진이가 마음이 많이 상했나 봐요….”
“그렇다고 이렇게 잠적하는 건 이상……. 잠깐, 혹시 납치 같은 거 아니야?”
“그랬다면 이 방이 이것보다 더 끔찍한 꼴이었을 것 같습니다. 이 바보가 제 발로 자발적으로 나간 겁니다!”
“그렇네.”
그 말이 맞았다.
납치라고 하기엔 방 컨디션이 너무 좋았고, 애초에 누구 침입이 쉽게 가능할 호텔도 아니었다.
다만 침착하게 보니, 어떤 상황이었는지 짐작이 갔다.
“……음.”
나는 방 안을 한번 돌아본 뒤, 고개를 끄덕였다.
“멀리 간 건 아니야.”
“그, 그럴까…?”
“그래. 짐을 다 두고 갔어. 지갑과 휴대폰만 챙겨서 나갔는데… 충동적으로 한 건가.”
자고 일어나서도 열 받으니 일단 나가버렸을 가능성이 크지 않나, 짐작을….
그 순간, 김래빈이 번쩍 손을 들었다.
“저기, 말씀 중에 죄송하지만 제 의견을 말씀드려도 괜찮겠습니까?”
“…? 그래.”
녀석은 침을 삼키더니, 약간 주저하며 말했다.
“그냥… 스케줄 없으니까 놀러 나간 것 같습니다만.”
“…….”
“…….”
잠깐.
“그럴 수… 있겠네.”
“예!”
배세진이 황급히 끼어들었다.
“하지만! 스마트폰이 꺼졌잖아…!”
“그냥 노는데 방해 안 받으려고 꺼둔 것 같습니다.”
“…….”
그렇지. 어차피 쉬는 날이니까 굳이 회사 허락을 안 받아도 됐다고 생각했을 확률이… 충분하다.
멤버들은 당황했다.
“마, 맞아. 그랬을 수도.”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다니…….”
류청우가 분위기를 환기했다.
“음, 하지만 아닐 수도 있으니까, 상황을 좀 더 살펴보고 준비하자.”
“오케이. 알겠습니다~ 그럼 CCTV 돌려볼까요?”
“제가 바로 확인할 테니까 여러분 일단 대기 부탁드립니다. 다른 분 오실 거예요!”
매니저가 호텔 직원을 데리고 당장 달렸다. 열심히 일하는 건 좋다만, 폭탄 떨어진 심정도 이해는 갔다.
하지만 수색 자체라면 그렇게까지 걱정할 일은 아닌 것 같았다.
“이걸로 찾을 수 있겠는데.”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 * *
차유진은 바닷바람을 맞으며, 모래사장을 발끝으로 툭 쳤다.
모처럼의 휴일, 날 밝은 아침에 외출하는 것은 꽤 한가로운 일이었다.
‘날씨 좋네.’
그러나 썩 기분이 상쾌하진 않았다. 그는 울적함을 떨치기 위해 두 팔로 목 뒤를 괴었다.
‘머리를 식히라’고 해서 기분 전환을 위해 나왔으나, 이렇든 저렇든 그가 썩 잘못한 것인지는 모르겠다…는 게 결론이었다.
‘음, 사과는 안 해.’
대신 왜 그가 카메라 든 멍청이들에게 사과하지 않을 것인지 팀원들에게 잘 이야기해 봐야겠다고, 그는 결론 내렸다.
다만 좀 떨떠름하긴 했다.
‘아무도 내 상태는 신경도 안 쓰잖아.’
아무리 그래도 이 상황에 밤새 문자 한 통 안 넣는 게 말이 되냐며 그는 투덜거렸다.
그의 생각을 이해하고 인정할 사람은 정말로 없는 것일….
“차유진.”
“…!”
익숙하지만 예상치 못한 목소리에, 차유진은 의자에서 거의 뛰어오를 뻔했다.
“형??”
“그래. 나다.”
박문대였다.
‘맙소사.’
그의 팀원은 바닷가 모래사장을 한바탕 달려서 그에게 뛰어왔다.
썩 반가운 모습이었으나, 놀라운 일이기도 했다. 대체 무슨 마술을 부린 거지?
“어떻게 나 찾았어요? 나 찾은 거예요?”
“그게 중요하냐?”
박문대는 가벼운 차림이었다. 그리고 제법 열심히 자신을 찾아다닌 듯 분홍 머리가 바닷바람에 뻗쳤다.
그러나 화를 내는 대신 피식 웃으며 종이봉투를 내밀었다.
안에는 주변 가게에서 파는 아이스크림이 들어 있었다.
“너 갈 곳이야 뻔하지. 단 거 팔면서 바닷가 근처인 곳 검색하니까 이 카페 길이 호텔에서 가깝던데.”
“…….”
“넌 분명 이 근처에 있을 줄 알았다.”
정확한 추리였다. 차유진은 떨떠름함이나 소름에 앞서서 좀 감탄해 버렸다.
“형 대단해요.”
“어. 아니까 일단 아이스크림이나 먹어라. 여기 외부 음식 반입되지?”
썩 괜찮은 농담이었지만, 박문대는 그다지 이해한 것 같진 않았다. 이런 상황에 익숙한 차유진은 그냥 넘어갔다.
애초에 문화로만 따지자면, 그 또래의 남자가 휘황찬란하게 염색하고 앉아 있는 꼴 자체가 썩 미국적이진 않았으니까.
하지만 박문대의 본론은 차유진이 아이스크림을 반 이상 먹었을 때 시작되었다.
“그럼 먹으면서 말해봐라. 대체 왜 제작진한테 그랬는지.”
“추궁 아니고, 이유가 있어서 그랬을 테니까 물어보는 거야.”
박문대가 팔짱을 꼈다.
“너 똑똑한 놈이잖아.”
차유진은 답지 않게 약간 감동했다.
그래서 어깨를 으쓱한 뒤, 바로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