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5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56화
추석 연휴가 끝나는 날 저녁 숙소.
멤버들이 하나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와 배세진이 가장 먼저 도착할 줄 알았는데, 먼저 온 놈이 있더라.
“어?”
“오~ 문대 왔네! 잘 왔어, 잘 왔어! 세진 형님도요~”
숙소와 본가가 가까운 큰세진은 일찌감치 복귀해서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보는 것은 코멘터리가 붙은 스페셜화다.
듣기로는 흥분한 사촌들에게 사인을 뿌리며 1군 아이돌의 명절을 즐긴 모양이다.
얼마 안 가서 큰세진 친척들의 목격담과 사인 인증이 SNS에 범람하겠지.
“냉정한 문대문대는 잘 지냈니? 우리 여사님이 너 실물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라!”
작은 할아버지 댁까지 갔다 왔다는 놈이 말은 잘한다.
“그래. 다음에 영상통화 한 번 드려야겠네.”
“하하!”
큰세진은 킬킬 웃었다.
쉬는 게 좋긴 한지 아니면 인지도를 실생활에서 확인하니 마음이 놓인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여유가 생긴 건 좋은 일이다.
이제 앨범 만들 때 마지막 기력 한 방울까지 쭉 짜낼 수 있겠군.
“아, 많이들 벌써 왔네.”
“다, 다녀왔어…!”
류청우와 선아현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선아현은 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남해의 작은 섬에서 기념품 선물까지 챙겨왔다.
나는 선아현이 내민 기러기 모양 빵을 받아들었다. 안에는 녹차 크림이 들어 있었다.
“우, 우리 갔던 그 섬 근처였어! 부모님이,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 고생을 보고도…?’
모르겠다. 하지만 즐거웠다니 내버려 두자.
“명절 연휴 편안히 보내셨습니까!”
그리고 보따리 싸 들고 온 김래빈은… 어딘지 좀 토실토실해졌다.
할머님 입원부터 본인 교통사고까지 올해 손자 고생했다고 왕창 먹이신 모양이다.
“형들?”
“……음, 잘 왔다.”
“예!”
뭐, 괜찮겠지. 비활동기니까. 건강에 문제 생길 정도도 아니고… 앨범을 준비하게 되면 자동으로 원래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는 양호했다는 것이 새벽에 밝혀진다.
가장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한 놈이 마지막에야 나타났기 때문이다.
“야호! Everybody say hello~ like 안녕하세요!”
“차유진!!”
새벽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 타고 온 차유진 말이다.
이놈은… 피부가 얼룩덜룩했다.
좋게 말해서 건강해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야말로 선크림 파괴자다.
바닷가에서 끝내주는 연휴를 보냈나 보지.
‘스타일리스트가 기함하겠군….’
실내에 가둔 뒤 비타민D만 경구 섭취하게 만들지 않을까.
“야! 너! 얼굴 뭐야!”
일단 김래빈부터 경악해서 차유진의 등짝을 갈긴다.
“어욱! 아냐! 나 건강하고 멋있어!”
“아니거든! 이건 건전한 태닝이 아니라 그냥 관리 실패로 인해 규칙 없이 탄 거잖아!”
“김래빈도 운동 안 했어! 실패야!”
“…! 아, 아니 나는 금방 운동을 통해 근손실을 회복….”
아무튼 그 난리통이 끝난 후에야 나는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그게 새벽 2시였다.
“내일… 아니, 오늘 점심 즈음에 회사 좀 가보려고 하는데요.”
“으헝?”
“왜, 왜…?”
“문대야 너 워커홀릭 너무한다, 좀 쉬어. 너 세진 형네에서도 일하다 왔지?”
“아니, 일단 들어봐라, 좀.”
뭐 한마디 하면 우르르 붙는군.
나는 이마를 누르며 말을 꺼냈다.
“우리, 특히 배세진 형이 소송 자료 모았던 게 아까워서 생각한 건데요….”
나는 연휴 동안 느긋이 짜둔 계획을 말로 옮겼다.
“음.”
