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a Mắt Hay Ra Đi Raw - C24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8화
전기가 돌아온 별장.
온수로 잘 씻고 건조기로 빨래도 마친 놈들은 둘러앉아서 백숙을 먹었다. 죽도 한 솥 끓이고.
“크, 이거지….”
“저, 정말 잘 먹었어!”
“형 요리 맨날 맛있어요!”
“그래, 고맙다.”
솔직히 채소가 거의 없다 보니 밖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을 것 같진 않은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순식간에 토종닭 두 마리는 뼈만 남았다.
‘괜찮네.’
나는 앞으로의 식사를 예상했다.
아마 그 정도 크기의 셀러라면, 고기뿐만 아니라 보관성 좋은 다른 식재료들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과하지 않은 선에서 한두 가지는 더 먹어도 양해를 구할 수 있겠지.
…쪽팔려서 얼른 나오느라 제대로 찾아보진 못했다만.
‘망할.’
-으아아악!!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악!
다시 뇌를 스치는 아찔한 헛짓거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잊자. 멘탈에 좋을 게 없다.
“으음, 아직도 제작진분들이랑 연락 안 되네요?”
“그러네. 밖에 나가서 한번 시도해 볼까?”
다른 놈들은 충전이 완료된 스마트폰을 들고 연락책을 강구하는 중이다.
‘뭐, 전기 복구됐고 먹을 구석 나왔으니 그리 급할 건 없다만.’
수정된 일기예보도 썩 믿음직하진 않다만, 아무리 길어도 앞으로 이삼일이면 정리되겠지.
이젠 방송 분량이고 나발이고 그냥 여기서 최대한 쾌적하게 지내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솔직히 선 넘었지.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제안했다.
“지하창고에 채소 있는지 좀 확인할까요. 응급 상황이니까 어느 정도는 써도 될 것 같은데.”
“그럴까?”
“난 찬성~ 아, 그리고 핏물도 좀 치워드리죠! 제작진분들 오셨다가 우리처럼 식겁하시겠어~”
“미, 밀대 찾아올게…!”
그리하여 식사 정리가 끝나는 대로 청소도구를 가지고 다시 지하실에 내려가게 되었다.
혹시 또 정전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여 손전등을 넉넉히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고.
‘아마 보존성 좋은… 향신료나, 안주용 올리브 절임 같은 건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예상대로, 몇 가지 추가 물품을 발견했다.
“오 와인~”
“혹시 이 치즈가 혹시 워낙 고가이거나 한정된 품목이라 저희가 섭취했을 경우 주인분께 충분한 보상을 드리지 못할 확률이 존재할까요?”
“…그냥 다른 걸 먹자.”
하지만 내려간 지하실에서 발견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헐, 이거 봐.”
“……!”
냉동고 핏자국을 지우던 도중.
그 거대한 기계의 그림자에 교묘히 가려진, 또 다른 문을 찾은 것이다.
심지어 이번 것은 제법 작았다. 내 키라면 살짝 굽히고 이동해야 할 정도.
류청우가 유심히 문을 살폈다.
“음, 이건….”
“…이번에야말로 이 건물 보일러실 아니야?”
가능성 있는 발언이다.
“열어 봐요!!”
“정전도 일어났는데 갑자기 가스 끊기고 이러면 곤란하잖아요~ 한번 확인은 해두죠?”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오!”
“그럼 열어 보겠습니다.”
합의된 것 같군. 나는 밀대를 세워둔 채, 금속 문손잡이를 돌려 잡아당겼다.
드르륵.
문은 부드럽게 열리며… 예상하지 못했던 안쪽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손전등!”
배세진이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자, 저 멀리 길이 꺾인 콘크리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정집 밑에 있을 만한 구조는 아니었다.
훅.
안으로 지하 구조물 냄새가 나는 바람이 빨려들며 코를 스쳤다.
“헉.”
“와, 이거 뭘까요??”
“우, 우리가 가봐도 괜찮은 걸까…?”
