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6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4화
나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호텔 방에 구색 맞추기 위해 둔 작은 탁자였으나, 그 앞에는 탁자만큼 거대한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뒤의 제작진이 말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테스타의 박문대입니다.”
나는 카메라에 고개를 꾸벅였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는 지금… 테스타의 두 번째 콘서트 투어에 참여 중입니다.”
그리고 콘서트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 중이기도 하지.
지금 하는 이거 말이다.
‘사실 콘서트 비하인드야 많이 찍는다.’
아이돌 개개인에 대한 친근감도 주고 본인이 관람했던 콘서트의 뒷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니까.
하지만 따로 다큐멘터리로까지 제작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팬들만 보는 상품으로 처리한 게 아니라 일반 앞에 런칭했다는 건 고무적이다.
제작이 대중적 의미가 있을 만큼, 대중음악의 흐름에 족적을 남겼다는 뜻이니까.
‘말하자면 클래스가 다른 상징 같은 거지.’
가령 VTIC은 본인들 다큐멘터리가 벌써 서너 번까지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 이게 천상계 문턱에 노크하는 행위인 건 모두가 인정했다.
다만 모두가 좋아했느냐는 좀 다른 문제긴 했다.
-…불편하지 않겠어? 몇 달이나 계속 카메라가 붙는 거잖아.
-음, 상의하에 적절히 들어오신다고는 하시던데.
-제가 그다지 재밌는 일상을 보내지 않아 관련 내용이 흥미롭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에이,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편집 잘해 주실 거야~ 너무 재미에 목맬 필요 없어,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잖아! 멋지게 해주실걸?
결국 다수결과 적절한 설득으로 다큐멘터리는 촬영이 들어갔고, 아직까진 별문제는 없긴 했다만.
‘좀… 너무 붙는 것 같긴 한데.’
가령 이런 것 말이다.
“혹시 투어 중에 어떤 부분이 제일 불편하세요?”
“음, 아무래도 시차 적응이나 새 공연장 파악 같은… 환경적 요소죠.”
“아~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좀 더… 심정적인 부분에서는 어떠세요?”
“음, 심정적으론….”
제작진에게서 날것을 찍고 싶다는 욕망이 느껴진다.
내 내면과의 거리감을 줄이려는 시도가 카메라마다 보인다.
간단한 질문으로 긴장을 낮춘 뒤, 정제된 답변을 내놓으면 슬슬 속내가 드러나도록 방향을 트는 것이다.
자극성을 추구하는 예능 제작진과는 다른 결의 유도성이었다.
물론, 이러면 좀 더 ‘진솔하게 들리는’ 답변을 내놓으면 그만이다.
“제가 통제하지 못한 요인으로 관객분들이 콘서트를 완전히 못 즐기신다는 게 견디기 힘들어서인 것 같아요.”
나는 짧게 생각하듯이 공백을 두었다가, 다시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게 제일 예민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아요. 콘서트의 완성도.”
이러면 답변자의 성격을 캐냈다는 만족감이 들겠지.
아니나 다를까, 제작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콘서트는 테스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무래도 가장 가까이서 팬분들을 만나는 게…….”
그 후로도 다큐멘터리다운 답변을 잘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편집본이 그럴싸할 것이다.
* * *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그렇게 한 시간쯤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를 방문하기 위해 제작진이 떠나며 끝났다.
“…….”
나는 침대에 누웠다.
투어 자체는 도리어 활동기보다 여유롭다.
이제 짬이 되니 투어 중엔 호텔 독실이 주어진다. 그리고 콘서트 사이엔 체력 회복을 위해 무작정 쉬는 시간이 꽤 길기 때문이다.
“조용하네.”
나는 눈을 감았다. 하도 시끄러운 놈들 사이에서 몇 년 지내서 그런가, 좀 어색하기까지 했다.
“…….”
쓸데없는 생각이 치고 올라오기 직전.
문득 방금 들은 제작진의 질문이 머릿속에 울렸다.
-콘서트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러자 무작정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번 투어의 첫 콘서트.