출발 전에 이미 한번 들었던 배세진은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다른 놈들은 느낌표를 거쳐 고뇌에 찬 얼굴들이 되었다.
“그, 그게 가능할까…?”
“…가능은 해. 내가 변호사한테 물어봤어.”
배세진의 대답에 이어서 김래빈이 손을 들었다.
“혹시 불법적 행동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 후로는 제법 생산적인 토의와 서로 간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결국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음, 어차피 우리 원하는 건 다 합의가 된 상황이잖아요? 통할 것 같긴 한데요.”
“그래. 그럼 내일 다 같이 가서 면담하는 걸로 할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저 혼자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
그런 놈은 도리어 비밀스러운 일대일을 위압적으로 느낄 것이다. 나이도 어린놈들이 떼로 오면 하급자의 하극상으로 느낄 것 같단 말이지.
대표 한 명이 적절했다.
나는 그 부분을 설명한 후, 말을 덧붙였다.
“청우 형은 리더라 형이 대표면 공식적인 딜이라고 착각할 것 같아서요. 제가 가서 허를 찌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으음….”
배세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보복이나, 위협 같은 걸 고려하면….”
“괜찮습니다. 저도 그런 극단적인 수단을 쓸 생각은 없어서요.”
“…?”
왜 표정이 저러냐.
나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본부장이 저한테요?”
“…….”
“못 할걸요. 그런 놈이 무슨.”
그리고 잠시 뒤, 의견 전달자는 나로 최종 결정되었다.
순조로웠다.
* * *
T1 Stars의 세 번째 본부장은 그럭저럭 괜찮은 명절 연휴를 보냈다.
정신 나간 해고자가 골치 아픈 일을 만들긴 했지만, 명절 직전부터는 나름대로 회복에 탄성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사 이미지 타격부터 본사의 간섭, 투어 취소로 인한 손해를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근거렸다.
‘회복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나마 다행은 혼수상태였던 테스타의 멤버가 죽지 않았다는 점이었으나, 그다음 행보는 영 탐탁지 않았다.
‘그 와중에 기부 콘서트라니.’
그것도 타 소속사의 연관 플랫폼에서 말이다.
영 의심스러웠다.
‘설마 그쪽으로 이적이라도 시도해보겠다, 이건가?’
여론과 분위기상 차마 막을 순 없었으나, 연예계가 처음이라 아이돌의 소속사를 스포츠 선수의 구단에 가깝게 생각하던 본부장은 더 떨떠름해했다.
간을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스타가 그 소속사와 다시 컨택하는 기미는 없었고, 그는 의심을 일단 거뒀다.
‘여론 회복하는 대로 살살 달래서 투어부터 돌려야겠어.’
그러면서 투어 끝날 시점에 맞춰서 다음 앨범을 준비해서, 글로벌 런칭할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떼쓰는 아이돌 놈들의 말을 반영해 줘야 하는 것은 벌써 스트레스였지만 말이다.
‘대학도 안 나온 놈들이 사업 얼굴마담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할리우드 초기, 표 팔아먹으려고 만든 스타 마케팅 때문에 업계가 이 지경이 됐지 않은가!
하여간 엔터 사업은 체계와 품위가 없다며, 그는 혀를 끌끌 찼다.
야심을 가지고 뛰어들긴 했지만 영 정이 떨어졌다.
‘몇 년 정도만 포트폴리오 쭉 뽑고 다른 사업라인을 런칭해야겠어.’
그러다 점심시간, 미리 잡은 테스타 멤버와의 약속에 나온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어서 와요.”
사실 이것도 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디 그가 소속 연예인의 말 한마디에 약속을 잡아줘야 하는 위치던가?
그래도 새로운 패로 쓸 수도 있을 테니, 한번 들어볼 생각이었다.
교통사고 사건 때문에 회사가 뒤숭숭한 건 사실이니까.
‘어디 보자.’
그는 혼자 나온 테스타의 멤버, 박문대를 보며 짐작했다.
‘청탁인가.’