핏자국 때문에 기겁했던 것을 깨끗이 잊었는지, 미지의 탐험 거리에 어째 들뜬 놈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해는 간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실내에 처박혀 있었으니 이런 걸로도 흥미가 돋겠지.
류청우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비상 대피로 같은데… 저기 봐. 유도등 같거든.”
“오오.”
과연, 안쪽에서 어렴풋이 살짝 초록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재난을 대비해서 만들어뒀나.’
그러면 도리상 여기서 촬영하는 놈들한테도 말은 해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뭐 주인 마음이긴 하다만.
류청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가 조난 중이다 보니… 한번 확인해 두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해.”
“가요! 가요!”
“…괜찮겠지.”
그래서 밀대로 입구 문을 고정한 채로, 통로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지난번 사태로 교훈을 얻은 놈들은 손전등을 있는 대로 다 켜고 통로를 편안하게 걸어갔다.
다만 생각보다 이 통로가 상당히 길었다.
이윽고 비상 유도 등을 서너 개쯤 지나쳤을 때.
“이거 별장 밖으로 꽤 나온 것 같은데요?”
“…그러게.”
이게 뭔 통로인지 정체를 모를 노릇이니, 슬슬 긴장하는 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몇 명이 빨리 이 통로 끝만 확인하고 오는 건….”
“NONONO!”
“무슨 소리야~ 다 같이 가야지!”
“…….”
난리군.
어쨌든, 그래서 몇 번 더 모퉁이를 돌며 이동한 결과.
“저, 저기, 문 같아요…!”
드디어 통로가 끝나고 문이 나왔다.
문에는 묘하게 잘 디자인된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는데, 작동 중이진 않은 것 같았다.
“오, 주인분이 이런 센스가 좋으신가 보네요.”
“그러게.”
나는 다른 놈들이 떠들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문손잡이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그럼 열겠습니….”
“어어~ 문대문대, 잠깐! 이런 것도 다 같이 해야 하지 않겠어?”
“맞아요! 저도 해요!”
“…그러냐.”
그래. 마음대로 해라.
카메라도 없는데 공동체 증명에 참 적극적인 놈들 덕분에, 일곱이 한 문에 매달리는 기이한 그림이 나왔다.
심지어 구호까지 외친다. 순 학교 수련회 같다만… 뭐, 즐거워 보이니 굳이 뭐라 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배세진까지 한 손 내미는 것을 보고, 손잡이에서 살짝 내 손을 비켜주었다.
“자, 다 같이 열어봅시다.”
“하나, 둘… 셋!”
달칵.
처음 느껴진 것은, 묘한 저항감이었다.
그러나 장정 일곱이 한꺼번에 문을 여니, 특별히 멈칫거릴 일 없이 단번에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우당탕탕!
“…!”
“뭐, 뭐야??”
눈앞에 드러난 것은 웬 어두컴컴한 실내공간이었으나, 그게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으아아악!!”
“와으학!!”
몇 시간 전 지하실에서 들었던 것과 아주 유사한 비명이 아주 이 공간이 떠나가라 싶게 울렸다.
“…??”
“어어어?!”
문밖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다.
금방이라도 때릴 듯, 엉거주춤하게 카메라 장비 지지대를 들고 있는 그들은… 제작진이다.
뭐야.
‘너희가 왜 여기서 나와.’
“아니, 여러분이 왜 거기서!! 대체 어디서!!”
“엄마야!”
아무래도 상대도 똑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제작진은 서글픈 소리를 내며 앞으로 엎어졌다.
“으어허헉!”
* * *
두 그룹은 더없이 당황한 채로 마주 보며 고함을 지르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진정했다.
“그러니까… 비상 근무 중이셨군요.”
“예…. 그렇죠.”
초췌한 안색의 제작진들은 벌써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이렇게 돼서 갇힐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 문자.’