서울 고척돔에서 했던 아주 오랜만의 콘서트를.
-와아아아아아!!
함성. 불꽃. 열기.
그리고 순도 높은 집중.
이 거대한 심리적 고양감과 압도감만이 콘서트의 정수라면, 비대면으로 진행했던 기부 콘서트는 그냥 촬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간만이라 그런지, 무슨 바닷속에 들어간 것 같은 밀도가 느껴졌다.
공기가 다른 것이다.
콘서트가 회사 입장에서 좋은 수입원이라지만, 공연자의 입장에서는 무슨 초월적 공간이 따로 없었다.
제대로 해내면 부담 이상의 보답이 있다. 그리고 이 그룹은 그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후.”
…서울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안 붙어서 다행이다.
‘다들 질질 짜며 귀가했으니까.’
그 꼴로는 절대 인터뷰 못 했을 것이다.
-낮처럼 파란 꿈을 꿔!! 크흡!
숙소에서 어깨동무하고 데뷔곡 부르던 놈들은 취객 그 자체였다. 방음이 안 됐으면 민원이 들어왔을 게 눈에 보인다.
‘류청우가 요청을 잘 잘랐지.’
나는 짧게 리더의 공을 인정했다. 그리고 다음 W라이브 일정을 체크하며, 곧장 잠이 들었다.
…다음 콘서트까지 34시간 남았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금방이야.’
미국이라 공연장은 한국보다 작지만, 그래도 콘서트라는 건 변함 없었다. 비슷한 밀도의 쾌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호텔 칩거의 시간과 리허설을 지나, 다시 시작된 콘서트.
[Hello LA!]
[Wooooow!]
그래. 콘서트는 여전히 특수한 경험이었고, 할 맛 났다.
다만 다큐멘터리 제작진에 대한 인상은 더 수정해야겠다.
‘이놈들 과해.’
“문대 씨,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나는 산소호흡기를 떼며 일어섰다. 그러자 카메라가 황급히 따라붙으며, 뒤에서 다른 제작진이 무언가를 급하게 쓴다.
참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었다.
‘스토리 만드나?’
하지만 산소호흡기 안 쓰는 아이돌 찾는 게 더 빠를 텐데, 이걸로 ‘열정’을 주목해 봤자 식상하기 그지없는 그림밖에 안 나올 것이다.
‘VTIC이 이미 사골 다 우려먹었다고.’
그러나 콘서트가 끝난 후, 나는 재시작된 인터뷰에서 상황을 파악했다.
“문대 씨, 교통사고 이후로 혹시 후유증을 느끼신 적 있을까요?”
“…? 교통사고…. 음, 아뇨. 전 건강합니다.”
내 몸 상태에 대해 묻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알겠군.’
아무래도 ‘몸이 아프지만 최선을 다하는 완벽주의자 아이돌’ 컨셉을 잡아주고 싶은 것 같았다.
다큐라고 건조하게 사실만 늘어놓지 않고 서사를 넣는 건 재밌으니, 시도는 좋다만….
‘사기잖아.’
나는 현대 의학 기준으로도 완치 판정을 받은 놈이었다.
이번 앨범에 격한 동작이 많아서 근육도 늘려놓기까지 했으니, 그쪽으로 스토리 잡는 건 기만이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하다.
‘이걸로 판 깔았다간 거짓말 탐지기 쓰면 걸릴 수준이라고.’
‘교통사고 이후의 불안감’ 관련해서 인터뷰를 따는 것까지가 마지노선이다. 나는 약간 더 단호하게 말을 추가했다.
“심려를 끼쳐드려서 팬분들께 얼른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은 있었습니다만, 전 지금 완전히 건강합니다.”
그러자 제작진들 사이에서 오묘한 침묵이 흘렀다.
뭐야, 이거.
“음, 문대 씨. 콘서트 중에 한계 이상으로 운신하시는 것 같았는데요.”
“…제가요?”
나와 다른 콘서트에 있었나?
