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60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0화
테스타가 올해의 마지막 날에도 생방송 준비에 한창일 때.
“일찍도 시작했네.”
박문대와 이세진을 찍는 직장인 홈마는 그들이 출연할 MBS 가요대제전의 2부가 거의 끝나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새해 직전에도 야근하느라 겨우 TV 앞에서나 쉬는 자신도 웃기지만, 자정 넘어서까지 하는 프로그램이 9시도 전에 시작된 것도 웃겼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딱히 지금부터 이걸 볼 필요는 없었다.
테스타는 한참 후에야 나오니까.
‘야근 때문에 업로드용 데이터도 이미 의뢰해 놨지.’
그러니, 굳이 지금 보는 건 가벼운 흥미 때문이다.
‘선아현 콜라보가 어떨지는 좀 궁금해서.’
물론 실력에 대한 궁금증은 아니었다.
사실 박문대의 몇몇 홈마들이 모인 단체 메시지 방에서는 알음알음 이야기가 좀 오갔었다.
SBC에서 MC를 본 날, 박문대가 아주 잠깐 보였던 살벌한 눈에 대하여 말이다.
‘거의 없는 일이지.’
박문대는 놀라울 정도로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잘 정제하는 타입이었다.
물론 이세진만큼은 아닌지, 예전 썸머 패키지 같은 곳에서 몇 번 눈빛이 안 좋아졌던 적은 있지만… 그게 거의 유일한 흠일 정도였다.
이번에도 워낙 잠깐이어서 논란이 될 것도 없었으나, 홈마들은 왠지 모를 느낌에 굳이 각도를 분석해 그 타이밍의 가수석까지 찾아냈었다.
그리고 확인했다.
-콜라보 애들이랑 사스미 인사..
-ㅋㅋㅋㅋ아 음
-각인 것 같지만 아무 말도 하지마십쇼 선생님들
그래서 이들은 이미 ‘아현이가 콜라보 무대 준비하면서 고생 좀 한 것 같다’는, 상당히 진실과 유사한 추측까지 도달한 상태던 것이다.
물론 캡처와 공론화 등의 위협을 의식해서 구체적으로 거론도 하지 않고 다 지웠지만, 어쨌든 직장인도 거기 있었다.
‘선아현 멘탈 깨진 거 아니야?’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측하고 나니, 이 무대를 한번 체크해 보고 싶어졌다. 과연 티가 날까 궁금해서.
그녀는 SNS 계정을 한번 갱신하며, 무심히 TV를 보았다.
[Coming up!]
[가요대제전 특별 무대]
[Winter boys]
특별 무대 편성은 2부의 끝이었다.
전설적인 1세대 KPOP 선배들의 곡에 맞춰 후배들을 모아다가 급조된 무대를 시키는 전형적인 구성이었다.
‘여전히 촌스러워.’
그 1세대 선배님의 절반이 음주운전으로 날아갔다며, 그녀는 상당히 회의적으로 TV를 보았다.
관심 없는 멤버가 관심 없는 곡을 하는데 괜히 틀었다고 약간 후회하면서.
곧 기계음 섞인 반주가 나왔다. 노래 없이 댄스 퍼포먼스용으로 편곡된 음악이었다.
-Wee Oo Wee Oo
돈은 좀 썼는지, 물구덩이 같은 LED 효과를 넣은 전광판과 바닥은 제법 괜찮았다.
‘물론 춤 시작하는 순간 식겠지.’
바쁜 놈들이 제각기 연습했을 텐데 잘도 군무를 맞춰왔겠다며, 그녀는 개판일 게 뻔한 단체샷을 예상했다.
그러나 안무가 시작하는 순간.
-Oo-u Oo Oo-u Oo
그럴싸한 퀄리티가 느껴졌다.
“음?”
그리고 그녀는 바로 다년간의 KPOP 경험을 살려 원인을 알았다.
‘센터가 잘해서네.’
그리고 오프닝 센터는 선아현이었다.
“오.”
시작 시점, 긴 팔다리를 이용한 곡예 같은 움직임의 태가 달랐다.
카메라가 끔찍하게 못 잡는데도 선아현의 동작에서는 마치 잘 잡는 것 같은 착시 효과까지 일어날 지경이었다.
칼군무가 필요 없었다. 중심에 선 퍼포머가 압도적으로 잘하니, 마치 다 알맞게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잠깐.
“취소.”