-여러분 지금 도저히 배를 띄우거나 섬에서 도보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잠시만 대기 부탁드립니다. 곧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왜 굳이 ‘섬에서 도보 이동’ 이야기가 있나 했더니, 섬에 상시 거주 중인 인원이 있었던 거였군.
하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자연스러운 그림을 뽑고 싶어도 섬에 출연진만 놔두고 제작진이 모두 빠지는 시간대가 있는 건 미친 짓이다. 무슨 사고가 날 줄 알고.
다만, 이런 천재지변까지는 예상 못 한 모양이다.
제작진 하나가 진저리를 쳤다.
“기껏해야 소나기 예보만 있었는데… 어휴.”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이곳에 제작진들이 고립된 것이다. 물도 식량도 부족한 상태로 상당히 고초를 겪은 모양이다.
그리고, 여기서 당연한 질문이 나왔다.
“근데 여긴…?”
“아, 여기 그 예능 세트장이에요! 컨테이너.”
“…!”
나는 첫날, 별장 밖으로 확인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로고 있는 컨테이너요?”
“네네.”
그 철거되지 않은 탈출 예능용 컨테이너를 이 제작진들이 촬영 준비 기지로 써먹었다고 한다.
“날씨 안 좋아지면 여러분 관광 컨텐츠로도 쓰려고 했는데… 네, 망했네요.”
“하하하하….”
어쨌든, 덕분에 사람이 며칠 지낼 만한 수준의 쾌적함과 강도는 유지 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들이 임시 거처로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벽지를 뚫고 우리가 튀어나와서 기함했다고 한다.
“벼, 벽지요?”
“네. 아니, 위치도 모르시는데 대체 어떻게 오셨어요?”
그리고 제작진들은 우리가 온 통로를 보고 기절초풍했다.
“헐, 이런 게 있었어??”
“나 진짜 박 PD님 가만 안 둘 거야….”
나중에 알게 된 비화로는, 사실 지난 탈출 예능에서 쓰려다가 출연진들의 이동 루트상 드러나지 않은 구조물이었다고 한다.
메인 PD 등은 알음알음 알고 있었지만, 여기 비상 대기조로 남은 막내 당직들은 모르고 있었다고.
어쨌든, 그래도 이들이 굳이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고 여기서 이 궁상을 떨고 있던 이유는 하나였다.
“아, 그쪽도 먹을 게 별로 없고 불안할 텐데… 괜히 저희가 여기 고립됐다 어쨌다 하면 부담이 될 것 같아서요.”
안 그래도 힐링 컨텐츠 맘껏 즐기게 해주겠다고 데리고 왔는데, 이 지경이 되어서 면목이 없었다고.
나는 그 문맥을 읽었다.
‘테스타가 지랄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사실 제작진 입장에선 우리가 그래도 할 말 없는 상황이긴 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작은 뒷말이 붙었다.
“촬영 그림도 망가질 것 같고….”
“…??”
“촬영 그림…이요?”
천재지변 나고 카메라 다 죽었을 판에 무슨 소린가 했다.
“아, 그거… 아마 지금도 고정 캠 몇 개는 아직 살아 있을걸요?”
“네??”
“새로 받은 장비거든요. 그, 적외선 카메라도 아마 살아있을 것 같고.”
“헐, 그렇구나~”
“……”
괜찮다. 어차피 지하실에는 카메라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꼴은 안 보여주겠지.
어쨌든, 이후로는 상식적인 구조 제안이 이어졌다.
“별장에 식재료 꽤 있거든요! 걱정 마시고 어서 같이 가요. 아이고, 너무 고생하셨다….”
“그래요. 일단 씻고 식사하신 다음에 말씀 나누시죠.”
“모, 몸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흑흑.”
“감사합니다.”
제작진들은 비바람 몰아치는 위험천만한 비포장 길 대신 실내 통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별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문을 통해 나오자마자 외쳤다.
“아, 여기로 통하는 거였구나!”
“…??”
그… 낯익다는 반응은 뭐냐.
“최 작가님이 여기서 무슨 보물찾기 하는 걸 원래 오늘 컨텐츠로 쓰려고 했다셨거든요.”