리더도 아니고, 지난번에 본사에 연락해 댔던 놈이라는 정보를 그도 들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테스타 전담팀이 만들어졌다는 것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도 못 나온 딴따라에게 그런 머리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써먹을 생각은 있었다.
‘좀 부추기면 자기 욕심을 못 이길 타입이야.’
팀에서 발언권이 있고, 나름대로 출세 욕심이 있는 놈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혼수상태에서 회복하고서도 자신을 만나러 온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코스요리가 나오는 초밥집 룸에 앉자마자, 박문대는 서류부터 꺼냈다.
“소송 서류입니다.”
“크흡!”
본부장은 사레가 들렸다.
그러나 눈앞의 아이돌은 미동도 없이 자신을 쳐다볼 뿐이었다.
무심히 관찰하는 얼굴이다.
“…….”
본부장은 순간 분노로 눈앞이 벌게지는 것 같았으나, 먼저 실리부터 챙겼다.
서류 말이다.
그리고 경악했다.
“…!”
“전 매니저 관련 소속사 과실 증거자료입니다.”
서류는 법적 의미에서 꼼꼼했다.
게다가 일부러 구체적 내용을 지운 부분도 있어서, 이 페이퍼를 확인하더라도 회사가 반박 자료를 만들기 까다로웠다.
누가 봐도 전문가의 손이 닿아 있었다.
‘변호사를 고용했나…!’
본부장은 티 나지 않게 심호흡한 뒤, 서류를 내렸다.
“그래서 나한테 이걸 왜 보여주고 있지?”
“…….”
“보니까 당장 소송하려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바라는 게 있어서 이러나?”
박문대는 인정했다.
‘나름대로 머리는 있는 놈이군.’
하긴, 이 본부장은 낙하산도 임원의 친인척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냥 자아 비대한 상급자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오히려 말하기 편했다.
그는 숙소 복귀 전날 밤. 배세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박문대 네가 첫 정산 때 세금 이야기했었잖아. 이건 세전 금액이라 나중에 많이 떼일 거라고.
-예.
-맞아. 그렇더라. 연예인은 근로자가 아니었어.
박문대도 계약서 작성 당시에, 자신이 대학과 공무원 시험을 통해 얻은 법 지식을 바탕으로 알았다.
연예인은 회사와 근로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기엔 기획사의 힘이 너무 크긴 한데.’
당장 그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 그냥 넘어가고.
박문대의 생각은 이러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계약서를 좀 더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다는 건데?’
사업자 간의 계약이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 제안을 하게 된다.
“기본 계약서에 추가 조항을 넣죠. 페널티 겸 개런티 조항을요.”
“개런티라.”
“예, 심각한 건 아니고, 일종의 내기 개념으로 넣자는 겁니다. 내용은….”
박문대는 웃었다.
“테스타가 다음의 연도 중 연간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 시, 테스타의 새로운 독립적 레이블 수립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
“기한은 2년으로 잡고… 아, 물론 형태는 산하로요. 계약 파기되면 쓰나요. T1 소속으로는 남아 있어야죠.”
박문대가 새롭게 내민 페이퍼에는 세부 내역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연간 시상식’이란 그해 음악시장에서의 판매 수치를 70% 이상 방영하는, 음원 혹은 음반 플랫폼 주체가 개최하는 시상식을 의미한다.
-…해당 검증이 이루어지는 기간 동안 갑은 을의 주도적이며 안전한 활동을 보장한다. 해당 조항에서 ‘주도적’이란…….
한마디로, 우리 알아서 할 테니 방해 말고 케어나 제대로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박문대는 알았다.
‘이 새끼는 연예계 인맥이 없어.’
있는 건 여기 자리를 꿰찰 만큼의 T1 본사 쪽 이사진과의 인맥이다. 하지만 평판 문제로 윗사람에게 이런 문제를 떠들 순 없을 것이다.
‘그럼 혼자 가지고 가야지.’
아니, 사실 떠들어도 상관없다.
‘우린 T1하고 척질 생각이 없고, 네가 본부장으로 있는 이 소속사와만 거리를 두고 싶다는 주장의 반복일 뿐이니까.’
