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5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53화
명절 연휴 첫날, 밤 9시에 예고도 없이 집 대문 앞에 찾아온 박문대.
류청우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놀러 와도 좋다고 단체방에 올리긴 했지만….’
음식이 맛있다며 농담처럼 올린 말일뿐이다.
그러나 이 야밤에 사전 연락도 없이, 명절을 같이 보내자는 자신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사람이 불쑥 나타나는 것은… 대단히 기이했다.
‘그것도 그 박문대가?’
냉철하고 상황판단력이 좋고, 사리에 밝은 동생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어두운 바깥에 서 있는 박문대는….
“형.”
“……아, 미안. 그래.”
류청우는 잠시 멈춰 있다가, 발을 옮겨서 박문대가 집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밤에 밖에 서 있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몸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뭐지?’
평온한 박문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을 씻으려고 하는데요.”
“…저쪽이야.”
류청우는 화장실을 알려주며 생각했다. 박문대가 씻고 오면 좀 차분히 대화해 봐야겠다고.
‘부모님께도 미리 말씀드리자.’
지금쯤 오가는 목소리로 방문자가 자신의 지인인 것은 짐작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문을 닫으려 했으나….
박문대 뒤에서 따라오던 배세진의 머쓱한 얼굴을 마주했다.
“…??”
왜 네가 거기서 나와?
“어, 안녕.”
“그, 그래. 안녕.”
배세진이 슬그머니 과일을 들어 올렸다.
“이거… 사과인데.”
“아, 고마워.”
류청우는 황급히 과일을 받아들었다. 묘한 긴장감이 사라져 있었다.
‘음.’
그는 그제야 물어보았다.
“놀러 온 건 반갑네. 그런데 둘이… 무슨 일로?”
“…난 그냥 박문대 따라온 거야.”
배세진은 힐끔 박문대가 들어간 화장실 쪽을 보았다.
“너희 집에 가겠다는데, 약간… 그, 뭐야. 궁금해서.”
‘느낌이 이상해서 따라왔구나.’
류청우는 배세진의 걱정을 읽으며 물었다.
“혹시 왜 오겠다는 건지는 들은 거 없어?”
“없어. 음, 그런데….”
배세진은 류청우에게 작게 속삭였다.
“내 생각엔 뭔가 기억난 것 같아.”
“…!”
“그, 매번 갑자기 자다가 기억났잖아. 지금까지.”
류청우는 즉시 작년 여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람이, 공포와 고통 앞에서… 원래 좀 화내고 남 탓도 하고, 그래도 괜찮거든.
술을 마시고서야 겨우 속내를 털어놨던 박문대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을.
차후 박문대의 알코올 중독 증상을 알아차리며 내심 류청우는 그때의 접근 방식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어쨌든, 별개로 충격적인 경험이었기는 했다.
침착하고 똑 부러지던 동생이 갑자기 나에 대한 거부감을 주체하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걸 경험하면 누구든 그렇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이전 기억이 흐릿하다가, 번뜩 기억이 돌아와 그랬다는 걸 알음알음 알게 된 상태라면 더 했다.
‘비슷한… 느낌인가.’
류청우는 아까 본 박문대에게서 느껴지던 묘한 긴장감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했으나, 막상 화장실에서 나온 박문대를 보자 생각을 고쳐먹었다.
“형,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박문대의 얼굴엔 류청우를 향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냥… 눈깔이 뒤집혔다는 게 올바른 표현 같았다.
‘이런.’
류청우는 배세진과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음, 일단… 우리 부모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대화할까?”
“예.”
배세진이 황급히 손을 씻고 나와서 박문대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류청우는 둘을 부모님께 소개했다.
어쩐지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여기… 동생들인데, 과일 가지고 잠깐 놀러 왔어요.”
“어머!”
“어서 와요~”
부모님은 좀 놀라신 것 같았으나, 어쨌든 좋게 둘을 환영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둘은 깍듯하게 인사했으나, 류청우는 혹시 몰라 박문대의 눈빛을 확인했다.