“우리 중에 여기 설치 담당자가 없지? 맞아. 아무튼 그래서 다들 처음 들어오긴 하는데… 아, 여기 식재료도 많았네요. 다행입니다.”
제작진들이 밝게 외쳤다.
…그리고 당장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어디선가 숨겨진 카메라들을 찾아내서 확인하는 것 아닌가.
“이야, 다행이다. 이 컷들 살릴 수 있겠어요!”
“…….”
실화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스토리적으로, 좀 끊기지 않을까요. 통로에는 카메라도 없고.”
“아, 걱정 마세요.”
제작진이 환하게 희망을 뭉갰다.
“혹시 몰라서 저희 쪽도 기록용으로 카메라 돌렸거든요. 여러분이 등장하시는 것도 잘 찍혔을 거예요!”
“당연히 편집 잘 들어갈 테니 그건 염려 마시고요.”
“…….”
그래, 이 부분은 포기하자. 아니, 컨텐츠 되고 좋겠군. 걱정이 한결 덜었다.
‘정전 때 지하실만 넘기면 된다.’
그러나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그다음에 밝혀진다.
별장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카메라를 확인하던 제작진들이, 감탄과 탄식을 교차하고 있을 때.
“아, 메인이 죽었네….”
“이걸로 끝인가?”
“저… 혹시 이것도 필요하십니까?”
김래빈이 뜬금없이 카메라를 하나 슬그머니 꺼내 온 것이다.
“…!”
저거… 내 취미로 발탁돼서 가져온 카메라잖아.
촬영 후반에 반나절쯤 인당 하나씩 쥐고 섬을 돌아다닐 용도로 지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들 처박아두고 까먹은 줄 알았는데.’
심지어 나도 상황 돌아가는 판에 거의 잊고 있었건만, 이 고지식한 놈이 뭔가 찍어놓은 모양이었다.
제작진은 일단 감사했다.
“오! 감사합니다.”
“넵, 저희 좀 돌려볼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 봤자 몇 컷 안 될….
[조난 1일째, 아침 9시 11분. 기록자는 그룹 테스타에서 프로듀싱과 랩을 맡고 있는 21살 김래빈이다.]
[만일을 위해, 이 모든 사건을 기록해 두려고 한다….]
“…….”
언뜻 본 카메라에는, 김래빈의 진지한 얼굴이 큼지막하게 잡혀 있었다.
이놈은 조난인 한명 한명의 배경을 주절주절 설명하더니, 아주 3시간마다 브리핑을 했다.
무슨 1인칭 캠코더 시점 재난 영화가 따로 없다.
[오전 12시. 통조림과 즉석 밥을 배분했다. 이 폭풍이 지나가기 전에 떨어지는 일이 없길.]
[오전 6시. 어제는 거실에서 모든 인원이 함께 취침했다. 차유진이 쓸데없이 불안감을 조성하는 괴기한 이야기를 했다. 놀랍게도 류청우 형은 즐거워했다.]
그리고 정전사건 당일 기록.
주먹을 불끈 쥔 김래빈이 카메라에 대고 외쳤다.
[우리는… 병아리를 구할 것이다!]
“…….”
“으하하학! 대박!!”
“래빈 씨 최고예요!”
“그, 그렇습니까.”
나는 직감했다.
‘망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 캠코더 기록은, 그대로 예고편으로 나가게 된다….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248화
전기가 돌아온 별장.
온수로 잘 씻고 건조기로 빨래도 마친 놈들은 둘러앉아서 백숙을 먹었다. 죽도 한 솥 끓이고.
“크, 이거지….”
“저, 정말 잘 먹었어!”
“형 요리 맨날 맛있어요!”
“그래, 고맙다.”
솔직히 채소가 거의 없다 보니 밖에서 먹는 것보다 맛있을 것 같진 않은데, 상황이 상황인지라 순식간에 토종닭 두 마리는 뼈만 남았다.