이미 전담팀 요청 때도 써먹은 논리였다. 딜이 들켜도 본사에서 새삼스럽게 테스타를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
그 시간, 본부장도 비슷하게 계산을 끝냈다.
자신이 윽박지르거나 강하게 나오면, 도리어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점을.
그래서 두 손을 깍지 끼며, 좀 더 진중하게 말했다.
“아티스트 의견은 알겠지만… 내가 오케이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잖아요? 나는 실무진이고… 이사진, 대표이사님께 말씀드려야지.”
거짓말이었다. 사실 대표이사는 T1 친인척에게 명함을 주기 위해 준 자리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이 계약 수정사항을 논의할 사람은 본부장이 맞았다.
“아 전 그런 걸 잘 몰라서요.”
박문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그냥 본부장님이 설득해 주세요.”
“…! 무슨….”
“아니… 잘 모르니까요. 안 되면 저희 그냥 소송하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변호사분이 알아서 해주시겠죠.”
미친놈인가?
본부장은 할 말을 잃고 박문대를 뚫어져라 보았으나, 그 매끈한 얼굴에는 동요 한 점 없었다.
그래서 그도 알았다.
이놈은 정말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소송을 갈길 놈이었다.
그리고 이런 미친놈은 설득이 안 통한다.
“조금 있으면 새 시즌을 또 할 텐데, 거기서 데뷔하는 분들도 여기 소속이 될 테니 계약 기간도 얼마 안 남은 저희야 뭐… 레이블 정도는 괜찮죠. 안 그래요?”
“…….”
“대상 타면 레이블이나 하나 만들어주시면 되는 건데, 어려울 건 없어 보이는데요.”
그리고 그날 해질녘.
박문대는 수정되어 도장과 지장이 찍힌 7장의 계약서를 모두 챙겨 들고 귀가했다.
‘깔끔하네.’
시간을 안 주고 몰아붙이면 이럴 줄 알았다.
이런 문제에서 하루 이틀 기한을 더 줬다가는 쓸데없는 짓을 했을 것이다.
‘빨리 처리하는 게 정답이야.’
그리고 추가 조항이 어쨌든 테스타의 성적은 본인 커리어와도 관련 있으니, 탈 수 있는 대상을 못 타게 방해하진 못한다.
저 본부장은 누가 봐도 명예욕이 더럽게 많은 놈이니까.
게다가 만일을 위해 이중으로 위반 시 배상 조항도 걸었다.
박문대는 어깨를 으쓱했다.
‘배세진이 원하는 대로 법적 판례를 만들진 못했다만… 이 정도로 만족해줬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이제 내년까지는, 그리고 대상을 탄다면 그 이후까지도 운신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겠는가.
만일 대상을 못 탄다면?
‘그때는 정말 계약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상관없지.’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앨범이나 준비하러 갈까.”
그는 넉넉한 시간을 전부 쏟아 넣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만든다.’
…그렇게 지극히 고강도의 앨범 준비 합숙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테스타가 계획한 컴백 첫 무대는, T1이 주최하는 연말 시상식이었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56화
추석 연휴가 끝나는 날 저녁 숙소.
멤버들이 하나씩 복귀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와 배세진이 가장 먼저 도착할 줄 알았는데, 먼저 온 놈이 있더라.
“어?”
“오~ 문대 왔네! 잘 왔어, 잘 왔어! 세진 형님도요~”
숙소와 본가가 가까운 큰세진은 일찌감치 복귀해서 거실 소파에 누워 있었다. 보는 것은 코멘터리가 붙은 스페셜화다.
듣기로는 흥분한 사촌들에게 사인을 뿌리며 1군 아이돌의 명절을 즐긴 모양이다.
얼마 안 가서 큰세진 친척들의 목격담과 사인 인증이 SNS에 범람하겠지.
“냉정한 문대문대는 잘 지냈니? 우리 여사님이 너 실물 보고 싶었는데 아쉽다고 그렇게~ 이야기하시더라!”