그러나 그녀는 4초 뒤, 제각기 바닥에서 늦게 일어나거나 자빠질 뻔하는 구석의 난장판을 보고 혀를 차게 된다.
‘망했네.’
원래 바쁜 사람들 모아다가 일회성 무대 하는 연말 콜라보는 자칫하면 이 모양이 되기 일쑤였으나, 어쩐지 더 허접하게 느껴졌다.
선아현이 센터에 있을 때와 대비가 극렬해서였다.
“선아현만 꽁승인가?”
이게 역량의 차이인가, 직장인은 흥미롭게 화면을 쳐다보았다.
안무가 일반 방송용 댄스가 아닌 무용에 가까운 것이 이득으로 작용한 건 선아현뿐인 것 같았다.
무슨 발렌지 현대 무용인지 전공자였다고 하더니, 이 업계 평균보다 각 잡고 오래 배웠던 모양이다.
마침 카메라에 잡힌 선아현의 클로즈업이 화면을 채웠다.
바닥을 한 손으로 짚는 동작 위, 아름다운 얼굴에서 빛나는 눈빛이 의외로 강렬했다.
얼굴 예쁜 건 알았지만, 이건 의외다.
‘기 못 펴서 기량 다 못 보여줄 줄 알았는데.’
그녀는 판단을 수정했다.
이세진과 박문대가 같은 그룹이니 깍두기 삼아 끼워준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강단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녀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선아현의 댄스 퍼포먼스가 엔딩에 도달할 때까지 시청했다.
그리고 이 반응을 좀 더 극단적으로 바꾸면 시청자의 반응이 될 것이었다.
* * *
“아현이 대박!”
“진짜 멋있더라.”
“고, 고마워. 감사합니다…!”
선아현이 얼굴을 붉히며 대기실로 복귀했다.
“이건 카메라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와 진짜 아현이가 제일 잘했지~”
“맞아요! 형이 혼자 잘했어요! 다른 사람들 잘 못했….”
“야, 그건 좀.”
차유진의 뇌를 안 거친 말은 금방 제압당했다. 선아현은 식은땀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이다.
사실 다른 놈들도 연습 때는 곧잘 했다고 한다. 인성이 얼마나 터졌든 그놈들도 짬 있는 프로니까.
문제는 현장에서 나왔다.
“그, 그건 바, 바닥이 좀 미끄러워서….”
생방송이라 시간 계산 실수로, 이전 무대에서 효과로 뿌린 물이 제대로 마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선아현만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그건 패자의 변명이 될 것이다.
“근데 형은 안 미끄러졌어요!”
“저, 전에 연습해 본 적 있어서 그런 거야…!”
“역시 과거의 경험이 쌓여서 지금의 실력으로 완성되신 거군요! 존경합니다!”
“그, 그… 으응, 고마워….”
이렇게 말이다.
‘안됐군.’
원래는 욕 좀 먹다가 사실관계 드러나면 방송국의 열악한 작업공간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끝날 거였는데.
이렇게 됐으니 선아현 혼자 등급 올라가고 끝나게 생겼다.
-선아현 괜히 1군 인기멤 아니구나 존멋
-갓직히 남돌 메댄 원탑라인임
-현대 무용, 발레, 오디션 출신까지? 솔직히 못할 수 없는 조합 아니냐고ㅋㅋㅋ
당장의 여론을 확인하니, 예상과 비슷한 추세로 흘러가는 중이다.
‘좋아.’
속 시원하고, 다 좋았다. 전부 잘 굴러가는 중이다.
이 대기실이 독실이 아니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도 잘 봤어요, 아현 씨!”
“네, 네! 가, 감사합니다….”
“우리도 전엔 비슷한… 아, 신오야, 네가 그때 여기서 배틀에이 선배님 무대 커버하지 않았어?”
“나 아니고 청려 형이야. 형이 우리 메댄이잖아.”
“으핫, 그랬구나! 아무튼 비슷한 걸 했는데 그때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
VTIC이 이 대기실을 같이 쓰고 있다.
그리고 굳이 테스타의 대화에 참여하려 시도하고 있군.
‘왜 이 꼴이 났냐.’
사실 방 같이 쓰는 이유는 대충 알겠다.
VTIC이 사실상 지금 업계에서 원탑이다 보니 선배랑 같이 쓰게 만들어서 불편하게 만들긴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급 차이 나는 그룹을 붙여줘도 떨떠름해할 테니, 친분 있어 보이는 테스타가 룸메이트로 최종 선정된 모양이다.