그리고 심드렁한 동태눈을 한 박문대를 발견했다.
‘왜… 저런?’
목표물이 아닌 탓이었다.
류청우는 더 혼란해졌으나, 어쨌든 거실에 박문대와 배세진을 앉혔다.
깜이가 뛰어와서 박문대의 무릎에 앉고, 박문대는 능숙하게 까만 강아지의 귀를 긁으며 말했다.
“형.”
“그, 그래.”
다시 박문대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제 노고에 보답해 주신다고 했었죠.”
“…그랬지.”
그런… 단어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으나, 어쨌든 류청우는 솔직히 답했다. 옆에서 배세진이 동공을 떨고 있다.
“들어주셨으면 하는 부탁이 생겼습니다.”
박문대는 별 표정 없이 빠르게 말했다.
“형 어릴 때 사진 좀 보고 싶은데요.”
“…??”
생각도 못 한 말이 나왔다.
“아니, 기왕이면 영상으로. 단란한 대가족의 한때가 포함된 기록은 없을까요.”
류청우는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걸 왜?”
“그냥요.”
무적의 답변이었다.
배세진이 뒤에서 입 모양으로 외쳤다.
‘어릴 때 기억!’
“…!”
그래. 어릴 때 기억과 관련된 단서를 잡아서, 비슷한 장면을 보고 자극을 받고 싶은 걸 수도 있겠다.
‘세진이네에서 내가 제일 가깝던가?’
류청우는 막연히 생각하며, 일단 미소를 지었다. 상황을 대충 짐작이라도 했다는 안도의 미소였다.
“그래, 그럼 있는 걸 좀 꺼내올까?”
“네. 부탁드립니다.”
류청우는 빠르게 안방으로 가서 앨범과 비디오를 꺼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본 것은 기계적으로 깜이를 현란히 쓰다듬고 있는 박문대와, 긴장한 배세진이었다.
“…….”
류청우는 잠시 고민했으나, 박문대가 좀 얼이 빠졌을지언정 지난번처럼 충격에 어쩔 줄 몰라 하진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기로 했다.
“여기, 앨범부터 볼래?”
“앨범을 보면서 비디오를 함께 감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형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정도를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요구가 구체적이고 나이대가 정확한 걸 보니, 정말 배세진의 추측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류청우도 생각했다.
“하하, 그래.”
류청우는 약간 긴장을 풀며, 비디오를 재생했다. TV에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흘러나왔다.
[청우야~ 여기 손 흔들어!]
쑥스러운 얼굴의 어린 자신이 화면에 들어찼다. 덩달아 류청우 자신도 약간 민망했다.
아마 이때도 추석이었는데, 온갖 친척들이 차량을 대절해서 다 함께 놀러 갔던 것이 기억났다.
“…몇 학년 때야? 키 크네.”
“아마 2학년이었을 거야.”
배세진의 표정에 미약한 패배감이 떠올랐으나 류청우는 눈치채지 못했다.
옆에서 박문대가 강아지 턱을 긁으며 이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
어쨌든, 그렇게 앉은 세 사람은 앨범과 비디오를 시청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은 복도를 오가다 보며 흐뭇한 시선을 던졌지만,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굳이 왜 보여주냐’는.
아마도 자신이 부상으로 은퇴한 뒤, 온갖 매스컴에 시달리며 타인에게 방어적으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류청우는 희미한 죄책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문대가 내 목숨을 구해준 건 말해야겠다.’
명절에 박문대가 온다면, 원래도 말하려고 했으니까.
류청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영상을 계속 시청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와아아!]
홈비디오가 또 교체되었다.
배세진은 자신의 무릎 위에 올라온 강아지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다.
‘별일 아니었네.’
이대로 앉아서 이야기나 좀 나누다가 돌아가려나.