‘괜찮네.’
나는 앞으로의 식사를 예상했다.
아마 그 정도 크기의 셀러라면, 고기뿐만 아니라 보관성 좋은 다른 식재료들도 있을 것이다.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과하지 않은 선에서 한두 가지는 더 먹어도 양해를 구할 수 있겠지.
…쪽팔려서 얼른 나오느라 제대로 찾아보진 못했다만.
‘망할.’
-으아아악!!
-내가 이상하다고 했잖아!! 아악!
다시 뇌를 스치는 아찔한 헛짓거리에 정신이 아득해진다.
잊자. 멘탈에 좋을 게 없다.
“으음, 아직도 제작진분들이랑 연락 안 되네요?”
“그러네. 밖에 나가서 한번 시도해 볼까?”
다른 놈들은 충전이 완료된 스마트폰을 들고 연락책을 강구하는 중이다.
‘뭐, 전기 복구됐고 먹을 구석 나왔으니 그리 급할 건 없다만.’
수정된 일기예보도 썩 믿음직하진 않다만, 아무리 길어도 앞으로 이삼일이면 정리되겠지.
이젠 방송 분량이고 나발이고 그냥 여기서 최대한 쾌적하게 지내는 것에 집중할 생각이다. 솔직히 선 넘었지.
나는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제안했다.
“지하창고에 채소 있는지 좀 확인할까요. 응급 상황이니까 어느 정도는 써도 될 것 같은데.”
“그럴까?”
“난 찬성~ 아, 그리고 핏물도 좀 치워드리죠! 제작진분들 오셨다가 우리처럼 식겁하시겠어~”
“미, 밀대 찾아올게…!”
그리하여 식사 정리가 끝나는 대로 청소도구를 가지고 다시 지하실에 내려가게 되었다.
혹시 또 정전이 일어나는 것을 대비하여 손전등을 넉넉히 챙기는 것도 잊지 않았고.
‘아마 보존성 좋은… 향신료나, 안주용 올리브 절임 같은 건 있을 것 같은데.’
그리고 예상대로, 몇 가지 추가 물품을 발견했다.
“오 와인~”
“혹시 이 치즈가 혹시 워낙 고가이거나 한정된 품목이라 저희가 섭취했을 경우 주인분께 충분한 보상을 드리지 못할 확률이 존재할까요?”
“…그냥 다른 걸 먹자.”
하지만 내려간 지하실에서 발견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헐, 이거 봐.”
“……!”
냉동고 핏자국을 지우던 도중.
그 거대한 기계의 그림자에 교묘히 가려진, 또 다른 문을 찾은 것이다.
심지어 이번 것은 제법 작았다. 내 키라면 살짝 굽히고 이동해야 할 정도.
류청우가 유심히 문을 살폈다.
“음, 이건….”
“…이번에야말로 이 건물 보일러실 아니야?”
가능성 있는 발언이다.
“열어 봐요!!”
“정전도 일어났는데 갑자기 가스 끊기고 이러면 곤란하잖아요~ 한번 확인은 해두죠?”
“그래, 그러는 게 좋겠다.”
“오!”
“그럼 열어 보겠습니다.”
합의된 것 같군. 나는 밀대를 세워둔 채, 금속 문손잡이를 돌려 잡아당겼다.
드르륵.
문은 부드럽게 열리며… 예상하지 못했던 안쪽 모습을 드러냈다.
“…통로?”
“손전등!”
배세진이 손전등으로 안을 비추자, 저 멀리 길이 꺾인 콘크리트 통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가정집 밑에 있을 만한 구조는 아니었다.
훅.
안으로 지하 구조물 냄새가 나는 바람이 빨려들며 코를 스쳤다.
“헉.”
“와, 이거 뭘까요??”
“우, 우리가 가봐도 괜찮은 걸까…?”
핏자국 때문에 기겁했던 것을 깨끗이 잊었는지, 미지의 탐험 거리에 어째 들뜬 놈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이해는 간다. 아무것도 안 하고 실내에 처박혀 있었으니 이런 걸로도 흥미가 돋겠지.