미국 새해맞이 프로그램도 갈 수 있는 놈들을 여기 용케 불렀으니 당연히 신경 쓸 수밖에 없었겠지.
‘망할.’
그것까진 알겠는데, 이 새끼들은 9년 동안 활동하면서 대인관계 눈치는 안 키웠는지 자꾸 애들 노는 데에 끼어들려고 한다.
‘그만해라.’
하지만 기어코 다른 놈까지 대화로 끌어들이고 있다.
“형도 기억나요? 연말 특별 무대요!”
“응.”
스타일리스트에게 머리 손질을 받던 청려가 입꼬리를 올렸다.
“많이 했지.”
“…….”
이 새끼와 새해를 맞아야 한다니. 차라리 야외무대에 유배당하는 게 나았겠군.
“얘들아, 세진이 나온다.”
“오우!!”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류청우가 다른 놈들을 불러 모았다.
류청우가 보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에서는… 옆 동네에서 진행 중인 연기대상이 나오고 있었다.
[안녕하세요. 안소현입니다.]
[안녕하세요. 테스타의 배세진입니다.]
배세진은 ‘말랑달콤’에서 유일하게 배우로 성공한 멤버와 함께 입장했다.
좀 긴장한 기색이었으나, 말쑥하게 입혀놓으니 확실히 배우 같았다.
“오~ 정장.”
“시간 거의 없었는데 세팅하느라 고생했겠네.”
“형 잘생겼어요!”
역시 다음 앨범엔 수트를 입어야 한다는 쑥덕임까지 나오는 동안, 화면 속 배세진은 침착하게 진행을 계속했다.
[아이돌 활동 경험이 있는 저희가 함께 시상대에 섰네요. 오늘 이렇게 연기대상에 나오게 되어서 감회가 새로우실 것 같습니다. 세진 씨!]
[예. 오랜만이라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불러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혀, 형 정말 잘하신다…!”
“그러게.”
배세진은 발음도 좋고 떨지도 않았다.
[저는 아이돌로 활동한 다음에 드라마를 시작했는데, 세진 씨는 반대시죠? 아이돌 활동 어떠신가요?]
[예. 테스타라는 그룹에서 멤버로 활동 중입니다. …굉장히 즐겁고, 보람찬 시간입니다. 좋은 사람들도 많이 만났고요.]
“오….”
“우, 우리 이야기일까?”
“…그렇겠지.”
작은 화면 속 배세진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화면을 보고 있던 놈들 사이에서는 머쓱한 훈훈함이 돌았다.
“오, 완전 진심 같으셔요.”
“테스타 멋지다~”
아니, 너희는 좀 너희 자리로 가라.
나는 말없이 묘한 표정이 된 큰세진을 한번 툭 쳤다. 놈이 머쓱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시간이 답인가.’
나름 서로 인정하게 된 모양이다. 요새 이놈들이 사는 꼴을 보니 룸메이트로는 사이가 최악인 것 같지만.
[분야는 다르지만, 어느 쪽이든 부끄럽지 않은 모습 보여드리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그럼, 오늘 저희가 시상할 부문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배세진은 남은 시상도 잘 끝내고, ‘좋은 기회가 있다면 또 뵙겠다’ 정도로 마무리 멘트도 잘 끝냈다.
그리고 얼마 후,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배세진이 도착했을 때.
“…나 왔어.”
“오오!”
“형 정말 멋지셨습니다!”
“훌륭했어요.”
“어, 큼, 고마워. …근데 이게 원래 짧은 대본이라서!”
“아니에요, 멋져요! 우리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 아, 아니.”
“우리가 아니에요?”
“아니… 그건 맞는데!”
강렬한 환영 인사가 빗발쳤다. 배세진은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시상 멋지시던데요!”
“…아, 예. 감사합니다.”
배세진은 굳이 아는 척하는 VTIC에게 인사는 했지만,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슬금슬금 대기실의 테스타 섹션 쪽으로 물러났다.
내가 청려와 개싸움 했던 것을 잊지 않았나 보군.
“형. 옷부터 갈아입으시고.”
“…그렇지!”
나는 놈과 함께 대기실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직 테스타의 무대를 하기도 전 시각.
“네, 여러분! 한 해의 가장 마지막, 가장 화려한 즐거움인 가요대제전, 즐겁게 시청하고 계시나요?”