야식은 몸에 안 좋지만, 그래도 명절이니 건강한 선에서 뭐라도 먹여 보내야겠다고 류청우는 생각했다.
그때였다.
옆자리의 박문대가 벌떡 일어났다.
“…!!”
“잠깐.”
박문대는 리모콘을 들어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 TV 화면을 향해 걸어갔다.
어딘지, 확신에 찬 얼굴로.
* * *
‘나다.’
보자마자 알았다.
화면 속, 펜션 소파 구석에 앉아서 책을 들고 심드렁한 얼굴을 한 저놈은… 류건우였다.
“…….”
어쩐지, 긴장이 쭉 풀리는데.
머리에 피가 도는 느낌이다. 시원했다.
‘여기도 있었구나.’
이 비디오는 아직 초반이다. 좀 더 돌리면 부모님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참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그 컷을 찍었다.
찰칵.
그쯤 되자, 배세진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거… 아는 사람이야?”
“…….”
맞다.
당장 마음이 급해서 변명을 깜빡했군.
‘뇌가 썩었나.’
나는 내심 혀를 차며 대답했다.
“아는 사람인데,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요.”
“아….”
변명은 오래 끌수록 변명 같아진다. 빠르게 대답하다 보니, 내가 ‘박문대’에게 밥을 샀던 장면이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이 말이 나왔다.
배세진이 반색했다.
“그럼 혹시 이 사람이 기억나서 온 거야?”
“예? …예.”
알아서 스토리를 만들어주는군. 고맙다.
나는 단서 추적 겸, 살을 붙였다.
“이름이 류건우라, 혹시 청우 형과 친척인가 해서요. 류씨가 많지 않잖아요.”
“그렇구나. …음. 이렇게 보니 생김새도 좀 닮은 것 같네.”
그런가?
어쨌든, 이름이 비슷하다는 허술한 변명이 생김새 덕에 잘 먹혔는지, 류청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말했다.
“한번 부모님께 여쭤볼까? 혹시 아는 친척인지.”
“…감사하죠.”
솔직히 워낙 먼 친척이라 몇 년에 한 번 정도나 얼굴을 봤으니 모를 것 같다만, 시도는 나쁘지 않겠지.
‘이랬는데 이미 중학교 때 사고로 저승에 있다고 하면….’
무슨 오해를 받을지 약간 아찔해졌으나 밀고 나가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지.
그리고 부모님에게서는 예상했던 답이 나왔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 말이다.
“으음…….”
난감한 건 난데 이 두 놈이 고민한다.
기억상실증이 임팩트가 탁월해서 그러나.
심지어 이런 제안도 나왔다.
“문중에 물어볼 수도 있어. 대충 나이대랑 이름 아니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럼… 감사하죠.”
“이런 걸로 감사하긴.”
류청우는 웃으며 전화를 걸었고, 곧 몇 마디 대화 뒤에 상당히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줬다.
“빨리 알아보고 말씀 주시겠대.”
“명절인데 감사하네요.”
“하하, 그것도 전해드릴게.”
그렇게, ‘류건우의 흔적 추적’은 제법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남은 대화 화제는 강아지만 남게 되었다.
배세진이 슬그머니 물었다.
“…그, 끝이야?”
“그렇죠.”
아무래도 배세진은 어머니가 혼자 집에 계시는 게 신경 쓰일 것이다.
요청한 것도 아닌데, 따라와 준 것이 놀라울 뿐이다. 물론 아까는 오든 말든 신경도 못 썼다만.
“내가 전화로 알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류청우도 완곡하게 ‘돌아가도 된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그렇게 나는 류청우의 부모님께 한 번 더 인사드린 뒤, 배세진의 집으로 함께 귀가했다.
물론, 인사는 잊지 않았고.
“과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는 김에 산 거지 뭐…!”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꽤 뿌듯해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정신없는 중에 경우 없는 놈으로 찍히지 않도록 도움을 받았으니, 내일 뭐라도 명절 음식을 하나 해볼 생각이다.