류청우는 살짝 눈을 가늘게 뜨더니, 손가락으로 안쪽을 가리켰다.
“비상 대피로 같은데… 저기 봐. 유도등 같거든.”
“오오.”
과연, 안쪽에서 어렴풋이 살짝 초록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재난을 대비해서 만들어뒀나.’
그러면 도리상 여기서 촬영하는 놈들한테도 말은 해뒀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데, 뭐 주인 마음이긴 하다만.
류청우가 어깨를 으쓱거렸다.
“우리가 조난 중이다 보니… 한번 확인해 두는 건 나쁘지 않을 것 같긴 해.”
“가요! 가요!”
“…괜찮겠지.”
그래서 밀대로 입구 문을 고정한 채로, 통로에 진입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지난번 사태로 교훈을 얻은 놈들은 손전등을 있는 대로 다 켜고 통로를 편안하게 걸어갔다.
다만 생각보다 이 통로가 상당히 길었다.
이윽고 비상 유도 등을 서너 개쯤 지나쳤을 때.
“이거 별장 밖으로 꽤 나온 것 같은데요?”
“…그러게.”
이게 뭔 통로인지 정체를 모를 노릇이니, 슬슬 긴장하는 놈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여기서 기다려. 몇 명이 빨리 이 통로 끝만 확인하고 오는 건….”
“NONONO!”
“무슨 소리야~ 다 같이 가야지!”
“…….”
난리군.
어쨌든, 그래서 몇 번 더 모퉁이를 돌며 이동한 결과.
“저, 저기, 문 같아요…!”
드디어 통로가 끝나고 문이 나왔다.
문에는 묘하게 잘 디자인된 잠금장치가 걸려 있었는데, 작동 중이진 않은 것 같았다.
“오, 주인분이 이런 센스가 좋으신가 보네요.”
“그러게.”
나는 다른 놈들이 떠들 때까지 기다려줬다가, 문손잡이 위에 다시 손을 올렸다.
“그럼 열겠습니….”
“어어~ 문대문대, 잠깐! 이런 것도 다 같이 해야 하지 않겠어?”
“맞아요! 저도 해요!”
“…그러냐.”
그래. 마음대로 해라.
카메라도 없는데 공동체 증명에 참 적극적인 놈들 덕분에, 일곱이 한 문에 매달리는 기이한 그림이 나왔다.
심지어 구호까지 외친다. 순 학교 수련회 같다만… 뭐, 즐거워 보이니 굳이 뭐라 할 필요는 없겠지.
나는 배세진까지 한 손 내미는 것을 보고, 손잡이에서 살짝 내 손을 비켜주었다.
“자, 다 같이 열어봅시다.”
“하나, 둘… 셋!”
달칵.
처음 느껴진 것은, 묘한 저항감이었다.
그러나 장정 일곱이 한꺼번에 문을 여니, 특별히 멈칫거릴 일 없이 단번에 문이 활짝 열렸다.
그리고.
우당탕탕!
“…!”
“뭐, 뭐야??”
눈앞에 드러난 것은 웬 어두컴컴한 실내공간이었으나, 그게 눈에 들어올 겨를이 없었다.
“으아아악!!”
“와으학!!”
몇 시간 전 지하실에서 들었던 것과 아주 유사한 비명이 아주 이 공간이 떠나가라 싶게 울렸다.
“…??”
“어어어?!”
문밖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심지어 안면이 있는 얼굴들이다.
금방이라도 때릴 듯, 엉거주춤하게 카메라 장비 지지대를 들고 있는 그들은… 제작진이다.
뭐야.
‘너희가 왜 여기서 나와.’
“아니, 여러분이 왜 거기서!! 대체 어디서!!”
“엄마야!”
아무래도 상대도 똑같은 생각을 한 것 같다.
제작진은 서글픈 소리를 내며 앞으로 엎어졌다.
“으어허헉!”