“이제 곧 새해가 됩니다.”
우리는 새해맞이를 위해 거대한 본 무대 위로 불려 나갔다.
나가는 길에 선아현에게 K.O 당한 불쌍한 놈들에게 일부러 열심히 인사해주는 맛이 쏠쏠했으나, 몇 놈은 다른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추워요.”
“조용히 해 차유진! 새해를 맞는 수많은 분이 볼 텐데 즐겁게 시작해야지!”
“너도 안 웃잖아!”
“난 이제 웃을 거야!”
“그만.”
나는 싸우려는 두 놈을 잡아다가 어깨동무나 시켜주었다.
온갖 아이돌과 가수들이 즐비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적당히 익숙한 응원봉이 많아 보이는 곳 앞에 자리 잡았다.
‘직캠이라도 잘 나와야지.’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곳이 있긴 한데 어차피 사람 몰리면서 경계가 흐려져서 말이다.
“와, 벌써 한 해가 다 갔네~”
“으, 응! 빠, 빨리 흘러간 것 같아….”
주변 놈들이 마이크에 안 잡히도록 작게 말을 주고받았다. 슬슬 카운트다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3!”
“2!”
“1!”
꽃가루가 터지며, 조명과 음향이 고조된다.
“Happy New Year!!”
펑.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한 해를 맞는 낯선 일이 또 일어났다.
“테스타 올해도 뭔가 보여준다~”
“사고 없이 건강하며 멋진 곡을 발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깨동무와 격려가 거칠게 오갔다. 마찬가지로 거칠게 흔들리는 응원봉을 향해 인사하니, 이번엔 응원봉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거참, 팔 안 아픈가.’
그래 뭐. 좋다면 된 거겠지.
그때, 어깨 위로 팔이 쏟아졌다.
“문대야, 고생했어! 앞으로는 고생 덜하고 열심히만 하자~”
“자, 잘 부탁해…!”
“…그래.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나는 멤버들과 하이파이브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래도 새해는 맞았군.’
중간에 뒤질 위험도 상당했는데, 어찌어찌 잘 넘기고 아이돌로 새해를 맞고 있긴 하구나 싶어서 말이다.
작년 이맘때는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흠.”
좀 유쾌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의 첫 무대 위는 참 차갑고, 시끄럽고, 활기차고, 밝았다.
* * *
화려한 새해 카운트다운 다음. 본무대는 그다음 스테이지를 위해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테스타는 바로 아래에서 대기할 예정이었다.
다다음 무대가 우리였으니까.
문제는 무대에서 내려오다가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갈라졌을 때, 또 이놈을 만났다는 점이다.
“올해도 금방 또 보겠네요. 1월에도 쭉 시상식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청려다.
이 새끼는 이런 뻔한 소릴 할 거면 스탠바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을 방해하지 말아야….
“후배님이 1월 5일에 신곡을 내서… 시상식에서도 신곡 퍼포먼스였죠? 음, 용감한 선택이네요.”
“…….”
나는 발을 멈췄다.
‘용감한 선택?’
이 뉘앙스는… 테스타가 신곡으로 손해를 본다는 식인데.
“아, 설마 모르나.”
“…….”
“모르는구나. 정보원이 없어. 그렇죠? 후배님은 그게… 앞으로 가장 큰 문제겠네요.”
청려의 눈이 작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후배에게 조언하는 투로 말했다.
“연줄이 없어서.”
“…….”
“음… 새해 선물이라고 치고, 들어요.”
청려는 웃었다.
“영린 씨가 활동 준비 중인 건 알아요?”
“…듣긴 했지.”
나는 지난번 MC를 준비하며, 영린에게 지나가듯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지금 아이돌과 아이돌 출신 솔로들을 통틀어서 가장 음원 성적이 잘 나오는 사람이니까 언제 나와도 잘해 먹겠다고 생각했었다.
‘……잠깐.’
설마….
청려가 쓴웃음을 지었다.
“시기는 몰랐구나. 그거 새해 기념 돌발 음원이에요.”
“…!!”
“1월 4일. 그러니까… 후배님 그룹과 하루 차이네요.”
오 X발.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60화
테스타가 올해의 마지막 날에도 생방송 준비에 한창일 때.
“일찍도 시작했네.”
박문대와 이세진을 찍는 직장인 홈마는 그들이 출연할 MBS 가요대제전의 2부가 거의 끝나는 것을 보며 혀를 찼다.