“예. 산소마스크도 그렇고. 멤버분들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요.”
“멤버들이요?”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와중에 이 새끼들 내가 당황하는 거 잡고 희희낙락하는 중이다. 그렇게 재밌냐?
“사고 이후로 문대 씨가 전보다 더 힘들어하시는 게 보이는데, 그때마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셔서 마음이 아프시다고 해요.”
“…….”
순식간에 증거자료들이 대가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넌… 이미 후유증으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야.
-크게 다치고, 너무 오래 누워있던 게 컨디션에 준 거겠지.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 좀 더 기대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요.”
아니, 내가 기댈 구석은 바쿠스였다.
그리고 그게 없어도 지금 멀쩡하지만, 멤버들은 계속 ‘바쿠스’빨을 받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며 지금과 비교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그 전이 비현실적으로 체력이 좋았다는 건 까먹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다짐과 달리 ‘바쿠스’의 빈자리에 ‘미션 체질’을 넣어버리며, 돌아올 수 없는 체력 전성기에 마침표을 찍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시스템이 떠나며 더는 뽑기를 얻을 수 없는 상황.
‘망했네.’
외통수다.
나는 침음을 참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멤버들이 그렇게 말했을 줄은 몰랐네요.”
감동받은 거 아니니까 웃지 말아라.
하지만 그 오해는 써먹어야겠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제가 가장 크게 다쳤었잖아요. 그래서 멤버들이 신경을 많이 써줬어요. 아마 이번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말 같은데… 그냥, 고맙네요.”
…반쯤은, 진심이기도 하고.
그러니 훈훈한 멤버 간 우정 스토리나 물고 그만 부상 극복 스토리는 포기해라.
하지만 이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
“무, 문대 괜찮아?”
“…그래.”
‘하….’
일단 백스테이지에서의 내 모습을 집요하게 찍었다. 특히 부축을 받거나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선호하는 게, 뻔히 의도가 보였다.
‘완전히 꽂혔나 본데.’
나는 몇 번 진지하게 경고를 할까 하다가, 체념했다.
‘맘대로 해라.’
보니까 흥미로운 지점은 잘 잡으니 다큐멘터리 자체는 사실 기반으로 재미나게 뽑을 것 같았다.
다만 본의 아니게 대중에게 나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심어줄 것 같았으나, 뭐… 됐다.
‘부상 투혼이야 흔한 비하인드지.’
그래, 이 직업이 원래 기만으로 시작해서 기만으로 끝나는 걸 수도 있지…. 돈값이나 제대로 하자.
‘멤버발 후유증 루머가 전 세계로 퍼지게 생겼군….’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콘서트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놈도 있는 모양이다.
“Stop! 그만!”
“…!”
앵콜 전 약간 긴 VCR이 나오는 시간. 갑자기 백스테이지에서 큰 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것도 우리 중 제일 안 예민한 놈의 목소리였다.
“유진이?”
“차유진이야?”
의상 갈아입고 대기 중이던 놈들이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서 일단 달렸다.
카메라가 쫓아와서 좀 그렇긴 했으나, 어차피 계약상 필름 폐기까지 조항에 넣었다.
‘상황 확인이 우선이다.’
그리고 복도를 돌자 소리가 난 장소가 보였다.
주로 근육 경련이나 관절 통증 등을 관리하는 작은 백스테이지 룸이었다.
차유진은 어깨 쪽에 긴급 관리를 받고 있었는지 패치가 붙어 있었으나, 그것보다 긴급한 사항이 있었다.
차유진은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대치 중이었기 때문이다.
“…유진아?”
차유진은 이쪽을 돌아보긴 했으나, 곧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카메라맨 너머 제작진을.
“그거 하지 마세요. 저 안 좋아해요.”
“네, 네. 죄송해요.”
“나가요. 여기 들어오지 마요.”
그리고 단호하게 제작진을 밖으로 보냈다.
“……잠시만요.”
나는 나를 따라온 카메라도 일단 밖으로 보냈다. 끝까지 닫힌 방문이라도 찍으려는 게 좀 거슬렸으나, 차유진이 먼저다.