작은 할아버지 댁까지 갔다 왔다는 놈이 말은 잘한다.
“그래. 다음에 영상통화 한 번 드려야겠네.”
“하하!”
큰세진은 킬킬 웃었다.
쉬는 게 좋긴 한지 아니면 인지도를 실생활에서 확인하니 마음이 놓인 건지는 모르겠다만, 어쨌든 여유가 생긴 건 좋은 일이다.
이제 앨범 만들 때 마지막 기력 한 방울까지 쭉 짜낼 수 있겠군.
“아, 많이들 벌써 왔네.”
“다, 다녀왔어…!”
류청우와 선아현은 거의 동시에 도착했다. 선아현은 또 가족 여행을 다녀왔다는데, 남해의 작은 섬에서 기념품 선물까지 챙겨왔다.
나는 선아현이 내민 기러기 모양 빵을 받아들었다. 안에는 녹차 크림이 들어 있었다.
“우, 우리 갔던 그 섬 근처였어! 부모님이, 한번 가보고 싶다고 하셔서….”
‘그 고생을 보고도…?’
모르겠다. 하지만 즐거웠다니 내버려 두자.
“명절 연휴 편안히 보내셨습니까!”
그리고 보따리 싸 들고 온 김래빈은… 어딘지 좀 토실토실해졌다.
할머님 입원부터 본인 교통사고까지 올해 손자 고생했다고 왕창 먹이신 모양이다.
“형들?”
“……음, 잘 왔다.”
“예!”
뭐, 괜찮겠지. 비활동기니까. 건강에 문제 생길 정도도 아니고… 앨범을 준비하게 되면 자동으로 원래대로 돌아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게다가 이 정도는 양호했다는 것이 새벽에 밝혀진다.
가장 파격적인 이미지 변신을 한 놈이 마지막에야 나타났기 때문이다.
“야호! Everybody say hello~ like 안녕하세요!”
“차유진!!”
새벽에 로스앤젤레스에서 비행기 타고 온 차유진 말이다.
이놈은… 피부가 얼룩덜룩했다.
좋게 말해서 건강해 보이고, 나쁘게 말하면 그야말로 선크림 파괴자다.
바닷가에서 끝내주는 연휴를 보냈나 보지.
‘스타일리스트가 기함하겠군….’
실내에 가둔 뒤 비타민D만 경구 섭취하게 만들지 않을까.
“야! 너! 얼굴 뭐야!”
일단 김래빈부터 경악해서 차유진의 등짝을 갈긴다.
“어욱! 아냐! 나 건강하고 멋있어!”
“아니거든! 이건 건전한 태닝이 아니라 그냥 관리 실패로 인해 규칙 없이 탄 거잖아!”
“김래빈도 운동 안 했어! 실패야!”
“…! 아, 아니 나는 금방 운동을 통해 근손실을 회복….”
아무튼 그 난리통이 끝난 후에야 나는 본론을 꺼낼 수 있었다.
그게 새벽 2시였다.
“내일… 아니, 오늘 점심 즈음에 회사 좀 가보려고 하는데요.”
“으헝?”
“왜, 왜…?”
“문대야 너 워커홀릭 너무한다, 좀 쉬어. 너 세진 형네에서도 일하다 왔지?”
“아니, 일단 들어봐라, 좀.”
뭐 한마디 하면 우르르 붙는군.
나는 이마를 누르며 말을 꺼냈다.
“우리, 특히 배세진 형이 소송 자료 모았던 게 아까워서 생각한 건데요….”
나는 연휴 동안 느긋이 짜둔 계획을 말로 옮겼다.
“음.”
출발 전에 이미 한번 들었던 배세진은 별 반응 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가운데, 다른 놈들은 느낌표를 거쳐 고뇌에 찬 얼굴들이 되었다.
“그, 그게 가능할까…?”
“…가능은 해. 내가 변호사한테 물어봤어.”
배세진의 대답에 이어서 김래빈이 손을 들었다.
“혹시 불법적 행동입니까?”
“아니, 그건 아니야.”
그 후로는 제법 생산적인 토의와 서로 간의 질의응답이 이어졌다.