새해 직전에도 야근하느라 겨우 TV 앞에서나 쉬는 자신도 웃기지만, 자정 넘어서까지 하는 프로그램이 9시도 전에 시작된 것도 웃겼다.
그리고 사실, 그녀는 딱히 지금부터 이걸 볼 필요는 없었다.
테스타는 한참 후에야 나오니까.
‘야근 때문에 업로드용 데이터도 이미 의뢰해 놨지.’
그러니, 굳이 지금 보는 건 가벼운 흥미 때문이다.
‘선아현 콜라보가 어떨지는 좀 궁금해서.’
물론 실력에 대한 궁금증은 아니었다.
사실 박문대의 몇몇 홈마들이 모인 단체 메시지 방에서는 알음알음 이야기가 좀 오갔었다.
SBC에서 MC를 본 날, 박문대가 아주 잠깐 보였던 살벌한 눈에 대하여 말이다.
‘거의 없는 일이지.’
박문대는 놀라울 정도로 카메라 앞에서 자신을 잘 정제하는 타입이었다.
물론 이세진만큼은 아닌지, 예전 썸머 패키지 같은 곳에서 몇 번 눈빛이 안 좋아졌던 적은 있지만… 그게 거의 유일한 흠일 정도였다.
이번에도 워낙 잠깐이어서 논란이 될 것도 없었으나, 홈마들은 왠지 모를 느낌에 굳이 각도를 분석해 그 타이밍의 가수석까지 찾아냈었다.
그리고 확인했다.
-콜라보 애들이랑 사스미 인사..
-ㅋㅋㅋㅋ아 음
-각인 것 같지만 아무 말도 하지마십쇼 선생님들
그래서 이들은 이미 ‘아현이가 콜라보 무대 준비하면서 고생 좀 한 것 같다’는, 상당히 진실과 유사한 추측까지 도달한 상태던 것이다.
물론 캡처와 공론화 등의 위협을 의식해서 구체적으로 거론도 하지 않고 다 지웠지만, 어쨌든 직장인도 거기 있었다.
‘선아현 멘탈 깨진 거 아니야?’
비하인드 스토리를 추측하고 나니, 이 무대를 한번 체크해 보고 싶어졌다. 과연 티가 날까 궁금해서.
그녀는 SNS 계정을 한번 갱신하며, 무심히 TV를 보았다.
특별 무대 편성은 2부의 끝이었다.
전설적인 1세대 KPOP 선배들의 곡에 맞춰 후배들을 모아다가 급조된 무대를 시키는 전형적인 구성이었다.
‘여전히 촌스러워.’
그 1세대 선배님의 절반이 음주운전으로 날아갔다며, 그녀는 상당히 회의적으로 TV를 보았다.
관심 없는 멤버가 관심 없는 곡을 하는데 괜히 틀었다고 약간 후회하면서.
곧 기계음 섞인 반주가 나왔다. 노래 없이 댄스 퍼포먼스용으로 편곡된 음악이었다.
-Wee Oo Wee Oo
돈은 좀 썼는지, 물구덩이 같은 LED 효과를 넣은 전광판과 바닥은 제법 괜찮았다.
‘물론 춤 시작하는 순간 식겠지.’
바쁜 놈들이 제각기 연습했을 텐데 잘도 군무를 맞춰왔겠다며, 그녀는 개판일 게 뻔한 단체샷을 예상했다.
그러나 안무가 시작하는 순간.
-Oo-u Oo Oo-u Oo
그럴싸한 퀄리티가 느껴졌다.
“음?”
그리고 그녀는 바로 다년간의 KPOP 경험을 살려 원인을 알았다.
‘센터가 잘해서네.’
그리고 오프닝 센터는 선아현이었다.
“오.”
시작 시점, 긴 팔다리를 이용한 곡예 같은 움직임의 태가 달랐다.
카메라가 끔찍하게 못 잡는데도 선아현의 동작에서는 마치 잘 잡는 것 같은 착시 효과까지 일어날 지경이었다.
칼군무가 필요 없었다. 중심에 선 퍼포머가 압도적으로 잘하니, 마치 다 알맞게 잘하는 것처럼 보였다.
아니, 잠깐.
“취소.”
그러나 그녀는 4초 뒤, 제각기 바닥에서 늦게 일어나거나 자빠질 뻔하는 구석의 난장판을 보고 혀를 차게 된다.