“후.”
그렇게, 나는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진실 확인’으로 본 광경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진 않았다.
“…….”
X발, 때려 치자. 어쨌든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지금 생각해서 뭐하냐. 답도 없는 것을.
나는 생각을 털고, 대신할 만한 놈을 불렀다.
“상태창.”
뭐, 아직도 그 ‘정산 중’이니 하는 게 떠 있을 것 같긴 하다만….
퍼퍼버버벙!
“…!!”
갑자기, 눈앞에 꽃가루가 터졌다.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꽃가루들은 팝업에서부터 튀어나와, 아름답게 난반사하며 침대 위로 비산했다.
그리고 상태창은 황홀하게 무지갯빛으로 번뜩였다.
[대성공!]
이용자 : 박문대(류건우)는 모든 상태이상 제거에 성공했습니다!
보상 : 영구적 상태창, 칭호
[칭호 생성!]
: 성공한 자 (아이돌)
감미로운 인생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
뭐라고?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53화
명절 연휴 첫날, 밤 9시에 예고도 없이 집 대문 앞에 찾아온 박문대.
류청우가 상상도 해본 적 없는 상황이었다.
‘놀러 와도 좋다고 단체방에 올리긴 했지만….’
음식이 맛있다며 농담처럼 올린 말일뿐이다.
그러나 이 야밤에 사전 연락도 없이, 명절을 같이 보내자는 자신의 제안을 단호히 거절했던 사람이 불쑥 나타나는 것은… 대단히 기이했다.
‘그것도 그 박문대가?’
냉철하고 상황판단력이 좋고, 사리에 밝은 동생이 아닌가.
그런데 지금, 어두운 바깥에 서 있는 박문대는….
“형.”
“……아, 미안. 그래.”
류청우는 잠시 멈춰 있다가, 발을 옮겨서 박문대가 집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비켜주었다.
어찌 되었든 간에 이 밤에 밖에 서 있게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다만 이유를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몸을 팽팽하게 만들었다.
‘뭐지?’
평온한 박문대의 목소리가 들렸다.
“손을 씻으려고 하는데요.”
“…저쪽이야.”
류청우는 화장실을 알려주며 생각했다. 박문대가 씻고 오면 좀 차분히 대화해 봐야겠다고.
‘부모님께도 미리 말씀드리자.’
지금쯤 오가는 목소리로 방문자가 자신의 지인인 것은 짐작하셨을 것이다.
그리고 류청우는 문을 닫으려 했으나….
박문대 뒤에서 따라오던 배세진의 머쓱한 얼굴을 마주했다.
“…??”
왜 네가 거기서 나와?
“어, 안녕.”
“그, 그래. 안녕.”
배세진이 슬그머니 과일을 들어 올렸다.
“이거… 사과인데.”
“아, 고마워.”
류청우는 황급히 과일을 받아들었다. 묘한 긴장감이 사라져 있었다.
‘음.’
그는 그제야 물어보았다.
“놀러 온 건 반갑네. 그런데 둘이… 무슨 일로?”
“…난 그냥 박문대 따라온 거야.”
배세진은 힐끔 박문대가 들어간 화장실 쪽을 보았다.
“너희 집에 가겠다는데, 약간… 그, 뭐야. 궁금해서.”
‘느낌이 이상해서 따라왔구나.’
류청우는 배세진의 걱정을 읽으며 물었다.
“혹시 왜 오겠다는 건지는 들은 거 없어?”
“없어. 음, 그런데….”
배세진은 류청우에게 작게 속삭였다.
“내 생각엔 뭔가 기억난 것 같아.”
“…!”
“그, 매번 갑자기 자다가 기억났잖아. 지금까지.”
류청우는 즉시 작년 여름, 미국에서 있었던 일을 떠올렸다.