결국 큰세진은 어깨를 으쓱했다.
“음, 어차피 우리 원하는 건 다 합의가 된 상황이잖아요? 통할 것 같긴 한데요.”
“그래. 그럼 내일 다 같이 가서 면담하는 걸로 할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그냥 저 혼자 가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어?”
그런 놈은 도리어 비밀스러운 일대일을 위압적으로 느낄 것이다. 나이도 어린놈들이 떼로 오면 하급자의 하극상으로 느낄 것 같단 말이지.
대표 한 명이 적절했다.
나는 그 부분을 설명한 후, 말을 덧붙였다.
“청우 형은 리더라 형이 대표면 공식적인 딜이라고 착각할 것 같아서요. 제가 가서 허를 찌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으음….”
배세진이 인상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
“그래도 보복이나, 위협 같은 걸 고려하면….”
“괜찮습니다. 저도 그런 극단적인 수단을 쓸 생각은 없어서요.”
“…?”
왜 표정이 저러냐.
나는 잠시 의아해하다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아, 본부장이 저한테요?”
“…….”
“못 할걸요. 그런 놈이 무슨.”
그리고 잠시 뒤, 의견 전달자는 나로 최종 결정되었다.
순조로웠다.
* * *
T1 Stars의 세 번째 본부장은 그럭저럭 괜찮은 명절 연휴를 보냈다.
정신 나간 해고자가 골치 아픈 일을 만들긴 했지만, 명절 직전부터는 나름대로 회복에 탄성이 붙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회사 이미지 타격부터 본사의 간섭, 투어 취소로 인한 손해를 생각하면 아직도 머리가 지근거렸다.
‘회복해서 그나마 다행이었지.’
그나마 다행은 혼수상태였던 테스타의 멤버가 죽지 않았다는 점이었으나, 그다음 행보는 영 탐탁지 않았다.
‘그 와중에 기부 콘서트라니.’
그것도 타 소속사의 연관 플랫폼에서 말이다.
영 의심스러웠다.
‘설마 그쪽으로 이적이라도 시도해보겠다, 이건가?’
여론과 분위기상 차마 막을 순 없었으나, 연예계가 처음이라 아이돌의 소속사를 스포츠 선수의 구단에 가깝게 생각하던 본부장은 더 떨떠름해했다.
간을 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테스타가 그 소속사와 다시 컨택하는 기미는 없었고, 그는 의심을 일단 거뒀다.
‘여론 회복하는 대로 살살 달래서 투어부터 돌려야겠어.’
그러면서 투어 끝날 시점에 맞춰서 다음 앨범을 준비해서, 글로벌 런칭할 생각이었다.
그 와중에 떼쓰는 아이돌 놈들의 말을 반영해 줘야 하는 것은 벌써 스트레스였지만 말이다.
‘대학도 안 나온 놈들이 사업 얼굴마담이나 제대로 할 것이지.’
할리우드 초기, 표 팔아먹으려고 만든 스타 마케팅 때문에 업계가 이 지경이 됐지 않은가!
하여간 엔터 사업은 체계와 품위가 없다며, 그는 혀를 끌끌 찼다.
야심을 가지고 뛰어들긴 했지만 영 정이 떨어졌다.
‘몇 년 정도만 포트폴리오 쭉 뽑고 다른 사업라인을 런칭해야겠어.’
그러다 점심시간, 미리 잡은 테스타 멤버와의 약속에 나온 것이다.
“안녕하십니까.”
“그래요, 어서 와요.”
사실 이것도 좀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어디 그가 소속 연예인의 말 한마디에 약속을 잡아줘야 하는 위치던가?
그래도 새로운 패로 쓸 수도 있을 테니, 한번 들어볼 생각이었다.
교통사고 사건 때문에 회사가 뒤숭숭한 건 사실이니까.
‘어디 보자.’
그는 혼자 나온 테스타의 멤버, 박문대를 보며 짐작했다.
‘청탁인가.’
리더도 아니고, 지난번에 본사에 연락해 댔던 놈이라는 정보를 그도 들었다.