‘망했네.’
원래 바쁜 사람들 모아다가 일회성 무대 하는 연말 콜라보는 자칫하면 이 모양이 되기 일쑤였으나, 어쩐지 더 허접하게 느껴졌다.
선아현이 센터에 있을 때와 대비가 극렬해서였다.
“선아현만 꽁승인가?”
이게 역량의 차이인가, 직장인은 흥미롭게 화면을 쳐다보았다.
안무가 일반 방송용 댄스가 아닌 무용에 가까운 것이 이득으로 작용한 건 선아현뿐인 것 같았다.
무슨 발렌지 현대 무용인지 전공자였다고 하더니, 이 업계 평균보다 각 잡고 오래 배웠던 모양이다.
마침 카메라에 잡힌 선아현의 클로즈업이 화면을 채웠다.
바닥을 한 손으로 짚는 동작 위, 아름다운 얼굴에서 빛나는 눈빛이 의외로 강렬했다.
얼굴 예쁜 건 알았지만, 이건 의외다.
‘기 못 펴서 기량 다 못 보여줄 줄 알았는데.’
그녀는 판단을 수정했다.
이세진과 박문대가 같은 그룹이니 깍두기 삼아 끼워준다고 생각했는데, 나름 강단이 있는 모양이라고.
그녀는 TV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선아현의 댄스 퍼포먼스가 엔딩에 도달할 때까지 시청했다.
그리고 이 반응을 좀 더 극단적으로 바꾸면 시청자의 반응이 될 것이었다.
* * *
“아현이 대박!”
“진짜 멋있더라.”
“고, 고마워. 감사합니다…!”
선아현이 얼굴을 붉히며 대기실로 복귀했다.
“이건 카메라 없으니까 하는 말인데, 와 진짜 아현이가 제일 잘했지~”
“맞아요! 형이 혼자 잘했어요! 다른 사람들 잘 못했….”
“야, 그건 좀.”
차유진의 뇌를 안 거친 말은 금방 제압당했다. 선아현은 식은땀이라도 흘릴 것 같은 얼굴이다.
사실 다른 놈들도 연습 때는 곧잘 했다고 한다. 인성이 얼마나 터졌든 그놈들도 짬 있는 프로니까.
문제는 현장에서 나왔다.
“그, 그건 바, 바닥이 좀 미끄러워서….”
생방송이라 시간 계산 실수로, 이전 무대에서 효과로 뿌린 물이 제대로 마르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선아현만 정상적으로 움직이는 바람에 그건 패자의 변명이 될 것이다.
“근데 형은 안 미끄러졌어요!”
“저, 전에 연습해 본 적 있어서 그런 거야…!”
“역시 과거의 경험이 쌓여서 지금의 실력으로 완성되신 거군요! 존경합니다!”
“그, 그… 으응, 고마워….”
이렇게 말이다.
‘안됐군.’
원래는 욕 좀 먹다가 사실관계 드러나면 방송국의 열악한 작업공간에 대한 비판 여론으로 끝날 거였는데.
이렇게 됐으니 선아현 혼자 등급 올라가고 끝나게 생겼다.
-선아현 괜히 1군 인기멤 아니구나 존멋
-갓직히 남돌 메댄 원탑라인임
-현대 무용, 발레, 오디션 출신까지? 솔직히 못할 수 없는 조합 아니냐고ㅋㅋㅋ
당장의 여론을 확인하니, 예상과 비슷한 추세로 흘러가는 중이다.
‘좋아.’
속 시원하고, 다 좋았다. 전부 잘 굴러가는 중이다.
이 대기실이 독실이 아니라는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우리도 잘 봤어요, 아현 씨!”
“네, 네! 가, 감사합니다….”
“우리도 전엔 비슷한… 아, 신오야, 네가 그때 여기서 배틀에이 선배님 무대 커버하지 않았어?”
“나 아니고 청려 형이야. 형이 우리 메댄이잖아.”
“으핫, 그랬구나! 아무튼 비슷한 걸 했는데 그때가 생각나기도 하는데요?”
“…….”
VTIC이 이 대기실을 같이 쓰고 있다.
그리고 굳이 테스타의 대화에 참여하려 시도하고 있군.
‘왜 이 꼴이 났냐.’
사실 방 같이 쓰는 이유는 대충 알겠다.