류청우가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마이크를 끄고 차유진에게 말했다.
“유진아. 카메라 있잖아. 할 말 있으면 콘서트 끝나고, 카메라 내려가고 해도 안 늦어.”
“…….”
“일단 불만이 있어도 콘서트는 하고 말하자. 우리 앵콜까지 4분… 아니, 3분밖에 안 남았어.”
“…OK. 알았어요.”
차유진은 썩 행복한 얼굴은 아니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에서 컨디션 타는 놈은 아니니 앵콜은 괜찮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놈들 과하다 싶더니.’
그래도 차유진이 이럴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대체 뭘 긁어서 이놈이 이렇게 반응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제작진이 선은 지키는 것 같았는데.
나는 한숨을 참으며 문을 열었다. 즉시 카메라가 불쑥 들어왔다.
…이번엔 나도 좀 거슬렸다. 저 열정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끝나자마자 말 좀 해봐야겠군.’
하지만 이 콘서트가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지랄이 났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4화
나는 탁자 위에 손을 올렸다.
호텔 방에 구색 맞추기 위해 둔 작은 탁자였으나, 그 앞에는 탁자만큼 거대한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 뒤의 제작진이 말했다.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네. 안녕하세요. 테스타의 박문대입니다.”
나는 카메라에 고개를 꾸벅였다. 그리고 희미한 미소와 함께 말했다.
“저는 지금… 테스타의 두 번째 콘서트 투어에 참여 중입니다.”
그리고 콘서트 다큐멘터리 제작에 참여 중이기도 하지.
지금 하는 이거 말이다.
‘사실 콘서트 비하인드야 많이 찍는다.’
아이돌 개개인에 대한 친근감도 주고 본인이 관람했던 콘서트의 뒷이야기가 흥미롭기도 하니까.
하지만 따로 다큐멘터리로까지 제작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팬들만 보는 상품으로 처리한 게 아니라 일반 앞에 런칭했다는 건 고무적이다.
제작이 대중적 의미가 있을 만큼, 대중음악의 흐름에 족적을 남겼다는 뜻이니까.
‘말하자면 클래스가 다른 상징 같은 거지.’
가령 VTIC은 본인들 다큐멘터리가 벌써 서너 번까지 나왔을 것이다.
그러니 이게 천상계 문턱에 노크하는 행위인 건 모두가 인정했다.
다만 모두가 좋아했느냐는 좀 다른 문제긴 했다.
-…불편하지 않겠어? 몇 달이나 계속 카메라가 붙는 거잖아.
-음, 상의하에 적절히 들어오신다고는 하시던데.
-제가 그다지 재밌는 일상을 보내지 않아 관련 내용이 흥미롭지 못할 것 같다는 우려가 들기도 합니다….
-에이, 전문가분들이 알아서 편집 잘해 주실 거야~ 너무 재미에 목맬 필요 없어, 예능이 아니라 다큐멘터리잖아! 멋지게 해주실걸?
결국 다수결과 적절한 설득으로 다큐멘터리는 촬영이 들어갔고, 아직까진 별문제는 없긴 했다만.
‘좀… 너무 붙는 것 같긴 한데.’
가령 이런 것 말이다.
“혹시 투어 중에 어떤 부분이 제일 불편하세요?”
“음, 아무래도 시차 적응이나 새 공연장 파악 같은… 환경적 요소죠.”
“아~ 그러실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좀 더… 심정적인 부분에서는 어떠세요?”
“음, 심정적으론….”
제작진에게서 날것을 찍고 싶다는 욕망이 느껴진다.
내 내면과의 거리감을 줄이려는 시도가 카메라마다 보인다.
간단한 질문으로 긴장을 낮춘 뒤, 정제된 답변을 내놓으면 슬슬 속내가 드러나도록 방향을 트는 것이다.
자극성을 추구하는 예능 제작진과는 다른 결의 유도성이었다.
물론, 이러면 좀 더 ‘진솔하게 들리는’ 답변을 내놓으면 그만이다.