그러나 그 때문에 테스타 전담팀이 만들어졌다는 것까진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고등학교도 못 나온 딴따라에게 그런 머리가 있을 것이라는 의심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써먹을 생각은 있었다.
‘좀 부추기면 자기 욕심을 못 이길 타입이야.’
팀에서 발언권이 있고, 나름대로 출세 욕심이 있는 놈 같았으니 말이다.
그러니 혼수상태에서 회복하고서도 자신을 만나러 온 것 아니겠는가!
그러나 코스요리가 나오는 초밥집 룸에 앉자마자, 박문대는 서류부터 꺼냈다.
“소송 서류입니다.”
“크흡!”
본부장은 사레가 들렸다.
그러나 눈앞의 아이돌은 미동도 없이 자신을 쳐다볼 뿐이었다.
무심히 관찰하는 얼굴이다.
“…….”
본부장은 순간 분노로 눈앞이 벌게지는 것 같았으나, 먼저 실리부터 챙겼다.
서류 말이다.
그리고 경악했다.
“…!”
“전 매니저 관련 소속사 과실 증거자료입니다.”
서류는 법적 의미에서 꼼꼼했다.
게다가 일부러 구체적 내용을 지운 부분도 있어서, 이 페이퍼를 확인하더라도 회사가 반박 자료를 만들기 까다로웠다.
누가 봐도 전문가의 손이 닿아 있었다.
‘변호사를 고용했나…!’
본부장은 티 나지 않게 심호흡한 뒤, 서류를 내렸다.
“그래서 나한테 이걸 왜 보여주고 있지?”
“…….”
“보니까 당장 소송하려는 게 아닌 것 같은데 바라는 게 있어서 이러나?”
박문대는 인정했다.
‘나름대로 머리는 있는 놈이군.’
하긴, 이 본부장은 낙하산도 임원의 친인척도 아니었으니 말이다. 그냥 자아 비대한 상급자였다.
그리고, 그 때문에 오히려 말하기 편했다.
그는 숙소 복귀 전날 밤. 배세진과의 대화를 떠올렸다.
-…박문대 네가 첫 정산 때 세금 이야기했었잖아. 이건 세전 금액이라 나중에 많이 떼일 거라고.
-예.
-맞아. 그렇더라. 연예인은 근로자가 아니었어.
박문대도 계약서 작성 당시에, 자신이 대학과 공무원 시험을 통해 얻은 법 지식을 바탕으로 알았다.
연예인은 회사와 근로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 분류되어 근로기준법이나 산업안전보건법을 제대로 적용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보기엔 기획사의 힘이 너무 크긴 한데.’
당장 그가 바꿀 수 있는 부분은 아니니 그냥 넘어가고.
박문대의 생각은 이러했다.
‘반대로 생각하면 계약서를 좀 더 자유롭게 작성할 수 있다는 건데?’
사업자 간의 계약이 되는 것 아닌가.
그래서 이 제안을 하게 된다.
“기본 계약서에 추가 조항을 넣죠. 페널티 겸 개런티 조항을요.”
“개런티라.”
“예, 심각한 건 아니고, 일종의 내기 개념으로 넣자는 겁니다. 내용은….”
박문대는 웃었다.
“테스타가 다음의 연도 중 연간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 시, 테스타의 새로운 독립적 레이블 수립을 전폭적으로 지원한다.”
“…!!”
“기한은 2년으로 잡고… 아, 물론 형태는 산하로요. 계약 파기되면 쓰나요. T1 소속으로는 남아 있어야죠.”
박문대가 새롭게 내민 페이퍼에는 세부 내역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연간 시상식’이란 그해 음악시장에서의 판매 수치를 70% 이상 방영하는, 음원 혹은 음반 플랫폼 주체가 개최하는 시상식을 의미한다.
-…해당 검증이 이루어지는 기간 동안 갑은 을의 주도적이며 안전한 활동을 보장한다. 해당 조항에서 ‘주도적’이란…….