VTIC이 사실상 지금 업계에서 원탑이다 보니 선배랑 같이 쓰게 만들어서 불편하게 만들긴 눈치가 보인다.
그렇다고 너무 급 차이 나는 그룹을 붙여줘도 떨떠름해할 테니, 친분 있어 보이는 테스타가 룸메이트로 최종 선정된 모양이다.
미국 새해맞이 프로그램도 갈 수 있는 놈들을 여기 용케 불렀으니 당연히 신경 쓸 수밖에 없었겠지.
‘망할.’
그것까진 알겠는데, 이 새끼들은 9년 동안 활동하면서 대인관계 눈치는 안 키웠는지 자꾸 애들 노는 데에 끼어들려고 한다.
‘그만해라.’
하지만 기어코 다른 놈까지 대화로 끌어들이고 있다.
“형도 기억나요? 연말 특별 무대요!”
“응.”
스타일리스트에게 머리 손질을 받던 청려가 입꼬리를 올렸다.
“많이 했지.”
“…….”
이 새끼와 새해를 맞아야 한다니. 차라리 야외무대에 유배당하는 게 나았겠군.
“얘들아, 세진이 나온다.”
“오우!!”
그때, 소파에 앉아 있던 류청우가 다른 놈들을 불러 모았다.
류청우가 보고 있던 스마트폰의 화면에서는… 옆 동네에서 진행 중인 연기대상이 나오고 있었다.
배세진은 ‘말랑달콤’에서 유일하게 배우로 성공한 멤버와 함께 입장했다.
좀 긴장한 기색이었으나, 말쑥하게 입혀놓으니 확실히 배우 같았다.
“오~ 정장.”
“시간 거의 없었는데 세팅하느라 고생했겠네.”
“형 잘생겼어요!”
역시 다음 앨범엔 수트를 입어야 한다는 쑥덕임까지 나오는 동안, 화면 속 배세진은 침착하게 진행을 계속했다.
“혀, 형 정말 잘하신다…!”
“그러게.”
배세진은 발음도 좋고 떨지도 않았다.
“오….”
“우, 우리 이야기일까?”
“…그렇겠지.”
작은 화면 속 배세진은 희미하게 웃었다. 그리고 화면을 보고 있던 놈들 사이에서는 머쓱한 훈훈함이 돌았다.
“오, 완전 진심 같으셔요.”
“테스타 멋지다~”
아니, 너희는 좀 너희 자리로 가라.
나는 말없이 묘한 표정이 된 큰세진을 한번 툭 쳤다. 놈이 머쓱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했다.
‘역시 시간이 답인가.’
나름 서로 인정하게 된 모양이다. 요새 이놈들이 사는 꼴을 보니 룸메이트로는 사이가 최악인 것 같지만.
배세진은 남은 시상도 잘 끝내고, ‘좋은 기회가 있다면 또 뵙겠다’ 정도로 마무리 멘트도 잘 끝냈다.
그리고 얼마 후, 꽉 막힌 고속도로를 뚫고 배세진이 도착했을 때.
“…나 왔어.”
“오오!”
“형 정말 멋지셨습니다!”
“훌륭했어요.”
“어, 큼, 고마워. …근데 이게 원래 짧은 대본이라서!”
“아니에요, 멋져요! 우리 이야기해 줘서 고마워요!”
“…! 아, 아니.”
“우리가 아니에요?”
“아니… 그건 맞는데!”
강렬한 환영 인사가 빗발쳤다. 배세진은 얼굴이 벌게졌다.
하지만 그 분위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안녕하세요~ 시상 멋지시던데요!”
“…아, 예. 감사합니다.”
배세진은 굳이 아는 척하는 VTIC에게 인사는 했지만, 의심스러운 시선을 던지며 슬금슬금 대기실의 테스타 섹션 쪽으로 물러났다.
내가 청려와 개싸움 했던 것을 잊지 않았나 보군.
“형. 옷부터 갈아입으시고.”
“…그렇지!”
나는 놈과 함께 대기실 구석에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직 테스타의 무대를 하기도 전 시각.
“네, 여러분! 한 해의 가장 마지막, 가장 화려한 즐거움인 가요대제전, 즐겁게 시청하고 계시나요?”
“이제 곧 새해가 됩니다.”
우리는 새해맞이를 위해 거대한 본 무대 위로 불려 나갔다.