* * *
두 그룹은 더없이 당황한 채로 마주 보며 고함을 지르다가, 시간이 좀 지나고 나서야 진정했다.
“그러니까… 비상 근무 중이셨군요.”
“예…. 그렇죠.”
초췌한 안색의 제작진들은 벌써 며칠째 제대로 씻지도 못한 모양이었다.
“갑자기 날씨가 이렇게 돼서 갇힐 줄을 누가 알았겠어요.”
그 이야기를 들으니 갑자기 생각이 났다.
‘그 문자.’
-여러분 지금 도저히 배를 띄우거나 섬에서 도보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 잠시만 대기 부탁드립니다. 곧 대책을 강구하겠습니다.
왜 굳이 ‘섬에서 도보 이동’ 이야기가 있나 했더니, 섬에 상시 거주 중인 인원이 있었던 거였군.
하긴, 생각해 보니 아무리 자연스러운 그림을 뽑고 싶어도 섬에 출연진만 놔두고 제작진이 모두 빠지는 시간대가 있는 건 미친 짓이다. 무슨 사고가 날 줄 알고.
다만, 이런 천재지변까지는 예상 못 한 모양이다.
제작진 하나가 진저리를 쳤다.
“기껏해야 소나기 예보만 있었는데… 어휴.”
그래서 아무 준비 없이 이곳에 제작진들이 고립된 것이다. 물도 식량도 부족한 상태로 상당히 고초를 겪은 모양이다.
그리고, 여기서 당연한 질문이 나왔다.
“근데 여긴…?”
“아, 여기 그 예능 세트장이에요! 컨테이너.”
“…!”
나는 첫날, 별장 밖으로 확인했던 것을 떠올렸다.
“그 로고 있는 컨테이너요?”
“네네.”
그 철거되지 않은 탈출 예능용 컨테이너를 이 제작진들이 촬영 준비 기지로 써먹었다고 한다.
“날씨 안 좋아지면 여러분 관광 컨텐츠로도 쓰려고 했는데… 네, 망했네요.”
“하하하하….”
어쨌든, 덕분에 사람이 며칠 지낼 만한 수준의 쾌적함과 강도는 유지 중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제작진들이 임시 거처로 쓰고 있었는데, 갑자기 벽지를 뚫고 우리가 튀어나와서 기함했다고 한다.
“벼, 벽지요?”
“네. 아니, 위치도 모르시는데 대체 어떻게 오셨어요?”
그리고 제작진들은 우리가 온 통로를 보고 기절초풍했다.
“헐, 이런 게 있었어??”
“나 진짜 박 PD님 가만 안 둘 거야….”
나중에 알게 된 비화로는, 사실 지난 탈출 예능에서 쓰려다가 출연진들의 이동 루트상 드러나지 않은 구조물이었다고 한다.
메인 PD 등은 알음알음 알고 있었지만, 여기 비상 대기조로 남은 막내 당직들은 모르고 있었다고.
어쨌든, 그래도 이들이 굳이 우리에게 연락하지 않고 여기서 이 궁상을 떨고 있던 이유는 하나였다.
“아, 그쪽도 먹을 게 별로 없고 불안할 텐데… 괜히 저희가 여기 고립됐다 어쨌다 하면 부담이 될 것 같아서요.”
안 그래도 힐링 컨텐츠 맘껏 즐기게 해주겠다고 데리고 왔는데, 이 지경이 되어서 면목이 없었다고.
나는 그 문맥을 읽었다.
‘테스타가 지랄할 거라고 생각했나 보군….’
사실 제작진 입장에선 우리가 그래도 할 말 없는 상황이긴 했다.
다만, 예상치 못한 작은 뒷말이 붙었다.
“촬영 그림도 망가질 것 같고….”
“…??”
“촬영 그림…이요?”
천재지변 나고 카메라 다 죽었을 판에 무슨 소린가 했다.
“아, 그거… 아마 지금도 고정 캠 몇 개는 아직 살아 있을걸요?”