-사람이, 공포와 고통 앞에서… 원래 좀 화내고 남 탓도 하고, 그래도 괜찮거든.
술을 마시고서야 겨우 속내를 털어놨던 박문대에게 그렇게 말했던 것을.
차후 박문대의 알코올 중독 증상을 알아차리며 내심 류청우는 그때의 접근 방식을 아쉬워하기도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을까?’
어쨌든, 별개로 충격적인 경험이었기는 했다.
침착하고 똑 부러지던 동생이 갑자기 나에 대한 거부감을 주체하지 못하며 고통스러워하는 걸 경험하면 누구든 그렇지 않았겠는가.
그것도 이전 기억이 흐릿하다가, 번뜩 기억이 돌아와 그랬다는 걸 알음알음 알게 된 상태라면 더 했다.
‘비슷한… 느낌인가.’
류청우는 아까 본 박문대에게서 느껴지던 묘한 긴장감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했으나, 막상 화장실에서 나온 박문대를 보자 생각을 고쳐먹었다.
“형, 제가 궁금한 게 있는데요.”
박문대의 얼굴엔 류청우를 향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냥… 눈깔이 뒤집혔다는 게 올바른 표현 같았다.
‘이런.’
류청우는 배세진과 빠르게 시선을 교환했다.
“음, 일단… 우리 부모님께 인사부터 드리고 대화할까?”
“예.”
배세진이 황급히 손을 씻고 나와서 박문대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류청우는 둘을 부모님께 소개했다.
어쩐지 식은땀이 날 것 같았다.
“여기… 동생들인데, 과일 가지고 잠깐 놀러 왔어요.”
“어머!”
“어서 와요~”
부모님은 좀 놀라신 것 같았으나, 어쨌든 좋게 둘을 환영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둘은 깍듯하게 인사했으나, 류청우는 혹시 몰라 박문대의 눈빛을 확인했다.
그리고 심드렁한 동태눈을 한 박문대를 발견했다.
‘왜… 저런?’
목표물이 아닌 탓이었다.
류청우는 더 혼란해졌으나, 어쨌든 거실에 박문대와 배세진을 앉혔다.
깜이가 뛰어와서 박문대의 무릎에 앉고, 박문대는 능숙하게 까만 강아지의 귀를 긁으며 말했다.
“형.”
“그, 그래.”
다시 박문대의 눈이 형형하게 빛났다.
“제 노고에 보답해 주신다고 했었죠.”
“…그랬지.”
그런… 단어 선택은 아니었던 것 같으나, 어쨌든 류청우는 솔직히 답했다. 옆에서 배세진이 동공을 떨고 있다.
“들어주셨으면 하는 부탁이 생겼습니다.”
박문대는 별 표정 없이 빠르게 말했다.
“형 어릴 때 사진 좀 보고 싶은데요.”
“…??”
생각도 못 한 말이 나왔다.
“아니, 기왕이면 영상으로. 단란한 대가족의 한때가 포함된 기록은 없을까요.”
류청우는 당연한 질문을 했다.
“그걸 왜?”
“그냥요.”
무적의 답변이었다.
배세진이 뒤에서 입 모양으로 외쳤다.
‘어릴 때 기억!’
“…!”
그래. 어릴 때 기억과 관련된 단서를 잡아서, 비슷한 장면을 보고 자극을 받고 싶은 걸 수도 있겠다.
‘세진이네에서 내가 제일 가깝던가?’
류청우는 막연히 생각하며, 일단 미소를 지었다. 상황을 대충 짐작이라도 했다는 안도의 미소였다.
“그래, 그럼 있는 걸 좀 꺼내올까?”
“네. 부탁드립니다.”
류청우는 빠르게 안방으로 가서 앨범과 비디오를 꺼냈다.
그리고 돌아오면서 본 것은 기계적으로 깜이를 현란히 쓰다듬고 있는 박문대와, 긴장한 배세진이었다.
“…….”