“제가 통제하지 못한 요인으로 관객분들이 콘서트를 완전히 못 즐기신다는 게 견디기 힘들어서인 것 같아요.”
나는 짧게 생각하듯이 공백을 두었다가, 다시 대답했다.
“그러니까 그게 제일 예민하고 신경이 쓰이는 것 같아요. 콘서트의 완성도.”
이러면 답변자의 성격을 캐냈다는 만족감이 들겠지.
아니나 다를까, 제작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 다음 질문으로 넘어갔다.
“그렇다면 콘서트는 테스타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아무래도 가장 가까이서 팬분들을 만나는 게…….”
그 후로도 다큐멘터리다운 답변을 잘 내놓았다고 생각한다. 편집본이 그럴싸할 것이다.
* * *
“감사합니다.”
인터뷰는 그렇게 한 시간쯤 계속되었다. 그리고 다음 타자를 방문하기 위해 제작진이 떠나며 끝났다.
“…….”
나는 침대에 누웠다.
투어 자체는 도리어 활동기보다 여유롭다.
이제 짬이 되니 투어 중엔 호텔 독실이 주어진다. 그리고 콘서트 사이엔 체력 회복을 위해 무작정 쉬는 시간이 꽤 길기 때문이다.
“조용하네.”
나는 눈을 감았다. 하도 시끄러운 놈들 사이에서 몇 년 지내서 그런가, 좀 어색하기까지 했다.
“…….”
쓸데없는 생각이 치고 올라오기 직전.
문득 방금 들은 제작진의 질문이 머릿속에 울렸다.
-콘서트는 어떤 의미인가요?
그러자 무작정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이번 투어의 첫 콘서트.
서울 고척돔에서 했던 아주 오랜만의 콘서트를.
-와아아아아아!!
함성. 불꽃. 열기.
그리고 순도 높은 집중.
이 거대한 심리적 고양감과 압도감만이 콘서트의 정수라면, 비대면으로 진행했던 기부 콘서트는 그냥 촬영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너무 간만이라 그런지, 무슨 바닷속에 들어간 것 같은 밀도가 느껴졌다.
공기가 다른 것이다.
콘서트가 회사 입장에서 좋은 수입원이라지만, 공연자의 입장에서는 무슨 초월적 공간이 따로 없었다.
제대로 해내면 부담 이상의 보답이 있다. 그리고 이 그룹은 그게 너무 오랜만이었다.
“후.”
…서울부터 다큐멘터리 제작진이 안 붙어서 다행이다.
‘다들 질질 짜며 귀가했으니까.’
그 꼴로는 절대 인터뷰 못 했을 것이다.
-낮처럼 파란 꿈을 꿔!! 크흡!
숙소에서 어깨동무하고 데뷔곡 부르던 놈들은 취객 그 자체였다. 방음이 안 됐으면 민원이 들어왔을 게 눈에 보인다.
‘류청우가 요청을 잘 잘랐지.’
나는 짧게 리더의 공을 인정했다. 그리고 다음 W라이브 일정을 체크하며, 곧장 잠이 들었다.
…다음 콘서트까지 34시간 남았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금방이야.’
미국이라 공연장은 한국보다 작지만, 그래도 콘서트라는 건 변함 없었다. 비슷한 밀도의 쾌감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호텔 칩거의 시간과 리허설을 지나, 다시 시작된 콘서트.
그래. 콘서트는 여전히 특수한 경험이었고, 할 맛 났다.
다만 다큐멘터리 제작진에 대한 인상은 더 수정해야겠다.
‘이놈들 과해.’
“문대 씨,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나는 산소호흡기를 떼며 일어섰다. 그러자 카메라가 황급히 따라붙으며, 뒤에서 다른 제작진이 무언가를 급하게 쓴다.
참 의미심장하기 짝이 없었다.
‘스토리 만드나?’
하지만 산소호흡기 안 쓰는 아이돌 찾는 게 더 빠를 텐데, 이걸로 ‘열정’을 주목해 봤자 식상하기 그지없는 그림밖에 안 나올 것이다.