나가는 길에 선아현에게 K.O 당한 불쌍한 놈들에게 일부러 열심히 인사해주는 맛이 쏠쏠했으나, 몇 놈은 다른 게 문제였던 모양이다.
“추워요.”
“조용히 해 차유진! 새해를 맞는 수많은 분이 볼 텐데 즐겁게 시작해야지!”
“너도 안 웃잖아!”
“난 이제 웃을 거야!”
“그만.”
나는 싸우려는 두 놈을 잡아다가 어깨동무나 시켜주었다.
온갖 아이돌과 가수들이 즐비한 무대 위에서, 우리는 적당히 익숙한 응원봉이 많아 보이는 곳 앞에 자리 잡았다.
‘직캠이라도 잘 나와야지.’
제작진이 지정해 준 곳이 있긴 한데 어차피 사람 몰리면서 경계가 흐려져서 말이다.
“와, 벌써 한 해가 다 갔네~”
“으, 응! 빠, 빨리 흘러간 것 같아….”
주변 놈들이 마이크에 안 잡히도록 작게 말을 주고받았다. 슬슬 카운트다운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3!”
“2!”
“1!”
꽃가루가 터지며, 조명과 음향이 고조된다.
“Happy New Year!!”
펑.
박수를 치며, 소리를 지르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한 해를 맞는 낯선 일이 또 일어났다.
“테스타 올해도 뭔가 보여준다~”
“사고 없이 건강하며 멋진 곡을 발표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어깨동무와 격려가 거칠게 오갔다. 마찬가지로 거칠게 흔들리는 응원봉을 향해 인사하니, 이번엔 응원봉이 미친 듯이 흔들린다.
‘거참, 팔 안 아픈가.’
그래 뭐. 좋다면 된 거겠지.
그때, 어깨 위로 팔이 쏟아졌다.
“문대야, 고생했어! 앞으로는 고생 덜하고 열심히만 하자~”
“자, 잘 부탁해…!”
“…그래. 새해 복 많이 받아라.”
나는 멤버들과 하이파이브와 덕담을 주고받았다.
기분이 좀 이상했다.
‘그래도 새해는 맞았군.’
중간에 뒤질 위험도 상당했는데, 어찌어찌 잘 넘기고 아이돌로 새해를 맞고 있긴 하구나 싶어서 말이다.
작년 이맘때는 이게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는데.
“……흠.”
좀 유쾌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의 첫 무대 위는 참 차갑고, 시끄럽고, 활기차고, 밝았다.
* * *
화려한 새해 카운트다운 다음. 본무대는 그다음 스테이지를 위해 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그리고 테스타는 바로 아래에서 대기할 예정이었다.
다다음 무대가 우리였으니까.
문제는 무대에서 내려오다가 잠시 화장실에 가기 위해 갈라졌을 때, 또 이놈을 만났다는 점이다.
“올해도 금방 또 보겠네요. 1월에도 쭉 시상식이 있으니까.”
“그렇겠지.”
청려다.
이 새끼는 이런 뻔한 소릴 할 거면 스탠바이 얼마 안 남은 사람을 방해하지 말아야….
“후배님이 1월 5일에 신곡을 내서… 시상식에서도 신곡 퍼포먼스였죠? 음, 용감한 선택이네요.”
“…….”
나는 발을 멈췄다.
‘용감한 선택?’
이 뉘앙스는… 테스타가 신곡으로 손해를 본다는 식인데.
“아, 설마 모르나.”
“…….”
“모르는구나. 정보원이 없어. 그렇죠? 후배님은 그게… 앞으로 가장 큰 문제겠네요.”
청려의 눈이 작게 번들거렸다. 그리고 후배에게 조언하는 투로 말했다.
“연줄이 없어서.”
“…….”
“음… 새해 선물이라고 치고, 들어요.”
청려는 웃었다.
“영린 씨가 활동 준비 중인 건 알아요?”
“…듣긴 했지.”
나는 지난번 MC를 준비하며, 영린에게 지나가듯 들었던 말을 떠올렸다.
지금 아이돌과 아이돌 출신 솔로들을 통틀어서 가장 음원 성적이 잘 나오는 사람이니까 언제 나와도 잘해 먹겠다고 생각했었다.
‘……잠깐.’
설마….
청려가 쓴웃음을 지었다.
“시기는 몰랐구나. 그거 새해 기념 돌발 음원이에요.”
“…!!”
“1월 4일. 그러니까… 후배님 그룹과 하루 차이네요.”
오 X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