류청우는 잠시 고민했으나, 박문대가 좀 얼이 빠졌을지언정 지난번처럼 충격에 어쩔 줄 몰라 하진 않는다는 것을 감안하기로 했다.
“여기, 앨범부터 볼래?”
“앨범을 보면서 비디오를 함께 감상하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기왕이면 형이 초등학교 저학년 때 정도를 보고 싶은데 괜찮을까요.”
요구가 구체적이고 나이대가 정확한 걸 보니, 정말 배세진의 추측이 맞을 수도 있겠다고 류청우도 생각했다.
“하하, 그래.”
류청우는 약간 긴장을 풀며, 비디오를 재생했다. TV에서 자신의 어릴 적 모습이 흘러나왔다.
쑥스러운 얼굴의 어린 자신이 화면에 들어찼다. 덩달아 류청우 자신도 약간 민망했다.
아마 이때도 추석이었는데, 온갖 친척들이 차량을 대절해서 다 함께 놀러 갔던 것이 기억났다.
“…몇 학년 때야? 키 크네.”
“아마 2학년이었을 거야.”
배세진의 표정에 미약한 패배감이 떠올랐으나 류청우는 눈치채지 못했다.
옆에서 박문대가 강아지 턱을 긁으며 이러고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
어쨌든, 그렇게 앉은 세 사람은 앨범과 비디오를 시청하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부모님은 복도를 오가다 보며 흐뭇한 시선을 던졌지만, 약간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기도 했다. ‘굳이 왜 보여주냐’는.
아마도 자신이 부상으로 은퇴한 뒤, 온갖 매스컴에 시달리며 타인에게 방어적으로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류청우는 희미한 죄책감에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문대가 내 목숨을 구해준 건 말해야겠다.’
명절에 박문대가 온다면, 원래도 말하려고 했으니까.
류청우는 그렇게 생각하며 영상을 계속 시청했다. 분위기는 나쁘지 않았다.
홈비디오가 또 교체되었다.
배세진은 자신의 무릎 위에 올라온 강아지를 보고 어쩔 줄 몰라 하는 중이다.
‘별일 아니었네.’
이대로 앉아서 이야기나 좀 나누다가 돌아가려나.
야식은 몸에 안 좋지만, 그래도 명절이니 건강한 선에서 뭐라도 먹여 보내야겠다고 류청우는 생각했다.
그때였다.
옆자리의 박문대가 벌떡 일어났다.
“…!!”
“잠깐.”
박문대는 리모콘을 들어 영상을 멈췄다.
그리고 TV 화면을 향해 걸어갔다.
어딘지, 확신에 찬 얼굴로.
* * *
‘나다.’
보자마자 알았다.
화면 속, 펜션 소파 구석에 앉아서 책을 들고 심드렁한 얼굴을 한 저놈은… 류건우였다.
“…….”
어쩐지, 긴장이 쭉 풀리는데.
머리에 피가 도는 느낌이다. 시원했다.
‘여기도 있었구나.’
이 비디오는 아직 초반이다. 좀 더 돌리면 부모님도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일단 참자.
나는 스마트폰을 들어서 그 컷을 찍었다.
찰칵.
그쯤 되자, 배세진이 당황한 얼굴로 물었다.
“그거… 아는 사람이야?”
“…….”
맞다.
당장 마음이 급해서 변명을 깜빡했군.
‘뇌가 썩었나.’
나는 내심 혀를 차며 대답했다.
“아는 사람인데, 신세를 진 적이 있어서요.”
“아….”
변명은 오래 끌수록 변명 같아진다. 빠르게 대답하다 보니, 내가 ‘박문대’에게 밥을 샀던 장면이 떠올라서 자연스럽게 이 말이 나왔다.
배세진이 반색했다.
“그럼 혹시 이 사람이 기억나서 온 거야?”
“예? …예.”
알아서 스토리를 만들어주는군. 고맙다.
나는 단서 추적 겸, 살을 붙였다.