‘VTIC이 이미 사골 다 우려먹었다고.’
그러나 콘서트가 끝난 후, 나는 재시작된 인터뷰에서 상황을 파악했다.
“문대 씨, 교통사고 이후로 혹시 후유증을 느끼신 적 있을까요?”
“…? 교통사고…. 음, 아뇨. 전 건강합니다.”
내 몸 상태에 대해 묻기 시작한 것이다.
‘아, 알겠군.’
아무래도 ‘몸이 아프지만 최선을 다하는 완벽주의자 아이돌’ 컨셉을 잡아주고 싶은 것 같았다.
다큐라고 건조하게 사실만 늘어놓지 않고 서사를 넣는 건 재밌으니, 시도는 좋다만….
‘사기잖아.’
나는 현대 의학 기준으로도 완치 판정을 받은 놈이었다.
이번 앨범에 격한 동작이 많아서 근육도 늘려놓기까지 했으니, 그쪽으로 스토리 잡는 건 기만이다.
나는 더할 나위 없이 튼튼하다.
‘이걸로 판 깔았다간 거짓말 탐지기 쓰면 걸릴 수준이라고.’
‘교통사고 이후의 불안감’ 관련해서 인터뷰를 따는 것까지가 마지노선이다. 나는 약간 더 단호하게 말을 추가했다.
“심려를 끼쳐드려서 팬분들께 얼른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은 욕심은 있었습니다만, 전 지금 완전히 건강합니다.”
그러자 제작진들 사이에서 오묘한 침묵이 흘렀다.
뭐야, 이거.
“음, 문대 씨. 콘서트 중에 한계 이상으로 운신하시는 것 같았는데요.”
“…제가요?”
나와 다른 콘서트에 있었나?
“예. 산소마스크도 그렇고. 멤버분들께서도 그렇게 말씀하시고요.”
“멤버들이요?”
이게 무슨 소리야.
이 와중에 이 새끼들 내가 당황하는 거 잡고 희희낙락하는 중이다. 그렇게 재밌냐?
“사고 이후로 문대 씨가 전보다 더 힘들어하시는 게 보이는데, 그때마다 최대한 내색하지 않으셔서 마음이 아프시다고 해요.”
“…….”
순식간에 증거자료들이 대가리를 스치고 지나간다.
-넌… 이미 후유증으로 체력이 떨어진 상태야.
-크게 다치고, 너무 오래 누워있던 게 컨디션에 준 거겠지.
“체력적으로 부담을 느끼시는 것 같은데, 좀 더 기대줬으면 좋겠다고 하셔요.”
아니, 내가 기댈 구석은 바쿠스였다.
그리고 그게 없어도 지금 멀쩡하지만, 멤버들은 계속 ‘바쿠스’빨을 받던 시절의 나를 기억하며 지금과 비교하고 있던 것이다.
사실 그 전이 비현실적으로 체력이 좋았다는 건 까먹고 말이다.
그리고 내가 다짐과 달리 ‘바쿠스’의 빈자리에 ‘미션 체질’을 넣어버리며, 돌아올 수 없는 체력 전성기에 마침표을 찍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시스템이 떠나며 더는 뽑기를 얻을 수 없는 상황.
‘망했네.’
외통수다.
나는 침음을 참고, 간신히 입을 열었다.
“…멤버들이 그렇게 말했을 줄은 몰랐네요.”
감동받은 거 아니니까 웃지 말아라.
하지만 그 오해는 써먹어야겠다.
나는 잠시 뜸을 들였다가 천천히 대답했다.
“제가 가장 크게 다쳤었잖아요. 그래서 멤버들이 신경을 많이 써줬어요. 아마 이번에도 비슷한 맥락에서 나온 말 같은데… 그냥, 고맙네요.”
…반쯤은, 진심이기도 하고.
그러니 훈훈한 멤버 간 우정 스토리나 물고 그만 부상 극복 스토리는 포기해라.