“네??”
“새로 받은 장비거든요. 그, 적외선 카메라도 아마 살아있을 것 같고.”
“헐, 그렇구나~”
“……”
괜찮다. 어차피 지하실에는 카메라가 있을 리가 없으니까. 그 꼴은 안 보여주겠지.
어쨌든, 이후로는 상식적인 구조 제안이 이어졌다.
“별장에 식재료 꽤 있거든요! 걱정 마시고 어서 같이 가요. 아이고, 너무 고생하셨다….”
“그래요. 일단 씻고 식사하신 다음에 말씀 나누시죠.”
“모, 몸 괜찮으세요…?”
“괜찮습니다…. 흑흑.”
“감사합니다.”
제작진들은 비바람 몰아치는 위험천만한 비포장 길 대신 실내 통로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별장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문을 통해 나오자마자 외쳤다.
“아, 여기로 통하는 거였구나!”
“…??”
그… 낯익다는 반응은 뭐냐.
“최 작가님이 여기서 무슨 보물찾기 하는 걸 원래 오늘 컨텐츠로 쓰려고 했다셨거든요.”
“우리 중에 여기 설치 담당자가 없지? 맞아. 아무튼 그래서 다들 처음 들어오긴 하는데… 아, 여기 식재료도 많았네요. 다행입니다.”
제작진들이 밝게 외쳤다.
…그리고 당장 사방으로 흩어지더니, 어디선가 숨겨진 카메라들을 찾아내서 확인하는 것 아닌가.
“이야, 다행이다. 이 컷들 살릴 수 있겠어요!”
“…….”
실화냐.
나는 나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
“…스토리적으로, 좀 끊기지 않을까요. 통로에는 카메라도 없고.”
“아, 걱정 마세요.”
제작진이 환하게 희망을 뭉갰다.
“혹시 몰라서 저희 쪽도 기록용으로 카메라 돌렸거든요. 여러분이 등장하시는 것도 잘 찍혔을 거예요!”
“당연히 편집 잘 들어갈 테니 그건 염려 마시고요.”
“…….”
그래, 이 부분은 포기하자. 아니, 컨텐츠 되고 좋겠군. 걱정이 한결 덜었다.
‘정전 때 지하실만 넘기면 된다.’
그러나 더 기가 막힌 사실은 그다음에 밝혀진다.
별장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 카메라를 확인하던 제작진들이, 감탄과 탄식을 교차하고 있을 때.
“아, 메인이 죽었네….”
“이걸로 끝인가?”
“저… 혹시 이것도 필요하십니까?”
김래빈이 뜬금없이 카메라를 하나 슬그머니 꺼내 온 것이다.
“…!”
저거… 내 취미로 발탁돼서 가져온 카메라잖아.
촬영 후반에 반나절쯤 인당 하나씩 쥐고 섬을 돌아다닐 용도로 지급된 것으로 알고 있다.
‘다들 처박아두고 까먹은 줄 알았는데.’
심지어 나도 상황 돌아가는 판에 거의 잊고 있었건만, 이 고지식한 놈이 뭔가 찍어놓은 모양이었다.
제작진은 일단 감사했다.
“오! 감사합니다.”
“넵, 저희 좀 돌려볼게요.”
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그래 봤자 몇 컷 안 될….
“…….”
언뜻 본 카메라에는, 김래빈의 진지한 얼굴이 큼지막하게 잡혀 있었다.
이놈은 조난인 한명 한명의 배경을 주절주절 설명하더니, 아주 3시간마다 브리핑을 했다.
무슨 1인칭 캠코더 시점 재난 영화가 따로 없다.
그리고 정전사건 당일 기록.
주먹을 불끈 쥔 김래빈이 카메라에 대고 외쳤다.
“…….”
“으하하학! 대박!!”
“래빈 씨 최고예요!”
“그, 그렇습니까.”
나는 직감했다.
‘망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이 캠코더 기록은, 그대로 예고편으로 나가게 된다….