“이름이 류건우라, 혹시 청우 형과 친척인가 해서요. 류씨가 많지 않잖아요.”
“그렇구나. …음. 이렇게 보니 생김새도 좀 닮은 것 같네.”
그런가?
어쨌든, 이름이 비슷하다는 허술한 변명이 생김새 덕에 잘 먹혔는지, 류청우는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친절하게 말했다.
“한번 부모님께 여쭤볼까? 혹시 아는 친척인지.”
“…감사하죠.”
솔직히 워낙 먼 친척이라 몇 년에 한 번 정도나 얼굴을 봤으니 모를 것 같다만, 시도는 나쁘지 않겠지.
‘이랬는데 이미 중학교 때 사고로 저승에 있다고 하면….’
무슨 오해를 받을지 약간 아찔해졌으나 밀고 나가기로 했다. 이렇게 된 이상 별수 없지.
그리고 부모님에게서는 예상했던 답이 나왔다.
‘잘 기억나지 않는다’는 말 말이다.
“으음…….”
난감한 건 난데 이 두 놈이 고민한다.
기억상실증이 임팩트가 탁월해서 그러나.
심지어 이런 제안도 나왔다.
“문중에 물어볼 수도 있어. 대충 나이대랑 이름 아니까 찾아볼 수 있을 것 같은데.”
“…! 그럼… 감사하죠.”
“이런 걸로 감사하긴.”
류청우는 웃으며 전화를 걸었고, 곧 몇 마디 대화 뒤에 상당히 긍정적인 소식을 전해줬다.
“빨리 알아보고 말씀 주시겠대.”
“명절인데 감사하네요.”
“하하, 그것도 전해드릴게.”
그렇게, ‘류건우의 흔적 추적’은 제법 성공적으로 끝났다.
그리고 남은 대화 화제는 강아지만 남게 되었다.
배세진이 슬그머니 물었다.
“…그, 끝이야?”
“그렇죠.”
아무래도 배세진은 어머니가 혼자 집에 계시는 게 신경 쓰일 것이다.
요청한 것도 아닌데, 따라와 준 것이 놀라울 뿐이다. 물론 아까는 오든 말든 신경도 못 썼다만.
“내가 전화로 알려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류청우도 완곡하게 ‘돌아가도 된다’는 의사 표현을 했다.
그렇게 나는 류청우의 부모님께 한 번 더 인사드린 뒤, 배세진의 집으로 함께 귀가했다.
물론, 인사는 잊지 않았고.
“과일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그, 사는 김에 산 거지 뭐…!”
그렇게 말하는 것 치곤 꽤 뿌듯해하는 것 같은데.
어쨌든 정신없는 중에 경우 없는 놈으로 찍히지 않도록 도움을 받았으니, 내일 뭐라도 명절 음식을 하나 해볼 생각이다.
“후.”
그렇게, 나는 다시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하지만 ‘진실 확인’으로 본 광경 때문인지 잠이 잘 오진 않았다.
“…….”
X발, 때려 치자. 어쨌든 난 그런 기억이 없는데 지금 생각해서 뭐하냐. 답도 없는 것을.
나는 생각을 털고, 대신할 만한 놈을 불렀다.
“상태창.”
뭐, 아직도 그 ‘정산 중’이니 하는 게 떠 있을 것 같긴 하다만….
퍼퍼버버벙!
“…!!”
갑자기, 눈앞에 꽃가루가 터졌다.
홀로그램으로 이루어진 꽃가루들은 팝업에서부터 튀어나와, 아름답게 난반사하며 침대 위로 비산했다.
그리고 상태창은 황홀하게 무지갯빛으로 번뜩였다.
이용자 : 박문대(류건우)는 모든 상태이상 제거에 성공했습니다!
보상 : 영구적 상태창, 칭호
: 성공한 자 (아이돌)
감미로운 인생을 보내시길 바랍니다.
“…….”
뭐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