하지만 이놈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여기!”
“무, 문대 괜찮아?”
“…그래.”
‘하….’
일단 백스테이지에서의 내 모습을 집요하게 찍었다. 특히 부축을 받거나 숨을 몰아쉬는 모습을 선호하는 게, 뻔히 의도가 보였다.
‘완전히 꽂혔나 본데.’
나는 몇 번 진지하게 경고를 할까 하다가, 체념했다.
‘맘대로 해라.’
보니까 흥미로운 지점은 잘 잡으니 다큐멘터리 자체는 사실 기반으로 재미나게 뽑을 것 같았다.
다만 본의 아니게 대중에게 나에 대한 왜곡된 환상을 심어줄 것 같았으나, 뭐… 됐다.
‘부상 투혼이야 흔한 비하인드지.’
그래, 이 직업이 원래 기만으로 시작해서 기만으로 끝나는 걸 수도 있지…. 돈값이나 제대로 하자.
‘멤버발 후유증 루머가 전 세계로 퍼지게 생겼군….’
나는 모든 걸 포기하고 콘서트에 집중했다.
그러나 그러지 못했던 놈도 있는 모양이다.
“Stop! 그만!”
“…!”
앵콜 전 약간 긴 VCR이 나오는 시간. 갑자기 백스테이지에서 큰 소리가 나온 것이다.
그것도 우리 중 제일 안 예민한 놈의 목소리였다.
“유진이?”
“차유진이야?”
의상 갈아입고 대기 중이던 놈들이 뜻밖의 상황에 당황해서 일단 달렸다.
카메라가 쫓아와서 좀 그렇긴 했으나, 어차피 계약상 필름 폐기까지 조항에 넣었다.
‘상황 확인이 우선이다.’
그리고 복도를 돌자 소리가 난 장소가 보였다.
주로 근육 경련이나 관절 통증 등을 관리하는 작은 백스테이지 룸이었다.
차유진은 어깨 쪽에 긴급 관리를 받고 있었는지 패치가 붙어 있었으나, 그것보다 긴급한 사항이 있었다.
차유진은 다큐멘터리 제작진과 대치 중이었기 때문이다.
“…유진아?”
차유진은 이쪽을 돌아보긴 했으나, 곧 다시 정면을 응시했다.
정확히는, 카메라맨 너머 제작진을.
“그거 하지 마세요. 저 안 좋아해요.”
“네, 네. 죄송해요.”
“나가요. 여기 들어오지 마요.”
그리고 단호하게 제작진을 밖으로 보냈다.
“……잠시만요.”
나는 나를 따라온 카메라도 일단 밖으로 보냈다. 끝까지 닫힌 방문이라도 찍으려는 게 좀 거슬렸으나, 차유진이 먼저다.
류청우가 문이 닫히는 걸 확인하자마자 마이크를 끄고 차유진에게 말했다.
“유진아. 카메라 있잖아. 할 말 있으면 콘서트 끝나고, 카메라 내려가고 해도 안 늦어.”
“…….”
“일단 불만이 있어도 콘서트는 하고 말하자. 우리 앵콜까지 4분… 아니, 3분밖에 안 남았어.”
“…OK. 알았어요.”
차유진은 썩 행복한 얼굴은 아니었으나 고개를 끄덕였다. 무대에서 컨디션 타는 놈은 아니니 앵콜은 괜찮을 것이다.
‘다큐멘터리 놈들 과하다 싶더니.’
그래도 차유진이 이럴 줄은 몰랐는데 말이다.
대체 뭘 긁어서 이놈이 이렇게 반응한 건지 모르겠다. 그래도 제작진이 선은 지키는 것 같았는데.
나는 한숨을 참으며 문을 열었다. 즉시 카메라가 불쑥 들어왔다.
…이번엔 나도 좀 거슬렸다. 저 열정이 원인일지도 모르겠다.
‘끝나자마자 말 좀 해봐야겠군.’
하지만 이 콘서트가 끝나기도 전에 또 한 번 지랄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