한마디로, 우리 알아서 할 테니 방해 말고 케어나 제대로 해달라는 뜻이었다.
그리고 박문대는 알았다.
‘이 새끼는 연예계 인맥이 없어.’
있는 건 여기 자리를 꿰찰 만큼의 T1 본사 쪽 이사진과의 인맥이다. 하지만 평판 문제로 윗사람에게 이런 문제를 떠들 순 없을 것이다.
‘그럼 혼자 가지고 가야지.’
아니, 사실 떠들어도 상관없다.
‘우린 T1하고 척질 생각이 없고, 네가 본부장으로 있는 이 소속사와만 거리를 두고 싶다는 주장의 반복일 뿐이니까.’
이미 전담팀 요청 때도 써먹은 논리였다. 딜이 들켜도 본사에서 새삼스럽게 테스타를 적대할 이유는 없었다.
“…….”
그 시간, 본부장도 비슷하게 계산을 끝냈다.
자신이 윽박지르거나 강하게 나오면, 도리어 폭탄이 터질 것이라는 점을.
그래서 두 손을 깍지 끼며, 좀 더 진중하게 말했다.
“아티스트 의견은 알겠지만… 내가 오케이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니잖아요? 나는 실무진이고… 이사진, 대표이사님께 말씀드려야지.”
거짓말이었다. 사실 대표이사는 T1 친인척에게 명함을 주기 위해 준 자리일 뿐이다.
실질적으로 이 계약 수정사항을 논의할 사람은 본부장이 맞았다.
“아 전 그런 걸 잘 몰라서요.”
박문대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지만.
“그냥 본부장님이 설득해 주세요.”
“…! 무슨….”
“아니… 잘 모르니까요. 안 되면 저희 그냥 소송하는 게 편할 것 같습니다. 변호사분이 알아서 해주시겠죠.”
미친놈인가?
본부장은 할 말을 잃고 박문대를 뚫어져라 보았으나, 그 매끈한 얼굴에는 동요 한 점 없었다.
그래서 그도 알았다.
이놈은 정말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소송을 갈길 놈이었다.
그리고 이런 미친놈은 설득이 안 통한다.
“조금 있으면 새 시즌을 또 할 텐데, 거기서 데뷔하는 분들도 여기 소속이 될 테니 계약 기간도 얼마 안 남은 저희야 뭐… 레이블 정도는 괜찮죠. 안 그래요?”
“…….”
“대상 타면 레이블이나 하나 만들어주시면 되는 건데, 어려울 건 없어 보이는데요.”
그리고 그날 해질녘.
박문대는 수정되어 도장과 지장이 찍힌 7장의 계약서를 모두 챙겨 들고 귀가했다.
‘깔끔하네.’
시간을 안 주고 몰아붙이면 이럴 줄 알았다.
이런 문제에서 하루 이틀 기한을 더 줬다가는 쓸데없는 짓을 했을 것이다.
‘빨리 처리하는 게 정답이야.’
그리고 추가 조항이 어쨌든 테스타의 성적은 본인 커리어와도 관련 있으니, 탈 수 있는 대상을 못 타게 방해하진 못한다.
저 본부장은 누가 봐도 명예욕이 더럽게 많은 놈이니까.
게다가 만일을 위해 이중으로 위반 시 배상 조항도 걸었다.
박문대는 어깨를 으쓱했다.
‘배세진이 원하는 대로 법적 판례를 만들진 못했다만… 이 정도로 만족해줬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이제 내년까지는, 그리고 대상을 탄다면 그 이후까지도 운신이 완전히 자유롭지 않겠는가.
만일 대상을 못 탄다면?
‘그때는 정말 계약기간이 얼마 안 남아서 상관없지.’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어느 쪽이든 손해 볼 것이 없었다.
“앨범이나 준비하러 갈까.”
그는 넉넉한 시간을 전부 쏟아 넣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이번에는 제대로 만든다.’
…그렇게 지극히 고강도의 앨범 준비 합숙이 시작되었다.
참고로 테스타가 계획한 컴백 첫 무대는, T1이 주최하는 연말 시상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